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7)

 

신앙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예레미야 44:16).

 

지내 봐야, 겪어 봐야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겉으로 봐선 모르고, 잠깐 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있다.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는 겉모습만 보고선 판단할 수가 없다. 말에 대해 눈 밝은 이가 있어 말의 생김새를 보고 대강의 성격이나 힘을 짐작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말을 제대로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먼 길을 가는 것이다. 먼 길을 가보면 말의 힘은 물론 말의 성질까지가 다 드러날 테니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잠깐 보아서 좋은 사람이 나중까지 좋을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갈수록 실망을 주는 사람들도 있고, 갈수록 호감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함께 하면 할수록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지복이 아닐 수가 없다.

 

결국은 믿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잠깐 뜨거운 것이야 맘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한결같은 믿음이다. 변함없음 속에 믿음의 고갱이가 있다. 믿음은 결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한결같은 걸음이다.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이스라엘 땅에 남은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이집트로 피신을 했다. 그게 사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먼저 주님의 뜻을 구했다. 주님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말씀에 순종을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주님의 뜻이 전해지자 주님의 뜻을 거짓말이라 한다.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교묘하게 비튼다.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그냥 유다 땅에 머물러 살라 하셨다니, 그러실 리가 없다고,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자신들을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서 그들이 자신들을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꾄 것이라 한다.

 

살 길을 알려주었지만 다른 살 길을 찾아 이집트로 내려간, 또 한 번 주님의 뜻을 등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전해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디에 있어도, 그 모습이 어떠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해진다. 이집트로 내려간 백성들에게 과연 어떤 말씀이 전해졌을까?

 

이집트 땅에 전쟁과 기근이 찾아와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결국은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백성들이라는 자부심으로 살던 이들이 이방 사람들 앞에서 저주, 놀램, 조롱, 수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은 항의를 한다.

 

당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소.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맹세한 대로 할 것이오(16절).

 

한 번 등을 돌리기가 어렵지, 한 번 등을 돌린 이가 두 번 세 번 등을 돌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굳어진다. 전해지는 주님의 말씀보다도 자신들의 입으로 한 맹세를 앞세운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과 그들의 왕들과 그들의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그에게 술 제물을 바치겠다고 말다. 아예 등을 돌리겠다고 선언을 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다.

 

하늘 여신을 섬길 때에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이 풍족하였고, 우리가 잘 살았으며, 재앙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는 일을 그치고 그에게 술 제물 바치는 일을 그친 뒤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게 되었고, 우리는 전쟁과 기근으로 죽게 되었소(17-18절).

 

두렵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빚어진 일을 두고서 우상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마음이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자 지난 시간을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까지가 달라지고 만다. 현재를 부정할 뿐 아니라 과거까지를 부정하고 있다.

 

“당신이 야훼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한 말을 우리는 듣지 않겠소.” <공동번역개정판>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의 메시지라며 전하는 말에 전혀 개의치 않겠소.” <메시지>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일까 싶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될까, 회의감이 든다. 한 때 믿는 것은 쉽다. 한 때 뜨거워지는 것은 맘먹으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한결같은 걸음, 그게 신앙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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