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48)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역사가 되어야

 

11월 12일, 촛불의 바다에서 민심은 그렇게 일렁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날을 1987년 6.10 항쟁과 비교하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년(2017년)은 6월 항쟁 민주화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치열했던 시대의 함성은 이제 역사의 육성이 되었고, 현실은 새롭게 변모했습니다. 자유는 넘쳐나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자는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이 된 듯싶습니다. 2007년의 6월은 그런 세상의 변화 앞에서 어쩌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처럼 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암울했던 시대에 우리는 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와 손을 잡고 역사 앞에서 행동하면 되는지 모르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위협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옥문은 언제나 민주주의 만세를 부르는 이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간 자,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처참함을 경험했고 시대 전체가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총과 칼로 지켜내는 권력이 끝까지 가는 법은 없습니다. 억누른다고 다 억눌려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멩이도 소리치는 세상은 그렇게 왔습니다. 1980년 광주의 저 유혈극은 군사주의의 생명을 연장했지만, 1987년의 세상은 그 악한 권세가 조만간 운명을 달리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일깨웠습니다. 그해 6월은 뜨거웠습니다. 태양도 뜨거웠고, 거리도 뜨거웠습니다. 온 세상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 최루탄을 총처럼 쏘아대 학생들이 죽어 가고 도시는 휘청거렸습니다. 권력의 거짓과 오만은 폭력이 되어 하루하루를 지배했고, 뭔가 새로운 결단이 있지 않으면 계속 누군가는 죽어나가야 했습니다. 6월 항쟁은 그런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태였습니다. 아니, 사태라기보다는 사건이었습니다. 혁명이었습니다.

 

권력은 움츠러들었고 시민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군대가 정치를 쥐고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놓는 일은 없게 하자는 역사적 의지는 그렇게 발휘되었습니다. 군사정부의 시대는 가고, 민주주의 정부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입니다. 6월 항쟁으로 이어 등장한 노태우 정부는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 시절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힘이 빠진 권력이 되어갔습니다. 시민혁명은 승리했고 권력은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누구도 군대가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6월 항쟁은 그렇게 역사의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과거의 암울한 시대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은 다 잘 해결된 것일까요? 시민혁명을 일으킨 시민들은 항쟁이 성공한 이후 그냥 얌전하게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을까요? 권력을 맡긴 정치인들이 다 알아서 잘 해가기를 바라면 그 뿐이었을까요? 현실은 거의 언제나 혁명을 배반합니다. 권력은 감시를 게을리 하면 오만해지고 독재하고 싶은 악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보듯이 그래서 권력은 더더욱 교활해지고, 본색은 감추는 방식을 택하곤 합니다. 국민은 속고 권력은 기만적인 통치술에 능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따라서 끊임없이 지켜내지 않으면 위기에 처하고 맙니다.

 

 

 

 

1987년 6월 항쟁은 그렇게 역사의 소임을 다 마쳤다고 여기고 귀가했으나 현실은 앞서 말했듯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이전과는 다른 민주주의의 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워지고 언론은 그런 비판을 했다고 보복당하지 않으며 낮은 목소리로 권력에 대해 속삭일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더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 구도는 의미를 잃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고 비정규직 확대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양극화는 더더욱 심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민주주의는 왔으나 민생의 문제는 더욱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빵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며 민주주의는 더더욱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할 과제가 된 것입니다. 민주화와 반민주의 대립은 아직도 유효한 것입니다.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힘을 잃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권력을 꼬드겨 자본의 자유가 팽창되도록 만드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한 지경에 처합니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이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군사정권처럼 내놓고 탄압하는 경우라면 대응이 훨씬 확실할 것이나, 이제 우리는 자본의 보다 교묘한 방식의 지배 앞에서 자유는 넘쳐나나 그 자유가 소비의 자유, 굴복할 자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자유, 비판하지 않을 자유로 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한동안 민주주의의 본질이 위태로워지고 있는데도 입을 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1987년, 이 땅의 역사를 뒤흔든 항쟁은 지금 과거형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미래의 역사를 바로 잡도록 하는 각성의 근거가 되고 있으며 더욱 깊게 성찰하여 역사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6년 11월은 6월 항쟁 그 때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결단과 의지를 다짐하는 때입니다. 그건 마치, 출애굽을 위한 유월절의 저 까마득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노예가 되지 않은 히브리 민족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진 성서의 사건과 동일합니다.

 

1987년 6월은 역사의 박물관에 박제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건 오늘도 우리에게 뜨거운 영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힘입니다. 하여 2007년의 6월은 지금 여기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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