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1)


부조리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랑 노래를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의 목소리와 그들을 경축하는 합창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묘사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고상하다. 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노래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유달리 많다. 70절의 젊은 여성의 노랫소리와 40절의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 더해 친구들의 목소리가 어울려 있다지만, 눈을 의심하고 귀를 의심하게 된다. 노래 첫 소절부터 젊은 여성의 적극적이고 에로틱한 사랑 묘사가 남다르다. 남녀의 사랑 관계에서 주로 여성이 사랑 받는 수동적인 역할의 고정된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매우 정제된 언어의 품격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연애시 <아가>는 “솔로몬의 아가”(아가 1:1)라는 표제의 예측과 달리 여성의 목소리가 우세하다. 실제로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솔로몬에게 속한 노래인지, 솔로몬이 쓴 것인지, 솔로몬에게 헌정한 노래인지 모호하다. 사랑에서 성 역할의 평등함을 노래한 것일까. 고대의 사랑 노래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이들의 고정화된 시각을 흔들어 깨운다.


내게 입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가1:2).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2:8)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2: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3)


아가서의 히브리 성경 제목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솔로몬을 위한(솔로몬에게 속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1:1)이다. 그런데 남녀의 로맨틱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앞에 위치한 전도서와 오묘한 역설적 연결이 보인다. 전도서의 저자 전도자(히브리말, “코헬렛”)의 첫 마디, “헛되고 헛되다”(1:2, “하벨 하발림”)라는 ‘헤벨’(헛됨, 공허, 허무, 부조리)의 최상급 표현처럼, 아가역시 최상급의 표현, 가장 아름다운 노래(“쉬르 핫쉬림”)라는 언어적인 연결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삶의 양극적인 일들, 이를테면 삶과 죽음, 지혜와 어리석음, 시작과 끝, 허무와 기쁨, 사랑과 미움, 정의와 불평등 같은 뒤얽힌 현실들의 부조리를 발설한 책, 전도서. 세상사를 면밀히 관찰하고 짚어가며 중용적 가르침을 역설한 지혜 선생 코헬렛의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지극한 사랑 노래가 들려오지 않는가. 역설의 미학이 만나는 경계 같다. 지극히 부조리한 세상 뒤편에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으니.



주인공 젊은 여성(술람미 여인, 6:13)과 그녀의 연인과의 사랑의 열정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아가. 그런데 사람 몸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애적인 묘사들을 거침없이 표현한 노래여서 유대교와 기독교 교회 역사 속에서 해석적인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몸에 대한 찬사를 쏟아놓은 노래와 육체적 사랑에 흠뻑 도취된 언어들이 어떻게 거룩한 정경으로 신앙 공동체 안에 자리 잡았는가는 물론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의 대부분이 에로틱한 표현과 육체적 매력들의 과장된 심상이 묘사되었으니 말이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4:3-5)


이처럼 성(sexuality)과 성적인 욕구의 솔직한 과감성을 드러내도 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왜냐하면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이라는 신성한 관계(창세기 2:24) 안에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노래로 주석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과 성은 하나님 창조의 일부였기에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되게 하는 결혼관계 안에서 혼인을 앞둔 젊은이들은 사랑 표현의 구체성을 아가로 교육받은 셈이다. 그렇게 아가는 고대 이스라엘 신앙인들에게 지혜의 가르침과 배움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아가는 결혼 밖에서의 외설적이고 천박한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신성한 혼인관계 안에서 성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고대근동 국가들은 풍요를 갈구하는 종교들의 신전창기제도가 만연되어 있었고, 도덕적인 기준을 약화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태초 목적과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인 활동을 혼인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왜곡시켰다. 이러한 이교적 환경에서 아가의 혼인 첫날밤의 성애적 표현은 우아하여 당대의 독자로 하여금 예술적인 심미성을 자극했으리라.


지금도 여전히 고대 젊은 남녀의 고풍적이고 서정성 짙은 아가의 언어들은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내며 사랑을 잊은 이들에게 ‘죽음처럼 강렬한 사랑’(8:6)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출신성분을 따지고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 자기계발로 응답하다 지친 젊은이에게, 자식들 뒷바라지와 먹고 사는데 지쳐 서로에게 애틋한 사랑노래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부모 세대에게 사랑의 힘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흔들리는 사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사랑의 힘을 과시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처럼.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8:6).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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