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2)


모두 다 가져갔다


“시위대(侍衛隊) 장관(長官)이 또 잔(盞)들과 화로(火爐)들과 주발(周鉢)들과 솥들과 촛대(燭臺)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金物)의 금(金)과 은물(銀物)의 은(銀)을 가져갔는데 솔로몬 왕(王)이 여호와의 전(殿)을 위(爲)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 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器具)의 놋 중수(重數)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예레미야 52:19~20)


피에르 신부가 쓴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첫 손에 꼽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피에르 신부가 남미의 한 대도시에서 경험했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소개된다.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하는 교회의 통치조직과 그 대표들 가운데 일부의 태도가 때때로 복음의 정신과 동떨어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나는 새로운 교황대사의 관저가 건축되고 있던 남미의 한 대도시에서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건축이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밤에 몰래 와서 타르로 벽에다 ‘가난한 자는 행복하나니’라고 적어놓곤 했다. 그러자 건축을 맡은 성직자가 경찰을 불렀다. 교황의 집에 복음의 말씀이 적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 문장 부호가 느낌표다. 일부러 그렇게 선택했지 싶은 느낌표는 깊고 긴 탄식처럼 다가온다. 밤에 몰래 와서 건축 중인 교황대사의 관저 벽에다 ‘가난한 자는 행복하나니’라고 적는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이 오롯이 전해진다. 교황의 집에 복음의 말씀이 적히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을 부르는 성직자, 그런 아이러니가 어디 흔할까 싶다. 같은 책에서 만난 다음 구절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성소의 아름다움은 그 대리석 포석이나 장식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소 주변에 거주지 없는 가족이 단 한 가족도 없다는 사실에 달려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까?”


세상의 어떤 건물도 부럽지 않을 만큼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규모,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장식물, 값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성구, 성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들은 적지가 않다. 거기에 다른 교회에 뒤지지 않으려는 경쟁 또한 은근하기도 하고 집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노사제(老司祭) 피에르는 성소의 아름다움을 그런 류에서 찾고 있지 않다. 오히려 성소 주변에 집 없는 자가 없다는 것, 헐벗은 자가 없다는 것, 굶는 자가 없다는 것, 혼자 우는 자가 없다는 것, 단순하고 단호한 지적에 마음이 울컥해진다.





바벨론에 함락당한 예루살렘의 모습은 처연하다. 주님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큰 건물은 모두 불태워지고 말았다.(52:13) 처참하게 허물어지고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예루살렘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그것이 아무리 성전이라 할지라도 무너질 수 있고, 불태워질 수 있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 건물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바벨론의 군대는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약탈해갔다. 그 목록이 다양하다. 놋기둥, 받침, 놋대야, 가마, 부삽, 부집게, 주발, 숟가락, 모든 놋그릇, 잔, 화로, 솥, 촛대, 향 접시, 놋바다, 열두 놋소…, 종류를 다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들이 가져간 것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사용하던 제구(祭具)였다. 열왕기상 7:48~50에 들어있는, 솔로몬이 금으로 만든 성전 기구들이 거반 포함 되어 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사용하던 거룩한 도구들이 전리품과 노략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놋기둥과 받침들과 놋바다는 크기가 커서 있는 그대로를 옮길 수가 없자 바벨론 군인들은 그것을 산산조각 내어 가져간다. 놋기둥도 빠지지 않았다. 놋기둥은 솔로몬 성전 입구에 서 있던 두 개의 기둥이다. 높이 9미터 정도의 크고 화려하게 꾸민 기둥으로 주님께서 그곳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주님의 위엄과 임재를 느끼게 해주는 거룩한 상징이었다.

두 개의 기둥과 관련하여 역대하 3장 15~17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주님의 위엄과 임재를 나타내던 성전 기둥은 결국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서 쓰러졌고, 운반이 가능하도록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바벨론 군인들은 성전의 온갖 기물들을 ‘금으로 만든 것은 금이라고 하여 가져갔고, 은으로 만든 것은 은이라 하여 가져갔다.(19절) <새번역> 그들이 가져간 것을 두고 성경은 ‘모든’ ‘모두’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바벨론 근위대장이 가져간 놋쇠만 해도 ‘그 무게를 달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사라져간 영화를 새기듯 놋기둥 위에는 놋쇠로 된 기둥머리가 있고, 기둥머리 위 사방에는 그물과 석류모양의 장식이 얹혀 있었다고, 그물에 사방으로 매달린 석류는 모두 백 개인데 밖에서 보이는 것은 아흔여섯 개였다고, 더는 아무 소용없을 것을 그래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성전은 불에 타 허물어지고 성전 안 온갖 기물은 모두 탈 탈 털린 예루살렘의 모습을 생각할 때, 오늘 이 땅의 교회가 겹쳐 떠오르는 것은 혼자만의 기우일까? 예배당 건물은 여전히 화려하고 웅장할지 몰라도 더는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오늘 이 땅의 교회 모습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면, 성전 안 모든 기물을 바벨론에게 빼앗긴 당시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라에 아무도 잃어버린 자가 없다’고, 성전 안 거룩함을 모두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여전히 자기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면 더는 할 말이 없겠지만.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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