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의 마음을 깊은 곳으로 이끄는 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여기서 ‘침묵’에 대한 해석은 이중적이다.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에 (로마 가톨릭)기독교인들은 큰 박해를 받았다. 정권은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동판이나 목판에 예수나 마리아 상을 새겨 만든 후미에를 밟게 했다. 순교 당하는 이들 앞에서 침묵하는 하나님, 또는 후미에를 밟고 살아난 이들까지 비밀한 방식으로 용납하는 하나님을 엔도가 말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다. 2017년 부활절인 4월16일은 마침 세월호 참사 3주년 되는 날이다.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 앞에서 목사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한다고 선포할 수 있을까? 매주일 강단에서 하나님은 살아 있다고, 하나님은 정의롭다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진정성 있게 설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솔직한 게 아닐는지. 이럴 때마다 나는 『욥기』 와 『예레미야』에 손이 간다. 마침 작년 연말에 욥기를 주제로 한 《아! 욥》을 펴낸 김기석 목사가 이어서 예레미야를 고유한 시각으로 주석하고 설교한 책을 냈다. 기원전 587년 바벨론에 의해서 초토화되는 예루살렘을 온몸으로 겪은 예레미야의 심정을 김기석 목사도 세월호 참사에서 그대로 느낀 것인지 모르겠다. 본인이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든지. 그래서 제목을 ‘끙끙 앓는 하나님’이라 했을까.




김기석 목사의 책을 비교적 여러 번 접했던 터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호흡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여기서 그 내용을 간추리거나 분석하지 않겠다. 좀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의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특히 설교자들이 왜 읽어야하는지만 간략하게 짚겠다. 속되게 표현해서 목사는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가. 김기석 목사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고 오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김기석 목사의 글은 술술 읽힌다. 마치 영적인 에세이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깊은 곳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이런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자신에게 충분히 소화된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전달할 수 있는 언어 구사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목사들이 성경의 세계를 알고 설교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그러다보니 짜깁기 식으로 글을 쓰고 설교한다. 김기석 목사의 글은 마치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신들린 듯 노련하게 부르는 바리톤 가수의 노래처럼 잔잔하지만 울림이 강하다. 이런 글을 자주 읽다보면 우리도 글을 쓰고 싶어질 것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저절로 배우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그의 글에서 번뜩이는 신학적 착상을 발견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메시지 11, 예언자’의 앞 대목에서 그는 예언자의 정체성을 이렇게 진단한다.


“예언자들은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입니다. 예언의 성공은 예고한 일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예언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언자의 말을 받아들여서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돌이켜 재앙을 면하는 것이 예언의 성공입니다. 예언의 말이 그대로 성취되면 실패한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보내신 것은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순 속에 살기에 그는 불행합니다.”


이 한 구절만 잘 이해해도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기 위해서 들인 노고를 충분히 보상받을 것이다.


나는 김기석 목사의 영혼을 통과해서 이 땅에 모습을 보인 ‘끙끙거리는 하나님’이 비굴하고 처연하며, 하나님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목회자요 설교자로 살아가는 목사들, 그리고 그런 심정으로 함께 길을 가고 있는 모든 깨어 있는 평신도 기독교인들 역시 이 현실에 저항하고 버텨내고 희망하는 데 힘이 되어 주리라 확신한다.


정용섭/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대구샘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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