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예레미야인가?


어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가담하거나 또는 앞장서고 있는 세력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교회들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서야 할 교회가 세속의 권력과 손을 잡고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명백히 죄악이다.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야할 이들이 권력과 재물의 옹호자가 되고 있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난폭한 자들의 편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우상숭배자들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리기 위한 장식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깊게 새기고 있는 김기석 목사가 욥(《아! 욥》)에 이어 예레미야에 대한 책을 냈다. 역시 기대 이상이다. 문학도이기도 한 그가 써내려가는 글들은 여기서 그 어떤 수식도 거부하고 있다. 명쾌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본질을 담고 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핵심으로 육박해 들어간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움직이게 한다. 예레미야의 심장 한 복판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눈물과 탄식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한 위대한 선지자의 육성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는 예레미야는 예를 들어 이러하다. “예언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보는 자’이다. 예언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나비’ 혹은 ‘로에’는 ‘선견자’라는 뜻을 내포한다. 예언자는 하늘의 눈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석하는 자이다(아브라함 조수아 헤셀). 그들은 역사의 이면에서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꿰뚫어본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질서, 아니 차라리 보려 하지 않는 질서를 본다. 그렇기에 그들은 고통스럽다.” 김기석 목사 또한 이 책을 고통스럽게 썼을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욕망으로 현실을 보려들고 있고, 선지자는 그로 인해 숨겨지고 있는 진실을 향해 우리의 눈을 뜨게 하려한다. 그건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과의 맹렬한 격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예레미야가 일깨운 전투지침에 대한 길잡이인 셈이다.


악을 이기려면 잘 싸워야한다. 말씀으로 바르게 훈련된 이들이 아니고서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렵다. 자칫 유혹에 넘어가거나 혼란에 빠지거나 아니면 굴복하고 만다. 세상은 지금 어떠한가? 대다수가 주류에 속하고자 기를 쓴다. 그걸 위해 악과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악마는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어둠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대의 주변부적 존재였던 예레미야는 주류질서와 맞선다. 하나님을 버리고 생명의 근원을 외면한 채, 물을 담을 수 없는 웅덩이를 제 손으로 판 자들의 기만과 허위를 폭로한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을 예고한다.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내다보게 한다.


지금 우리는 예레미야를 읽어야한다. 달콤한 말로 우리의 뇌와 가슴을 마비시키고 있는 자들의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펄펄 끓는 물처럼 우리의 온 몸이 들끓어 오르게 하는 말씀과 만나야 한다. 악마와도 주저 없이 한 통속이 되면서까지 주류에 속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우쳐야 한다. 거짓을 격파하고 진실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예언서로 말씀을 전하는 교회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예레미야를 우리에게 전하는 김기석 목사가 고맙다. 그의 책이 이 시대를 강타하기를 바란다. 가증스러운 자들이 모두 몰락하고, 비천하다고 업신여김을 받은 이들이 우뚝 서는 그런 세상을 기원한다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그 빛의 근원을 보는 이는 복되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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