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날의 호랑이

- 김기석 <<끙끙 앓는 하나님>> 중에서 -


호랑이 한 마리가 숲에서 잡혀와 우리에 갇혔습니다. 조련사는 호랑이를 길들이려고 했지만 호랑이는 끈질기게 으르렁대며 우리의 쇠창살을 이빨로 물어뜯으려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자유로운 존재였고 숲의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련사는 호랑이를 굶김으로써 대응했습니다. 그는 여유롭게 중얼거렸습니다.


“무척 사나운 호랑이로군. 하지만 당나귀처럼 굴게 될 거야. 내가 먹이를 갖고 있는데 주지 않을 테니까.”


호랑이는 배가 고파졌고, 조련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조련사는 고양이처럼 야옹거리면 고기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거절했습니다. 그는 호랑이지 고양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틀 후 굶주림에 굴복한 호랑이는 조련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고양이처럼 야옹거렸습니다. 하지만 조련사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먹이를 달라고 하자 조련사는 당나귀처럼 히힝거리라고 요구했습니다. 백수의 왕으로서의 체신 때문에 호랑이는 그 제안을 거부했고, 며칠을 먹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배가 고파서 결국 호랑이는 당나귀처럼 히힝댔습니다. 그날이 호랑이가 우리에 갇힌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호랑이가 히힝대는 소리를 들은 조련사는 고기가 아닌 한 더미의 건초를 던져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호랑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숲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에 나오는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열 번째 날의 호랑이> 중에서, 165-166쪽).




이 슬프고 참담한 이야기는 시리아 작가인 자카리아 타메르의 <열 번째 날의 호랑이>라는 단편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팔레스타인 작가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이 글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은 투옥, 검문소, 모독, 고문, 폭격과 학살, 굶주림을 동원해 사람들을 굴복시키려는 조련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당나귀처럼 히힝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싸우고 저항하면서 자기 영혼을 불모지로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나는 내 영혼이 증오와 어둠의 바다에서 헤엄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즉각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욕망 충족’이라는 건초더미를 들고 우리에게 히힝거리라고 말합니다. 타락이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열 번째 날의 호랑이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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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람들에게, 혹은 이 세상할 때 우리들에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며 사십시오. 물질도 나누고, 지식도 나누고, 시간도 나누고, 정도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의 몸은 자랍니다. 그렇게 가운데서 악의 영토는 줄어들고, 선의 영토는 늘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더러 들려 바다에 빠지라 해도 그대로 된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산을 움직이는 믿음은 사실은 나를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산보다도 더 무거운 내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옮겨 놓을 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내 배만 불리려는 비뚤어진 사랑 때문에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 진짜 사랑을 시작해야 합니다. 주는 기쁨,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려 할 때 돌연 삶은 축제가 됩니다. 성도는 <열 번째 날의 호랑이>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입니다. 이 자부심으로 일어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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