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2)


지혜는 생명나무라


구약의 지혜는?

지혜란 무엇인가? 인생의 방향을 잡는 기술인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를 아는 지식인가. 구약에서 지혜는 전문적이고 숙련된 기술이나 예술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지만(출애굽기 36:1-2), 능숙한 기술보다는 앎과 태도에 강조점이 있다. 구약신학에 큰 보폭을 남긴 폰 라트(G. von Rad)는 “지혜는 사물의 근저에 하나님의 질서, 즉 조용하고 거의 느낄 수 없지만 균형을 이루게 하는 질서가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과 세계 질서, 그리고 인간의 삶에 깃든 창조주 하나님을 표현한 멋진 정의다. 이것에 더해 구약 지혜서의 독특한 지혜개념은 기술이나 지식의 중성적 가치보다는 도덕화되고 신학화되었다. 왜냐하면 지혜와 지식은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잠언 1:7; 9:10; 31: 30; 전도서 12:13; 욥기 28:28).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1:7, 새번역)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9:10, 새번역)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기 28:28, 개역개정)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개역개정)


지혜의 자리는 마음에

고대 이스라엘의 현자들에게 지혜는 인간의 마음과 줄곧 맞닿아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혜가 거처하는 자리는 마음이다. 의지와 의사결정의 자리도 마음이다. 곧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예컨대 구약의 지혜자는 어리석은 자를 마음 없는 자 취급한다. “음녀”에게 유혹받기 쉬운 젊은 남자를 “지혜 없는 자”(잠언 7:7, 개역개정)라고 비웃는다. 음녀의 본래 히브리말 뜻은 ‘낯선 여자’, 또는 ‘금지된 여자’, ‘이방 여자’를 일컫는다. 모든 적법한 관계를 벗어난 여자를 지칭한 말이다. 거기다 “지혜 없는 자”의 문자적 의미는 ‘마음이 부족한 자’이다. 곧 “지각이 부족한”(NAS, lacking sense), 또는 “분별력이 없는”(NIV, no sense) 사람이다. 한 마디로 마음이 부족하면 지혜가 없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혜는 생명나무

히브리적인 사고에서 지혜와 어리석음의 관계는 좀 더 근원적인 영역과 연결된다. 히브리말의 ‘마음’은 곧 ‘심장’이다. 심장과 마음이 같은 형태다. 때문에 마음을 잃으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잠언 7:26-27).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주님의 은총을 얻는다고 믿었다(잠언8:35). 지혜가 은, 금, 보석보다도 가치 있고 탁월한 것은 물론이고(3:14), 지혜는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3:15) 생명나무다(3:18).


‘생명나무’는 우리를 태곳적 창조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에덴동산에 살았던 남자와 여자를 떠올려 보라. 하나님은 남자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고 금하셨다(창세기 2:16-17; 3:11). 이때 생명나무는 직접적인 금지의 대상은 아니었다(2:9). 그저 배경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주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어긴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비로소 생명나무의 존재 이유가 밝혀진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3:22-23, 개역개정).


우리는 창조 이야기 끝자락에 이르러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서 창조 이야기는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는 천상의 존재들, 곧 불 칼을 든 그룹들(히브리말, ‘케루빔’)을 하나님이 에덴 동쪽에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것으로 3장이 끝난다(3:24). 하나님이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의 접근을 차단하셨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 명령을 지키지 않은 반역 때문에 생명나무에서 분리되어 영원불멸의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잠언의 지혜는 창조 사건의 마지막을 뒤집고 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 개역개정).


지혜를 얻은 자에게 지혜는 생명나무다. 지혜를 얻은 자는 금지된 곳에 들어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지혜는 생명나무’라는 은유적인 경구로 지혜가 죽음의 저주를 피할 약속처럼, 금지된 에덴에 접근할 수 있는 방편처럼 말한 것이다. 하늘의 계시를 받고 전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삶의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진리의 말들을 생산한 지혜자에게서 ‘생명나무’에 깃든 종말론적 의미가 드러났다. 그러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 지혜는 생명을 약속받는 일이어서 지혜를 발견하고 명철을 얻은 사람은 복되다. 행복하다(3:13).


지혜는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삶, 그리고 마침내

이처럼 태곳적 창조 이야기와 분리할 수 없는 지혜는 생명과 관계된 것으로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과 직결된다. 순리를 따르는 삶이란, 하나님이 수립하신 창조질서 원리에 맞추어 사는 삶이다. 구름이 이슬을 내리는 자연의 온화함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처럼, 밤과 낮의 순환과 별들의 움직임처럼,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리듬에 맞추어 일상을 질서 있게 살아가는 삶이다. 하여 구약에서 말하는 지혜의 삶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 리듬에 따라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련다. 때로는 고된 일로, 때로는 휴식과 즐거움으로, 때로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균형 잡힌 도적적인 행위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매일의 삶을 채워가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버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맞서 싸우며 물신의 노예가 된 시대를 산다. 구약의 지혜가 우리 사회와 교회에게 성공에 목말라하는 일그러진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 속물적인 욕망과 성공 신화에 열광하는 시대정신을 교정해 줄 것이다. 모름지기 지혜 추구와 참 행복은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반역과 욕망의 성취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맞추는 마음의 방향과 태도에 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 지혜는 접근금지 되었던 생명나무의 길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이것은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라고 선언된 이유일 테다(고린도전서 1: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30, 새번역).


김순영/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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