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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

도움 받으시다

by 한종호 2017. 8. 8.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0)


도움 받으시다


우연히 눈에 띈 표지판 덕에 번잡한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걷던 중 한 미술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다 있구나 싶은,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백공미술관>이었다.


때마침 한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몇 시에 개관을 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10시라 했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시간 차이가 제법 났다. 그냥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가 말했다.


“관심 있으면 들어오셔도 돼요.”


덕분에 2층으로 된 미술관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나를 받아준 직원은 일일이 전시관의 조명을 켜주며 불편 없이 둘러보게 해주었다. 수화 김환기, 고암 이응노 등 익숙한 화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낯선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낯선 것은 그의 한계가 아니라 나의 한계다. 내가 그를 모르는 것이다.


작품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준 직원에게 고맙다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는데, 얼마쯤 걷다보니 저만치 정체불명의 물체가 눈에 띄었다. 도로 옆 잣나무 숲에 뭔가가 서너 개 놓여 있는데, 바위 같기도 했고 무엇인가를 덮개로 덮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가야 할 길이 멀어 그냥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생각하니 내가 이 길을 언제 또 지날 수 있을까 싶었다. 걸음을 되돌려 잣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조각상이었다. 그것도 예수님에 관한 조각이었다. 작품마다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 십자가 지시다’,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 조각이었다. 커다란 화강암을 쪼아 만든 작품이었는데, 돌이라 그랬을까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이 묵중하게 전해져 왔다.


잣나무 슾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각 작품. 예수 십자가 지시다,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작품 앞에서 사진을 한 장씩 찍고는 다시 맨 앞에 있는 작품 앞으로 왔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다 알 수가 없었다. ‘예수 키레네시몬의’이라는 제목은 보이는데 그 다음 제목이 떨어진 잣나무 마른 잎에 덮여 있었다.


조각된 내용이 작품의 제목을 짐작하게 해주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조각 앞에 무릎을 꿇고는 마른 잎을 손으로 치워냈다. 마침내 묻혀 있던 제목이 드러났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이랬다.


‘예수 키레네시몬의 도움 받으시다’


제목을 확인해야 했던 첫 번째 작품,  예수 키레네시몬의 도움 받으시다.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새기게 했다.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조각된 작품은 마치 돌에 새겨진 두 사람이 걸어서 나오듯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구레네 시몬이 지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야 복음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마치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만난 것처럼 작품은 다가왔다.


가만히 바라보니 예수님도 시몬도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다. 십자가는 모순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순명(順命)이란 눈을 감는 것이다.


어쩌면 구레네 시몬은 억울함과 불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에게 멍에처럼 주어진 존재의 모순과 함께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시몬에 대한 미안함으로 두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다. 하지만 허투루 지지는 않는다. 힘에 부친 십자가를 행여 놓칠까 두 손으로 십자가를 꼭 붙들고 있다. 십자가는 시몬의 어깨와 뺨에 닿아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어느새 기꺼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겨진다.


시몬의 바로 뒤에 예수님이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보이지 않는다. 앞뒤로 두 사람이 섰지만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예수님인지를 대번 알게 하는 표지가 있다. 얼굴의 크기나 모양이 아니다. 머리에 쓴 가시면류관이다. 가시면류관은 한 사람의 머리에만 씌워져 있다.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빛의 광채가 아니라 가시면류관을 쓴 모습이 그가 예수님임을 말없이, 그리고 충분히 일러준다.


그 때 그랬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위나 규모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광채나 후광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머리에 쓰고 있는 가시면류관이 그가 예수님의 참 제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십자가를 시몬에게 넘긴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모습으로 당신 대신 십자가를 지는 시몬을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품을 바라보며 두 눈이 뜨거웠던 것은 십자가를 시몬에게 넘긴 예수님의 두 손이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당신 대신 십자가를 지지만, 여전히 주님은 한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있었다. 너희들이 십자가를 질 때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시몬의 어깨와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두 눈을 감았지만, 당신의 십자가를 지는 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를 주님을 알고 계시다. 무엇을 가장 힘들어 하는지도 알고 있다. 눈을 감아도 아신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손을 내미신다.


자신의 어깨와 얼굴에 닿는 예수님의 손길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것을 알기에, 시몬도 자신의 눈을 감은 것인지도 모른다.


십자가의 길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나만 혼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뒤에서 주님도 나와 함께 그 아픔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주님이 눈을 감듯, 내게 필요한 것도 눈을 감는 것이었다.


내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몰랐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걷다가 우연처럼 만난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는 늘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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