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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9

“하나님, 내게서 하나님을 없애 주십시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4) “하나님, 내게서 하나님을 없애 주십시오!” 하나님은 피조물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십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여러분 안에 모셔 들이기만을 바라십니다. 《어린 왕자》에서 생떽쥐베리는 “본질적인 것은 소용없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본질적인 것은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작가의 말을 따르면, 우리의 본질을 가리키는 분, 하나님은 소용없는 분입니다. 진리, 사랑, 하나님 같은 절대가치를 세속적 가치에 물든 눈으로 보려는 이에게 하나님은 도무지 유용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고은비 우리가 다 알 듯이, 모세가 호.. 2016. 6. 30.
말씀을 제 집으로 삼은 사람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9) 말씀을 제 집으로 삼은 사람 “이에 그 방백(方伯)들이 왕(王)께 고(告)하되 이 사람이 백성(百姓)의 평안(平安)을 구(求)치 아니하고 해(害)를 구(求)하오니 청(請)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城)에 남은 군사(軍士)의 손과 모든 백성(百姓)의 손을 약(弱)하게 하나이다”(에레미야 38:4). 오래 전 기억이 맞는다면 장작불 속에서 타 죽어간 개미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솔제니친이 아닐까 싶다. 활활 타고 있는 모닥불 속에 통나무 하나를 집어넣었다. 통나무가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불이 붙은 장작에서 개미들이 떼를 지어서 쏟아져 나왔다. 무심히 던져 넣은 그 장작개비 속에 개미집에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불 붙은 통나무.. 2016. 6. 29.
두 아이의 어머니, 자식들을 지키고 싶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5) 두 아이의 어머니, 자식들을 지키고 싶다(2) 1. 엘리야가 홀연히 하늘로 사라진 다음, 엘리사가 그 사역을 이어간다. “맞은 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열왕기하 2:15). 엘리사가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은 물이 좋지 않은 토양을 소금으로 치유한 것이다(열왕기하 2:19-22). 그리고 엘리사는 이스라엘과 모압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스라엘 왕에게 군사적 자문을 해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한다.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에 포위당한 모압 왕 메사는 세자를 번제로 드리는 극약 처방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돌아갔다. 여기까지가 열왕.. 2016. 6. 24.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1)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3)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1) 인류 역사는 남성과 여성의 공조를 통해 일구어졌지만, 그 열매들은 남성에게 수렴되거나 통제되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서 내리막길로 치닫는 혼돈의 사사시대(주전 1225년경), 사해 남서쪽에 위치한 다볼산에서 바락과 함께 가나안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여성이 있었다. 드보라다(사사기4장). 사사기 저자는 여성의 활약에 침묵하지 않았다. 사사기는 구약의 다른 책들에 견주어 유달리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 아내, 딸로서 제각기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가부장적질서에서 드보라를 비롯해 일부 여성들은 주체적인 자기결정권을 갖고 살았던 것이 눈에 띈다. 악사(사사기1:13-15), 야엘(4:18-22), 데베스의 여인(9:53-54)이.. 2016. 6. 22.
반쯤은 희망을 품고 반쯤은 두려움을 품은 채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8) 반쯤은 희망을 품고 반쯤은 두려움을 품은 채 “시드기야 왕(王)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王宮)에서 그에게 비밀(秘密)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對答)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王)이 바벨론 왕(王)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예레미야 37:17). 같은 본문을 읽고 묵상한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것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 조심스러운 것은 그것이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말씀과 씨름을 하며 내가 길어올릴 수 있는 묵상의 내용을, 다른 이가 길어 올린 물로 손쉽게 대신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익함도 크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묵상을 대하며 얻는.. 2016. 6. 21.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9)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지난주는 지난해 중동감기로 격리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일 년이 되는 즈음이었다. 마침 완치자 연구 프로그램에서 검사가 있어 서울대 병원엘 갔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개인기록 겉장에 ‘생존자’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생존자로구나.’ 그 사실을 기뻐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당시 입원자들 가운덴 별의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과 강제 격리 상태에서의 심각한 불안은 환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집에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살려달라고 발작을 일으키고, 개중에는 억지로 제압을 해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2016. 6. 20.
두 아이의 어머니, 자식들을 지키고 싶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4) 두 아이의 어머니, 자식들을 지키고 싶다(1) 1. 두 아이를 종으로 팔아야 하는 어머니. 그 심정이 어떨까? 그런 모진 세상을 살았던 한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 어머니가 두 아이를 팔아야 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한 까닭은 가난으로 인한 빚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만, 고대 이스라엘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가장 흔한 이유는 빚이었다. 사울을 피해서 이리 저리 떠돌던 다윗에게 몰려온 사람들 가운데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2016. 6. 17.
결국을 산다는 것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7) 결국을 산다는 것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이건 분명 표절이다.) 그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에 갔었고 서울만 가면 도지는 촌병에 더쳐 뒤풀이도 못가고 파김치가 돼 돌아 왔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느끼는(혹은 확인하는) 바는 170cm도 못 되는 내 단신의 병신스러움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음과 못남은 짝을 이뤄 병진(竝進)해 나간다. 작음에서 못남이 발생하는 건지 못남에서 작음이 유발되는 건지 모르겠다. 짐작건대 선천적 육체의 작음이 후천적 도시의 거대함 속에 떨어진 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외려 작으.. 2016. 6. 16.
‘성역(聖域)으로 둘러싸인 불법’과 침묵 한종호의 너른마당(43) ‘성역(聖域)으로 둘러싸인 불법’과 침묵 1970년 이후 한국교회의 모토는 ‘성장’이었다. 이것은 박정희 시대 성장정책의 논리와 궤를 같이하면서, 전도의 열정과 함께 결합하여 대형교회의 출현을 가져왔다. 경제계의 재벌과 종교계의 대형교회는 성장주의 시대의 일란성 쌍생아처럼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형교회는 다른 무수한 교회의 선교적 모델이 되어 성장 자체가 곧 절대가치로 군림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성장하지 못하면 발언권이 없고, 성장하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 이유가 없는 목회가 되고 말았다. 양적 성장이 곧 목회의 성공이었고, 양적 성장을 이루어내는 목회자가 곧 지도자가 되었다. 성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성장의 신앙적, 윤리적 기초는 성찰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 2016.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