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8)

 

누구 말이 들어맞는지

 

“그런즉 칼을 피(避)한 소수(少數)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寓居)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者)가 내 말이 성립(成立) 되었는지, 자기(自己)들의 말이 성립(成立)되었는지 알리라”(예레미야 44:28).

 

‘콩알로 귀를 막아도 천둥소리를 못 듣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콩과 같이 작은 것이 큰 천둥소리를 막듯이, 작은 것도 잘 활용하면 큰일에 도움이 된다’고, 한 속담 사전에서는 위의 속담을 그렇게 풀고 있다. 작은 것의 유용함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볼 여지가 크다. 콩알만큼 작은 것이 귀를 막아도 천둥소리를 못 듣는다. 아무리 옳은 말이 천둥소리처럼 크다 들린다 하여도, 콩알만큼 작은 것이 귀를 막고 있으면 들을 수가 없다. 마른하늘 벼락같은 말도 콩알 만한 작은 것에 막히면 들리지 않게 된다. 그것이 교만이든 걱정이든 욕심이든, 아주 사소한 것이 마음의 귓구멍을 막고 있으면 어떤 말도 들리지를 않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했던 말씀을 주님은 괜히 덧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말씀을 들으러 나올 때 귀를 집에 두고 온 자가 누가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들어도 나중에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제각기 본 것도 다르고 들은 것도 다른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어느 날의 기도’를 드리며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미리 답을 내 안에 두고서 안 그런 척 당신께 묻는 일 없게 하소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정세, 이집트로 내려갈 마음을 정하고선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나님이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실 리가 없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까지 끌고 이집트로 간다.

 

 

 

그런 백성들이었으니 이집트에서의 삶이 어떠했을지 기대할 것이 없다. 여전히 주님 보시기에 역겨운 일을 했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더 이상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폐허가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는데, 토한 것을 도로 삼키듯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집트에 있는 유다 사람들에게 임한다. 이집트로 내려간 유다 백성을 모두 멸절 시키겠다고, 그들은 전쟁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며, 원망과 놀라움과 저주와 조소의 대상이 될 것이라 하신다.

 

그렇게 주님의 뜻을 전하는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은 또 다시 항의를 한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맹세한 대로 할 것이라 한다.

 

그렇게 맹세하는 백성들을 두고 이제는 주님께서 맹세를 하신다. 더는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복을 내리려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내리기 위해 내가 너희를 지켜보겠다 하신다.

 

백성들을 체념하고 포기하신 듯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이집트를 벗어나 고국 유다로 돌아갈 자는 몇 사람 되지 않으리라. 이집트에서 타향살이하던 유다의 남은 자들은 내 말과 저희 말 중에 과연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 그 때에 가서야 알게 되리라.” <공동번역>

 

“살아서 이집트를 빠져나가 유다로 돌아갈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유다를 떠나 이집트에 살려고 온 불쌍한 무리들은, 그 때가 되어서야 모든 일의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메시지>

 

“칼을 피하여 이집트 땅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집트 땅에 정착하러 들어온 유다의 남은 자들은 모두, 나와 그들 가운데 누구 말이 들어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생각 중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것이 어찌 가당키나 한 일일까만, 모두 망한 뒤에야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 이 오래된 엄청난 어리석음을 우리는 언제쯤이나 버릴 수 있는 것일지.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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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15)

 

아비가일, 아름답고 총명하고 노련했다

 

다윗에게는 아름답고 총명한데다 용감하고 민첩한 아내가 있었다. 한때는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이다(사무엘상25장). 때는 주전11세기 사울 왕의 통치 시대였지만, 이미 그의 시대는 기울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적하던 끝자락에서, 그는 다윗이 차기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시인했다(24:20-21). 이즈음 사울을 왕으로 세웠던 예언자 사무엘의 죽음과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후 다윗은 시내 반도 북쪽 바란 광야로 이동한다(25:1).

 

이때 다윗이 사울을 피해 은신처로 이용한(23:24) 마온에는 큰 재산가 나발이 살고 있었다. 그는 목초지 갈멜에서 양 삼천 마리, 염소 천 마리의 털을 깎고 있었다(2절). 그는 갈렙 족속의 사람이고,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두었지만, 완고한데다 행실이 악한 사람이었다(3절). 다윗은 마온 광야에서 나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4절). 그는 나발에게 자기 사람들을 보내 양떼를 보호해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후원을 요청했다(6-9절). 그러자 나발은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라는 말로도 부족했는지 다윗을 주인 떠난 일꾼 취급하며 무례하게 제안을 묵살해버렸다(10-11절).

 

다윗의 사절단으로 나발에게 갔던 자들이 돌아와 그대로 보고하자(12절), 다윗은 칼을 찬 400명을 데리고 나발을 치러간다(13절). 다윗의 분노가 또렷이 드러난 셈이다. 무력적인 행동태세를 취한 다윗이 위태로워 보인다. 나발의 무시에 분노가 치밀었을 다윗, 그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때 나발의 하인들 중 한 명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다윗이 보낸 사절단에게 주인 나발이 모욕을 주었다는 내용이었다(14절). 왜 하인은 나발이 아니라 아비가일에게 보고했을까. 집안일의 책임이 아비가일에게 있었음은 물론이고 평소 여주인의 일처리 능력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인은 아비가일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한다. 그동안 다윗의 사람들이 밤낮 양치는 사람들의 담이 되어주었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주인 나발이 “불량한 사람”이라서 말해야 소용없다는 듯 보고했다(15-17절). 주인 나발이 불량배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하인의 말을 들은 아비가일은 마음이 바빠졌다. 그녀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황급히 빵과 포도주, 고기, 곡식 등의 먹거리를 준비해서 하인들 편에 보낸 후 나귀타고 뒤따라간다(18-19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비가일을 향해 내려오던 중이었고, 그들은 마주쳤다(20절). 다윗은 나발이 선을 악으로 갚았다는 생각으로 나발 집안을 몰살시키겠다고 맹세한 상황이었다(21-22절).

 

다윗 일행을 만난 아비가일은 황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엎드렸다(23절). 그녀의 신속한 상황판단만큼 행동역시 민첩했다. 그녀는 자신을 “당신의 여종”으로 낮추고, 다윗을 “나의 주인”으로 높여 부른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분노를 달래기라도 하듯 남편의 허물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다윗에게 자기 남편은 “불량한 사람”이고, 이름처럼 “미련한 사람”이니 개의치 말라고 한다(24-25절).

 

 

 

그리고서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내 주의 손으로 친히 보복하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다(26절).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에게 폭력의 칼을 휘두르려고 했던 다윗의 마음을 짚어주면서 동시에 남편을 욕해준 셈인데,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윗 왕권의 수립을 예고하듯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입니다”라고 축복한다(28절). 그녀는 자기 남편의 무분별한 말을 주워 담아 다윗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준 셈이 되었다. 아비가일의 말은 한걸음 더 나간다. “사람이...내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29절). 이 말은 오랜 시간 사울의 추적을 피하며 고된 도망자의 삶을 살았던 다윗을 향한 위로다.

 

아비가일의 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넘어 다윗이 무죄한 피를 흘리거나 보복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남기면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마지막으로 아비가일은, 여호와께서 내 주를 왕으로 세우시는 날이 오면 “당신의 여종을 기억해주세요”(31절)라고 말하며 자신의 안위를 부탁한다. 아비가일은 일관되게 자신을 낮추고 다윗을 “나의 주”라고 높여 부르지만, 말의 주도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에 설득되었다. 다윗은 피의 복수극을 막은 아비가일을 축복한다(33-34절). 그녀의 호소력 넘치는 말들은 남편 나발과 대조적인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각인시킨 것은 물론이고 지혜로움과 직관력을 돋보이게 했다. 결국 그녀의 민첩한 행동과 지혜로운 말은 피로 얼룩질 폭력과 집안의 몰살위기를 막았고, 다윗의 임박한 왕권수립을 예고했다.

 

이후 아비가일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윗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묵살했던 나발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만족함에 흠뻑 취해 있지 않은가. 아비가일은 그런 남편에게 아침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36-37절). 나발은 자기 집안을 향한 복수와 죽음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노심초사했을 지혜로운 아내와 달랐다. 아비가일은 남편이 술에서 깬 후에야 있었던 일들을 말한다. 그러자 나발은 “심장이 멎고”(새번역; “낙담하여”, 개역개정), 돌처럼 되었다(37절). 히브리말 “마음”과 “심장”은 같은 형태의 단어다. 아마도 돌발적인 심장질환으로 임박한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셔서 죽었다”(38절)라는 한 마디는 죽음의 직접적 원인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결국 다윗의 복수를 하나님이 갚으신 셈이 되었다.

 

다윗은 나발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서 여호와가 자기의 모욕을 갚아주셨다며 찬양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아비가일에게 사람을 보내 청혼한다(39-40절). 아비가일은 다윗이 보낸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서둘러 나귀타고 떠나 다윗의 아내가 된다(41-42절). 다윗과 아비가일의 신속한 결혼이 좀 의아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비가일의 행동은 다윗과의 만남에서 언제나 재빨랐다. 그녀는 “급히” 음식을 준비했고(18절),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렸고(23절), 다윗의 사람들을 맞이하고는 “급히” 일어나 나귀를 탔다(42절). 그녀의 민첩한 행동이 다윗을 감동시켰을 테지만(34절), 궁극적으로 다윗과 아비가일의 결혼은 다윗의 왕권수립과 안정을 준비하는 요긴한 자원이었다. 다윗의 첫 번째 아내 사울의 딸 미갈처럼.

 

아비가일은 많은 재산을 소유한 과부였고, 다윗에게 그녀의 재산은 그의 군대를 위한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었을 것이다. 이뿐인가. 강력한 갈렙 족속과의 혼인은 현실적인 정치적 힘을 획득하는 터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즉위식이 있기까지 그녀를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27:3; 30:5; 사무엘하2:2; 3:3)이라고 부른다. 하여 사무엘상 25장 나발-아비가일-다윗 이야기는 남성중심적인 정치적 이익의 의도를 교묘히 폭로하면서 동시에 남편의 권위에 갇힌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의 가치를 드높인 본보기였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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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48)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역사가 되어야

 

11월 12일, 촛불의 바다에서 민심은 그렇게 일렁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날을 1987년 6.10 항쟁과 비교하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년(2017년)은 6월 항쟁 민주화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치열했던 시대의 함성은 이제 역사의 육성이 되었고, 현실은 새롭게 변모했습니다. 자유는 넘쳐나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자는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이 된 듯싶습니다. 2007년의 6월은 그런 세상의 변화 앞에서 어쩌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처럼 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암울했던 시대에 우리는 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와 손을 잡고 역사 앞에서 행동하면 되는지 모르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위협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옥문은 언제나 민주주의 만세를 부르는 이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간 자,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처참함을 경험했고 시대 전체가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총과 칼로 지켜내는 권력이 끝까지 가는 법은 없습니다. 억누른다고 다 억눌려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멩이도 소리치는 세상은 그렇게 왔습니다. 1980년 광주의 저 유혈극은 군사주의의 생명을 연장했지만, 1987년의 세상은 그 악한 권세가 조만간 운명을 달리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일깨웠습니다. 그해 6월은 뜨거웠습니다. 태양도 뜨거웠고, 거리도 뜨거웠습니다. 온 세상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 최루탄을 총처럼 쏘아대 학생들이 죽어 가고 도시는 휘청거렸습니다. 권력의 거짓과 오만은 폭력이 되어 하루하루를 지배했고, 뭔가 새로운 결단이 있지 않으면 계속 누군가는 죽어나가야 했습니다. 6월 항쟁은 그런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태였습니다. 아니, 사태라기보다는 사건이었습니다. 혁명이었습니다.

 

권력은 움츠러들었고 시민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군대가 정치를 쥐고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놓는 일은 없게 하자는 역사적 의지는 그렇게 발휘되었습니다. 군사정부의 시대는 가고, 민주주의 정부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입니다. 6월 항쟁으로 이어 등장한 노태우 정부는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 시절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힘이 빠진 권력이 되어갔습니다. 시민혁명은 승리했고 권력은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누구도 군대가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6월 항쟁은 그렇게 역사의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과거의 암울한 시대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은 다 잘 해결된 것일까요? 시민혁명을 일으킨 시민들은 항쟁이 성공한 이후 그냥 얌전하게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을까요? 권력을 맡긴 정치인들이 다 알아서 잘 해가기를 바라면 그 뿐이었을까요? 현실은 거의 언제나 혁명을 배반합니다. 권력은 감시를 게을리 하면 오만해지고 독재하고 싶은 악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보듯이 그래서 권력은 더더욱 교활해지고, 본색은 감추는 방식을 택하곤 합니다. 국민은 속고 권력은 기만적인 통치술에 능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따라서 끊임없이 지켜내지 않으면 위기에 처하고 맙니다.

 

 

 

 

1987년 6월 항쟁은 그렇게 역사의 소임을 다 마쳤다고 여기고 귀가했으나 현실은 앞서 말했듯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이전과는 다른 민주주의의 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워지고 언론은 그런 비판을 했다고 보복당하지 않으며 낮은 목소리로 권력에 대해 속삭일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더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 구도는 의미를 잃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고 비정규직 확대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양극화는 더더욱 심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민주주의는 왔으나 민생의 문제는 더욱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빵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며 민주주의는 더더욱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할 과제가 된 것입니다. 민주화와 반민주의 대립은 아직도 유효한 것입니다.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힘을 잃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권력을 꼬드겨 자본의 자유가 팽창되도록 만드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한 지경에 처합니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이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군사정권처럼 내놓고 탄압하는 경우라면 대응이 훨씬 확실할 것이나, 이제 우리는 자본의 보다 교묘한 방식의 지배 앞에서 자유는 넘쳐나나 그 자유가 소비의 자유, 굴복할 자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자유, 비판하지 않을 자유로 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한동안 민주주의의 본질이 위태로워지고 있는데도 입을 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1987년, 이 땅의 역사를 뒤흔든 항쟁은 지금 과거형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미래의 역사를 바로 잡도록 하는 각성의 근거가 되고 있으며 더욱 깊게 성찰하여 역사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6년 11월은 6월 항쟁 그 때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결단과 의지를 다짐하는 때입니다. 그건 마치, 출애굽을 위한 유월절의 저 까마득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노예가 되지 않은 히브리 민족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진 성서의 사건과 동일합니다.

 

1987년 6월은 역사의 박물관에 박제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건 오늘도 우리에게 뜨거운 영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힘입니다. 하여 2007년의 6월은 지금 여기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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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4)

 

다윗 왕의 아내, 미갈의 최후를 아시나요?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다. 그의 통치 기록은 구약의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에 걸쳐 나타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평가받는 다윗의 성공적인 왕의 궤적은 그의 아내들에 의해 지원되고 강화되었다. 그런데 다윗의 여성들과의 관계는 미심쩍고 의외적인 구석이 있다. 그에게는 여덟 명의 아내와 여러 명의 첩들이 있었다. 여러 처첩을 둔 것은 의로운 지도자보다는 제왕적 권력자로 보이게 한다. 그의 권력 주변부에는 주목받는 세 명의 여성들이 있다. 다윗의 첫 번째 아내이자 사울 왕의 딸 미갈, 부유한 지주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던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다. 이들 중 비극적인 주인공처럼 보이는 첫 번째 아내 미갈, 그녀와 다윗의 관계는 어땠을까.

 

젊은 영웅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사랑을 받았지만(사무엘상 16:21-22), 백성들 사이에서 다윗을 향한 찬사와 드높아진 인기는 사울을 괴롭혔다(18:7). 사울이 다윗의 지혜로움을 보고 군대장관으로 삼았어도(18:5),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하며 춤추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사울을 불쾌하게 만들었다(18:8). 다윗의 대중적 인기는 사울에게 두려움이 되었고(8:12), 이즈음 사울은 다윗에게 자기의 큰 딸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며 자기를 위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고 제안한다(8:17). 다윗을 사위로 맞아들여 이익을 챙기려는 사울의 셈법이었다.

 

그러나 메랍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고(18:19), 때마침 사울은 작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사울은 미갈을 이용해 다윗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18:20-21). 사울은 신하들을 통해 다윗에게 블레셋 남자들의 포피 100개를 지참금 명목으로 가져오면 사위 삼겠노라는 뜻을 전한다. 다윗은 자기 부하들과 블레셋 사람 2백 명을 죽이고 왕의 사위가 된다(19:25-27). 오호라, 사울은 왕권을 위협하는 다윗이 성공하지 못하고 전투에서 죽기를 기대했건만(18:21). 그러나 예언자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비밀리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울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16:12-13).

 

긴장된 상황,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지만 딸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남자들의 정치적 동기만 중요할 뿐이다. 남자들은 정치적 야망에 따라 움직이고, 여자는 개인적 수준에서 반응하는 정형화된 이야기다. 이 상황에서 다윗이 미갈을 사랑한다면 사울은 훨씬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겠지만, 미갈을 향한 다윗의 감정은 생략되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것은 반복되지만(18:20, 28), 이야기 흐름은 다윗의 지혜로움과 사울의 조여 오는 두려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럼에도 미갈이 다윗을 향한 사랑을 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18:20, 28). 남자가 아내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미갈이 먼저 남편 다윗을 선택한 셈이었다. 물론 왕의 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작용한다. 문제는 다윗이 미갈을 사랑해서 성사된 결혼이 아니었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자기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였다”(18:26)라는 보고처럼 다윗과 미갈의 관계는 다윗의 실리를 챙기는 동기로 맺어진다.

 

이즈음 사울은 아들 요나단마저 다윗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나단이 다윗을 옹호하며 왕의 그릇된 행동을 지적하니(19:1-4) 사울은 견딜 수 없었다. 끝내 사울은 자기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지기까지 했다(19:9). 사울을 피해 집으로 돌아온 다윗은 미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19:11-16). 그녀는 남편 다윗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속였고, 창문 밖으로 다윗을 탈출시켰다. 미갈은 다윗을 잡으려는 사울의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아버지 사울은 몸소 다윗이 없는 침상을 확인하고 딸의 속임을 추궁한다. 이때 미갈은 다윗의 말을 사울에게 그대로 옮겼다.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19:17) 강압적인 다윗의 말이 사실인지 미갈의 꾸며낸 말인지는 명확치 않다. 남편을 살리고 아버지를 반역한 미갈이 궁에 홀로 남았을 뿐이다.

 

 

 

이후 사울의 끈질긴 추적과 다윗의 도피생활이 계속되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고,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22:2) 세력을 키웠다. 그 사이 다윗은 위기에 처한 그일라 주민을 구하기도 했다(23:1-14). 엔게디 동굴에서 다윗은 자신을 추적하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살려준다(24장). 다윗이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킹메이커였던 예언자 사무엘이 죽었다(25:1).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윗은 단 한 번도 아내 미갈을 찾지 않았다. 그는 마온에 사는 부유한 지주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과 결혼한다(25:42). 이후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아들였다(25:42). 그래서였을까. 사울은 미갈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켰다(25:44). 딸을 향한 사울의 안타까움이었을까. 글쎄다. 지금까지 사울의 행동을 보면 다윗과 미갈의 혼인관계를 통한 왕위계승을 차단하려는 심중이지 않았겠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사울과 요나단은 전쟁터에서 죽었다(31장).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었지만, 사울의 죽음이 당연하게 다윗을 왕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지만, 왕의 후계자로 자처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기 때문이다(사무엘하 2:8-10). 왕이 둘인 상황, 세력 갈등은 불가피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내란의 혼란 속에 있었다(2:12-3:5).

 

그동안 다윗은 많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얻었다(3:2-5). 죽고 죽이는 혈투와 갈등을 덮고(3:6-4:12) 다윗이 왕위에 오르지만(5:1-10), 다윗은 사울 왕권 계승과 안정을 위해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사울 왕을 배신하고 남편을 살렸던 아내 미갈은 다윗의 기억에서 사라졌었지만, 다윗은 왕권안정을 위해 미갈을 다시 데려와야 했다. 그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미갈을 강제로 빼앗아 온다. 이때 미갈의 남편 발디엘이 울면서 미갈을 따라 나서는 슬픔이 묘사되지만(3:14-16) 미갈의 감정은 생략되었다. 미갈의 침묵은 아버지와 남편의 정치적 희생물이었다는 것을 또렷하게 반증한다.

 

이후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날, 다윗은 기뻐 춤추며 환호한다(6:14-15). 그러나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그를 경멸했다(6:16). 여기서 미갈이 다윗의 아내로 불리지 않고 사울의 딸로 불린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사무엘상 18:20) 감정표현 이후로 그녀의 감정이 사랑이 아닌 증오로 바뀐 것이다. 남편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된 미갈의 상태를 엿보는 대목이다.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 한껏 백성들을 축복한 후 집에 돌아왔고,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맞이하면서 입을 열었다(6:20).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6:20, 새번역)

 

이스라엘 왕의 태도에 항의하며 지적하는 미갈에게 다윗이 대답했다.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님께서는 그대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이 있는데도 그들을 마다하시고 나를 뽑으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주셨소. 그러니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대가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6:21-22, 새번역)

 

두 사람의 대화 후에 둘의 이야기는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6:23)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해석자들로 하여금 미갈의 자식 없음을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대항한 벌이라며 쉬운 결론을 내리게 했고, 설교자들은 미갈의 행동을 비난하곤 했다. 그러나 구약에서 여성의 임신 여부는 여호와께 달린 것임을 명시한다(창세기 20:18; 29:31; 30:2, 22; 사무엘상 1:5, 6; 이사야66:9). 미갈에게는 사라, 레아와 라헬, 한나처럼 하나님이 임신을 못하게 하거나 태를 닫았다는 말이 없다. 사무엘서 저자는 미갈의 불임에 대한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처리했다. 암암리에 여성억압구조를 드러내면서 남성중심의 이익을 폭로한 셈이다.

 

남편 다윗이 화를 내며 분수를 지키라는 듯 날카로운 말이 오갔고, 이미 다윗은 여러 명의 처첩을 둔 상황이었다. 이후에 다윗이 미갈과 동거했거나 잠자리를 함께 했다는 말은 없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의 불화를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터에(3:1) 다윗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사울 집안의 사람들은 제거되어야 했다. 이 권력다툼의 중심에서 다윗의 아내 미갈은 “사울의 딸 미갈”이었기에 다윗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담보물이요, 정치적 희생물이었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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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을 외면한 영성의 무기력함

 

 

모든 생명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간과 더불어 명멸(明滅)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그 생명의 시간이 기록해놓은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 위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갈망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에 대한 되새김이 없는 존재는 그 생명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앎을 억압하는 것은 생명을 억압하는 것과 같다.

 

진시왕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서 역사를 짓밟으려 한 것은 생명을 멸시한 소행이었고,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의 역사적 생명을 단축시키고 말았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안목을 기르지 못하는 인생과 공동체는 그 생명을 새롭게 발전시키는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역사에 대한 되새김,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신앙의 길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나 자신의 개인적 실존에 주목하게 한다. 창세기 이후의 성경은 그런 측면에서 인류적 통사(通史)이며 이 통사적 맥락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사 속에서 활동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 개개인의 구체적인 실존적 삶과 분리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이를 망각하는 것을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억하라, 기억하라”고 명하신다. 망각이 죄가 되고, 역사에 대한 되새김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의 섭리에 눈이 어두워지는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구약의 선지자들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실존의 역사성을 주시하게 한다. 지금 당장 한 개인의 짧은 인생 여정만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긴 역사의 여정에서 바라보면 알게 된다는 이들 선지자들의 혜안은 역사와 현실, 그리고 개인의 삶을 가치 있게 일구어 내는 영성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져야 할 것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선지자들이 범인(凡人)들이 놓치고 살아가는 역사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다면, 이들의 영성은 매우 민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구는 자전하며 공전하고 있으나 아무도 이를 체감(體感)하지 못한다. 그 안에 있으면 그 움직임의 거대한 축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이 거대한 축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존재이다. 그만큼 그들의 영이 맑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세상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에 멸망과 번영의 갈림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투시(透視)할 수 있고 그 축의 떨림을 듣는다.

 

그렇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은 대세의 흐름 속에 휩쓸려가고, 그 실존의 자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에 아무런 반성 없이 따라가지만, 영성이 뛰어난 선지자들은 이에 저항하고 이겨내는 길을 제시한다. 그러기에 역사와 현실에 마주하지 않는 영성은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참된 의미의 영성이 아니다. 자신이 타고 있는 배의 운행과 그 운명을 알지 못하고 그저 배안의 객실이 일등석인지 이등석인지를 따지면서 자신의 운명을 가늠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침몰하는 배의 일등석은 힘차게 항해하는 선박의 삼등석과 비교할 수 없다.

 

예수님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 영의 맑고 아름다움이 하나님 나라를 보고 소유하는 일의 핵심적인 관건인 것을 밝히신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외치신 그분의 음성은 역사와 현실이 하나님 나라의 뜻과 만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것과 분리된 하나님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 역사의 비극성을 목격하고, 이 비극적 사태의 반전 내지는 역전을 꾀하는 하나님 나라의 혁명적 도전은 한 개인의 실존적, 내면적 영성에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공동체적 현실이 되는 지점에까지 가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둘, 셋이라도 모인 자리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란 ‘홀로의 고독한 실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임재(臨齋)’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확대를 뜻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장막을 치셨다)”는 요한복음의 증언은, 다름 아닌 역사와 현실, 그 안에 녹아들어 새로운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지목하는 말씀이다.

 

 

류연복 판화

 

 

구체적인 역사와 현실 속에 몸이 되는 영성

 

구체적인 역사와 현실 속에서 몸이 되지 않는 영성은 관념이며 추상이고 허상에 불과하게 될 뿐이다. 생명은 관념과 추상, 허상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와 현실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존(現存)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교회는 영성과 역사, 영성과 현실이 조우(遭遇)하는 작업에 소홀히 해왔다. 아니, 소홀히 해왔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시했고, 이 작업에 반대해 왔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역사의 문제를 제기하고,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영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도외시했다. 심지어는 영성이 흐려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회가 우리 사회 전체가 영적으로 타락하고, 죄에 무뎌지며 교만과 거짓된 풍요로 비대해져가고 있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역사의 무수한 사건을 외면했으며 그러한 일들을 방치하는 것이 한 개인의 실존적 인생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다. 총·칼 앞에서 권력 앞에서 굴하지 않았다.

 

권세 앞에서 체념과 비굴과 기회주의가 길러지는 것은 한 개인의 영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부정의한 일을 보고 침묵하며, 자신의 개인적 복락에만 관심을 쏟는 존재의 영성은 건전한 것일까?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사회적 양극화로 고통 받는 이들의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에 귀를 막고 있는 이들의 영성은 무엇을 위한 영성일까? 이런 마음과 영성을 지닌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있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역사에 무지한 채로 역사의 죄과를 되풀이하는 이의 영성은 존경받을 만한 것인가? 민족 분단의 적대적 현실을 보고, 어떻게 민족적 화해와 협력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영성은 제 아무리 묵상의 길이가 깊고, 교회생활이 충실하다 해도 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영성은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기독교 신앙의 영성은 먼저 인간과 우주 만물의 아픔에 눈뜨는 일에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는 일이 우리가 목표하는 영성이라면, 그분의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았던 그 절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제대로 된 영성의 기초이다. 오늘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는, 인간의 고통뿐 아니라 우주 만물의 절규를 듣는 것도 요구된다. “이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묻는 과정,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이며 곧 영성 훈련의 절차이다.

 

생명의 기력을 받아 이 아픔에 다가가는 능력이 영적 성장이라면, 우리는 아픔에 민감하고 그 아픔을 낫게 하는 사랑의 마음을 풍성하게 갖는 것이야말로 영성의 전제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파하는 존재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영은 없다. 자신을 남보다 강하게 할 능력을 사모하고 과시하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은 단연코 사탄의 영이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모습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모든 영이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믿지 말라”(요한일서 4:1)고 한 사도 요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양의 탈을 쓴 이리의 영이 신앙인들을 혹세무민하고 있다.

 

강자를 추종하는 세상적 영성

 

역사의 희생자들, 현실의 패배자들이 내지르는 통한의 절규에 귀가 멀어있다면 그의 영성은 강자를 추종하는 세상적 영성이며 하나님의 뜻에 합할 수 없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버려진 자들을 향하여 다가가신 예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교회가 일찍이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추구하면서, 신앙 선배들의 유산과 전통을 이어받으며 그 동역자가 되려는 노력을 꾸준히 쌓아왔다면 한국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실체를 구현하라는, 그래서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힘있게 나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개인적 고뇌가 어떤 사회적, 역사적 현실과 관련이 있는가

 

그런데,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역사와 현실, 그리고 개인적 영성의 관계를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자칫 범하게 되는 오류에 관해서이다. 역사와 현실을 말한다고 하면서 이것이 또 다시 새로운 관념주의와 추상주의에 빠지게 되는 함정이 있다. 생생한 역사와 현실보다는, 자신의 역사관과 현실 해석이 앞서서 생동하는 현실과 역사의 숨결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와 현실 속에 들어있는 개인적 실존의 고뇌를 드러내기보다는 당위론적 주장에 치우쳐 마음 깊이 다가가는 영성의 섬세함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역사와 현실이라는 거창한 구도 속에 파묻히는 인간의 실존 자체를 주목하는 일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역사와 현실이라는 규모가 큰 장과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밝히는 일이 요구되는데 그에 필요한 접근 능력이 우리에게는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주장은 난무한데 감동은 없고, 이성의 설득은 충만한데 영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당위론적 결단은 있으나 신앙적 확신은 없는 상태를 낳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와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대목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개인적 고뇌의 현장에 대한 체험과 이해가 풍부해져야 한다. 그래서 그 생생한 아픔과 갈망의 뿌리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아픔에 다가가는 언어 또한 생경하지 말아야 하며, 구체적인 생동감과 언어적 탄력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언어적 탄력성이라는 것은 그 아픔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채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뇌는 그토록 다면적 차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개인적 고뇌가 어떤 사회적, 역사적 현실과 관련이 있는가를 보도록 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제라고 여겼을 때는 힘들지만, 그와 유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이들의 증언과 간증, 그리고 현실을 듣고 보는 일은 점차 안목을 넓혀 가는 기초가 된다. 그래서 세상의 작은 자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역사와 현실에 도전함을 ‘새로운 생명 공동체’가 탄생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겨자씨가 자라나 큰 겨자나무가 되어 공중에 유리하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로써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원리와 방향이 그 삶의 기초를 잡아가는 그런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 공동체의 존재와 성장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사의 영성이 바로 세워지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자라나며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일체의 모순은 역사와 현실에 대하여 바로 마주하지 않는 기독교 영성에서 비롯되는 것도 적지 않다. 역사가 잘못 갈 때, 현실이 모순을 그대로 지속하려 들 때, 그것이 한 개인의 실존에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세월호 참사, 불투명한 경제상황과 가족 공동체의 파괴에서 그대로 목격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인주의적 영성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신앙 선배들이 보여준 실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생명 공동체의 능력을 길러나가야 한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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