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명파는 또 하나의 땅 끝처럼 먼 곳에 있었다. 월요일 새벽, 아들 규민이와 함께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전날 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아침 6시 30분 속초행 고속버스를 예약해 둔 터였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버스에 타면서 표의 절반쯤을 잘라내던 것은 이젠 옛 시대의 유물, 이제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예약한 내용을 핸드폰으로 보여 주기만 하면 되었다. 핸드폰에 있는 예약권을 단말기에 대니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앉을 좌석번호까지를 알려준다. 마치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기계가, 그것도 친절한 목소리로!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승객이 많았다. 드디어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한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눈을 뜨니 어느새 고속도로 동홍천 요금소를 막 빠져나가고 있었다. 도로표지판에 인제 속초라는 지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로는 잠깐 사이에 지나가는 길을 나는 한 마리 벌레처럼 느릿느릿 걸어서 지나가게 될 것이었다.


속초고속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고성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으려 하니 오후에나 있다면서 길 건너편으로 가 시내버스를 타라고 일러준다. 한 아주머니께 물어 확인한 시내버스를 기다려 타면서 명파초등학교를 간다고 하자 근처까지 밖에는 가지를 않는다 한다.


어떻게든 연결이 되겠지 하며 요금을 물으니 5,480원이란다. 시내버스 요금이 5천원이 넘다니,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으니 맞는단다. 6천원을 요금 통 속에 넣자 땡그르르 잔돈이 떨어진다. 붉은 빛이 선명한 10원짜리 작은 동전을 오랜만에 대하지 싶었다.


시내버스 요금치고는 이상하다 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버스는 자기가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갔다. 지명을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동네를 두루두루 거친 끝에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듯이 멈춰선 곳이 대진항이었다. 이름은 시내버스였지만 버스는 고성과 거진을 지나 대진항까지 자기소임을 다할 때까지 달린 것이었는데, 버스가 멈춘 곳은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버스 종점이었다. 하긴, 어느 순간부터 버스 안의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길을 걷다 만난 우편함. 웃음과 애잔함이 동시에 지나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한 부대의 구호가 눈에 띈다. “이겨놓고 싸우는 000부대” 구호를 보는 순간 괜히 웃음이 났다. 이겼는데 왜 싸운담,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보나마나 이기는 싸움이라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질 수 없다는, 져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담은 말이리라.


때로는 비논리적인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구나 싶었다. 논리 정연함으로 설득력을 잃는 일도 있고, 비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경우도 있는 것이었다.


버스종점 대합실은 흡사 폐창고처럼 허름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대합실도 마찬가지였다. 표를 파는 창구도 따로 없었는데, 한 가운데 놓인 평상에서는 기사지 싶은 분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머쓱해져서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타고 온 버스를 청소하기 위해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명파로 가는 길과 방법을 물으니 버스로는 어렵고 걷기는 머니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준다.


때마침 막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 지나가는 차는 별로 없었는데 그렇다고 손이 선뜻 올라가질 않았다. 서너 대 차를 보낸 뒤 이래선 안 되지 싶어 다가오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냥 지나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차를 태워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만치 방금 지나쳐 간 차가 멈춰 선다. 그러더니 후진을 하는 게 아닌가.


차를 향해 달려갔더니 창문을 내리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부부가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명파라 하자 거기가 어디냐 한다. 나도 모른다 하자 운전을 하던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다.


“여기서 아주 멀지는 않네요. 차 안이 어수선한데 그래도 좋으면 타세요.”


옷가지며 과자며 여러 도구며, 차 안은 정말로 어수선했다. 아직 이삿짐을 정리하지 않은 방 같았다. 두 사람의 사연이 궁금했는데,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난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큰 맘 먹고 일주일간 시간을 내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고 했다. 어디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기를 벌써 나흘째라고 했다.


나더러 왜 명파를 가느냐고 묻기에 대답했다.


“저는 열하루 길을 혼자 걸으려고요.”


남편이었나 부인이었나, 내 대답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보다 더한 사람도 있네.”


      걷는 기도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명파초등학교


어느새 명파초등학교 앞, “이곳이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초등학교랍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더니 “그래요? 우리는 몰랐어요.” 하며 두 사람도 따라서 내린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다. 이른바 셀카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했더니 그동안 다니며 늘 그렇게 찍었다면서도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으로 명파초등학교 앞에 섰다. 빗속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까 모르겠다.


빗속에서 차를 되돌려 돌아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 문득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길을 떠나니 길을 떠난 자를 만나는구나.’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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