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열하루 동안 DMZ 인근마을을 따라 홀로 걷기로 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휴식이나 유람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열하루 일정을 ‘걷는 기도’라 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야 늘 드려왔다고는 하지만, 구별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허리가 잘린 채 철조망을 두르고 있는, 서로를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내 나라 그 땅을 내 발로 걸어가며 드리는 기도는 가만히 앉아 드리는 기도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을 생각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외에도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지금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와 늦어지고 있는 교육관 건축, 내가 걸어가야 할 목회의 길 등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이 떠올랐다.


생각한 기도 내용 중에는 의미도 있고 소중하기도 하겠다 싶은 것도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며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시간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기도하는 중에 떠오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떠오르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면 기도를 드리는데 얼마만큼 시간이 필요할까, 나도 궁금했지만 전혀 짐작이 되질 않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걷는 내내 이어졌다. 철조망을 볼 때마다, 부대를 지날 때마다, 군인들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군 트럭과 탱크를 만날 때마다, 사격 훈련하는 총소리와 포 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도를 했다.


철조망과 지뢰 경고문은 DMZ을 걸으며 만난 그 중 흔한 풍경이었다.


군부대는 대개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서 통일이 되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부대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관이 되게 해달라고, 저 엄청난 철조망을 녹여 호미와 괭이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수도 없이 묻혀 있을 모든 지뢰를 파내고 그곳에 씨앗을 뿌리게 해달라고, 지뢰밭에서 곡식을 거두어 남과 북 누구라도 배고픈 동포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같은 기도였지만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가슴과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평화와 갈등의 공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속살은 그런 모습이었다.


태어나서 만났던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는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로 시작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가족들이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이들은 가족이었을 것이다.


동네 친구들, 선후배들, 어른들도 떠올렸다. 흑백 영사기가 돌아가듯 생각지도 못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 고향교회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떠올랐다. 성경연속동화는 얼마나 우리들의 목을 길게 만들었던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신학대학,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군 생활을 하던 시절도 떠올렸다. 기억의 창고 속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번엔 목회 여정을 따라 기도를 했다.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시작을 했다. 부곡교회, 미아중앙교회, 수원종로교회, 정말로 많은 이들을 만났고, 고마운 만남이 많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만남도 있다.


첫 목회지인 단강교회, 이미 주님 품에 안긴 분들의 얼굴도 한 분씩 떠올렸다. 떠올릴 때마다 따뜻함이 밀려와 마음을 적셨다. 마음으로 떠올린 분들이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 것도 같았다.


프랑크푸르트교회, 아픔도 많았고 보람도 많았던 곳이다. 주님의 교회가 상처 입기는 쉬워도 회복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시간들, 한 사람이라도 기억에서 빠뜨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집중했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온, 반갑고 고마운 얼굴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다음은 지금 목회하고 있는 성지교회 차례다. 돌아가신 분부터 시작하여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 모든 교우들과 새로 나온 사람들, 청년부와 중고등부, 유초등부와 유치부, 교사들과 성가대원들, 몸이 아픈 사람들, 마음속으로 정한 기준을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렸다.


걷는 기도를 드리던 중에 기도를 요청받은 일도 있었다. 긴히 기도를 청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를 잠시 멈추고, 긴급한 기도를 이어가기도 했다. 실은 모든 기도가 그랬다. 마주 오는 차도 살펴야 하고, 그 때 그 때 주어지는 상황도 대처해야 하고, 기도는 중간 중간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기도를 다시 잇고는 했다.


‘하나님, 조금 전에 제가 어디까지 했지요?’


떠오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보니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며 형편 등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만났고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무한대는 아니었다. 열흘 여 기도의 시간에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 기억 속에 담고 있는 사람들은 무한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그들이, 그들과의 만남이 내 인생인 까닭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길, 그게 서로의 삶인 것이다. 무한정한 만남이 허락된 것이 아니라면 만남이 허락된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기도할 때의 가장 좋은 자세가 무릎을 꿇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새벽 예배를 드린 뒤 제단에 올라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 때면 발이 저릴 때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열하루 길을 걸어보니 기도하기 정말 좋은 자세 중의 하나는 걷는 것이었다. 길을 걸어가며 드리는 기도는 얼마든지 기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겠다 싶었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 기억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면서 배우게 된 기도의 의미가 있다. 기도란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였다. 서로를 따뜻하게 기억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남이 아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하고 축복하며 우리가 여전히 든든함과 고마움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 그것이 기도였다.


그것을 기도라 생각하니 기도를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기도를 그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어쩌면 걷는 기도를 받으신 분께서 걷는 기도를 바친 이에게 주시는 선물 아닐까 모르겠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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