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소똥령 마을, 이름부터가 정겹다. 그곳이 어디든 고개를 넘는 소떼들이 보이고, 그러느라 소들이 싸댄 똥들이 여기저기 멋대로 나뒹굴고 있을 것만 같다. 냄새조차도 역겹지 않아 바람은 여전히 구수하게 불어올 것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어디선가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도 같다.


소똥령을 향해 가는 길에 대대리를 지나게 되었다. 문득 대대리 삼거리가 눈에 익다. 같이 신학을 공부하고 대대리 이 외진 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찍 주님 품에 안긴 친구가 있다. 최경철 목사, 눈매와 웃음이 참으로 선한 친구였다. 그 때만 해도 대대리는 땅 끝처럼 여겨졌다. 그가 대대리에서 목회를 할 때 친구들과 함께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고찰 건봉사를 찾던 기억도 여전히 새롭다.


        최경철 목사가 섬기던 대대교회.


대대삼거리에서 보니 저만치 대대교회가 보였다. 아무리 갈 길이 멀다 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른 시간, 예배당엔 아무도 없었는데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예배당으로 들어서다가 입구 벽에 부착된 명판을 보았다. ‘최경철 목사 기념예배당’이라 쓰인 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1988년 3월 대대교회에 오셔서 교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1996년 2월 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최경철 목사님의 삶과 뜻을 기리며…

-1997년 2월 5일 대대교회 교우일동>


예배당 입구에 새겨진 명판. 교우들의 마음이 따뜻했고 미더웠다.


마음이 뭉클했다. 무엇보다 고마웠다.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 했던 모리 교수 이야기대로 하자면, 친구 최목사는 여전히 교우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었다.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교우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미덥게 느껴졌다.


예배당 안의 분위기도 여느 예배당과는 달랐다. 수도원에 들어온 것 같은 차분함과 고즈넉함이 물씬 전해졌다. 제단이 낮은 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설교 또한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모든 것 또한 친구가 남긴 흔적이지 싶었다. 최 목사는 성품이 맑고 조용했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최 목사와 대대교회를 생각하며 기도를 바쳤다.


대대교회 예배당 안. 조용한 수도원 같았다.


수수한 풍경, 대대삼거리에 문을 연 식당이 보였다. 기사식당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던 것은 소똥령을 아침을 거르고 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식당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는데도 반찬을 푸짐하게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식당주인은 대대교회의 집사님, 최 목사가 목회할 때에도 신앙생활을 하던 분이어서 최 목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최 목사와 같이 신학을 공부한 친구 목사라고, 최 목사가 목회를 할 때 대대리를 찾은 적도 몇 번 있다고, 길을 걷다 대대교회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라고 하자 더없이 반가워한다.


식당 주인에게 벽화 이야기를 했다. 대대교회 마당에 있는 화장실 벽에는 벽화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인사를 하고 있는 재미난 그림이었다.


친구의 목소리처럼 다가왔던 그림. 사람은 가도 남는 것이 있다.


이모티콘을 닮은 모습이 정겨웠다. 얼굴은 네모 모양, 한쪽 눈은 윙크, 가슴엔 작지만 붉은 하트, 그림을 보는 사람을 덩달아 빙긋 웃게 만들었다. 그림 옆에는 그림 속의 사람이 건네듯 “안녕”이라는 인사말이 네모 칸 안에 담겨 있었다.


화장실 벽에 그려진 그림과 “안녕”이라는 말을 보는 순간 마치 최 목사가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고 하자, 식당 주인이 울컥한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날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두 눈을 훔친다.


오래 전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어딘가 가만 숨죽이고 있던 시간이 그 어떤 것을 계기로 다시 숨을 쉬며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친구는 여전히 젊은 시절 그 해맑은 웃음으로 식당 주인과 나 사이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었다.


사람은 가도 남는 것이 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가슴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흘러가는 세월 속 여전히 함께 숨을 쉬고 있는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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