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2)


지팡이와 막대기


길을 걷는 동안 내내 한 손에 스틱을 잡았다. 스틱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되랴만, 그래도 짐의 무게를 줄이려고 하나만 챙겨 떠난 스틱이었다.


스틱은 몇 가지 점에서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걸을 때면 자동차가 지나는 쪽 손에 스틱을 잡았는데, 운전자가 길을 걷는 나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 스틱을 손에 잡았다는 것은 하나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를 내가 들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동네를 지날 때마다 짖어대는 개들에게는 유용했다. 묶여 있는 개야 묶인 채로 짖다 말 뿐이었지만, 이따금씩은 풀려 있는 개를 만날 때가 있었다. 개가 볼 때에도 그냥 한 사람이 지나간다는 것과 지나가는 사람의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다는 것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스틱은 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짖어대는 개들은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이해하게 했다. 대부분의 개들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짖어댔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는 듯이 짖는 개도 있었고, 그것이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어서 밥값을 하듯 짖어대는 개들도 있었다. 죽어라고 짖어대는 개들도 있었는데,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짖기 시작하여 한참을 지나가도록 짖어대곤 했다. 다른 개가 짖으니까 덩달아 짖는 개들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짖어대는 개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거나 저 스스로가 겁이 많은 개들 아닐까 싶었다. 자기가 겁이 많아 그토록 열심히 짖어대는 것이라 생각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


분명히 나를 처음 보는데도 짖지 않는 개들이 있었다. 유심히 내 모습을 살필 뿐 함부로 짖거나 나대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는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보다는 짖지 않으면서 나를 살피는 개가 오히려 무섭게 여겨졌다.


짖지 않는 개들은 경험이 많아 자기 앞을 지나가는 존재가 자기가 지키고 있는 영역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지의 여부를 금방 파악하고 있다 싶었다. 경계해야 할 때와 경계할 필요가 없는 때를 분간할 줄 아는 지혜와 나설 때와 바라볼 때를 구분하는 용맹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개라 여겨졌다. 김이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고 하지 않는가.


몇 번인가는 길을 걷다가 뱀을 만난 적이 있다. 도로 위로 나왔다가 차에 깔려 죽은 뱀이 의외로 많았다. 한 번은 굵기와 크기가 보통이 아닌 보기 드문 구렁이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몇 번은 살아 있는 뱀을 보았다. 그 중에는 살모사지 싶은 독사도 있었다. 그럴 때면 스틱으로 탁 탁 소리를 내어 뱀에게 피할 시간을 주었다. 뱀도 같은 대지에서 살아가는 생명 아닌가. 사람이 뱀을 잡아먹기 시작한 뒤로 들쥐가 많아지고, 그러면서 렙토스피라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뱀은 뱀대로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지키는데 필요한 자기 몫이 있을 것이었다.


스틱을 잡고 걸으니 생각지 않은 유익함도 누릴 수 있었다. 허리의 각도를 유지하게 해 주었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기가 쉬울 터인데 스틱이 그것이 막아주었다.


도로에 떨어져 있는 것 중에는 못이 많았다. 달리는 차 바퀴에 박히면 어쩌나 싶어 보이는 대로 치워냈다.


스틱의 가장 유용한 소용은 따로 있었다.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못을 치울 때였다. 이상하리만치 도로에는 많은 못이 떨어져 있었다. 한 뼘쯤 되는 긴 못으로부터 어떤 타이어라도 단번에 뚫을 것 같은 굵은 나사못에 이르기까지, 떨어져 있는 못의 종류도 다양했다.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펑크가 나는 주된 원인이 타이어에 못이 박히는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먼 길을 운전을 하고 다녀올 일이 있어 떠나기 전에 가까운 정비소를 찾아갔다. 타이어의 공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을 넣으며 공기압을 재던 정비사가 대뜸 말했다.


“펑크네요.”


바람을 넣어도 공기압이 올라가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타이어에 박힌 못을 빼내는데, 놀랍게도 타이어에는 두 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눈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못이 두 개나 박혀 있다니, 그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달렸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길을 걷다가 못이 보일 때마다 못을 도로 밖으로 치워냈다. 그럴 때마다 스틱을 이용했다. 스틱 끝으로 못을 치워냈는데, 그렇게 치운 못이 제법 많았다.


길을 걷다가 만난 철판. 나사못 몇 개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걸어가며 못을 치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신이 달리는 도로 위에 못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과 누군가 길을 걸으며 그 못을 치웠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생각지 못한 큰 은혜를 힘입어 살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길을 걸으며 스틱이 전해준 유익함은 의외로 많았다. 문득 ‘지팡이와 막대기’가 떠오른다. 목자이신 주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지켜준다는 말씀(시 23편) 속에는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놀라운 은총이 담겨 있을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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