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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7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벅차게 수피령을 오를 때에 비하면 내리막길은 편하고 쉬웠다. 경사가 그랬고, 바람이 그랬다. 걸음을 옮기며 따로 힘을 주지 않아도 걸음은 절로 옮겨졌다. 땀 흘린 뒤에 맞는 바람은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원했고 고마웠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 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었다. 인적도 없는 이 한적한 곳에 웬 공원, 생뚱맞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살지만 그래도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의 얼굴이 생각났다. 지자체마다 수익이 되는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이다보니 빚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혹.. 2017. 10. 24.
오르막과 내리막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7) 오르막과 내리막 수피령은 정말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로드맵에도 수피령을 두고는 ‘직등코스’라 적혀 있었고, 전날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심마니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넘어야 한다고 일러준 터였다. ‘수피령’이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물 수’(水)에 ‘가죽 피’(皮)에 ‘재 령’(嶺), ‘水皮嶺’이라 쓰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 싶은데 함장로님은 ‘말이 씨가 되었나, 96년 대홍수 때 대성산 수피령은 온통 물을 뒤집어쓰는 대피해가 있었다.’고 수피령에 얽힌 일 한 가지를 소개했다. 이른 아침 숙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볕인데도 벌써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 2017. 10. 19.
인생은 도장(道場 )깨기 딸들에게 주는 편지(7) 인생은 도장(道場) 깨기-말들의 진실- 1. 공자(孔子)께서 자공(子貢)에게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뛰어난가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도 없는데.”(《논어》, 「헌문(憲問)」편). 곧잘 자기의 입장에서 타인들을 평가하고 비교하길 좋아하는 의기양양한 제자의 허를 찌른 것이다. 아무리 입버릇처럼 거리낌 없이 남의 비평을 해댔기로 되 주고 말을 돌려받자 한 짓은 아니었을 터. 면전에서 스승님께 정면 디스(diss)를 당했을 때 자공의 낯은 어땠을까? 자공의 뒷담화와 달리 예기치 못한 순간 상대의 안면을 직격하는 인간실격선언의 스트레이트(straight)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방망이처럼 정수리 복판에 작렬해 심장 속 양심에서 폭발한다. 위급한 마음을 모면할 길이 없어 어떤 말을 임.. 2017. 10. 17.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뜻이 있어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기도의 일정은 열하루로 정해졌다. 주일 지나 월요일에 길을 떠났고, 길 떠난 다음 주 금요일에 말씀을 나눌 신우회 예배가 있어 목요일까지는 돌아와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열하루의 일정이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성의 명파초등학교에서 파주의 임진각까지의 거리를 열하루의 일정으로 나누니 조금 무리다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었던 것도 일정을 정하는데 있어 큰 몫을 했다. 일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는데, 곰곰 그 의미를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같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천성환 목사님은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다. .. 2017. 10. 14.
지혜의 문장을 들어야 하는 이유 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0) 지혜의 문장을 들어야 하는 이유 문학성과 예술성을 삭제한 논리적 용어가 학술적 가치를 드높이고 학문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가 있다. 지식을 다루는 학자들의 세계다. 그 세계의 문장들은 길고 감동 없기 일쑤다. 나도 어느새 문학적인 감수성과 예술성, 그리고 상상력을 살려내지 못하여 심미성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독자가 되어 있다. 독자로서의 시간이 길어지면 저자가 되기도 하는데, 가끔 단 한 줄 문장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할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이 틈바구니에서 신학적인 것에 문학성을 녹여 서로의 자양분이 된 글쓰기를 꿈꾼다. 운율과 리듬, 비례와 조화가 어우러진 구약 지혜서 문장의 숭고한 아름다움처럼. 구약 지혜서의 문장은 오랜 세월 갈고 닦여진 함축적인 아름.. 2017. 10. 11.
혼자 드린 예배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5) 혼자 드린 예배 걷는 기도의 일정이 열하루였으니 도중에 주일이 한 번 들어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주일이 되면 걷기를 멈추고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드려야 할까, 그런 뒤에 다시 걷기를 이어거야 할까, 아니면 계속 걸을까…,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다. 계속 걷기로 했다. 주일 예배 설교를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걱정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또 하나 이어지는 고민, 그렇다면 걷다가 만나게 되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러다가 그것도 결정을 내렸다. 그것 또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혼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일정을 보니 주일을 맞게 되는 곳은 화.. 2017. 10. 10.
거미의 유머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4) 거미의 유머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해학(諧謔)을 뜻하는 ‘유머’는 막혔던 숨을 탁 터뜨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싶다. 마치 물속에 잠겨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던 이가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그런 순간처럼 말이다.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지는 것과도 같아서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단번에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도무지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피령은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걸음을 이어가야 했다. 한 유머 강사는 그의 책에서 ‘당신은 테러리스트인가, 유머리스트인가?’를 묻고 있는데, 그의 .. 2017.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