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5)


혼자 드린 예배


걷는 기도의 일정이 열하루였으니 도중에 주일이 한 번 들어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주일이 되면 걷기를 멈추고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드려야 할까, 그런 뒤에 다시 걷기를 이어거야 할까, 아니면 계속 걸을까…,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다. 계속 걷기로 했다. 주일 예배 설교를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걱정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또 하나 이어지는 고민, 그렇다면 걷다가 만나게 되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러다가 그것도 결정을 내렸다. 그것 또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혼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일정을 보니 주일을 맞게 되는 곳은 화천이었다. 화천은 친구 목사가 오랫동안 목회를 한 곳으로 아는 후배 목사들이 있는 지역이었다. 잘 알고 있는 장로님들도 몇 분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불쑥 예배 시간에 맞춰 한 교회를 찾아들어가 예배를 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그건 아니겠다 싶었다. 그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그날 관심의 중심은 내가 되고 말 터였다.


길을 걷다가 만난 주일, 조용한 계곡에서 혼자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돌아보니 혼자서 드린 예배가 아니었다.


화천을 떠나 다목리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새 아침 7시, 성지교회에서 1부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함께 마음을 모았다. 9시 즈음엔 2부 예배를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의 모습이며 찬양대의 모습이며 주일에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 선하게 그려졌다. 그러던 중 11시가 가까워졌다. 이왕이면 섬기는 교회의 예배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예배하고 싶었다.


혼자 예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걷고 있는 도로 옆으로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었는데, 때마침 계곡으로 향하는 포장된 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예사롭지 않은 오토바이에 교통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멋스러운 옷차림, 한눈에 보기에도 오토바이 즐겨 타는 사람이다 싶었다.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파주에서 떠나 화천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훌쩍 길을 나선다고 했다. 표정에서 묻어나는 여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다 싶었다.


내 일정을 듣더니 대단한 결정을 했다며 마치 자기의 일처럼 좋아라 한다. 오토바이와 도보, 방법은 달라도 모두가 길을 가는 사람들, 잠깐 사이에도 왠지 모를 동류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믿음과 사역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서 동류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야기를 나눈 뒤 길을 떠나는 그분께 조심해서 가시라 인사를 하며 “이 오토바이를 얻어 타면 제 목적지 파주 임진각까지 금방 갈 텐데요.” 했더니 “정말 그러네요. 그럴래요?” 하면서 호탕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두두두두둥…” 오토바이 배기음 소리가 낮고 묵직하면서도 듬직했다.


새들과 계곡물이 찬송을 했고 나무들이 기도를 했다. 

뜻밖에도 축도는 바람이 맡았는데, 더없이 은혜로웠다.


가까운 곳 나무 그늘 아래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리고 마음을 모은다. 혼자 드리는 예배는 얼마만인가.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어딘지도 모르는 계곡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 가만히 눈을 감자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도 있었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있었다.


이어 찬송 시간, 누가 찬송을 할까 할 때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는 또 다른 새소리로 이어졌다. 바로 앞 물소리도 화답을 했다. 아름다운 조화로 이루어진 훌륭한 찬송이 한참 이어졌다.


다음은 기도 시간, 누구든 기도를 하렴, 하며 눈을 감았다. 나무가 기도를 했다. 나는 오직 나일뿐입니다, 내가 선 자리 사랑하게 하소서, 다른 나무 다른 자리 다른 높이 부러워하지 말게 하시고 다만 내 잎과 꽃과 열매를 피워내게 하소서, 어떤 폭풍우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뿌리 깊게 내리게 하소서, 나무의 기도가 이어졌다.


다음은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가데스바네아를 생각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초입,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걸음을 되돌리고 만다. 가나안 정탐으로 인해 불거진 불순종이 그들의 걸음을 되돌리게 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과 그 소리를 듣고 밤새도록 울부짖었던 백성들, 가데스바네아는 복과 화를 가르는 극명한 분기점이다.


예배 후 성찬처럼 먹은 호두과자. 

누군가의 정이 누군가에게는 성찬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아찔한 분기점에 선다. 그곳에서 어떤 이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들은 복을 등진 채 광야로 돌아선다.


마지막 축도 시간, 눈을 감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한 바람이 계곡을 따라 불어왔다. ‘바람’은 ‘성령’과 같은 단어, 몸도 마음도 바람에 내맡겼다. 꼭 필요한 손길이 온 몸과 맘을 부드럽게 시원하게 어루만졌다.


예배를 마치고는 성찬을 나누듯 호두과자 몇 알을 먹었다. 전날 화천을 찾아와 저녁을 든든하게 사 준 이 장로님이 사 온 과자였다.


조용한 계곡에서 혼자 드린 예배는 참으로 호젓하고 평온했다. 마음속 지문처럼 남을 드문 예배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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