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1)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와 꿀잠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만,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멀게 느껴졌고 걸음은 무겁고 더뎌졌다. 긴장으로 응축되었던 몸과 마음이 점점 풀어지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헐거워지고 느슨해진다 싶었다.


먼 길을 격려차 찾아온 어머니와 형과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 면회를 오신 듯 바리바리 간식이며 과일 등을 챙겨 오셨다.


철도 중단역인 백마고지역으로 달리는 경원선 열차,

 언제나 길이 열려 북쪽 끝까지 숨가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찾아올지.


오후에는 하루를 묵기로 한 대광리역까지 가야 했다. 길은 거반 개울을 따라 이어졌다. 개울을 따라 걷는 것은 아스팔트를 걷는 것에 비하면 거의 천국과 같았다.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았고, 내달리는 자동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훅훅 얼굴로 올라오는 아스팔트의 열기도 없었다. 경치도 좋았고 거기에다 바람도 불었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땡볕이었다. 제방 둑을 따라 심은 것은 대개가 꽃, 꽃은 사람에게 향기를 주지만 그늘은 주지 못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줄 수가 없는 것처럼. 중간 중간에 나무를 심은 곳도 있었지만, 아직 키가 작아 나무 또한 그늘을 만들지는 못했다. 이름만으로는 제 역할을 다 할 수가 없다는 듯이.


걷고 또 걷다가 너무 지쳤다 싶을 때면 잠깐씩 쉬었다. 한 번은 다리 밑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두 번은 수로의 수문을 관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그야말로 고꾸라지듯 쓰러져 누웠다. 벗은 배낭을 베고는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럴 줄 알았으면 깔개라도 챙길 걸. 잠시라도 눈을 붙이면 한결 낫겠다 싶은데, 천하의 잠보에게도 잠은 쉬이 오지를 않았다. 혹 지나가는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을 봤다면 거지 아니면 간첩으로 오인을 했을 것이다.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 마을에 들 수는 없지 않겠냐는 듯, 이가 드러나도록 웃으며 반겨주는 장승.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주인에게 우연히 들은 말에 의하면 군남면 옥계리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가 있다고 했다. 값도 저렴할 것이라 했다. 값도 값이지만 대광리역 앞에서 숙소를 찾는 것보다는 마을회관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식당 주인에게서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하여 마을 부녀회장님과 통화를 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생각지 않았던 일이지만 그날 밤을 기꺼이 옥계리에서 묵기로 했다. 여건이 어떨지 모르는 대광리역에서 숙소를 구할 필요가 없어지니, 마음도 훨씬 홀가분해졌다.


한적한 시골마을 옥계리에 도착을 했을 때는 긴 여름해가 기울며 조금씩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기는 어려울 터, 마을 초입에 있는 가게에서 빵을 샀다. 아침은 부녀회장님 집에서 먹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저녁만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하룻밤을 묵은 옥계리 마을회관. 길을 걷는 자에게는 어색하거나 불편한 잠자리는 따로 없었다.


겨울철이야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겠지만 한창 일철, 마을회관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일에 바쁜 부녀회장님 대신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찾아와 문을 열어주었다.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3호이기도 한 옥계리 마을회관은 생각보다도 컸다. 숙소는 2층에 있었다. 덩그마니 커다란 방, 숙소라 하기엔 뭔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씻을 곳이 있었고, 뜻밖에도 샤워실엔 세탁기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얼른 씻고 빨래를 마친 뒤 벽에 기댄 채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조금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맞은 편 창밖으로는 이내 어둠이 내렸다. 낯선 동네 마을회관에서 묵는 하룻밤, 제법 큰 방에 혼자 누운 것도 그랬거니와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에 들어온 듯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걷는 일정이 아니었다면 그런 분위기가 낯설고 어색하여 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없이 조용한 숙소일 뿐, 잠을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잠에 빠져들기까지의 시간이 결코 길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길을 걷는 사람이란 걸 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편하고 어색하고 낯선 상황을 만나도 얼마든지 그러려니 할 수 있지 않을까.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를 두고도 얼마든지 꿀잠을 잔 옥계리 마을회관은 그런 의미로 남아 있다.


한희철/동화자각,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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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지혜서 산책(12)


나의 말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새겨졌으면


글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기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쓴다. 또 누군가는 입신출세의 길이어서 쓴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기 때문에 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속 지병이 되기 때문에 쓰는 이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쓴다는 것은 기도의 형식과 같다고 했다. 간절한 무엇이 있기에 글을 쓴다는 것인데, 그러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행위일까?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이유인 사람도 있지만, 인류에 대한 연민 때문에 글을 쓰는 이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글쓰기는 자신의 결백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멸의 기록이 되기를 염원했던 한 남자를 향한 연민 때문이다.


죽음을 갈망했던 남자


옛날 아주 먼 옛날 ‘우스 땅에’ 욥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았다(욥기1:1). 그는 사해 남쪽 에돔 지역 어디쯤으로(창세기36:28) 추측되는 우스의 시민이었다. 그의 시대, 지역, 어떤 집안의 사람인지, 이름의 뜻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하나님이 승인하신 당대의 의인이었다(1:1, 16). 자녀는 아들 일곱에 딸 셋이 있었으니(1:2) 이상적이고 완벽한 가족 그 자체다. 그러나 느닷없이 닥친 재난과 불행은 그를 처참한 상태로 몰아갔다.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고(1:13-19), 심각하고 끔찍한 피부병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2:7-8). 이것은 하늘 위에서 벌어진 하나님과 사탄과의 일종의 ‘내기’에서 시작된 일 때문이었다(1:8-11). 그러나 하늘 위를 볼 수 없는 욥은 자기의 불행과 육체적인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는 불행과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복과 화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고백하며(1:21; 2:10) 순응했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어느 날, 고통당하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찾아 왔다. 친구들은 경악했다. 그들은 처참한 욥의 모습을 보고 일제히 소리 지르며 울고 겉옷까지 찢으며 죽은 자를 애곡하는 의식처럼, 욥의 고통에 동참했다. 친구들은 욥의 처절한 고통에 차마 말도 못하고 칠일 동안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2:11-13).


그런데 욥에게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욥이 친구들과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발설한 첫 마디는 ‘자기저주’였다.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충격에 휩싸였다. 욥은 태어난 날과 수태되던 밤을 저주했다. 그 밤이 현재 자신이 겪는 슬픔을 막아주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였다(3:1-10). 욥은 출생 당시 죽지 않아 안식할 수 없었던 것(3:11-19), 그리고 내면에 차오르는 두려움과 비탄은 죽음을 갈구하는 탄식의 소리로 분출했다(3:20-26). 신체적인 고통이 커지면서 고뇌의 깊이도 깊어졌다. 욥은 왜 자신이 끔찍한 고통에 던져졌는지 도무지 답을 구하지 못해 답답했다. 그의 탄식은 숨겨진 자기의 길에서 삶의 방향감각을 잃고 분출하는 믿음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재난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분투했고, 솟구치는 의문들을 쏟아내며 과감하게 항변했다.


그러나 욥의 항변과 탄식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친구들(엘리바스와 빌닷, 소발). 그들은 욥의 고난이 밝혀지지 않은 욥의 죄 때문이라고 추정하며 죄인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위로자로 왔던 친구들은 더 이상 위로자가 아니다. 친구들에게 욥의 내적투쟁과 불평의 언어들은 전통적인 지혜가르침과 보응신학을 변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며, 평화를 깨는 위험한 사상가로 보일 뿐이다. 때문에 친구들은 욥에게 마음을 돌이켜 순응하고 회개하라고 화려한 신앙의 언어로 집요하게 설득한다.

그러나 욥은 부당하게 느껴지는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억울하게 둘러막고 불공평하게 대하시고 박해자가 된 것임을 친구들이 제발 알아주길 바란다(19:6). 욥이 하나님을 고발한 셈이다. 욥은 폭행을 당해 부르짖어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불운한 시민처럼, 어둠에 갇힌 여행객처럼, 굴욕을 당하는 왕자처럼, 뿌리 뽑힌 나무처럼, 전쟁터의 적군처럼, 적군에게 포위당한 도성처럼(19:7-12) 하나님이 자기를 다루시는 것처럼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욥기> 삽화


아, 모두가 나를 버렸구나!


욥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외로움이 버겁다. 형제와 친척이 모두 떠나고, 자기를 멀리하며, 잊었다(19:13-14). 자신의 입김을 아내도 매스꺼워하고 등을 돌린다. 어린애들도 업신여기고 조롱한다(19:18). 마음의 비밀을 나눌 가까운 친구들조차 원수가 된 상황이다(19:19). 뼈는 살가죽에 달라붙고, 겨우 잇몸으로 연명한다(19:20). 자신이 속한 공동체 모든 구성원에게 버림받은 신세다(19:21-22). 욥이 사회적인 지위와 품위를 잃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욥은 자신을 몰아세우는 친구들에게 연민을 구한다. ‘나의 벗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게 나를 불쌍히 여기시게’(19:21). 그러나 친구들이 여전히 냉담했던 것일까. 욥은 자신의 말이 전혀 수용되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서 오직 한 분, 그의 ‘증인’과 ‘대변인’(16:21)이 되어 줄 하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말이 기록되기를 열망한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19:23-24, 개역개정)


욥은 “모든 시간의 횡포와 인간의 필멸성을 넘어 자신의 무죄함에 대해 증거 할 수 있는 기록”(다니엘 에스테스)을 원한다. 그리고서 욥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이 말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죽음 이후 하나님을 만나는 육체적인 부활을 옹호하는 시 본문이다(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19:25-26, 개역개정)


“대속자”를 뜻하는 히브리말 ‘고엘’은 본래 가장 가까운 친족(형제, 삼촌, 조카 등)을 일컫는 용어다. 어떤 사람의 재산을 그 가문의 재산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다시 사는 책임을 가진 ‘기업 무를 자’로서(레위기 25: 25-34), 노예가 된 친족을 도로 사서 노예가 되지 않게 하거나(레위기 25:47-54), 과부와 결혼하여 후사를 잇는 책임과 관계된 말이다(룻기 3:12; 4:1-6). 또는 살해된 친척의 피를 복수하는 ‘피의 보복자’를 뜻한다(민수기 35:12, 19-27; 신명기 19:6, 11-12). 그러니까 ‘몸값을 주고 구출하다,’ ‘다른 힘으로부터 해방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친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이었다.


동시에 ‘고엘’은 법률적인 상황의 은유로서 주님께 적용되곤 한다(잠언 23:10-11; 예레미야 50:34; 애가 3:58; 시편 119:154). 특히 이사야 40-66장에서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의 ‘고엘’이다. 그러하니 구약의 맥락에서 욥이 말하는 ‘나의 구속자’(19:25)는 하나님이다. 욥은 이미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해줄 친구(6:14), 판결자 혹은 중재자(9:33), 증인과 중보자(16:20)를 기대했지만, 이 땅의 ‘고엘’이 모두 등 돌린 처절한 상황에서 자기를 구출해주실 ‘고엘’을 열망한 것이다. 욥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안고 확신에 차 있다. 당대에는 도무지 이해 될 수 없었던 욥의 말, 초대 교부들의 해석의 빛 아래 신약의 부활과 맞닿게 되었다. 그때는 욥이 볼 수 없었던 ‘구속자’(‘고엘’) 이름은 메시아 예수. 우리는 마지막 날에, 그가 일어나셔서 우리를 변호하실 것을 믿는다(베드로전서 1:18-19; 요한계시록 1:5; 5:9).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곧 시작된다. 자기의 말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지길 열망했던 욥. 그가 남긴 ‘구속자’에 대한 믿음의 고백은 신앙의 후세대를 위한 거룩한 책에 불멸의 기록으로 남았고, 헨델(1686-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3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첫 곡 아리아로 숭고한 음악이 되었다. 예수의 오심을 경축하기 위한 기다림의 계절, 욥의 고백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변호와 위로를 가다리는 모든 이들의 불멸의 노래가 되었다.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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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7)


종교개혁 500주년에 찬물을 끼얹은

명성교회 세습사태에 직면하여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三患)


오늘 명성교회와 김삼환, 김하나 목사 부자에 대한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이들이 자기들의 입으로 어떤 비난이나 욕도 감당하겠다고 했으니 ‘그래, 그렇다면 내 욕을 한번 먹어봐라’ 하는 뜻으로 일부러 하려고 합니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학술적 견해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는 세 가지 근심거리(삼환)가 있습니다. 첫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목사된 것. 둘째 그 사람이 목회에 성공한 것. 셋째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졸부가 삼가 할 줄 모르고 교계의 원로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 출발과 과정과 성공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성찰할 줄 모르는 일관된 비루함입니다.


제가 알기로 기독교 신앙에 있어 자격을 갖추고 성취를 이루고 스승의 반열에 거론되는 위인들에게 가난도 있고 고난도 있고 박해도 있고 슬픔도 있었지만 비루함이 있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비루함이란 고귀한 품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비루(鄙陋)와 고귀(高貴). 이것이 세속(世俗)의 혼란스런 홍진(紅塵)과 진리(眞理)의 분명한 밝음을 구별하는 척도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다른 게 아니라 세속적 욕망과 갈망에 대한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 염치를 드러낼 때 그가 갑자기 미쳐서 그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색이 드러났다. 그가 본래 그런 위인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한 비루하고 고귀한 태도는 한순간 하나의 사건 속에 갑자기 돌출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래 1백년 역사 동안 한국에 꽃핀 기독교 신앙에 있어 고귀함이란 무엇일까요? 가령 미국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 사상가이자 목사 신학자 원주민 선교사였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를 논할 때 ‘그는 현대 미국의 사상과 감정을 완성했다’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의 신앙적 신학적 고귀함이란 기독교는 물론 미국 사회정신의 뼈대를 이루는 영감과 윤리의 기반을 닦은 고귀함이라는 헌사(獻詞)입니다.


한국 기독교 특히 교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주의 신앙계에 있어 소위 세계적으로 성공한 교회 지도자들은 있을망정 한국적 기독교 정신의 고귀한 정점을 이룬 인물이 누가 있을까요? 예컨대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취임해 동안거 백일 동안 연속한 법문으로 ‘선(禪)과 교(敎)를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설명’함으로써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성철(性徹, 1912~1993) 스님과 그의 󰡔백일문답󰡕(1992)에 비견될 한국 기독교의 정수를 집대성한 고전적 설교가 있습니까? 과문한 소견이지만 저는 목사들에게서 그런 사상사적인 설교를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 사상을 우습게 여기는 설교는 많이 들어봤지요.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가르침이 있을 뿐입니다. 검든 희든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목사는 목회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규모가 커지면 신학이나 영성이나 카리스마는 저절로 생긴다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대형교회의 예배당에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군중심리에서 발산되는 감정의 힘과 영적 고양의 분위기를 그 위험성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을 숭배하거나 함몰되지도 않지만 부정하거나 폄훼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런 정서(情緖)를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가집니다. 요컨대 어떤 물건에 긴요한 효용성이 있다면 그 물건은 반드시 그것이 요청되는 곳에 소속돼야하는 것이죠. 조나단 에드워드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정서이지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서가 신앙으로 오해될 때 신앙은 고귀함으로 진전될 수 없고 그 모든 역량은 유치한 자기 확인으로 돌아갑니다. 옛날 제가 청소년 시절 우리 양지면에서는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유치원 원장하고 결혼한 당구장 주인’이라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명성교회 세습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세상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아버지나 아들이나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참 그럴듯한 말을 많이 잘 합니다. 그러나 말마다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찌질 합니다. 겉과 속이 양심적으로 투명하고 사심(私心)이 없고 격조가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품격이 없고 말마다 떳떳치 못한 변명만을 늘어놓으니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비겁하고 비루하다 이 말입니다. 그들은 기독교계와 사회지성계 전체를 어리석은 바보쯤 여기는지 자기들의 알량한 말재간으로 교묘하게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만인지 어리석음인지, 이게 그들 목회의 비결인 셈이죠. 말하자면 때리지도 않았는데 맞은 척 언구럭을 떨면서 엄살 부리며 동정심 유발하기! 그러나 그건 욕망을 포기 못하는 자의 미성숙함에서 나오는 비루한 태도일 뿐입니다.


목사는 세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첫째 설교 준비. 둘째 짐 쌀 준비. 셋째 죽을 준비. 이것들은 순서적입니다. 설교 때문에 짐을 싸고 죽을 준비가 됐느냐 입니다. 제가 그럴 준비를 갖췄다는 허영이 아니라, 도무지 왜 신학을 하고 목사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겁니다. 명성교회에는 제가 알기로 김삼환, 김하나 부자 목사 말고도 목사가 수십은 더 넘을 것입니다. 목사가 수십이 넘으면 전도사는 또 얼마일까요? 그런데 누구하나 그 비루하고 비겁함을 질타하고 지적하는 설교를 하는 목사도 없고, 그 일로 짐 싸는 전도사도 없으니, 더구나 죽을 준비라는 건 얼마나 심한 과장이겠습니까. 이것이 사람들이 탄식하는 ‘한국교회에는 자정능력이 없다’는 말의 현실입니다.


만일 명성교회의 전체 목사들이 부자세습에 반대해 일괄사퇴를 선언한다면? 전도사들이 명성교회와 같은 세습교회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그래도 그들이 욕망을 포기할리야 없겠지만,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살아있고 자정능력이 있는 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김삼환 목사 부자만 탓할 일도 아닐뿐더러 바로 그런 이유로 김삼환, 김하나 부자야말로 한국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선진들 앞에 대역죄인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서넛이 아니면, 그들이 곧 종이 임금된 것이 아니면,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이 아니면,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이 아니면,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 아니면, 성서는 더 이상 현실적 대상을 잃은 고문서(古文書)에 불과한 것입니다.


●궁상과 청승으로서의 신학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자에겐 하나님이 없습니다(잠 1:7). 입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들먹이겠지만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막무가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씀한 ‘예언하는 자의 영이 예언 하는 자의 제재를 받는다’(고전 14:37)는 진리의 법칙을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법(法)이 없고 격(格)이 없다는 말이죠? 왜 그럴까요? 졸부(猝富)의 성공이란 본래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쯤은 거짓말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측이 가능했죠. 과연 김삼환 목사 같이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거리를 다 갖춘 위인이 세습의 욕망과 갈망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비루한 사람은 절대 자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라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지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검증을 해보겠습니다.


세습 문제가 불거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말을 바꾸더니 부자지간에 번차례로 공을 주거니 받거니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도 안 통할 때쯤 아버지는 노회를 불법적으로 장악해 거의 깡패처럼 세습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킵니다. 아들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하셨다는데….’ 이런 식으로 딴전을 피우다가 돌연 아빠에게로 달려가서 담임목사 취임을 해버린 것입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처다 보듯이 모두가 이 어처구니없는 부자의 행태에 ‘어이가 없네’하면서 혀를 차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쯤 명성교회의 장로라는 사람이 이런 대단히 은혜로운 말을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세습)은 끝났으니 그만 좀 비난해 달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다.” 말하자면 이게 그들의 신학입니다. 어차피 세습은 완료됐으니 이제 그가 잘 맡아서 잘 해먹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교회가 이 일로 비난받고 욕을 먹으면 예수님이 슬퍼하신다. 그런데 슬퍼하는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신다’고 했습니다. 묻겠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파티마의 성모상도 아닌데 어디에서 어떻게 눈물을 흘리신단 말일까요? 설마 저 우주공간 어디 달나라의 계수나무 뒤에서라도 인간 세상과 명성교회를 내려다보시며 울고 있다는 말인가요?


말하자면 이런 게 명성교회의 신학이고 설교인 셈입니다. 한마디로 궁상이고 청승입니다. 이런 궁상과 청승으로 지난 수십 년을 신학적으로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 센티멘탈의 요술을 부려왔던 것입니다. 지나치다고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비신학적인 요술의 말들은 김삼환 목사의 거의 모든 설교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놀라운 것은 그런 설교와 그럼에도 그에게 아멘으로 쏟아지는 성도들의 존경과 찬사가 아닙니다. 누가 아니라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꿀 먹은 벙어리 형상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동료에게서조차 하나의 실수라도 발견되면 아주 사람을 매장시킬듯이 물고 늘어지곤 하는 정통 감별사들조차 이런 비신학의 성공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꿀을 먹었기 때문일까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몰려드는 법’(마 24:28)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딱 말기적(末期的) 현상이 나타나는 곳에는 딱 거기에 적합하여 말기(末期)를 부추기고 말기(末期)에 협력하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오만하고 무능한 대통령의 측근들이 그렇듯. 교회의 쇠퇴, 자정능력의 상실이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성공한 찌질이들의 어쩔 수 없는 비루함일 뿐. 말세의 현저함이란 다 이렇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물어보지요.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자기자신(自己自身)이 된다는 것


모든 고등종교의 가르침이 동일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 역시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말은 본래 성경에 없습니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런 말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의 근본이다. 왜 한 영혼이라고 했는가? 개인이 중요하지만 개인 중에도 그의 본질입니다. 개인이 천하의 근본인 것처럼 개인의 근본은 마음(영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개인의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하나님의 관심은 본질, 곧 영혼에 있으므로 나머지는 제멋대로 내버려두십니다. 그 내버려두심 때문에 뭣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내버려진 마음, 개인 중에서도 마음, 마음 중에서도 동기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해선 안 되죠. 동기를 알아야한다는 건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반대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본질이란 하나님 자신 곧 무(無)이죠. 하나님이 무(無)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본질이란 무(無), 공허(空虛)란 말입니다. 그 공허에 생명과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죠. 그러므로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을 향한 왜 라는 의문의 정당성을 묻지 않고는 의미 없는 곳에 핀 의미 없는 곰팡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의 정당성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의(義)라는 것, 올바른 것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자기가 자기에게 미쳐서 생긴 집착이 신념화된 것을 의라고 할 수 있는가.(이게 ‘자기 의’죠.) 하물며 그렇게 해서 생긴 자기 의를 타인들에게 짐지울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런 어려운 말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말입니다.


신(神) 앞에 섬으로써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들 자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마음이 되었고 마음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동기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계속 하나님 하나님 하려니, 이름을 잘 지어야지 이게 뭡니까. 옛날 고대에는 기휘(忌諱)라는 게 있었습니다. 임금의 이름이나 부모님의 성명에 들어가 있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헷갈리게 하는 글자를 기피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 님’이라니 도무지 격식이 없는 이름이 아닙니까. 특히 자기 아들을 목사로 만들 요량이었다면 그런 정도는 생각했어야 마땅할 터인데, 무얼 바라겠습니까. 아마 김예수로 짓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존재를 멈추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 일체의 행위를 멈춰야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의롭다(올바르다)고 여기는 선의의 행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교적 행위도 일체 멈추어야합니다. 그게 율법과 제사종교와 구별되는 성육신(成肉身, 강생(降生), incarnatio) 기독교의 핵심이죠. 여기서 행위라는 건 존재 자체, 태도를 말합니다. 멈추는 태도. 이것이 십자가의 자기 죽음이고 부인입니다. 멈추면 멈추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보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 곧 ‘나(Ego)’라는 우상과 하나님을 분별해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자신을 ‘야훼( יהוה)’ 곧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4). 예수님은 이것을 받아서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 나는 ~이다.(I am~)’라는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셨지요.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명백하게 나타낸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Ego)’라는 관념은 이와 같이 나를 속여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에 이르지 못하게도 하지만, 나를 부인해 하나님을 나타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멈췄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와 자세로서 세상을 살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나를 전적으로 맡겼다고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모든 일을 하고 적극적으로 성실히 하되 하나님과 함께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재적 통찰(通察)과 초월적 관조(觀照)의 진지하고 가벼운 태도를 말합니다. 분명히 내재적인데 초월적인 거죠. 거기엔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진리)이 드러나는 데로 초점이 옮겨진 겁니다. 명성교회 세습사태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요? 보이는 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히 11:3). 그 이면(裏面)엔 반드시 그렇게 나타나게 한 하나님이거나 하나님 아닌 뜻(원리)이 있습니다. 지금 명성교회에서 나타난 것은 온통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진지한 내재적 통찰과 가벼운 초월의 한가로움을 ‘거룩한 무관심’이라고 부릅니다.


               일러스트/고은비


●거룩한 무관심


‘주님을 경배한다’는 말을 많이 자주합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이런 말들은 대표적으로 ‘거룩한 무관심’을 선언하는 표현들입니다. 운동선수가 ‘이 영광을 부모님께 돌린다’거나, 가수나 영화배우가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할 때, 그 공로의 칭찬과 성취의 보상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이나 부모님이나 동료들의 것으로 돌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진짜로 그러한 태도여야 할 텐데 이것이 하나의 관용어(慣用語)가 되면 그 말 자체가 그저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며 영광과 경배를 자기에게 되돌리는 기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참 종교인의 기본적인 태도는 진실한 ‘거룩한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손익을 따져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려 그의 의(義, 意) 곧 진리의 품격이 드러나게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무관심의 태도를 일상적으로 견지해야합니다. 그러려면 최우선적으로는 침묵할 줄 알아야겠죠. 변명도 원망도 쓸데없는 해명도 ‘날 좀 알아주쇼’하는 인정의 갈망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면서,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서 왜 가만있질 못하는 걸까요? 왜 남에게 떠벌이고 소송을 거는 겁니까? 왜 동네방네 찾아다니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쇼’라고 남들의 인정을 구걸합니까? 이게 다 피곤하고 번거롭고 비루한 일입니다.


가령 지난 십년간 제가 만일 목회의 불평과 고통을 늘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려했다면 여러분은 아주 제 얼굴만 보아도 질리게 됐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사모의 얼굴은 목사의 이력서’라는 멋진 말을 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목사 자신의 얼굴은 어떨까요? 제 얼굴은 김삼환 목사의 얼굴 같이 늘 배고프고 아픈 사람 같은 형상을 꾸미느라 찡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뒤로는 8백억 원(저는 이 돈을 가늠하지 못합니다!)의 비자금을 돌리고 있으면서, 빈 지게를 지고 머슴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기와 자기 아들은 남들이 안 져도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식으로 엄살을 부리는 것입니다.


도무지 그럴 필요가 뭡니까? 고통과 고난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시요 십자가라면 저는 그걸 입 꾹 다물고 기꺼이 지고 갈 겁니다. 하나님이 내 질고를 풀어주시는지 안 풀어주시는지 그래서 누군가 ‘목회란 게 할 만한 것이냐’ 묻는다면 ‘내가 죽을 때 대답해 주리라. 내가 한번 직접 겪어본 다음에 말해주리라.’ 이런 각오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도 잘 아는 위인들이 고작 염치없이 뻔뻔하게 세습하느라 괴로운 십자가를 가지고 엄살을 부리는 것인가요? 중세의 세습이 성직매매였고 성직매매가 축첩(蓄妾)에서 비롯된 악습인 것을 모르십니까. 그것이 북한 김일성 세습과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는가요? 모름지기 이런 세습은 김하나 목사 하나 뿐이 아닐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에게 자식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각기 한자리씩은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상무에게 삼성을 물려주듯이, 이명박 장로가 이시형에게 다스를 물려주듯이, 최순실이 정유라에게 명마 블라디미르와 스타시아를 선사하듯이. 열심히 빚지고 알바하고 스펙 쌓아 대학 졸업하면 뭐합니까. 강원랜드 신입공채 518명 뽑는데 5,286명 중 10:1의 경쟁률에서 낙하산 청탁 대상이 625명이라면 우리 애들은 이 나라에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대형 교회들이 즐비하면 뭐합니까. 기독교적 제도를 창출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는 요술로 사람을 속이는 언어와 상징의 쇼일 뿐입니다.


●침묵을 지키라


산 속에 들어가 밤을 새워 본 사람은 산의 막대하고 막중한 소리를 경험으로 압니다. 불교애서 이 적막을 대적(大寂)이라 합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니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니 하는 현판을 답니다. 모든 현상의 소리를 잠재운 절대적 원리(原理)의 소리. 거기는 모든 현상의 소리뿐 아리라 현상자체가 적멸(寂滅)된 대적(大寂)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절대적 침묵에도 무게가 있고 소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근원적 소리와 무게가 현상적 소리와 무게를 압도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생긴 이명(耳鳴)으로 24시간을 손오공의 머리에 삼장법사의 쇠테가 조르는 듯한 소리의 고통에 시달리는데 이상하게도 거대한 밤 산중에 홀로 있을 때면 이명이 들리지 않습니다. 인식하질 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런 적막도 아닌 절대의 침묵 가운데 계신 존재입니다. 그의 경륜(經綸, 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iκονομία)는 경제란 말의 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우주를 운용하십니다. 그는 자취도 없고 소리가 없으나 모든 자취와 모든 소리를 주관하시고 주재하십니다. 가령 지금도 저 시베리아 자작나무 원시림의 눈더미 속에 웅크린 채 사색에 잠겨있는 늑대 일가족도 그는 다스리십니다. 아무 표시도 나지 않는 저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도 눈과 비를 내리십니다. 그에게는 쓸데없는 일이 없습니다. 우주는 광활하고 정신이 없이 돌아가지만 그에게는 온전한 지성과 의지가 있어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 가운데 시간과 공간들이 펼쳐지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상상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가장 최종적으로 이러한 침묵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거기에 어떤 행위가 필요한가요. 그대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또한. 우리는 거룩한 무관심의 침묵 가운데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앎으로 나는 먼서 나의 일체의 행위를 멈추었습니다. 부지런히 뭔가를 하는 사람, 일을 만들고 감정을 만들고 갈등을 만드는 사람, 불평과 불만을 생산하는 사람을 그분은 그러한 대적과 적멸의 세계의 침묵으로 잠잠케 하시고, 부드럽게 어루만지시고, 거친 맘을 비둘기 같이 온유하게 다스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가 벗어나듯 벗어나게 치료해 주십니다(시 124:7). 그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어떻게 새가 벗어나는지 모릅니다. 벗어난 순간은 이미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순간이 아닙니다. 그렇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영원합니다! 죽음일지라도 그에게 맡길 수 있는 근거죠. 그러나 나는 여전히 침묵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존재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거룩한 무관심, 고귀한 품격의 근거입니다.


●행위의 기만성


행위란 극도로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겉으론 지극히 좋게 보여도 속은 얼마든지 사악할 수 있고, 겉은 비록 거칠고 우악스러울지라도 속은 얼마든지 선량하고 부드러울 수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명성교회 수십 년에 가장 성공한 가정은 김삼환 씨의 가족이 아닌가요. 심지어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과 업적이란 구체적인 생존(먹고 사는 존재함)에 관한 정신과 영혼의 이해력 문제이지 겉만 봐선 모릅니다. 지나치게 남을 숭상하지도 깎아내리지도 마십시오.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질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를 지는 거라니 맞습니다. 남들은 고작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사람다운 환경과 안전과 안락을 위해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데 그렇게 무겁고 거룩한 수만 명의 십자가를 지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건가요. 저라면 그런 부담스러운 십자가 보다는 산중의 자유와 고독을 택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자기를 임금 삼으려는 열광분자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던 걸 모르는 겁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사람을 높이고 또 거꾸러뜨리는 우를 자주 범합니다. 제가 항상 주장해마지 않는 교우관계의 제1의는 경계를 존중하고 개성을 지켜주는 정중함입니다. 잠언에 보면 ‘조상들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잠 22:28)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게 어찌 토지에 대한 권면일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들 자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개인의 경계를 침범해선 안 됩니다. 내가 무수한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다는 따위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봉건을 소명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왜 우리가 나의 구원을 타인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타인이 내게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그런 과장과 허영의 함정과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립이고 독립이고 만인제사장 곧 기독교적 아나키즘입니다.


●놓이기 위해 애쓰라


다시 한 번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오직 벗어나기 위해 이제부턴 맹세에서 놓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럴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나 무분별한 맹세로 나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타인을 내게 양도하도록 약속을 남발했었나요? 사람들이 내게서 내가 사람들에게서 약속이 배반당하고 맹세가 깨지는 꼴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며 내게 실망했고 내가 사람들을 떠나며 그들에게 실망했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아니다! 맞다! 내가 그랬다! 그것을 인정할 때만 우리는 인간관계의 폭력성에서 벗어나 동일한 우를 범하지 않을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할 것입니다.


이제 나의 행위는 오직 진리와의 일체를 향할 뿐 그런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면 타인에 관해 세간에 퍼진 명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은 행위의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기만성과 부족함을 일깨우는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익을 보려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화하거나 발전하기 위해서라면. 아니 정말로 자기와 성도들을 벗어나고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이것이 인권이죠. 저는 기업이나 이윤의 강화 외에 명성교회와 같은 대형화된 교회의 목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까요? 바벨탑을 쌓은 고대인들의 목적은 한 덩어리로 뭉쳐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는 거였습니다(창 11:4).


제가 가장 화가 나고 동의 할 수 없는 말은 그들이 그래도 한국교회를 위해 지금까지 큰일을 해왔다는 식의 말입니다. 도무지 큰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가시나무가 왕관을 쓰고 나무들 위에 부니는 것처럼 이런저런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쓰고 행한 일들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가령 돈을 많이 쓰는 걸 큰일이라고 말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도무지 하나님께서 세월호에서 스러져간 학생들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희생시켰다는 설교. 박근혜 대통령이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설교가 그들이 말하는 큰일이란 말인가요? 이런 걸 실구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저를 불러 주십시오. 그러면 더 큰일을 말할 테니까.


사도 바울의 본명은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던 용사 사울왕의 이름을 딴 히브리 식 사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진리를 깨우친 다음 그는 큰 사람의 비전을 버리고 바울로 개명(改名)합니다. 이 이름은 헬라말로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격동하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스스로 큰 비루한들이 넘치고 넘칩니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하고 높여주고 떠받들어 모셔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치 독립투사들과 친일파의 역전된 현실처럼 진정 인간의 빛을 밝혀준 숨은 스승들에 대한 지식도 기념도 거짓 큰 자들의 거짓 명성에 가려 빛을 잃고 사장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 기독교 지난 백년에 정말 예언자들이 없었단 말이, 말이 되겠습니까. 지난 인류의 수많은 스승 가운데 누가 진정 지혜의 등불을 밝혔습니까? 그분들이 인류에게 어떤 빛을 주었습니까? 참된 자기를 알고 발견하는 것. 벗어나고 벗어나게 해주는 것. 집착 도구 이용 수단 필요로부터 자립하는 것. 그러한 제도와 세계를 구현해 나가는 것.


각자 우리는 나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탐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제부터의 출발입니다. 마음과 가슴에 근본적 변화를 위해 공부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더 높고 큰 이상에 대한 욕망을 위해 반대로 크기의 현혹과 망상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노력하면서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도 함정이 있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모른 체 무책임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전체를 내가 책임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실현 가능한 접근방법을 다해 모든 고통의 뿌리가 되는 부패와 죄의 죽음에 대해 도전하고 지향해 나가는 것.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 그럴 때 나는 진리의 사람으로 온몸에서 정신의 진동을 발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동굴 속에서 진리를 깨우쳐도 그 소식이 만리(萬里)에 퍼진다는 말처럼. 중보란 무엇인가요? 인류를 위한 기도, 세계를 위한 기도도 4분이면 족합니다. ‘나’라는 인식이 곧 온 세상이며 하나님인 것을 자각한 사람이 그 온 세상(나라는 인식)을 진리의 표상이자 대표로 삼고 나가는 것. 그것이 중보자로서 세상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사랑해서 고쳐나가려는 사람의 고귀하고 품격 있는 자태일 겁니다.


●울타리가 깨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하고 파렴치해진 김삼환, 김하나 부자 세습사태에서 확인되는 교회의 쇠퇴가 의미하는 것은 교회 울타리가 깨졌다는 것일 뿐입니다. 진리가 요청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본질은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났습니다. 명성교회는 실로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바라건대 깨어있는 성도들은 김삼환, 김하나 목사 부자의 망상에서 벗어나십시오. 깨어있는 부목사들과 전도사들은 한 사람의 성도라도 그 비진리의 사원에서 이끌고 나오십시오. 김하나 목사에게 아들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하는 노래가 있던가요? 참 잘 했네요. 아버지로부터 영광스런 세습을 받으셨군요. 그러나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설교는 세습에 대한 비루한 변명이 될 겁니다. 당신의 하는 일을 속히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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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0)


어머니의 마중


아흐레째 일정은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했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솟는 호텔이 있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호텔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빨래 말리는 건조대까지 구비가 된 좋은 숙소였다. 입구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고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성지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한 구수감리교회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주인은 구수교회 권사님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내게 권사님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꿀을 전해주었다. “정말로 좋은 꿀이에요. 걸으면서 드세요.”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권사님이 주신 꿀을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섞어서 마셨다.


걸음을 서둘렀다. 전날 희준 형(兄)이 전화를 해서는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한 터였다. 길을 걷는 동생을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형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백마고지역에서 점심때쯤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옛 다리와 새로 놓은 다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땅이었다. 한탄강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숨은 비경들이 한참 이어졌다. 시간만 된다면 천천히 걸으며 곳곳의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다. 가야할 길이 있고 점심 약속도 있는지라,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야 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도피안사를 거쳐 철원제일교회 앞을 지날 때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형은 일찍 도착을 했던 것이었다. 열하루 일정의 후반부, 그렇지만 걸음을 재촉했다.


철원이면 그래도 익숙한 지명, DMZ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긴 철조망이 도로 양쪽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철조망에는 지뢰가 묻힌 곳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이 땅의 아픔은 그렇게도 길고 질긴 것이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주마간산처럼 지나가는 것이 무척 아쉽게 여겨졌다.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길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기다리는 대신 내가 걷는 길을 짐작하여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니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동행을 했나, 아내가 같이 왔나 짐작이 안 됐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며 보니 어머니였다. 멀리서도 흰 머리가 보였다. 어머니가 형과 동행을 하여 찾아오신 것이었다. 저 앞에 걸어오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솟았다. 내일 모레가 아흔인 어머니가 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마중을 나오실 줄이야.


군에 입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막 자대에 배치를 받은 어느 토요일, 갑자기 내부반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를 온 사람이 있으니 속히 옷을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은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알릴 새가 없었는데 누가 면회를 온 곳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위병소로 갔을 때 저만치 눈에 들어온 사람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큰 형 가족과 함께 면회를 온 것이었다.


그 때도 왈칵 눈물이 솟았었다. 입대하던 날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전라남도 광주, 광주에서 떨어진 송정리, 그곳에서도 한참 떨어진 평동, 어찌 그 외진 곳에 배치 받은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일까.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돌아서는 어머니께 다시는 면회를 오지 마시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면회를 다녀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모금과 노력동원으로 지어진 건물.

전쟁 중 내부는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벽체는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길을 걷는 내가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목사의 어머니로서 가뜩이나 아들과 아들의 목회를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괜한 걱정만 끼치는 일이다 싶었다. 그래도 거리가 저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른 눈물을 삼키고 감정을 추슬렀다.


“애도 아닌데 무슨 마중을 나오세요?” 밝은 웃음으로 어머니와 형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길을 걸었다. 마중이 길었던 만큼 함께 걷는 길도 길었다.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며 젊은 시절 어머니가 남쪽으로 넘어오실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여쭤 들었다. 새댁 시절, 일 년 전 서울로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셨던 어머니, 내려오면서 겪었던 무용담 같은 일들,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어떻게 그런 담력과 용기를 가지셨을까,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어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시고는 한다. 군에 가는 손자에게,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당신의 젊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얼마든지 용기를 내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하시고는 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온 어머니의 마중과,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만나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어디 그런 시간 그런 길이 흔할까, 그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17. 오래 걸으니 http://fzari.com/980 

18. 왜 걸어요 http://fzari.com/981

19. 작은 표지판 http://fzari.com/982 

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23. 이 땅 기우소서! http://fzari.com/98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25. 해안(亥安) http://fzari.com/991 

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34.,거미의 유머 http://fzari.com/1010 

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http://fzari.tistory.com/1013 

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http://fzari.com/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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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목사님 어디쯤이신가요?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 한영순 권사님 댁이 김화 사거립니다. 이 폭염에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김화를 지나면서는 함광복 장로님이 꼭 찾아가기를 권했던 한 권사님을 뵙고 가기로 했다. 김화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점심 무렵,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함 장로님이 권한 찌개 잘한다는 식당이었을까,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그런지 손님이 많아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은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을 찾았고, 마침 보신탕과 삼계탕을 하는 식당을 찾았다. 삼계탕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밥값까지 계산을 했다. 당신과 나이차가 많지 않은 사람이 열하루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얻게 된 용기에 대한 답례였지 싶다.


찌개 잘하는 곳이지 싶은 식당에 손님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점심을 먹은 뒤 한 권사님 댁을 찾아보려 한다고 함 장로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이내 답장이 왔다.


“그 집이 소문이 났나 봐요. 저희가 갈 때도 늘 붐볐습니다. 점심 드시고 한 권사님 만나보세요. 봄에 지나갈 때 행정서사 간판은 내려지고 한영순 문패는 있었으니까 생존해 계신다는 뜻일 텐데~. 그새 혹시?”


식당 주인은 물론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 권사님을 아는 이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화가 박수근 씨의 결혼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던, 순교자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했다. 마침 연세가 지긋한 분이 오래되었지 싶은 가게를 지키고 있어 여쭸더니 다행히도 집의 방향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영순 권사님 댁. 우편함에는 두 분의 이름이 여전히 적혀 있지만 한권사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뒤였다.


맞았다. 집 앞 벽에 걸린 우편함에 한영순·이종녀 두 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마찬가지,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영 아쉬운 걸음, 바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출타했다 돌아오시는 건 아닐까 싶어 현관문 위에 흙으로 지은 제비집도 쳐다보고 길가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참 잘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백발의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시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신다. 이종녀 할머니 되시느냐 여쭸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다.


꼭 찾아뵙기를 원했던 함 장로님의 당부는 물론 오래 전에 있었던 일도 말씀을 드렸다. 단강에서 목회하던 시절, 원주지역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국내 성지순례 길을 나서 철원, 김화 지역을 방문하여 순교하신 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을 제안한 사람도 안내를 맡은 사람도 모두 함 장로님이었다. 그 때 한영순 권사님을 뵙고 권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있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던 이종녀 권사님은 밖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셨다. 땀과 먼지에 젖은 허름한 행색, 조심스러웠지만 거듭되는 권유에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잠깐 기도를 드리는 사이, 권사님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다.


먼저 한영순 권사님의 근황부터 여쭸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다. 2013년 8월,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괜한 걸 여쭤서 죄송해요.” 말씀드리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시는데 목소리가 더없이 낮고 조용하셨다. 이종녀 권사님은 혼자 살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약봉지들, 권사님도 건강이 좋아 보이시지가 않았다.


한영순 권사님의 부인 이종녀 권사님. 말씀을 아끼시는 모습이 오히려 많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이미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싶었다.


권사님께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에 대해서 기억나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지만, 권사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왜 그랬을까, 모두가 지난 일이라는, 더 이상 순교의 의미도 찾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 소중한 이야기를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시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종녀 권사님은 말씀을 아끼시고, 오래 전 한영순 권사님께 들은 이야기는 희미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함광복 장로님이 쓴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라는 책에는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글로, 12명의 순교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함 장로님의 글을 찾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순교자들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도 남기지 않았다. 추가령 열곡대의 바이블루트에서는 12명의 기독교 목회자가 순교했지만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DMZ 순교사는 '꾸며낸 얘기'란 비아냥이 늘 뒤따르고 있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38선 이북에서 일어났고, 전쟁은 공교롭게 그 사건 현장에서 끝났다. 그 자리를 밟고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순교 사건은 이렇게 DMZ 속에 묻혀버렸다.


DMZ의 그 사건이 들먹여질 때마다 나는 큰 눈에 우람한 몸집의 노인 한영순씨(韓英珣..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생각했다. 노인은 학사 4거리에서 그의 고향 금성 가는 길 쪽으로‘한영순 행정서사’ 간판을 내고 20년 째 '반 대서소, 반 농사 일'을 하고 있다. DMZ 넘어 금성까지는 50리. 그곳은 그의 할아버지 한사연(韓士淵)목사의 금성교회와 노목사의 순교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한 목사는 8.15 해방을 71세에 맞았다. 김화 창도 금성 3교회의 감리사를 맡고 있을 때다. 그가 목회인생을 바쳐 온 장단, 평강, 김화, 삭녕, 김화, 금성, 창도, 회양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제 때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는 ‘짚신을 신고 성경과 찬송가를 등에 진 해괴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착의를 달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됐었다. 공산당의 세상이 되자 목사는 다시‘모두 나눠먹기 패’(공산주의)를 거부했다. 이번엔 ‘이중생활을 하는 자들의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목사는 월남하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만 살겠다고 교인을 버릴 순 없다”고 거부했다. 일제 수난기를 살아 온 목사의 교육관은 특이했다. 어느 시대이든 농사꾼과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뜻대로 맏아들 문옥, 둘째 명옥 씨는 농사꾼이 됐다. 그리고 셋째 상옥, 막내 병옥 씨는 세브란스를 나와 각각 창도와 통구에서 내과의로 개업해 있었다. 그들도 부친의 뜻에 따라 월남하지 않았다.


1950년 6월 24일 늦은 밤, 38선을 향해 탱크와 대포를 싣고 부산히 내려가던 금강산 전철의 수송작전은 이미 끝났다. 전쟁 전야의 금성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 금성교회 목사관을 두드렸다. 그는 “회의가 있다”며 잠자리에 든 한 목사를 깨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일요일인 이튿날 금성교회의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영순 씨는 한목사의 둘째아들인 명옥 씨의 아들. 김화고급중학교에 다니던 영순 씨는 그해 7월말쯤 전선에 동원되기 위해 김화인민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아놓고 있었다. 우연히 김화정치보위부 울타리를 지나가다가 할아버지 한 목사를 만났다. 우람한 체격의 백발노인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 함께 동아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영순아, 네가 증인이다. 증인이 돼야한다!”


한 권사님 댁 마당에 핀 밤꽃. 순교의 향기를 밤꽃에 비길까만 점점 우리는 그 향기를 잊어가고 있지 싶다.


한 목사의 가계는 철저히 유린됐다. 맏아들은 김화 생창굴 속에서 폭사 당했으며, 의사인 셋째 상옥은 원산으로 끌려갔다. 역시 의사인 막내는 김화 쑥고개 칠성정에서 총살당했다. 해주교회 사모로 시집간 외동딸 만옥은 행방불명됐다. 둘째아들 명옥만 월남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금성이 고향인 사람들의 연말모임에서 영순 씨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신시옥(작고)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한 목사는 원산 앞바다에서 4명씩 철사줄에 묶여 수장됐다”고 일러줬다. 신 씨는 그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사람이며 그는 그날을 10월 3일로 기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난 94년 여름 북한의 오성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구김화읍 읍내리 민통선 북방의 한 벌판에서 들었다. 영순 씨는 “여기가 보위부자리, 저기가 내가 막내 작은아버지 시신을 묻어 놓고 표식으로 구두 두 짝을 올려놓았던 그 밭…”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그는 “‘네가 증인이 되라’고 한 할아버지의 유언이 가슴에 박힌 커다란 가시 같다”고 말했다. “기막힌 이 사연을 글로 옮길 재주도 없고, 이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는 이도 없다”며 그때 노인은 소년처럼 울었다.


6년이 지난 최근 한영순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늙어 70세 노인이 돼 있었다. 2년 전 병을 얻어 민통선 출입영농도 일부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내게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한 순교자의 유일한 증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말을 그 때처럼 다시 했다.


그의 가슴엔 아직도 그 가시가 박혀 있었다. 변한 건 어눌해진 말투뿐이었다.


12 순교자 가운데 유일하게 서기훈 목사만 순교비가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장흥교회 뒤뜰에 세워져 그의 순교사가 전해지고 있다. 장흥교회는 1920년 장방산 아래 설립된 이래 80년 째 그 자리에서 서있다. 그리고 이웃 한탄강 언덕의 대한수도원은 장흥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지켜봤던 산 증인이다. 그나마 서목사의 순교사가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사연 목사처럼 나머지 11사람은 지금 어느 후손 또는 어느 성도의 가슴에 묻혀 파낼 수 없는 가시가 된 채 DMZ 벌판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바이블루트의 사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감리교회 서부연회 수난사》(윤춘병 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빈칸이 너무 많다. 방승학 목사는 그가 시무했던 교회를 밝히지 못했으며 월정교회에 지석교회에 시무하다 피랍된 김유해 목사와 월정교회 이운성 전도사는 납치일을, 석왕사교회에서 순교한 김축수 목사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유득신 장종식 목사는 시무교회도 납치 또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이 기록의 내역 란은 더욱 불충분하다.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 순교했느냐?”는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기록을 꽤 오래 전에 입수했다. 그리고 원로학자가 못 다 채운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누군가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DMZ 벌판을 구도자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이 한 발짝, 한 발짝씩 DMZ에 다가서며 십자가를 세우던 젊은 목회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했다. 어떤 이는 “내가 맡은 사명이 아니라”고 끝까지 얘기를 듣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함부로 순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노인들에겐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한 번 자세히 얘기해 주겠다”고 하던 노 장로가 문득 생각나 그를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블루트의 그 사건은 이제 더 먼 옛날 얘기가 돼 있었고, 보나마나 "꾸며낸 얘기"라고 비아냥거릴 사람들의 비웃음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 '빈칸'을 채울 그를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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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1)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나는 일찍이 성경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었다. 성경을 자세히 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맛보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언어로 된 성전’, 곧 성경전서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기독교인의 삶의 표준인 성경 말씀을 통해 ‘진리’의 참됨(진)과 ‘착함’(선)을 배웠지만, ‘아름다움’(미)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 하나, ‘진리’는 아름답다. 서구 철학이 말한 진선미(眞善美)의 구도가 인간의 지성, 의지, 감정(심미성)의 조화를 목표한 것이라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시의 문장으로 지어져 예술성을 확장시키는 구약의 지혜서는 간결미, 상징적인 언어의 모호함과 함축미의 결정체다. 글의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현실의 사건들이 어울리는 그곳에 진리의 현실성과 예술성이 교차한다.


《모비딕》의 작가 허멘 멜빌은 전도서를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세대가 가고 오며 위대한 작가들은 성경의 진리와 그 진리를 담아낸 언어로 지어진 성전의 문학적인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오히려 구도자의 삶을 살아갈 신앙인들은 관심 없다. 무관심이 무지를 낳은 것일까. 필요한 성경구절을 뽑아 ‘주문’처럼 외우며 이용하는 것은 능숙하다. 그러나 총 66권 성경전서의 한권 한권의 영감 받은 말씀이 왜 그 순서에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는 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것은 명확한데, 왜 어떤 것은 모호하여 말의 숲을 헤매게 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궁금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거룩한 말씀 안에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질문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불신을 낳을 것이라는 자발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앙공동체가 가하는 무언의 억압 때문이었을까? 각설하고 왜 전도서는 진실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전도서를 대표하는 말, ‘헤벨’(한숨, 호흡, 헛됨, 허무, 덧없음, 무의미, 부조리, 모순)에서 찾았다.



코헬렛(전도자)은 갖가지 인생살이의 현실, 역설과 모순, 온갖 부조리를 한 마디로 발설했다. 모든 것은 ‘헤벨’이다(1:2). 단 한가지로 응축시켜 종합하기 어려운 총천연색의 현실은 어제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코헬렛은 의미 있는 것을 다루지 않고 그 반대의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들을 말해야 했을까. 인생의 변덕스러움과 부조리를 전부 이해할 수 없어서 지혜 선생 코헬렛은(12:9-12) 해 아래 모든 것은 ‘모순덩어리’(1:2; 12:8; “헛되고 헛되다”, 개역개정)라고 했다. 이 때문에 코헬렛의 지혜 말씀은 질문을 반기지 않는 종래의 신학과 신앙에 익숙해진 우리를 낯선 해석의 장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자주 ‘전제된’ 신앙과 신학의 울타리에서 질문하기를 꺼렸지만, 코헬렛은 인생의 너절함과 모순적인 현실을 묻고 발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서 그는 허점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내 인생에 깊이 들어와 삶은 ‘덧없으니’(헤벨) 먹고, 마시고, 노동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거듭거듭 당부한다(2:24-26; 3:12-13, 21-22; 5:18-20; 8:15; 9:7-10; 11:7-10). 이것은 삶의 즐거움으로의 부름이요, 때때로 의미 없고 너절한 일상의 반복도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는 역설이다. 코헬렛은 대중에게 환호 받는 위대한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마시는 일상을 가치 있게 여겼다. 삶의 위대함은 도달하기 어려운 무엇을 성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담백하게 찾아든 기쁨 때문이리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외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다. 그러나 극도로 심화된 빈부 격차와 특권화 된 계층을 위해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많은 이들을 불안과 박탈감으로 밀어 넣는다. 이럴 때 코헬렛이 발설한 모든 것이 ‘모순덩어리’라는 ‘헤벨’판단은 가장 적실성 있는 시대의 외침이다. 이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헤벨’이 발설되는 곳에서, 그러면 진짜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도록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전도서는 모든 것을 다 잃고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완고한 현실에 직면해야 할 근거와 가치를 마련해 준다.


전도서는 현실의 부조리에 회피와 방관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상상을 하도록 끌어들인다. 때문에 자본과 성공을 위대한 성취로 받드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는다면, 거기에 생명이 솟는다. 거기에 설령 슬픔과 비애가 머문다할지라도 삶의 진실을 배울 기회가 허락된다. 성취감 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다. 욕망의 성취가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성취감은 잠깐이다. 도리어 ‘허무’(헤벨)가 엄습해 오기도 하니까. 모순, 허무, 부조리의 세상에서 내 안의 자유와 진실함을 끌어내는 순간 절망은 사라지고 삶의 기쁨이 샘솟는다.


그러하여 세상 모든 것을 ‘모순덩어리’(1:2; 12:8, ‘하벨 하발림’)라고 표현한 한 마디 코헬렛의 말(1:1). 함축의 극치를 보여준 이 말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언어로 내게 왔다. 지나친 확신과 흥분에 찬 말이 아니어서, 위대함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어서 진실하다.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는 말이어서,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아 현재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말이어서, 그리고 모호해서 아름답다. 해 아래 모든 일은 ‘수수께끼’(헤벨)어서 인간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니 얼마나 진실한가. 이보다 더 진실할 수 있을까.


늦가을, 독서와 사색을 위해 좋은 계절이다.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전도서에서 ‘모순덩어리’ 인생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떤가.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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