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말아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밑 빠진 둑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탓이 어디 있다고 보느냐?” 


“그야, 있다면 저한테 있겠지요.” 


“옳은 말이다만, 정직한 대답은 아니구나.” 


“……” 


“탓이 너한테 있다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네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밑 빠진 독 같아서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군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사랑받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탓’이 너한테 있다는 말이 옳다고 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힘들지요?” 


“너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이 힘든 것이다.”

“예?”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주거나 누가 누구한테서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런 사랑을 누구에게 주고 또 받으려 하니, 그것은 마치 사람이 땅을 어깨에 메고 다니려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힘들지 않겠느냐? 하면 할수록 힘들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루아침에 사랑을 깨칠 수 있겠느냐? 조급하게 굴지 말아라, 지금 잘하고 있다.” 


“……” 


“봄이 되면 땅이 새싹을 땅거죽 위로 밀어올리느냐?” 


“그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땅이 없으면 어찌 새싹이 돋겠습니까?”


“사랑이 그와 같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이 사랑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는 하겠습니다만,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다지 않았느냐? 

하늘이 모든 것을 덮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바꿔놓거나 젖혀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하늘과 같다. 

땅이 모든 것을 싣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싫어하거나 밀쳐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땅과 같다. 

해와 달이 모든 것을 비춘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등지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일월과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그를 덮어주고 실어주고 감싸주어야 합니까?” 


“전에 내가 들려준 ‘집 떠난 아들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둘째 아들이 아비의 집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의 가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또한 그의 귀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집 떠난 아들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아들 곁에 있었다. 만약에 아버지가 억지로 아들을 집에 붙잡아두거나 아들을 따라서 도시로 갔다면, 그렇게 해서 아들을 자기 곁에 두거나 아들 곁에 있기를 고집했다면, 그것은 아들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요, 따라서 아들은 끝내 귀향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 누가 네 눈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기억해 두거라, 그는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갈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버지 품 아닌 데가 없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걷는 길은 짧게 보면 출가행(出家行) 또는 귀가행(歸家行)으로 두 길이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그러나 길게 보면 출가는 귀가의 씨앗이요 귀가는 출가의 열매일 뿐이고 따라서 모든 길이 결국 귀로(歸路)인 것이다.” 


“……”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무 바라는 것도 없이 그와 함께 있어라, 

거듭 말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곁에 없는 듯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땅이 초목을, 일월이 만물을 대하듯이 그렇게,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이아무개 지음, 『지금도 쓸쓸하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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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경장(解弦更張)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일생을 닮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이라지 않던가?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얼굴 하나 보러 왔지,/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우리 삶이지.” 요즘 들어 함석헌 선생의 시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삶이 부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살아오는 동안 마주쳤던 그 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맑고 고운 얼굴, 따뜻하고 고요한 얼굴, 수심 가득한 얼굴, 비굴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독기 어린 얼굴…. 그러다가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아뜩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걷다가 창문에 얼비친 자기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얼굴을 ‘얼의 골짜기’라고 설명한 분도 계시지만, 우리 얼굴은 정확하게 우리 내면을 반영한다. 옛날 초상화가들은 대상의 외모만 그린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풍경까지도 그리려 했다 한다. 전신사조(傳神寫照)가 그것이다.


말이 장황해졌지만 내게도 아름다운 얼굴이 한 분 계시다. 민영진 박사님(이하 민영진)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6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 얼굴은 내게 시종 맑고 환하게 기억된다. 민영진은 학문의 즐거움과 엄정함을 가르치면서도, 학생들로부터도 배우려는 태도를 시종 견지하신다. 그런 학생 정신이야말로 그 얼굴에 깃든 맑음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몰강스러운 세태조차 민영진을 후락(朽落)의 자리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열정 따위는 시드럭부드럭 스러질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표현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신 듯하다.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언어에 예민하였기에, 그 여정이 시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은 일상적인 언어를 재배치하여 놀라운 이미지와 의미의 세계를 드러낸다. 언어의 올가미로 영원을 잡아채는 것, 바로 그것이 시적 순간이다.


민영진의 시는 과잉을 모른다. 놀랍고 기발한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심상에 떠오르는 것들을 관념으로 비틀거나 베일로 가리지 않고 직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하여 나이브하지 않다. 그 언어는 정갈하고 고요하다. 성품이 시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에게 시는 삶의 진실과 진정을 드러내는 통로이고, 삶은 시의 자양분이 된다. 지금 민영진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일상의 성스러움, 성경, 언어 등이다.




민영진의 삶은 아내인 김명현과 함께 빚어온 작품이다. 그에게 아내는 “하나님의 숨/흙에 닿아 한 점 혈육/우주 바꾸고 몸 바꾸어”(<만물의 어머니> 중에서) 나타난 존재이다.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민영진은 기꺼움과 고마움으로 돌아본다. 유학생활 중에 잃었던 태중의 아기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그 둘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정서적 밑절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일어날 법한 소소한 일상을 엿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따스한 정과 유머 때문이다. 깔끔한 아내와 털털한 남편, 추위 타는 남편과 더위가 싫은 아내, 사랑의 표현을 갈구하는 아내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늘 티격태격한다. 손톱 발톱을 깎다가 궤도를 이탈한 녀석 때문에 방청소를 하던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 한밤중에 소변을 보고 변기 깔개를 내려놓지 않았다가 타박을 당할 때면 남편은 애꿎은 친구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여보, 당신도 알지 그 친구,

거 왜 가끔 그 모임에 나오는 그 키 큰 친구

요즘, 손톱 발톱이 다 빠졌대

면역력 결핍증이라나 뭐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 멀쩡했잖아,

손톱 발톱이 없으니까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 구실을 못하고

폐인(廢人) 같아 보여

- <손톱 발톱> 중에서


여보, 당신, 내 친구 김 아무개 알지?

비만이라고 걱정하던

그 친구 요즘 소변을 못 본대

터질 듯 마려운데 안 나온다나?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지가 다 젖어있다나 뭐라더라?

- <쉬> 중에서


나이 듦의 애잔함이 능청스러움과 버무려져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일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장성한 자식들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그 놀라운 손님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자못 따스하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신비이다. 손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우리에게 보내주신/한 편의 시(詩)”(<손자>)이고, 손녀는 “당신 품에 안고 있던 딸/예쁘게 키우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존재(<편지>)이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태에서 태어난 거룩하고 신비한 존재(<아이들아>)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신비함과 거룩함을 가리키는 징표로 우리 가운데 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안에서라면 늙어감조차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회한조차 없을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을 한껏 살아내기는 했지만, 어떤 일도 완전할 수는 없기에, 못다 한 일에 대한 회한이 그림자처럼 영혼에 드리우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은 맡겨진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하나님이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익숙했던 모국어가 서툴러지고, 그 때문에 메시지를 적절한 언어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청중들에게 익숙한 구문론이나 문법을 지킬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음과 하기 싫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바장이다가 그는 자신이 “늘 모국어를 배반하는 설교”를 해왔다고 자책한다(<날 건드리더라>). 짐짓 해보는 겸양의 말이 아니라, 준엄한 자기 성찰에서 빚어진 말이다.


그는 “광야의 포효(咆哮)”가 되지 못하고, 볼모로 잡혀온 이후부터 “침묵한 덕분에/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했”(<볼모>)다고 말한다. 민영진은 ‘그래도 이만하면 잘 해온 것 아닌가’ 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 자신의 허물을 폭로한다. 그는 “번역자는/오늘도/의미의 바다를 표류한다”(<표류>)고 노래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 심연을 드러낼 적절한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좌절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막막함을 견디며 그는 살아왔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떠날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산다. 인생의 마지막 날은 유예된 집행일 뿐, 그날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울 때는 울면서 왔었습니다만

돌아가는 날은

당신을 부르며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오라 하실 때

쇠약해진 이 몸 당신 품에 안기어

깊은 잠, 푹 들게 하여 주십시오

- <새 하늘, 새 땅> 중에서


시인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것들임을 절감하며 만물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식물, 동물, 바위, 흙과의 대화를 꿈꾸는 것이다. 우주의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처럼 그는 삼라만상에 빼곡히 적힌 글을 해독하고 싶어 한다(<사파리>). 그것은 인간의 오염된 언어 혹은 분절된 언어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어 너머의 언어가 필요하다. 구상 시인은 마음의 눈만 뜬다면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베란다의 봄 국화가 시든 화분에/제풀에 돋아난 애기똥풀이나/그 옆 수챗구멍 질척한 쇠그물에/오물거리는 새끼 지렁이를 보려므나!//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고 노래했다(<마음의 눈만 뜬다면>). 민영진이 당도한 세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그에게 세계는 신비의 정원이다. 마음의 눈이 열리자 늘 밥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이 희생제물임을 깨닫게 된다(<나물>). 몸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을 이루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물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호명 행위를 통해 그 나물들은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때가 되면 피어났다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스러지는 야생화 역시 그 생명 세계의 일원이다. “부레옥잠화, 금낭화, 물봉선화, 모싯대 꽃, 노루귀꽃, 등(燈)꽃….” 낯설기는 해도 그 귀한 야생화가 그곳에 있기에 세상이 온전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시인은 은근한 소망을 피력한다. “구름패랭이, 꿩의비름, 말나리 꽃, 뻐국나리, 솔나리, 금꿩의 다리, 천일홍(天日紅)…/내 이름도 너희들 사이 어디쯤에 넣어볼까/다시 태어나는 날, 한번쯤은/너희들과 함께 야생초이고 싶다”(<야생화>).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고쳐 맨다는 뜻이다. 시와 더불어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작(詩作)은 그에게 다른 중요한 일들 사이에 부룩 박은 또 다른 일이 아니라, 성서신학자이자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의 삶의 여정 끝에 당도한 세계이다. 하이데거도 생의 말년에 시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합리적 언어 혹은 학문적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오직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신비한 세계가 그의 시를 통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은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상투적인 종교 언어에 식상한 이들의 눈이 민영진의 시를 통해 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 한희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http://fzari.tistory.com/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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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1968년에 결혼한 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둘만 있어도 깔깔대며 잘 웃는다. 우리 부부의 웃음 묻은 이야기를 가끔씩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글로 써서 책을 내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그동안 『민영진 어록』을 발표하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흠이 될지 욕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요 나의 사랑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냥 웃음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44년생이고 그이는 40년생이니 나는 그이보다 네 살이나 더 어리다. 결혼 후, 첫 새해를 맞아 남편은 갓 결혼한 새댁을 어른들께 인사시키고 싶었나보다. 어른들께 세배를 간다기에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차려 입고 거기에 걸맞도록 머리를 위로 올리는 업스타일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이는 동안이고 날씬해서 어리게 보였고 나는 살이 통통(?)해서인지 더 늙게 보였나 보다. 택시기사가 나보고 누나냐고 묻는 게 아닌가! 난 너무 당황하고 화나고 기분이 안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내가 간 빼 놓고 살아서 아마 늙어졌나보다며 이제부터는 당신이 간 빼 놓고 살라고 명령(?) 하였다. 그랬더니 그이 하는 말 “지금 누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우리가 이 다음에 더 늙게 되면 제자들이 와서 “민 선생님, 어머님이 꽤 젊으시네요.” 할 때가 올 거란다. 그 후 20년이 지난 후부터 그이의 머리에는 은가루가 해를 더해갈수록 자꾸 자꾸 많이 뿌려진다. 난 너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절대 염색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은 머리가 희어갈수록 멋도 더해진다고 아주 근사하다고 속삭여준다. 바로 로맨스 그레이 그 자체라고.


그이는 한복 입기를 즐겨 해서 신정이면 두 주간을 거의 한복을 입는다. 교회 갈 때도 마찬가지고, 어느 주일날 그이가 한복을 입으니 나도 한복을 입었다. 예배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힘들게 한복 입었는데 그냥 집으로 가기는 아까우니 근사한데 가서 커피라도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어느 고급 호텔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사방을 보니 선보는 팀들이 많았다. 수상한 관계의 남녀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하고 물었다. 그이의 말 “목사와 여신도 사이로 보겠지.”


《지구별에서 노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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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관계 지향적인 공감능력을 가리킨다는 말로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여성들은 주체로 살기보다는 남성 중심 사회의 객체처럼 살아왔다. <씨알의 소리> 1978년 5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은 “나야 뭐“였다. 함 선생은 아내 황득순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의 삶을 ‘나야 뭐’라는 말로 요약했다. “먹을거나, 입을거나, 뭣에서나, 자기는 늘 빼놓으면서 늘 하는 말의 첫 머리가 ‘나야 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여인들의 삶이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를 지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말이다.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객체의 자리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주체가 된다는 것이 곧 외로운 단자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주체는 다른 이들과의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한 존재가 아니던가.



김명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주체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공부한 신학을 자양분 삼아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 교회갱신을 위한 헌신, 여성들의 권익과 지도력 개발을 위한 활동에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긴장을 해소시키는 건강한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가정생활이야말로 바깥에서의 활동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묘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속성을 돌봄, 존경, 지식, 책임이라 했다. 김명현 선생님은 그러한 사랑의 좋은 예이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표정과 말 속에 배어있는 남편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와 사랑은 곁에 있는 이들을 가만히 미소 짓게 만든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두 아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은 실답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사는 것은 어쩌면 이 가없는 사랑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어제도 오늘도 마을 어귀를 지키며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맞아주는 품 넓은 느티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민영진 박사님과 함께 걸어온 50년의 세월을 회고하고 또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이 글 모음집에는 배꼽 빠지게 만드는 웃음, 아련한 아픔,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실거린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비근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장엄한 명분을 붙드는 것보다 거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도 일상의 일들 속에서 깃든 하늘나라의 광휘에 주목하시지 않았던가. 코헬렛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이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도서 5:18).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신 그분의 마음에 당도하기까지 몸 성히, 마음 성히, 잘 지내시기를 빌고 또 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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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두어 해 전 감신대 동기들이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남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그날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 그날 우리는 밤이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살아갈수록 모르겠는 것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데 딱히 물어볼 만한 분이 궁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셨고요. 경청과 진솔함이 가장 좋은 대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덤처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감하며 드렸던 마지막 질문은 “그동안 가장 이기기 힘들었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나요?”였습니다. 선생님은 잠깐의 생각 끝에 대답을 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가르치거나 전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인지, 지금도 고민을 합니다.” 세 번이라 하셨던가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적이 ‘겨우’ ‘세 번밖에 없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와락 웃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큰 찔림이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동이 틀 때까지 천사와 씨름을 했던 야곱처럼 평생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하셨구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어깨에 눈길이 갔습니다.



오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쓴 시를 읽습니다. 식물과 곤충과 동물, 온갖 나물과 야생화, 나무와 물과 공기, 심지어는 방사능까지, 그 모든 것을 향해 건네는 언어의 수화(手話)를 지나, 가족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와 축원을 지나, 마침내 <초상(肖像)>에 이르렀을 때, 저의 글 읽기는 점점 더뎌지다가 굳어지다가 마침내는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텅 빈 여물통과 가득 찬 여물통’의 만남을 ‘즐거운 해후’(邂逅)(<범일동 아이>)라 했지만, 그 기가 막힌 역설에도 차마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난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취사장 구정물이 쏟아지는 수챗구멍을 뒤지던 하얄리아 캠프, 기차에서 뛰어내릴 때를 놓쳐 결국은 군수품 도둑이 되고,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했던 통역을 동반한 문초, 그 때 그 일을 성서 번역자로서의 첫 걸음으로 인식하는 모습 앞에서 말씀을 모시는 근원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땅의 숱한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말씀으로 품어 오신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 마음은 말씀의 오지를 향하게 되고, 한국의 영진(泳珍)은 라오스의 영진(永珍), ‘아잔 비엔티나’(Mr. Vientiane)란 빛나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영진>).


‘무덤에서 돋는 연한 풀을 뜯어먹으려고 아무데나 주둥이를 박는’ ‘입이 말은 못해도 포식 기능은 완성한’ 눈 먼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풀 뜯는 설교자>는 영락없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손사래를 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아픈 초상이었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직시하며 한 자 한 자 적는 설교가 얼마나 웅숭깊고 향기로울까 싶은데도 밀려오는 메시지를 도저히 언어로 바꾸지를 못한다며 ‘내 설교는 늘 모국어를 배반한다’(<날 건드리더라>)고 고백할 때, ‘스스로 실성하여 침묵한 덕분에 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한’(<볼모>) 제물(祭物)로 스스로를 자책할 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만나는’(<장수>) 즐거움을 누릴 때, 평생 연구하고 기록해 온 자료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텐데도 저울에 올려놓아도 아무런 무게 없는 입김과 속임수로 돌리며 ‘날 떠난 너 흙과 물에서 노닐다가 문득 바람 속에서 낯익은 먼지 하나 만나거든 옛날 옛적이었다고 해라’(<문패>) 하며 평생의 수고를 흔쾌하게 비울 때, ‘번역은 말씀의 빙산일각(氷山一角)’이어서 ‘의미의 바다를 표류’하지만 ‘이 작업도 힘겨울 때는 당신 품에 안기렵니다’(<생일유감>) 겸허하게 기도할 때, 시(詩) 속에 담긴 선생님은 다른 말로는 대체할 수가 없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을 말씀으로 찾아오신 한 사람을 압니다. 그 분은 말씀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말씀이었습니다. 평생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오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을 봅니다.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삶이 얼마나 지극하고 지순해야 비로소 말씀이 몸을 입는지를 배웁니다. 시(詩)와 삶이 얼마든지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아니 그리 되어야 함을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시는 선생님,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마움이 이리도 큽니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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