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부제(副題)는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다. 읽으니 우선 글이 저자의 인품처럼 잔잔하고 진진하다. 묵직한 중량감이 독서를 차분하게 한다. 인용된 예레미야 시대의 정세와 동요는 화염과 폭풍 같을지라도 그 숨 가쁜 현실을 행간에 묻어둔 채 담백하게 기록된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 내려가는 저자의 말씀을 대하는 진중한 숨결이 느껴진다.

 

실존이 놓인 현실과 더불어 가는 슬픔

 

그것은 우선 겸손한 자세다. 어떤 겸손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腹中)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태(胎)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4,5)”,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니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훨씬, 무한히」, 나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너무나 바쁘고 들떠있는 주변세상의 속력과 속도에 제압당하며 살아가는 세태 속에서, 이런 걸 느끼기도 어렵지만, 드러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저자는 아마 예레미야서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걸 발견한 것 같다. 그래서 그것부터 느끼게 해준다. 복중에 짓기 전에, 태에서 나오기 전에, 열방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첫마디로 지극한 슬픔을 표명한다.

 

그 슬픔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현실과 직면한 민생의 고통과 다가오는 멸망의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와 더불어 있다. 그것은 차분한 사람의 슬픔이고,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다. 그는 세상의 선지자로 나서기 전, 남에게 무언가를 표명하기 전 이런 슬픔의 고백을 품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 풍경은 그래서 읽기도 전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거라고.

 

그러나 독자들이 저자를 따라 하루하루 시간을 들여(그렇게 읽으면 좋겠다) 예레미야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삶과 존재의 신비에 대한 경외와 실존의 고백으로부터 나오는 겸손함과 그러한 자기부인이 주는 뜻밖 은총의 휴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신비일지라도 실존이 놓인 현실과 더불어 가는 슬픔이고, 피치 못하게 선택받은 선지자(先知者)의 슬픔일지라도 자기는 물론 이 세상 전체를 부인함으로써 영생을 따라가는 은총의 과정이다.(자기를 줌〔버림〕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가능의 영역에서 가능한 꿈과 비전으로 우리들의 행복한 세상을 건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 비현실의 현실을, 그러나 그런 것이 없을지라도 가능하고 소멸되지 않는 소망의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의 양식(성만찬, The Holy Communion)일 것이다.

 

 

하나님은 달변가를 원하시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저자의 손가락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관심이 늘 이 세상의 중심보다 구석진 곳, 외진 곳, 그늘진 곳, 그래서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외면당하는 곳,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무명의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고 가리켜준다.(「하나님의 방법」) 그것은 무명(無名)이나 유명(有明), 예레미야가 그랬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자명하다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굳이 손가락까지 짚어가며 읽음으로써 새롭게 발견하다니. 마치 본래 있던 대륙을 발견하고 그것을 ‘신대륙’이라 부른 사람만큼이나 신기하다.

 

저자는 그 항목의 결미에 이렇게 쓴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달변가를 원하시지 않는다. 어눌하더라도 당신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신다.(「나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43쪽) 그러므로 그것은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을 통해 용기를 낸 겸손한 사람의 의연하고 결의에 찬 선언이다.

 

예레미야가 살아간 시대에 예레미야는 지금 우리가 읽는 예레미야가 아니었다. 당대에 그는 예언자로 인정되지 못했다. 경멸받고 무시당했으며 욕설과 조롱과 투옥과 추방과 피체를 당해야 했고 원치 않는 곳(이집트)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예언의 말씀을 업으로 삼아 삶을 살아갔다. 그의 전 청춘을 다 바쳐서. 나라가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파국으로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의 예언서처럼 예레미야와 함께 우는 여정도 거기서 끝난다. 예레미야가 우리가 읽는 예레미야가 아니듯이, 예레미야와 함께 우는 독서 역시 항용 우리의 독서(우리 시대의 설교)와 같지 않는 점이 비상하다. 그 비상함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소망을 부풀리거나 억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일체의 욕망과 야망과 소망과 아첨을 거부하는 예언자의 예언자적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하나 결연하고 피동적이나 단호하게 행동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지시해준다.

 

겸손과 결의와 절제의 굳셈

 

설교를 업으로 삼고 사는 목사로서 동시대의 설교에 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지만 그 말은 다른 의미론 모두가 나의 경쟁자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때론 선의의, 때론 불만족과 저항과 대립의 경쟁이기도 하다. 모두가 선의의 경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교도 그 무엇도 선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하지만 설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바람직하다는 것보다 그저 어떤 사람이냐 정도의 무심함이 필요하다. 무심함이지만 과학성이 있는 무심함.

 

모두들 목표와 비전과 소망과 꿈과 야망의 구획된 프로젝트 안에서 발버둥치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한 총체적 불만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바로 그런 분주함과 분요함으로부터 지극한 샬롬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전파해야할 교회와 교회의 설교가 그러한 불만족의 표상이 되었다. 예레미야가 나와도 열 명, 스무 명, 백 명은 나올 법 한. 그러나 저자의 예레미야 읽기는 그러한 불만족에 대한 속 시원한 해법이 아닌 그래서 더욱 불만족스러운 해법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고전적이고 너무나 겸손하고 너무나 정중한 건지도.

 

그러나 바로 그런 겸손과 결의와 절제의 굳셈이 또 다른 섣부른 분요함을 추가하는 설교가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차분함과 고요함의 미덕(美德)을 일깨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심한 듯 치밀한 과학이 들어있는. 저자는 우리(나)로 하여금 예레미야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손가락을 짚어가며 예레미야를 읽는 사람됨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가시덤불과 묵은 땅을 내버려 둔 채 그 위에서 요란하게 믿음의 언구럭만 떨고 있는 것은 혹 아닐까?’(「언구럭을 떨지 말라」) 정말 싸워야할 것을 발견할 때까지, 그리고 정말 싸운다는 건 무엇인지, 저자는 마치 말과 경주하듯 끝까지 겸손과 결의의 손가락을 떼지 않는다.

 

*

일독(一讀)을 권한다. 매 회 분량은 길지 않다. 차분한 독서. 두런두런 들려주는 진진한 음성. 우렁우렁 울리는 마음의 공명. 그리고 예화로 꺼내보는 저자의 추억의 에피소드들 속에는 사람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맛깔스런 이야기와 빛나는 지혜가 담겨 있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저자를 만나면 비전(秘傳)으로 간수해온 오래된 고전의 신선함이랄까 하는 동화적(?) 발견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예레미야와 함께 울다󰡕를 통해 독자들이 동화 속 짤랑 거리는 금화와 같은 순결한 정신의 힘을 만나게 되기를. 여러 번역을 대조하며 짚어가는 저자의 손가락 끝에서 요란한 세상 가운데 본래 있는 평화를 찾아가는 좁은 문을 발견하기를. 깡그리 끔찍한 폐허일지라도, 웅덩이에 빠졌을지라도, 낮과 밤이 자신의 때를 따르는 한, 흔들릴수록 중심에 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기를. 흐르는 강물처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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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썽이며 조심스럽게 지구별을 거니는 사람에게

 

늘 마주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돋우는 디딤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의 틈새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이 시절, 더더욱 이런 사람 하나가 또 다른 삶을 일으킵니다. 목사님 글을 챙겨 읽으면서 마주한 듯 가까운 마음이 일곤 했습니다. 자주 생각을 돋우고 마음결을 벼렸습니다. 이름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운 벗이 보낸 편지를 읽듯, 목사님의 편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아껴 읽었습니다.

 

생명을 우뚝 우뚝 일으키던 ‘손이 아름다운 사람 예수’를 날마다 그리며, ‘물결처럼 가벼우면서도 산맥처럼 무거운 손’을 잡고 살아오신 지난 시간이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일상에 담긴 성스러움, 그늘진 자리,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두지 않는 곳에 먼저 눈길이 미치고, 먼저 뿌린 씨앗이 싹이 나지 않아 다시 뿌리는 ‘움씨’ 같은 심정을 읽었습니다.

 

아픔의 자리에 조심스레 다가서서 손을 내밀고 그곳에 자주 일상을 내려놓는 ‘글썽이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수백 년 고목도 해마다 여리디 여린 새순, 새잎으로 살아가듯 예민한 마음 촉수를 뻗어 아프고 설운 순간들을 고스란히 품고 ‘하루하루 중심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편지를 펴보면서 제가 만났던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전 정읍에 사시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날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멀쩡한 것도 다 내다버리고 허투루 대하는 세태를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물건들을 한 순간에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고약함이 서운하고 마음을 무겁게 했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버림받아 서운한 것들, 쓸모를 찾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을 모으기 시작하셨답니다. 버려진 것이 제자리를 찾는 세상을 두 손으로 손수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거지요. 그리하여 그분은 천덕꾸러기로 나뒹굴던 것들의 쓸모를 찾고 구석구석 이야기를 담아 산자락 아래 작은 놀이공원을 손수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쓸모를 찾았습니다. 날마다 줍고 덧대고 잇고 꿰매고 칠해 눕히고 세우면 그 공간에서 그것들은 나름 쓸모를 찾아 소소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쟁반과 냄비뚜껑이 악기가 되어 무대에 놓이고, 알록달록 색을 칠한 버려졌던 냉장고를 열면 장난감들이 가득합니다. 온갖 세련된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쓸모를 찾아 자리차지를 했습니다. 버려진 동물들도 보듬어 공원 한 쪽에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온갖 것들이 다 제 색과 모양을 찾았습니다. 측은하고 딱한 것들이 살터와 일상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분에게서 글썽이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렇듯 약한 것들을 글썽이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버려진 것에 눈길을 주고 손을 내밀었던 세월이었습니다.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서로를 품고 아우르며 사는 세상

 

다른 한 분은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중국 내몽고 사막에서 나무를 심고 있는 인위쩐이라는 분입니다. 한 행사에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거칠고 모진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을 초록의 땅으로 바꾸려는 사람, 그분은 생명의 흔적도 없는 황량한 죽음의 땅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답니다. 쉼 없이 날마다 먼지바람을 무릅쓰고 사막으로 나갔던 거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한 사람이 어떻게 사막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사막은 어느새 옥수수가 자라고, 수박이 넝쿨을 뻗고, 미루나무 숲에 새들이 날아오고, 동물이 깃드는 생명의 땅이 됐습니다. 날마다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을 줘야 하는 나무만 2만 그루가 넘는다고 합니다. 힘겹게 가녀린 잎을 내민 나무에 그녀는 물동이로 물을 날랐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옆으로 새나가면 아깝고 안타까웠답니다.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눈 닿는 곳마다 초록이 가득한 이 땅이 부러웠고, 동시에 사막의 나무들이 눈물 나도록 측은하다 했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고 자신의 땅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은 ‘날마다 지구에 나무를 심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땅에 붙어있으면 내 나라와 내 집 밖에는 안 보이지만, 시선을 넓혀 하늘에서 보면 지구가 바로 자신의 집이고 오로지 지구만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시작해야 두 번째 사람이 있고 세 번째 사람이 있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나무는 일상이고 평화이고 꿈이었습니다. 막막한 사막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울부짖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변화도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사막에 인위쩐이 아직 초록같이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한결같이 풀씨를 뿌리며 나무를 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막에 나무가 뿌리를 내려 숲의 일상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분에게도 글썽이는 마음, 풀 한 포기를 생명 같이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편지 속에서 간절하게 절망과 두려움의 안대를 벗고 함께 일어서서 어깨동무하고 함께 걷자고 말을 거는 길동무를 보았습니다. 집착하거나 머무르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움직이며 만나는 삶을 마주했습니다. 터무니없이 뒤엉킨 세상, 막막하고 끝 모를 아픔으로 채워진 자리,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안타깝고 참담한 시간 한 복판에서 ‘작고 사소하고 연약한 것들에 눈길을 두며’ 글썽이며 보듬어 안는 뜨거움을 읽었습니다. 목사님은 척박하고 냉담한 시절, ‘좌절과 무기력’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걸어서 길을 내고, 두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세상을 고치는’ 치열하고 뜨거운 마음에서 희망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확성기를 통한 쩌렁한 소리가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건네는 말, 손으로 마음 담아 꾹꾹 눌러쓴 투박한 편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일으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은 상처에도 온 신경과 온 몸이 그곳에 집중되듯, 세상의 중심은 아픔이며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과 서럽고 속상한 아픔의 자리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절망의 동굴에 갇혀 있지 않고 문을 열고 나서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면 세상의 모든 숨 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디딤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온갖 칸막이와 담벼락이 우리를 가두거나 주저앉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눈과 입을 막아온 시간을 아프게 바라봅니다. 스스로 눈멀어 두려워하며 내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서지 못했던 순간들이 가슴을 칩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때로는 스스로 쌓은 허상 같은 벽을 허무는 힘은 작은 틈을 내는 용기, 벽돌 하나 부수는 절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길을 나서면 온 대지가 내 발을 떠받치고 밀어 올리고 힘을 보태 늠름하게 길을 걷게 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작은 돌멩이 하나, 길 옆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빈 가지에 깃든 새 한 마리, 작은 시내,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서로를 품고 아우르며 살게 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는 자리, 삶의 자리, 장소가 되어줍니다. 이렇게 내가 너에게 장소이며 너는 또 다른 누구에게 장소, 사는 자리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 서로에게 흘러 닿습니다. 예전에는 한 아이가 커가는 동안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곳곳 모든 것이 아이에게 장소가 되어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가 뛰어다니고 뒹굴고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만났던 하나하나가 바로 아이 안에 들어찼습니다. 지금은 조각조각 나뉜 캡슐에 들어가 관계 짓는 법을 잊고 삽니다. 이렇듯 장소의 회복은 삶과 생명의 되살림이며, ‘장소를 떠나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당부를 편지에서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을 가로지르는 나직한 노래를 듣습니다. 편지에서 편지로 이어지는 갈피 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말입니다. 바닥까지 내려가 아파하고 견디기 어려운 낯선 상황이 몰아쳐도, 나지막한 가락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생각을 일으킵니다. 사는 동안 삿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순간마다 마음 다해 치열하게 타오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사는 동안 거창한 이름표나 어떤 기념비를 앞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되지 않습니다. 허망한 일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시간과 화해하며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것’, ‘지금에 오롯이 집중하며 날마다 삶의 기적’을 마주하는 것, 그렇게 ‘정신의 현재’를 놓치지 않는 것만이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는 얼굴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얼굴은 시간과 소통해온 기록입니다. 누군가 얼굴은 ‘얼이 들고 나는 굴’이라고 새겼는데, 지금껏 어떤 낯빛을 내보이며 살았는지 거울을 보듯 편지를 읽습니다.

 

‘눈물은 머리의 것, 울음은 온몸의 것’

 

요즘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마을을 보면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얼마나 더 절망하고 나서야 칠흑 같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시냇물 소리를 듣고 숲에서 달려 나온 바람 소리를 듣고 작은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어디쯤 이르러 사람 얼굴 하나하나 알아보고 제 이름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요? 들풀 하나하나에 깃든 생명의 손을 잡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이름을 불러주게 될까요? 언제쯤 사람의 마을은 사람의 노래를 부르며 밥 짓는 냄새 고소한 하루하루를 한가로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목사님 말씀대로 ‘욕망의 벌판을 질주하며 모질게 변해버린 심성’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더더욱 욕심껏 시대를 탐하고 있습니다. 참담한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극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제어장치 없는 폭주기관차입니다.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알지 못하는 속도로만 그 얼굴을 드러냅니다. 얼굴 없는 기계장치 같은 속도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욕망의 표현입니다. 앞지르고 지배하려는 욕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자신을 확장하려는 욕망과 닿아 있습니다. 저마다 겪어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당연하게 만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무시하고 앞지르기를 합니다. 이렇듯 설익는 과정이 이러한 마땅한 과정을 생략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파괴하고 사람다움을 상실하게 합니다.

 

‘영혼을 빼앗긴 멍한 시선’으로 ‘세상의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휘둘리는 현실입니다. ‘적당히 적응하며 살라’는 말에 뭉툭한 생각이 되어 ‘자신을 함부로 하려는 대로 내버려둔’ 시절입니다. 편지를 읽으며 다시 마음을 벼립니다.

 

어떤 시인이 ‘눈물은 머리의 것, 울음은 온몸의 것’이라 했습니다. 바닥에는 몸짓이 있습니다. 온몸으로 있는 그대로 생겨먹은 대로 움직이며 말합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부둥켜안고 몸으로 흐느끼는 울음이 있습니다. ‘글썽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말로 모두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온몸으로 꿈틀거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깨비 같은 시간이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알맹이 같은 치열한 일상이 살아 움직이는 삶 말입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셨듯이 ‘속된 것 따로, 거룩한 것 따로인 가짜’가 아니라 ‘아프고 연약한 것이 중심인 세상’에서 ‘온 몸으로 흔들리며 걷는’ 모습을 봅니다. 역사는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아프게 때로 참담하게 역사를 몸으로 채워갑니다. 앞뒤를 바꾸어 버리고 무엇이 소중한지 보는 눈을 잃어버린 시대는 역사의 땅에 발을 딛지 않고 허망한 미래를 말합니다. 숟가락으로 땅을 헤쳐 보고는 ‘물 없음’ 팻말을 세우고 떠난 사람처럼 말입니다. ‘진창 같은 역사’라도 역사의 참담한 현실에서 비켜서지 않고 정의로운 평화의 역사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우는 우리의 치열한 삶이 ‘의미의 저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끊임없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와 대화하며,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며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김 목사님, 지금을 살아가려 합니다. 거창할 것도 요란할 것도 없는 일상에 치열하려고 합니다. 작은 것들이 어울려 만들어 가는 힘을 믿으며, 나직하게 오롯하게 늠름하게 오로지 지금을 가로질러 가려고 합니다. 차디찬 바닥을 깨고 반란 같은 봄풀이 돋듯 일어서는 꿈을 꿉니다. 몸으로 대답을 준비하여 길을 나섭니다. ‘길은 거울 같은 것이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자신을 길에 비추어 보는 것’이라는 말을 새기면서 식물성 속도로 천천히 숨결과 곁을 헤아리며 걷습니다.

 

김기돈/<작은것이 아름답다> 편집장

 

<희망, 그 빛깔 있는 삶의 몸부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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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교회(2)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 제 1회 임진강 민통선 생태탐방로 트레킹 후기 -

1.

날이 흐렸다. 꾸무럭한 하늘이 먹구름 새로 간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이른 아침 식구들과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일산까지 내처 달리는 동안 비가 많이 내리면 어떻게 할까 의론들을 했다. 자유로에 들어서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급기야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단톡방에 날씨 관계로 9km 코스를 6km로 줄였다는 임진강 트레킹 안내소 측에서 알려온 소식이 떴다. 그래도 뭐 그 정도 걸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다행히 임진각에 도착할 쯤엔 비가 멎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임진각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몇 년 전 가족들과 와 보았다. 망배단이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가 새겨진 노래비며, TV에서 많이 보았던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이 매달린 울타리며 6.25 이후 국군 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임시로 가설됐던 자유의 다리며, 탄환에 벌집이 된 채 멈춰진 녹슨 기차며 경의선 철로 분단선의 자취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몰려들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며 강의 이쪽저쪽에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며 강을 따라 펼쳐진 젖은 산과 논 다락과 마을들의 풍경은 아스라한 게 뭔가 아득한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분단이고 민간인 통제고 너무나 오래 된 나머지 자연의 일부분처럼 이제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돼버린 아득함과 아스라함이다. 철조망을 뺀다면 손에 닿는 거리에 펼쳐진 이 풍경에 이상스러운 점은 없다. 이 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가을 풍경일 뿐이다. 이제 경의선이 복원되고 기차가 운행된다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 남과 북 모든 곳의 역사는?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는 시조도 있지만 의구한 산천이란 눈앞의 이 산천은 아닐 것이다.

 

현재 경의선의 민통선 이남 최북단은 임진강 역이고 민통선 너머에 도라산 역이 있다. 남북한 관계자들의 통행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도라산을 지나면 비무장지대 너머 장단 역, 판문 역, 봉동 역, 손하 역 다음이 개성 역이니 하나, 둘, 셋, 넷 겨우 다섯 정거장이다. 거기서 26개의 역을 지나면 평양이다. 우리는 이 철도를 경의선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평양과 부산을 잇는 철도라 평부선이라 한다. 이름을 뭐라 붙이든 그것이 뭔 상관이겠는가 마는, 이 작은 나라에서 분단이 이렇게 고착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의아스럽다. 작아서 가능한 것인가? 작은 것들의 고집스러움? 모든 이러한 의아스러움들아 빨리빨리 사람들의 뇌리를 흔들어다오.

 

2.

일행은 속속 도착했다. 자유인교회와 지혜교회에서 모인 사람은 35명. 이들이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뭘 시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로선 막막하기도 하거니와 사실 무얼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마 무엇을 안 하자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겠나. 무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안 하자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 무엇을 함이 있다! 있으려나? 도무지 쑥스러워 말장난 같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함과 그렇다고 무엇을 아니 하고자함도 아니라함 사이, 두 부정 새에서 모종의 긍정이 출현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한답시고 길을 나선 것이 무슨 캠페인도 아니고 거창한 프로그램이랄 수도 없다. 그냥 걷는 것뿐이다. 탈(脫)예배당이라든가 탈(脫)교의라든가, 호연지기(浩然之氣)라든가 길 위의 사상, 무위(無爲)의 위(爲)라든가 하는 말들을 불가피하게 갖다 대 봤지만, 그건 그저 끌어다 붙인 것이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길 위의 교회를 위해 그럴듯한 한마디를 내놓음으로써 걸음을 시작해야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또 자라목 들어가듯 난감해지리라. 그러나 사람들을 모아 길 위에 나섰으니 화두(話頭) 비슷한 걸 던져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는 조바심으로 생각해둔 게 있긴 있었다.

 

 

 대충 ‘트레킹이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준비해 두었다. 이 뜬금없는 질문은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누군가의 칼럼에서 표절해온 것이다. 사실 무슨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니라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함에 있어, 메뚜기 한 무리 같은 우리들 모두의 조바심을 덜어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다른 말로 바꿔도 그 말이 그 말인 ‘트레킹이란 무엇인가?’는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걷는다는 건 무엇인가?’ ‘길이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 ‘고독이란 무엇인가?’ 대답이 있을 리 있나. 그러나 이러한 대답 없음으로 모든 의문을 차단하고 그야말로 닥치고 걷는 행위 속에서, 과연 이러한 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거기서 뭔가 스스로 떠오르고 생각하게 되는 의미가 저절로 생겨나리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의 대회당이 아닌 광야의 한적한 길에서. 모든 앎(소유)의 서사가 끊어진 자리에서 태초와 이어지는 시원(始原)의 첩경, 그 가벼움과 신비와 신선한 상쾌함! ‘아! 이런 것도 있네.’라는 식으로. ‘아! 이런 것도 예배가 되네.’ ‘아! 이런 것도 기도가 되네.’ ‘아! 자기 발견이 곧 자기부인이네.’ ‘아! 이런 것을 통해 발견하는 재미가 있네.’ 온갖 ‘맛있군(MSG)’에 중독돼 혀의 감각을 상실해버린 사람이 어쩌다 먹게 돼버린 박한 음식에서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으로 본래 있음으로 충분한 고유의 맛을 느끼고 상실된 미각을 회복하듯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또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는가. 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아부할 대상도 없이 말장난을 해대는 아첨꾼이 되긴 싫다. 하긴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하면 세상 어떤 사람들은 그딴 걸 이제 따라하느냐 웃을지 모르니 더욱 하기 싫어진다. 뭘 해도 새로운 걸 해보려면 이런 주눅이 든다. 무책임한 주변머리 없음이거나 실력 없는 아마추어만 같아 곤혹스럽다. 트레킹이란 고독한 것. 마음속에 있는 것. 나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임진강 올레길 안내소의 안내원이다.

 

3.

안내원들은 대개 초로(初老)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설사’라 소개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이런 해설사들을 볼 수 있다. 능숙하게 일정을 설명하더니 일행을 3열종대로 세우고 인원점검을 한다. 끼어들 여지가 없다.(그래 그냥 가자. 허전하긴 하지만 의미 진지 설명은 여기서 체념이다.) 우리 35명에 개별로 온 부부가 끼어 있었다. 트레킹을 자주 해온 듯 준비된 옷차림이었다.(한 팀이라지만 탐방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사탕을 주었을 때 손을 짧게 내밀어 받으며 고맙다 했을 뿐,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충실했다.) 일행은 가슴에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라 새겨진 노란 천을 두르고 안내원을 따라 민통선 통문으로 갔다. 철조망이 쳐진 울타리 문이 열리고 양쪽에서 소총을 멘 초병 둘이 나타났다. 철모 밑 희멀건 얼굴에 볼 살이 통통하다. 삼엄한 곳을 지키는 군인들인데 웃음이 난다.

 

강변을 따라 타작 철에 내린 비로 하루 드팀 열흘 드팀이 돼 놀고 있는 황금빛 논 다락이 펼쳐져 있다. 강둑을 따라 철조망이 쳐있고 비포장 탐방로가 개설되었다. 순례자들의 발길에 패이고 빗물이 고여 질척인다. 해설사는 앞과 뒤 두 사람이 붙었으나 서로 조율이 잘되지 않았다. 앞선 초로의 남자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다는 데 설명 해주고 싶은 열의가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비가 뿌려 대면서 우산을 펼쳐든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하는 통에 대열은 길게 흩어지고 해설은 무용이 돼버렸다. 모든 게 이렇다. TV 다큐로 보았던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이미 해설은 충분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둘둘 삼삼오오 혹은 혼자. 일행은 추적거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사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통선 내에는 촬영이 금지인데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군인 한사람이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삭제하는 걸 확인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 됐다.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굽니까? 모두의 집중된 궁금증. 접니다, 벌써 삭제했어요. 그래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길 위에서 가끔 상영되는 소동은 오늘도 싱겁게 끝났다. ‘여군(女軍)이 다 지켜봤는가보다’며 함께 웃었다. CCTV는 여군들이 지켜보는 데 가끔 나이든 남자들이 아무생각 없이 소변을 참지 못해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는 민망한 희극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해설사는 여군이 다 보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 그것도 풀 칼라(full color)로! 다시 걷기 시작. 비속의 길은 질척해 일행의 행로는 묵묵해졌다. 마치 이런 순례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다행히 6시간짜리 길을 3시간으로 단축한 트레킹은 적당한 중간에 끝났다.

 

4.

인적 없는 시골 마을 정차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안내원 아저씨는 여기서 문산으로 퇴근한다고 했다. 또 다른 신학대학원 상담 과정을 다닌다는 안내원 여자는 금촌이 집이라 했다. 이성복의 「금촌 가는 길」이라는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건 금촌에 대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니 몰라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따라온 차를 타고 돌아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는지 누군가 짧게나마 설교를 해주셔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설교를 중시하는 풍토로 신앙(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그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여기선 그것 말고는 별 볼일 없다는 말도 된다. 그 말은 다른 데서는 설교(만)를 뺀 나머지들이 설교를 빼고도 내세울만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설교(만)를 중시하는 목회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 바로 그걸 하지 않아보려는 것이다. 설교 말고도 내세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마저도 내세울 게 아니다 싶어서다. 사는 데 필요한 건 설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설교가 사는 일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작금의 설교만 빼고 나머지가 중요해진 교회의 현실이 증거가 아닌가. 그러나 그나마 그것도 시들해져버린 지금 새로운 길은 고전적 설교의 부흥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또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하나. 차라리 이성복의 「금촌가는 길」의 한 구절을 읽어줄까.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깨어나야 푸른 잎사귀가 될 수 있을까

기어이 흔들리려고 나는 全身이 아팠다

어디서 깨어나야 그대 내 잎사귀를 흔들어 줄까

그대 손잡으면 그대 얼굴이 지워지고

가슴으로 걷는 길

얼음장 밑 환한 집들

 

지혜교회 정 전도사가나 대신 나섰다. 독일에서 13년 공부하고 돌아와 가까이 친하고 싶은 목사를 찾다가 발견했다. 비슷한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발견은 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대충 그런 길을 가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 칭찬의 말은 민망했지만(한 팀 아닌 부부가 옆에 있어 신경이 쓰였다. 이 사람들 웃기네! 할까봐.), 고마운 부분이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과 그런 길을 가는 것의 차이는 뭘까? 고독의 차이? 우리가 걷겠다고 나선 길이란 우리가 지나온 저 진흙탕 길이 아니라 본래 이런 길일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고백일지라도. 버스가 도착해 일행은 작은 버스에 꽉 기름을 짜고 들어차 마을길들을 곡예하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임진각으로 돌아갔다. 승차장에 내리자 곧바로 우박과 함께 격렬한 비가 쏟아진다. 우리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지혜교회 교우들은 파주시내로 자유인교회 교우들은 근처 두부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포로 이사 와서 새로 피자집을 연 집사님 댁에 들러 교우들과 이야기 꽂을 피웠다.

 

 

5.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책이 있다. 아는 목사님이 쓰신 전도용 책이다.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곤혹스러운 사람들의 시대에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신에 대한 신앙을 붙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전신이 아플 때가 있다. 무력감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든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난 이미 다 수락했는데 계속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러면 차라리 돈이라도 주시든지. 아니면 사람이라도. 아니, 아니 용기(勇氣)라도.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열심히 함께 걸었던 지혜교회 병관 형님 곁에서 적당히 모른 척 걸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으로 걷는 길, 고독하지만 함께 있어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리하여 대충 그런 길이 아니라 그런 길을 가는.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내달 트레킹 땐 둘러앉아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시켜보고 싶다. 살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말들에 대하여. 우리들 작고 여린 가슴들 속에 하나님으로 깃드신 하나님에 대하여.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어린 생명 다복(多福)을 위하여.

 

*다복이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임신 중이라 약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씩씩하게 건강을 회복해 아기를 잘 보호하고 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1. 교회, 길을 걷다 http://fzari.tistory.com/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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