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7)


종교개혁 500주년에 찬물을 끼얹은

명성교회 세습사태에 직면하여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三患)


오늘 명성교회와 김삼환, 김하나 목사 부자에 대한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이들이 자기들의 입으로 어떤 비난이나 욕도 감당하겠다고 했으니 ‘그래, 그렇다면 내 욕을 한번 먹어봐라’ 하는 뜻으로 일부러 하려고 합니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학술적 견해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는 세 가지 근심거리(삼환)가 있습니다. 첫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목사된 것. 둘째 그 사람이 목회에 성공한 것. 셋째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졸부가 삼가 할 줄 모르고 교계의 원로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 출발과 과정과 성공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성찰할 줄 모르는 일관된 비루함입니다.


제가 알기로 기독교 신앙에 있어 자격을 갖추고 성취를 이루고 스승의 반열에 거론되는 위인들에게 가난도 있고 고난도 있고 박해도 있고 슬픔도 있었지만 비루함이 있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비루함이란 고귀한 품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비루(鄙陋)와 고귀(高貴). 이것이 세속(世俗)의 혼란스런 홍진(紅塵)과 진리(眞理)의 분명한 밝음을 구별하는 척도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다른 게 아니라 세속적 욕망과 갈망에 대한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 염치를 드러낼 때 그가 갑자기 미쳐서 그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색이 드러났다. 그가 본래 그런 위인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한 비루하고 고귀한 태도는 한순간 하나의 사건 속에 갑자기 돌출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래 1백년 역사 동안 한국에 꽃핀 기독교 신앙에 있어 고귀함이란 무엇일까요? 가령 미국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 사상가이자 목사 신학자 원주민 선교사였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를 논할 때 ‘그는 현대 미국의 사상과 감정을 완성했다’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의 신앙적 신학적 고귀함이란 기독교는 물론 미국 사회정신의 뼈대를 이루는 영감과 윤리의 기반을 닦은 고귀함이라는 헌사(獻詞)입니다.


한국 기독교 특히 교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주의 신앙계에 있어 소위 세계적으로 성공한 교회 지도자들은 있을망정 한국적 기독교 정신의 고귀한 정점을 이룬 인물이 누가 있을까요? 예컨대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취임해 동안거 백일 동안 연속한 법문으로 ‘선(禪)과 교(敎)를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설명’함으로써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성철(性徹, 1912~1993) 스님과 그의 󰡔백일문답󰡕(1992)에 비견될 한국 기독교의 정수를 집대성한 고전적 설교가 있습니까? 과문한 소견이지만 저는 목사들에게서 그런 사상사적인 설교를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 사상을 우습게 여기는 설교는 많이 들어봤지요.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가르침이 있을 뿐입니다. 검든 희든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목사는 목회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규모가 커지면 신학이나 영성이나 카리스마는 저절로 생긴다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대형교회의 예배당에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군중심리에서 발산되는 감정의 힘과 영적 고양의 분위기를 그 위험성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을 숭배하거나 함몰되지도 않지만 부정하거나 폄훼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런 정서(情緖)를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가집니다. 요컨대 어떤 물건에 긴요한 효용성이 있다면 그 물건은 반드시 그것이 요청되는 곳에 소속돼야하는 것이죠. 조나단 에드워드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정서이지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서가 신앙으로 오해될 때 신앙은 고귀함으로 진전될 수 없고 그 모든 역량은 유치한 자기 확인으로 돌아갑니다. 옛날 제가 청소년 시절 우리 양지면에서는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유치원 원장하고 결혼한 당구장 주인’이라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명성교회 세습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세상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아버지나 아들이나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참 그럴듯한 말을 많이 잘 합니다. 그러나 말마다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찌질 합니다. 겉과 속이 양심적으로 투명하고 사심(私心)이 없고 격조가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품격이 없고 말마다 떳떳치 못한 변명만을 늘어놓으니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비겁하고 비루하다 이 말입니다. 그들은 기독교계와 사회지성계 전체를 어리석은 바보쯤 여기는지 자기들의 알량한 말재간으로 교묘하게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만인지 어리석음인지, 이게 그들 목회의 비결인 셈이죠. 말하자면 때리지도 않았는데 맞은 척 언구럭을 떨면서 엄살 부리며 동정심 유발하기! 그러나 그건 욕망을 포기 못하는 자의 미성숙함에서 나오는 비루한 태도일 뿐입니다.


목사는 세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첫째 설교 준비. 둘째 짐 쌀 준비. 셋째 죽을 준비. 이것들은 순서적입니다. 설교 때문에 짐을 싸고 죽을 준비가 됐느냐 입니다. 제가 그럴 준비를 갖췄다는 허영이 아니라, 도무지 왜 신학을 하고 목사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겁니다. 명성교회에는 제가 알기로 김삼환, 김하나 부자 목사 말고도 목사가 수십은 더 넘을 것입니다. 목사가 수십이 넘으면 전도사는 또 얼마일까요? 그런데 누구하나 그 비루하고 비겁함을 질타하고 지적하는 설교를 하는 목사도 없고, 그 일로 짐 싸는 전도사도 없으니, 더구나 죽을 준비라는 건 얼마나 심한 과장이겠습니까. 이것이 사람들이 탄식하는 ‘한국교회에는 자정능력이 없다’는 말의 현실입니다.


만일 명성교회의 전체 목사들이 부자세습에 반대해 일괄사퇴를 선언한다면? 전도사들이 명성교회와 같은 세습교회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그래도 그들이 욕망을 포기할리야 없겠지만,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살아있고 자정능력이 있는 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김삼환 목사 부자만 탓할 일도 아닐뿐더러 바로 그런 이유로 김삼환, 김하나 부자야말로 한국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선진들 앞에 대역죄인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서넛이 아니면, 그들이 곧 종이 임금된 것이 아니면,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이 아니면,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이 아니면,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 아니면, 성서는 더 이상 현실적 대상을 잃은 고문서(古文書)에 불과한 것입니다.


●궁상과 청승으로서의 신학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자에겐 하나님이 없습니다(잠 1:7). 입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들먹이겠지만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막무가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씀한 ‘예언하는 자의 영이 예언 하는 자의 제재를 받는다’(고전 14:37)는 진리의 법칙을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법(法)이 없고 격(格)이 없다는 말이죠? 왜 그럴까요? 졸부(猝富)의 성공이란 본래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쯤은 거짓말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측이 가능했죠. 과연 김삼환 목사 같이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거리를 다 갖춘 위인이 세습의 욕망과 갈망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비루한 사람은 절대 자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라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지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검증을 해보겠습니다.


세습 문제가 불거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말을 바꾸더니 부자지간에 번차례로 공을 주거니 받거니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도 안 통할 때쯤 아버지는 노회를 불법적으로 장악해 거의 깡패처럼 세습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킵니다. 아들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하셨다는데….’ 이런 식으로 딴전을 피우다가 돌연 아빠에게로 달려가서 담임목사 취임을 해버린 것입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처다 보듯이 모두가 이 어처구니없는 부자의 행태에 ‘어이가 없네’하면서 혀를 차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쯤 명성교회의 장로라는 사람이 이런 대단히 은혜로운 말을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세습)은 끝났으니 그만 좀 비난해 달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다.” 말하자면 이게 그들의 신학입니다. 어차피 세습은 완료됐으니 이제 그가 잘 맡아서 잘 해먹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교회가 이 일로 비난받고 욕을 먹으면 예수님이 슬퍼하신다. 그런데 슬퍼하는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신다’고 했습니다. 묻겠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파티마의 성모상도 아닌데 어디에서 어떻게 눈물을 흘리신단 말일까요? 설마 저 우주공간 어디 달나라의 계수나무 뒤에서라도 인간 세상과 명성교회를 내려다보시며 울고 있다는 말인가요?


말하자면 이런 게 명성교회의 신학이고 설교인 셈입니다. 한마디로 궁상이고 청승입니다. 이런 궁상과 청승으로 지난 수십 년을 신학적으로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 센티멘탈의 요술을 부려왔던 것입니다. 지나치다고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비신학적인 요술의 말들은 김삼환 목사의 거의 모든 설교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놀라운 것은 그런 설교와 그럼에도 그에게 아멘으로 쏟아지는 성도들의 존경과 찬사가 아닙니다. 누가 아니라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꿀 먹은 벙어리 형상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동료에게서조차 하나의 실수라도 발견되면 아주 사람을 매장시킬듯이 물고 늘어지곤 하는 정통 감별사들조차 이런 비신학의 성공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꿀을 먹었기 때문일까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몰려드는 법’(마 24:28)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딱 말기적(末期的) 현상이 나타나는 곳에는 딱 거기에 적합하여 말기(末期)를 부추기고 말기(末期)에 협력하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오만하고 무능한 대통령의 측근들이 그렇듯. 교회의 쇠퇴, 자정능력의 상실이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성공한 찌질이들의 어쩔 수 없는 비루함일 뿐. 말세의 현저함이란 다 이렇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물어보지요.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자기자신(自己自身)이 된다는 것


모든 고등종교의 가르침이 동일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 역시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말은 본래 성경에 없습니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런 말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의 근본이다. 왜 한 영혼이라고 했는가? 개인이 중요하지만 개인 중에도 그의 본질입니다. 개인이 천하의 근본인 것처럼 개인의 근본은 마음(영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개인의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하나님의 관심은 본질, 곧 영혼에 있으므로 나머지는 제멋대로 내버려두십니다. 그 내버려두심 때문에 뭣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내버려진 마음, 개인 중에서도 마음, 마음 중에서도 동기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해선 안 되죠. 동기를 알아야한다는 건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반대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본질이란 하나님 자신 곧 무(無)이죠. 하나님이 무(無)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본질이란 무(無), 공허(空虛)란 말입니다. 그 공허에 생명과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죠. 그러므로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을 향한 왜 라는 의문의 정당성을 묻지 않고는 의미 없는 곳에 핀 의미 없는 곰팡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의 정당성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의(義)라는 것, 올바른 것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자기가 자기에게 미쳐서 생긴 집착이 신념화된 것을 의라고 할 수 있는가.(이게 ‘자기 의’죠.) 하물며 그렇게 해서 생긴 자기 의를 타인들에게 짐지울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런 어려운 말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말입니다.


신(神) 앞에 섬으로써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들 자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마음이 되었고 마음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동기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계속 하나님 하나님 하려니, 이름을 잘 지어야지 이게 뭡니까. 옛날 고대에는 기휘(忌諱)라는 게 있었습니다. 임금의 이름이나 부모님의 성명에 들어가 있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헷갈리게 하는 글자를 기피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 님’이라니 도무지 격식이 없는 이름이 아닙니까. 특히 자기 아들을 목사로 만들 요량이었다면 그런 정도는 생각했어야 마땅할 터인데, 무얼 바라겠습니까. 아마 김예수로 짓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존재를 멈추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 일체의 행위를 멈춰야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의롭다(올바르다)고 여기는 선의의 행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교적 행위도 일체 멈추어야합니다. 그게 율법과 제사종교와 구별되는 성육신(成肉身, 강생(降生), incarnatio) 기독교의 핵심이죠. 여기서 행위라는 건 존재 자체, 태도를 말합니다. 멈추는 태도. 이것이 십자가의 자기 죽음이고 부인입니다. 멈추면 멈추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보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 곧 ‘나(Ego)’라는 우상과 하나님을 분별해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자신을 ‘야훼( יהוה)’ 곧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4). 예수님은 이것을 받아서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 나는 ~이다.(I am~)’라는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셨지요.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명백하게 나타낸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Ego)’라는 관념은 이와 같이 나를 속여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에 이르지 못하게도 하지만, 나를 부인해 하나님을 나타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멈췄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와 자세로서 세상을 살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나를 전적으로 맡겼다고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모든 일을 하고 적극적으로 성실히 하되 하나님과 함께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재적 통찰(通察)과 초월적 관조(觀照)의 진지하고 가벼운 태도를 말합니다. 분명히 내재적인데 초월적인 거죠. 거기엔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진리)이 드러나는 데로 초점이 옮겨진 겁니다. 명성교회 세습사태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요? 보이는 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히 11:3). 그 이면(裏面)엔 반드시 그렇게 나타나게 한 하나님이거나 하나님 아닌 뜻(원리)이 있습니다. 지금 명성교회에서 나타난 것은 온통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진지한 내재적 통찰과 가벼운 초월의 한가로움을 ‘거룩한 무관심’이라고 부릅니다.


               일러스트/고은비


●거룩한 무관심


‘주님을 경배한다’는 말을 많이 자주합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이런 말들은 대표적으로 ‘거룩한 무관심’을 선언하는 표현들입니다. 운동선수가 ‘이 영광을 부모님께 돌린다’거나, 가수나 영화배우가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할 때, 그 공로의 칭찬과 성취의 보상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이나 부모님이나 동료들의 것으로 돌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진짜로 그러한 태도여야 할 텐데 이것이 하나의 관용어(慣用語)가 되면 그 말 자체가 그저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며 영광과 경배를 자기에게 되돌리는 기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참 종교인의 기본적인 태도는 진실한 ‘거룩한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손익을 따져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려 그의 의(義, 意) 곧 진리의 품격이 드러나게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무관심의 태도를 일상적으로 견지해야합니다. 그러려면 최우선적으로는 침묵할 줄 알아야겠죠. 변명도 원망도 쓸데없는 해명도 ‘날 좀 알아주쇼’하는 인정의 갈망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면서,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서 왜 가만있질 못하는 걸까요? 왜 남에게 떠벌이고 소송을 거는 겁니까? 왜 동네방네 찾아다니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쇼’라고 남들의 인정을 구걸합니까? 이게 다 피곤하고 번거롭고 비루한 일입니다.


가령 지난 십년간 제가 만일 목회의 불평과 고통을 늘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려했다면 여러분은 아주 제 얼굴만 보아도 질리게 됐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사모의 얼굴은 목사의 이력서’라는 멋진 말을 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목사 자신의 얼굴은 어떨까요? 제 얼굴은 김삼환 목사의 얼굴 같이 늘 배고프고 아픈 사람 같은 형상을 꾸미느라 찡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뒤로는 8백억 원(저는 이 돈을 가늠하지 못합니다!)의 비자금을 돌리고 있으면서, 빈 지게를 지고 머슴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기와 자기 아들은 남들이 안 져도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식으로 엄살을 부리는 것입니다.


도무지 그럴 필요가 뭡니까? 고통과 고난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시요 십자가라면 저는 그걸 입 꾹 다물고 기꺼이 지고 갈 겁니다. 하나님이 내 질고를 풀어주시는지 안 풀어주시는지 그래서 누군가 ‘목회란 게 할 만한 것이냐’ 묻는다면 ‘내가 죽을 때 대답해 주리라. 내가 한번 직접 겪어본 다음에 말해주리라.’ 이런 각오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도 잘 아는 위인들이 고작 염치없이 뻔뻔하게 세습하느라 괴로운 십자가를 가지고 엄살을 부리는 것인가요? 중세의 세습이 성직매매였고 성직매매가 축첩(蓄妾)에서 비롯된 악습인 것을 모르십니까. 그것이 북한 김일성 세습과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는가요? 모름지기 이런 세습은 김하나 목사 하나 뿐이 아닐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에게 자식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각기 한자리씩은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상무에게 삼성을 물려주듯이, 이명박 장로가 이시형에게 다스를 물려주듯이, 최순실이 정유라에게 명마 블라디미르와 스타시아를 선사하듯이. 열심히 빚지고 알바하고 스펙 쌓아 대학 졸업하면 뭐합니까. 강원랜드 신입공채 518명 뽑는데 5,286명 중 10:1의 경쟁률에서 낙하산 청탁 대상이 625명이라면 우리 애들은 이 나라에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대형 교회들이 즐비하면 뭐합니까. 기독교적 제도를 창출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는 요술로 사람을 속이는 언어와 상징의 쇼일 뿐입니다.


●침묵을 지키라


산 속에 들어가 밤을 새워 본 사람은 산의 막대하고 막중한 소리를 경험으로 압니다. 불교애서 이 적막을 대적(大寂)이라 합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니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니 하는 현판을 답니다. 모든 현상의 소리를 잠재운 절대적 원리(原理)의 소리. 거기는 모든 현상의 소리뿐 아리라 현상자체가 적멸(寂滅)된 대적(大寂)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절대적 침묵에도 무게가 있고 소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근원적 소리와 무게가 현상적 소리와 무게를 압도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생긴 이명(耳鳴)으로 24시간을 손오공의 머리에 삼장법사의 쇠테가 조르는 듯한 소리의 고통에 시달리는데 이상하게도 거대한 밤 산중에 홀로 있을 때면 이명이 들리지 않습니다. 인식하질 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런 적막도 아닌 절대의 침묵 가운데 계신 존재입니다. 그의 경륜(經綸, 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iκονομία)는 경제란 말의 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우주를 운용하십니다. 그는 자취도 없고 소리가 없으나 모든 자취와 모든 소리를 주관하시고 주재하십니다. 가령 지금도 저 시베리아 자작나무 원시림의 눈더미 속에 웅크린 채 사색에 잠겨있는 늑대 일가족도 그는 다스리십니다. 아무 표시도 나지 않는 저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도 눈과 비를 내리십니다. 그에게는 쓸데없는 일이 없습니다. 우주는 광활하고 정신이 없이 돌아가지만 그에게는 온전한 지성과 의지가 있어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 가운데 시간과 공간들이 펼쳐지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상상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가장 최종적으로 이러한 침묵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거기에 어떤 행위가 필요한가요. 그대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또한. 우리는 거룩한 무관심의 침묵 가운데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앎으로 나는 먼서 나의 일체의 행위를 멈추었습니다. 부지런히 뭔가를 하는 사람, 일을 만들고 감정을 만들고 갈등을 만드는 사람, 불평과 불만을 생산하는 사람을 그분은 그러한 대적과 적멸의 세계의 침묵으로 잠잠케 하시고, 부드럽게 어루만지시고, 거친 맘을 비둘기 같이 온유하게 다스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가 벗어나듯 벗어나게 치료해 주십니다(시 124:7). 그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어떻게 새가 벗어나는지 모릅니다. 벗어난 순간은 이미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순간이 아닙니다. 그렇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영원합니다! 죽음일지라도 그에게 맡길 수 있는 근거죠. 그러나 나는 여전히 침묵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존재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거룩한 무관심, 고귀한 품격의 근거입니다.


●행위의 기만성


행위란 극도로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겉으론 지극히 좋게 보여도 속은 얼마든지 사악할 수 있고, 겉은 비록 거칠고 우악스러울지라도 속은 얼마든지 선량하고 부드러울 수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명성교회 수십 년에 가장 성공한 가정은 김삼환 씨의 가족이 아닌가요. 심지어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과 업적이란 구체적인 생존(먹고 사는 존재함)에 관한 정신과 영혼의 이해력 문제이지 겉만 봐선 모릅니다. 지나치게 남을 숭상하지도 깎아내리지도 마십시오.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질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를 지는 거라니 맞습니다. 남들은 고작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사람다운 환경과 안전과 안락을 위해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데 그렇게 무겁고 거룩한 수만 명의 십자가를 지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건가요. 저라면 그런 부담스러운 십자가 보다는 산중의 자유와 고독을 택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자기를 임금 삼으려는 열광분자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던 걸 모르는 겁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사람을 높이고 또 거꾸러뜨리는 우를 자주 범합니다. 제가 항상 주장해마지 않는 교우관계의 제1의는 경계를 존중하고 개성을 지켜주는 정중함입니다. 잠언에 보면 ‘조상들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잠 22:28)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게 어찌 토지에 대한 권면일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들 자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개인의 경계를 침범해선 안 됩니다. 내가 무수한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다는 따위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봉건을 소명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왜 우리가 나의 구원을 타인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타인이 내게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그런 과장과 허영의 함정과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립이고 독립이고 만인제사장 곧 기독교적 아나키즘입니다.


●놓이기 위해 애쓰라


다시 한 번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오직 벗어나기 위해 이제부턴 맹세에서 놓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럴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나 무분별한 맹세로 나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타인을 내게 양도하도록 약속을 남발했었나요? 사람들이 내게서 내가 사람들에게서 약속이 배반당하고 맹세가 깨지는 꼴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며 내게 실망했고 내가 사람들을 떠나며 그들에게 실망했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아니다! 맞다! 내가 그랬다! 그것을 인정할 때만 우리는 인간관계의 폭력성에서 벗어나 동일한 우를 범하지 않을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할 것입니다.


이제 나의 행위는 오직 진리와의 일체를 향할 뿐 그런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면 타인에 관해 세간에 퍼진 명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은 행위의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기만성과 부족함을 일깨우는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익을 보려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화하거나 발전하기 위해서라면. 아니 정말로 자기와 성도들을 벗어나고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이것이 인권이죠. 저는 기업이나 이윤의 강화 외에 명성교회와 같은 대형화된 교회의 목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까요? 바벨탑을 쌓은 고대인들의 목적은 한 덩어리로 뭉쳐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는 거였습니다(창 11:4).


제가 가장 화가 나고 동의 할 수 없는 말은 그들이 그래도 한국교회를 위해 지금까지 큰일을 해왔다는 식의 말입니다. 도무지 큰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가시나무가 왕관을 쓰고 나무들 위에 부니는 것처럼 이런저런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쓰고 행한 일들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가령 돈을 많이 쓰는 걸 큰일이라고 말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도무지 하나님께서 세월호에서 스러져간 학생들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희생시켰다는 설교. 박근혜 대통령이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설교가 그들이 말하는 큰일이란 말인가요? 이런 걸 실구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저를 불러 주십시오. 그러면 더 큰일을 말할 테니까.


사도 바울의 본명은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던 용사 사울왕의 이름을 딴 히브리 식 사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진리를 깨우친 다음 그는 큰 사람의 비전을 버리고 바울로 개명(改名)합니다. 이 이름은 헬라말로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격동하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스스로 큰 비루한들이 넘치고 넘칩니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하고 높여주고 떠받들어 모셔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치 독립투사들과 친일파의 역전된 현실처럼 진정 인간의 빛을 밝혀준 숨은 스승들에 대한 지식도 기념도 거짓 큰 자들의 거짓 명성에 가려 빛을 잃고 사장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 기독교 지난 백년에 정말 예언자들이 없었단 말이, 말이 되겠습니까. 지난 인류의 수많은 스승 가운데 누가 진정 지혜의 등불을 밝혔습니까? 그분들이 인류에게 어떤 빛을 주었습니까? 참된 자기를 알고 발견하는 것. 벗어나고 벗어나게 해주는 것. 집착 도구 이용 수단 필요로부터 자립하는 것. 그러한 제도와 세계를 구현해 나가는 것.


각자 우리는 나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탐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제부터의 출발입니다. 마음과 가슴에 근본적 변화를 위해 공부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더 높고 큰 이상에 대한 욕망을 위해 반대로 크기의 현혹과 망상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노력하면서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도 함정이 있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모른 체 무책임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전체를 내가 책임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실현 가능한 접근방법을 다해 모든 고통의 뿌리가 되는 부패와 죄의 죽음에 대해 도전하고 지향해 나가는 것.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 그럴 때 나는 진리의 사람으로 온몸에서 정신의 진동을 발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동굴 속에서 진리를 깨우쳐도 그 소식이 만리(萬里)에 퍼진다는 말처럼. 중보란 무엇인가요? 인류를 위한 기도, 세계를 위한 기도도 4분이면 족합니다. ‘나’라는 인식이 곧 온 세상이며 하나님인 것을 자각한 사람이 그 온 세상(나라는 인식)을 진리의 표상이자 대표로 삼고 나가는 것. 그것이 중보자로서 세상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사랑해서 고쳐나가려는 사람의 고귀하고 품격 있는 자태일 겁니다.


●울타리가 깨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하고 파렴치해진 김삼환, 김하나 부자 세습사태에서 확인되는 교회의 쇠퇴가 의미하는 것은 교회 울타리가 깨졌다는 것일 뿐입니다. 진리가 요청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본질은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났습니다. 명성교회는 실로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바라건대 깨어있는 성도들은 김삼환, 김하나 목사 부자의 망상에서 벗어나십시오. 깨어있는 부목사들과 전도사들은 한 사람의 성도라도 그 비진리의 사원에서 이끌고 나오십시오. 김하나 목사에게 아들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하는 노래가 있던가요? 참 잘 했네요. 아버지로부터 영광스런 세습을 받으셨군요. 그러나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설교는 세습에 대한 비루한 변명이 될 겁니다. 당신의 하는 일을 속히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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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0)


어머니의 마중


아흐레째 일정은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했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솟는 호텔이 있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호텔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빨래 말리는 건조대까지 구비가 된 좋은 숙소였다. 입구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고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성지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한 구수감리교회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주인은 구수교회 권사님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내게 권사님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꿀을 전해주었다. “정말로 좋은 꿀이에요. 걸으면서 드세요.”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권사님이 주신 꿀을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섞어서 마셨다.


걸음을 서둘렀다. 전날 희준 형(兄)이 전화를 해서는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한 터였다. 길을 걷는 동생을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형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백마고지역에서 점심때쯤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옛 다리와 새로 놓은 다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땅이었다. 한탄강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숨은 비경들이 한참 이어졌다. 시간만 된다면 천천히 걸으며 곳곳의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다. 가야할 길이 있고 점심 약속도 있는지라,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야 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도피안사를 거쳐 철원제일교회 앞을 지날 때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형은 일찍 도착을 했던 것이었다. 열하루 일정의 후반부, 그렇지만 걸음을 재촉했다.


철원이면 그래도 익숙한 지명, DMZ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긴 철조망이 도로 양쪽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철조망에는 지뢰가 묻힌 곳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이 땅의 아픔은 그렇게도 길고 질긴 것이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주마간산처럼 지나가는 것이 무척 아쉽게 여겨졌다.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길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기다리는 대신 내가 걷는 길을 짐작하여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니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동행을 했나, 아내가 같이 왔나 짐작이 안 됐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며 보니 어머니였다. 멀리서도 흰 머리가 보였다. 어머니가 형과 동행을 하여 찾아오신 것이었다. 저 앞에 걸어오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솟았다. 내일 모레가 아흔인 어머니가 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마중을 나오실 줄이야.


군에 입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막 자대에 배치를 받은 어느 토요일, 갑자기 내부반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를 온 사람이 있으니 속히 옷을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은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알릴 새가 없었는데 누가 면회를 온 곳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위병소로 갔을 때 저만치 눈에 들어온 사람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큰 형 가족과 함께 면회를 온 것이었다.


그 때도 왈칵 눈물이 솟았었다. 입대하던 날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전라남도 광주, 광주에서 떨어진 송정리, 그곳에서도 한참 떨어진 평동, 어찌 그 외진 곳에 배치 받은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일까.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돌아서는 어머니께 다시는 면회를 오지 마시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면회를 다녀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모금과 노력동원으로 지어진 건물.

전쟁 중 내부는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벽체는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길을 걷는 내가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목사의 어머니로서 가뜩이나 아들과 아들의 목회를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괜한 걱정만 끼치는 일이다 싶었다. 그래도 거리가 저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른 눈물을 삼키고 감정을 추슬렀다.


“애도 아닌데 무슨 마중을 나오세요?” 밝은 웃음으로 어머니와 형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길을 걸었다. 마중이 길었던 만큼 함께 걷는 길도 길었다.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며 젊은 시절 어머니가 남쪽으로 넘어오실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여쭤 들었다. 새댁 시절, 일 년 전 서울로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셨던 어머니, 내려오면서 겪었던 무용담 같은 일들,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어떻게 그런 담력과 용기를 가지셨을까,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어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시고는 한다. 군에 가는 손자에게,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당신의 젊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얼마든지 용기를 내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하시고는 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온 어머니의 마중과,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만나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어디 그런 시간 그런 길이 흔할까, 그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17. 오래 걸으니 http://fzari.com/980 

18. 왜 걸어요 http://fzari.com/981

19. 작은 표지판 http://fzari.com/982 

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23. 이 땅 기우소서! http://fzari.com/98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25. 해안(亥安) http://fzari.com/991 

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34.,거미의 유머 http://fzari.com/1010 

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http://fzari.tistory.com/1013 

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http://fzari.com/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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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목사님 어디쯤이신가요?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 한영순 권사님 댁이 김화 사거립니다. 이 폭염에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김화를 지나면서는 함광복 장로님이 꼭 찾아가기를 권했던 한 권사님을 뵙고 가기로 했다. 김화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점심 무렵,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함 장로님이 권한 찌개 잘한다는 식당이었을까,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그런지 손님이 많아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은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을 찾았고, 마침 보신탕과 삼계탕을 하는 식당을 찾았다. 삼계탕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밥값까지 계산을 했다. 당신과 나이차가 많지 않은 사람이 열하루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얻게 된 용기에 대한 답례였지 싶다.


찌개 잘하는 곳이지 싶은 식당에 손님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점심을 먹은 뒤 한 권사님 댁을 찾아보려 한다고 함 장로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이내 답장이 왔다.


“그 집이 소문이 났나 봐요. 저희가 갈 때도 늘 붐볐습니다. 점심 드시고 한 권사님 만나보세요. 봄에 지나갈 때 행정서사 간판은 내려지고 한영순 문패는 있었으니까 생존해 계신다는 뜻일 텐데~. 그새 혹시?”


식당 주인은 물론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 권사님을 아는 이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화가 박수근 씨의 결혼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던, 순교자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했다. 마침 연세가 지긋한 분이 오래되었지 싶은 가게를 지키고 있어 여쭸더니 다행히도 집의 방향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영순 권사님 댁. 우편함에는 두 분의 이름이 여전히 적혀 있지만 한권사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뒤였다.


맞았다. 집 앞 벽에 걸린 우편함에 한영순·이종녀 두 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마찬가지,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영 아쉬운 걸음, 바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출타했다 돌아오시는 건 아닐까 싶어 현관문 위에 흙으로 지은 제비집도 쳐다보고 길가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참 잘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백발의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시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신다. 이종녀 할머니 되시느냐 여쭸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다.


꼭 찾아뵙기를 원했던 함 장로님의 당부는 물론 오래 전에 있었던 일도 말씀을 드렸다. 단강에서 목회하던 시절, 원주지역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국내 성지순례 길을 나서 철원, 김화 지역을 방문하여 순교하신 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을 제안한 사람도 안내를 맡은 사람도 모두 함 장로님이었다. 그 때 한영순 권사님을 뵙고 권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있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던 이종녀 권사님은 밖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셨다. 땀과 먼지에 젖은 허름한 행색, 조심스러웠지만 거듭되는 권유에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잠깐 기도를 드리는 사이, 권사님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다.


먼저 한영순 권사님의 근황부터 여쭸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다. 2013년 8월,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괜한 걸 여쭤서 죄송해요.” 말씀드리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시는데 목소리가 더없이 낮고 조용하셨다. 이종녀 권사님은 혼자 살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약봉지들, 권사님도 건강이 좋아 보이시지가 않았다.


한영순 권사님의 부인 이종녀 권사님. 말씀을 아끼시는 모습이 오히려 많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이미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싶었다.


권사님께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에 대해서 기억나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지만, 권사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왜 그랬을까, 모두가 지난 일이라는, 더 이상 순교의 의미도 찾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 소중한 이야기를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시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종녀 권사님은 말씀을 아끼시고, 오래 전 한영순 권사님께 들은 이야기는 희미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함광복 장로님이 쓴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라는 책에는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글로, 12명의 순교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함 장로님의 글을 찾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순교자들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도 남기지 않았다. 추가령 열곡대의 바이블루트에서는 12명의 기독교 목회자가 순교했지만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DMZ 순교사는 '꾸며낸 얘기'란 비아냥이 늘 뒤따르고 있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38선 이북에서 일어났고, 전쟁은 공교롭게 그 사건 현장에서 끝났다. 그 자리를 밟고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순교 사건은 이렇게 DMZ 속에 묻혀버렸다.


DMZ의 그 사건이 들먹여질 때마다 나는 큰 눈에 우람한 몸집의 노인 한영순씨(韓英珣..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생각했다. 노인은 학사 4거리에서 그의 고향 금성 가는 길 쪽으로‘한영순 행정서사’ 간판을 내고 20년 째 '반 대서소, 반 농사 일'을 하고 있다. DMZ 넘어 금성까지는 50리. 그곳은 그의 할아버지 한사연(韓士淵)목사의 금성교회와 노목사의 순교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한 목사는 8.15 해방을 71세에 맞았다. 김화 창도 금성 3교회의 감리사를 맡고 있을 때다. 그가 목회인생을 바쳐 온 장단, 평강, 김화, 삭녕, 김화, 금성, 창도, 회양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제 때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는 ‘짚신을 신고 성경과 찬송가를 등에 진 해괴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착의를 달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됐었다. 공산당의 세상이 되자 목사는 다시‘모두 나눠먹기 패’(공산주의)를 거부했다. 이번엔 ‘이중생활을 하는 자들의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목사는 월남하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만 살겠다고 교인을 버릴 순 없다”고 거부했다. 일제 수난기를 살아 온 목사의 교육관은 특이했다. 어느 시대이든 농사꾼과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뜻대로 맏아들 문옥, 둘째 명옥 씨는 농사꾼이 됐다. 그리고 셋째 상옥, 막내 병옥 씨는 세브란스를 나와 각각 창도와 통구에서 내과의로 개업해 있었다. 그들도 부친의 뜻에 따라 월남하지 않았다.


1950년 6월 24일 늦은 밤, 38선을 향해 탱크와 대포를 싣고 부산히 내려가던 금강산 전철의 수송작전은 이미 끝났다. 전쟁 전야의 금성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 금성교회 목사관을 두드렸다. 그는 “회의가 있다”며 잠자리에 든 한 목사를 깨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일요일인 이튿날 금성교회의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영순 씨는 한목사의 둘째아들인 명옥 씨의 아들. 김화고급중학교에 다니던 영순 씨는 그해 7월말쯤 전선에 동원되기 위해 김화인민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아놓고 있었다. 우연히 김화정치보위부 울타리를 지나가다가 할아버지 한 목사를 만났다. 우람한 체격의 백발노인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 함께 동아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영순아, 네가 증인이다. 증인이 돼야한다!”


한 권사님 댁 마당에 핀 밤꽃. 순교의 향기를 밤꽃에 비길까만 점점 우리는 그 향기를 잊어가고 있지 싶다.


한 목사의 가계는 철저히 유린됐다. 맏아들은 김화 생창굴 속에서 폭사 당했으며, 의사인 셋째 상옥은 원산으로 끌려갔다. 역시 의사인 막내는 김화 쑥고개 칠성정에서 총살당했다. 해주교회 사모로 시집간 외동딸 만옥은 행방불명됐다. 둘째아들 명옥만 월남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금성이 고향인 사람들의 연말모임에서 영순 씨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신시옥(작고)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한 목사는 원산 앞바다에서 4명씩 철사줄에 묶여 수장됐다”고 일러줬다. 신 씨는 그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사람이며 그는 그날을 10월 3일로 기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난 94년 여름 북한의 오성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구김화읍 읍내리 민통선 북방의 한 벌판에서 들었다. 영순 씨는 “여기가 보위부자리, 저기가 내가 막내 작은아버지 시신을 묻어 놓고 표식으로 구두 두 짝을 올려놓았던 그 밭…”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그는 “‘네가 증인이 되라’고 한 할아버지의 유언이 가슴에 박힌 커다란 가시 같다”고 말했다. “기막힌 이 사연을 글로 옮길 재주도 없고, 이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는 이도 없다”며 그때 노인은 소년처럼 울었다.


6년이 지난 최근 한영순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늙어 70세 노인이 돼 있었다. 2년 전 병을 얻어 민통선 출입영농도 일부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내게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한 순교자의 유일한 증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말을 그 때처럼 다시 했다.


그의 가슴엔 아직도 그 가시가 박혀 있었다. 변한 건 어눌해진 말투뿐이었다.


12 순교자 가운데 유일하게 서기훈 목사만 순교비가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장흥교회 뒤뜰에 세워져 그의 순교사가 전해지고 있다. 장흥교회는 1920년 장방산 아래 설립된 이래 80년 째 그 자리에서 서있다. 그리고 이웃 한탄강 언덕의 대한수도원은 장흥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지켜봤던 산 증인이다. 그나마 서목사의 순교사가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사연 목사처럼 나머지 11사람은 지금 어느 후손 또는 어느 성도의 가슴에 묻혀 파낼 수 없는 가시가 된 채 DMZ 벌판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바이블루트의 사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감리교회 서부연회 수난사》(윤춘병 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빈칸이 너무 많다. 방승학 목사는 그가 시무했던 교회를 밝히지 못했으며 월정교회에 지석교회에 시무하다 피랍된 김유해 목사와 월정교회 이운성 전도사는 납치일을, 석왕사교회에서 순교한 김축수 목사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유득신 장종식 목사는 시무교회도 납치 또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이 기록의 내역 란은 더욱 불충분하다.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 순교했느냐?”는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기록을 꽤 오래 전에 입수했다. 그리고 원로학자가 못 다 채운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누군가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DMZ 벌판을 구도자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이 한 발짝, 한 발짝씩 DMZ에 다가서며 십자가를 세우던 젊은 목회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했다. 어떤 이는 “내가 맡은 사명이 아니라”고 끝까지 얘기를 듣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함부로 순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노인들에겐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한 번 자세히 얘기해 주겠다”고 하던 노 장로가 문득 생각나 그를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블루트의 그 사건은 이제 더 먼 옛날 얘기가 돼 있었고, 보나마나 "꾸며낸 얘기"라고 비아냥거릴 사람들의 비웃음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 '빈칸'을 채울 그를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17. 오래 걸으니 http://fzari.com/980 

18. 왜 걸어요 http://fzari.com/981

19. 작은 표지판 http://fzari.com/982 

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23. 이 땅 기우소서! http://fzari.com/98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25. 해안(亥安) http://fzari.com/991 

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34.,거미의 유머 http://fzari.com/1010 

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http://fzari.tistory.com/1013 

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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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1)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나는 일찍이 성경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었다. 성경을 자세히 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맛보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언어로 된 성전’, 곧 성경전서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기독교인의 삶의 표준인 성경 말씀을 통해 ‘진리’의 참됨(진)과 ‘착함’(선)을 배웠지만, ‘아름다움’(미)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 하나, ‘진리’는 아름답다. 서구 철학이 말한 진선미(眞善美)의 구도가 인간의 지성, 의지, 감정(심미성)의 조화를 목표한 것이라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시의 문장으로 지어져 예술성을 확장시키는 구약의 지혜서는 간결미, 상징적인 언어의 모호함과 함축미의 결정체다. 글의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현실의 사건들이 어울리는 그곳에 진리의 현실성과 예술성이 교차한다.


《모비딕》의 작가 허멘 멜빌은 전도서를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세대가 가고 오며 위대한 작가들은 성경의 진리와 그 진리를 담아낸 언어로 지어진 성전의 문학적인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오히려 구도자의 삶을 살아갈 신앙인들은 관심 없다. 무관심이 무지를 낳은 것일까. 필요한 성경구절을 뽑아 ‘주문’처럼 외우며 이용하는 것은 능숙하다. 그러나 총 66권 성경전서의 한권 한권의 영감 받은 말씀이 왜 그 순서에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는 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것은 명확한데, 왜 어떤 것은 모호하여 말의 숲을 헤매게 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궁금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거룩한 말씀 안에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질문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불신을 낳을 것이라는 자발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앙공동체가 가하는 무언의 억압 때문이었을까? 각설하고 왜 전도서는 진실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전도서를 대표하는 말, ‘헤벨’(한숨, 호흡, 헛됨, 허무, 덧없음, 무의미, 부조리, 모순)에서 찾았다.



코헬렛(전도자)은 갖가지 인생살이의 현실, 역설과 모순, 온갖 부조리를 한 마디로 발설했다. 모든 것은 ‘헤벨’이다(1:2). 단 한가지로 응축시켜 종합하기 어려운 총천연색의 현실은 어제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코헬렛은 의미 있는 것을 다루지 않고 그 반대의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들을 말해야 했을까. 인생의 변덕스러움과 부조리를 전부 이해할 수 없어서 지혜 선생 코헬렛은(12:9-12) 해 아래 모든 것은 ‘모순덩어리’(1:2; 12:8; “헛되고 헛되다”, 개역개정)라고 했다. 이 때문에 코헬렛의 지혜 말씀은 질문을 반기지 않는 종래의 신학과 신앙에 익숙해진 우리를 낯선 해석의 장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자주 ‘전제된’ 신앙과 신학의 울타리에서 질문하기를 꺼렸지만, 코헬렛은 인생의 너절함과 모순적인 현실을 묻고 발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서 그는 허점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내 인생에 깊이 들어와 삶은 ‘덧없으니’(헤벨) 먹고, 마시고, 노동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거듭거듭 당부한다(2:24-26; 3:12-13, 21-22; 5:18-20; 8:15; 9:7-10; 11:7-10). 이것은 삶의 즐거움으로의 부름이요, 때때로 의미 없고 너절한 일상의 반복도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는 역설이다. 코헬렛은 대중에게 환호 받는 위대한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마시는 일상을 가치 있게 여겼다. 삶의 위대함은 도달하기 어려운 무엇을 성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담백하게 찾아든 기쁨 때문이리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외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다. 그러나 극도로 심화된 빈부 격차와 특권화 된 계층을 위해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많은 이들을 불안과 박탈감으로 밀어 넣는다. 이럴 때 코헬렛이 발설한 모든 것이 ‘모순덩어리’라는 ‘헤벨’판단은 가장 적실성 있는 시대의 외침이다. 이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헤벨’이 발설되는 곳에서, 그러면 진짜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도록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전도서는 모든 것을 다 잃고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완고한 현실에 직면해야 할 근거와 가치를 마련해 준다.


전도서는 현실의 부조리에 회피와 방관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상상을 하도록 끌어들인다. 때문에 자본과 성공을 위대한 성취로 받드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는다면, 거기에 생명이 솟는다. 거기에 설령 슬픔과 비애가 머문다할지라도 삶의 진실을 배울 기회가 허락된다. 성취감 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다. 욕망의 성취가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성취감은 잠깐이다. 도리어 ‘허무’(헤벨)가 엄습해 오기도 하니까. 모순, 허무, 부조리의 세상에서 내 안의 자유와 진실함을 끌어내는 순간 절망은 사라지고 삶의 기쁨이 샘솟는다.


그러하여 세상 모든 것을 ‘모순덩어리’(1:2; 12:8, ‘하벨 하발림’)라고 표현한 한 마디 코헬렛의 말(1:1). 함축의 극치를 보여준 이 말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언어로 내게 왔다. 지나친 확신과 흥분에 찬 말이 아니어서, 위대함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어서 진실하다.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는 말이어서,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아 현재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말이어서, 그리고 모호해서 아름답다. 해 아래 모든 일은 ‘수수께끼’(헤벨)어서 인간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니 얼마나 진실한가. 이보다 더 진실할 수 있을까.


늦가을, 독서와 사색을 위해 좋은 계절이다.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전도서에서 ‘모순덩어리’ 인생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떤가.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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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벅차게 수피령을 오를 때에 비하면 내리막길은 편하고 쉬웠다. 경사가 그랬고, 바람이 그랬다. 걸음을 옮기며 따로 힘을 주지 않아도 걸음은 절로 옮겨졌다. 땀 흘린 뒤에 맞는 바람은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원했고 고마웠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 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수현공원>이었다. 인적도 없는 이 한적한 곳에 웬 공원, 생뚱맞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살지만 그래도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의 얼굴이 생각났다.


지자체마다 수익이 되는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이다보니 빚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혹시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가 그 탤런트가 태어난 곳이고, 아무리 그가 유명하다고 해도 이런 외진 곳에 공원까지 세우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싶었다.


공원 앞을 지나칠 때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공원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탤런트의 얼굴이 아니라 충혼비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원으로 걸음을 옮겨 충혼비에 새겨진 글을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연들이 적혀 있었다.


김수현 병장 충혼비. 외진 곳에 <수현공원>이 마련된 이유를 대번 알 수가 있었다.


<수현공원>의 주인공이자 충혼비의 주인공인 김수현 병장은 1964년 11월14일 수피골 일대 대침투작전 때 숨은 적을 추격해 1명을 사살한 후, 또 다른 1명과 전투 중 복부 관통상을 입었으나 사력을 다해 적에게 관통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남파된 북한 공작원들은 최정예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교전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싶다. <수현공원>에는 추모비를 중심으로 북한군의 침투로, 은거했던 바위, 전투호, 교전 중 발생한 피탄 흔적 등이 보존되어 있었다.


적의 침투로. 글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씨 옆으로 한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으로 표시된 작은 원들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바위가 김수현 병장과 교전하던 북한 병사가 몸을 숨기던 곳이었다. 바위에 표시된 흰색 원은 교전 중에 생긴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잠깐 <수현공원> 일대를 둘러볼 때 마음이 숙연해졌다. 1964년이라면 내 나이 겨우 5살, 내가 알지도 못할 때에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다가 한창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었다. 서로 교전을 벌였던 북한 병사도 비슷한 나이 아니었을까? 그 또한 명령을 받고 남쪽으로 넘어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했을 당시, 얼마나 두려웠을까.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해 보면 모두가 젊은이들, 남과 북 사는 곳은 달랐지만 모두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었다. 분단 상황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같은 나라 같은 젊은이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이들이었다. 어쩌면 같은 학교에서 만나 공부를 했을 수도 있고, 혹 잘하는 운동이 있었다면 같은 팀에서 운동선수로 땀을 흘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공부를 마치고는 같은 회사나 공장에 다니는 동료가 되었을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분단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프게 전해져 왔다. 공원을 빠져나오며 처음 섰던 충혼비를 찾아가 그 앞에 다시 섰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자 나도 모르게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극도의 긴장 속에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댈 때, 얼마나 떨리며 두려웠을까?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까지를 떨리게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 이 땅에 없기를, 이 땅의 젊은이들 사이에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추모했다.


다시 걷는 길, <수현공원> 표지판을 보며 가졌던 선입견을 미안한 마음으로 버린다. 돌아보면 우리는 별 것 아닌 것에 별별 선입견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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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7)


오르막과 내리막


수피령은 정말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로드맵에도 수피령을 두고는 ‘직등코스’라 적혀 있었고, 전날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심마니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넘어야 한다고 일러준 터였다.


‘수피령’이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물 수’(水)에 ‘가죽 피’(皮)에 ‘재 령’(嶺), ‘水皮嶺’이라 쓰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 싶은데 함장로님은 ‘말이 씨가 되었나, 96년 대홍수 때 대성산 수피령은 온통 물을 뒤집어쓰는 대피해가 있었다.’고 수피령에 얽힌 일 한 가지를 소개했다.


이른 아침 숙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볕인데도 벌써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 한 고개이니 여느 길보다도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일종의 오기였을까, 고개를 다 넘기 전까지는 쉬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힘든 길일수록 중간에 쉬면 쉬고 난 다음이 어려웠다.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졌고, 걸음은 나도 모르게 무거워지곤 했다.


수피령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웠다. 하나는 완만한 경사였고, 다른 하나는 급한 경사였다. 완만한 경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완만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완만한 경사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 안에 있는 힘을 다 소진시키게 했다. 차라리 힘이 들어도 급한 경사를 단 번에 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어느 순간 급경사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경사였다. 한 번 주저앉거나 자빠지면 데굴데굴 굴러 처음 떠났던 자리로 물러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새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숨은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김처럼 뜨겁고 소리도 거칠어졌다. 심장은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올라 “뻥!” 하며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한 순간에 파열될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의 한계였다.


마침내 나티난 수피령 정상. 고개 하나를 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자명하게 여겨졌다.


몸의 한계를 느끼는 것을 좋아했었다.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서울 냉천동에 있는 감신대(監神大)에서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학년 대항 체육대회를 했다. 과(科)라고는 달랑 신과(神科) 하나, 한 학년 학생이라고는 50명, 당시의 감신대는 마치 수도원 같은 분위기였다.


한 학년이 50명인데다가 우리 학년은 유난스레 여학생이 많았다. 내 기억에는 16명이었지 싶다. 남학생들 중에서도 더러 군대를 가고 휴학을 하고 나면 그 수는 더 줄어들었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학생도 부족하다보니 나는 거의 모든 경기를 뛰어야 했다. 당시의 주종목은 배구와 농구였는데, 경기를 모두 마치는 오후가 되면 거반 녹초가 되었다.


체육대회의 마지막 종목은 단축 마라톤이었다.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마라톤도 뛰었다. 그 때 느낀 것이 몸의 한계였다.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한계를 마주하며 계속 달리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뭔지 모를 희열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1학년 때의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하여 2학년 때는 친구와 함께 뛰기도 했다. 수피령을 오르며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학!, 학!, 학!”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식처럼 비명처럼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때마다 단내가 확 풍겼다. 그러던 중 마침내 더는 견딜 수 없다 싶은 순간이 왔다.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쉬지 않기로 한 다짐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목사다, 마지막 한계에 왔다 싶을 때 내뱉는 소리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학!” 소리를 “주여!”로 바꿨다. 자신이 매달릴 무거운 통나무를 자신의 어깨에 메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비척거리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그러다가 여러 차례 쓰러졌던 예수님을 생각했다.


내가 등에 메고 있는 것은 고작 배낭 하나, 게다가 채찍을 내리치는 로마군병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의 조롱소리가 들리는 것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겼다. 몸과 마음의 한계 속으로 누군가가 가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화천과 철원은 수피령을 경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는 오르기가 힘들었지 내리막길은 저절로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견딘 것 만큼을 누리는 것이었다.


마침내 나타난 정상, 고개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고꾸라지듯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요새 눕기보다 쓰러지는 법을 배웠다.” 황동규 시의 한 구절일 것이다. 해발 780m 고개를 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한계가 자명하게 여겨졌다. 배낭에 기대 누워 생각하니, 고개를 다 넘은 여유 때문이었을까, 옛 시절 보릿고개를 넘는 일은 수피령 고개 넘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청정지역 철원입니다’


눈앞에서 반기고 있는 표지판 속 ‘철원’이라는 글자가 더없이 반가웠다. 화천과 철원은 그렇게 수피령을 경계로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 정상까지 오르기가 어려웠지 그 다음은 쉬웠다. 로드맵에 적혀 있는 것처럼 ‘30리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저절로 가지 싶은 걸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람이었다. 저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수피령을 오를 때는 없던 바람이었고, 고개를 오르느라 수고했다는 듯이 온 몸 다 젖은 땀을 내내 말려주었다.


살다보면 오르막길을 만나기도 하고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오르막길도 없고, 언제까지나 내려가기만 하는 내리막길도 없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서로 어울리며 이어진다. 오른 자만이 내려갈 수가 있다. 내리막길을 가볍게 걷는 즐거움은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른 자만이 누릴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아낸 만큼을 누리는 것이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에 비하면 저절로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주었던 때는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를 때였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벅찬 오르막길을 끝까지 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등을 밀어주는 때는 내리막길을 편하게 내려갈 때가 아니라,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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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주는 편지(7)


인생은 도장(道場) 깨기

-말들의 진실-


1.


공자(孔子)께서 자공(子貢)에게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뛰어난가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도 없는데.”(《논어》, 「헌문(憲問)」편).


곧잘 자기의 입장에서 타인들을 평가하고 비교하길 좋아하는 의기양양한 제자의 허를 찌른 것이다. 아무리 입버릇처럼 거리낌 없이 남의 비평을 해댔기로 되 주고 말을 돌려받자 한 짓은 아니었을 터. 면전에서 스승님께 정면 디스(diss)를 당했을 때 자공의 낯은 어땠을까?


자공의 뒷담화와 달리 예기치 못한 순간 상대의 안면을 직격하는 인간실격선언의 스트레이트(straight)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방망이처럼 정수리 복판에 작렬해 심장 속 양심에서 폭발한다. 위급한 마음을 모면할 길이 없어 어떤 말을 임시로 빌려다 쓰는 것도 안 될 정도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가차(假借, 한자에서 음이 같은 글자를 임시로 빌려 쓰는 방법) 없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 머리는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 아득해지고, 가슴은 T익스프레스(T Express)가 수직 낙하하듯 고공에서 천길 아래로 떨어지고, 꼭두각시처럼 다리는 붙어있는 건지 떨어진 건지 후들거리고, 손에는 땀이 배고, 맥은 쪽 빠져 열은 위로 뻗치고, 얼굴은 백납병자처럼 창백하다가 술 취한 듯 달아오른 홍당무가 된다.


저항이나 항복을 요구하는 것도 허락하는 것도 아닌 순수한 일격이 전부인 그런 순간에 이르면 오로지 소원은 모멸과 창피가 새빨갛게 피워낸 한 송이 부끄러운 꽃이 되던지, 꺼져 사그라지지 않으며 불타오르는 한 그루 떨기나무가 되던지, 무너지지도 않은 채 변명을 아주 잊어버린 벽이 되던지, 그 벽에 뚫린 쥐구멍에라도 기어 들어가 이 참담한 재판장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어질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제 꼴이 한심스러워지는 참담한 순간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자공보다 가진 것도 없고(그는 큰 부자<富者>였다고 한다)훨씬 어리석으면서도 곧잘 남을 비평하길 좋아하며 의기양양하게 살아온 내가 한두 번 겪어본 일이겠는가. 너희는 또 나보다 가진 게 없고 훨씬 어리석을지 모르니 그런 일을 만나거든 ‘그렇군!’하면서 벌어질 일이 벌어졌으려니 우선은 제정신부터 차릴 일이다.



세상엔 누가 시늉만 했을 뿐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카운터(counter)에 얻어맞은 것처럼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고, 페인트(feint)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 태연한 사람도 있다.(태연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도 태연한 것이다.) 태연한 사람은 시늉이 노리는 바를 정확히 깨달은 것이다. 세상은 상대적인 것이고 너와 남이 없이 내 판단은 다 반(半)만 맞는 것이란 말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절대가 아니란 말은 내게는 절대로 옳은 것이 상대에게는 틀린 것일 수 있고 상대의 절대로 옳은 것이 내게는 틀린 것일 수 있으며, 우리 모두의 견해가 상대적으로 절대가 아니니, 이것을 깨달으면 무엇보다 생각이 주는 고루함과 한계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걸 두고 아는 체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 나를 괴롭히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복잡함에서 내가 벗어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한다. 무엇보다 항상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게 좋다. 큰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벌써 당한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누구 좋으라고 세상을 사는 것이며, 정말 큰일에 당해선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남을 비평하는 것이 그렇듯 참담한 순간을 겪고 이기는 것에도 오직 하나의 목적과 기술이 필요한 거라고 하겠다.


자공이 《논어》에 이 얘기를 기록해 넣은 걸로 미루어 그는 이 참담한 순간을 잘 극복하고 이겨냈을 것이다. 꽁꽁 숨겨도 시원찮을 부끄러운 일화를 자랑과 명예로 바꾸어 소중히 간직했다가 후세의 귀감으로 남겨주었다. 이겨냈기 때문에 이후론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잘 이겨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해도 예전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옛 경험을 창피스럽게 여기지 않고 떳떳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긍지가 거기 있다. 끝내 그 참담함 앞에 정신을 못 차리고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뭔가를 일깨우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우치지 못했다면, 자공은 부끄러움에 짓눌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일생동안 선생님께 당한 창피를 숨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 진정한 실제를 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으로 부족함을 돌파했기 때문에, 그로써 스승의 자기를 향한 특별한 고마움을 세상에 전할 수 있었던 것. 그랬지 않았다면 공자님은 인류의 스승일지 모르나 자공에게만은 한 번의 잊지못할 언어폭력으로 평생 씻지 못할 모멸감을 가르쳐준 냉정하고 혹독한 비평가로 기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엔 뭇 사람의 관대한 선생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뒤로는 냉혹하고 혹독한 비평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선생들에게 순종한답시고 자기를 책망하여 괴롭히는 것으로 자기가 더 발전되고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회개란 노상 타박할 거리를 발견해 자기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더 나아지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로도 모자랄 텐데 책망과 괴롭힘으로 어떻게 나아지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항상 자기 곁에서 자기와 각축하며 물어뜯고 있는 이리를 선생이라 여기는 것이다.


실제 공자를 그런 도덕적 꼰대로 비평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공자 자신 때문이 아니라 공자를 그렇게 이해한 꼰대 제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스승의 가르침이 실제로 일어난 큰일이라도 되는 양 받아들였다. 그러니 가르침으로 생긴 가능성으로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르침에 매여 버렸던 것이다. 스승이 야단을 치지도 않았는데 늘 야단맞는 학생처럼 도덕적 훈계나 받고 있으니, 어느새 나나 남이나 여기서 벗어나 함께 높이 날고 멀리 달아나려는(高飛遠走) 진취(進取)의 사람이 될까. 그런 진취적인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끌어내려 자기보단 아랫길에 묶어 두어야 마음이 안전해지고 기분이 흡족해지고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그런 자들은 입만 열면 스승을 핑계로 삼고 말끝마다 스승의 말씀을 빙자하지만 스승처럼 누군가 배우려는 자를 일깨워 지금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해주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반대로 배우려는 자를 끝내 못 배우게 막아 현재 상태에 감금시키고 그의 가능성의 무한한 자유를 박탈하는 데만 스승과 그의 말씀을 써먹는다.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은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는 말 뿐이다. 그들은 자기보다 더 진취적인 사람이 주목 받는 것을 발견하면 언제나 사려 깊은 모양으로 점잖게 한마디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위태롭다.’ 그들은 복음서에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2)는 말은 잘도 인용하지만, 그 말이 자신이 일삼고 있는 생활태도 자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언어폭력 정도는 폭력도 아니지. 그것이 폭력이라는 걸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점점 가식적이고 도덕적이 된다. 가식적이 될수록 도덕적이고 도덕적이 될수록 가식적이니 가식과 도덕은 마침내 그들에게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 번도 스승의 가르침을 가능성으로 삼아 고비원주(高飛遠走)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승의 말씀을 진리의 테두리랍시고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시험하고 낙인찍고 왕따 시키고 아주 살지를 못하게 온갖 구설(口舌)로 괴롭히는 도덕적 꼰대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에 이르렀지만 기원전 479년에 돌아가신 양반이 다시 죽는다한들 스승의 가르침에 값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일깨울 수 있을까. 자공이 스승의 가르침에 붙들려 자기를 책망하며 꼼짝도 못했고 꼼짝하려는 동료들까지 책망으로 꼼짝 못하게 했다는 소린 들어보지 못했다. 자공은 더욱 더 의기양양해지려는 자기의 길을 더욱 더 의기양양하게 구축해 갔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향한 스승의 질책의 뜻임을 깨우쳤으니 공자의 핵심제자라 할 만한 것이다.

설마 사람들이 생각하듯 공자께서 자공의 의기양양을 시기해 ‘그냥 놔둬선 안 되겠구나’ 기세를 팍 꺾어놓으려 작심을 하시고 “사(賜)야, 너 정말 엄청 나대는구나. 아주 나를 능가하는구나.” 그러셨을까? 그런데 도덕선생들은 누군가 보기 싫은 사람(그들은 왜 보기 싫을까?)을 발견하면 이런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럴 땐 공자도 앉지 않으셨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판단하는 권위의 상석에 스스로 앉아 겸손을 가장한 훈계로 거드름을 떤다. 근엄한 목소리에 추상같은 질책을 담아 야비한 비웃음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책을 한다나!


과연 공자께서 이 말씀을 그렇게 하셨던 것일까? 그랬다면 자공이라도 ‘나에겐 내가 너무나 아까워 당신과 나는 여기까지’하면서 얼른 다른 스승을 찾았을 것이다. “사(賜)야, 너는 뛰어난가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도 없는데.” 공자님은 부드러움과 해학과 여유와 너그러움 가운데 제자를 향한 칭찬 감탄 격려 사랑의 가르침을 담았던 것이다.


「헌문(憲問)」편의 그 다음 말씀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不患人之不己知, 患己不能也)인 것은 자기를 인증하려 안달하는 제자를 향한 스승의 독려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그럴 겨를도 없다는 말은 얼마나 본받아 쫓아가고 싶은 배우고자하는 사람의 달려갈 길인가. 공자가 추상같은 질책을 담아 진짜 인신공격을 하며 비웃고 미워했던 자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2.


만장(萬章)이 물었다. “공자(孔子)께서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내 고향의 선비들은 과격하고 단순하고 진취(進取)하려 하되 그 초지(初志)를 잊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공자(孔子)께선 왜 진나라에 계시면서 노(魯)나라의 광사(狂士, 과격한 선비)들을 생각하셨던 겁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셨다. “공자께선 ‘중도(中道, 비진리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운 도〔진리〕)’에 부합한 제자를 얻어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 나는 반드시 과격하고 고집 센 사람(광견, 狂獧)을 택할 것이다. 과격한 사람(광, 狂)은 진취(進取)적이고 고집 센 사람(견, 獧)은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所不爲)는 지조(志操)가 있으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어찌 중도의 사람을 바라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반드시 얻을 수는 없기에 그 다음(차(次), 광견)을 생각하신 것이다.”


“어떤 걸 과격하다(狂)고 하는지 또 여쭙습니다.”


“(공자의 제자들)금장(琴張), 증석(曾晳), 목피(牧皮) 같은 사람들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과격한 사람(狂者)이다.”


“어째서 과격한 사람(狂)이라고 합니까?”


“그 뜻이 크고 말이 커서 ‘옛 사람은, 옛 사람은(이랬었는데, 저랬었는데)!’하는데, 평소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 현실이)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따라가지 못함을 늘 괴로워했다는 말). 이와 같은 과격한 사람(狂者)도 얻지 못하게 되면 불결(不潔, 더러움)을 달가워하지 않는 선비를 얻어서 가르치고자하셨으니, 이것이 (비루한 데는 가담치 않겠다는)고집 센 사람(獧)이다. 이 또한 차선인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안에 들어오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조금도 유감으로 생각지 않을 사람은 오직 향원(鄕原, 시골선비(촌양반)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사이비 군자, 자기의 위선을 깨닫지 못하는 위선자를 가리킴)뿐이다. 향원은 덕(德)의 적(賊, 도둑, 해치는 자)이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향원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어찌 그리 매사에 뜻과 말이 큰지(항상 올바르고 도덕적인지) 어쩌자는 것인가? 말이 자기의 행동을 돌보지 않고 행동이 말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옛 사람은, 옛 사람은(이랬거늘 저랬거늘)!’이라고 되뇌는 자들이다.(옛 성현들의 말씀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데만 써먹는다는 말). 하는 짓이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친근함이 없고 차가운가?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게 살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할 말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속생각(진정한 자기 실력)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들이 바로 향원이다.”


만장이 말했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원인(原人,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일컬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인이 아닐 수 없을 텐데 공자께서 ‘덕의 도적’이라고 하심은 어째서입니까?”


“그를 비난하려 들면 이것이라고 들게 없고, 그를 풍자하려 들면 풍자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언제나 모두에게 아첨해 책잡히지 않을 정도의 소리만 하니까.) 유속(流俗, 세상평가)과 적당히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적당히 합류하며 (행동하지 않고)가만히 있으니 마치 신뢰할 만큼 신중한 듯하고, (그런 방식으로)행동하는 것이 청렴결백한듯하여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도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부류들과는 ‘요순(堯舜)의 도(道)(진리의 세계, 기독교에서 하나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실제로 변화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는 말)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들(도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자께선 ‘나는 사이비(似以非, 비슷하나 아닌 것)한 자를 미워한다’고 하셨다. ‘가라지(莠)를 미워함은 그 곡식의 싹(苗)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말을 잘 둘러대는 자(佞)를 미워함은 그 의(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구변(口辯)만 좋은 자를 미워함(惡利口)은 그 신용(信用)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다.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미워함은 아악(雅樂, 아름다운 음악)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자줏빛(紫)을 미워함은 그 붉은빛(朱)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 덕(德, 본질)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다.’ 라고 하셨다. 군자(君子)는 상도(常道, 경전(經典)의 말씀이 가리키는 도(道)의 경지를 향한 일관된 추구)를 회복할 뿐이다. (선비(지식인)들의)상도가 바르게 전파되면 서민들까지 깨어나게 되고 서민들이 깨어나게 되면 그때야 세상에 사특(邪慝, 혼란을 일으키는 요사스러움)이 없어질 것 아니겠느냐.”(󰡔맹자(孟子)󰡕 「진심(盡心)편」).


3.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고수는 곳곳에 널렸으나 오직 한 분 스승은 마음에 있다. 그러니 모든 일에 자라나는 배움의 뜻을 품었다면 도처에 스승이 아닌 게 없다. 온갖 곳에 고수와 스승이 널렸으니 인생은 ‘도장(道場) 깨기’와 같은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 검술 대가로 명성을 남긴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 1584~1645)는 13세부터 29세까지 60여회의 진검승부(眞劍勝負)를 벌여 이겼다고 한다. 그는 ‘천일(千日)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일(萬日)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 단련(鍛鍊)이 있어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검승부란 목숨을 내놓고 하는 대결이다. 지금이야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사무라이 시대를 살았던 그에게 진검대결이란 자기시대를 변명과 타협으로 회피하지 않고 정직히 살아가는 오직 하나의 길이었을 것이다. 목숨을 건다는 걸 현대에 비유하자면 지금까지의 전존재를 걸고 승부를 내려는듯한 삶(배움)의 태도쯤 되지 않을까.



영화 <바람의 파이터>(2004)의 모델로 ‘극진공수도’를 창시한 재일한국계 무술인 최영의(崔永宜, 최배달), 1923~1994)도 이 ‘도장깨기’로 전설이 됐었다. 그러나 그가 진짜 가르친 것은 오로지 극기(克己)였다고 한다. 온갖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 거기엔 더 이상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파이팅(fighting)이 중요하다.


굴종은 영원히 패배하고 마는 것이지만 패배는 부단히 발전해나가는 죽음이기 때문에, 파이팅에 있어서는 굴종보다 패배가 차라리 낫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통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런 파이팅을 내면에 품은 굴복하지 않는 도장깨기로서의 인생수업을 권한다.


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듯이, 칭찬은 사람됨을 달아 본다”(잠 27:21).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다른 결점은 몰라도 사람됨이 교만한 건 죽어도 못 고친다.’


‘잘난 척하는 놈치고 끝까지 잘난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신공격성 잔인한 언어폭력까지. 나는 이런 말들을 무수히 들어왔다. 깨우침은 그것을 찾는 이의 통상적 사유와 인식을 강제중지 시키는 신적(외부의) 영감이지만, 이런 영감은 원치도 않는데 찾아와 나의 목숨(역사와 전통)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테러와 같았다.


잔혹한 말들은 나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나를 해체하고 바꿨다. 내가 다시 살아가기 위해 나를 해체하고 갈아 부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에게 왜 그런 말들을 했을까? 나는 왜 그런 말들에 괴로워하고 양심을 찔려했을까? 내가 정말 잘 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혹은 잘 나지도 않았으면서 잘난 척을 했단 말인가? 누군가의 인정에 그토록 기대 살았던 결과인가? 그들과 나 사이에 정말 이런 말들만큼의 중대함과 각별함이 요구될 만큼 실재한 쟁투가 있었던 것일까?


문제는 그들이 내가 나름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던(계시록 6:2) 나의 대적이 아니라, 대개는 내 동료들이나 선생들이었다는 점에 있다. 적이 아니라 동료에게 내가 인간실격을 선고받는 전도된 상황에 직면하면 마치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듯한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그럴 때 순종은 진짜 죽음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나는 광견(狂獧)의 기질이 있어 아주 기가 죽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학이 한 진취적이고 고집 센 동료에 대한 경계와 시기와 질투와 공격의 언어폭력으로 왜곡되는 모양들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굴복하지 않는 광견(狂獧)의 과격과 지조와 그 우월감이 나를 부단히 단련시키고 발전시켜 주었다. 내 나름대로는 도장깨기에서 그들이 패배한 것이고 내가 이긴 것이다.


공격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의 허점을 잘 안다.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상대가 더 놀라고 아프고 괴롭고 부끄럽고 두고두고 못 잊어할지를 기막히게 안다. 그러나 그걸 아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싸움에는 하나의 기술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많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다. 그러나 많은 기술과 함께 하나의 기술이 반드시 더 필요한데 그것은 놀라지도 쓰러지지도 절망에 빠지지도 않는 침착함이다. 침착은 초연이고 그것은 거기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 있는 자유로움이다. 정신의 자유와 그 능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비유컨대 그 상태는 결투에서 상대방이 먼저 나에게 일격을 가한 것과 같다. 언제나 이제는 내 차례인 것이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 나름이다. 공자님 정도라면 받아들일 만하겠지.


그러나 너나없이 도토리 키재기로 시지프스의 언덕을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는 고만고만들의 도덕적 품평을 일일이 받아들여 그런 쩨쩨한 훈계에 행여 저촉이 될까 눈치를 보는 식으로 날마다 과격과 진취와 지조를 찍어 눌러 겸손해지려한다면, 그건 겸손이 아니라 함께 같잖아지려는 한심한 노릇이랄 수밖에. 겸손이란 유무형의 내세워진 권위와 권력 앞에 옷깃을 여미고 밥을 굶은 듯 무기력한 게 아니라 자기를 인식하는 정직을 잃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카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최후의 저서에서 ‘젊은 날의 꿈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듯이, 처음 뜻(初志)을 저버린 허리굽힘이 어떻게 겸손일 수 있으랴. 그러나 함께 부단히 자라가려는 벗을 향한 이런 겸손이라면 어떠냐. ‘그대는 뛰어난 것 같구려. 나는 아직도 그럴 겨를이 없다네.’ 친구라 하고 제자라 하고 동료라 하면서 고작 비웃음과 깎아내림으로 도덕적 우위와 안전을 확보하는 정도라면 그것은 이미 내가 그를 능가했다는 뜻이니 안심해도 되겠다. 옛날 어느 스승님께서는 누군가에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충고를 듣고는 이렇게 답했다나. ‘익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숙이는 벼는 병든 벼’라고. 대개 말과 말의 진실이 이와 같다.


5.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어느 영화에서 본 누군가의 묘비명이다. 거기서 말하는 주인공의 혁명이란 인식과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혁명은 너무나 급진적이기 때문에 개혁이 좋다고 한다. 그것이 어디서 왜 나오는 말인 줄 모르기 때문에 혁명이라면 겁부터 내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원하는 개혁이란 결국 아무 변화도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교회든 세상이든 개인이든 개혁을 말하려한다면 그것은 말할 게 아니라 내가 개혁을 위해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너는 할 만하니까 그런 속편한 소리나 지껄인다고 나무랄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는 줄 아느냐고. 너도 그 속에 있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 거라고. 너의 비평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얼마나 사려 깊고 진중한 사람들이 많은 줄 아느냐고.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들에게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굳이 당신들이 상상하는 어떤 구체적이고 급진적인 손해가 예상되는 외부적이고 행동인 상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어디까지나 당신 자신과 당신의 시공간을 변화시키는 내면적 인식과 태도의 문제라고 안심을 시켜 주어야할까?


아,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세상이 뭐라든, 어떻게 비평하든, “너희는 너희에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인해 자기를 책망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로마서 14:22). 밤새 도박판에서 영혼까지 남김없이 다 올인(All-in)하고 돌아와 속기사 앞에서 러시아 민족의 구원과 메시아적 사명을 구술(口述)하던 도스또옙스끼처럼.


“여러분은 늘 깨어 있으십시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십시오”(고린도전서 16:13).


딸들아 나의 청년아, 인생은 도장깨기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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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뜻이 있어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기도의 일정은 열하루로 정해졌다. 주일 지나 월요일에 길을 떠났고, 길 떠난 다음 주 금요일에 말씀을 나눌 신우회 예배가 있어 목요일까지는 돌아와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열하루의 일정이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성의 명파초등학교에서 파주의 임진각까지의 거리를 열하루의 일정으로 나누니 조금 무리다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었던 것도 일정을 정하는데 있어 큰 몫을 했다.


일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는데, 곰곰 그 의미를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같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천성환 목사님은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다.


길을 걷다가 만난 벽화.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는 옆집으로 소금을 얻으러가던,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샬롬!

폭염에 목사님 건강을 지켜 주시길 손 모읍니다. 전 요즘 성도들과 함께 민수기 말씀을 큐티하고 있는데…,


모세와 함께 시내산을 출발하여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는데, 도중에 메추라기 일로 한 달을,, 미리암이 모세를 대적한 일로 일주간을 광야에서 더 머물러야 했지요. 정탐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는데,,, 정탐을 고집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면서…


인간의 명석한 이성(?)이 당대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실감합니다.


목사님의 열 하룻길의 걸음이 제 목양 사역에 돌아가는 길이 아니길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목사님의 발걸음!》



가데스바네아는 길을 걸으며 묵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주일을 맞아 혼자 예배를 드리며 가데스바네아를 생각했던 것도 천 목사님의 글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목회와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걷는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교역자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회의를 마치고 마주앉아 식사를 하던 고신복 목사님은 걷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성서원어를 공부하는 일에도 열심인 고 목사님은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꼭 걸어보고 싶다며 내가 걸었던 일정표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함 장로님이 만들어 주신 로드맵을 메일로 보냈더니 정성이 담긴 답장을 보내주었다.


들판에 서 있는 솟대. 허름한 솟대지만 그것을 세운 이의 마음은 지극했을 것이다.


샬롬

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를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로드맵을 읽으면서 처음 출발하셨던 명파초등학교가 제 장인어른이 교장으로 처음 발령 나신 곳이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걸으신 명파초등학교에서부터 임직각까지의 로드맵이 출애굽의 로드맵 가운데 라암셋(고센)부터 마라까지의 여정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의미를 부여 해 보았습니다.


1) 여정에서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200만 정도의 사람들이 하룻길을 걸은 거리와 목사님이 하룻길을 걸은 거리가 거의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은 로드맵은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고센에서 마라까지를 제한한 거립니다. 출애굽한 백성들도 거의 하루에 평균 30km를 걸었는데 목사님도 하루에 평균 30km를 걸으셨네요.


둘째로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하여 마라까지 걸린 일자가 10일인데(제가 조사해 본 지금까지의 자료를 통해서 보면) 그 기간 동안 걸으셨네요. 유대의 날짜는 오후 3시를 관습에 따라서 하루를 시작하는 저녁의 시작이라고 보고 오후 6시를 저녁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사님께서 점심 식사 후에 명파 초등학교를 출발했다고 보면 유대 날짜의 계산으로 보면 10일이 되네요.


2) 의미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임진각’까지 도착했을 때 많은 교훈을 얻으신 것을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듣고 싶었지만 많은 것을 전해 듣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30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시면서 많은 싸움을 하셨을 텐데 그 싸움에서 승리한 교훈을 가지신 목사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목회의 여정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에 앞서서 십계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교훈(법도와 율례)을 받은 곳이어서 마라가 마치 임진각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해 주신 후에 ‘법도와 율례’(출 15:25)를 주셨는데 그것은 십계명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법도(호크, ‘하카크’ <새기다> : 엄중한 계명으로 십계명 1-4번째 계명에서 표현할 때 사용)는 보통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고(아닐 때도 있지만), 율례(미쉬파트, ‘샤파트’ <재판하다> : 인간 사이에서 재판하는 것으로 5-10번째의 계명에 사용)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주어지는 법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제가 로드맵을 받은 후에 마음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가 목회하면서 어떤 액티비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11일간의 수고한 여정을 제가 복사하듯이 마음에 품었다가 언젠가 한 번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들었습니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출애굽을 했던 백성들을 생각하고, 그 가운데서도 고독했을 것 같은 모세를 생각하면서 한 번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목회의 전환점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제 마음에 새겨 주실 법도와 율례를 생각하고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요즘 목회의 한계라 할까요? 많이 힘들었는데 무엇인가를 다시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볼까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언제 멈춘 것일까, 경운기를 온통 칡순이 덮고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해주는 것이 있다. 되늦게서야 알게 되는 의미도 있다.


생각지 못하고 보낸 일정, 그러나 두 목사님의 글은 내가 걸었던 길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다. 우연히 정한 일정이었지만 그 안에도 얼마든지 마음에 새길 나도 모르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의미들이 있다. 돌아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H. D. 소로우가 했던 말도 어렴풋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17. 오래 걸으니 http://fzari.com/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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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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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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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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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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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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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0)


지혜의 문장을 들어야 하는 이유


문학성과 예술성을 삭제한 논리적 용어가 학술적 가치를 드높이고 학문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가 있다. 지식을 다루는 학자들의 세계다. 그 세계의 문장들은 길고 감동 없기 일쑤다. 나도 어느새 문학적인 감수성과 예술성, 그리고 상상력을 살려내지 못하여 심미성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독자가 되어 있다. 독자로서의 시간이 길어지면 저자가 되기도 하는데, 가끔 단 한 줄 문장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할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이 틈바구니에서 신학적인 것에 문학성을 녹여 서로의 자양분이 된 글쓰기를 꿈꾼다. 운율과 리듬, 비례와 조화가 어우러진 구약 지혜서 문장의 숭고한 아름다움처럼.



구약 지혜서의 문장은 오랜 세월 갈고 닦여진 함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지혜의 문장은 장황한 설명문이 아니라, 예술적인 시의 언어라서 더 매력적이다. 적은 낱말의 문장으로 많은 생각을 전한다. 글은 간결하지만, 생각의 굴곡을 만드는 문장의 예술성이 마음을 동요시킨다. 특히 구약의 《잠언》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저자들에 의해 오랜 세월 수집된 짧지만 격조 있는 문장들의 모음집이다. 잠언의 표제(1:1)는 저자로 보이는 솔로몬 이름이 등장하지만(10:1; 25:1), 솔로몬 이외의 다른 저자들의 글이 포함되었다. ‘지혜자들’(하카밈)이라 불리는 집단(22:17; 24:23), 그 밖에도 아굴(30:1), 르무엘 왕의 어머니 교훈(31:1)이 지혜 잠언의 원천으로 언급된다.


무엇보다 잠언은 구약의 다른 책들과 달리 책의 머리말처럼 글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1:2-6). 압축의 극치를 보이면서 시사성이 높다.


지혜와 훈육을 알기 위함이요

명철한 말을 깨닫기 위함이요

훈육을 받기 위함이요

정의와 공의와 공평을 꽃피우기 위함이라

(1:2-3, 필자의 번역)


잠언의 목적은 지혜와 ‘훈육’을 알고 통찰력 있는 말씀을 깨닫는 데 있다(1:2). 한 마디로 앎과 깨달음을 위함이다. 《개역개정》이 ‘훈계’로 번역한 히브리말 단어 ‘무싸르’는 ‘훈육’으로 표현함이 더 좋겠다. 훈육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훈련의 과정이 두루 포함된 말이다. 권위자의 말잔치가 아니다. 구약의 성문서 전체에서 50회 사용된 이 단어는 잠언에서만 36회 사용될 정도니 책의 성격을 규정한 셈이다. 더군다나 ‘훈육’은 ‘훈련하다’, ‘단련하다’(야싸르)에서 파생된 말로서 몸과 생각의 훈련을 일컫는다. 한 마디로 ‘훈육’은 ‘삶의 훈련’이다. 삶의 훈련은 앎과 관계된 것이면서 명철한 말을 깨닫는 것과 통한다. 그러하니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삶의 과정 안에서 터득하게 된다.


그럼에도 잠언의 목적은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분별하고 체득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잠언의 둘째 목적은 ‘정의’(쩨덱), ‘공의’(미쉬파트), ‘공평’(미샤림)을 꽃피우는 삶이어야 한다(1:3). 이것은 삶의 도리를 익혀 배양해야 할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이다. 그 목적이 ‘정의(rightness), 공의(justice), 공평(equity)’을 꽃피우는 삶이어서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법적이며 사회 공동체적인 덕목을 실천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잠언의 목적과 함께 지혜의 가르침을 들어야할 일차적인 대상은 젊은이와 어수룩한 자들이다.


어수룩한 자들에게 노련함을 주고,

젊은이에게 지식과 신중함을 주기 위함이다

(1:4, 필자의 번역).


히브리 시의 간결한 아름다움이 오롯한 평행구문에서, ‘어수룩한 자들’(페타임)과 ‘젊은이’(나아르)는 동일시된다. ‘젊은이’는 아직 미숙하고 풋내 나는 청춘들로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고대인들 눈에 젊은이는 경험이 부족하여 어수룩하다. 때문에 잠언 곳곳에서 젊은이들은 어수룩한 사람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잠언을 읽어야할 독자는 단지 젊은이였나? 아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1:5, 개역개정)


대체로 나이든 사람은 젊은이가 터득하지 못한 삶의 경험에서 삶의 기술을 발휘하곤 한다. 이것은 나이든 사람의 이점이지만, 경험적 지혜를 의지하여 배움의 열정은 시들해진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명철한 사람은 타인의 조언을 듣고 배움을 더해간다. 한 마디로,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 경험적 지혜에 머무르지 않고 ‘들음’을 중히 여겨 거기서 “지략”을 얻는다. “지략”(타흐불로트)은 어렵고 독특한 말이다. 사전적인 의미는 방향을 잡는 기술 또는 지혜로운 조언이다. 그러니까 지략은 미숙하고 서툰 솜씨가 아니라 복잡 미묘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선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고, 윤리적인 삶이나 지혜로움으로 잘 다듬어져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통찰이다. 그러하니 지혜로운 자는 들음의 중요성을 알기에 들음에서 신중함을 배우고 삶의 복잡 미묘한 기술까지 터득한다.



마지막으로 잠언의 목적은 “잠언과 비유,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개역개정)을 깨닫기 위함이다(1:6). 이 간결한 문장에서 잠언과 지혜자들의 말의 성격이 드러난다. 지혜자들이 생산한 짧은 문장은 오랜 세월동안 닦여진 농축된 언어다. 그 형태는 대체로 ‘풍자’와 ‘수수께끼’였던 셈인데, 구약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매우 희귀한 단어가 “비유”(개역개정, 새번역)로 번역되었다. 좀 더 정확한 히브리적인 표현을 하자면, ‘풍자’다. 풍자는 어떤 사안을 두고 빗대어서 재치 있게 경계하거나 비판하는 말이다. “오묘한 말”(또는 “심오한 뜻”, 새번역) 역시 희귀한 말이다. 일종의 “수수께끼”인데, “당황스러운 질문”, “불가사의한 질문”을 뜻한다. 그러니까 잠언의 목적이 당황스럽고, 불가사의한 질문을 깨닫기 위함이니 실로 인생은 수수께끼 같은 난제로 가득하다는 말로 들린다.


이처럼 잠언의 머리말(1:2-6)은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와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잠언의 가치와 목적을 밝혀 지혜의 가르침을 듣도록 초청하는 부름이다. 이 부름은 들음을 통한 젊은이의 품성 교육을 위함이다. 또한 도덕성과 통찰력을 얻는 훈련이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지혜자의 말과 글을 깨닫고 해석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하여 고대 지혜자들의 간결한 문장들을 엮은 잠언은 수수께끼 같고 불가사의한 삶을 어떤 방향에 맞추어 살 것인가 안내하는 가르침이다.


고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의 배움은 인격을 다듬는 수련의 과정이 아니라 갖가지 자격증과 높은 시험점수를 획득하여 경제 논리에 만족시키는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다. 얼마짜리 인간을 만드느냐에 혈안이 된 교육은 학벌과 돈을 숭배하는 사회와 통한다. 우리의 배움이 구약의 잠언처럼 삶의 난제를 풀어가는 통찰력과 덕성을 키우는 삶의 훈련이면 얼마나 좋을까. 창조자이며 구속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고대 지혜자의 잘 다듬어진 간결한 한 줄 문장이 읽는 이의 삶을 충만하고 아름답게 조율하듯, 우리의 배움이 구약 잠언의 목적과 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옛적 말씀이 낡아보여도 그 맛은 나날이 새로우니.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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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5)


혼자 드린 예배


걷는 기도의 일정이 열하루였으니 도중에 주일이 한 번 들어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주일이 되면 걷기를 멈추고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드려야 할까, 그런 뒤에 다시 걷기를 이어거야 할까, 아니면 계속 걸을까…,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다. 계속 걷기로 했다. 주일 예배 설교를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걱정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또 하나 이어지는 고민, 그렇다면 걷다가 만나게 되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러다가 그것도 결정을 내렸다. 그것 또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혼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일정을 보니 주일을 맞게 되는 곳은 화천이었다. 화천은 친구 목사가 오랫동안 목회를 한 곳으로 아는 후배 목사들이 있는 지역이었다. 잘 알고 있는 장로님들도 몇 분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불쑥 예배 시간에 맞춰 한 교회를 찾아들어가 예배를 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그건 아니겠다 싶었다. 그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그날 관심의 중심은 내가 되고 말 터였다.


길을 걷다가 만난 주일, 조용한 계곡에서 혼자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돌아보니 혼자서 드린 예배가 아니었다.


화천을 떠나 다목리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새 아침 7시, 성지교회에서 1부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함께 마음을 모았다. 9시 즈음엔 2부 예배를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의 모습이며 찬양대의 모습이며 주일에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 선하게 그려졌다. 그러던 중 11시가 가까워졌다. 이왕이면 섬기는 교회의 예배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예배하고 싶었다.


혼자 예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걷고 있는 도로 옆으로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었는데, 때마침 계곡으로 향하는 포장된 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예사롭지 않은 오토바이에 교통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멋스러운 옷차림, 한눈에 보기에도 오토바이 즐겨 타는 사람이다 싶었다.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파주에서 떠나 화천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훌쩍 길을 나선다고 했다. 표정에서 묻어나는 여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다 싶었다.


내 일정을 듣더니 대단한 결정을 했다며 마치 자기의 일처럼 좋아라 한다. 오토바이와 도보, 방법은 달라도 모두가 길을 가는 사람들, 잠깐 사이에도 왠지 모를 동류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믿음과 사역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서 동류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야기를 나눈 뒤 길을 떠나는 그분께 조심해서 가시라 인사를 하며 “이 오토바이를 얻어 타면 제 목적지 파주 임진각까지 금방 갈 텐데요.” 했더니 “정말 그러네요. 그럴래요?” 하면서 호탕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두두두두둥…” 오토바이 배기음 소리가 낮고 묵직하면서도 듬직했다.


새들과 계곡물이 찬송을 했고 나무들이 기도를 했다. 

뜻밖에도 축도는 바람이 맡았는데, 더없이 은혜로웠다.


가까운 곳 나무 그늘 아래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리고 마음을 모은다. 혼자 드리는 예배는 얼마만인가.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어딘지도 모르는 계곡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 가만히 눈을 감자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도 있었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있었다.


이어 찬송 시간, 누가 찬송을 할까 할 때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는 또 다른 새소리로 이어졌다. 바로 앞 물소리도 화답을 했다. 아름다운 조화로 이루어진 훌륭한 찬송이 한참 이어졌다.


다음은 기도 시간, 누구든 기도를 하렴, 하며 눈을 감았다. 나무가 기도를 했다. 나는 오직 나일뿐입니다, 내가 선 자리 사랑하게 하소서, 다른 나무 다른 자리 다른 높이 부러워하지 말게 하시고 다만 내 잎과 꽃과 열매를 피워내게 하소서, 어떤 폭풍우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뿌리 깊게 내리게 하소서, 나무의 기도가 이어졌다.


다음은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가데스바네아를 생각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초입,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걸음을 되돌리고 만다. 가나안 정탐으로 인해 불거진 불순종이 그들의 걸음을 되돌리게 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과 그 소리를 듣고 밤새도록 울부짖었던 백성들, 가데스바네아는 복과 화를 가르는 극명한 분기점이다.


예배 후 성찬처럼 먹은 호두과자. 

누군가의 정이 누군가에게는 성찬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아찔한 분기점에 선다. 그곳에서 어떤 이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들은 복을 등진 채 광야로 돌아선다.


마지막 축도 시간, 눈을 감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한 바람이 계곡을 따라 불어왔다. ‘바람’은 ‘성령’과 같은 단어, 몸도 마음도 바람에 내맡겼다. 꼭 필요한 손길이 온 몸과 맘을 부드럽게 시원하게 어루만졌다.


예배를 마치고는 성찬을 나누듯 호두과자 몇 알을 먹었다. 전날 화천을 찾아와 저녁을 든든하게 사 준 이 장로님이 사 온 과자였다.


조용한 계곡에서 혼자 드린 예배는 참으로 호젓하고 평온했다. 마음속 지문처럼 남을 드문 예배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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