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부제(副題)는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다. 읽으니 우선 글이 저자의 인품처럼 잔잔하고 진진하다. 묵직한 중량감이 독서를 차분하게 한다. 인용된 예레미야 시대의 정세와 동요는 화염과 폭풍 같을지라도 그 숨 가쁜 현실을 행간에 묻어둔 채 담백하게 기록된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 내려가는 저자의 말씀을 대하는 진중한 숨결이 느껴진다.

 

실존이 놓인 현실과 더불어 가는 슬픔

 

그것은 우선 겸손한 자세다. 어떤 겸손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腹中)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태(胎)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4,5)”,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니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훨씬, 무한히」, 나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너무나 바쁘고 들떠있는 주변세상의 속력과 속도에 제압당하며 살아가는 세태 속에서, 이런 걸 느끼기도 어렵지만, 드러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저자는 아마 예레미야서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걸 발견한 것 같다. 그래서 그것부터 느끼게 해준다. 복중에 짓기 전에, 태에서 나오기 전에, 열방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첫마디로 지극한 슬픔을 표명한다.

 

그 슬픔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현실과 직면한 민생의 고통과 다가오는 멸망의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와 더불어 있다. 그것은 차분한 사람의 슬픔이고,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다. 그는 세상의 선지자로 나서기 전, 남에게 무언가를 표명하기 전 이런 슬픔의 고백을 품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 풍경은 그래서 읽기도 전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거라고.

 

그러나 독자들이 저자를 따라 하루하루 시간을 들여(그렇게 읽으면 좋겠다) 예레미야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삶과 존재의 신비에 대한 경외와 실존의 고백으로부터 나오는 겸손함과 그러한 자기부인이 주는 뜻밖 은총의 휴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신비일지라도 실존이 놓인 현실과 더불어 가는 슬픔이고, 피치 못하게 선택받은 선지자(先知者)의 슬픔일지라도 자기는 물론 이 세상 전체를 부인함으로써 영생을 따라가는 은총의 과정이다.(자기를 줌〔버림〕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가능의 영역에서 가능한 꿈과 비전으로 우리들의 행복한 세상을 건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 비현실의 현실을, 그러나 그런 것이 없을지라도 가능하고 소멸되지 않는 소망의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의 양식(성만찬, The Holy Communion)일 것이다.

 

 

하나님은 달변가를 원하시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저자의 손가락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관심이 늘 이 세상의 중심보다 구석진 곳, 외진 곳, 그늘진 곳, 그래서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외면당하는 곳,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무명의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고 가리켜준다.(「하나님의 방법」) 그것은 무명(無名)이나 유명(有明), 예레미야가 그랬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자명하다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굳이 손가락까지 짚어가며 읽음으로써 새롭게 발견하다니. 마치 본래 있던 대륙을 발견하고 그것을 ‘신대륙’이라 부른 사람만큼이나 신기하다.

 

저자는 그 항목의 결미에 이렇게 쓴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달변가를 원하시지 않는다. 어눌하더라도 당신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신다.(「나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43쪽) 그러므로 그것은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을 통해 용기를 낸 겸손한 사람의 의연하고 결의에 찬 선언이다.

 

예레미야가 살아간 시대에 예레미야는 지금 우리가 읽는 예레미야가 아니었다. 당대에 그는 예언자로 인정되지 못했다. 경멸받고 무시당했으며 욕설과 조롱과 투옥과 추방과 피체를 당해야 했고 원치 않는 곳(이집트)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예언의 말씀을 업으로 삼아 삶을 살아갔다. 그의 전 청춘을 다 바쳐서. 나라가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파국으로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의 예언서처럼 예레미야와 함께 우는 여정도 거기서 끝난다. 예레미야가 우리가 읽는 예레미야가 아니듯이, 예레미야와 함께 우는 독서 역시 항용 우리의 독서(우리 시대의 설교)와 같지 않는 점이 비상하다. 그 비상함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소망을 부풀리거나 억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일체의 욕망과 야망과 소망과 아첨을 거부하는 예언자의 예언자적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하나 결연하고 피동적이나 단호하게 행동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지시해준다.

 

겸손과 결의와 절제의 굳셈

 

설교를 업으로 삼고 사는 목사로서 동시대의 설교에 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지만 그 말은 다른 의미론 모두가 나의 경쟁자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때론 선의의, 때론 불만족과 저항과 대립의 경쟁이기도 하다. 모두가 선의의 경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교도 그 무엇도 선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하지만 설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바람직하다는 것보다 그저 어떤 사람이냐 정도의 무심함이 필요하다. 무심함이지만 과학성이 있는 무심함.

 

모두들 목표와 비전과 소망과 꿈과 야망의 구획된 프로젝트 안에서 발버둥치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한 총체적 불만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바로 그런 분주함과 분요함으로부터 지극한 샬롬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전파해야할 교회와 교회의 설교가 그러한 불만족의 표상이 되었다. 예레미야가 나와도 열 명, 스무 명, 백 명은 나올 법 한. 그러나 저자의 예레미야 읽기는 그러한 불만족에 대한 속 시원한 해법이 아닌 그래서 더욱 불만족스러운 해법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고전적이고 너무나 겸손하고 너무나 정중한 건지도.

 

그러나 바로 그런 겸손과 결의와 절제의 굳셈이 또 다른 섣부른 분요함을 추가하는 설교가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차분함과 고요함의 미덕(美德)을 일깨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심한 듯 치밀한 과학이 들어있는. 저자는 우리(나)로 하여금 예레미야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손가락을 짚어가며 예레미야를 읽는 사람됨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가시덤불과 묵은 땅을 내버려 둔 채 그 위에서 요란하게 믿음의 언구럭만 떨고 있는 것은 혹 아닐까?’(「언구럭을 떨지 말라」) 정말 싸워야할 것을 발견할 때까지, 그리고 정말 싸운다는 건 무엇인지, 저자는 마치 말과 경주하듯 끝까지 겸손과 결의의 손가락을 떼지 않는다.

 

*

일독(一讀)을 권한다. 매 회 분량은 길지 않다. 차분한 독서. 두런두런 들려주는 진진한 음성. 우렁우렁 울리는 마음의 공명. 그리고 예화로 꺼내보는 저자의 추억의 에피소드들 속에는 사람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맛깔스런 이야기와 빛나는 지혜가 담겨 있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저자를 만나면 비전(秘傳)으로 간수해온 오래된 고전의 신선함이랄까 하는 동화적(?) 발견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예레미야와 함께 울다󰡕를 통해 독자들이 동화 속 짤랑 거리는 금화와 같은 순결한 정신의 힘을 만나게 되기를. 여러 번역을 대조하며 짚어가는 저자의 손가락 끝에서 요란한 세상 가운데 본래 있는 평화를 찾아가는 좁은 문을 발견하기를. 깡그리 끔찍한 폐허일지라도, 웅덩이에 빠졌을지라도, 낮과 밤이 자신의 때를 따르는 한, 흔들릴수록 중심에 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기를. 흐르는 강물처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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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가야 할 길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는 율리오 2세의 요청으로 시스트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 대작을 그렸다. 그는 천장을 9개의 틀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34개 면으로 분할하여 작업했다. 이미 ‘피에타’와 ‘다비드 상’을 통해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그가 프레스코화를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교황과의 계약 때문에 마지못해 감당한 일이었다. 1508년에 시작하여 완성하기까지 했으니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위태로운 비계 위에 올라가서 거의 누운 자세로 그림을 그리느라 그는 건강이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아직 종교개혁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돈과 권세를 탐닉하는 타락한 교권에 대한 저항은 저 기층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완성할 무렵 그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자리에 예언자 예레미야와 요나를 그려 넣었다. 놀랍게도 예레미야의 얼굴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 두 예언자를 마지막에 그린 것일까? 옛 세계는 기울어진 담처럼 균형을 잃고 있었고, 새로운 세계는 그 형태를 드러내지 않은 시절이었다. 두 세계가 부딪치면서 증오와 배제의 언어가 넘실거렸다. 생각이 다른 사람, 교권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향한 적대적 시선이 유럽을 내부적으로 허물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 시대를 향해 참회하는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너지는 조국의 운명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슬피 울던 예레미야의 마음을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희철 목사는 “그럴 수 있다면 언제고 예레미야를 만나 실컷 울리라/여전히 젖어 있는 그의 두 눈을 보면 왈칵 눈물이 솟으리라”고 고백한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목회자로 살아가는 동안 그는 자기 시대의 모순과 어둠을 온몸으로 앓았던 예레미야의 심정에 깊이 동조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지도자라 하는 이들은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기 잇속 차리는 일에 발밭을 뿐이다.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라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평안이 없는 데도 평안하다, 평안하다 말하며 사람들을 혼곤한 잠으로 인도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신 차리라고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그 외침을 부담스럽게 여길 뿐, 삶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앞서 눈 뜬 이들은 울 수밖에 없다.

 

한희철 목사는 말하는 사람인 동시에 듣는 사람이다. 그는 이 땅 구석구석에서 자기만의 빛깔로 주어진 생명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너무도 평범하기에 누구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보편성의 보화를 찾아내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담배를 끊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백발노인의 회한이며, “하나님, 해두해두 너무 하십니다”라고 탄식하며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마음을 드러낸 여인, 굴참나무 껍질처럼 깊게 패이고 갈라진 틈을 따라 흙물과 풀물이 밴 손으로 땅을 만지는 정직한 농부들의 삶의 내력이 성경 이야기와 합류하고 있다. 예수는 종교적인 언어를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일상 속에 깃든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오롯이 드러내시지 않았던가? 일상 속에서 거룩함을 볼 눈이 없다면 성경에서 거룩을 발견하는 일 또한 불가능할 터.

 

이런 시선의 따뜻함과 깊이 때문일 것이다. 그가 두런두런 들려주는 예레미야 이야기는 예레미야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걸린 외줄을 육신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서도 상통하게 마련이다. 자기 시대의 아픔 때문에 슬퍼하는 예레미야의 마음에 한희철의 마음이 공명하고, 그 공명이 또 다른 공명을 일으킨다. 물결처럼 번져가는 공명, 그 깊은 울림에 우리 영혼을 잇댈 때 영혼은 깊어지고 맑아진다.

 

언어에 민감한 그는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 혹은 번역한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린다. 자기 가슴에 깃든 생각과 마음을 뒤적이며 글을 써온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글을 쓰는 이들은 구둣점 하나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그 마음을 알기에 그는 정성스럽게 텍스트와 마주한다. 그리하여 텍스트 혹은 기호 속에 다 담아내지 못한 숨겨진 메시지까지 읽어낸다. 주름 잡힌 텍스트인 성경은 그 주름 속에 깃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풍성한 세계를 열어 보이는 법이다. 친절한 훈장님처럼 한자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여주는 까닭은 언어 너머의 세계를 가리켜 보이기 위함이다.

 

성경에 대한 해석 권한을 독점하려는 이들이 있다. 물론 성경을 바로 읽기 위해서는 원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텍스트가 탄생한 시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도구를 갖추었다고 하여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말씀 속에 깃든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한희철 목사의 예레미야 읽기에 동참하려는 이들은 일단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성경 해석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는 이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주체가 되기보다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가늠해보려는 이들, 자기 삶을 새롭게 정위해보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어도 좋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 들춰보아도 상관없다. 그 어느 부분에서든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예레미야의 마음, 그리고 한희철 목사의 마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자기 얼굴로 예레미야의 모습을 그렸다면, 한희철 목사는 예레미야의 얼굴로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다시는 주님 말씀 전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때마다/뼛속을 따라 심장이 타들어가던” 그 마음, “애써 적은 주님의 말씀/서걱서걱 왕의 칼에 베어질 때” 함께 베이고 말았던 그 마음을 열 번 스무 번 혹은 수 백 번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길은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가야 할 길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의 동행자가 될 차례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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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경장(解弦更張)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일생을 닮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이라지 않던가?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얼굴 하나 보러 왔지,/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우리 삶이지.” 요즘 들어 함석헌 선생의 시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삶이 부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살아오는 동안 마주쳤던 그 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맑고 고운 얼굴, 따뜻하고 고요한 얼굴, 수심 가득한 얼굴, 비굴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독기 어린 얼굴…. 그러다가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아뜩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걷다가 창문에 얼비친 자기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얼굴을 ‘얼의 골짜기’라고 설명한 분도 계시지만, 우리 얼굴은 정확하게 우리 내면을 반영한다. 옛날 초상화가들은 대상의 외모만 그린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풍경까지도 그리려 했다 한다. 전신사조(傳神寫照)가 그것이다.


말이 장황해졌지만 내게도 아름다운 얼굴이 한 분 계시다. 민영진 박사님(이하 민영진)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6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 얼굴은 내게 시종 맑고 환하게 기억된다. 민영진은 학문의 즐거움과 엄정함을 가르치면서도, 학생들로부터도 배우려는 태도를 시종 견지하신다. 그런 학생 정신이야말로 그 얼굴에 깃든 맑음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몰강스러운 세태조차 민영진을 후락(朽落)의 자리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열정 따위는 시드럭부드럭 스러질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표현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신 듯하다.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언어에 예민하였기에, 그 여정이 시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은 일상적인 언어를 재배치하여 놀라운 이미지와 의미의 세계를 드러낸다. 언어의 올가미로 영원을 잡아채는 것, 바로 그것이 시적 순간이다.


민영진의 시는 과잉을 모른다. 놀랍고 기발한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심상에 떠오르는 것들을 관념으로 비틀거나 베일로 가리지 않고 직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하여 나이브하지 않다. 그 언어는 정갈하고 고요하다. 성품이 시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에게 시는 삶의 진실과 진정을 드러내는 통로이고, 삶은 시의 자양분이 된다. 지금 민영진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일상의 성스러움, 성경, 언어 등이다.




민영진의 삶은 아내인 김명현과 함께 빚어온 작품이다. 그에게 아내는 “하나님의 숨/흙에 닿아 한 점 혈육/우주 바꾸고 몸 바꾸어”(<만물의 어머니> 중에서) 나타난 존재이다.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민영진은 기꺼움과 고마움으로 돌아본다. 유학생활 중에 잃었던 태중의 아기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그 둘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정서적 밑절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일어날 법한 소소한 일상을 엿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따스한 정과 유머 때문이다. 깔끔한 아내와 털털한 남편, 추위 타는 남편과 더위가 싫은 아내, 사랑의 표현을 갈구하는 아내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늘 티격태격한다. 손톱 발톱을 깎다가 궤도를 이탈한 녀석 때문에 방청소를 하던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 한밤중에 소변을 보고 변기 깔개를 내려놓지 않았다가 타박을 당할 때면 남편은 애꿎은 친구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여보, 당신도 알지 그 친구,

거 왜 가끔 그 모임에 나오는 그 키 큰 친구

요즘, 손톱 발톱이 다 빠졌대

면역력 결핍증이라나 뭐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 멀쩡했잖아,

손톱 발톱이 없으니까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 구실을 못하고

폐인(廢人) 같아 보여

- <손톱 발톱> 중에서


여보, 당신, 내 친구 김 아무개 알지?

비만이라고 걱정하던

그 친구 요즘 소변을 못 본대

터질 듯 마려운데 안 나온다나?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지가 다 젖어있다나 뭐라더라?

- <쉬> 중에서


나이 듦의 애잔함이 능청스러움과 버무려져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일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장성한 자식들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그 놀라운 손님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자못 따스하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신비이다. 손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우리에게 보내주신/한 편의 시(詩)”(<손자>)이고, 손녀는 “당신 품에 안고 있던 딸/예쁘게 키우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존재(<편지>)이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태에서 태어난 거룩하고 신비한 존재(<아이들아>)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신비함과 거룩함을 가리키는 징표로 우리 가운데 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안에서라면 늙어감조차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회한조차 없을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을 한껏 살아내기는 했지만, 어떤 일도 완전할 수는 없기에, 못다 한 일에 대한 회한이 그림자처럼 영혼에 드리우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은 맡겨진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하나님이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익숙했던 모국어가 서툴러지고, 그 때문에 메시지를 적절한 언어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청중들에게 익숙한 구문론이나 문법을 지킬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음과 하기 싫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바장이다가 그는 자신이 “늘 모국어를 배반하는 설교”를 해왔다고 자책한다(<날 건드리더라>). 짐짓 해보는 겸양의 말이 아니라, 준엄한 자기 성찰에서 빚어진 말이다.


그는 “광야의 포효(咆哮)”가 되지 못하고, 볼모로 잡혀온 이후부터 “침묵한 덕분에/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했”(<볼모>)다고 말한다. 민영진은 ‘그래도 이만하면 잘 해온 것 아닌가’ 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 자신의 허물을 폭로한다. 그는 “번역자는/오늘도/의미의 바다를 표류한다”(<표류>)고 노래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 심연을 드러낼 적절한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좌절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막막함을 견디며 그는 살아왔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떠날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산다. 인생의 마지막 날은 유예된 집행일 뿐, 그날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울 때는 울면서 왔었습니다만

돌아가는 날은

당신을 부르며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오라 하실 때

쇠약해진 이 몸 당신 품에 안기어

깊은 잠, 푹 들게 하여 주십시오

- <새 하늘, 새 땅> 중에서


시인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것들임을 절감하며 만물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식물, 동물, 바위, 흙과의 대화를 꿈꾸는 것이다. 우주의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처럼 그는 삼라만상에 빼곡히 적힌 글을 해독하고 싶어 한다(<사파리>). 그것은 인간의 오염된 언어 혹은 분절된 언어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어 너머의 언어가 필요하다. 구상 시인은 마음의 눈만 뜬다면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베란다의 봄 국화가 시든 화분에/제풀에 돋아난 애기똥풀이나/그 옆 수챗구멍 질척한 쇠그물에/오물거리는 새끼 지렁이를 보려므나!//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고 노래했다(<마음의 눈만 뜬다면>). 민영진이 당도한 세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그에게 세계는 신비의 정원이다. 마음의 눈이 열리자 늘 밥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이 희생제물임을 깨닫게 된다(<나물>). 몸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을 이루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물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호명 행위를 통해 그 나물들은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때가 되면 피어났다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스러지는 야생화 역시 그 생명 세계의 일원이다. “부레옥잠화, 금낭화, 물봉선화, 모싯대 꽃, 노루귀꽃, 등(燈)꽃….” 낯설기는 해도 그 귀한 야생화가 그곳에 있기에 세상이 온전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시인은 은근한 소망을 피력한다. “구름패랭이, 꿩의비름, 말나리 꽃, 뻐국나리, 솔나리, 금꿩의 다리, 천일홍(天日紅)…/내 이름도 너희들 사이 어디쯤에 넣어볼까/다시 태어나는 날, 한번쯤은/너희들과 함께 야생초이고 싶다”(<야생화>).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고쳐 맨다는 뜻이다. 시와 더불어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작(詩作)은 그에게 다른 중요한 일들 사이에 부룩 박은 또 다른 일이 아니라, 성서신학자이자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의 삶의 여정 끝에 당도한 세계이다. 하이데거도 생의 말년에 시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합리적 언어 혹은 학문적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오직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신비한 세계가 그의 시를 통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은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상투적인 종교 언어에 식상한 이들의 눈이 민영진의 시를 통해 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 한희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http://fzari.tistory.com/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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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1968년에 결혼한 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둘만 있어도 깔깔대며 잘 웃는다. 우리 부부의 웃음 묻은 이야기를 가끔씩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글로 써서 책을 내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그동안 『민영진 어록』을 발표하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흠이 될지 욕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요 나의 사랑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냥 웃음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44년생이고 그이는 40년생이니 나는 그이보다 네 살이나 더 어리다. 결혼 후, 첫 새해를 맞아 남편은 갓 결혼한 새댁을 어른들께 인사시키고 싶었나보다. 어른들께 세배를 간다기에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차려 입고 거기에 걸맞도록 머리를 위로 올리는 업스타일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이는 동안이고 날씬해서 어리게 보였고 나는 살이 통통(?)해서인지 더 늙게 보였나 보다. 택시기사가 나보고 누나냐고 묻는 게 아닌가! 난 너무 당황하고 화나고 기분이 안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내가 간 빼 놓고 살아서 아마 늙어졌나보다며 이제부터는 당신이 간 빼 놓고 살라고 명령(?) 하였다. 그랬더니 그이 하는 말 “지금 누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우리가 이 다음에 더 늙게 되면 제자들이 와서 “민 선생님, 어머님이 꽤 젊으시네요.” 할 때가 올 거란다. 그 후 20년이 지난 후부터 그이의 머리에는 은가루가 해를 더해갈수록 자꾸 자꾸 많이 뿌려진다. 난 너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절대 염색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은 머리가 희어갈수록 멋도 더해진다고 아주 근사하다고 속삭여준다. 바로 로맨스 그레이 그 자체라고.


그이는 한복 입기를 즐겨 해서 신정이면 두 주간을 거의 한복을 입는다. 교회 갈 때도 마찬가지고, 어느 주일날 그이가 한복을 입으니 나도 한복을 입었다. 예배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힘들게 한복 입었는데 그냥 집으로 가기는 아까우니 근사한데 가서 커피라도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어느 고급 호텔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사방을 보니 선보는 팀들이 많았다. 수상한 관계의 남녀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하고 물었다. 그이의 말 “목사와 여신도 사이로 보겠지.”


《지구별에서 노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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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관계 지향적인 공감능력을 가리킨다는 말로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여성들은 주체로 살기보다는 남성 중심 사회의 객체처럼 살아왔다. <씨알의 소리> 1978년 5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은 “나야 뭐“였다. 함 선생은 아내 황득순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의 삶을 ‘나야 뭐’라는 말로 요약했다. “먹을거나, 입을거나, 뭣에서나, 자기는 늘 빼놓으면서 늘 하는 말의 첫 머리가 ‘나야 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여인들의 삶이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를 지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말이다.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객체의 자리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주체가 된다는 것이 곧 외로운 단자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주체는 다른 이들과의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한 존재가 아니던가.



김명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주체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공부한 신학을 자양분 삼아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 교회갱신을 위한 헌신, 여성들의 권익과 지도력 개발을 위한 활동에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긴장을 해소시키는 건강한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가정생활이야말로 바깥에서의 활동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묘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속성을 돌봄, 존경, 지식, 책임이라 했다. 김명현 선생님은 그러한 사랑의 좋은 예이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표정과 말 속에 배어있는 남편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와 사랑은 곁에 있는 이들을 가만히 미소 짓게 만든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두 아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은 실답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사는 것은 어쩌면 이 가없는 사랑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어제도 오늘도 마을 어귀를 지키며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맞아주는 품 넓은 느티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민영진 박사님과 함께 걸어온 50년의 세월을 회고하고 또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이 글 모음집에는 배꼽 빠지게 만드는 웃음, 아련한 아픔,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실거린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비근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장엄한 명분을 붙드는 것보다 거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도 일상의 일들 속에서 깃든 하늘나라의 광휘에 주목하시지 않았던가. 코헬렛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이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도서 5:18).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신 그분의 마음에 당도하기까지 몸 성히, 마음 성히, 잘 지내시기를 빌고 또 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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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두어 해 전 감신대 동기들이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남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그날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 그날 우리는 밤이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살아갈수록 모르겠는 것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데 딱히 물어볼 만한 분이 궁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셨고요. 경청과 진솔함이 가장 좋은 대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덤처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감하며 드렸던 마지막 질문은 “그동안 가장 이기기 힘들었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나요?”였습니다. 선생님은 잠깐의 생각 끝에 대답을 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가르치거나 전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인지, 지금도 고민을 합니다.” 세 번이라 하셨던가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적이 ‘겨우’ ‘세 번밖에 없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와락 웃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큰 찔림이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동이 틀 때까지 천사와 씨름을 했던 야곱처럼 평생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하셨구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어깨에 눈길이 갔습니다.



오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쓴 시를 읽습니다. 식물과 곤충과 동물, 온갖 나물과 야생화, 나무와 물과 공기, 심지어는 방사능까지, 그 모든 것을 향해 건네는 언어의 수화(手話)를 지나, 가족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와 축원을 지나, 마침내 <초상(肖像)>에 이르렀을 때, 저의 글 읽기는 점점 더뎌지다가 굳어지다가 마침내는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텅 빈 여물통과 가득 찬 여물통’의 만남을 ‘즐거운 해후’(邂逅)(<범일동 아이>)라 했지만, 그 기가 막힌 역설에도 차마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난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취사장 구정물이 쏟아지는 수챗구멍을 뒤지던 하얄리아 캠프, 기차에서 뛰어내릴 때를 놓쳐 결국은 군수품 도둑이 되고,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했던 통역을 동반한 문초, 그 때 그 일을 성서 번역자로서의 첫 걸음으로 인식하는 모습 앞에서 말씀을 모시는 근원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땅의 숱한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말씀으로 품어 오신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 마음은 말씀의 오지를 향하게 되고, 한국의 영진(泳珍)은 라오스의 영진(永珍), ‘아잔 비엔티나’(Mr. Vientiane)란 빛나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영진>).


‘무덤에서 돋는 연한 풀을 뜯어먹으려고 아무데나 주둥이를 박는’ ‘입이 말은 못해도 포식 기능은 완성한’ 눈 먼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풀 뜯는 설교자>는 영락없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손사래를 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아픈 초상이었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직시하며 한 자 한 자 적는 설교가 얼마나 웅숭깊고 향기로울까 싶은데도 밀려오는 메시지를 도저히 언어로 바꾸지를 못한다며 ‘내 설교는 늘 모국어를 배반한다’(<날 건드리더라>)고 고백할 때, ‘스스로 실성하여 침묵한 덕분에 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한’(<볼모>) 제물(祭物)로 스스로를 자책할 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만나는’(<장수>) 즐거움을 누릴 때, 평생 연구하고 기록해 온 자료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텐데도 저울에 올려놓아도 아무런 무게 없는 입김과 속임수로 돌리며 ‘날 떠난 너 흙과 물에서 노닐다가 문득 바람 속에서 낯익은 먼지 하나 만나거든 옛날 옛적이었다고 해라’(<문패>) 하며 평생의 수고를 흔쾌하게 비울 때, ‘번역은 말씀의 빙산일각(氷山一角)’이어서 ‘의미의 바다를 표류’하지만 ‘이 작업도 힘겨울 때는 당신 품에 안기렵니다’(<생일유감>) 겸허하게 기도할 때, 시(詩) 속에 담긴 선생님은 다른 말로는 대체할 수가 없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을 말씀으로 찾아오신 한 사람을 압니다. 그 분은 말씀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말씀이었습니다. 평생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오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을 봅니다.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삶이 얼마나 지극하고 지순해야 비로소 말씀이 몸을 입는지를 배웁니다. 시(詩)와 삶이 얼마든지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아니 그리 되어야 함을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시는 선생님,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마움이 이리도 큽니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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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듣다 보면, 어느새

내 바구니에 풍요로운 결실이 가득하다


- 김기석의 <인생은 살만한가>를 읽고


믿음


김기석의 <인생은 살만한가>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오랫동안 묻기만 해온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책의 저자에게서 대화의 상대가 되어, 혹은 편지의 수신자가 되어 해묵은 문제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을 수가 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혹은 ”믿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눅 18:8) 예수께서 그의 청중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리스어 본문은 두 가지 번역이 다 가능하다. 당신이 올 때 이 세상에 과연 “믿는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나, 당신이 세상에 오실 때 이 세상에서 진정한 “믿음”을 보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나 다 같은 말이다.


예수 당시는 이미 그가 살던 땅이 유대교라고 하는 종교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는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믿음, 새로운 종교가 하나 더 늘어 팔레스타인과 소아시아와 유럽까지 퍼져 종교 인구는 더 많아졌다. 7세기에는 같은 뿌리에서 이슬람 종교까지 나와 아랍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예수가 당신이 다시 이 땅에 올 때 이 땅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고 한 말은 종교 인구의 감소를 걱정하신 것이 아니고 종교의 풍요 속에 믿음의 부재를 걱정하신 말일 것이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걸어오는 저자의 주변 인물들, 저자의 편지를 읽는 폭넓은 수신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지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한 반성이다. 이것을 한 말로 요약한다면, 이 땅에 다시 오신 예수가 그렇게 찾으려 했던 “믿음”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화

저자의 대화 상대자는 아버지와 인생문제 신앙문제를 논할 만큼 성장한 자식이거나,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신학대학 동기생 친구이거나, 교회 안에서 생각이 깊은 청년 교인들이거나, 이 땅, 이 세상에서 살면서 걱정이 점점 많아지는 일반 교인이거나, 세상 돌아가는 것과 기독교를 싸잡아 비판적으로 웅시하는 예리한 여성이거나 [이 책의 제목 “인생은 살만한가”는 바로 이 여성이 저자와 대화하다가 제기한 예정에 없던 질문이다. 고위공직자의 자살을 두고서 죽음과 살인과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면서 “인생은 살만한가”를 묻고 있다], 질문이 많은 한창 때의 학생이거나, 저자와 함께 살면서 저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아내다. 대화 상대자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이 늘 당면한 문제를 숨기지 않고, 불편하지만 꺼내어 가지고 저자에게 접근하여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독자들이 대화에 끼어들어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살피고, 자신들의 믿음을 살피고,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더 넓고 깊게 파악하고, 우리 교회와 사회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면,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단계로 스스로 승화하는 체험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대화 상대자가 누구이든,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누구도 상대를 억압하지 않는다.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고뇌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같은 문제로 고심하던 작가들이나 신앙인들의 의견을 그들의 작품(시, 소설, 미술, 기타 장르)을 통해서 듣다가 보면 대화는 어느새 상상도 못한 차원으로 옮겨진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독자들도 이 대화에 스스로 참여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벧전 3:21)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확신까지 가지게 된다.


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남의 대화를 엿듣고, 남의 편지를 엿본다는 어색한 부담은 금방 사라진다. 엿보라고 엿들으라고 내놓은 것이니까.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이가 정확히 누군지 잘 기억은 안 되지만, 내 확신으로는, 냉천동 신학대학의 어느 신약학 교수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내 연구실로 찾아 온 그는 내가 신약성서 중에서 로마서를 읽고 있는 것을 보더니, “왜 남의 편지를 읽어요?” “남의 편지라니?” “지금 읽고 계신 그 편지 수신자가 누군지 모르세요? 선생님께 온 것이 아니고, 바울이 로마에 살고 있던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잖아요?” “그러게, 정말. 내게 온 편지가 아니네.” 그는 웃자고 한 얘기였겠지만, 그 이후, 사도들의 서신을 읽을 때마다, 그 젊은 후배 교수의 말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우리의 저자 김기석은 이미 편지 문체의 기원과 기능을 잘 알고 있다. 자기의 독자 일반을 다 수신자로 보고, 그들에게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의 독자가 알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를 제공한다.


대화든 편지든 이 모든 과정에 평생 수많은 세계의 지성들과 지적 대화를 하면서 말씀 전달자 역할을 해 온 저자 김기석의 지혜나 관조는 대화에 참여한 이들의 시각을 바꾸고, 자숙과 참회와 자정의 경지로 이끄는 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이들이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나, 아예 모든 문제에는 감각이 없는 둔감한 이들도 위로와 격려를 받고, 각성과 책임의 도전을 함께 받게 된다.


결실

나는 이런 “대화” 속에서, 그리고 “편지”를 읽으면서,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믿음인 것”과 “믿음 아닌 것”을 가려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혹은 “믿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신 예수의 질문에 대답할 자료를 이 책에서 넉넉히 얻는다. 개인이나 한국교회의 믿음의 좌표를 그릴 수도 있다. “믿음”과 “믿음이 아닌 것”을 지적하거나 암시하는 것은 이 저작의 공헌이다.


이삭줍기

저자 서문 격인 “책을 열며”를 읽다가 보면, “울가망해지다” “묵새기다” “괴덕부리다” “깨단하다” “암암하다” “설면하다” “께느른하다” 등, 저자가 자유롭게 부리는 우리의 토박이말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그의 풍성한 독서량이 그대로 노출되는 글 인용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네 쪽짜리 서문에 벌서 오르한 파묵의 글 내용이 요약되어 소개되고 있고, 나희덕의 시 단편이 인용되기도 한다. 나는 김기석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소식이나 메시지를 듣기 보다는 이번 작품에서도 또 어떤 새롭게 구사된 우리말 어휘들을 만날 수 있을지, 그가 인용하는 어떤 작가들을 얼마만큼 만날 수 있을 지부터 기대하며 읽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것은 독서가 아니고, 저자와의 대화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만 채굴하여 장바구니에 담는 장보기에 불과할 때도 있어서 죄송하지만, 나로서는 이러한 수확도 외면할 수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엿듣고, 엿보다 보면, 이미 내 장바구니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대화자들이나 수신자들과 함께 거두는 풍요로운 결실이 가득 찬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편집자 주/ 이 글은 <기독교타임즈>에 실린 글입니다.


* 지강유철/ 긴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 http://fzari.tistory.com/1053

* 천정근/ 아낌과 허비의 사이, 영혼이 따라올 시간 http://fzari.com/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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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를 홀로 걷는 한 마리 벌레에게


벌레 한 마리,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걷는다. 강원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약 380km의 길을 열하루 동안 걷는다. 병상에 눕는 대신 걷는 것을 택한다. 걸어야 그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지혜를 얻겠기에….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르던 그 “지혜”(호크모트, 잠언 1:20)가 이번에는 잘린 허리 상처 난 길에서 그를 부른다. 최선을 다하고도 배신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지혜는 인적 드문 비무장지대로 불러낸다. 지혜는 하나님의 현신이다(욥기 28:27). 성지교회에서 가까운 인천에도 불러낼 곳이 많은데, 가까이 서울에도, 경기도 인근에 도 불러낼 곳이 없지 않은데, 지혜는 행정구역이 아닌, 여전히 긴장이 감도는 분단을 실감하게 하는 현장으로 그를 불러낸다.


그는 늘 어떤 어려움도 잘 참고 이겨내고 오히려 더 잘 선용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 일 뿐”(시편 22:6)이라고 하는 시편 시인의 한탄을 그에게서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늙은 시므온이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를 가리켜 “장차 이 아기는 성장한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마리아에게 “당신의 아들이 비방 받는 표징이 될 때 당신은 가슴이 칼에 찔리듯 할 것”(누가복음 2:35)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면서, 오히려 큰 위로가 이상하게 물밀 듯 밀려오기도 한다.


한희철 목사는 DMZ를 따라 걸으며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고 하지만, 그 DMZ의 열하루는 그가 뭘 간구하는 “기도”의 시공(時空)이었기보다는 분단의 역사 현장에서 그분과 만나 인간 역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명상한 대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열하루 동안 DMZ를 걸으며 그에게 수납(受納)된 말씀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치환(置換)되기까지의 그 시간은 누구도 계산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받은 말씀을 그는 두고두고 음미하여 끝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우리의 문법으로 그 말씀을 전달해주기까지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열하루 동안의 DMZ 380km 도보횡단은 그의 말대로 “무탈”(頉)로 끝나긴 했지만 “무리”(無理)한 시도였음이 틀림없다. 굴곡된 쾌락에 자신을 내맡기는 자학(自虐)으로, 혹은 무모한 반항(反抗)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계획이었는데, 그를 인도하시는 분께서는 당신의 종을 위해 한 천사를 시켜 로드맵을 준비시키신다. 한 마리 벌레와 동행하며 그 피조물을 지켜주시려는 그분의 첫 번째 배려는 바로 이 로드맵 작성으로 시작된다.


“지혜”가 보낸 이 로드맵 천사는 걷는 이가 걷기를 마칠 때까지 원격조정을 하며 지켜보고 있다. “걸어서 휴전선”이란 로드맵을 작성하여 걷는 이에게 주고 줄곧 교신하는 그는 걷는 이에게 자기를 “컨트롤 타워”로 생각하라고 한다. “걸어서 휴전선”이란 로드맵을 보고 있으면, 별도의 지도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것 같다. 누구나 이것 하나 만으로도 휴전선 따라 도보 동서횡단을 시도해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각자가 자기의 한계를 고려하여 횡단기간을 20일 혹은 30일로 늘려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걷기 체험기를 읽으면서 나는 휴전선 동서횡단 도상실습을 함께 한다.


한 마리 벌레처럼 기어가는 길, 부디 그분이 불쌍히 여기시기를 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길, 그럴수록 그분이 동행하시기를 바란다. 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한계상황들, 길 끝에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한 마리 벌레처럼」에서).


이 말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이사야 41:14).


그는 이사야의 이 신탁을 확신하고 있다. 그가 DMZ를 걸으면서, 이사야의 이 신탁 말고, 호세아의 비전도 공유했을까?


“그 날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와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버리며 땅에서 전쟁을 없애 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호세아 2:18).




아직 나는 이 책의 첫 부분을 읽고 있을 뿐이다. 그와 함께 걸어 본다. 그의 배낭에는 필기를 할 수 있는 세 권의 노트가 들어 있다. 들리는 말씀을 받아 적어야 하니까 노트는 넉넉해야 안심이 될 터. 가벼운 휴대용 노트북 생각은 안 했을까? 간단한 메모는 휴대폰의 노트패드를 이용할 생각도 안 하고? 하지만 더 편한 것이 수기노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도 걱정도 하던데, 민통선이나 비무장지대 근방에서는 휴대폰에 여러 지도가 뜨지 않는가? 민통선 부근에서 내비게이션 작동이 멈춘 경험은 내게도 있다. 그가 열하루 길을 걸으면서 같은 기간 동안 머물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것은, 길을 떠나서 숙소를 찾는 것이 시간 낭비뿐 아니라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를 알기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는 여정이 나로서는 가장 긴장되는 대목이었다. 아마도 도보여행이었기에 어떤 변수를 미리 예상한 조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는 열하루 동안 혼자 걷는 길에서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고린도후서 11:26). 그러나 우리의 보행자는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었다며, 그들을 만나 도움과 위로와 격려를 받은 이야기를 군데군데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혼자 보낸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하는 것을 우리의 보행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 하나는 뜻밖의 만남이 허락된다는 것임을 배운 날이었다. 농막에서 물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나 정자에 앉아 심마니와 나눈 이야기는 분명 내 마음속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심마니의 자존심」)라고 말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린다.


나의 경우, 늙은 어머니가 혼자서 바깥출입을 하거나 먼 기차여행을 할 때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더 젊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 길을 나서시면 늘 조심하세요. 차도 조심, 사람도 조심….” “얘야 걱정마라. 밖에 나가면, 니 아나? 좋은 사람들뿐이 대이. 차는 비키 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고, 바깥에 좋은 사람 들 숱하게 많은 거, 니 모르제? 걱정하지 마라. 내 잘 다녀 올끼구만.” 어머니가 목사 아들을 위로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한희철 목사의 글을 읽으니, 지금도 길을 나서면 길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DMZ 부근에서는.아마도 그의 도보행군의 첫 번째 위협은 진부령에서 만난 폭우와 우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나로서는 힘겹게 고개를 넘는 한 나그네를 환영하시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축제행사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말해본다. IMF 이후 중단되었던 대한항공 서울-텔아비브 노선이 10년 만인 2008년 9월에 재취항 하던 날, 나는 그 첫 비행기 시승에 초대받았고, 마침내 그 비행기는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했다. 그때 살수차(撒水車)들이 우리가 타고 간 비행기를 뺑 둘러싸고 물 폭탄을 퍼붓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비행기 재취항과 첫 승객을 환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항 환영행사였다. 기내 방송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가 탑승했던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것을 진압하려 소방차 가 출동한 줄 알고 놀랐을 것이다. 그 생각이 나면서 한희철 목사가 진부령에서 겪은 폭우, 우박, 천둥, 번개는 얼마나 화려한 환영식이었을 까! 생각해본다.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그는 걸으면서 땅을 발견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하늘과 땅 을]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세기 1:1-2). 진부령을 오를 때는 폭우와 우박과 천둥과 번개가 동반하는 물을 체험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진부령에서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위로 하늘을 바라보고, 아래로 땅을 딛고, 하나님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을[‘루악흐 엘로힘’ “하나님의 바람” “강한 바람”] 가르며 걷는다. 걷는 길 앞, 뒤, 왼쪽, 오른쪽으로 각종 열매가 달린 야생 식물, 각종 날짐승, 이미 그는 저 아득한 태초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혼자서 DMZ 길을 한 마리 벌레처럼 외롭게 기어가는 고행(苦行)을 하는 동안, 그를 아끼고 염려하는 교회 성도들의 마음도 그들의 목사와 함께 DMZ 위를 걷고 있다. 더러는 시간이나 장소 등 만날 곳을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고, 미리 행선지를 알려 준 것도 아닌데, 목사가 걷는 길 위에 성지교회 성도들은 불쑥 불쑥 나타났다. 목사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을 것이다. 장로들이, 권사들이 새벽 일찍 길을 떠나 그가 걷고 있을 것 같은 길을 짐작하며 역(逆)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그 모습에 순례자는 감격하고 만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하루 길을 걷는 동안 장로님은 여러 번 먼 길을 달려왔다. 폭우에 젖은 발을 위해 신발을 사가지고, 행여 쓰러질까 고기를 사주시려, 물집이 잡힌 발을 감싼 인민군식 발싸개를 보고는 안쓰러워,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숙소까지(「마지막 걸음」에서).


이렇게 고마울수가! 한 권사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왔기 때문에 잠시 동안의 동행자들은 길가 바닥에 앉아 그들의 목사와 함께 “드문 만남이 주는 은총”을 마음껏 누리기도 한다. 뭉클한 장면이다. 목사 의 배터리가 100퍼센트 충전되는 순간이기도 했으리라! 이렇게 듬뿍 사랑을 받게 해주시면서도 같은 목회 현장에서 동시에 아물지 않는 상처까지 함께 받게 하시는 그분의 뜻은 무엇일까? 어느 교회나 목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성도도 있고, 본인들은 몰라도 자신들의 의도하지 않은 언행이 목사에게 상처를 주는 역할을 하는 성도도 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니, 목사는 그들을 차별할 수가 없다. 그들을 진정으로 다 가슴에 품으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꼬!


DMZ 횡단 도중 “평화의 댐”을 지나면서는 역대 한 정권의 위장된 안보를 회고하면서도, 세계 30여 개의 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는 “평화의 종” 앞에서 우리의 순례자는 “평화의 댐” 일대를 내려다보며 “한 줌의 기도”를 바친다.


이 평화의 종 제작에 당시 정갑철 화천군수의 참여가 크게 기여했다는 말을 현지에서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 내외는 한희철 목사의 감신대 동기 목회자들과 함께 화천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일행은 화천 교외의 한 리조트에서 1박을 했는데, 그 펜션 거실에는 소비에트연방 마지막 대통령,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로서 199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르바초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09년 5월 그는 평화의 종 제막식에 귀빈으로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가 한국 중앙 정부의 초청이 아닌, 한 군수의 초청을 받고 평화의 종 제막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나, 이 행사에 참석하는 동안 화천의 한 평범한 펜션에서 숙박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정갑철 군수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평화의 종 공원을 조성한 일을 격려하면서, 한편 평화의 종 제막식에 고르바초프 같은 인물을 초청하여 동네 펜션에서 재우는 등 그런 중요한 인연이 있는데도, 화천군 안에 왜 ‘고르바초프 거리’ 혹은 ‘고르비 거리’ 하나 만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비무장지대 부근에는 순교자들이 있다. 순례자는 남북 분단과 순교 이야기, 그러나 망각된 이야기, 기억해 주는 이들마저 없어진 이야기를 안타깝게 찾는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북한 정권이 볼 때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순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 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 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에서).


상세한 역사가 망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음을 우리의 순례자는 안타까워한다. 순례가 거의 끝날 무렵 순례자는 길 위에 나타난 구십 세의 노모를 만난다. 수고한 아들을 안아주려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한 아들의 개선을 축하하려고 길을 나선 아들의 어머니다. 당신이 남편 따라 단신으로 월남했던 그 길 위에서의 모자상봉은 우리 독자들에게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순례자는 인적이 드문 길가 논 옆에서, 피사리를 하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순례자는 반가워서 먼저 말을 건다. 몰골이 말이 아닌 키다리 가 강원도 고성에서 걷기를 시작해서 임진각까지 가는 길이란 말을 들은 할머니들은 깜짝 놀란다. 그 중 한 할머니가 묻는다. “어디 아파요?” 그렇지! 아프지, 아프니까 집 떠나 걷고 있지. 피살이 하던 할머니는 걷는 이의 정곡을 찔렀다.


우리의 순례자가 순례의 끝에서 받은 마지막 질문은 “아직도 아프니?”라는 주님의 질문이다. 걷기를 끝낸 그에게 나도 묻고 싶다. 그 아픔이 어디 치유되라고 있는 것인가? 그 아픔 그대로 지니고 견디라는 아픔 아닌가! 여러 성도들이 그렇게 큰 사랑을 베푼 것은, 아니, 그보다도 주님께서 친히 열 하룻길을 특별히 동행해 주신 것은, 그 아픔 그대로 지니고 이 역사에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라는 격려가 아니던가!


마지막 날은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아들의 마중을 받는다. 아내는 장모의 사랑도 함께 운반한다. 순례자에게 제일 약한 부분이 가족이다. 가족 때문에 떳떳할 수 있고, 가족 때문에 비굴할 수도 있다. 가족 때문에 부르심을 거절할 수도 있다. 동시에 제일 강한 부분이 가족이기도 하다. 한희철 목사는 평생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단강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천에서 부름 받은 삶에 헌신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힘이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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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로 선 시간의 은총


한희철 목사가 DMZ 380km를 열하루 동안 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얼마나 괴로웠으면…’이었다. 그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주일까지도 길 위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증이 확증이 되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글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가슴이 저릿해졌다. ‘이 착한 사람이 견디기 어려웠구나.’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그 너른 가슴으로 덥석 품어 안더니, 벽 같은 현실 앞에서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런 무모한 여정에 나선 것일까. 그것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올레길이나 순례길이 아니라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새겨진 접경 지역을 말이다. 왠지 그 아픔을 알 것도 같기에 선뜻 그 글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글을 읽기 시작했고, 멈출 수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글을 다 읽고 나니 리베카 솔닛의 말이 떠올랐다. 리베카는 걷기는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말한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 문장이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절벽 같은 현실과 그로 인해 마음에 드리운 무거운 구름이었다. 폭우 속을 걷고, 또 폭양 속을 타박타박 걷는다는 것, 그것은 자기 육체를 극한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했을 때,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는 이에게 길은 언제나 숨기고 있던 오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 예기치 않았던 이들과의 만남, 어떤 깨달음 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그는 삶의 여정 가운데 만난 수많은 이들을 기억 속에 호출한다.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그곳에 현존한다. 걷는 사람은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바람처럼 스쳐간 인연이라 해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떠올리고 함께 겪었던 시간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기도이다. 걷는 기도를 통해 호흡이 가지런해졌을 때 한희철 목사는 자기 발이 땅에 닿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성실하기 이를 데 없는 그가 의무의 감옥에 갇혀 사람들을 대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그는 허공 위를 허정거리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런데 이제 그의 발이 땅에 닿았다. 가속의 시간 속을 걸어가느라 허둥거리던 발걸음이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발걸음으로 변하자, 적절한 삶의 속도를 깨닫게 되었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내 발이 내 땅에 닿았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속도가 보였다.”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복이 이런 것일 게다. 홀로 걷는 이가 누리는 복은 또 있다. 마주 잡을 손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느꺼움 말이다. 나희덕은 <산속에서>라는 시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소중히 여긴다고 노래한다.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맞잡을 손 하나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위로가 되는 일이 또 있을까? 터벅터벅 갈라진 땅을 깁고, 찢어진 마음을 깁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불원천리 하고 찾아와 함께 만남의 기쁨을 나눴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손이 된 이들이 아니겠는가.


길을 걸었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절벽과도 같은 현실은 여전히 지속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몸으로 그 먼 길을 걸었던 이는 더 이상 그 현실 앞에서 울지 않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그는 홀로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내내 동행하고 계심을 알았을 테니 말이다.


글을 읽는 내내 탄식시를 떠올렸다. 평범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지만, 세상은 그런 우리의 바람을 뒤흔들고 때로는 흉포하게 찢어놓는다. 자기 힘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히브리 시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억눌린 함성을 토해냈다. ‘어찌하여’ 혹은 ‘언제까지’ 이런 일이 지속되는 것이냐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푸념은 언제나 가장 곤고했던 시간에 동행해주시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으로 이끌었고, 그 기억이 회복되었을 때 팥죽처럼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새로운 신뢰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Solviture Ambulando’,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햇볕에 바래고 이끼가 달라붙은 낡은 표지판을 보며 한희철 목사가 드렸던 ‘어느 날의 기도’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폭풍 속 흔들려도

꺾이지 않게 하시고

외발로 선 시간

막막하지 않게 하소서.


그를 두고 지금 내가 주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그는 기도의 마지막 연에서 이런 염원을 아뢰고 있다.


머무는 이 없어도 좋습니다.

초라하면 어떻습니까.

갈림길 끝

길을 찾는 누군가에게

가야 할 곳 제대로 가리키는

바른 표지판이게 하소서.


아우 한희철 목사, 그대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표지판이라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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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


19권의 저서와 10권의 번역서를 낸 김기석 목사가 스무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무심한 듯 지나치는 것 같으면서도 깊숙이 응시 하는 성찰의 힘”에서 나오는 문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김기석 표 문장의 아름다움’을 생략한 서평이나 독후감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최근에 나온 《인생은 살만한가》에서 김기석 목사는 “바늘로 우물 파는 행위에 빗대 설명했”던 오르한 파묵의 목소리를 빌려, ‘무모한 열정의 글쓰기’와 그것이 가져다 줄 ‘바위에서 솟아오를 샘물에 대한 기대’를 말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써왔으니 아름답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김기석의 문장을 이야기하다보니 이젠 그런 찬사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 앞에 멈춰 섰던 순간들을 완전히 지우고 이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편집자가 허락한다면 이 서평의 나머지 부분을 김기석이라는 작가의 문장으로만 채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인생은 살만한가》는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아내, 딸, 신학대학 동창, 청년 등과 나눈 12편의 ‘대화’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11편의 ‘편지’입니다. ‘대화’와 ‘편지’를 읽을 때 제 몸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저자가 12편의 대화는 안단테 템포로, 11편의 편지는 그보다 조금 빠른 안단티노나 모데라토로 템포를 지정한 것처럼 책을 읽었습니다. 대화편에서 왜 몸이 더디게 움직였는지는 책을 덮을 때까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김기석 목사는 느림이 “우리의 문명병을 치유해주는 가장 소중한 요소”라는 점을 거듭 말해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점점 더 빨라지는 템포가 “전체에 대한 매혹과 어울림의 감성을 빼앗아 갔”다면서 ‘바로 이런 것이 타락’(245쪽)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문명의 템포에서 타락을 읽어내는 저자이기에 우리 독자들은 가장 느린 아다지오나 라르고 템포로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내와 산행 중에 주고받았던 “나는 내가 당신의 영웅인 줄 알았는데… 아이구, 참 내. 그래요. ‘당신을 나의 영웅으로 임명합니다.’(204쪽)란 발랄한 대목까지 안단테로 읽을 독자는 없겠지요.


김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로 그의 빼어난 문장을 꼽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런 주장에 머리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문(美文)이 아니라 그 문장에 담긴,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더 귀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원색적인 이원론은 물론 교묘하게 자신을 위장한 변종 이원론에 격렬하게 휘둘렸던 교인들에게 ‘모든 이원론적 선택에는 억압이 내포되어 있다’(83쪽)는 목소리는 거의 복음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도 사랑의 노래를 지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야. (중략)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불러야 할 아름다운 노래를 포기해서는 안 돼.(17쪽)


저는 오히려 현실이 난마처럼 얽혀든 시대일수록 경전을 깊이 파고드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102쪽)


김기석을 읽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글이 모두가 멈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지네딘 지단과 함께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에서 자살을 기도했던 청년 조르주가 새 인생을 살게 된 과정이 소개됩니다. 조르주는 피에르 신부가 자신에게 돈이든 일이든 그저 베푼 게 아니라 자기에게 꼭 필요했던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줬기 때문에 자살의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김기석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 끝에 “인간은 누구나 ‘원본’으로 태어났다”는 랍비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남과 구별되길 원하면서도, 같아지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우주 가운데 나와 똑같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느끼는 경이감을 전한 것입니다(236쪽).


그리고 ‘기억과 망각 사이’는 한국 개신교가 거짓 종교의 특징인 망각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왜곡된 기억의 주입을 경고하는 글입니다. “친일파들이 애국자로 둔갑하고,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역사의 변방에 유폐”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역사적 소명은 ‘망실된 기억의 복원’과 ‘왜곡된 기억의 바로잡음’이라는 것입니다(158쪽). 김기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는 과거로 흘러가 버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게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야.(159쪽)


저는 이 책에서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 ‘아낌’을 말하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기석은 생태계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아낌’을 절실한 도전으로 인식합니다. ‘아낌’이 예수가 보여준 삶의 핵심이고, 사람을 아끼는 것이 참 삶의 시작(313쪽)이라는 것입니다. 김기석은 아낌이야말로 우리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지름길이라면서 “예수의 마음, 즉 ‘아낌’이라는 단어 하나를 화두처럼 붙들고 살라”(317쪽)는 부탁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노자가 오래 전에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아낌만 한 것이 없다’는 말을 한 건 맞지만 현직 목사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단어나 개념을 차용하지 않고 예수가 보여준 삶의 핵심을 이야기한 부분이 고맙고 놀라웠습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끊어낼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이들로 인해 생겼던 어두운 일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고마운 이유입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망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일상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일 수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사소한 눈짓, 몸짓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명멸하는 불빛입니다. 그 불빛들이 모여 생을 이루는 것이겠지요?(275쪽)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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