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현경장(解弦更張)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일생을 닮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이라지 않던가?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얼굴 하나 보러 왔지,/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우리 삶이지.” 요즘 들어 함석헌 선생의 시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삶이 부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살아오는 동안 마주쳤던 그 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맑고 고운 얼굴, 따뜻하고 고요한 얼굴, 수심 가득한 얼굴, 비굴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독기 어린 얼굴…. 그러다가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아뜩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걷다가 창문에 얼비친 자기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얼굴을 ‘얼의 골짜기’라고 설명한 분도 계시지만, 우리 얼굴은 정확하게 우리 내면을 반영한다. 옛날 초상화가들은 대상의 외모만 그린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풍경까지도 그리려 했다 한다. 전신사조(傳神寫照)가 그것이다.


말이 장황해졌지만 내게도 아름다운 얼굴이 한 분 계시다. 민영진 박사님(이하 민영진)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6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 얼굴은 내게 시종 맑고 환하게 기억된다. 민영진은 학문의 즐거움과 엄정함을 가르치면서도, 학생들로부터도 배우려는 태도를 시종 견지하신다. 그런 학생 정신이야말로 그 얼굴에 깃든 맑음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몰강스러운 세태조차 민영진을 후락(朽落)의 자리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열정 따위는 시드럭부드럭 스러질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표현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신 듯하다.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언어에 예민하였기에, 그 여정이 시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은 일상적인 언어를 재배치하여 놀라운 이미지와 의미의 세계를 드러낸다. 언어의 올가미로 영원을 잡아채는 것, 바로 그것이 시적 순간이다.


민영진의 시는 과잉을 모른다. 놀랍고 기발한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심상에 떠오르는 것들을 관념으로 비틀거나 베일로 가리지 않고 직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하여 나이브하지 않다. 그 언어는 정갈하고 고요하다. 성품이 시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에게 시는 삶의 진실과 진정을 드러내는 통로이고, 삶은 시의 자양분이 된다. 지금 민영진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일상의 성스러움, 성경, 언어 등이다.




민영진의 삶은 아내인 김명현과 함께 빚어온 작품이다. 그에게 아내는 “하나님의 숨/흙에 닿아 한 점 혈육/우주 바꾸고 몸 바꾸어”(<만물의 어머니> 중에서) 나타난 존재이다.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민영진은 기꺼움과 고마움으로 돌아본다. 유학생활 중에 잃었던 태중의 아기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그 둘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정서적 밑절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일어날 법한 소소한 일상을 엿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따스한 정과 유머 때문이다. 깔끔한 아내와 털털한 남편, 추위 타는 남편과 더위가 싫은 아내, 사랑의 표현을 갈구하는 아내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늘 티격태격한다. 손톱 발톱을 깎다가 궤도를 이탈한 녀석 때문에 방청소를 하던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 한밤중에 소변을 보고 변기 깔개를 내려놓지 않았다가 타박을 당할 때면 남편은 애꿎은 친구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여보, 당신도 알지 그 친구,

거 왜 가끔 그 모임에 나오는 그 키 큰 친구

요즘, 손톱 발톱이 다 빠졌대

면역력 결핍증이라나 뭐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 멀쩡했잖아,

손톱 발톱이 없으니까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 구실을 못하고

폐인(廢人) 같아 보여

- <손톱 발톱> 중에서


여보, 당신, 내 친구 김 아무개 알지?

비만이라고 걱정하던

그 친구 요즘 소변을 못 본대

터질 듯 마려운데 안 나온다나?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지가 다 젖어있다나 뭐라더라?

- <쉬> 중에서


나이 듦의 애잔함이 능청스러움과 버무려져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일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장성한 자식들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그 놀라운 손님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자못 따스하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신비이다. 손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우리에게 보내주신/한 편의 시(詩)”(<손자>)이고, 손녀는 “당신 품에 안고 있던 딸/예쁘게 키우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존재(<편지>)이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태에서 태어난 거룩하고 신비한 존재(<아이들아>)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신비함과 거룩함을 가리키는 징표로 우리 가운데 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안에서라면 늙어감조차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회한조차 없을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을 한껏 살아내기는 했지만, 어떤 일도 완전할 수는 없기에, 못다 한 일에 대한 회한이 그림자처럼 영혼에 드리우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은 맡겨진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하나님이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익숙했던 모국어가 서툴러지고, 그 때문에 메시지를 적절한 언어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청중들에게 익숙한 구문론이나 문법을 지킬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음과 하기 싫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바장이다가 그는 자신이 “늘 모국어를 배반하는 설교”를 해왔다고 자책한다(<날 건드리더라>). 짐짓 해보는 겸양의 말이 아니라, 준엄한 자기 성찰에서 빚어진 말이다.


그는 “광야의 포효(咆哮)”가 되지 못하고, 볼모로 잡혀온 이후부터 “침묵한 덕분에/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했”(<볼모>)다고 말한다. 민영진은 ‘그래도 이만하면 잘 해온 것 아닌가’ 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 자신의 허물을 폭로한다. 그는 “번역자는/오늘도/의미의 바다를 표류한다”(<표류>)고 노래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 심연을 드러낼 적절한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좌절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막막함을 견디며 그는 살아왔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떠날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산다. 인생의 마지막 날은 유예된 집행일 뿐, 그날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울 때는 울면서 왔었습니다만

돌아가는 날은

당신을 부르며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오라 하실 때

쇠약해진 이 몸 당신 품에 안기어

깊은 잠, 푹 들게 하여 주십시오

- <새 하늘, 새 땅> 중에서


시인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것들임을 절감하며 만물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식물, 동물, 바위, 흙과의 대화를 꿈꾸는 것이다. 우주의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처럼 그는 삼라만상에 빼곡히 적힌 글을 해독하고 싶어 한다(<사파리>). 그것은 인간의 오염된 언어 혹은 분절된 언어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어 너머의 언어가 필요하다. 구상 시인은 마음의 눈만 뜬다면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베란다의 봄 국화가 시든 화분에/제풀에 돋아난 애기똥풀이나/그 옆 수챗구멍 질척한 쇠그물에/오물거리는 새끼 지렁이를 보려므나!//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고 노래했다(<마음의 눈만 뜬다면>). 민영진이 당도한 세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그에게 세계는 신비의 정원이다. 마음의 눈이 열리자 늘 밥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이 희생제물임을 깨닫게 된다(<나물>). 몸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을 이루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물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호명 행위를 통해 그 나물들은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때가 되면 피어났다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스러지는 야생화 역시 그 생명 세계의 일원이다. “부레옥잠화, 금낭화, 물봉선화, 모싯대 꽃, 노루귀꽃, 등(燈)꽃….” 낯설기는 해도 그 귀한 야생화가 그곳에 있기에 세상이 온전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시인은 은근한 소망을 피력한다. “구름패랭이, 꿩의비름, 말나리 꽃, 뻐국나리, 솔나리, 금꿩의 다리, 천일홍(天日紅)…/내 이름도 너희들 사이 어디쯤에 넣어볼까/다시 태어나는 날, 한번쯤은/너희들과 함께 야생초이고 싶다”(<야생화>).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고쳐 맨다는 뜻이다. 시와 더불어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작(詩作)은 그에게 다른 중요한 일들 사이에 부룩 박은 또 다른 일이 아니라, 성서신학자이자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의 삶의 여정 끝에 당도한 세계이다. 하이데거도 생의 말년에 시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합리적 언어 혹은 학문적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오직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신비한 세계가 그의 시를 통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은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상투적인 종교 언어에 식상한 이들의 눈이 민영진의 시를 통해 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 한희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http://fzari.tistory.com/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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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1968년에 결혼한 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둘만 있어도 깔깔대며 잘 웃는다. 우리 부부의 웃음 묻은 이야기를 가끔씩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글로 써서 책을 내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그동안 『민영진 어록』을 발표하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흠이 될지 욕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요 나의 사랑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냥 웃음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44년생이고 그이는 40년생이니 나는 그이보다 네 살이나 더 어리다. 결혼 후, 첫 새해를 맞아 남편은 갓 결혼한 새댁을 어른들께 인사시키고 싶었나보다. 어른들께 세배를 간다기에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차려 입고 거기에 걸맞도록 머리를 위로 올리는 업스타일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이는 동안이고 날씬해서 어리게 보였고 나는 살이 통통(?)해서인지 더 늙게 보였나 보다. 택시기사가 나보고 누나냐고 묻는 게 아닌가! 난 너무 당황하고 화나고 기분이 안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내가 간 빼 놓고 살아서 아마 늙어졌나보다며 이제부터는 당신이 간 빼 놓고 살라고 명령(?) 하였다. 그랬더니 그이 하는 말 “지금 누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우리가 이 다음에 더 늙게 되면 제자들이 와서 “민 선생님, 어머님이 꽤 젊으시네요.” 할 때가 올 거란다. 그 후 20년이 지난 후부터 그이의 머리에는 은가루가 해를 더해갈수록 자꾸 자꾸 많이 뿌려진다. 난 너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절대 염색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은 머리가 희어갈수록 멋도 더해진다고 아주 근사하다고 속삭여준다. 바로 로맨스 그레이 그 자체라고.


그이는 한복 입기를 즐겨 해서 신정이면 두 주간을 거의 한복을 입는다. 교회 갈 때도 마찬가지고, 어느 주일날 그이가 한복을 입으니 나도 한복을 입었다. 예배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힘들게 한복 입었는데 그냥 집으로 가기는 아까우니 근사한데 가서 커피라도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어느 고급 호텔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사방을 보니 선보는 팀들이 많았다. 수상한 관계의 남녀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하고 물었다. 그이의 말 “목사와 여신도 사이로 보겠지.”


《지구별에서 노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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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관계 지향적인 공감능력을 가리킨다는 말로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여성들은 주체로 살기보다는 남성 중심 사회의 객체처럼 살아왔다. <씨알의 소리> 1978년 5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은 “나야 뭐“였다. 함 선생은 아내 황득순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의 삶을 ‘나야 뭐’라는 말로 요약했다. “먹을거나, 입을거나, 뭣에서나, 자기는 늘 빼놓으면서 늘 하는 말의 첫 머리가 ‘나야 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여인들의 삶이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를 지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말이다.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객체의 자리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주체가 된다는 것이 곧 외로운 단자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주체는 다른 이들과의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한 존재가 아니던가.



김명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주체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공부한 신학을 자양분 삼아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 교회갱신을 위한 헌신, 여성들의 권익과 지도력 개발을 위한 활동에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긴장을 해소시키는 건강한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가정생활이야말로 바깥에서의 활동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묘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속성을 돌봄, 존경, 지식, 책임이라 했다. 김명현 선생님은 그러한 사랑의 좋은 예이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표정과 말 속에 배어있는 남편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와 사랑은 곁에 있는 이들을 가만히 미소 짓게 만든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두 아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은 실답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사는 것은 어쩌면 이 가없는 사랑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어제도 오늘도 마을 어귀를 지키며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맞아주는 품 넓은 느티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민영진 박사님과 함께 걸어온 50년의 세월을 회고하고 또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이 글 모음집에는 배꼽 빠지게 만드는 웃음, 아련한 아픔,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실거린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비근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장엄한 명분을 붙드는 것보다 거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도 일상의 일들 속에서 깃든 하늘나라의 광휘에 주목하시지 않았던가. 코헬렛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이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도서 5:18).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신 그분의 마음에 당도하기까지 몸 성히, 마음 성히, 잘 지내시기를 빌고 또 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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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두어 해 전 감신대 동기들이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남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그날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 그날 우리는 밤이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살아갈수록 모르겠는 것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데 딱히 물어볼 만한 분이 궁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셨고요. 경청과 진솔함이 가장 좋은 대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덤처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감하며 드렸던 마지막 질문은 “그동안 가장 이기기 힘들었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나요?”였습니다. 선생님은 잠깐의 생각 끝에 대답을 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가르치거나 전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인지, 지금도 고민을 합니다.” 세 번이라 하셨던가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적이 ‘겨우’ ‘세 번밖에 없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와락 웃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큰 찔림이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동이 틀 때까지 천사와 씨름을 했던 야곱처럼 평생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하셨구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어깨에 눈길이 갔습니다.



오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쓴 시를 읽습니다. 식물과 곤충과 동물, 온갖 나물과 야생화, 나무와 물과 공기, 심지어는 방사능까지, 그 모든 것을 향해 건네는 언어의 수화(手話)를 지나, 가족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와 축원을 지나, 마침내 <초상(肖像)>에 이르렀을 때, 저의 글 읽기는 점점 더뎌지다가 굳어지다가 마침내는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텅 빈 여물통과 가득 찬 여물통’의 만남을 ‘즐거운 해후’(邂逅)(<범일동 아이>)라 했지만, 그 기가 막힌 역설에도 차마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난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취사장 구정물이 쏟아지는 수챗구멍을 뒤지던 하얄리아 캠프, 기차에서 뛰어내릴 때를 놓쳐 결국은 군수품 도둑이 되고,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했던 통역을 동반한 문초, 그 때 그 일을 성서 번역자로서의 첫 걸음으로 인식하는 모습 앞에서 말씀을 모시는 근원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땅의 숱한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말씀으로 품어 오신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 마음은 말씀의 오지를 향하게 되고, 한국의 영진(泳珍)은 라오스의 영진(永珍), ‘아잔 비엔티나’(Mr. Vientiane)란 빛나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영진>).


‘무덤에서 돋는 연한 풀을 뜯어먹으려고 아무데나 주둥이를 박는’ ‘입이 말은 못해도 포식 기능은 완성한’ 눈 먼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풀 뜯는 설교자>는 영락없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손사래를 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아픈 초상이었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직시하며 한 자 한 자 적는 설교가 얼마나 웅숭깊고 향기로울까 싶은데도 밀려오는 메시지를 도저히 언어로 바꾸지를 못한다며 ‘내 설교는 늘 모국어를 배반한다’(<날 건드리더라>)고 고백할 때, ‘스스로 실성하여 침묵한 덕분에 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한’(<볼모>) 제물(祭物)로 스스로를 자책할 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만나는’(<장수>) 즐거움을 누릴 때, 평생 연구하고 기록해 온 자료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텐데도 저울에 올려놓아도 아무런 무게 없는 입김과 속임수로 돌리며 ‘날 떠난 너 흙과 물에서 노닐다가 문득 바람 속에서 낯익은 먼지 하나 만나거든 옛날 옛적이었다고 해라’(<문패>) 하며 평생의 수고를 흔쾌하게 비울 때, ‘번역은 말씀의 빙산일각(氷山一角)’이어서 ‘의미의 바다를 표류’하지만 ‘이 작업도 힘겨울 때는 당신 품에 안기렵니다’(<생일유감>) 겸허하게 기도할 때, 시(詩) 속에 담긴 선생님은 다른 말로는 대체할 수가 없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을 말씀으로 찾아오신 한 사람을 압니다. 그 분은 말씀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말씀이었습니다. 평생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오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을 봅니다.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삶이 얼마나 지극하고 지순해야 비로소 말씀이 몸을 입는지를 배웁니다. 시(詩)와 삶이 얼마든지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아니 그리 되어야 함을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시는 선생님,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마움이 이리도 큽니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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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듣다 보면, 어느새

내 바구니에 풍요로운 결실이 가득하다


- 김기석의 <인생은 살만한가>를 읽고


믿음


김기석의 <인생은 살만한가>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오랫동안 묻기만 해온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책의 저자에게서 대화의 상대가 되어, 혹은 편지의 수신자가 되어 해묵은 문제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을 수가 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혹은 ”믿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눅 18:8) 예수께서 그의 청중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리스어 본문은 두 가지 번역이 다 가능하다. 당신이 올 때 이 세상에 과연 “믿는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나, 당신이 세상에 오실 때 이 세상에서 진정한 “믿음”을 보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나 다 같은 말이다.


예수 당시는 이미 그가 살던 땅이 유대교라고 하는 종교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는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믿음, 새로운 종교가 하나 더 늘어 팔레스타인과 소아시아와 유럽까지 퍼져 종교 인구는 더 많아졌다. 7세기에는 같은 뿌리에서 이슬람 종교까지 나와 아랍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예수가 당신이 다시 이 땅에 올 때 이 땅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고 한 말은 종교 인구의 감소를 걱정하신 것이 아니고 종교의 풍요 속에 믿음의 부재를 걱정하신 말일 것이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걸어오는 저자의 주변 인물들, 저자의 편지를 읽는 폭넓은 수신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지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한 반성이다. 이것을 한 말로 요약한다면, 이 땅에 다시 오신 예수가 그렇게 찾으려 했던 “믿음”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화

저자의 대화 상대자는 아버지와 인생문제 신앙문제를 논할 만큼 성장한 자식이거나,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신학대학 동기생 친구이거나, 교회 안에서 생각이 깊은 청년 교인들이거나, 이 땅, 이 세상에서 살면서 걱정이 점점 많아지는 일반 교인이거나, 세상 돌아가는 것과 기독교를 싸잡아 비판적으로 웅시하는 예리한 여성이거나 [이 책의 제목 “인생은 살만한가”는 바로 이 여성이 저자와 대화하다가 제기한 예정에 없던 질문이다. 고위공직자의 자살을 두고서 죽음과 살인과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면서 “인생은 살만한가”를 묻고 있다], 질문이 많은 한창 때의 학생이거나, 저자와 함께 살면서 저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아내다. 대화 상대자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이 늘 당면한 문제를 숨기지 않고, 불편하지만 꺼내어 가지고 저자에게 접근하여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독자들이 대화에 끼어들어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살피고, 자신들의 믿음을 살피고,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더 넓고 깊게 파악하고, 우리 교회와 사회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면,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단계로 스스로 승화하는 체험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대화 상대자가 누구이든,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누구도 상대를 억압하지 않는다.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고뇌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같은 문제로 고심하던 작가들이나 신앙인들의 의견을 그들의 작품(시, 소설, 미술, 기타 장르)을 통해서 듣다가 보면 대화는 어느새 상상도 못한 차원으로 옮겨진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독자들도 이 대화에 스스로 참여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벧전 3:21)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확신까지 가지게 된다.


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남의 대화를 엿듣고, 남의 편지를 엿본다는 어색한 부담은 금방 사라진다. 엿보라고 엿들으라고 내놓은 것이니까.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이가 정확히 누군지 잘 기억은 안 되지만, 내 확신으로는, 냉천동 신학대학의 어느 신약학 교수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내 연구실로 찾아 온 그는 내가 신약성서 중에서 로마서를 읽고 있는 것을 보더니, “왜 남의 편지를 읽어요?” “남의 편지라니?” “지금 읽고 계신 그 편지 수신자가 누군지 모르세요? 선생님께 온 것이 아니고, 바울이 로마에 살고 있던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잖아요?” “그러게, 정말. 내게 온 편지가 아니네.” 그는 웃자고 한 얘기였겠지만, 그 이후, 사도들의 서신을 읽을 때마다, 그 젊은 후배 교수의 말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우리의 저자 김기석은 이미 편지 문체의 기원과 기능을 잘 알고 있다. 자기의 독자 일반을 다 수신자로 보고, 그들에게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의 독자가 알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를 제공한다.


대화든 편지든 이 모든 과정에 평생 수많은 세계의 지성들과 지적 대화를 하면서 말씀 전달자 역할을 해 온 저자 김기석의 지혜나 관조는 대화에 참여한 이들의 시각을 바꾸고, 자숙과 참회와 자정의 경지로 이끄는 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이들이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나, 아예 모든 문제에는 감각이 없는 둔감한 이들도 위로와 격려를 받고, 각성과 책임의 도전을 함께 받게 된다.


결실

나는 이런 “대화” 속에서, 그리고 “편지”를 읽으면서,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믿음인 것”과 “믿음 아닌 것”을 가려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혹은 “믿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신 예수의 질문에 대답할 자료를 이 책에서 넉넉히 얻는다. 개인이나 한국교회의 믿음의 좌표를 그릴 수도 있다. “믿음”과 “믿음이 아닌 것”을 지적하거나 암시하는 것은 이 저작의 공헌이다.


이삭줍기

저자 서문 격인 “책을 열며”를 읽다가 보면, “울가망해지다” “묵새기다” “괴덕부리다” “깨단하다” “암암하다” “설면하다” “께느른하다” 등, 저자가 자유롭게 부리는 우리의 토박이말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그의 풍성한 독서량이 그대로 노출되는 글 인용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네 쪽짜리 서문에 벌서 오르한 파묵의 글 내용이 요약되어 소개되고 있고, 나희덕의 시 단편이 인용되기도 한다. 나는 김기석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소식이나 메시지를 듣기 보다는 이번 작품에서도 또 어떤 새롭게 구사된 우리말 어휘들을 만날 수 있을지, 그가 인용하는 어떤 작가들을 얼마만큼 만날 수 있을 지부터 기대하며 읽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것은 독서가 아니고, 저자와의 대화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만 채굴하여 장바구니에 담는 장보기에 불과할 때도 있어서 죄송하지만, 나로서는 이러한 수확도 외면할 수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엿듣고, 엿보다 보면, 이미 내 장바구니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대화자들이나 수신자들과 함께 거두는 풍요로운 결실이 가득 찬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편집자 주/ 이 글은 <기독교타임즈>에 실린 글입니다.


* 지강유철/ 긴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 http://fzari.tistory.com/1053

* 천정근/ 아낌과 허비의 사이, 영혼이 따라올 시간 http://fzari.com/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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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를 홀로 걷는 한 마리 벌레에게


벌레 한 마리,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걷는다. 강원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약 380km의 길을 열하루 동안 걷는다. 병상에 눕는 대신 걷는 것을 택한다. 걸어야 그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지혜를 얻겠기에….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르던 그 “지혜”(호크모트, 잠언 1:20)가 이번에는 잘린 허리 상처 난 길에서 그를 부른다. 최선을 다하고도 배신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지혜는 인적 드문 비무장지대로 불러낸다. 지혜는 하나님의 현신이다(욥기 28:27). 성지교회에서 가까운 인천에도 불러낼 곳이 많은데, 가까이 서울에도, 경기도 인근에 도 불러낼 곳이 없지 않은데, 지혜는 행정구역이 아닌, 여전히 긴장이 감도는 분단을 실감하게 하는 현장으로 그를 불러낸다.


그는 늘 어떤 어려움도 잘 참고 이겨내고 오히려 더 잘 선용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 일 뿐”(시편 22:6)이라고 하는 시편 시인의 한탄을 그에게서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늙은 시므온이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를 가리켜 “장차 이 아기는 성장한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마리아에게 “당신의 아들이 비방 받는 표징이 될 때 당신은 가슴이 칼에 찔리듯 할 것”(누가복음 2:35)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면서, 오히려 큰 위로가 이상하게 물밀 듯 밀려오기도 한다.


한희철 목사는 DMZ를 따라 걸으며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고 하지만, 그 DMZ의 열하루는 그가 뭘 간구하는 “기도”의 시공(時空)이었기보다는 분단의 역사 현장에서 그분과 만나 인간 역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명상한 대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열하루 동안 DMZ를 걸으며 그에게 수납(受納)된 말씀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치환(置換)되기까지의 그 시간은 누구도 계산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받은 말씀을 그는 두고두고 음미하여 끝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우리의 문법으로 그 말씀을 전달해주기까지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열하루 동안의 DMZ 380km 도보횡단은 그의 말대로 “무탈”(頉)로 끝나긴 했지만 “무리”(無理)한 시도였음이 틀림없다. 굴곡된 쾌락에 자신을 내맡기는 자학(自虐)으로, 혹은 무모한 반항(反抗)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계획이었는데, 그를 인도하시는 분께서는 당신의 종을 위해 한 천사를 시켜 로드맵을 준비시키신다. 한 마리 벌레와 동행하며 그 피조물을 지켜주시려는 그분의 첫 번째 배려는 바로 이 로드맵 작성으로 시작된다.


“지혜”가 보낸 이 로드맵 천사는 걷는 이가 걷기를 마칠 때까지 원격조정을 하며 지켜보고 있다. “걸어서 휴전선”이란 로드맵을 작성하여 걷는 이에게 주고 줄곧 교신하는 그는 걷는 이에게 자기를 “컨트롤 타워”로 생각하라고 한다. “걸어서 휴전선”이란 로드맵을 보고 있으면, 별도의 지도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것 같다. 누구나 이것 하나 만으로도 휴전선 따라 도보 동서횡단을 시도해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각자가 자기의 한계를 고려하여 횡단기간을 20일 혹은 30일로 늘려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걷기 체험기를 읽으면서 나는 휴전선 동서횡단 도상실습을 함께 한다.


한 마리 벌레처럼 기어가는 길, 부디 그분이 불쌍히 여기시기를 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길, 그럴수록 그분이 동행하시기를 바란다. 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한계상황들, 길 끝에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한 마리 벌레처럼」에서).


이 말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이사야 41:14).


그는 이사야의 이 신탁을 확신하고 있다. 그가 DMZ를 걸으면서, 이사야의 이 신탁 말고, 호세아의 비전도 공유했을까?


“그 날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와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버리며 땅에서 전쟁을 없애 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호세아 2:18).




아직 나는 이 책의 첫 부분을 읽고 있을 뿐이다. 그와 함께 걸어 본다. 그의 배낭에는 필기를 할 수 있는 세 권의 노트가 들어 있다. 들리는 말씀을 받아 적어야 하니까 노트는 넉넉해야 안심이 될 터. 가벼운 휴대용 노트북 생각은 안 했을까? 간단한 메모는 휴대폰의 노트패드를 이용할 생각도 안 하고? 하지만 더 편한 것이 수기노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도 걱정도 하던데, 민통선이나 비무장지대 근방에서는 휴대폰에 여러 지도가 뜨지 않는가? 민통선 부근에서 내비게이션 작동이 멈춘 경험은 내게도 있다. 그가 열하루 길을 걸으면서 같은 기간 동안 머물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것은, 길을 떠나서 숙소를 찾는 것이 시간 낭비뿐 아니라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를 알기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는 여정이 나로서는 가장 긴장되는 대목이었다. 아마도 도보여행이었기에 어떤 변수를 미리 예상한 조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는 열하루 동안 혼자 걷는 길에서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고린도후서 11:26). 그러나 우리의 보행자는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었다며, 그들을 만나 도움과 위로와 격려를 받은 이야기를 군데군데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혼자 보낸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하는 것을 우리의 보행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 하나는 뜻밖의 만남이 허락된다는 것임을 배운 날이었다. 농막에서 물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나 정자에 앉아 심마니와 나눈 이야기는 분명 내 마음속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심마니의 자존심」)라고 말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린다.


나의 경우, 늙은 어머니가 혼자서 바깥출입을 하거나 먼 기차여행을 할 때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더 젊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 길을 나서시면 늘 조심하세요. 차도 조심, 사람도 조심….” “얘야 걱정마라. 밖에 나가면, 니 아나? 좋은 사람들뿐이 대이. 차는 비키 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고, 바깥에 좋은 사람 들 숱하게 많은 거, 니 모르제? 걱정하지 마라. 내 잘 다녀 올끼구만.” 어머니가 목사 아들을 위로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한희철 목사의 글을 읽으니, 지금도 길을 나서면 길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DMZ 부근에서는.아마도 그의 도보행군의 첫 번째 위협은 진부령에서 만난 폭우와 우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나로서는 힘겹게 고개를 넘는 한 나그네를 환영하시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축제행사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말해본다. IMF 이후 중단되었던 대한항공 서울-텔아비브 노선이 10년 만인 2008년 9월에 재취항 하던 날, 나는 그 첫 비행기 시승에 초대받았고, 마침내 그 비행기는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했다. 그때 살수차(撒水車)들이 우리가 타고 간 비행기를 뺑 둘러싸고 물 폭탄을 퍼붓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비행기 재취항과 첫 승객을 환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항 환영행사였다. 기내 방송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가 탑승했던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것을 진압하려 소방차 가 출동한 줄 알고 놀랐을 것이다. 그 생각이 나면서 한희철 목사가 진부령에서 겪은 폭우, 우박, 천둥, 번개는 얼마나 화려한 환영식이었을 까! 생각해본다.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그는 걸으면서 땅을 발견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하늘과 땅 을]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세기 1:1-2). 진부령을 오를 때는 폭우와 우박과 천둥과 번개가 동반하는 물을 체험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진부령에서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위로 하늘을 바라보고, 아래로 땅을 딛고, 하나님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을[‘루악흐 엘로힘’ “하나님의 바람” “강한 바람”] 가르며 걷는다. 걷는 길 앞, 뒤, 왼쪽, 오른쪽으로 각종 열매가 달린 야생 식물, 각종 날짐승, 이미 그는 저 아득한 태초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혼자서 DMZ 길을 한 마리 벌레처럼 외롭게 기어가는 고행(苦行)을 하는 동안, 그를 아끼고 염려하는 교회 성도들의 마음도 그들의 목사와 함께 DMZ 위를 걷고 있다. 더러는 시간이나 장소 등 만날 곳을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고, 미리 행선지를 알려 준 것도 아닌데, 목사가 걷는 길 위에 성지교회 성도들은 불쑥 불쑥 나타났다. 목사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을 것이다. 장로들이, 권사들이 새벽 일찍 길을 떠나 그가 걷고 있을 것 같은 길을 짐작하며 역(逆)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그 모습에 순례자는 감격하고 만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하루 길을 걷는 동안 장로님은 여러 번 먼 길을 달려왔다. 폭우에 젖은 발을 위해 신발을 사가지고, 행여 쓰러질까 고기를 사주시려, 물집이 잡힌 발을 감싼 인민군식 발싸개를 보고는 안쓰러워,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숙소까지(「마지막 걸음」에서).


이렇게 고마울수가! 한 권사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왔기 때문에 잠시 동안의 동행자들은 길가 바닥에 앉아 그들의 목사와 함께 “드문 만남이 주는 은총”을 마음껏 누리기도 한다. 뭉클한 장면이다. 목사 의 배터리가 100퍼센트 충전되는 순간이기도 했으리라! 이렇게 듬뿍 사랑을 받게 해주시면서도 같은 목회 현장에서 동시에 아물지 않는 상처까지 함께 받게 하시는 그분의 뜻은 무엇일까? 어느 교회나 목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성도도 있고, 본인들은 몰라도 자신들의 의도하지 않은 언행이 목사에게 상처를 주는 역할을 하는 성도도 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니, 목사는 그들을 차별할 수가 없다. 그들을 진정으로 다 가슴에 품으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꼬!


DMZ 횡단 도중 “평화의 댐”을 지나면서는 역대 한 정권의 위장된 안보를 회고하면서도, 세계 30여 개의 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는 “평화의 종” 앞에서 우리의 순례자는 “평화의 댐” 일대를 내려다보며 “한 줌의 기도”를 바친다.


이 평화의 종 제작에 당시 정갑철 화천군수의 참여가 크게 기여했다는 말을 현지에서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 내외는 한희철 목사의 감신대 동기 목회자들과 함께 화천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일행은 화천 교외의 한 리조트에서 1박을 했는데, 그 펜션 거실에는 소비에트연방 마지막 대통령,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로서 199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르바초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09년 5월 그는 평화의 종 제막식에 귀빈으로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가 한국 중앙 정부의 초청이 아닌, 한 군수의 초청을 받고 평화의 종 제막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나, 이 행사에 참석하는 동안 화천의 한 평범한 펜션에서 숙박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정갑철 군수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평화의 종 공원을 조성한 일을 격려하면서, 한편 평화의 종 제막식에 고르바초프 같은 인물을 초청하여 동네 펜션에서 재우는 등 그런 중요한 인연이 있는데도, 화천군 안에 왜 ‘고르바초프 거리’ 혹은 ‘고르비 거리’ 하나 만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비무장지대 부근에는 순교자들이 있다. 순례자는 남북 분단과 순교 이야기, 그러나 망각된 이야기, 기억해 주는 이들마저 없어진 이야기를 안타깝게 찾는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북한 정권이 볼 때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순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 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 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에서).


상세한 역사가 망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음을 우리의 순례자는 안타까워한다. 순례가 거의 끝날 무렵 순례자는 길 위에 나타난 구십 세의 노모를 만난다. 수고한 아들을 안아주려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한 아들의 개선을 축하하려고 길을 나선 아들의 어머니다. 당신이 남편 따라 단신으로 월남했던 그 길 위에서의 모자상봉은 우리 독자들에게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순례자는 인적이 드문 길가 논 옆에서, 피사리를 하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순례자는 반가워서 먼저 말을 건다. 몰골이 말이 아닌 키다리 가 강원도 고성에서 걷기를 시작해서 임진각까지 가는 길이란 말을 들은 할머니들은 깜짝 놀란다. 그 중 한 할머니가 묻는다. “어디 아파요?” 그렇지! 아프지, 아프니까 집 떠나 걷고 있지. 피살이 하던 할머니는 걷는 이의 정곡을 찔렀다.


우리의 순례자가 순례의 끝에서 받은 마지막 질문은 “아직도 아프니?”라는 주님의 질문이다. 걷기를 끝낸 그에게 나도 묻고 싶다. 그 아픔이 어디 치유되라고 있는 것인가? 그 아픔 그대로 지니고 견디라는 아픔 아닌가! 여러 성도들이 그렇게 큰 사랑을 베푼 것은, 아니, 그보다도 주님께서 친히 열 하룻길을 특별히 동행해 주신 것은, 그 아픔 그대로 지니고 이 역사에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라는 격려가 아니던가!


마지막 날은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아들의 마중을 받는다. 아내는 장모의 사랑도 함께 운반한다. 순례자에게 제일 약한 부분이 가족이다. 가족 때문에 떳떳할 수 있고, 가족 때문에 비굴할 수도 있다. 가족 때문에 부르심을 거절할 수도 있다. 동시에 제일 강한 부분이 가족이기도 하다. 한희철 목사는 평생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단강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천에서 부름 받은 삶에 헌신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힘이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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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로 선 시간의 은총


한희철 목사가 DMZ 380km를 열하루 동안 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얼마나 괴로웠으면…’이었다. 그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주일까지도 길 위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증이 확증이 되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글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가슴이 저릿해졌다. ‘이 착한 사람이 견디기 어려웠구나.’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그 너른 가슴으로 덥석 품어 안더니, 벽 같은 현실 앞에서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런 무모한 여정에 나선 것일까. 그것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올레길이나 순례길이 아니라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새겨진 접경 지역을 말이다. 왠지 그 아픔을 알 것도 같기에 선뜻 그 글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글을 읽기 시작했고, 멈출 수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글을 다 읽고 나니 리베카 솔닛의 말이 떠올랐다. 리베카는 걷기는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말한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 문장이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절벽 같은 현실과 그로 인해 마음에 드리운 무거운 구름이었다. 폭우 속을 걷고, 또 폭양 속을 타박타박 걷는다는 것, 그것은 자기 육체를 극한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했을 때,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는 이에게 길은 언제나 숨기고 있던 오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 예기치 않았던 이들과의 만남, 어떤 깨달음 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그는 삶의 여정 가운데 만난 수많은 이들을 기억 속에 호출한다.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그곳에 현존한다. 걷는 사람은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바람처럼 스쳐간 인연이라 해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떠올리고 함께 겪었던 시간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기도이다. 걷는 기도를 통해 호흡이 가지런해졌을 때 한희철 목사는 자기 발이 땅에 닿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성실하기 이를 데 없는 그가 의무의 감옥에 갇혀 사람들을 대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그는 허공 위를 허정거리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런데 이제 그의 발이 땅에 닿았다. 가속의 시간 속을 걸어가느라 허둥거리던 발걸음이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발걸음으로 변하자, 적절한 삶의 속도를 깨닫게 되었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내 발이 내 땅에 닿았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속도가 보였다.”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복이 이런 것일 게다. 홀로 걷는 이가 누리는 복은 또 있다. 마주 잡을 손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느꺼움 말이다. 나희덕은 <산속에서>라는 시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소중히 여긴다고 노래한다.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맞잡을 손 하나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위로가 되는 일이 또 있을까? 터벅터벅 갈라진 땅을 깁고, 찢어진 마음을 깁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불원천리 하고 찾아와 함께 만남의 기쁨을 나눴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손이 된 이들이 아니겠는가.


길을 걸었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절벽과도 같은 현실은 여전히 지속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몸으로 그 먼 길을 걸었던 이는 더 이상 그 현실 앞에서 울지 않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그는 홀로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이 내내 동행하고 계심을 알았을 테니 말이다.


글을 읽는 내내 탄식시를 떠올렸다. 평범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지만, 세상은 그런 우리의 바람을 뒤흔들고 때로는 흉포하게 찢어놓는다. 자기 힘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히브리 시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억눌린 함성을 토해냈다. ‘어찌하여’ 혹은 ‘언제까지’ 이런 일이 지속되는 것이냐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푸념은 언제나 가장 곤고했던 시간에 동행해주시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으로 이끌었고, 그 기억이 회복되었을 때 팥죽처럼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새로운 신뢰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Solviture Ambulando’,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햇볕에 바래고 이끼가 달라붙은 낡은 표지판을 보며 한희철 목사가 드렸던 ‘어느 날의 기도’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폭풍 속 흔들려도

꺾이지 않게 하시고

외발로 선 시간

막막하지 않게 하소서.


그를 두고 지금 내가 주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그는 기도의 마지막 연에서 이런 염원을 아뢰고 있다.


머무는 이 없어도 좋습니다.

초라하면 어떻습니까.

갈림길 끝

길을 찾는 누군가에게

가야 할 곳 제대로 가리키는

바른 표지판이게 하소서.


아우 한희철 목사, 그대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표지판이라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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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


19권의 저서와 10권의 번역서를 낸 김기석 목사가 스무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무심한 듯 지나치는 것 같으면서도 깊숙이 응시 하는 성찰의 힘”에서 나오는 문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김기석 표 문장의 아름다움’을 생략한 서평이나 독후감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최근에 나온 《인생은 살만한가》에서 김기석 목사는 “바늘로 우물 파는 행위에 빗대 설명했”던 오르한 파묵의 목소리를 빌려, ‘무모한 열정의 글쓰기’와 그것이 가져다 줄 ‘바위에서 솟아오를 샘물에 대한 기대’를 말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써왔으니 아름답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김기석의 문장을 이야기하다보니 이젠 그런 찬사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 앞에 멈춰 섰던 순간들을 완전히 지우고 이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편집자가 허락한다면 이 서평의 나머지 부분을 김기석이라는 작가의 문장으로만 채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인생은 살만한가》는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아내, 딸, 신학대학 동창, 청년 등과 나눈 12편의 ‘대화’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11편의 ‘편지’입니다. ‘대화’와 ‘편지’를 읽을 때 제 몸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저자가 12편의 대화는 안단테 템포로, 11편의 편지는 그보다 조금 빠른 안단티노나 모데라토로 템포를 지정한 것처럼 책을 읽었습니다. 대화편에서 왜 몸이 더디게 움직였는지는 책을 덮을 때까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김기석 목사는 느림이 “우리의 문명병을 치유해주는 가장 소중한 요소”라는 점을 거듭 말해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점점 더 빨라지는 템포가 “전체에 대한 매혹과 어울림의 감성을 빼앗아 갔”다면서 ‘바로 이런 것이 타락’(245쪽)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문명의 템포에서 타락을 읽어내는 저자이기에 우리 독자들은 가장 느린 아다지오나 라르고 템포로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내와 산행 중에 주고받았던 “나는 내가 당신의 영웅인 줄 알았는데… 아이구, 참 내. 그래요. ‘당신을 나의 영웅으로 임명합니다.’(204쪽)란 발랄한 대목까지 안단테로 읽을 독자는 없겠지요.


김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로 그의 빼어난 문장을 꼽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런 주장에 머리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문(美文)이 아니라 그 문장에 담긴,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더 귀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원색적인 이원론은 물론 교묘하게 자신을 위장한 변종 이원론에 격렬하게 휘둘렸던 교인들에게 ‘모든 이원론적 선택에는 억압이 내포되어 있다’(83쪽)는 목소리는 거의 복음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도 사랑의 노래를 지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야. (중략)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불러야 할 아름다운 노래를 포기해서는 안 돼.(17쪽)


저는 오히려 현실이 난마처럼 얽혀든 시대일수록 경전을 깊이 파고드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102쪽)


김기석을 읽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글이 모두가 멈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지네딘 지단과 함께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에서 자살을 기도했던 청년 조르주가 새 인생을 살게 된 과정이 소개됩니다. 조르주는 피에르 신부가 자신에게 돈이든 일이든 그저 베푼 게 아니라 자기에게 꼭 필요했던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줬기 때문에 자살의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김기석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 끝에 “인간은 누구나 ‘원본’으로 태어났다”는 랍비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남과 구별되길 원하면서도, 같아지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우주 가운데 나와 똑같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느끼는 경이감을 전한 것입니다(236쪽).


그리고 ‘기억과 망각 사이’는 한국 개신교가 거짓 종교의 특징인 망각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왜곡된 기억의 주입을 경고하는 글입니다. “친일파들이 애국자로 둔갑하고,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역사의 변방에 유폐”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역사적 소명은 ‘망실된 기억의 복원’과 ‘왜곡된 기억의 바로잡음’이라는 것입니다(158쪽). 김기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는 과거로 흘러가 버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게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야.(159쪽)


저는 이 책에서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 ‘아낌’을 말하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기석은 생태계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아낌’을 절실한 도전으로 인식합니다. ‘아낌’이 예수가 보여준 삶의 핵심이고, 사람을 아끼는 것이 참 삶의 시작(313쪽)이라는 것입니다. 김기석은 아낌이야말로 우리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지름길이라면서 “예수의 마음, 즉 ‘아낌’이라는 단어 하나를 화두처럼 붙들고 살라”(317쪽)는 부탁으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노자가 오래 전에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아낌만 한 것이 없다’는 말을 한 건 맞지만 현직 목사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단어나 개념을 차용하지 않고 예수가 보여준 삶의 핵심을 이야기한 부분이 고맙고 놀라웠습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끊어낼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이들로 인해 생겼던 어두운 일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고마운 이유입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망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일상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일 수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사소한 눈짓, 몸짓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명멸하는 불빛입니다. 그 불빛들이 모여 생을 이루는 것이겠지요?(275쪽)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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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과 허비의 사이, 영혼이 따라올 시간

- 김기석 목사님 신간 《인생은 살만한가》를 읽고 -


서평을 부탁 받고 책을 읽기 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저자의 글쓰기였다. 김 목사님을 생각할 때면 늘 떠올라 내게 반성과 분발로 겸손히 허리를 굽히게 하는 그분의 일상적 성실성(誠實性). 그것은 사실상 글쓰기에 앞선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일관된 절제의 태도다. 차라리 10년이 지나도 못 쫓아오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우스개가 들어맞지 그분을 가외(可畏)케 할 후생(後生)이 있을까.


가끔 만나 뵈면 이렇게 함께 쉬어 가는가 모종의 안심이 될듯 싶은데, 보이지도 않는 말(馬)과 능히 경주라도 하는 듯 또 저만치 앞서 달음질을 놓으신다. 날짜와 시간과 날씨와 컨디션을 망라한 일체의 핑계가 소용에 닿지 않는 이 가혹한(!) 성실성. 이것이 그분의 진정한 설교의 출처로서 그 모든 부분 일관되게 게으른 후생들로 거기에 대면하면 일체의 변명을 깨끗이 포기하고 기꺼이 항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이 방학을 만난 듯 오히려 그 앞에 후련해지는 항복이다. 나로 말하면 여전히 게으른 채로 항복했으면서도 탐내며 존경하고 있는. 첫 장을 펼치니 그런 내 첩경에 미리 가 있는 것처럼 이런 말씀을 하신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모래 속에 묻힌 사금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경험을 체로 거르고 또 거르는 일이고, 글쓰기의 보람은 인식의 지평에 떠오른 낯선 광휘와 마주치는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그 빛과 마주치는 순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단하게 된다”(5쪽).


‘깨단하다’(어떻게 이런 말들을 깨알같이 알고 계시는지)는 찾아보니 ‘오래 생각나지 않다가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고 분명히 알다’라고 돼있다. 모래 속에 묻힌 사금,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거르고 거르는 체질, 거기서 떠오른 금빛 광휘와의 낯선 만남, 그러니 그의 글쓰기(삶의 전체적 성실성)란 계속하여 이 사람들의 생활이라는 것 속에서 오래 생각나지 않는 중인 어떤 것을 생각하는 중인 것이고, 그것이 걸러져 마음에 남은 금알갱이의 반짝임처럼 떠올라 그것이 금(金)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보람을 위한 끝없는 체질인 것. 떠오른다 했지만 실은 연금(鍊金)이고 제련(製鍊)인 끝없는 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쯤은 알고 있다. 그 성실성이나 인식의 지평 위에 떠오른 금싸라기의 보람이란 여전한 체질의 과정인 일상의 부분이지 그것의 한가로운 열매가 아니라는 것을. (물론 가소로운 말이지만)정말 나로선 여기서 문맥(文脈)을 놓치면 영 놓치게 되어 따라가기는커녕 딴 길로 가리라는 것 정도는 간파했다고 믿고 싶다.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잘 속는지!) 이 문맥은 그렇게 쓰여진 글의 맥락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이의 절제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속이는 사람도 없는 데 속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역시 깨단함이 없기 때문이고, 거르고 걸러 오래 생각나지 않다가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고 분명히 알게 되는 살아감에 관한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껏 보여주었는데도 못 보고 기껏 보고서도 도루묵인.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인들을 보면 괜히 우울해져요. 그들은 절망과 환멸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자기들의 역사적 소임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들을 정치인이 아닌 맨 얼굴의 이웃으로 만나도 마찬가지 느낌일까요? 그들은 가족들 앞에서도 그런 가면을 쓰고 살아갈까요?”


“글쎄다. 하지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 대해 말할 때 전칭명제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아.”


“아빠도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있잖아요?”


“그랬나? 하지만 그것은 일반화의 오류인 동시에 정신적 폭력이야. 감정적으로는 나도 어떤 집단의 사람들을 한통속으로 몰아붙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또 그렇게 할 때도 있지만 그건 나의 미성숙의 증거일 뿐이야.”


“하지만 사람이 이것저것 다 가리면서 어떻게 살아요? 가끔 실수도 하고, 오버도 하면서 사는 거지요.”


“물론 그래. 하지만 타인이 숨 쉴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돼. 그의 가면 속에는 분명 말랑말랑한 맨얼굴이 있지 않겠니? 게다가 시간의 지평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진실의 실체를 온전히 보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거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근본주의의 뿌리야. 타자에 대한 폭력은 흔히 자기 생각의 절대화에서 비롯되는 걸 거야.”(「가면과 맨 얼굴」, 24쪽)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그것들은 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 같다(전도서 12:11).


젊은 날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누군가의 말에 양심이 찔려 의기가 소침해지고 약간의 항거를 하고 싶지만 결국 기가 꺾이는 경험을 자주 한다. 그런 말들은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서 아는 사람이라면 되려 가소롭거나 아니꼬워 내 기가 살고 양심이 담대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카운터 펀치를 허락하고 의문의 여지없는 일패를 더하기도 한다. 며칠씩 혹은 더 긴 날들을 절치부심으로 끙끙 앓으며 내 의기와 양심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나는 이제 수락을 괴로워하지도 않고 의기와 양심 사이의 갈등을 고통스러워하진 않게 됐다. 괴로웠던 것은 내가 수락할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소하다면 소소한 이런 대화 속에서 나는 나의 오랜 분투의 핵심을 깨단하게 된다. 가면과 맨 얼굴이 타자들의 얼굴에 관한 게 아니라 내 얼굴에 관한 것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근본주의의 뿌리이며 내 사고의 절대화에서 나는 벗어나질 못했던 것이 아니던가. 더 높고 중한 하나님의 원리에는 둔감하고 알량한 내 자존과 아집의 위상만을 걱정해온 게 나의 의기소침이고 항거가 아니었던가. 하여 나는 이런 말을 듣기만 했지 이런 말을 해 본 일이 없고, 대개 이런 말들을 불신만 했지 내 영혼에 닿는 채찍으로 수락할 줄 몰랐던 것이다.



김 목사님에게는 진리의 첨예함에 입각해 있는 진보성과 함께 얼핏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고전성이 있다. 진보적이면 일반화의 오류나 정신적 폭력에 편벽되기 쉽고(아니 편벽되고 싶고) 고전적이면 위선적이거나 고루하기 쉽다. 나는 아마 그런 모양만 보고 그런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늘 치우치는 경향을 주체 못하며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반성이나 성찰의 여지없이 그 길로 쭉 나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대개는 선배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모든 진보성과 보수성의 고루함에서 벗어난 모종의 가능성을 발견할 때 나는 나의 결과를 알면서도 멈추고 싶지 않은 편협으로의 행진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멈추고 싶어진다. 이쯤 되면 나는 아마 이런 것이 내겐 없는 것으로 내게 주어진 선물처럼 그것을 탐내보려 하는 것 같다. 허허(虛虛)! 선물을 탐내다니.


가령 또 이런 부분.


“다만 내가 겪어왔던 어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지. ‘당신들 때문에 내가 몹시 힘들다. 두 분 다 소중한 분들이지만, 이런 점은 공동체에 부담이 된다.’ 그러면 그분들은 처음으로 자기들의 틀을 깨고 제3자를 의식하게 돼. 그게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야.”(「영성의 깊이란 무엇인가」 35쪽)


교회에서 각자 충성스럽고 소중한 두 사람이 싸우고 반목할 때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옳고 그름도 있을 테고 옳음과 그름의 우열도 있을 터이다. 이럴 때가 내게도 있다. 이럴 때 나는 대개 기계적 중립의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분명 옳고 그름에 대한 내 나름의 분명함을 어떡하든지 어필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니 나타내지 않으려 노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태도는 내겐 불가피한 처신으로 일종의 자기를 부인하는 희생적이고 의로운 태도로 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당신들 때문에 내가 몹시 힘들다. 두 분 다 소중한 분들이지만, 이런 점은 공동체에 부담이 된다.’라는 말을 해보지 못했을까? 혹은 나는 왜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라는 말씀을 담대히 믿지 못했을까? 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노라는 나의 용기는 사실 과장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흔들리지 않는 생의 토대는 결국 진실일 텐데, 우리가 진실한 걸까?”(38쪽).


김 목사님은 ‘흔들리지 않는 생의 토대는 결국 진실이다’라는 말을 ‘진실일텐데, 우리가 진실한 걸까?’라고 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생의 토대는 결국 진실입니다’라고 말한다.


연전 내가 몹시 앓고 있을 때 목사님으로부터 안부를 묻고 위로하는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날은 비가 내렸고 날씨만큼이나 내 심경은 복잡하고 우울했다. 목사님의 곡진한 위로의 몇 마디가 나를 흔들었던 것일까? 나는 응석처럼 구구절절의 편지를 써 보냈다. 한 번 더 내 마음을 위로해 줄 곡진한 말씀을 내심 기다렸던가. 그러나 목사님으로부터는 ‘마음과 몸 잘 추스르시라’는 간단한 답신이 왔다. 그때 나는 뭔가 내둥 안 하던 짓을 처음 해놓고 막급의 후회를 하는 사람의 심정이 되어 약간은 참담하기까지 했다. 고백건대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내 괴로움을 토로해 본적이 별로 없다. 


‘인생은 혼자 가는 먼 길’이라 아내에게도 내 괴로움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 하지 말라고 권한다. 직업상 타인들의 괴로운 고민을 듣고 성실로 답변을 하기도 하지만 정작 내 대답이 답변이 되리라 믿질 않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이므로. 결국 해답은 당사자 자신에게서 나와야하는 것이고 어차피 겪을 것은 온전히 자신이 겪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내가 왜 이미 문자를 받고 또 뭔가를 갈구하는 글을 써 보냈던 것인가 말이다.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나를 위해 서운한 모양이었다. 아픈 남편에게 위로가 가득한 답신을 보내주셨으면 좋았을 걸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알았던 것이다. 김 목사님의 짧은 답신. ‘마음과 몸 잘 추스르시고 빨리 일어나시라’는 그 말씀의 의미와 그 의미의 진실과 그 진실을 지키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고뇌와 그 고뇌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의 슬픔 같은 것? 그렇다! 그것은 모든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존재들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그 자신들이 감당하고 가야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동병(同病)의 아픈 연민이자 상련(相憐)의 깊은 슬픔. 그러니 내 맘이 부끄러운 건 내 맘의 굳세지 못함 때문이지 김 목사님의 문자 때문이 아니라고 아내를 달래주었다. 병으로 쇠약해진 나를 본래 나의 태도로 다시 일으켜 주는 안수의 말씀으로.


“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 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는 자는 제 목에 오랏줄이 감긴 그 사람뿐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심신의 고통을 지금 맛보고 있는 그 사람뿐입니다. 가장 절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장군이나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 지금 추위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 지금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밤을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새우고 있을 것입니다. 밤은 평안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치와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이 오덕, 권정생 선생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에서 인용, 「영성의 깊이란 무엇인가」, 39쪽).


권정생 선생의 말이라는 이 말을 인용하신 뜻은 고통하는 사람에 대한 옹호와 지지일지라도 그의 자존(自尊)을 자기의 의로서 위해하게 되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닐까. 내 일찍이 ‘문장의 핵심은 함축’이라는 말을 들었거니와 이쯤 이르면 ‘인생 전반에 대한 태도의 핵심이 함축’이 아닐까 싶다. 모든 과장과 헛된 위로의 갈구를 간파한 침묵의 응축으로서의 함축. “거기에 비하면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말은 너무나 창백해 보여.” 같은 문장을 만나면 나는 웃음이 난다. 그 정도라면 나 같았으면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말은 죄다 거짓말 같아, (혹은)거짓말이야.’라고 ‘쾅쾅쾅’ 못을 박지 않았을까 싶어서다. 또 이런 고백에 이르면 그 절제의 함축과 성실성이 한가로운 사색의 낭만이 아니라 가혹한 노동이라는 내 짐작이 증명된다.


“그랬나? 어쩌면 성실함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나는 일을 적당히, 얼렁뚱땅 하는 걸 싫어하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만든 내 이미지에 자승자박 당한 꼴이었던 것 같아. 성실한 건 좋은데 그게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바뀐 게 문제지. 나는 스스로 그런 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야”(「슬픈 몸 고마운 몸」, 47쪽).


“나는 덜 떫은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 좀 안타깝더라.”


“그래도 좀 떫게 굴면 싫어하시잖아요?”


“그건 그래.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상생을 위한 떫음이 아니라 자기 욕망충족을 위해 떫다가는 버림을 받기 십상이 라는 거지. 떫음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말이야. 가을이 되면 단맛을 품어야지. 인생의 가을이 되었는데도 떫기만 한 사람들도 있거든.”


“작정한다고 단맛이 품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경계를 넘어」, 91쪽)


흥미로운 대목이다. 떫음에는 상생을 위한 떫음과 자기 욕망 충족을 위한 떫음이 있다는 이 분류법은 떫음의 반듯한 필요와 그 필요의 분명한 목표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선생의 훈계처럼 윤리적인 게 아니라 시인의 시구처럼 시적이다. 나는 궁금해진다. 가을이 되어 단맛을 품기는 사람은 누굴까? 가을이 됐음에도 떫기만 한 사람은 누구일까? 갑자기 땡감의 식감이 느껴지면서 목울대가 꽉 메인다.


“겸손은 자존심의 무게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고, 봉사는 강박관념을 씻어주고, 공부는 자기 자신을 텍스트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지요?”(「쉼 평화의 시작」, 111쪽)


여기에 이르러 꽉 막힌 듯한 목이 스르르 풀어진다. 이런 문장을 만나면 스스로가 대견해지는 법이다. 겸손이 해방이라니, 봉사가 자유라니, 책은 자기라니. 쉼이면서 평화인 곳 언저리에 나도 이른 것 같기도 한 안심에 나도 좀 쉼이 되고 평화가 되는 것이다.


“양해하겠지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면 제가 알아서 자리를 비워줘야지요.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왜 자꾸 한숨을 내쉬세요, 산에까지 오셔서?”


집사인 듯한 성도는 목사와 산을 오른다. 매사 불만스러운 그녀는 쉴목에 앉아 쉬어가자는 말에 그런 쉼조차 산새들을 방해하는 것이라 불평을 토한다. 도저한 평화주의자이자 의로운 심판관이지만 그 도저함과 의로움으로 다함없는 불만족과 긍휼 없는 짜증을 되돌려 받고 있는. 목사는 여유로운 위트로 성도의 조급한 마음의 숨을 돌린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이제 일어나 가지요. 해 지겠어요”(「인생은 살만한가」, 134쪽).


“그런 경우를 저도 간혹 본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해요. 진리의 길에서 멀어진 사람일수록 남의 허물을 잘 들추어낸다고요. 깨끗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더러운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더러운 법이거든요. 예수님에게는 버릴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이들은 모두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그런 사람들은 점점 무분별하게 되고, 헛된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불의한 행실로 세상을 어지럽혀요. 그들은 가증하고 완고하고 선에 무능력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잖아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정직할 때가 많아요.”(「타락한 영혼의 징표」, 184쪽)


옛날 같았으면 불만스런 성서해석이 됐을 것 같다. 아니 아직도 그런 불만이 다 해소된 건 아니다. 마치 이미 훌륭한 사회인이 된 사람이 초등학교 성적에 불만족스러워하듯이. 그것은 간혹 보이는 김 목사님의 보수적 단호함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싶다. 금방 잊어버렸던 것이다. ‘겸손은 자존심의 무게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고, 봉사는 강박관념을 씻어주고, 공부는 자기 자신을 텍스트로 삼아야 한다’던 말을. 이 모든 말들이 김 목사님 자신이라는 텍스트를 통과해 나온 자기 제련의 체질에서 얻은 일상의 성실이 걸러낸 경건의 광휘인 것을. 그러니 이런 말씀을 흔히 홍수 때 마시지 못할 물처럼 범람하는 교훈가(敎訓家)들의 도덕설교로 듣게 되는 건 곤란하다.


“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가장 긍정적인 것은 자기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고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 세계민들 앞에 서서 그는 자기의 병세를 고했고, 사람들의 이해를 구했어. 나는 그것이야말로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고귀한 메시지라고 생각해. 그는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증언한 셈이지.”(「우리는 신성함을 믿어야 한다」, 210쪽)


그리하여 이런 진리에 이른다.


“망설임은 성실성의 증거이고 확신은 사기의 증거라지요?”(「일상으로 그리는 이야기」, 272쪽)


“만물이 일어나도 막지 않고, 생겨도 잡아두지 않으며,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머물지 않는다〔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크리소스토모스를 그리워하며」, 283쪽).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아낌만한 것이 없으니 무릇 아낌을 일컬어 빨리 돌아감이라 한다. 빨리 돌아감을 일컬어 덕을 거듭 쌓는다고 한다. 나는 이군처럼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젊은이들이 이 답답한 세상에 작은 틈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몇 해 전에 텔레비전에서 수십 년을 한결같이 바위를 쪼며 우물을 파들어 가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값진 보화를 얻으리라는 그분의 바람은 허망해 보였지만 그분의 수도자적인 몸짓에서 나는 서늘한 감동을 느꼈습니다”(「아낌 만한 것이 없다」, 315쪽).


최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를 ‘허비(虛費)(혹은 탕진)’로 설명하는 설교를 했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은 그것을 ‘아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허비든 아낌이든 같은 말이지만 이 두 표현법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이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허비이면서 아낌인, 허비와 아낌의 사이, 자기 자신에게는 허비인 듯 하지만 세상과 타인을 향해서는 아낌으로 옮아가려는 나를 본다. 그것은 수십 년 바위를 쪼아 우물을 파들어 가는 이의 허망 같은 어리석음이나 자기 공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 우주를 따르려 망설이는 수도자의 경건이리라.


본문 어딘가에서 김 목사님은 인디언들이 가던 길을 쉬며 기다리는 이유는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라고 썼다. ‘인생은 살만한가?’ 대답은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 기다림의 지체(遲滯)에 있으리라.


“어리석음이 없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고,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 생명의 몫을 누리는 참 세상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꿈을 하늘이 외면하지는 않겠지요. 나는 이군의 답답한 마음을 일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다만 그 길에서 나는 이군이 예수의 마음, 즉 ‘아낌’이라는 단어 하나를 화두처럼 붙들고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빕니다”(「아낌만한 것이 없다」, 317쪽).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하는 노래가 있었지. 정말, 나도 그런 평화를 사모한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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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왕조사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의 왕조적인 모습을 이렇게 풀어간다. “우리의 공화정 도입이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행위와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순식간에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와 세월호 참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저자는 “개신교는 ‘자영업’에 가깝다. 한국 개신교회는 사회적으로 공적 조직과 연 닿아있지 않다. 그래서 운영에 관한 일체를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자영업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전형적인 외국계 지사의 모습을 보인다. 천주교는 개신교처럼 자영업 마인드가 아니다. 뒤에 바티칸이라는 든든한 언덕이 있기 때문일까? 국내에서 영업이 좀 시원찮아도 자금력 두둑한 본사 덕분에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한국 천주교의 경우 신자들에 대한 독려 행위가 개신교보다는 약하다. 반면 불교는 전형적인 공기업 마인드이다. 업무의 효율이나 생산성에 목매지 않아도 꼬박꼬박 때만 되면 계좌에 입금되는 월급의 유혹은 달콤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종교의 상황은 그 종교가 기득권화되어 있고 그걸 지켜내고 확대하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이며 정작 해야 할 종교 수련의 길보다는 손쉬운(?) 세속적 영향력 확대의 길을 택하게 되고, 힘(權力)으로, 돈으로, 수(數)의 힘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밀어 붙인다.

 

이러한 종교에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성찰,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 대중의 욕망에 대해 질타한다. 결국 종교는 기득권을 움켜쥐는 과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종교의 사망선고가 내려진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유교의 흔적을 살피면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는 저자는 그때마다 서슴없이 “유교!”라고 답한다. 결혼을 고리로 이어진 가족주의에 기초한 유교란 종교의 가치관은 지금도 강력하다. 명절 때마다, 집안의 대소사 때마다 발길을 원적(原籍)으로 돌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토스는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닌 바로 유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교는 이를 사회적 제도 속에 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그뿐인가? 설날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가문의 영생을 축하하는 의례, 그것이 바로 제사이다. 이러한 유교의 에토스는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우 강력한 힘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러니 유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라고 할 수 밖에.

 

이에 덧붙여 한국종교가 민족주의와 어떻게 결부되어있는지, 각 종교의 경전읽기는 연애편지를 읽는 것과 유사한 성질의 것인지, 역사 속에서 종교는 어떤 행태로 파렴치하게 친일 행각을 벌였는지, 우리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정도로 왜 ‘공부는 구도행위’가 되었는지 등등을 풀어가면서 보통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나쁜 종교’이고 ‘좋은 종교’일까? 이 물음에 대해 보통 사람이 생활세계에서 대하는 종교가 어떤가에 대해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한다.

 

“야 니 어떤 기 참말로 좋은 종굔지 아나?”
“뭔데?”
“통일교 아이가!”
“우째서?”
“통일교는 교인이 되믄 장가보내준다 아이가!”
“참말로?”
“하모. 그라고 장가가믄 집도 준다 카더라!”
“집도??!! …야야, 그 참말로 좋은 종교네.”


“그럼 개신교는?”
“음… 그건 쪼매 애매하다. 교회 가믄 장가는 보내주는데… 뭘 쫌 마
이 내야 된다 카더라~”
“뭐를?”
“헌금! 헌금내야 된다 아이가! 교회는 기본으로 드는 돈이 장난이 아
니라 카더라.”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나?”
“하모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니까 괜찮다 아이가!”

“집은?”
“… 집은 없다드라.”


“천주교는?”
“그거도 개신교랑 쪼매 비슷하다 카더라.”
“근데 문제는 신부하고 수녀는 결혼을 안 한다 안카나~”
“내는 그기 쫌 맘에 걸린다.”
“결혼을 안해보믄 사람 속을 잘 모른다 아이가.”


“그래 그람 다른 종교는 없나?”
“느그 대순진리회는 가지 마래이~”
“와?”
“거기는 장가도 엄꼬, 집도 엄꼬, 대신 들어갈 때부터 돈만 진탕 낸다 
아이가!”
“참말이가?”
“하모!”
“음… 그람 거는 안 되겠네!”

한국 사회는 왕조사회다

 

5년제 비정규직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이 제왕적 군주가 되어 백성 위에 군림하고, 그의 임명을 받은 고위직 공무원들은 공복이 아니라 지배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런 심정적 정황 가운데 정작 주권자요 납세자인 시민은 계몽적 군주만 손꼽아 기다리는 왕조의 백성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96쪽)

 

왕조 사회 속 갑질 문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여전히 사회적 에토스가 왕조적 마인드에 묶여 있다 보니 갑의 언사는 임금의 그것이 되어 어명처럼 서민의 심부를 찔러댄다. 이런 현상은 세월호 참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폄하하면서, 간단히 돈으로 해결하려고만 한다. 갑의 온정으로 두둑이 챙겨 줄 테니 이쯤에서 목소리를 낮추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투의 훈계이다.(104, 106쪽)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왕조국가’적 성격이 강하다. 교종과 추기경에 대해 보여준 한국 사회의 반응은 왕의 즉위를 환영하거나, 혹은 왕의 승하를 슬퍼하는 왕조 사회 신민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112쪽)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중세인들이 페스트의 공포를 유대인 죽이기로 상쇄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메르스가 가져온 불안을 누군가를 공격함으로 무마시키려 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공격의 대상들은 사회의 약자들이다. 안 그래도 소외되고, 배척받으며, 그 때문에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사회의 다수는 날카로운 침과 바늘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의 폭력을 만나니, 중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희생양 찾기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감염병의 문제는 의학과 그에 기반을 둔 정책과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이를 신앙으로 섣불리 ‘해석’하려 드는 것 자체가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 다른 감염병일 수 있다.(117쪽)

 

공부는 구도행위

우리는 공부를 종교적 구도행위의 하나로 각인하며 살아왔다. 이미 오래도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집안 누군가가 똘똘한 머리를 지녔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데 전혀 거리낌 없는 에토스 속에 살아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생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유교 사회에서 공부는 일종의 구도 행위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가 공부로 성공해야 가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라는 국가시험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사회는 공부에 대한 공동체적 신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공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개인의 신앙적 책무가 된다. 왜? 그래야 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은 한국에서는 신앙의 문제이다. 매번 입시철만 되면 이 땅위의 모든 종교를 대동단결하는 힘이 신앙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우리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 지경이다.(157, 159쪽)

  

한국 교회와 샤머니즘

한국 교회는 편한 마음으로 샤머니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혹은 희생타로 이용해 왔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개화되고, 문명화되고, 심지어 정보화에도 앞서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오히려 샤머니즘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는 이 엄연한 현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한국 교회에 웅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 앞에 오히려 한국의 샤머니즘은 한국 교회로서는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타산지석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것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샤머니즘이 보이는 부정적 장면이 아니라 긍정의 그림들이다. 그것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이해의 자세가 문제를 푸는 고갱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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