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이야기(11)

 

바라고 바라던 왕이 되다!(2)

– 하지만 치러야 할 값은 컸다 -

 

1.

 

남은 얘기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어떻게 해서 다윗이 다스리는 하나의 나라가 됐는가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본래 이스라엘과 유다는 별개의 나라였는데 다윗에 의해 하나로 통합됐다. 잠시 헤어졌던 형제가 재결합한 것도 아니었다. 그 과정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고 크고 작은 전쟁도 벌어졌다.

 

아브넬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군대와 요압이 지휘하는 유다 군대가 기브온에서 맞붙었다(사무엘하 2:12-13). 설화자는 누가 왜 이 전쟁을 시작했는지 밝히지 않고 그냥 두 군대가 기브온에 진을 쳤다고만 한다. 전쟁은 목적을 갖고 벌이는 정치행위다. 목적 없이 치러지는 전쟁은 없다. 전쟁이 벌어지면 승패와 상관없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가 생기는데 누가 목적 없이 전쟁을 벌이겠는가 말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전쟁을 시작했을까? 이번에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우선 이스보셋을 생각해보자. 그에게 전쟁할 이유가 있나? 있더라도 그럴 힘이 있었을까?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고 왕과 왕자들을 잃었다. 이스보셋이 왕이 됐지만 군사령관 아브넬이 실권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과 전쟁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또한 아브넬에게도 전쟁 동기가 없었다. 나라 재건에 힘을 기울여야 할 판에 전쟁은 무슨 전쟁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다윗에게는 이때가 이스라엘을 ‘정복’할 절호의 기회였을 거다. 생각해보자.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고 왕과 왕자들은 전사했다. 이스보셋와 아브넬이 있다곤 해도 전력이 결정적으로 약해졌다. 다윗에게 이때보다 더 좋은 때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터이다. 블레셋도 전쟁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속국’ 유다의 승리는 곧 자기들의 승리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추측이다. 성서 어디에도 이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다.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 추측의 타당성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

 

중요한 대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설화자가 전쟁의 진행 방식을 상세히 전하는 건 엉뚱해 보인다. 설화자는 양편에서 동수의 젊은이들이 나와서 결투하는 방식으로 싸웠는데 공교롭게도 양편 젊은이들이 모두 죽었고 그 다음에는 치열한 육박전에 벌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얘기가 전쟁의 원인이 뭔지, 누가 일으켰는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을까? 혹시 설화자는 다윗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게 아닐까? 독자들의 관심이 더 중요한 얘기에 모아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아브넬이 지휘한 이스라엘 군대가 패해서 도망치는데 요압의 동생 중 ‘들에 사는 노루처럼’ 달음박질을 잘 하는 아사헬이 아브넬을 바싹 뒤쫓았다. 아브넬은 도망치면서도 아사헬에게 더 쫓아오지 말라고, 그러면 죽이겠다고 경고했지만 공명심에 사로잡혔던지 아사헬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쫓아가다가 아브넬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다(사무엘하 2:18-23). 아브넬이 아사헬에게 “내가 너를 쳐 죽여서 너를 땅바닥에 쓰러뜨려야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내가 너를 죽이고 어떻게 너의 형 요압을 보겠느냐?”(22절)라고 말했지만 아사헬은 듣지 않았단다.

 

그 후 양편은 휴전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아브넬과 요압은 원수가 되고 말았다.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두 집안 사이의 복수의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됐다. 요압과 그 부하들은 아사헬의 시신을 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옮겨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들은 밤새 걸어서 헤브론에 이르렀는데 그때 아침 해가 떠올랐다고 했다(32절). 요압은 아침 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피를 부르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을 결심을 했을까, 아니면 반드시 아브넬을 죽여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며 이를 갈았을까?

 

그 후로도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의 전쟁은 오래 지속됐다(사무엘하 3:1). 다윗 집안은 강해졌고 사울 집안은 약해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야훼의 영이 줄곧 다윗과 함께 했는데 말해서 뭐 하겠나.

 

설화자는 두 집안 사이에 벌어진 전쟁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다윗이 헤브론에 있는 동안 낳은 아들들이 누군지 밝힌다(2-4절). 아히노암에게서 암논이 태어났고 나발에게서 길르압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압살롬이, 학깃에게서 아도니야가, 아비달에게서 스바댜가, 에글라에게서 이드르암이 태어났단다. 모두 여섯 아내에게서 여섯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중 집안을 밝힌 아내는 마아가뿐이다. 그녀는 그술 왕 달매의 딸이란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압살롬이 이복형제 암논을 죽이고 도망쳤을 때 밝혀진다(사무엘하 13장).

 

 

<출처: http://www.exploretheway.org/2-samuel-discussion-notes/2-samuel-chapter-2>

 

 

 

2.

 

두 나라 사이의 오랜 전쟁은 이스보셋의 궁전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으로 인해 종지부를 찍는다. 사건의 발단은 아브넬이 선왕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한 일이었다(사무엘하 3:7). 그가 리스바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스보셋에게는 그런 행위가 왕권을 노리는 ‘정치적’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는 거다. 유약한 왕 그 일로 인해 아브넬을 비난하자 그는 도리어 화를 내며 자기가 사울 집안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충성했고 “임금님[이스보셋]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지도 않았”는데 “이 여자의 그릇된 행실을 두고 나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것입니까?”(8절)라고 말했다. 새번역 성서는 이 구절을 리스바가 그릇된 행실을 한 것처럼 번역했지만 원문에는 “이 여자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겁니까?”(you reproach me over a woman)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다. 새번역 성서의 번역원문이 맛소라 텍스트인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그릇된 행실을 한 사람은 아브넬이었는데 그게 리스바인 것처럼 표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발언은 그 다음에 나온다.

 

“야훼께서는 이미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다윗 편을 들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이 아브넬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셔도 좋습니다. 하느님은 이 나라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서 빼앗아 다윗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다윗을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으로 삼으셔서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9-10절)

 

정말 아브넬이 이렇게 말했을까? 이것은 아브넬의 말이 아니라 신명기 역사가가 자기 생각을 아브넬의 입을 빌려서 한 말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가진 군인이 어떻게 사울 집안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군사령관이었겠나. 다윗은 사울의 친척인데 말이다. 하지만 허울뿐인 왕 이스보셋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서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아브넬이 사울의 후궁을 험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을 수 있다. 그가 했다는 연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겠다는 아브넬의 말은 곧 이스라엘을 다윗의 봉신국(封臣國)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스바를 범한 아브넬의 행위는 사울 집안과 인연을 끊으려는 의도적인 행위였을까? 그가 이스보셋의 항의를 받아 화가 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려 했을까? 아니면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려고 일부러 리스바를 범했을까? 둘 다 가능한데 어느 편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그는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와 언약을 세운다면 이스라엘을 그에게 바치겠다고 제안한다(12절). 다윗이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언약을 맺기로 약속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를 만나러 올 때 사울의 딸이자 과거 자기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 오라는 게 그것이었다. 안 그러면 자기를 보러 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 이혼 절차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다윗이 미갈과의 이혼에 동의했을 리 없으니 법적으로는 둘이 여전히 부부였을까?

 

다윗이 내건 조건은 아브넬이 리스바를 범한 것과 동기가 같다. 아브넬이 허약한 왕 이스보셋 대신 자기가 왕이 되려 했거나 실질적으로는 자기가 왕임을 세상에 보여주려 했던 것 같이 다윗도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음을 세상에 알리려고 사울의 딸이 미갈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이스보셋은 미갈을 데려왔다. 그때 그녀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의 아내로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발디엘은 졸지에 아내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그는 미갈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서 바후림까지 따라왔다가 아브넬이 돌아가라고 하자 그때서야 돌아갔다니 말이다. 권력자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불쌍한 사람이 여기도 하나 있다. 아버지와 본인 이름 밖에는 남겨진 게 없는 발디엘이란 사람, 그는 이 일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쓸쓸하게 혼자 살다 외롭게 죽어갔을까?

 

우리의 설화자는 발디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 번 일장 연설한 얘기를 전하는데 그 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여러분은 이미 전부터 다윗을 여러분의 왕으로 모시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제 기회가 왔습니다. 야훼께서 이미 다윗을 두고 ‘내가 나의 종 다윗을 시켜서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지배와 모든 원수의 지배에서 구하여 내겠다.’ 하고 약속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17-18절)

 

언제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윗을 왕으로 모시려고 애썼나? 그런 적이 있던가? 적어도 텍스트만 두고 말하면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더욱이 야훼가 다윗에게 한 약속을 아브넬이 언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아브넬이 그걸 무슨 수로 알았으며, 알았다면 왜 그 동안 그는 사울을 막지 않았을까? 사울의 행위는 야훼의 계획에 역행하는 것인데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됐단 말인가? 그럴 리 없다. 따라서 이 연설 역시 신명기 역사가의 말로 보는 게 맞겠다.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중지를 모아서 다윗에게 전달하려고 헤브론으로 갔다. 다윗은 그 일행을 환영하며 잔치를 베풀었단다. 잔치가 끝나자 아브넬은 모든 게 원만히 해결됐으니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 세우는 일만 남았다면서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여기서 일이 끝났다면 그런대로 헤피 엔딩이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브넬의 손에 동생 아사헬을 잃은 요압이 있었던 것이다(22-30절). 아브넬이 헤브론에 머물 때 요압은 거기 없었다가 나중에 아브넬이 거길 떠났다는 얘길 듣고 다윗에게 달려가 항의했단다. 어떻게 그를 그냥 돌려보낼 수 있냐고, 그는 다윗을 속이고 헤브론을 정탐하러 온 거라고 말이다. 설화자는 이에 다윗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하지 않는다. 이 침묵이 다윗의 것이든 설화자의 것이든 의도적으로 보인다. 안 그런가?

 

요압은 곧 사람을 보내서 아브넬을 데려왔다. 아브넬도 의심하면서 돌아왔을 거다. 요압은 아브넬과 조용히 얘기나 하려는 듯이 성문 안으로 데려와서 그를 찔러 죽였다. 아브넬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갔다. 사울이 죽은 후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고,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함으로써 실질적인 권력자임을 만천하에 보였으며, 다윗과의 협상을 주도함으로써 통일왕국에서도 고위직을 맡을 게 분명해 보였던 그가 이렇듯 허망하게 죽어간 거다.

 

그 다음에 다윗이 보인 행동은 상식적인 독자라면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아브넬이 요압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이렇게 외쳤단다.

 

“넬의 아들 아브넬이 암살당하였으나 나와 나의 나라는 야훼 앞에 아무 죄가 없다. 오직 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 아버지의 온 집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 요압의 집안에서는 고름을 흘리는 병자와 나병환자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다리 저는 사람과 칼을 맞아 죽는 자들과 굶어 죽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28-29절)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암살당했는데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야훼 앞에 죄가 없다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누가 뭐라고 했나? 다윗에게 책임을 물은 사람이 있었나? 이 말만 갖고 보면 누군가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말했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경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 그런가? 게다가 요압 집안에 퍼부은 극렬한 저주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아브넬을 죽인 게 잘한 일이 아니라 해도 그렇지, 요압 집안에 병자와 장애자가 끊이지 않을 거라니, 이건 ‘오버’도 보통 ‘오버’가 아니다.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돌아켜보자. 아브넬과 다윗이 한 약속에 따라서 다윗이 이스라엘과 언약 맺은 건 있을 법한 일이다. 사울의 죽음으로 국력이 약해진 이스라엘로서는 다윗의 봉신국이 되는 게 합리적이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와중에 아브넬이 왜,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점이다. 설화자는 동생 아사헬을 죽인 데 대한 복수로 요압이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는 다윗이 아브넬을 그냥 돌려보냄으로써 복수할 기회를 놓쳤다고 다윗에게 따졌단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군사령관 요압이 왕인 다윗에게 따지고 불평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말이다. 다윗이 이스보셋처럼 유약한 왕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더 이상한 점은 항의하는 요압에게 다윗이 호통 치기는커녕 한 마디로 대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침묵에 숨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다윗이 아브넬을 죽이려는 요압의 의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게 아닐까 말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아브넬의 존재는 다윗이나 요압 그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 다윗에게는 이스라엘의 실질적 권력자인 그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나았을 터인데 이는 요압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군사령관 후보자가 두 명이 되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아브넬의 죽음을 다윗과 요압의 공모의 산물로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추측이긴 하지만 말이다. 설화자가 이 얘기를 마무리하면서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아브넬이 그들의 동생 아사헬을 기브온 전투에서 죽였기 때문이다.”(30절)라고 확인하듯 말한 것도 이런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일단 의심하길 시작하면 끝이 없다.

 

하지만 이와 반대의 추측도 가능하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말이다. 아브넬의 죽음은 다윗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자진해서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려는 사람을 뭣 때문에 죽이겠냐는 거다. 텍스트는 세 번이나 아브넬이 다윗과 만난 후 “평안히 떠나갔다”고 적었다(21, 22, 23절). 요압에겐 개인적인 복수심 이외에도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면 군사령관 자리를 아브넬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도 있겠다 싶다(S. McKenzie, King David: A Biograhy, 119). 이 또한 추측이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사울과 요나단 때처럼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라고 명령했다(31절). 그는 백성들과 함께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32절). 그는 시인답게 그를 위해서도 조가를 지어 불렀다. 백성들이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35절). 그래서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서 그 일을 좋게 여겼다. 다윗 왕이 무엇을 하든지 온 백성이 마음에 좋게 받아들였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에게서 비롯된 일이 아님을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깨달아 알았다.”(36-37절).

 

이게 다윗의 목적이었을까?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가를 지어 부르게 하고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이유가 이거였을까? 온 백성이 그의 행위를 좋게 여기고 아브넬의 죽음이 다윗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을까? 다윗의 맘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만 더 얘기하자. 다윗이 아브넬을 위해 만든 조가는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라는 말로 시작된다(33절). ‘어리석은 사람’은 히브리어로 ‘나발’이다. ‘나발’? 다윗에게 대들었다가 야훼에 의해 죽임당한 갈렙 족속의 유지의 이름이 나발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지 않았던가.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을 보통명사로 보면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가 되지만 고유명사로 보면 “어찌하여 나발인 죽듯이 그렇게 아브넬이 죽었는가?”가 된다. 이를 언어유희로 보면 설화자는 아브넬도 나발처럼 죽었음을 지나가듯 슬쩍 언급한 게 아닐까? 이 역시 추측이지만 말이다.

 

3.

 

이제 누가 남았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다 사라졌다. 한 사람, 이스보셋을 제외하면 모두 불귀의 객이 됐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실권자는 아니었을지라도 사울의 후계자로서 적법하게 즉위한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따라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적법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왕좌를 비워줘야 했다.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이 이스라엘에 전해지자 이스보셋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온 백성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단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까? 다윗과의 협상을 주도하던 아브넬이 살해당함으로써 협상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진행될까봐 두려웠을까? 아니면 다윗과의 협상이 깨져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될까봐 두려웠을까? 이스보셋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이유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자기를 보호해주던 군사령관이 왜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 ‘이젠 내 차례인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정작 그를 암살한 사람은 내부자였다. 이스보셋의 군대에 바아나와 레갑이란 이름을 가진 지휘관이 있었는데 이들은 림몬의 아들이었단다(사무엘하 4:1-2). 이들은 이스보셋을 죽이려 왕궁으로 갔다. 때는 매우 더운 대낮이었고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밀을 가지러 온 척하고 궁전에 들어간 후 잠자는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잘랐단다. 이 대목에서 텍스트는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6절에서는 배를 찔러서 죽였다고 했는데 7절에서는 잠자는 왕의 머리를 잘랐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골리앗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가 무릿돌을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가 곧 이어 칼로 머리를 잘렸다고 말하니 말이다.

 

그들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밤새 헤브론으로 가서 그걸 다윗에게 내놓으며 “임금님의 생명을 노리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를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야훼께서 높으신 임금님을 도우시려고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8절)라고 말했다. 아무리 사울과 다윗이 우호적이 아니었다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보상을 기대하고 한 과장된 말로 들린다.

 

바아나와 레갑에겐 ‘학습효과’라는 게 없었나 보다. 과거에 다윗은 사울을 죽였다는 아말렉 젊은이에게 보상은커녕 그를 죽이지 않았던가. 바아나아 레갑은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윗은 과거 사울의 경우를 얘기하며 바아나와 레갑을 죽이고 그들의 손과 발을 잘라낸 다음 그들 시신을 헤브론 연못에 매달았단다. 머리만 남은 이스보셋의 시신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묘지에 묻었다(9-12절).

 

여기서도 사울, 요나단 및 아브넬의 경우와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세 사람 모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방해되는 인물들이다. 사울과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요나단은 왕위 계승자였으며 아브넬은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거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사령관인데 그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그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사무엘하 2:8-9]). 다윗은 할 수만 있으면 이들을 제거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다윗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첫째 사울이 야훼에 의해 기름 부음 받은 왕이란 사실이었고, 둘째 이들을 처치했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들은 다윗의 손을 거치지 않고 ‘죽어줬다.’ 사울은 아말렉 젊은이가 죽였고 요나단은 블레셋 군인에 의해 죽었다. 아브넬은 요압이 죽였고 이스보셋은 바아나와 레갑이 죽였다. 다윗 손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인 아말렉 젊은이와 이스보셋을 죽인 바아나와 레갑을 죽였다. 요나단은 누군지 모르는 블레셋 군인에게 죽었으니 처벌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죽이지 않았다. 요압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고 다윗 생전에 내내 군사령관으로 재직했다. 왜 요압만 특별대우를 받았을까? 요압은 야훼의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은 아브넬을 죽여서 그랬을까? 이스보셋도 이스라엘의 왕이긴 했지만 야훼에게 기름 부음 받았다는 얘기가 없지 않은가. 요압은 다윗에게 중요한 인물이지만 나머지는 그저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일까? 글쎄…….

 

여기서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조얼 베이든은 이 모든 죽음에 다윗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본다(J. Baden, The Historical David, 136-137). 그렇게 추측할만한 여지는 있다다. 하지만 텍스트 상의 증거는 없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다윗이 요압에 대해 그토록 지독한 저주를 퍼부었지만 실제론 아무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그의 알리바이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정말 이들의 죽음과 다윗은 무관할까? 적어도 아브넬의 경우는 의심할 여지가 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에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블레셋이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이처럼 불안한 상황은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임금님과 한 골육입니다. 전에 사울이 왕이 되어서 우리를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다가 다시 데리고 돌아오신 분이 바로 임금님이십니다. 그리고 야훼께서 ‘네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바로 임금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사무엘하 5:1-2)

 

민심은 갈대와 같다지만 이건 지나치다 싶다. 그들은 “우리는 임금님과 한 골육”(we are your bone and flesh)이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스라엘과 다윗이 ‘한 골육’이 아니거니와, 다윗이 이스라엘의 목자(=왕)가 되리라는 야훼의 말을 믿었다면 그 동안은 왜 그를 옹립하지 않았단 말인가. 좌우간 그들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 외에 다른 게 없었으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1절에서 ‘모든 이스라엘’이 헤브론으로 올라갔다는 말이 무리하다고 여겼던지 3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으로 갔다고 말한다. 다윗은 이들을 맞아들여 함께 야훼 앞에 나아가 언약을 세웠다. 거기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3절).

 

이렇게 해서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첫 왕이 됐다. 들에서 양을 치다 사무엘에 의해 야훼에게 선택됐음을 알았고, 몇 명의 가족들 앞에서 기름 부음 받은 이래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광야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고 원수 블레셋의 용병 노릇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기도 했다. 그 동안 그는 야훼의 약속을 의심한 적이 없었을까? ‘의심’은 아니더라도 약속이 언제 성취될지 모르고 지체되어 야훼를 원망한 적은 없었을까? 중요한 점은, 그가 야훼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넋 놓고 기다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야훼가 자기 머리에 왕관의 씌워주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는 않았다. 야훼가 그런 방식으로 계획을 이룬다고 믿지 않았던 거다. 그는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 사람이다. 무기의 힘과 치밀한 계획으로 자기가 갈 길을 열어나갔다. 때론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그런 끈질긴 노력 끝에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됐다. 그는 지혜와 술수로,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런 다윗을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모세와 더불어 구약성서가 가장 높이는 다윗이 한 꺼풀 벗겨보면 이런 추악한 면이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게 다윗의 전부는 아니다. 다윗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이제 겨우 오르막길이 끝났고 내리막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다윗은 추락한다. 추락하는 그에게 날개가 있었을까?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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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이야기(10)

 

바라고 바라던 왕이 되다!(1)

– 하지만 치러야 할 값은 컸다

 

1.

 

사울의 파란만장한 생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다윗이 블레셋 지휘관들의 불평 덕에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전쟁하지 않고 시글락으로 돌아간 후 길보아 산에서 두 나라 군대가 맞붙었다(사무엘상 31:1). 전엔 전차가 주요병기였던 블레셋 군대가 산악지대 전투에서 맥을 추지 못했는데 이때는 블레셋 군대가 업그레이드되어 전차 없이 산악지대에서 싸우는 법을 익혔나 보다. 이에 이스라엘 군대는 맥 못 추고 패했고 사울의 세 아들인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전사했고 사울도 화살을 맞았다. 이에 사울은 무기 담당병사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지만 그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왕을 찌르지 못했다. 이에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어져서 죽었고 그의 무기 담당병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골짜기 건너편과 요단 강 건너편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의 군대가 패하는 걸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쳤으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성읍들에 들어와 살았다고 했는데 이는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후에 벌어진 일이다.

 

사울이 죽은 다음날, 그의 시신을 발견한 블레셋 사람들은 옷을 벗기고 목을 자른 다음에 온 블레셋 땅에 승전보를 전했다. 그들은 사울의 시신을 벳산 성벽에 달아뒀는데 나중에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 시신을 수습해서 야베스로 가져다가 화장한 후 뼈를 에셀 나무 아래 묻고 7일 동안 금식함으로써 사자(死者)에 대한 예를 갖췄다고 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고 흙으로 돌아갔다. 야훼의 ‘신뢰’를 받아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됐지만 야훼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기에 불행해진 왕, 야훼의 ‘사랑’을 듬뿍 받는 다윗이 무대에 등장하자 그에게 주연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왕,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심한 정신적 동요와 불안 가운데 살다가 끝내 숙적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울, 그를 위한 조가(弔歌)는 그를 비극에 빠뜨린 다윗이 지어 불렀다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다윗이 아말렉을 몰살하고 시글락에 귀환한지 사흘 째 되던 날, 사울의 진에서 한 젊은이가 다윗에게 와서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쓰며 애도를 표현하더란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사울의 진에서 왔다는 그가 이렇게 보고했다는 거다. “우리의 군인들이 싸움터에서 달아나기도 하였고 또 그 군인들 가운데는 쓰러져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사울 임금님과 요나단 왕자께서도 전사하셨습니다.”(사무엘하 1:4).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모두 죽었다는 거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의 맘이 어땠을까? 기다리던 소식이었을까? 가슴이 메어지는 슬픈 소식이었을까? 사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내내 쫓아다녔다. 그를 피하려고 원수 블레셋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나. 그런 사울이 죽었다니 일단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을 터이다. 사울을 잇는 다음 왕으로 야훼의 선택을 받았다며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은 이후 그는 줄곧 이 날만 기다려왔을 터이다. 야훼의 약속이 언제 성취될지 손꼽아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을 거다. 그가 사울의 왕위를 노리고 있음은 온 세상이 아는 사실이었으니 그가 사울의 죽음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다면 그 동안 들였던 공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겠다.

 

그에게 사울의 죽음에 대해 알리바이를 제공해준 사람은 그 소식을 전한 아말렉 젊은이였다.

 

“제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다가 사울 임금님이 창으로 몸을 버티고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적의 병거와 기병대가 그에게 바짝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울 임금님이 뒤로 고개를 돌리시다가 저를 보시고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저더러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말렉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울 임금님이 저더러 ‘어서 나를 죽여 다오. 아직 목숨이 붙어 있기는 하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일어나서 사실 것 같지 않아서 다가가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저는 머리에 쓰고 계신 왕관을 벗기고 팔에 끼고 계신 팔찌를 빼어서 이렇게 가져 왔습니다.”(6-10절)

 

그는 사울의 죽음을 이렇듯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사무엘상 31장 얘기와는 사뭇 다르다. 거기선 사울이 자살했다지 않았나. 두 얘기가 모두 사실일 수는 없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둘 다 거짓말이다. 사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아말렉 젊은이가 우연히 그의 시신을 발견해서 왕관과 팔찌를 벗겨서 그걸 다윗에게 가져왔을 수는 있다. 더 많은 보상을 바라고 자기가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말했을 수는 있다.

 

요즘 같으면 그게 자살인지 타살인지가 중요했겠지만 다윗에겐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터이다. 자기 책임만 아니면 누가 어떻게 죽였든 달라질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말렉 젊은이가 상황 파악 못하고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했으니 다윗으로서는 그 이상 좋을 수는 없었을 게다. 더욱이 그는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져왔다. 다윗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게 바로 이것 아니었나. 이걸 보면 젊은이는 다윗이 뭘 바라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왜 다윗에게 가져왔겠는가. 사울 유가족에게 갔어야 할 물건들을 다윗에게 가져왔다는 얘기에는 이를 통해 차기 왕이 누군지를 보여주려는 설화자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보인다.

 

다윗은 아말렉 젊은이의 보고를 듣고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슬픔을 누르지 못해서 옷을 찢고 울며 금식한 것은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청년에게 다윗은 “네가 어떻게 감히 겁도 없이 손을 들어서 야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살해하였느냐?”(14절)라고 호통치고 부하를 시켜 그를 죽였단다. 막대한 보상 받길 기대하고 온 청년은 보상은커녕 졸지에 불귀(不歸)의 객이 돼버렸다. 다윗은 숨이 넘어가는 그에게 “네가 죽는 것은 너의 탓이다. 네가 너의 입으로 ‘야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제가 죽였습니다.’ 하고 너의 죄를 시인하였다.”(16절)라며 ‘확인사살’했다. 빌라도가 예수의 죽음에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손을 씻었던 것처럼(마태 27:24) 다윗은 아말렉 젊은이를 죽임으로써 사울의 죽음과 자신이 무관함을 세상에 보여줬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다윗의 의도대로 사울의 죽음에 다윗이 무관하다고 믿었을까? 그게 아니라 더 의심하게 됐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다윗이 아말렉 젊은이를 길보아 산으로 보내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져오라고 시켰고 그걸 소유하게 되자 입막음하느라 그 젊은이를 죽였다고 보면 정치 공학적으로 맞지만 설마 다윗이 그랬겠는가!

 

그는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위해 조가를 지어 유다 사람들에게 부르라고 했다. 그는 다수의 시편을 지은 시인답게 다음과 같이 애절한 조가를 지었단다.

 

“이스라엘아, 우리의 지도자들이 산 위에서 죽었다. 가장 용감한 우리의 군인들이 언덕에서 쓰러졌다. 이 소식이 가드에 전해지지 않게 하여라. 이 소식이 아스글론의 모든 거리에도 전해지지 않게 하여라.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듣고서 기뻐할라. 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딸들이 환호성을 올릴라. 길보아의 산들아, 너희 위에는 이제부터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고 비도 내리지 아니할 것이다. 밭에서는 제물에 쓸 곡식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길보아의 산에서, 용사들의 방패가 치욕을 당하였고 사울의 방패가 녹슨 채로 버려졌기 때문이다.”(19-21절)

 

과연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숙적이었다. 사울의 죽음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지 말라고 하니 말이다. 다음으로 사울과 요나단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자신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노래한다. 자신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 진했다면서 한없이 안타까워한다(26절). 그런데 사울과 요나단이 노래처럼 그렇게 가까웠나? 요나단은 아버지보다 친구 다윗을 더 사랑했다지 않았나? 사울도 요나단에게 ‘사생아 같은 자식’이라느니 ‘너를 낳은 네 어머니에게 욕일 될 뿐’인 자식이라느니 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지 않았나.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라고는 해도 납득할 수준은 넘어선 표현이 아닌가 싶다.

 

다윗의 조사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고 ‘유다’ 사람들에게 조가를 부르라고 했을까? 사울은 유다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다윗은 유다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울을 위한 조가를 불러야 할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둘째로, 다윗이 대체 누구기에 유다 사람들더러 조가를 부르라 마라 하는가? 그는 아직은 유다 왕이 아니다. 블레셋의 봉신 또는 용병으로 블레셋 왕의 녹을 받아먹는 처지에 자기가 뭐라고 조가를 부르라 마라 하는가 말이다. 그를 하루라도 빨리 왕으로 만들고 싶은 조급한 맘에 설화자가 실수했을까? 다윗이 이미 왕이 됐다고 착각했을까? 사울의 왕관을 다윗에게 가져온 아말렉 젊은이처럼 말이다.

 

2.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오랜 침묵을 깨고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요즘 한국 정치인이라면 현충사나 국립묘지를 방문해서 헌화했겠지만 그땐 야훼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가 유다에 있는 성읍으로 올라가도 됩니까?”(사무엘하 2:1). 야훼가 올라가라고 허락하자 그는 어느 성읍으로 가야 하냐고 물었고 야훼는 ‘헤브론’으로 가라고 알려줬다. 이에 다윗은 부하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갔는데 이때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동행했단다. 그들은 헤브론의 여러 성읍에 정착했는데 이때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왕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렇다니까 생각 없이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유다 왕 즉위 사이에는 연관이 없다. 다윗이 유다 왕이 되는 게 보기 싫어서 사울이 기 쓰고 그를 죽이려 했던 것도 아니고 사울이 살아 있기 때문에 다윗이 유다 왕이 못 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설화자는 사울이 죽으면 다윗이 당연히 왕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그는 독자들 그렇게 믿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둘 사이엔 아무 관련성도 없다. 사울은 유다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었으니 말이다.

 

다윗이 유다 왕으로 즉위한 데도 의문점이 적지 않다. 그는 직전까지 유다의 천적 블레셋에 투항했던 인물 아니던가. 유다든 이스라엘이든 다윗을 왕으로 세울 이유는 없었다. 왕으로 세우기는커녕 ‘배신자’로 처벌해야 할 자였다. 세상 어느 백성이 배신자를 왕으로 삼고 싶겠나. 왜 다윗이 다른 데가 아닌 ‘헤브론’으로 올라갔는지도 궁금하다. 왜 거기였을까? 야훼가 그리로 가라고는 했다지만 거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나.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유다 사람 전체가 그랬을 리는 없고 아마 장로들이었을 텐데 그들은 왜 그를 왕으로 세웠을까?

 

왜 헤브론이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헤브론은 유다 중앙산악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소가 있어서 제사가 행해지던 곳이기도 했고 아브라함이 살다가 죽어서 묻힌 곳이기도 하다(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야훼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창세기 13:18]; “그렇게 하고 나서 비로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근처 곧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밭 굴에 안장하였다.”[23:19]). 곧 헤브론은 지정학적 위치도 좋았고 유서 깊은 신앙적 전통도 있었다. 또한 헤브론은 갈렙 지파가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했는데(민수기 13, 14장 참조) 다윗은 나발이 죽은 후 그의 아내였던 아비가일과 결혼함으로써 갈렙 지파와 관계를 맺게 됐다. 따라서 갈렙 지파 지역인 헤브론은 다윗과도 무관치 않은 곳이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설화자는 뜬금없이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들이 예를 갖춰서 사울을 장사지냈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렸다고 말한다. 길르앗은 요단 강 동편 지역으로서 사울이 다스리던 곳이다. 다윗은 그곳 주민들에게 사절을 보내 사울에게 예를 갖춘 데 대해 그들을 칭찬하고 축복했다고 했다(사무엘하 2:6-7). 그는 “비록 여러분의 왕 사울 임금님은 세상을 떠나셨으나 유다 사람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았으니 여러분은 이제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기를 바랍니다.”(7절)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은 위로의 말인 동시에 사울의 권한을 자기가 물려받았다는 선언이었다.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운 까닭이 무엇일까? 설화자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니 독자들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우선 유다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 유다는 북쪽의 이스라엘과 서쪽의 블레셋 사이에 끼어 있었으므로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할 때마다 불안해했겠다. 블레셋은 기원전 12세기경에 지중해로부터 가나안으로 밀고 들어와 자리 잡은 해양족속의 일부였으므로 이스라엘과 유다에겐 공히 ‘침입자’였으니 유다로서는 블레셋보다는 이스라엘이 더 가까웠겠다. 더욱이 그들은 해안평야를 장악한 다음 동진했으니 그들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공공의 적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마나 그들과 맞서 싸울 만했지만 유다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블레셋의 상대가 못 됐던 거다.

 

그런데 그나마 유다의 배경이었던 이스라엘이 사울이 죽음으로써 큰 위기에 빠졌다. 유다에게 어떤 선택이 있었을까? 몇 가지 있었겠지만 그들의 선택은 동향인이고 사울 군대의 유능한 지휘관이던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거였다. 그가 왕이 되어 자기들을 보호해주길 바랬던 거다. 걸림돌은 다윗이 블레셋의 용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믿을 만했을까? 생존을 맡겨도 될 만큼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유다 사람들이 얼마나 고민했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들 결정에 도움을 준 일은 다윗이 시글락에 머무는 동안 주변 족속들에게서 약탈한 물건들을 유다 장로들에게 ‘선물’(뇌물?)로 줬던 일이었을 거다. 다윗은 이때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을 거다. 이와 정반대의 추측도 가능하다. 다윗이 블레셋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유다 사람들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유다의 안전이었을 거다. 누구든지 블레셋만 막아준다면 유다 사람들은 다른 건 감수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을까?

 

요약하면, 유다 사람들에게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에게 미심쩍은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그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장로들)이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와 그를 왕으로 옹립했다.

 

 

 


<출처: http://www.exploretheway.org/2-samuel-discussion-notes/2-samuel-chapter-2>

 

 

3.

 

또 궁금한 점은, 블레셋은 다윗이 유다 왕이 된 걸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점이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시글락 성읍을 내줘서 1년 4개월 동안 머물게 했다.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다윗과 함께 출정하려고도 했다. 아기스는 다윗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거다. 블레셋 군대 지휘관들이 불평했을 때도 아기스는 다윗을 가리켜 “그가 나와 함께 지낸 지가 이미 한두 해가 지났지만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하였소.”(사무엘상 29:3)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런 다윗이 유다 왕으로 즉위한 걸 시글락을 비롯한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배신자’라며 이를 갈았을까? 아니면 ‘용병 주제에 출세했네.’ 라며 놀랐을까? 설화자는 블레셋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게 우연일까, 아니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다윗은 7년 반 동안 헤브론에서 유다를 다스렸다(사무엘하 2:11). 설화자는 그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하지 않는다. 분명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텐데 설화자는 말하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사울의 군대 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는 얘기다(2:8-9).

 

연대를 따져보면 사울이 죽기 전에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됐다. 사울이 죽은 직후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됐다면 그가 왕좌에 앉아 있었던 기간이 불과 2년이었으므로 다윗은 사울이 죽기 5년 반 전에 유다 왕이 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다윗이 유다의 왕위에 오른 일이 사울의 죽음과 무관하다는 증거도 된다.

 

특이한 점은 7년 반 동안 유다와 블레셋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유다가 조공을 바쳤는지 아닌지, 유다가 독립을 선언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다윗 또는 아기스가 상대방을 방문했다는 얘기도 없다. 그 정도로 구체적인 것까진 바라지 않지만 다윗이 헤브론에서 다스린 7년 반 동안 둘 사이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어떤 성격이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안 그런가?

 

일단 그 기간 동안 두 나라 사이에 별 일이 안 일어났다고 볼 수 있겠다. 일어났다면 설화자가 얘기했을 터이다. 다윗과 아기스의 관계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생각하면 그게 옳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곧 다윗과 아기스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동맹관계’였으므로 동맹 파트너 다윗이 유다를 지배하는 게 블레셋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유다가 블레셋의 속국인 한 다윗이 왕이 됐다고 해서 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 이유가 없었다. 블레셋 입장에선 더 좋은 일이었을 수 있다. 그들의 주적은 유다 아닌 이스라엘이었으니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더 근접해서 압박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런 추론에 놀랄 독자들이 적지 않을 텐데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이전 장들에서 얘기한 대로 다윗은 사울에게서 쫓겨난 이후 ‘하비루’ 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블레셋에 팔려가 용병 노릇을 해야 했는데 그게 ‘시늉’만은 아니었어야 한다. 다윗에게 유다 사람으로서의 동족의식이 희박했든지, 아니면 생존을 위해서 동족의식을 버려야 했든지 좌우간 블레셋의 아기스가 다윗의 충성심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기스는 다윗의 유다 왕 즉위를 ‘배신’으로 여기기는커녕 두 손 들고 환영했을 거다.

 

이 추론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다윗 편인 <역대기서>에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기름 부음을 받아 유다 왕으로 다스렸다는 얘기가 통째로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왜 <역대기서> 역사가는 왜 이 얘길 전하지 않았을까? 실수는 아니었으리라. 다윗이 왕 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데 그걸 실수했겠는가. 그렇다면 의도적이었는데 이유가 뭐냐는 거다. <역대기서> 역사가가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뺐을 리 없다. 안 그런가? 몰랐거나 자랑스럽지 않았으니 뺐을 거다. 그 이유가 당시 유다가 블레셋의 속국이었다는 점 외에 다른 게 있을까? 그러니까 <역대기서> 역사가에겐 다윗이 유다 왕 된 것이 자랑스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블레셋의 속국이었기 때문이란 거다. ‘추론’일 뿐이지만 이유 없는 추론은 아닐 게다.

 

그 사이에 이스라엘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군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려가서 거기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사무엘하 2:8-9). 사울의 세 아들도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했으므로 왕위가 그에게 주어졌던 거다. 이때 그의 나이가 마흔 살이었는데(10절) 어떻게 해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았는지, 나갔는데 살아남았는지 모르지만 그때 왕의 권위는 전쟁에 나가서 용감하게 싸워 승리하는 데서 얻어졌으므로 어떤 이유로든 패한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의 권위에 마이너스 요인이었을 게다. 안 그런가?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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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9)

 

광야에서의 다윗(3)

 

1.

 

이제 블레셋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다윗과 블레셋의 관계는 한 마디로 성격규정하기 어렵게 얽혀 있다. 양자관계는 다윗 초기엔 분명 적대적이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 안에서 명성을 얻었다. 블레셋 입장에서 보면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원수였던 거다. 하지만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게 되면서 둘의 관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적대적이던 관계가 우호적으로 탈바꿈했던 거다. 그게 양쪽 모두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신했다가 여의치 않아 미친 척 해서 빠져나왔다는 얘기(사무엘상 21:10-15)는 앞에서 했다. 그 후 다윗은 그일라와 십 광야의 산성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 떠돌이 ‘하비루’답게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가 주로 머문 곳은 유다 동쪽 산지와 서쪽 해안평야 사이에 있는 저지대, 이른바 ‘세펠라 Shephelah’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곳은 촌락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인구밀도도 낮았다. ‘하비루’ 거주지로 적당했던 거다.

 

그 동안에도 사울은 지치지 않고 다윗을 추격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 생긴 집착이라서 그렇게 질겼을까, 그는 다윗이 야훼의 선택을 받았음을 알면서도 그를 죽이려 했다. 기필코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하지만 다윗이 자길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을 땐 사울도 감격해서 그를 ‘아들’이라 부르면서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했다. 얼마 안 가서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했지만 말이다. 이러니 다윗의 ‘선행’(?)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다윗이 다시 아기스에게 갔던 것은 사울을 피해서 갈 데가 거기뿐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순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온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사무엘상 27:1). 그는 가족들과 부하 6백 명을 거느리고 아기스에게 내려가 거기에 주저앉았다. “다윗이 가드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하여지니 그가 다시는 다윗을 찾지 않았다.”(4절).

 

다윗은 아기스를 찾아가서 이렇게 간청한다. “임금님이 나를 좋게 보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서 하나를 나에게 주셔서 내가 그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종이 어떻게 감히 임금님과 함께 임금님이 계시는 도성에 살 수가 있겠습니까?”(5절). 이에 아기스는 시글락이란 성읍을 그에게 내줬다. 설화자는 시글락이 “이 날까지 유대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6절)고 전했다. ‘이 날까지’란 말은 신명기 역사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설화자가 그토록 떠받드는 다윗이 아기스에게 굴욕적이었으니 그의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 다윗이 아기스의 봉신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아기스가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야 하는 처지였다. 아마르나 서판은 가나안 도시국가 왕들이 이집트 파라오의 봉신이었다고 말한다. 다윗은 봉신 아래 봉신이었으니 얼마나 초라한 처지였겠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출셋길로 들어선 다윗이 어떻게 그들에게 가서 몸을 의탁했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다윗이 아기스에게 왔을 때 신하들이 그를 가리켜 “저 나라의 왕”이라고 부르며 절대 받아줘선 안 된다고 강조한 데서도 드러난다(21:11). ‘왕’이란 말은 시대착오적지만 그래도 원수 나라 장군임은 분명하니 그들 주장에 일리가 없다고는 못한다. 아기스도 신하들 말을 듣고 다윗을 잡아뒀다가 그가 미친 척하는 바람에 깜빡 속아서 그를 내쫓지 않았는가 말이다.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는데 다윗은 왜 다시 아기스에게 갔으며 아기스는 이번엔 왜 그를 받아줬을까?

 

월터 브뤼그만은 “설화자 눈에 다윗은 모든 관습적인 기준을 뛰어넘는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와 동맹 맺을 용기를 가진 사람은 다윗뿐이었다. 그는 미래를 펼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고 관습적인 것을 뛰어넘는 방법 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야훼가 자기편임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는데(W.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Interpretation Series], 189) 나는 그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다윗의 개인적인 신앙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지 않을까?

 

아기스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받아줬다. 그는 사울과 다윗 사이를 이어줬던 정치적이고 가족적인 끈이 끊어져서 이젠 원수 사이가 됐다고 여겼던 거다. 정치적으로 둘은 더 이상 한 편이 아니었고 미갈이 남의 아내가 됐으니 더 이상은 가족도 아니었다. 다윗은 떠돌이 무법자 ‘하비루’ 대장이었을 따름이다. 이런 다윗을 아기스는 ‘봉신’이나 ‘용병’으로 받아들인 거였다. 조공을 받는 봉신이 아니면 급료를 줘서 전쟁에서 써먹는 직업군인 말이다.

 

과거 다윗에게 블레셋은 죽이고 죽는 적이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그 전쟁은 다윗의 전쟁이 아닌 사울의 전쟁이었다. 사울은 이스라엘 베냐민 지파 사람이고 다윗은 유다 사람이다. 흔히 이스라엘과 유다는 같은 조상에게서 비롯되어 혈연으로 맺어진 ‘동족’이요 ‘한 핏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구약성서의 역사성을 부정하지 않는 학자들 중에도 이스라엘이 혈연적으로 아브라함이라는 한 조상에게서 유래됐다고 생각하는 학자는 극히 드물다. 이스라엘에 연합군주국(united monarchy)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연합’이 불과 두 세대 후에 붕괴된 것만 봐도 그게 별로 견고하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사울 시대에 유다는 이스라엘 영토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둘 사이의 약한 유대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으로써 깨져버렸다. 그래서 다윗은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했고 아기스는 그를 받아줬던 거다. 아기스는 다윗이 사울을 배신했다고 본 모양이다. ‘배신자’ 다윗을 이용해서 사울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봤을 수도 있다. 그 기대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됨으로써 물거품이 됐지만 말이다.

 

다윗은 아기스에게서 시글락을 하사받아 거기서 16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그 동안 그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을 습격하곤 했단다. 그럴 때마다 다윗은 그곳 사람들을 하나도 살려두지 않고 다 죽였고 짐승들과 옷 같은 것들만 약탈해서 아기스에게 바쳤단다. 그에게는 유다 남쪽 지역의 지명을 대며 거기서 약탈했다고 대답했다는 거다. 설화자는 다윗이 사람을 살려두지 않은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다윗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고 가드로 데려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다윗의 정체를 알아 다윗이 그런 일을 하였다고 폭로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거주하는 동안 언제나 이런 식으로 처신하였다. 아기스는 다윗의 말만 믿고서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그토록 미움 받을 짓을 하였으니 그가 영영 자기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27:10-12).

 

일종의 이중변명이다. 아기스에게는 자기 동족을 해침으로써 다윗이 동족의 적이 됐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기스는 다윗이 ‘영영’ 자기 종이 됐다고 여겼단다. 아무리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아기스가 다윗을 이렇게 몰랐을까? 또한 유다 사람들에게는 비록 자기가 블레셋에 몸을 의탁하곤 있지만 여전히 동족임을 보여줬다. 곧 아기스에게나 유다 사람들에게나 자기가 한편임를 주지시켰던 거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윗이 아기스 허락 하에 블레셋에 머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유다와 이스라엘 입장에선 배신자도 이런 배신자가 없는데 설화자는 이걸 어떻게든 잘 포장해서 다윗을 우호적으로 묘사해야 했다. 그래서 동원한 논리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줄기차게 쫓아다녔기 때문에 다윗은 블레셋에게 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와 이스라엘에 피해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은 남김없이 몰살해도 되는 걸까? 다윗이 저지른 행위도 그렇거니와 설화자 역시 ‘그들’을 몰살한 걸 이처럼 ‘쿨하게’ 말해도 되나? 그들은 그렇게 의미 없이 죽어도 되는 존재였을까?

 

 

 

2.

 

사무엘상 28장은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가는 얘기로 시작된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같이 출정하자고 했다. 아뿔싸, 이걸 어쩌나! 그 동안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을 용케 피했지만 이번엔 피할 수 없게 됐다. 봉신 또는 용병 주제에 받드는 왕이 직접 명령하는데 무슨 수로 피한단 말인가. 다윗은 일단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얘기를 그렇게 시작해놓고 사울이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얘기가 중간에 끼어들고(사무엘상 28:3-25)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 얘기는 29장 1절에 이어진다. 전쟁 얘기를 하다가 무당 얘기를 중간에 끼워 넣은 셈이다.

 

사울이 나라 안에서 모든 무당과 박수를 쫓아낸 후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수넴에 진을 쳤고 이에 이스라엘도 길보아 산에 진을 쳤다고 했다. 블레셋이 두려운 사울은 야훼에게 할 바를 물었지만 야훼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여자 무당을 찾아갔던 거다. 신명기의 금령은 관두고라도 바로 앞에서 자기가 무당과 박수들을 쫓아냈는데도 말이다. 이 무당은 그 와중에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브뤼그만은 사울의 행위를 이 의사 저 의사 찾아가서 병을 고치려다 성과가 없어서 민간요법이나 불법시술이라도 해보려는 환자의 절박한 심정에 비유했다(W.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192).

 

사울도 체면이 안 섰던지 감쪽같이 변장하고 그녀를 찾아가서 망령 하나를 불러달라고 청했다. 무당은 누군지 모른 채로 사울의 명령을 언급하며 피하려 했지만 사울은 ‘야훼’ 이름을 들먹이며 벌 받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며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자 사무엘의 망령이 지하에서 올라오더란다. 그때서야 무당은 그가 누군지 알고 항의했지만 사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훼께서는 이미 당신에게서 떠나 당신의 원수가 되셨는데 나에게 더 묻는 이유가 무엇이오? 야훼께서는 나를 시켜 전하신 말씀 그대로 당신에게 하셔서 이미 이 나라의 왕위를 당신의 손에서 빼앗아 당신의 가까이에 있는 다윗에게 주셨소. 당신은 야훼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야훼의 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소. 그렇기 때문에 야훼께서 오늘 당신에게 이렇게 하셨소. 야훼께서는 이제 당신과 함께 이스라엘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실 터인데 당신은 내일 당신 자식들과 함께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오.”(16-19절).

 

사무엘의 말은 단호하고 최종적이고 절대적이다. 질문이나 항의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단호하다. 이미 모든 게 결정됐다는 거다. 이를 돌이킬 방법은 없다. 사무엘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무엘의 말에 새로운 점은 없지만 일곱 번이나 나오는 ‘야훼’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건 인상적이고 말에 무게감을 준다(W.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195).

 

사무엘의 말을 듣고 사울은 땅바닥에 벌렁 넘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엘리 제사장처럼 죽진 않았지만 말이다. 무당이 보기에도 안 됐던지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하자 사울은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신하들이 하도 권하는 바람에 무당이 차린 음식을 먹고 밤에 거길 떠났다. 사울이 왕으로 누린 최후의 만찬이 무당이 준비한 것이었다니, 이를 후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설화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얘길 이토록 자세하게 전했을까?

 

이 얘기는 뭘 말하려는 걸까? 죽은 사무엘의 망령이 사울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나? 이런 짓을 한 사울은 왕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사울은 왜 이스라엘에서 무당과 박수를 내쫓았을까? 뒤늦게 ‘정통신앙’으로 복귀하려 했나? ‘정통신앙’으로 회귀했지만 야훼가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으니 그것도 허사였지만 말이다. 그가 벌어질 전투에서 죽을 운명임을 미리 보여주려 했던 걸까? 좌우간 사울은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야훼에게 버려졌다.

 

이스라엘 왕이 무당을 찾아가서 죽은 자의 혼령을 불러냈다는 얘기는 이후 세대 사람들도 당황하게 했을 거다. 그땐 혼령을 불러내는 일이 가능했었나? 고고학 덕분에 이스라엘에서 공식 종교와 민간 종교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이 이젠 제법 널리 알려졌다. 예컨대 공식 종교에선 야훼에게 배우자가 있다는 생각은 절대 용납되지 않았지만 민간종교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근래 고고학이 확인한 성과다. 이에 대해선 William G. Dever, Did God Have a Wife? Archaeology and Folk Religion in Ancient Israel [Grand Rapids: Eerdmans, 2005]를 참조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민간신앙에 초혼의식이 유행했는지 모르지만 공식적인 야훼종교(official YHWH religion)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었다. 구약성서가 전하는 공식 종교가 이스라엘 종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정말 무당이 죽은 자의 혼령을 불러낼 수 있는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걸 믿었는지 여부에 관심을 갖겠지만 이 얘기의 초점은 거기에 놓여있지 않다. 실로(Shiloh) 성소를 중심으로 한때 이스라엘 여러 지파를 이끌었던 전통적 야훼 신앙의 대표자인 사무엘의 입을 통해 사울이 최종적으로 야훼에게 버림받았고 다윗이 선택됐음이 선언하는 데 초점이 있다. 이를 위해서 공식 종교에선 금지됐던 초혼의식까지 동원됐다고 볼 수 있겠다. 설화자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을지 모른다.

 

3.

 

사울과 사무엘의 혼령이 만난 얘기는 사무엘상 28장 마지막 절에서 끝나고 29장 1절은 28장 2절과 연결된다. <사무엘하>에 얘기가 진행되다가 엉뚱한 얘기가 중간에 끼어들어 잠시 중단되는 경우가 또 나오는데 다윗과 밧세바 사건이 그거다. 그 얘긴 나중에 다루겠다.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함께 출정하자는 아기스의 명령을 받고 그러마고 대답했다. 다윗으로선 큰 위기였지만 봉신 또는 용병 주제에 왕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블레셋은 군대를 아벡에 집결시켰고 이스라엘은 이스르엘 샘가에 집결해 있었다. 블레셋 군대는 규모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수백, 수천 명씩 거느리고 있었다니 말이다. 다윗은 후방에 있는 아기스와 함께 있었는데 블레셋 지휘관들이 그를 보고 항의했다.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습니까?”라고 말이다(3절).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반복됐던 거다. 그땐 미친 척해서 위기를 벗어났지만 이번엔 그럴 수도 없었다.

 

다행히 아기스가 다윗을 변호했다. “귀관들도 알다시피 이 사람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종이었던 다윗이오. 그가 나와 함께 지낸 지가 이미 한두 해가 지났지만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하였소.”라고 말이다(3절). 아기스는 여기서 왕으로서의 명성을 건 거나 마찬가지다. 순진한 걸까 어리석은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다윗이 ‘위장취업’ 한 거라면 그에게서 허물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은 치명적인 실수다. 따라서 아무리 왕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했다. 지휘관들은 왕의 말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윗이 싸움터에서 자기들을 배신하여 적으로 돌변하면 어떻게 하냐는 거다. 과거에 자기들 양피를 잘라 사울에게 바쳤듯이 이번엔 머리를 바칠지 누가 아냐는 얘기다. 그들은 아기스를 설득하려고 이스라엘 여인들이 부른 노래,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를 다시 인용하기까지 했다(5절). 이에 아기스도 지휘관들 말을 따라야 했다. 그는 다윗을 블레셋 땅으로 돌려보냈던 거다. 독자들은 아기스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 다윗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블레셋 지휘관들이 옳았다.

 

이에 다윗이 보인 반응은 이상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는 아기스에게 “내가 잘못한 일이 무엇입니까? 임금님을 섬기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임금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종에게서 아무런 허물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왜 이 종이 이제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싸우러 나갈 수가 없습니까?”(8절)라고 항의했단다. 대단한 연기 아닌가! 연기상 감의 연기다. 아기스는 다윗의 반응에 만족해서 그를 시글락으로 돌려보냈다. 해가 뜨는 대로 떠나라고 했지만 다윗 일행은 아마 그 전에 떠났을 게다. 아기스가 맘을 바꾸면 큰일이니 말이다.

 

이젠 독자들도 이런 전개에 익숙할 때가 됐다. 안 그런가? 설화자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곧 벌어질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을 비롯한 그의 아들들은 장렬하게 전사하는데 만일 다윗이 그 전투에 이스라엘의 적으로 참전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설화자는 지휘관들의 입을 빌려 다윗을 전쟁터에서 끌어냈던 셈이다. 기발하지 않은가? 이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벌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얘기의 전개가 상당히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 어떻게 사건이 이토록 다윗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가 말이다. 야훼의 영이 그와 함께 했기에 가능했을까?

 

다윗 일행이 돌아와 보니 시글락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성읍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빠짐없이 붙잡아 갔다는 거다(사무엘상 30:1-3). 다윗 가족들까지 말이다. 다윗과 부하들은 목 놓아 울었는데 다 울고 나서 참사가 다윗 때문이라는 듯 군인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어 돌로 치려고 했단다(6절). 여기서 설화자는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하느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라는 언급을 슬쩍 끼워 넣어(6절) 그의 믿음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는다. 다윗이 과거 언제 어떻게 하느님을 의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야훼는 다윗이 에봇을 통해 “제가 이 강도들을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네가 틀림없이 따라잡고 또 틀림없이 되찾을 것이니 추격하라!”고 긍정적인 답을 줬다(7-8절). 그는 여기서 절대부정사(infinitive absolute)를 사용함으로써 야훼가 확실히 보장했음을 강조한다. 다윗이 야훼에게 이런 식으로 질문한 것도 드문 일이지만 야훼가 즉각 단호하게 대답한 것도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다윗은 6백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했다. 중간에 낙오자들이 생겨서 2백 명을 브솔 시냇가에 머무르게 했다니 상당히 오랫동안 추격했음에 분명하다(9-10절). 도중에 한 이집트인을 만나서 아말렉 사람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서 가보니 그들은 신나게 잔치를 벌이고 있더라는 거다. 다윗 일행은 그들을 습격해서 낙타 타고 도망친 4백 명 젊은이를 제외하고(왜 죄다 4백 명일까?) 모두 몰살했단다. 잡혀있던 사람들과 약탈당했던 물건들을 되찾은 건 물론이다.

 

별 생각 없이 <사무엘서>를 읽어온 사람이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신경 써서 읽었다면 ‘어? 이게 무슨 말이야…’ 할 내용이 여기 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설화자는 사울이 아말렉 사람들을 ‘모조리’ 몰살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사울이 아각을 산채로 잡아왔다고 사무엘에게 꾸중 듣지 않았나. 그렇다면 여기서 다윗에게 몰살당했다는 아말렉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온 누구란 말인가? 앞에서 분명히 사울에게 몰살당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누군가 살아남아서 후손을 퍼뜨리기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하긴 성서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불일치가 많으니까 이 정도는 별 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뭐, 그런 거까지 따지냐? 그게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라며 핀잔을 주면 할 말 없지만 어쨌든 다윗 얘기에 다양한 자료가 섞여 있음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좌우간 아말렉 군인들이 시글락 주민들을 죽이지 않고 모두 사로잡아 간 것은 당시에는 드문 조치였다. 성은 불태웠는데 왜 사람은 안 죽였을까? 만일 그들이 주민들을 모두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지 않아 군인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 했다는데(6절) 주민들이 다 죽었다면 다윗은 살아남지 못했겠다. 그럼 아말렉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다윗을 살리려고 주민들을 산채로 끌고 갔나? 반면 다윗은 도망친 4백 명을 제외하고 아말렉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보다 덜 인도적이어서 그랬을까? 설마…. 과거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헤렘의 법’을 정용하지 않았다고 꾸중 들었는데 다윗이 그걸 실행했다는 뜻일까? 낙타 타고 도망친 4백 명이 있었으니 그 말도 맞지 않는다. 브뤼그만은 다윗 일행이 오랫동안 약탈당하고 살육당한 ‘한’을 여기서 풀었다고 설명했는데(W.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203) 정말 그랬을까? 나는 브뤼그만의 설명에서 구약학자가 겪는 딜레마를 본다. 모든 걸 해석해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려는 거 말이다. 나도 다윗이 과도한 보복을 행한 걸로 보인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4.

 

얘기가 여기서 끝날 법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윗 일행은 시글락으로 돌아가는 길에 브솔 개울가에 남아있던 2백 명의 낙오자와 재회했다. 그들은 다윗 일행을 환영했지만 다윗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던 군인들 중에는 낙오자들을 버리고 가자고 주장한 자들이 있었다. 공짜로 전리품을 차지하는 꼴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이에 다윗은 “동지들, 야훼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쳐들어온 습격자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주셨소. 야훼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오. 또 동지들이 제안한 이 말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소. 전쟁에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남아서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똑같아야 하오. 모두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야 하오.”(23-24절)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단다. 그래서 이 방식이 “율례와 규례가 되어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했다(25절). ‘오늘날’은 이 얘기가 쓰인 때를 가리키니 신명기 역사가의 시대를 의미하겠다.

 

이 에피소드는 뭘 말하려는 걸까? 살아 있는 다윗이 곧 죽을(혹은 이미 죽은) 사울과 대조되고 있는 게 흥미롭다. 아말렉과 싸웠을 때 사울은 ‘헤렘의 법’을 어기고 아각을 사로잡아 왔고 짐승들도 가장 좋은 것들을 죽이지 않고 챙겨왔다. 사무엘이 이를 추궁하자 사울은 야훼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실제 그것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반면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뺏은 짐승들을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전투에 불참했던 사람들에게까지 똑같이 나눠줬단다. 본문에는 제사 얘긴 일절 없다. 왜 다윗은 야훼에게 제물로 바치지 않았을까?

이 얘기는 다윗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전적으로 새로운 인물이란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울은 ‘헤렘의 법’을 어겨서 죽었는데 다윗은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병사들에게 나눠주는 ‘실용주의’ 정책을 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지 않았고 야훼에게 꾸중을 듣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율례와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지켜지게 됐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헤렘이 법’이 더 이상 철칙이 아닌가?

 

다음으로 전리품을 전투에 참가한 자나 참가하지 않은 자나 똑같이 나눠준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다윗은 여기서 용병이나 이끄는 떠돌이 ‘하비루’ 두목이 아니라 ‘정치가’나 ‘전략가’ 또는 ‘왕’의 풍모를 지닌 인물임을 보여준다. 전통사회에서 전리품을 나눠주는 권한은 군사령관이 아니라 왕에게 있었다. 따라서 이 얘기는 왕이 되기 전에 이미 다윗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왕의 역할을 했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왕이었던 거다.

 

둘째, 그는 모세 전통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브솔 시냇가에 남은 2백 명은 “브솔 시내를 건너가지 못할 만큼 지친 사람”들이었다(10절). 그들은 지쳐서 낙오했다. 관습에 따르면 이들에겐 전리품을 나눠주지 말아야 하지만 다윗은 일부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들에게도 전리품을 똑같이 나눠줬다. 그는 왜 이렇게 했을까?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그가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렇게 보겠지만 그게 아니므로 그를 자비와 긍휼이 넘치는 휴머니스트로 보기는 어렵다. 다윗은 어디서 배워서 이렇게 행동했을까?

 

브뤼그만은 답을 모세의 출애굽과 광야 전승에서 찾는다(W. Brueggemann, First and Second Samuel, 204-5). 권력자가 부의 관리와 분배에 대한 전권을 소유하는 것이 전통적 방식이지만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전승은 다른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이다. 거기서는 모두 평등했다. 출애굽 공동체는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지파별로 공평하게 땅을 분배했다. 설화자는 다윗이 출애굽과 광야 전승을 작은 단위에서마나 실천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실제로 다윗이 이렇게 행동했든 아니든, 설화자가 그를 출애굽 및 광야 전승 실천자로 그리고 싶었든, 좌우간 다윗은 모세 전통을 실천한 자로 그려졌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다.

 

새로운 일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항을 뚫고 나갈 과감함과 자신에 대한 신뢰도 필요하다.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그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 다윗은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자기 과업을 성취하는 걸 야훼도 원한다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다윗이 이런 자질들을 갖췄으므로 그가 취한 새로운 조치가 ‘오늘날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야훼도 그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믿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좌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광야에서의 다윗 얘기는 여기까지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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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8)

 

광야에서의 다윗(2)

 

 

1.

 

다윗은 놉을 떠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도시국가 중 하나다. 그러니까 아기스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적장이다. 그래서 아기스의 신하들에겐 그를 받아들이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 사람은 분명히 저 나라의 왕 다윗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서 저 나라의 백성이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사무엘상 21:11)라며 펄쩍 뛰었다. 그들이 다윗을 ‘저 나라의 왕’이라고 부른 건 이치에 안 맞지만 말이다. 설화자가 시대를 착각했나? 다윗은 아직 왕이 되지 않았다. 왕은커녕 도망자 신세였다. 이런 실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순실수였을까, 아니면 그가 결국 왕이될 걸 암시하는 거였나?

 

다윗은 아기스 신하들의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단다(12절). 안식처를 얻기는커녕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기스에게 잡힌 그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미친 척한 게 그거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13절). 잠깐 동안 미친 척한 게 아니라 상당기간 동안 그랬던 거다. 아기스는 참다못해 신하들에게 소리쳤단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14-15절). 결국 그는 가드에서 쫓겨났다. 목숨을 건진 거다. 확실히 다윗에겐 이렇듯 담대하고 지혜로운 면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결국엔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아기스에게서 나온 다윗은 아둘람 굴속에 숨었는데 이때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어떻게 알았는지 형들과 가족들이 다윗이 거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합류했는데 이때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다윗 주변에 몰려들었다는 거다.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사무엘상 22:2). 학자들은 다윗 이야기 가운데 이 대목이 가장 오래됐고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어 집단을 형성했다는 얘기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대번에 ‘하비루’(Hab/piru 또는 Ab/piru)를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의 기원이고 ‘히브리’란 말이 비롯됐다고 믿어졌던 그 ‘하비루’ 말이다.

 

19세기 후반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240킬로미터 떨어진 엘 아마르나(el-Amarna)란 곳에서 아카디아어로 쓰인 약 4백 개의 토판이 발견됐다. 이게 유명한 ‘아마르마 서판’(Amarna Tablets)이다. 이것의 대부분은 기원전 14세기 중엽 파라오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와 4세(이집트 최초와 최후의 유일신 숭배자 아케나텐과 동일인물) 시대에 가나안 도시국가의 왕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이다. 이게 구약성서 학자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거기에 이스라엘의 별명인 ‘히브리’와 발음이 비슷한 ‘하비루’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비루’는 가나안 도시국가들을 괴롭힌 약탈자로서 다윗 주위에 몰려든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하비루’에 대해서는 Anchor Bible Dictionary 제3권 6-10쪽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친족문화(kinship culture)의 영향력이 강한 사회였다. 조부모에서 손자에 이르는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돕고 보호해주는 사회였다는 거다. 결혼도 대개는 대가족(extended family) 안에서 이루어졌다. 대가족은 각자의 토지를 갖고 있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교환과 매매의 범위가 씨족 범위를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룻과 보아스의 결합도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아둘람 굴속에 머물면서 더 이상 친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 그런 사람이 다윗뿐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아마르나 서판을 보면 다양한 이유로 친족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도시를 침략하기도 했고 또 보수를 받고 전쟁터가 나가서 싸워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은 무리를 지어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몰려들었던 거다. 아마르나 시대와 다윗 시대는 3백 년 이상의 시간적 거리가 있지만 하비루가 다윗 시대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이유는 없다.

 

다윗이 ‘하비루’였을까? 다윗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과 아마르나 서판의 ‘하비루’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다윗과 그의 ‘전사들’은 자기들만의 룰을 만들어놓았고 이해득실에 따라 다양한 집단들과 이합집산 했다. 한때의 친구가 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나 촌락의 힘이 미치지 않는 먼 곳에 거주했다. 사막과 접경지에 머문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왔으므로 어느 집단이든 생존수단과 머물 곳을 제공한다면 그들을 위해 기꺼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비루가 용병인 경우가 많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하비루가 도시나 촌락을 약탈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도시와 촌락주민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했다. 그래서 이들을 보는 시선에는 존중과 조롱이 뒤섞여 있었다. 도움을 받으니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공동체에서 내쫓긴 사람들이므로 조롱의 대상이었던 거다. 분명한 건, 이들이 다윗을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으로 봤다는 사실이다. 유유상종이었다는 거다. 안 그랬다면 그들이 다윗 주위에 몰려들지 않았을 거다. 안 그런가?

 

 

 

<Cave of Adullam, Filckr Yves Goldberg >

 

2.

 

이렇게 다윗 주변에서 집단을 이룬 자들이 뭘 했는지 살펴볼 차례다. 그일라(Keilah)는 아둘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루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해서 타작한 곡식을 약탈해 갔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렸다(사무엘상 23:1). 이에 다윗은 야훼의 의사를 물었다. 블레셋 사람들을 쳐도 되겠냐고 말이다. 아비아달이 사울을 피해서 놉에서 도망쳤을 때 갖고 온 ‘에봇’을 통해 물었던 모양이다. 야훼는 “그렇게 하여라. 어서 출전하여 블레셋 족속을 치고 그일라를 구해 주도록 하여라.라고 응답했다(2절).

 

하지만 다윗 부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우리는 여기 유다에서도 이미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그일라로 출전하여 블레셋 병력과 마주친다면 얼마나 더 위험하겠습니까?”라면서 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3절). 일리 있는 주장 아닌가. 자기들도 숨어 지내는 주제에 누가 누굴 구하겠다고 나서는가 말이다. 하지만 야훼는 다시 한 번 승리를 보장해줬고 이에 다윗은 야훼의 말을 믿고 출정해서 결국은 “그들을 쳐서 크게 무찔렀으며 블레셋 사람의 집짐승들을 전리품으로 몰아 왔다. 다윗은 이렇게 그일라 주민을 구원해 주었다.는 거다(5절). 다윗 집단에게나 그일라 주민에게나 해피엔딩이었다.

 

얘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때가 왔다면서 부하들을 그리로 보내 다윗 일당을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다윗은 다시 한 번 에봇을 통해 야훼에게 두 가지 질문을 두 번이나 물었다. 하나는, 사울이 자기를 잡으러 내려올 것인지 여부였고, 다른 하나는 그일라 주민들이 자기를 사울에게 넘겨줄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서 야훼는 사울은 ‘내려올’ 것이며 그일라 주민들은 다윗을 ‘넘겨줄’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다윗은 6백 명쯤 되는 부하들을 이끌고 그일라를 빠져나왔고 사울은 그 소식을 듣고 출동하지 않았단다. 그일라를 빠져나온 다윗은 “떠돌아 다녔다.”(13절).

 

다윗 집단과 그일라 주민의 관계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다윗은 그일라 주민들이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을 블레셋 사람들 손에서 구해줬다. 왜 그랬을까? 아마 두 집단은 이전부터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였을 수 있다. 타국의 침략을 당했을 때 서로 돕기로 한다는 ‘상호방위조약’이라도 멪은 것처럼 말이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른 다음 가져온 전리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윗이 다 가졌는지 그일라 주민들과 나눴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일라 주민들로선 어쨌든 다윗의 도움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됐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었겠다.

 

그 다음이 문제다. 야훼는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거라고 알려줬다. 자기들을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구해준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준다는 게 말이 되나?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는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내려오지 않았으므로 이 일을 벌어지진 않았지만 만일 내려왔다면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넘겨줬을 것이 전제되어 있다. 야훼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과 그일라 주민과의 관계는 그리 든든하지는 않았다고 봐야 한다. ‘상호방위조약’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다윗 집단이 ‘하비루’였다면 그일라 주민들이 한 짓은 터무니없지는 않다. 둘의 관계는 철저하게 물질적 이해관계였으니 말이다. 다윗 집단은 보수를 받고 그일라 주민들을 보호해주는 계약을 맺고 있었을 수 있다.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지 않았을 때 사울에게 받을 보복을 생각하면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넘겨주려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물질로 맺어진 관계였으니 말이다.

 

3.

 

다윗 집단의 ‘하비루’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은 나발 및 아비가일과 얽혀 벌어졌던 일이다. 이 사건은 다윗 집단의 성격을 잘 보여주므로 주의 깊게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사건이 사무엘상 25장 2절부터 42절까지 무려 마흔한 절에 걸쳐서 자세히 전해지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또한 이 얘기가 다윗이 사울을 두 번 죽일 수 있었는데 살려준 얘기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게다.

 

뒤를 보러 동굴에 들어온 사울을 우연히 거기 있던 다윗이 죽이지 않고 살려준 얘기는 앞 장에서 다뤘다. 그 다음에 사무엘이 죽어서 고향 라마에 묻혔다는 짧은 보도가 나오고(사무엘상 25:1) 그 다음에 다윗과 나발 및 아비가일 얘기가 펼쳐진다. 맥켄지가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이는 문학적 걸작”(a literary masterpiece that seems also to contain valuable historical information)이라고 부른 바로 그 얘기 말이다(S. 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96).

 

마온이란 곳에 나발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많은 가축을 소유한 부자였다. 그의 아내는 아비가일인데 설화자는 나발과 아비가일을 각각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한 사람과 “이해심도 많고 용모도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묘사한다(3절). 얘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암시하는 언급이다. 하루는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듣고 부하 열 명을 나발에게 보냈다. 다윗은 그들더러 나발에게 가서 먼저 만수무강을 축원한 후 공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시켰다.

 

“지금 일꾼들을 데리고 양털을 깎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른의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괴롭힌 일도 없으며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양 한 마리도 잃어버린 것이 없었습니다. 일꾼들에게 물어 보시면 그들이 사실대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잔치를 벌이는 좋은 날에 어른을 찾아왔으니 제가 보낸 젊은이들을 너그럽게 보시고 부디 어른의 종들이나 다름이 없는 저의 부하들과 아들이나 다름이 없는 이 다윗을 생각하셔서 먹거리를 좀 들려 보내 주십시오.(7-8절)

 

말투는 공손하지만 내용인 즉 자기들이 너희를 지켜줬으니 보수를 내놓으라는 거다. 큰 단위로는 ‘조폭’이, 작은 단위로는 ‘동네 깡패’가 흔히 하는 낯익은 짓거리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다윗 집단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른바 ‘지하경제’가 그 때도 있었던 거다. 나발은 이 말을 듣고 발끈해서 이렇게 답했단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종들이 모두 저마다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빵이나 물이나 양털 깎는 일꾼들에게 주려고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겠느냐?(10절)

 

나발도 한 가닥 하는 자였나 보다. 하긴 그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다니 적어도 그 지역의 유지쯤은 됐으리라. 그가 다윗을 모르지는 않았던 거 같다. 다윗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건 경멸조로 한 말일 테고 그를 ‘주인에게서 뛰쳐나간 종’으로 규정하는 걸 보면 그는 다윗의 정체를 알았다고 봐야 할 게다. 나발에게 다윗은 사울의 ‘종’에 불과했다. 주인집을 뛰쳐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불법세금’이나 거둬서 연명하는 ‘주먹’이었던 거다. 나발은 다윗이 부하를 6백 명이나 거느린 ‘대단위 주먹’인 줄은 몰랐나 보다. 그러니까 이처럼 거침없이 다윗을 욕했겠지. 나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거다. 다윗의 정체를 알았으니 그의 편에 서야 할지 사울 편에 서야 할지를 두고 저울질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작 수백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불법세금’이나 뜯는 다윗보다 한 나라의 왕인 사울의 편을 드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터이다.

 

부하들에게 보고받은 다윗은 즉각 부하 4백 명을 이끌고 나발을 응징하러 나섰다. 그런 자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사건의 전모가 “이해심 많고 용모도 아름다웠”던 나발의 아내에게 전해졌다. 일꾼 하나가 다윗이 나발의 사업을 잘 돌봐준 일과 ‘세금’ 수거차 온 다윗의 부하를 호통 쳐서 쫓아낸 일 등을 아비가일에게 말했단다. 그러자 그녀는 급히 음식을 준비해서 다윗 일행을 맞이한다. 그때까지 다윗은 반드시 나발을 징치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Antonio Molinari David y Abigail" by Antonio Molinari, Wikipedia Commons.>

 

아비가일이 이런 다윗을 만나자 급히 나귀에서 내려 얼굴이 땅에 닿게 절을 한 다음에 장문의 연설을 한다. 학자들은 이 연설을 신명기 역사가가 아비가일의 입을 빌려 자신의 역사관을 설파한 걸로 본다. 그녀는 자기 남편 나발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하고 다윗 부하들이 왔을 때 자기가 거기 없어서 일이 그렇게 됐다면서 가져온 음식을 부하들에게 나눠주라고 말한 후에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야훼께서 틀림없이 장군님의 집안을 영구히 세워 주시고 장군께서 사시는 동안 평생토록 아무런 재난도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일어나서 장군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생명은 장군께서 섬기시는 야훼 하느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것이지만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야훼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 이제 곧 야훼께서 장군께 약속하신 대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 지금 공연히 사람을 죽이신다든지 몸소 원수를 갚으신다든지 하여 왕이 되실 때에 후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야훼께서 그처럼 좋은 일을 장군께 베풀어 주시는 날, 이 종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25:28-31).

 

다윗은 이에 만족해서 그녀에게 덕담을 하고 돌아간다. 그 덕담 또한 짧지 않는데 그 중 주목할 부분은 “내가 오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도록 그대가 나를 지켜 주었으니 슬기롭게 권면하여 준 그대에게도 감사하오. 하느님이 그대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오.”(33절)라는 부분이다. 이걸 천생연분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비가일은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야훼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라고 말해서 다윗의 원수 사울(또는 나발)의 죽음을 예견했고 이에 다윗은 아비가일 덕분에 손이 피를 묻히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그날 밤엔 만취해서 말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그가 술에서 깨자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자 나발은 “갑자기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열흘쯤 지났을 때에 야훼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38절). 이 얘기가 전하려는 바가 뭘까? 다윗이 사울을 직접 죽이지 않고 야훼의 처분에 맡겼듯이 나발 역시 그랬다는 걸까? 그 후 다윗은 사람을 보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겠다고 했고 그녀는 기꺼이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39-42절).

 

이 얘기가 왜 여기 있을까? 설화자는 왜 이 얘길 여기 갖다놨을까? 무려 마흔한 절이나 되는 긴 얘기를 말이다. 우선 눈에 띠는 점은 이 얘기에서 다윗이 참 좋은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발의 가축들을 돌봐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는 나발의 무뢰한 태도에 분노하지만 아비가일에게 설득되어 무력제압을 그만뒀고 나발이 죽은 후 과부가 된 이해심 많고 용모 아름다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는 건 하느님 백성의 기본적인 의무 아니던가. 또한 이 얘기엔 하느님의 섭리가 드러나게 작용한다. 다윗과 나발이 무력충돌 하지 않은 건 아비가일의 지혜 덕분이라고 치자. 설화자는 나발이 급사한 원인은 야훼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다윗은 나발의 피에 책임이 없다! 다윗과 아비가일의 연설을 잘 읽어보라. 하느님 섭리에 대한 두 사람의 돈독한 신뢰와 믿음에 독자들은 감동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얘기도 다윗의 좋은 점을 부각시킨 ‘친 다윗’ 얘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됐나? 나발은 죽고 다윗과 아비가일은 결혼했다. 다윗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 여인과의 결혼은 이미 앞장에서 다뤘다)과 이때는 이미 남이 아내가 돼버린 미갈에 이어서 세 번째 아내를 맞아들인 거다. 이 결혼에 담겨 있는 현실적인 의미를 놓치는 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될 게다.

 

나발은 갈렙 족속에 속했다. 재산 규모로 보아 그는 족장 정도로 추측할 수 있겠다. 요즘 말로 하면 ‘지방토호’라고나 할까. 그와 아비가일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던 거 같다. 얘기 전체에 아들에 대한 언급이 없고 그녀가 다윗과 재혼하는 마당에도 아들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그렇게 추측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럼 나발의 재산은 누구에게 귀속됐을까?

 

이스라엘에선 남편이 상속할 아들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아주게 되어 있다. 이를 어려운 말로 ‘형사취수법’(levirate marriage)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38장에 전해지는 유다와 다말 사건의 발단이 이 제도가 아닌가. 앞서 말했듯이 나발은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갈렙 족속의 유지로서 사회적 지위까지 누렸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비명횡사했으니 누가 그 뒤를 이어 지위와 재산을 물려받았을까?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당연히 아들이 물려받았겠지만 없었으니 아비가일 것이 되는 게 사회규범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윗가 결혼했으니 그것들을 누가 차지했을까? 이건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99. 맥켄지는 이런 이유로 다윗이 나발의 죽음에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추측한다. 다윗의 적이 딱 필요할 때 죽어주는데 그게 다윗과 무관하겠냐는 거다).

 

다윗이 처음부터 이걸 노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맘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발의 죽음은 야훼가 한 일이라니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다윗과 사랑에 빠진’(헤럴드 블룸) 야훼가 다윗의 앞길을 활짝 열어주려고 사건을 이렇게 끌고 갔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무리는 아닐 게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나발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 따져 봐도 딱히 눈이 띠는 게 없다. 그는 ‘불법세금’을 걷으러 온 다윗 부하들을 호통 쳐서 내쫓았고 나중에 “왕이나 차릴 만한 술잔치를 베풀고 취할 대로 취해서 흥겨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36절)는 것밖에는 한 일이 없으니 말이다. 이게 죽어야 할 이유가 되나? 도덕과 윤리를 따지자면 다윗도 큰소리 칠 입장은 못 된다. 따라서 여기서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나발은 사울과 비슷한 운명이었다 하겠다. 크게 잘못한 건 없지만 다윗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발은 사라져줘야 했다. 다윗이 아비가일과 결혼함으로써 갈렙 족속 안에서 든든히 자리 잡고 그걸 발판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뻗어갈 수 있게 말이다. 이것은 다윗이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줌으로써 이스라엘 왕의 자격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세 사건을 나란히 배치하지 않았나 싶다. 좌우간 나발이 죽어서 다윗은 아비가일과 재산과 사회적 지위까지 얻었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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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7)

 

광야에서의 다윗(1)

 

1.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누구나 읽기 싫은 대목이 있다. 레위기가 전하는 제사의 구체적인 방법과 제사장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 대표적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구약성서를 통독하려던 사람도 거기에 이르면 지겨워서 중단하려는 유혹이 빠진다. 정녕 레위기는 구약성서라는 바다에 우뚝 솟은 암초 같은 책이다.

 

그에 못지않은 암초가 지명(地名, place name)이다.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지명들은 익숙하지 않고 발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 지명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세심히 읽지 않고 대충 지나가기 일쑤다. 안 그런가? 구약성서 독자들 중 익숙지 않은 지명을 만나면 그게 어딘지 확인하려겠다고 지도를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열 명에 한 명도 안 될 거다.

 

그런데 지명이 중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거기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좌우간 이 때문에 지명에 주목한 학자들이 있어왔는데 고고학자들이 대표적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무엘상 18장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골리앗의 고향은 ‘가드’(Gath, 현재 지명은 텔 에스-사피 Tel es-Safi)다(“블레셋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사무엘상 18:4]). 이 ‘가드’란 곳은 훗날 다윗에 사울에게 쫓길 때 몸을 의탁한 곳이기도 하다. 다윗은 가드의 왕 아기스에게 도망쳐서 그의 봉신(封臣) 또는 용병(傭兵) 노릇을 했다.(다윗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제 이러다가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살아나는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사울이 다시 나를 찾으려고 이스라엘의 온 땅을 뒤지다가 포기할 것이며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다윗은 가드에 있는 아기스에게로 가서 거처를 정하였다.[사무엘상 27:1-3]).

 

보다시피 가드는 블레셋의 도시다. 블레셋 사람이 누군지, 언제 어떻게 가나안에 자리 잡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펠레셋’(Peleset)이란 이름으로 그들이 등장하는 자료는 기원전 12-11세기 이집트 문서이다. 람세스 3세(Rameses III, 기원전 1182-1151) 시대 문서에 의하면 펠레셋 집단과 그 외의 다른 집단이 육로와 해로로 이집트에 쳐들어왔는데 이집트 군이 그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또한 람세스 4세(기원전 1151-1145) 시대 문서는 이들이 패배한 후 이집트 요새에 정착했다고 전한다(Israel Finkelstein & Neil Asher Silverman, David and Solomon: In Search of the Bible’s Sacred Kings and the Roots of the Western Tradition [New York: Free Press, 2006], 189-190). 학자들은 이집트와 가나안 남부 해안지역에 정착한 호전적인 이민자들인 ‘펠레셋’이 ‘블레셋인’과 동일한 집단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니까 블레셋은 기원전 12세기 즈음에 어딘가로부터 이집트와 가나안으로 들어와 무력으로 정착한 해양족속들 중 하나라는 거다.

 

이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여러 개의 도시국가를 세웠는데 가자(Gaza), 아쉬클론(Ashkelon), 가드(Gath), 아쉬돗(Ashdod), 에크론(Ekron) 등 다섯 도시가 대표적이다. 가드는 이 가운데 유다에 가장 인접한 곳에 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쳤을 때 가드를 택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게다. 동향사람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아기스가 받아들인 게 이상한데 이에 대해선 아래서 얘기하겠다.

 

아기스는 처음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다윗에 그 앞에서 미친 척한 얘기는 앞에서 잠깐 했다(사무엘상 21:10-15). 나중엔 그를 받아줘서 시글락이란 고을을 맡겼지만 말이다(사무엘상 27:2-6). 블레셋과 사울이 전투를 벌일 때 다윗을 전장에 내보내지 않고 돌려보낸 사람도 아기스였다(사무엘상 29:6-11).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다윗은 그 덕분에 ‘동족’을 죽여야 하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다윗이 아기스와 얽힌 얘기들이 역사적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거기에 눈에 띠는 모순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여기서 다른 결론을 도출한다. 고대 도시 에크론으로 확인된 텔 미크네(Tel Miqne)를 1996년에 발굴한 결과 거기서 기원전 7세기 후반의 것으로 여겨지는 비문을 발견했는데 그에 따르면 당시 에크론 왕은 이카우수(Ikausu)였단다. 그는 앗시리아 왕 에살하돈(Esarhaddon)과 아수르바니팔(Ahurnamipal) 시대의 기록에도 등장하는 가나안 도시국가의 왕으로 아시라아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카우수라는 이름이 언어학적으로 아기스(Achish)와 비슷하기 때문에 둘을 동인인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문제는 그가 가드가 아니라 에크론의 왕이고 다윗 시대인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7세기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둘을 동일인물로 보지 않으면 될 걸 왜 꼭 그래야 하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 게다. 그럴 수 있다. 옳은 추정일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사람 이름이 그 정도로 유사하면 동인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들이 현재 ‘텔 에스-사피’인 가드를 발굴한 결과 그곳은 기원전 9세기 말에 대대적으로 파괴됐고 이후로는 재건되지 않고 소규모 마을로 남았다고 한다. 다윗 이야기의 저자는 오랫동안 큰 도시였던 에크론 왕 아기스(=이카우수)를 블레셋의 대표적인 왕으로 여겨서 그를 가드의 왕으로 착각(?)해서 다윗과 엮었다는 거다.

 

고고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필자는 이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판단할 수 없지만 좌우간 이런 논증을 통해서 다윗 이야기의 기록 시기를 기원전 7세기로 보는 고고학자들이 있다는 점만 지적해 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다윗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대부분이 기원전 7세기에 의미를 갖는 지명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고고학자들은 유적이나 유물을 연구해서 성서 얘기가 어느 때 상황에 맞는지, 그게 기록된 때가 언젠지 밝혀내려 애쓴다. 과거에는 연대 측정도구가 시원치 않아서 연대 추정이 무척 부정확했지만 요즘은 그게 매우 발달해서 연대측정이 상당히 정확하다고 한다. 물론 고고학적 성과를 맹신하는 것은 성서기록 그대로를 역사적 사실로 맹신하는 것 못지않게 일방적인 태도가 되겠다. 물론 고고학 비전문가의 견해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지명이 나오면 골치 아프다고 해놓고 지명에 대한 얘기를 길게 했다.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도망친 다음에 다양한 지명들이 등장해서 그랬다. 재미는 없겠지만 지명과 관한 얘기를 하나만 더 해보자.

 

다윗은 전쟁에 나가면 백전백승이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특히 그랬다. 이 점은 그가 왕 되기 전과 후가 다르지 않다. 그가 전쟁에 나가서 패한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다. 다윗은 전쟁기계 같았다. 그런데 다윗의 전쟁 얘기를 잘 읽어보면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로, 다윗의 전쟁 이야기에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전쟁했는지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사무엘상 18장 6절 이하를 보자. 다윗이 사울에게 장군으로 임명된 후 벌인 첫 전쟁이 블레셋과의 전쟁이었다. 거기서 승리하자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문제의 노래,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는 노래를 불렀다는 바로 그 전쟁 말이다. 설화자는 이 전쟁을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고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사무엘상 18:6)고 모호하게 보고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 전쟁을 했는지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는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 양피 2백 개를 가져와서 미갈과 결혼하게 된 전쟁도 마찬가지다. 설화자는 그저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려고 자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블레셋 남자 이백 명을 쳐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요구한 수대로 왕에게 바쳤다.”(사무엘상 18:27)라고만 전한다. 언제 어디서 전투가 벌어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거다. 둘 사이의 전쟁을 요약해서 전하는 사무엘상 18장 30절도 예외가 아니다. “그 무렵에 블레셋 지휘관들이 군대를 이끌고 침입해 와서 싸움을 걸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기 때문에 다윗은 아주 큰 명성을 얻었다.” ‘그 무렵’이 언제인지, 전투가 어디서 벌어졌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여기에도 없다. 과연 전쟁을 하긴 했던 걸까? 전쟁을 했고 승리했다면 그 성과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싶었을 텐데 왜 이렇게 모호하게 서술했을까? 조얼 베이든(Joel Baden)은 이 점에 주목해서 다윗과 블레셋의 전쟁 얘기는 모두 픽션이라고 주장한다(Joel Baden, The Historical David: The Real Life of an Invented Hero, 50-61). 그렇다고 그게 전부 픽션이란 주장을 지나쳐 보이지만 다윗의 전쟁 이야기에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이상한 점은, 다윗이 블레셋과 싸워서 백전백승했다는데 이스라엘 영토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윗 시대로부터 3백 년쯤 지난 히스기야 왕 때에도 유다와 블레셋은 여전히 같은 곳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이 얘길 자세히 하면 지루해지므로 더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다윗의 승리가 무척 과장되게 서술돼있다는 거다. 블레셋에 대한 다윗의 승리는 영토를 넓히는 전투가 아니라 기존 영토를 지키려는 수비전투였다. 물론 그것도 이스라엘에게는 작은 승리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울과 다윗 시대 가나안은 도시국가 체제였다. 훗날 다윗에 의해 유다도 이스라엘과 하나가 됐지만 그 전까진 유다와 이스라엘은 별개의 단위였다. 지리적으론 유다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완충지대였다. 사울은 모압, 암몬, 블레셋, 아말렉 등과 전쟁을 벌였지만 어떤 족속도 완전히 제압하진 못했다. 그들은 적대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위협적인 족속이 블레셋이었는데 그들은 전차를 이용해서 전쟁을 했으므로 산악지대에 자리 잡고 있던 이스라엘이 유리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대해선 천혜의 지대에 있었던 거다. 둘 사이의 전쟁에서 한 편이 완전히 승리하거나 패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했다. 그건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다윗이 블레셋과 벌인 전쟁 이야기를 픽션으로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 그 배후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물론 다윗을 높이고 사울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3.

 

사울이 자길 죽이려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다윗은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과 요나단도 헤어져야 했다. 이들이 헤어지는 애틋한 장면이 사무엘상 20장 마지막 부분에 전해진다. “다윗이 그 숨어 있던 바위 곁에서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면서 세 번 큰 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함께 울었는데 다윗이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잘 가게. 우리가 서로 야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잊지 않도록 하세. 야훼께서 나와 자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나의 자손과 자네의 자손 사이에서도 길이길이 그 증인이 되실 걸세.’(41-42절).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는 건 시대를 초월해서 참으로 안타깝다.

 

이로써 사울 궁전 안에서 제한적으로 벌어졌던 둘의 갈등은 세상에 공개됐다. 사무엘상 21장에서 31장, 곧 다윗이 도망쳤던 때부터 사울이 죽었던 때까지 둘은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된 거다. 다윗은 급기야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으로 쫓겨 갔다.

 

사울에게서 도망친 후 다윗이 처음으로 간 곳은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놉(Nob)이었다. 놉은 예루살렘 북쪽 멀지 않은 곳으로서 실로(Shiloh) 성소가 블레셋에 의해 파괴된 후 이스라엘의 주요 성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윗이 왜 그리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을 계기로 놉의 제사장들과 다윗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다 죽고 한 사람만 살아남지만 말이다.

 

놉의 제사장은 아히멜렉이었는데 그는 다윗이 오는 걸 보고 ‘떨면서’ 그를 맞았단다(사무엘상 21:1). 그는 왜 다윗을 보고 떨었을까? 그가 사울에게서 도망친 걸 알았을까? 그래서 자길 해칠지도 모른다고 여겼을까?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을 거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가 다윗을 보고 떨었던 건 다윗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그는 다윗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사울에 의해 살해당한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인 걸 보고 “동행자도 없이 어떻게 혼자 오셨습니까?”라고 묻는다. 그게 이상하긴 했을 거다. 사울 왕국 최고위 장군이 혼자 다니니 왜 이상하지 않았겠는가. 다윗은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기가 사울에게서 비밀임무를 부여받았고 부하들을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말이다. 제사장이 그의 말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거짓말인 걸 눈치 챘을 지도 모른다. 척 봐도 수상했을 테니 말이다.

 

다윗은 수치를 무릅쓰고 아히멜렉에게 빵 다섯 덩이를 청한다. 그게 없다면 있는 것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빵이 얼마나 큰진 몰라도, 다윗의 부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빵 다섯 덩이는 그들 전부가 먹기엔 턱없이 모자랄 터이다. 하지만 아히멜렉은 다윗의 얘기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빵은 ‘거룩한 빵’ 뿐이라면서 다윗 수하의 젊은이들이 금기를 지켰다면 그걸 주겠다고 말한다. 설화자는 친절하게 ‘거룩한 빵’이란 “야훼 앞에 차려놓은 빵”으로서 “새로 만든 뜨거운 빵을 차려놓으면서 야훼 앞에서 물려낸 것”이라고 설명한다(6절). 그러니까 ‘거룩한 빵’이란 야훼에게 드려졌다가 시간이 경과해서 물려진 빵이란 얘기다. 이에 다윗은 자기 젊은이들은 모두 금기를 지켰다고 말한다. 다윗은 누가 의심할까봐 두려워하듯 자기들은 출정하기 이삼일 전부터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비록 이번 출정이 보통의 사명을 띤 길이기는 하지만 제가 출정할 때에 이미 부하들의 몸은 정결했습니다. 그러니 오늘쯤은 그들의 몸이 얼마나 더 정결하겠습니까?”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5절). 음식을 먹고 말겠다는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런데 거짓말하기로는 아히멜렉도 다윗 못지않다. 그는 ‘거룩한 빵’ 외에는 먹을 게 없다고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었을까? 다음 장을 보면 놉에는 “모시옷을 입은 제사장만 해도 여든다섯 명이나” 있었는데(22:18) 빵 다섯 덩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다윗이 놉에 왔던 그 때 공교롭게도 마을 전체에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을 수 있을까? 여러분은 그게 믿어지나? 다윗도 믿지 않았을 터이다.

 

게다가 ‘거룩한 빵’을 다윗에게 먹으라고 준 아히멜렉의 행위도 이해할 수 없다.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레위기 2장에는 야훼께 곡식제물을 바치는 규정이 적혀있다. 거기 따르면 곡식 제물로 바치고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몫이다. 이것은 나 야훼에게 살라 바치는 제물에서 온 것이므로 가장 거룩한 것이다.”(3절). 그것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다윗과 그의 병사들이 여자를 가까이 했든 않았든 제사장이 아니므로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아히멜렉의 질문은 뭔가? 레위기 규정을 무시하고 새 계명을 만들었나? 좌우간 그는 ‘거룩한 빵’을 다윗에게 줬다.

 

한편 다윗을 못 잡아 안달난 사울은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다윗이 어디 있는지 귀띔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그러자 에돔 사람 도엑이란 자가 나서서 다윗이 놉에서 아히멜렉과 만나는 걸 봤다고 일러바쳤다(사무엘상 21:7). 도엑이 놉에서 우연히 다윗이 아히멜렉과 만나는 걸 봤다는 거다. 도엑은 “그 때에 아히멜렉이 다윗이 해야 할 일을 야훼께 여쭈어 보고 나서 그에게 먹을 것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22:10)라고 사울에게 보고하는데 정작 21장에는 아히멜렉이 다윗이 할 일을 야훼께 여쭤봤다는 얘긴 없다. 아히멜렉이 다윗의 할 일에 대해 야훼에게 신탁을 받아 전해줬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아히멜렉과 다윗의 관계는 빵을 건네준 거보다 더 친밀한 동맹관계로 보는 게 맞겠다.

 

사울은 도엑의 말을 듣고 아히멜렉은 물론이고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들여 심문했다. “네가 왜 이새의 아들과 함께 공모하여 나에게 맞서려고 하였느냐? 네가 왜 그에게 빵과 칼을 주고 왜 그가 하여야 할 일을 하느님께 물어서 그가 오늘날과 같이 일어나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하도록 하였느냐?(13절). 도엑이 한 말 때문에 아히멜렉과 그 집안 제사장들은 모두 다윗의 ‘공모자’가 됐다. 아히멜렉은 사울과 다윗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제사장이 하느님의 신탁을 구하는 게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얘기하면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사울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다윗이 도망치는 줄 알면서도 그걸 자기에게 알리지 않았다면서 아히멜렉과 그 집안의 제사장들을 모두 죽였다(19절). 과거 사울은 ‘헤렘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야훼의 미움을 샀는데 그걸 만회하려는 의도였을까, 뒤늦게 엉뚱한 사람들에게 그 법을 적용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무슨 수를 썼는지 다윗에게 도망쳤단다. 그에게서 소식을 들은 다윗은 “그 날 내가 에돔 사람 도엑을 거기에서 보고서 그가 틀림없이 사울에게 고자질하겠다는 것을 그 때에 이미 짐작하였소. 제사장의 집안이 몰살당한 것은 바로 내가 책임져야 하오.”(22절)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그럴 줄 알았는데 방치했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왜 알면서도 도엑을 방치했나 말이다. 의도적으로 아히멜렉의 죽음을 방치했단 말인가? 자기를 도와준 그를 대체 왜? 아히멜렉을 통해서 받은 야훼의 신탁이 맘에 안 들었나? 아무리 따져 봐도 다윗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다윗이 의중에 품고 있던 말을 전한 설화자의 의도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가급적 다윗 편을 들어온 그였으니 말이다. 좌우간 다윗은 아비아달을 받아들였다. 둘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공동운명체가 됐으니 함께 지내자는 거였다. 아비아달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훗날 사독과 함께 다윗 왕실 대제사장이 됐다가 솔로몬에 의해 숙청당한다.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치면서 최초로 겪은 이 사건은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예시한다. 우선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속임수를 써야 할 때는 서슴지 않고 속임수를 썼다. “거짓증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엔 그의 상황이 너무도 급박했었던지 모른다. 그에겐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계명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둘째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히멜렉에게 했던 말, 곧 부하들과 같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무리’를 이뤘다. 그토록 열악한 상황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무리를 이뤘기 때문이다. 셋째로, 피신기간 중 그에겐 친구와 적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그는 생존을 위해선 유다인의 정체성을 버릴 준비가 돼있었다. 동족이냐 아니냐 보다는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은 친구요 해치려는 사람은 적으로 여기게 됐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 때문에 그는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왕이 되지만 말이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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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6)

 

다윗,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했다

- 사울 궁전에서의 다윗

 

 

1.

 

구약성서의 서술이 연대순이 아님을 감안해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후일담은 시간적으로 여간 헛갈리는 게 아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후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보냈고(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의 도시였으므로 이 서술이 이치에 안 맞는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다) 칼은 자기 장막으로 가져갔다고 했다(사무엘상 17:54). 그런데 55절에서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싸움이 벌어지기 전 얘기를 한다. 사울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오?”라고 물었단다. 바로 앞에서 자기가 전쟁터에 내보내놓고 말이다. 아브넬이 자기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사울은 그가 누군지 알아오라고 시켰는데 그 사이에 다윗은 전광석화같이 골리앗을 물리친다. 이에 사울이 다윗을 불러서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라고 물었고 다윗이 "베들레헴 사람, 임금님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거다(55-58절).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연주해줬던 다윗을 사울이 몰라본 것은 복수의 자료들이 섞여 있기 때문일 거라고 앞에서 말했다.

 

군인으로서 다윗의 경력은 그 전에 이미 시작됐다. 수금 타는 악사 직책으로 왕궁에 들어온 다윗을 사울이 매우 사랑하게 되어 자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삼았다는 얘기를 사무엘상 16장 21절이 전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없으니 군인으로서 다윗의 실제 경력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옳겠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승리한 날 그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고 왕궁에 머물게 했다. 그렇다면 그 전에 다윗은 어디서 살았을까? 그가 수금 타는 악사였으니 왕궁에 머물렀던 게 아니었나? 집에서 왕궁까지 출퇴근했나? 다윗 이야기에 복수의 자료가 섞여 있음은 이래저래 부인하기 어렵다.

 

왕궁에서 다윗은 절친이자 정치적으로는 왕좌를 두고 경쟁해야 할 요나단을 만난다. 사울의 아들로 왕위계승서열 1위인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자마자 그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목숨 아끼듯” 아끼게 됐다고 했다(사무엘상 18:1). 첫눈에 반했다는 게 이런 경우일까? 다윗과 요나단이 이성 아닌 동성이란 사실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고 한다(4절). 많은 경우 구약성서는 시점을 모호하게 말하므로 둘이 만난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요나단이 겉옷을 다윗에게 줬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다윗이 입을 옷도 없이 헐벗었기에 옷을 준 게 아니란 사실이다.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무기가 없어서 칼과 활을 준 것도 아니다. 여기엔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겉옷을 줬다는 건 옷 주인이 갖고 있던 권한을 받는 사람에게 넘겨줬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경우다(열왕기하 2장). 곧 요나단은 자기 겉옷을 다윗에게 넘겨줌으로써 왕위계승 권한을 넘겨준 거다. 그는 그 행위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을까? 그럴리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행위의 의미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 요나단은 애초부터 왕이 될 생각이 없었을까? 아니면 다윗을 보고 자기보다 그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재벌가 상속자가 가난한 집 딸과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겠다고 상속받기를 포기하는 드라마처럼 말이다.

 

왜 그랬을까? 요나단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전엔 이유를 알 수 없다. 설령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더라도 이렇게 서둘러서는 될 일도 안 될 것 같다. 안 그런가?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어도 이렇게 서둘러서는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사전에 정지작업을 잘 한 다음에 추진하는 게 마땅한데 그 과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겉옷만 넘겨준다고 해서 일이 성사되겠나 말이다. 그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해도 말이다.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동여매면 바느질을 할 수 없다. 요나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랬을 것 같진 않다. 그랬다면 그는 바보다.

 

 

 

이렇게 서둔 사람은 요나단이 아니라 설화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울이 초대 왕이므로 그때까진 이스라엘에 왕위계승의 전례가 없었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장자가 계승하는 게 당시 중동지역의 관습이었다. 그러니 요나단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참이었다. 반면 다윗은 사울의 장자는커녕 완전히 남이었다. 그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게 겉옷이나 준다고 성취될 일은 아니었던 거다.

 

설화자가 이 얘기를 서두에 갖다놓은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보인다. 다윗이 차기 왕이 될 것임을 첫머리에 분명히 밝히려 했다는 얘기다. 야훼에게 선택된 다윗을 왕위계승서열 1위인 요나단도 택했다고 말이다. 뒤집어 보면 설화자가 가졌던 조바심이 엿보인다. 이렇게 해서라도 다윗이 왕좌계승의 정당성이 있음을 내세웠어야 했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을 잘 한다고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했는데 “온 백성은 물론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그 일을 마땅하게 여겼다”(5절).

 

2.

 

이렇게 해서 다윗은 사울의 왕궁에 들어갔다. 그런데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왕인 사울보다 신하인 다윗의 대중적 인기가 더 높았기 때문이란다. 다윗의 인기는 전쟁에서 거둔 승리에서 비롯됐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괭가리를 들고 나와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 이때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사무엘상 18:6)고 했다니 사울이 질투를 품게 된 것도 이해가 간다.

 

다윗은 2인자가 취해야 할 처세술을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알면서도 짐짓 그렇게 행동했든지. ‘지존’보다 더 인기를 누리는 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임을 그는 몰랐을까? 사울은 여인들의 노래를 듣고 마음이 언짢다 못해 몹시 화가 났단다. 그는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렸으니…”라고 탄식한 후 이제 그에게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이라고 말했다고 했다(사무엘상 18:8-9). 이 말을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별 뜻 없이 탄식하듯 내뱉은 말일 수도 있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했을 수도 있다. 다윗의 왕위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설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사울의 입에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도 사울은 몇 번이나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사울에 굴속에서 뒤를 보고 있을 때 다윗은 능히 그를 죽일 수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다. 나중에 다윗이 자기 행위를 사울에게 설명하자 사울은 감정이 복받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야훼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으나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네가 오늘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야훼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 바란다. 나도 분명히 안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굳게 설 것이다”(사무엘상 24:17-20).

 

자기 겉옷을 다윗에게 넘겨준 요나단도 같은 말을 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신 광야의 호레스에 머물러 있었을 때 요나단이 그를 찾아와서 격려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혀 두려워하지 말게. 자네를 해치려는 나의 아버지 사울의 세력이 자네에게 미치지 못할 걸세.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걸세. 나는 자네의 버금가는 자리에 앉고 싶네. 이것은 나의 아버지 사울도 아시는 일일세”(사무엘상 23:17).

 

나중에 다윗이 왕위에 오를 걸 사울도 알고 요나단도 알았다는 얘기다. 요나단이야 다윗을 왕위에 앉히려고 자기 겉옷까지 건네 줬으니 더 따질 게 없지만 사울은 그걸 알면서도 왜 다윗을 죽이려고 그토록 안간힘을 썼을까? 앞장에서 얘기했듯이 구약성서에는 그리스 비극의 ‘운명’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자기 노력으로 야훼의 계획이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이 왕좌에 앉는 게 야훼의 계획임을 알았지만 그를 처치해버리면 야훼가 계획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설화자는 이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사울이나 요나단의 입을 통해 다윗이 왕이 되리라는 말을 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설화자는 “독자 여러분, 잊으면 안 됩니다. 야훼의 계획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임을…”라고 말한다.

 

사울을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다윗을 장군으로 삼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다윗을 벽에 박아버리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다. 사울의 이런 행동은 야훼가 보낸 악한 영이 그를 덮친 결과라고 설명된다(사무엘상 18:10). 결국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에 임명하여 궁전 밖으로 내보냈다. 멀리 두기로 한 거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야훼가 다윗과 함께 있어서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기에 사울은 그를 더욱 두려워하게 됐다(13-15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스스로 그를 죽이려 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창으로 그를 찌르려 했던 것이나(사무엘상 18:10-11; 19:9-10), 다윗이 그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인 미갈과 같이 있을 때 군사를 이끌고 그들 집에 가서 죽이려 했던 것이나(19:11-18), 다윗이 초하루 왕의 식탁에 불참하자 그를 죽이려 했던 것(사무엘상 20장) 등이 그것이다. 이때 다윗은 사울의 자식인 미갈과 요나단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적은 가장 가까운 데 있다고 해야 할까….

 

3.

 

분명한 사실은 사울은 다윗이 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걸 알았다는 거다. 그는 다윗이 자기의 왕위를 물려받으려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다윗이 자기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곧 다윗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아갈 거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들 요나단은 그것도 모르고 다윗을 돕고 있으니 여간 답답하지 않았을 거다. 오죽 화가 났으면 초하루 왕의 식탁에 불참한 다윗을 감싸고도는 요나단을 가리켜 사울이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 될 뿐이다.”라고 말했겠는가(사무엘상 20:30).

 

다윗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데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기에 그의 행동은 나름 타당하다. 다윗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블레셋 사람들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면 딸 미갈과 결혼시켜 사위 삼겠다는 사울의 제안은 양날의 칼과 같았다. 블레셋 사람들 손을 빌려 다윗을 죽이겠다는 뜻이므로 이는 손 안 대고 코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윗을 사위 삼겠다는 제안은 매우 위험한 제안이기도 했다. 위험한 사람일수록 가까이 두란 말도 있지만 반란을 일으키려는 다윗을 사위 삼으면 그에게 왕좌를 차지할 명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울로서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일 사울과 다윗의 싸움이 ‘명분’으로 결정된다면 사울은 다윗을 자기 집안사람으로 만듦으로써 그에게 왕좌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을 준 셈이 된다. 왕의 사위도 계승서열이 상당히 높지 않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을까? 속수무책으로 그냥 도망만 다녔나? 그는 소극적으로 도망만 다닌 게 아니었다. 일단 백성들의 인기는 사울을 월등히 능가했다. 선거가 있던 때는 아니었으니 인기가 곧 지지로 연결되고 지지가 곧 권력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중의 인기는 권력의 크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뒤지는 인기 때문에 사울은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던가.

 

다윗은 ‘선전전’에도 상당히 능했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서 사무엘상 22장은 흥미로운 얘기를 전한다. 다윗이 아둘람 굴속에 숨어 있었을 때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단다. 다윗은 이렇게 모인 사백 명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사무엘상 22:2). 이들은 그후 계속 다윗을 따라다녔는데 나중엔 숫자가 늘어나 웬만한 전투는 이들만으로도 치를 수 있게 됐다.

 

하루는 사울이 기브아 산등성이에 한 나무 아래서 창을 들고 앉아 있었다. 한 나라의 왕의 모습으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왕쯤 되면 커다란 천막에 들어가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났으므로 사울은 다윗이 내통해서 기습한 줄 알고 놀란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베냐민 사람들아, 똑똑히 들어라. 이새의 아들[다윗]이 너희 모두에게 밭과 포도원을 나누어 주고 너희를 모두 천부장이나 백부장으로 삼을 줄 아느냐? 그래서 너희가 모두 나를 뒤엎으려고 음모를 꾸몄더냐?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을 때에도 그것을 나에게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 또 내 아들이 오늘 나의 신하 하나를 부추겨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시켰는데도 너희들 가운데는 나를 염려하여 그것을 나에게 미리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사무엘상 22:7-8).

 

사울은 신하들이 다윗과 공모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줄 알았다. 아들 요나단도 다윗 편이니 왜 그런 걱정을 안 했겠나. 전에도 요나단이 부하 하나를 매복시켜 사울을 죽이려 했던 적이 있었으므로(정말?)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한 거다. 사정이 이런데 사울이 신경쇠약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다.

 

사울 이야기의 첫 마디가 흥미롭다. 그는 다윗과 공모한 신하들이 다윗에게서 밭과 포도원, 그리고 천부장과 백부장 자리를 기대했겠지만 그건 헛된 꿈이라고 말했다. 이 말 한 마디로 당시 왕과 신하의 관계를 추측하긴 어렵다. 정말 다윗이 사울 신하들에게 그런 약속을 했는지, 했다면 신하들이 그걸 믿었는지, 사울은 충성하는 대가로 신하들에게 뭘 줬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사울이 중요 직책에 친인척을 앉힌 걸 보면 당시 왕과 신하의 관계는 인간적 충성심이나 의리로 맺어졌다기보다는 물질적 보상으로 맺어진 관계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군사령관 아브넬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었으니 사울과 아브넬은 사촌지간인 셈이다(사무엘상 14:50-51). 훗날 다윗도 마찬가지로 왕이 된 후 중요 직책에 친인척을 앉혔다. 사울은 자기 신하들이 ‘물질의 유혹’을 받아 다윗에게 넘어갈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다윗이 손을 써놨을 수도 있겠다.



<David and Jonathan, Gustave Doré>


 

4.

 

이제 가장 일어났을 거 같지 않은 얘기를 해보자. 다름 아닌 다윗과 사울 집안 사이의 혼맥 얘기다. 사울이 맏딸 메랍과의 혼인을 미끼로 블레셋과의 싸움에 나갈 사람을 찾았다는 얘기는 ‘여는 글’에서 했다. 다윗은 사울의 제안을 ‘겸손히’ 사양했는데 사울은 애초의 약속을 어기고 메랍을 딴 남자에게 시집보냈다. 이상하게도 여기서 다윗이 블레셋과 싸움을 했다는 얘긴 없다(사무엘상 18:17-19). 그 후 사울은 둘째딸 미갈을 두고도 똑같은 약속을 했다. 미갈은 공주이면서 다윗을 사랑하는 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사울은 이번엔 구체적으로 다윗을 겨냥해서 블레셋 사람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면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첫 제안에 대해서는 제가 무엇이기에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며 ‘겸손히’ 사양했던 다윗이 이번엔 적극적으로 나서서 블레셋 사람 양피를 2백 개나 가져온다. 사울은 다윗이 미션에 성공할 수 없다고 믿고서 그를 블레셋 사람들 손에 죽게 하려 했지만 사태는 그의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는 쓸데도 없는 양피 2백 개만 얻고 금쪽같은 딸 미갈을 경쟁자요 잠재적 원수인 다윗에게 내줘야 했다.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당시 이스라엘의 주요 직책은 적성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왕과 가까운 친인척으로 채워졌다. 요즘 같으면 ‘친인척 배제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이 많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시대였다. 다윗이 왕좌에 오르는 데 약점 중 하나는 그가 왕위계승서열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울의 친인척이 아니다. 같은 핏줄이 아닌데 친인척이 되는 유일한 길은 혼인으로 맺어지는 것뿐이었다. 다윗이 왕위계승서열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길이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쿠데타 같은 방법이 아니라 적법하게 왕위에 오를 길이 열렸던 것이다.

 

사울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그는 바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했다면 그건 블레셋을 물리치는 게 워낙 중대한 국가적 과제였기 때문이리라. 다윗에게 왕위계승의 자격을 부여하면서까지 블레셋을 격퇴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아니면 위험한 적일수록 가까이에 두고 관리하려 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다윗을 쫓아냄으로써 목표를 달성하진 못하고 그에게 정당성만 부여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을 적극 부인하는 학자들은 다윗과 미갈의 결혼 이야기 전체를 픽션으로 본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 것도, 사울이 블레셋 사람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면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는 것도, 다윗이 그걸 초과달성했다는 것도 모두 픽션이란 거다. 이 모든 게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할 증거도 없지만 픽션임을 입증할 수도 없다. 그저 일어나지 않을 거 같다는 인상만으로 픽션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긴 역사적 사실이란 주장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만 픽션이란 주장은 증거가 필요치 않긴 하다. 역사적 사실임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입증하려 애쓰지만 그 반대는 그럴 필요 없이 그저 ‘그건 픽션이다. 증거가 없으니까.’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둘 사이의 논쟁은 공정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벌어졌을 수 있다는 것과 벌어졌다는 것은 같지 않지만 구약성서에는 이 얘기 말고도 ‘위험한 혼맥’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으니 굳이 이것만 픽션으로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다윗의 첫 결혼, 곧 아히노암과의 결혼이다.

 

아히노암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상 14장 50절이다.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인데 아히마아스의 딸이다. 사울의 군사령관은 아브넬인데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다.” 여기서 아히노암은 사울의 아내로 소개된다. 그녀는 아히마아스의 딸이다. 그런데 그녀가 다음 등장할 때는 다윗의 아내로 소개되는 게 문제다. “다윗은 이미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이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두 사람이 다 그의 아내가 되었다”(사무엘상 25:43).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이 어떻게 다윗의 아내가 됐는지를 서술하는 와중에 이미 다윗에게는 아히노암이란 아내가 있었다고 서술한다.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동일인물일까, 아니면 동명이인일까?

 

구약성서에는 아히노암이란 이름이 모두 일곱 번 등장한다(사무엘상 14:50; 25:43; 27:3; 30:5; 사무엘하 2:2; 3:2; 역대기상 3:1). 일곱 번 모두 특별한 내용 없이 이름만 소개되므로 그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건 이름 외엔 거의 없다. 이 중 첫 번째만 사울의 아내로 소개되고 나머지는 모두 다윗의 아내로 소개된다. 첫 번째만 그녀의 아버지가 ‘아히마아스’라고 밝히고 나머지는 아버지 이름 없이 ‘이스르엘 사람’으로만 밝힌다.

 

이 정도 정보로는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이 동일인물인지 동명이인인지 확인할 수 없다. 두 가지 의심 가는 점이 있는데, 하나는 왜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을 소개할 때는 아버지 이름 없이 ‘이스르엘 사람’이라고만 소개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녀가 아버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무명 집안 출신이었을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후자라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종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혹시 그 사정이란 게 그녀가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동일인물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 설득력 있는 추측은 아닐지라도 전혀 불가능한 추측도 아니라고 보인다. 안 그런가?

 

다른 하나는, 만일 둘이 동일인물이라면 다윗은 사울 생전에 아히노암과 결혼했다는 얘기가 된다. 과연 그게 가능했을까? 사울은 사무엘상 31장에 가서야 죽는다. 구약성서 서술이 연대순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이 얘기를 어떻게 연대순 아니게 읽겠는가. 그렇다면 둘을 동일인물로 보긴 힘들다. 조얼 베이든은 둘이 동일인물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렇게 볼 확고한 증거는 내놓지 못한다. 그는 다윗 이야기 대부분을 픽션으로 판단하는데 대개의 경우 그렇게 볼 근거를 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장점도 많지만 약점 또한 적지 않다(Joel Baden, The Historical David: The Real Life of an Invented Hero[New York: HarperOne, 2013]).

 

설화자는 실제는 둘이 동명이인인데 동일인물처럼 보일 의도를 가졌을까? 그래서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을 거론할 때는 아버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게 아닐까? 이게 사실이라면 그 의도가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둘이 동일인물인 것처럼 보임으로써 다윗이 적법한 왕위계승자임을 부각하려는 게 설화자의 의도가 아닐까? 그 시대엔 왕의 아내나 후궁과 동침하는 건 왕이 됐다고 선언하는 거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아브넬이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했고(사무엘하 3:7) 압살롬도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과 백주에 성관계를 가졌다(사무엘하 16:20-23). 이처럼 다윗이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결혼함으로써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됐음을 만방에 알리려 했다는 것이다. 어떤가? 그럴듯한가?

 

5.

 

다윗 이야기는 다윗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윗에게 우호적으로 기록된 얘기란 뜻이다. 사건의 전말을 다르게 전할 수도 있었지만 가급적 다윗에게 유리하게 전했고,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사건도 다윗에게 유리한 면은 부각시켰고 불리한 면은 감추는 식으로 기록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두 번이나 살려준 얘기가 대표적인 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쳐서 엔게디 산성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고 돌아온 후 다윗이 거기 숨어 있다는 얘길 듣고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겨서 그를 잡으러 갔다. 그런데 긴장해서 그랬는지 사울이 뒤를 보고 싶어져서 한 동굴에 들어가서 뒤를 보고 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거기 다윗 일행이 숨어 있었단다. 다윗의 부하들은 옳다구나 하고 “드디어 야훼께서 대장님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날이 왔습니다. ‘내가 너의 원수를 너의 손에 넘겨 줄 것이니 네가 마음대로 그를 처치하여라.’ 하신 바로 그 날이 되었습니다”라며 호들갑을 떨었다는 거다(사무엘상 24:4). 왜 안 그랬겠나. 사울은 혼자 무방비 상태로 있고 자기들은 무장하고 떼 지어 있으니.

 

하지만 다윗은 부하들 말을 듣지 않고 사울의 겉옷자락만 몰래 잘랐다. 그런 기회에 사울을 안 죽인 것도 놀랄 일인데 다윗은 그것조차 양심에 가책이 되어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우리의 임금님을 치겠느냐? 야훼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왕은 바로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4:6).

 

여기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은 이유가 밝혀진다. 왕은 ‘야훼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란 거다. 다윗은 자기가 그런 짓을 할 기미가 보이면 자길 막아달라고 신하들에게 당부한다. 야훼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절대 죽여서는 안 됐던 모양이다. 그가 영원히 산다는 뜻은 아닐 터이니 자연사를 그가 누릴 축복으로 여겼을까? 나중에 사울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했을 때 그는 치욕스럽게 블레셋인에게 죽느니 차라리 무기담당 병사 손에 죽는 게 낫겠다 싶어 그에게 죽여 달라고 말했다. 병사 입장에선 누구 명령이라고 어기겠냐마는 그는 두려워서 사울을 찌르지 못했다. 결국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어져 죽었고 이를 본 병사도 같은 방법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사무엘상 31:4-5).

 

그런데 사울의 죽음 얘기가 <사무엘하>에 오면 적지 않게 달라진다(사무엘하 1:1-16). 여기서 사울이 죽는 광경을 목격했고 그걸 도와준 사람은 무기담당 병사가 아니라 아말렉 사람이었다. 그가 전쟁터에서 사울을 봤는데 그는 부상당해 가까스로 창으로 몸을 버티고 있었고 적의 병거와 기병대가 사울에게 바싹 다가오고 있었단다. 그때 사울이 그를 불러서 괴로워 견딜 수 없으니 자길 죽여 달라고 했다는 거다. 죽여 달라고 했다는 점에선 앞의 얘기와 일치하지만 나머지는 다르다. 아말렉 사람이 보기에도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 그는 사울을 죽인 후 머리에 씌어 있던 왕관과 팔찌를 벗겨서 다윗에게 가져왔다. 이 얘기를 듣고 다윗은 옷을 잡아 찢고 해질 때까지 울며 금식한 뒤 아말렉 사람에게 네가 어떻게 감히 겁도 없이 손을 들어서 야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살해하였느냐?”라고 호통 친 후 부하를 시켜 그를 죽였단다.

 

다윗은 야훼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를 죽인 자를 처형했다. 야훼의 기름 부은 자는 절대 죽여서는 안 되고, 또 그런 짓을 저지른 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거다. 이게 당시 널리 통용되던 관습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다윗은 그런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야훼에 대한 신심이 드러나는 대목인데 설화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거였을 게다.

 

다윗은 왕이 되고 싶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야훼가 자길 선택했음을 알고 있다. 예레미야나 요나처럼 야훼의 부름을 거절하고 빼는 모습을 그가 보인 적은 없다. 야훼에 대한 순종이든 개인적인 야망이든 그는 왕이 될 ‘운명’을 받아들였던 거다. 사울의 사위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되는 데는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가 사울 집안의 일원이 아니란 사실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백성들의 인기는 높았지만 그땐 그게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다윗에게 왕좌로 가는 길은 살얼음판 길이었다.

 

이 경우 ‘만일’을 상상하는 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만일 다윗이 기회가 왔을 때 사울을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봤나? 두 번이나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울을 죽였다면 그 후 사태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태도는 그래도 바뀌지 않았을까? 사울 왕실 사람들과 신하들은 어떤 입장을 가졌을까? 야훼의 지시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점지한 사무엘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사울에게는 수천 명을 돌렸고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렸던 백성들은 다윗이 사울을 죽인 걸 알고도 여전히 다윗을 지지했을까? 무엇보다 사울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새로 다윗을 선택한 야훼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안 그래도 사울을 없애려 했는데 나대신 그 일을 해줬으니 수고했다.’고 다윗을 칭찬했을까?

 

야훼가 기름 부어 세운 왕을 절대 죽여선 안 된다는 생각을 다윗이 했을 수 있다. 그게 자신만의 신념이었을 수도 있고 당시 통용되던 관습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정치적 고려’도 했을 수도 있겠다. 자기가 사울을 죽였을 때 벌어질 정치적 파장을 고려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울이 단순히 원한에 사로잡혀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이라면 다윗이 그 좋은 기회를 놓쳤을 리 없다. 하지만 사울은 왕이고 다윗은 그를 뒤이어 왕이 되려는 남자였다. 왕위계승서열에 끼지도 못한 주제에 말이다. 그래서 그는 왕위계승에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 눈 밖에 나면 안 됐을 거다. 안 그런가? 가뜩이나 그에겐 ‘적’이 많았으니 더욱 그랬을 거다. 그가 사울을 죽였어도 요나단이 여전히 그를 지지했을까? 글쎄…. 사무엘은 어땠을까? 역시 ‘글쎄’다. 사울 일가는? 그랬다면 당연히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거다. 백성들은 어땠을까? 그래도 백성들은 ‘사울은 수천 명을, 다윗은 수만 명을!’이란 노래를 불렀을까? 대중의 기호는 수시로 바뀐다. 안 그런가? 마지막으로 야훼는 어땠을까? 짐작하기 어렵다. 다윗더러 ‘잘 했다’ 했을까, 아니면 ‘네가 감히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자를 죽여!’라고 했을까? 어느 쪽일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도 신앙과 정치적 고려가 모두 작용했다고 본다. 정확히 말하면 둘을 구별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말해야 할 게다. 종교와 정치를 구별하는 건 근대 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사울 당시엔 그런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다. 다윗은 야훼의 선택을 받았지만 그걸 성취하는 것은 자기 일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결국 자기가 이길 거라고 믿었단 얘긴 아니다. 모로 가도 결국은 서울로 갈 테니 염려하지 않았단 뜻도 아니다. 그도 불안하고 두려웠던 때가 있었을 게다. 왜 안 그랬겠는가. 자기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 사울이 자길 죽이려고 혈안이 돼있는데 왜 두렵지 않았겠나 말이다.

 

야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게 두려움을 물리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겠지만 그것만 믿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터이다. 자길 겨냥한 사울의 칼이 다가오는 걸 느끼는데 무엇이 그를 안심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왕좌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이런 그에게 자기 신념이 됐든 시대의 관습이 됐든 야훼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걸 지킬 여유가 있었을까? 자기가 죽을 상황에 있는데, 그리고 왕권을 장악하는 것과 무관한데도 그 신념(또는 관습)을 지켰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임 당하는 게임에서 말이다. 그의 처지에 비춰서 그가 취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상상해보는 것은 다윗이 누군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David and Jonathan, St Giles Cathedral>

 


6.

 

마지막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살펴보자. 둘 사이의 관계를 미묘하다고 보고 관심 가진 부류는 페미니스트 성서학자들과 퀴어 성서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둘의 관계를 동성애 관계로 보게 된 것이다.

 

요나단은 군인이었다. 그땐 지도자라면 누구나 전쟁에 나가 아군을 이끄는 지휘관 노릇을 해야 했다. 그는 왕의 장남이니 지위와 함께 무거운 책임도 지고 있었을 터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인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전쟁터의 금기를 어겨서 아버지 사울에 의해 죽임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들이 나서서 그를 옹호했으니 말이다(사무엘상 14:45).

 

요나단 얘기의 전반부는 그가 치른 전쟁 얘기다(사무엘상 13-14장). 사울이 왕이 되는 대목에서 그는 잠시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는데 그때부터 그는 다윗과 얽힌다. 훌륭한 군인이던 그가 다윗을 만난 후론 달라진 거다. 전쟁에 나가 싸우기보다 다윗을 옹호하고 그의 편을 드는 데 열중하는 걸로 보인다. 요나단의 일생도 사울의 그것 못지않게 비극적인데 이유는 그가 다윗을 만났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이 뭘 뜻하는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궁전에 들어온 후에 만났는데(사무엘상 18:1-3) 텍스트는 둘이 뭘 계기로 만났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바로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고 말한다(3절). 요나단은 다윗을 보고 첫눈에 반했을까? 우리로선 알 수 없지만 요나단이 후계자의 권리를 상징하는 겉옷을 벗어줄 정도로 둘이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사실이다. 겉옷을 벗어 줬다는 것은 인간적인 우정보다는 정치적 관계를 보여주는 행위다.

 

그 후 다윗은 블레셋 사람 양피 2백 개를 바쳐서 사울의 사위가 됐다. 다윗과 요나단은 처남매부간이 된 셈이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시간이 갈수록 불안정해져갔다. 사울이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사무엘상 19:1). 이후 요나단의 삶은 오로지 다윗을 위한 삶이었다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다윗을 왜 죽이려 하느냐고 말이다. 사울은 그의 말에 설득되어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한다(19:2-7). 하지만 다윗이 다시금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자 그의 질투가 폭발하고 만다. 야훼가 보낸 악한 영에 이끌려서 생긴 질투를 그가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는 다시 한 번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 했고 이에 다윗은 집으로 도망쳤지만 사울은 부하들을 보내 그를 죽이려 했다. 미갈이 아니었더라면 다윗은 그날 죽을 수도 있었다. 사울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다윗은 사무엘이 사는 라마로 도망쳤는데 사무엘은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그를 데리고 나욧으로 갔는데 사울은 거기까지 쫓아왔단다. 사울에게 이런 집요한 면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이게 모두 야훼가 보낸 악한 영 때문이었나? 그랬다면 그 영은 집요하긴 하지만 능력은 제한적이었음에 분명하다. 영의 역할은 사울을 충동해서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울의 충동심을 가라앉혀 다윗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이후 다윗은 요나단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윗은 나욧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사울이 그토록 끈질기게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어떻게 그가 버젓이 집으로 돌아왔는가 말이다. 그는 집에 와서 숨지도 않았다. 초하루에 임금과 함께 하는 식탁에 가게 되어 있었다니 말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다윗은 요나단에게 따졌다. 내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느냐? 내가 무슨 몹쓸 일이라도 하였느냐? 내가 자네의 아버님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버님이 이토록 나의 목숨을 노리시느냐?”(사무엘상 20:1). 요나단은 그 말을 듣고 펄쩍 뛴다.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할리 없다고 말이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약속한다. 만일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는 게 확인된다면 미리 알려주어 피하게 하겠다고 말이다.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일 생각이 없다고 믿었을까? 요나단의 말만 갖고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미 사울은 다윗을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고 실제로 창으로 그를 죽이려 했으니 말이다. 요나단은 사울이 선언하는 걸 직접 들었다(사무엘상 19:1). 그런데 어떻게 그가 다윗에게 “자네를 죽이시다니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걸세.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큰일이든지 작은일이든지 나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하시지를 않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이 일이라고 해서 나에게 숨기실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럴 리가 없네.”(사무엘상 20:2)라고 말할 수 있나 말이다.

 

요나단이 너무 순진했을까? 그는 정말 사울이 다윗을 죽이지 않을 걸로 믿었을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왜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는가 하는 점이다. 사울은 미쳤으니까? 다윗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울이 미쳐서 그를 죽이려는 거라고 생각했나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의 길은 사울이 정신을 차리는 것 밖에 없다.

 

다윗이 사울에게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요나단은 해본 적이 없을까? 사울의 불안과 두려움이 이유 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다윗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려 하는데 그게 성공하면 자기 목숨도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요나단은 해본 적 없을까? 사울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그는 이새의 아들[다윗]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요나단]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라고 말했고 따라서 “빨리 가서 그 녀석[다윗]을 당장에 끌어 오너라. 그 녀석은 죽어야 마땅하다.라고 명령했다(사무엘상 20:31).

 

사울의 태도는 확고한 데 반해 요나단의 태도는 모호하다. 그는 모두의 눈에 분명히 보이는 걸 못 본다. 왜 그는 다윗이 갖고 있는 쿠데타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을까? 왜 그의 눈엔 그게 보이지 않았을까? 요나단도 그걸 다 알았고 간파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정이 있어서 알면서도 다윗 편을 들었을까? 그렇다면 그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 대목에서 정치적 고려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추측하는데 그게 둘 사이의 사랑, 곧 동성 간의 사랑이다.

 

7.

 

오랫동안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돈독한 우정의 관계로 여겨져 왔다. 남자들끼리 있을 수 있는 우정의 최고 모범으로 여겨져 온 거다. 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이들의 관계를 달리 읽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퀴어 성서학자들’이 그들이다. 전에는 별 생각 없이 우정의 관계의 표현으로 이해했던 구절들을 다르게 읽게 됐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요나단과 다윗이 처음 만난 얘기가 사무엘상 18장 1절에 나온다. 이 대목에서 요나단의 행동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뒤에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사무엘상 18:1-4).

 

요나단이 다윗을 “제 목숨을 아끼듯” 아껴서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었다고 했다. 그뿐인가, 요나단은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과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줬단다. ‘언약’이란 말에는 우정과는 거리가 있는 뜻이 들어 있고 겉옷과 무기를 넘겨주는 행위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권한을 넘겨주는 정치적 행위이므로 그 역시 우정과는 거리가 있는 행위다. 우정이 깊어서 그런 것들을 넘겨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구절을 근거로 둘 사이를 동성애 관계로 추측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그 후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의도를 간파하고 다윗에게 그걸 알려줘서 목숨을 구한 얘기는 앞에서 했다. 이런 요나단을 가리켜 사울이 화가 나서 외친 외침이 우리 주목을 끈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 될 뿐이다”(사무엘상 20:30).

 

사울은 요나단이 다윗과 ‘단짝’이 된 게 ‘부끄러운 일’이고 그를 낳은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라고 말했다. 사울은 여기서 일차적으로 다윗에게 화가 났지만 그는 멀리 있으니 가까이 있는 요나단에게 화를 쏟아낸 거다. 그는 장남이요 왕위계승자인 요나단이 다윗의 ‘단짝’이 됐기에 화가 났다고 했다. 여기에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 새번역성서가 “(네가)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라고 번역한 대목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네가 그런 녀석을 ‘선택’하다니”가 돼야 한다. 여기 ‘선택하다’(히브리어로 ‘바하르’)라는 중요한 단어가 등장한다. 야훼가 사울을 ‘선택’했고 ‘다윗’을 ‘선택’했다고 말할 때 사용된 바로 그 동사 말이다. 요나단의 ‘선택’에 담긴 의미가 그만큼 중대하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겠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요나단이 다윗을 ‘선택’한 게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라는 구절이다. 그게 왜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그를 낳은 어머니를 발가벗기는 일이었을까? 요나단이 쿠데타를 꾸미는 다윗과 공모한 게 수치의 원인이었나, 아니면 본문 그대로 그가 다윗을 ‘선택’한 게(그게 뭘 의미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수치의 원인이었나? 본문에는 전자로 해석할 근거가 별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를 택한다면 그건 둘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지 않으려는 선입견 탓이 아닐까 싶다. 사울은 둘의 관계가 동성애 관계임을 이미 파악한 걸로 보인다. 안 그런가? 그래서 이런 강한 표현을 써서 요나단을 비난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요나단이 죽었다는 얘길 듣고 다윗이 보인 행동을 보자.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고 온 젊은이를 죽인 후에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조가를 만들어 백성들로 부르게 했단다(사무엘하 1:17-27). 그는 요나단을 위해선 이런 노래를 불렀다.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프오.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 주더니, 나를 끔찍이 아껴 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사무엘하 1:26).

 

여기 ‘여인의 사랑’이 등장하고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것보다 더 진했다고 말하니 동성애 코드가 떠오르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 치자.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 관계였다고 치자는 말이다. 거기에 놀라서 기겁하지도 말고 반갑게 여기지도 말고 그게 전체 다윗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따져보는 게 성서 해석자의 일이겠다. 이제부터는 둘의 관계를 동성애 관계라고 전제하고 얘기를 풀어보자.

 

레위기에는 분명 동성애를 금한다.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레위기 18:22).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레위기 20:13). 레위기뿐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가 여자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성서가 동성애를 어떻게 보는지를 따져 물을 때 흔히 간과하는 점이 이것이다. 구약성서는 여성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다윗 이야기의 설화자는 둘 사이의 관계를 비판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물론 칭찬하거나 장려하지도 않는다. 레위기는 분명히 그런 사람은 죽이라고 명했는데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레위기가 금하는 것은 동성 간의 성관계다. 둘이 같이 잠자리에 들지 말라는 거다. 이성애가 이성 간의 성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듯이 동성애도 동성 간의 성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동성애라고 해서 ‘플라토닉 러브’가 없으란 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을 사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울의 비난은 동성애 자체를 겨냥했다기보다는 다윗의 쿠데타 음모를 겨냥하고 있으니 그건 다른 얘기가 되겠다.

 

다윗도 요나단도 모두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으니 둘 다 양성애자였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아내들과 결혼관계를 유지했고 요나단의 장애자 아들 므비보셋을 보호해줬다(사무엘하 9:10-13.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겠다). 설령 둘이 동성애 관계였다고 해도 설화자는 그걸 정치적 의미로만 보고 있다. 요나단은 ‘애인’ 다윗에게 자기 권리를 모두 넘겨줬고 그를 사울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줬다. 설화자는 둘의 관계를 도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판단해서 비판하지 않는다.

 

8.

 

다윗이 사울의 궁전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 얘기를 다 할 수 없어서 두 장에 걸쳐서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만 짚어봤다.

 

‘다윗’은 ‘사랑받는 자’(beloved)란 뜻이다. 이름처럼 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미갈이 그랬고(사무엘상 18:20, 23) 요나단이 그랬으며(사무엘상 18:1, 3; 19:1; 20: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사무엘상 18: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이 늘 앞장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좋아하였다.” 새번역성서는 ‘좋아하였다’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 원어에는 ‘사랑했다’(아하브)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원칙 없이 마음대로 번역하면 곤란하다.). 심지어 사울조차 그를 사랑했다(사무엘상 16:21). 무엇보다 그는 야훼의 맘에 드는 자로서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렀다. 그는 야훼의 사랑 역시 받았다고 하겠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난다.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렀기에 그랬을까? 하지만 야훼의 영도 살해 위협 그 자체를 없애진 못했다. 결국 그는 사울의 궁전에서 도망쳐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 더 있다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떠도는 ‘부랑자’가 됐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생존을 위해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소규모 ‘조폭’ 노릇도 했고 돈 받고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용병 노릇도 했다. 그는 밑바닥에 떨어졌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다음 장에서는 ‘떠돌이 다윗’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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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5)

 

엇갈리는 운명

– 야훼의 영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 옮겨가다

 

1.

 

사무엘이 사울의 후임자를 찾아 이새의 집에 갔을 때 그의 맘에 든 사람은 맏아들 엘리압이었다. 그는 엘리압을 보고 맘속으로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야훼 앞에 나와 섰구나.”라고 생각했단다(사무엘상 17:6). 하지만 그는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야훼는 중심[심장]을 본다.”(7절)라는 야훼의 말을 듣고 꼬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하느님은 겉모습이 아닌 중심을 보신다.’는 생각이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고 나서 야훼는 다윗을 보고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라고 사무엘에게 알려줬다(12절). 적임자를 찾아낸 기쁨이 읽는 사람에게도 느껴질 정도다. 야훼가 당신 맘에 드는 자를 드디어 찾아낸 거다.

 

다윗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않고 중심/심장을 보는 야훼의 마음이 든 사람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이걸로 게임은 끝난 게 아닌가 말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아무리 연기 잘 해도 연극은 결국 감독에게 달려 있듯이 역사라는 무대의 등장인물이 아무리 잘난 체해도 결국은 극은 감독인 하느님이 이끌어간다. 누군가가 외모는 안 보고 심장/연기력만 보는 감독의 눈에 들었다면 이미 게임을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다윗이 심장을 보는 야훼의 마음에 들었다는 얘긴 그에게 야훼의 영이 머물러 있었다는 얘기(16:13)와 함께 다윗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그가 야훼의 마음에 들었고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나 하는 점이다. 사무엘은 다윗이 야훼의 마음에 들었단 사실을 알았지만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고 있단 사실은 몰랐을 거다. 그게 눈에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설화자뿐이다. 그럼 다윗은 알았을까? 자기에게 야훼의 영이 머물고 있음을 그는 인식했을까? 인식했다면 어떻게 인식했을지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나? 뭔지 모르는 어떤 기운이 자기를 감싸고 있다고 느꼈을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기라도 했을까? 야훼의 영이 사람에게 머문다는 것이 사람에겐 어떤 경험이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러분은 안 궁금한가?

 

아쉽게도 다윗 이야기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이런 점들에 대해선 답을 주지 않는다. 그 정도는 당시 사람들이 다 알았기 때문일까? 정말 그랬을까? 어쨌든 설화자는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머물렀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어떻게 경험되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예컨대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머물렀기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거나, 재앙이 될 사건이 복이 됐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윗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왜 모든 일이 다윗에게 유리하게 전개될까? 야훼가 일어나는 모든 일의 궁극적 주관자라면 모든 일이 다윗에게 유리하게 전개된 것은 그가 야훼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이겠다. 야훼는 왜 다윗을 이토록 ‘총애’했을까? 다윗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토록 애지중지했는가 말이다. 그에게 그럴만한 장점이 있었나? 있다면 그게 뭘까?

 

2.

 

사무엘은 야훼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느님은 거짓말도 안 하시거니와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15:29)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데서 야훼는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15:11)라고 말한다. 이는 앞의 말과 모순된다. 앞에선 하느님은 ‘뜻을 바꾸지 않는다.’고 했는데 뒤에선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니 말이다. 전자는 사무엘이 하느님에 대해서 한 말이고 후자는 하느님 자신이 한 말이므로 만일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마땅히 후자를 골라야 할 게다. 게다가 후자는 몰락하는 사울에 대한 말이고 전자는 상승하는 다윗에 대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다윗 이야기 전체에서 사무엘이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감안하면 그의 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게 야훼의 말과 모순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혹시 사무엘에 야훼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한 게 아닐까? 야훼는 사무엘의 입을 빌려서 다윗에 대한 ‘무조건적’(unconditional) 사랑을 천명한 게 아닐까?

 

왜 야훼는 다윗이 그토록 마음에 들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 야훼가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훼의 맘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왜?’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에 대한 답이다. 그것도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사울은 백성의 선택을 받아 왕이 된 데 반해 다윗은 야훼의 선택을 받아 왕이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울 역시 야훼의 선택을 받아서 왕이 됐다.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온 한 사람을 너에게 보낼 것이니 너[사무엘]는 그[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라. 그가 나의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해 낼 것이다. 나의 백성이 겪는 고난을 내가 보았고 나의 백성이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내가 들었다.’ 사무엘이 사울을 보았을 때에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젊은이가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나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사무엘상 9:16-17).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야훼께서 뽑으신 이 사람을 보아라.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다.’ 그러자 온 백성이 환호성을 지르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사무엘상 10:24).

 

사울은 ‘외모’가 왕으로 선택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다윗은 야훼가 ‘마음/심장’을 보고 택했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 역시 외모에 대한 언급이 있고(사무엘상 16:12) 사울의 ‘심장’이 야훼 마음에 안 들었다는 얘기도 없으니 사울의 외모와 다윗의 마음을 대조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사울은 죄를 지은 악인이지만 다윗은 죄 없는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터무니없긴 마찬가지다. 사울이 무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다윗 역시 간음과 살인의 죄를 저질렀으니 말이다. 따라서 야훼가 사람을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사람을 선택한다고 볼 수도 없다. 헤렘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사울을 선택한 걸 야훼가 후회했다면 간음과 살인의 죄를 지은 다윗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후회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야훼는 다윗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사울에 대해선 두 번이나 후회했는데 말이다(사무엘상 15:11, 35). 야훼의 영이 사울을 떠났고 대신 야훼가 보낸 ‘악한 영’이 그를 괴롭혔지만(사무엘상 16:14) 야훼의 영이 다윗을 버리고 떠나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야훼의 ‘헤쎄드’가 영원히 그의 집안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내가 사울에게서 나의 총애[헤쎄드]를 거두어 나의 앞에서 물러가게 하였지만 너의 자손에게서는 총애를 거두지 아니하겠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사무엘하 7:15-16).

 

3.

 

사울과 다윗 사이의 갈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사울의 ‘질투’다. 사울은 다윗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그를 죽이려 한다. 사울이 다윗을 질투한 이유는 야훼가 자기를 버리고 다윗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울이 왕이 되고 싶어서 됐나? 아니다. 그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왕으로 추대하려 했을 때 그가 짐짝 속에 숨어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사무엘상 10:22). 물론 정작 왕이 되어 보니 권력의 맛을 알게 됐을 수도 있지만 텍스트는 그렇게 추측할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울의 비극은 야훼가 그를 선택할 걸 ‘후회’하면서 시작됐다(사무엘상 15:11). 야훼는 사울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고 했지만 야훼 역시 사울에게서 등을 돌렸다. 누가 먼저 등을 돌렸는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좌우간 야훼는 사무엘을 통해 전한(또는 전했다고 말하는) 자신의 지시를 사울이 어겼기 때문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얘기인데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희생제사를 드린 것과 헤렘의 법을 어긴 게 그거다. 이게 사울을 버릴 만한 일이고 ‘야훼의 영’이 그를 떠날만한 일일까? 그것은 전적으로 야훼에게 달린 일이지만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안 그런가?

 

야훼의 영은 사울이 행한 두 번의 실수 때문에 가차 없이 그를 버렸지만 일단 다윗에게 옮겨간 이후론 그를 떠나지 않고 그에게 머물렀다. 여기서도 다윗에 대한 야훼의 거의 무조건적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사울은 희생제사를 주관했다고 버림받았지만 다윗은 아히멜렉 제사장을 속이고 금지된 떡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지 않았다. 사울은 헤렘의 법을 어겼다고 버림받았지만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고도 끄떡없었다. 사울은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했지만 다윗의 회개는 받아들여졌다. 사울의 경우엔 죄를 지은 당사자인 사울이 죗값을 치렀는데 다윗의 경우엔 아무 죄도 없는 아기가 다윗 대신 죽임을 당했다. 다윗에게는 매사에 섭리가 작용했지만 사울에게는 야속한 운명이 장난질을 쳤다. 사울은 아무리 잘 해보려 해도 일이 꼬이기만 했는데 다윗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일이 술술 풀렸다.

 

왜 그랬을까? 왜 둘의 운명은 이토록 판이하게 달랐을까? 도덕과 윤리의 수준이 달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윗의 신앙이 사울의 그것보다 더 순수하고 신실했다고도 볼 수 없다. 아무리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양하다 해도 다윗의 신앙이 사울의 그것보다 더 순수하고 신실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사울의 실패와 다윗의 성공의 원인은 그들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에 대한 야훼의 호불호에 달려 있었던 거다. ‘야훼의 영’이 머물렀거나 떠난 것도 그들이 뭘 잘했거나 잘못 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윗이 야훼의 마음에 든 것도 그럴만한 미덕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건 은혜를 베풀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사람은 긍휼히 여길 전권을 갖고 있는 야훼에게 달린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사울이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도 야훼의 선택으로 왕이 됐다. 야훼가 애초부터 그를 실패하게 하려고 왕좌에 앉혔을 리 없다. 그 역시 야훼의 신뢰와 기대를 받고 왕이 됐던 거다. 그의 운명이 달라진 건 다윗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가 갑작스레 내리막길로 치달았던 것은 다윗 때문이다. 그에게 대단한 허물이 있거나 그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게 다윗 때문이었다. 다윗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던 거다. 야훼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다윗이란 인물이 나타났다는 게 사울에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었던 것이다.




<David playing the harp before Saul - Rembrandt, Wikimedia Commons>


 

4.

 

사울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보자. 그게 다윗과도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사울은 자기 운명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결국은 자기가 실패할 걸 그는 알았을까? 텍스트에 의하면 그는 알고 있었다. 사무엘이 오해의 여지없이 확실히 선언했으니 말이다.

 

“임금님[사울]이 야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야훼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사무엘상 15:23).

 

“나는 함께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임금님[사울]께서 야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야훼께서도 이미 임금님을 버리셔서 임금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있을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15:26).

 

“야훼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이 옷자락처럼 찢어서 임금님[사울]에게서 빼앗아 임금님보다 더 나은 다른 사람에게 주셨습니다.”(15:28).

 

궁금한 건 자기가 버림받았음을 알게 된 게 이후 사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하는 점이다. 사람은 자기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에 불안하면서도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안 그런가?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의 결말을 미리 알았으니 그 심정이 어땠을 것이며 그게 그의 나머지 생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구약성서에는 그리스 비극의 ‘운명’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다. 거기서는 사람은 물론이고 신조차 비극적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운명은 신들의 의지도 초월한다. 하지만 구약성서에는 야훼의 의지를 초월하는 운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자연을 섭리하며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야훼라는 인격신이다. 야훼의 의지는 비극적이지도 않고 미리 정해져 있지도 않다. 운명과는 다르단 얘기다. 야훼가 인격신이란 말은 사람이든 자연이든 역사든 그것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신이란 뜻이고 그건 곧 야훼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스 비극에서 이해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운명 앞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그걸 받아들여야 할 사람의 주관적인 태도다. 사람은 자기 운명을 이해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결국은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체념하며 받아들이느냐 울분을 터뜨리며 받아들이느냐 정도다. 그런데 구약성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야훼를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의 의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자연을 섭리하고 역사를 주관하는 야훼의 의지와 계획을 감히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그래서 사울은 야훼의 영이 자길 떠난 걸 알았지만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무엘의 말을 안 믿은 건 아니다. ‘무슨 소리야? 야훼가 나를 버렸다고? 그럴 리 있나…. 내가 무슨 대단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사울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다 본다.

 

사울은 자기가 야훼의 버림을 받고 다윗이 대신 왕위에 오를 것을 알았다.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한 적도 있다. 굴속에 숨어있던 다윗이 뒤를 보러 그리로 들어온 사울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자르고 살려준 후에 그걸 생색내듯 말하자 사울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분명히 안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굳게 설 것이다.”(사무엘상 24:20). 하지만 사울은 왕위를 다윗에게 순순히 넘겨주지는 않았다.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고 믿지 않았으니까. 그는 야훼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을까? 야훼가 자신을 선택할 걸 ‘후회’했듯이 다윗을 선택할 것도 ‘후회’할 걸 기대했을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확실한 사실은 그를 포함해서 누구도 그리스 비극의 ‘운명’ 같은 걸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사실은 텍스트가 사울과 다윗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거다. 야훼가 사람을 선택하고 버리는 기준도 도덕과는 별 상관없다. 사울이 버려진 것이나 다윗이 선택된 것이 그렇다. 다윗의 도덕성은 얘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살펴보겠다.

 

구약성서가 그리스 비극과 다른 점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거다. 인생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매순간 사람이 내리는 결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신앙과 불신앙의 결단에는 반드시 결과가 뒤따른다. 야훼의 섭리도 사람이 내리는 결단의 의미와 중요성을 희석하지 못한다. 구약성서에는 불변하는 것은 없다. 사람도 변하고 역사도 변하고 자연도 변하며 심지어 야훼도 변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니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정된 철칙이란 것도 없다. 구약성서에는 거스를 수 없고 미리 결정된 ‘운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울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을 가장 닮았다. 물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 딱 일치하진 않지만 야훼에게 버림받은 게 그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야훼의 ‘후회’ 때문이란 점에서 그는 비극의 주인공을 닮았다. 그래서 실패의 책임을 사울에게만 묻는 건 정당하지 않아 보인다. 자기가 버림받았음을 알았지만 사울이 여전히 다윗을 죽이려 했던 건 버림받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게 변경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거다. 그런 점에서 그의 생각은 지극히 구약성서적이다. 결과적으로 야훼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5.

 

다윗은 어땠나? 야훼가 왜 다윗을 선택했는지, 그에게 무슨 미덕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야훼의 선택은 다윗의 미덕과는 무관하다. 그저 다윗이 야훼의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다윗은 야훼의 후회를 정당화하기 위한 존재처럼 보인다. 야훼가 사울을 선택한 건 일종의 ‘실수’였고 그래서 그걸 ‘후회’했는데 그 실수를 만회하게 하는 자가 바로 다윗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의 행위는 옳아야 했고 야훼의 맘에 들어야 했다. 다윗의 행위는 옳기 때문에 옳았던 게 아니라 다윗이 했기에 옳았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분노하거나 고개를 가로저을 독자가 있겠지만 텍스트에는 이렇게 생각할만한 근거가 있다. 유일한 예외는 밧세바와의 불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다.

 

야훼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다윗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그의 생을 어떻게 바꿨는지가 궁금하다. 다윗은 젊은 나이에 자기가 왕으로 선택됐음을 알았다. 사무엘이 직접 자기에게 와서 기름을 부었으니 그걸 몰랐을 리 없다. 이는 사울도 똑같다. 야훼가 자길 선택한 걸 사울도 알았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사울은 야훼가 자길 버렸다는 사실을 그런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 알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선례 덕분에 그 전에 알았을 거란 점이다. 다윗은 자신에 대한 선택이 사울의 경우처럼 번복될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걸 활용했다. 물론 야훼의 결정이 번복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윗은 야훼의 선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러 있었지만 그는 영에 사로잡히거나 짓눌리지 않았다. 그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 한 일이 이 점을 보여준다(사무엘상 21:10-15).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러 갔을 때 그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경계하자 그는 아기스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미친 척했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다윗]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 그러자 아기스가 신하들에게 소리쳤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13-15절).

 

그의 미친 척이 얼마나 진짜 같았으면 아기스가 감쪽같이 속았을까. 그는 멀쩡한 정신으로 미친 척했다. 이것도 ‘야훼의 영’ 덕이었을까? 그렇다고 할 수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 더 살펴보겠지만 다윗에게는 당시의 시대적 관습과 신학을 뛰어넘어 거침없는 자유롭게 행동한 면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야훼를 닮았다. 그래서 야훼가 그를 그토록 좋아했나?

 

반면 사울은 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영의 포로가 되어 있었던 거다. 그는 영에 사로잡혀서 다윗을 죽이려 했다. 다윗에 대한 그의 태도가 조변석개(朝變夕改)한 것도 그의 영혼이 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광기를 자유롭게 지배했던 다윗은 확연히 대조된다. 사울은 영의 지배를 받았고 거기 사로잡혀 있었던 데 반해 다윗은 그걸 활용하고 지배했던 거다. ‘지배’했다는 말이 지나치다면 ‘활용’이란 말로 바꿔도 좋겠다.

 

물론 이런 행동은 영이 그에게 머물렀기에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이런 다윗과 야훼가 사랑에 빠진 것도 이해할만하다. 안 그런가? 야훼는 스스로 자유로운 신이었으니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활용할 줄 아는 다윗이 얼마나 사랑스러웠겠는가. 영을 두려워하고 속박으로 느낀 사울에게는 영의 존재가 비극적 ‘운명’이었지만, 서퍼(surfer)가 능수능란하게 파도를 타듯 야훼의 영의 물결에 올라타 활용할 줄 알았던 다윗에게는 그게 ‘섭리’가 아니었을까? 둘 사이의 승부는 자기에게 머물러 있는 야훼의 영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비극적인 생을 살았던 사울을 위해 한 마디 말하고 싶다. 그가 야훼의 버림을 받은 원인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은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했다. 하지만 왜 그가 버림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다. 왜 그는 야훼에게 버림받았을까? 혹시 야훼를 왕으로 섬기지 않고 다른 족속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졸랐던 백성에 대한 심판으로 야훼가 그를 버린 게 아닐까?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왕을 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을 때 야훼는 “그들[이스라엘 백성]이 너[사무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야훼]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사무엘상 8:7)라면서 백성들 말을 들어주라고 했다. 야훼가 백성들의 주장에 동의해서 들어준 게 아니다. 내키진 않았지만 허용했던 거다. 그러나 야훼는 그들 선택이 잘못됐음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주고 싶었을 게다. 그래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야훼는 사울을 실패하게 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뼈저린지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되면 사울은 야훼를 제쳐두고 왕을 달라고 했던 백성들의 죄에 대한 희생양이 된다. 다윗은 이런 야훼의 ‘후회’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흠 없는 훌륭한 왕이어야 했다. 적지 않은 그의 흠결이 부각되지 않고 슬며시 덮인 이유가 여기 있다는 거다. 어떤가? 그럴듯하지 않나?

 

물론 이건 추측에 불과하다. 어차피 텍스트가 답을 주지 않으니 추측할 수밖에 없다. 질문은 있는데 답이 없으니 답답하긴 하고, 그러니 어떻게든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명색이 다윗 이야기를 꼼꼼히 읽겠다고 다짐한 독자이니 이 정도 해석의 자유는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안 그런가?

다음 장에선 다윗이 사울의 수하에 있으면서 둘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을 살펴보겠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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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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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 신화의 탄생 -

 

1.

 

‘여는 글’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가 다윗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구약성서에서 왔다. 이 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 큰 인물이라면 구약성서 말고도 기록이 남아 있을 법 한데 그렇지 않다. 구약성서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들이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에 특히 회의적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상세한 기록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지나가듯이 어느 정도는 언급돼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반면 구약성서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학자들 중에 오히려 다윗을 역사적 인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조얼 베이든(Joel Baden)이 그런 사람이다(Joel Baden, The Historical David: The Real Life of an Invented Hero, 45). 그는 다윗 이야기 전체가 일종의 ‘해명’ 또는 ‘변명’(apology)할 목적으로 기록됐다고 보는데 이 정도로 강력한 해명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실존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일종의 역발상인데 어떤가? 그럴듯하지 않나?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이야기는 다윗 이야기는 물론, 구약성서 전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다윗에게 출세길을 열어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다윗 이야기 전체의 역사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는 개연성이 낮은 대목도 여러 곳이고 양립할 수 없이 모순되는 대목도 있다. 게다가 칠십인역 성서(그리스어 구약성서, Septuagint 또는 LXX)에는 골리앗 얘기 중 일부가 빠져 있다. 거기에는 사무엘상 17장 1-11절, 31-49절, 51-54절만 있다. 왜 그럴까? 칠십인역은 다윗을 낮추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책이 아니다. 그에게 불리한 이야기들만 모아놓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왜 칠십인역 성서는 다윗의 명성에 보탬이 되는 대목들을 빼놓았을까? 학자들은 칠십인역이 그걸 삭제한 게 아니라 칠십인역의 히브리어 원본에 그게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다윗 전승 가운데 비교적 후대에 속한다고 여긴다. 칠십인역 성서에 이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이고 그 밖에도 이 이야기에 영웅설화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과 다윗이 사울에게 두 번째로 소개된다는 점 등이 또 다른 증거로 제시된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이미 수금 타는 악사로 사울 궁전에 취직했다(사무엘상 16:14-23, 이하 책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 사무엘상에서 온 구절이다). 사울은 다윗을 매우 사랑해서 자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직무까지 맡겼단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골리앗)을 맞서려고 나가는 것은 보고 군사령관에게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은 누구의 아들이요?”라고 물었다(17:55).

 

이게 무슨 말인가? 말이 되는가? 바로 앞장에서 사울은 수금 타며 자길 섬기는 다윗이 맘에 들어 그를 사랑하게까지 됐다고 했는데 여기서 “그가 누구냐?”고 묻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궁전에서는 기억나는데 전쟁터에서는 기억이 안 났나? 이것도 야훼가 보낸 악한 영 때문이었을까? 이 모순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나중에 삽입됐고 그 이야기 저자는 다윗이 악사가 되어 사울을 섬겼다는 이야기를 몰랐다고 보는 걸 게다. 그렇게 되면 두 이야기를 연결한 편집자의 편집 실력이 의심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편집자는 눈에 띠는 모순을 보지 못했을까? 아니면 나름 의도가 있어서 불일치를 알면서도 그대로 뒀을까? 그렇다면 그 ‘나름의’ 의도란 게 무엇이었을까?

 

2.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을 짚어보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려고 에베스담임에 진을 쳤기에 사울도 군인을 모아 엘라 평지에 진을 쳤다. 두 군대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맞섰다는 거다. 곧 전투가 벌어질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보인다. 이때 블레셋에서 저 유명한 골리앗이 나와서 싸움을 걸었는데 여기도 이상한 점들이 여럿 있다.

 

우선 히브리 성서가 전하는 그의 키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었다고 하니(17:4) 환산하면 3미터가 넘는다. 이게 사람의 키일 수는 없다. 성서의 진술은 무조건 사실이라고 믿어야 한다면 그런 사람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칠십인역 성서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 사무엘서에는 여섯 규빗 한 뼘이 아니라 네 규빗 한 뼘이라고 적혀 있다. 환산하면 1미터 80센티 조금 넘는 정도니 당시 기준으로 큰 키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칠십인역 성서 번역자와 사해사본 저자도 여섯 규빗은 비현실적이라고 본 모양이다.

 

다음은 골리앗의 차림새다. 일반 독자는 머리에는 놋으로 만든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 어깨에도 역시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는 묘사를 그러려니 하고 읽겠지만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골리앗의 차림새가 다윗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중동지역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군장이란다(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71). 골리앗이 감히 상대할 수 없이 막강한 장수임을 보여주기 위한 과장이라는 거다. 물론 이 묘사는 지나치게 무거운 골리앗의 장비를 홀가분하게 무릿매만 갖고 싸움에 임했던 다윗과 비교할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다가 저자는 자기 시대가 훨씬 후대임을 잠시 망각했던 걸까?

 

다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전투방법이다. 골리앗은 무거운 군장을 갖추고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이렇게 고함을 쳤다. “너희는 어쩌자고 나와서 전열을 갖추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고 너희는 사울의 종들이 아니냐? 너희는 내 앞에 나설 만한 사람을 하나 뽑아서 나에게 보내어라. 그가 나를 쳐 죽여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그를 쳐 죽여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서 우리를 섬겨야 한다”(8-9절).

 

일대일 대결에서 이기는 편이 전쟁에서 승리한 걸로 하자는 얘기다. 이런 게 만화에선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도 그랬을까? 어떤 학자에 의하면 그리스에선 이런 방식의 전투가 있었다고 하는데 설령 그렇다 해도 다윗 이야기의 무대는 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진 가나안이다. 가나안에선 이런 식으로 전투했다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유례가 없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 유례가 없다고 절대 벌어지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상하고 낮선 것뿐이다.

 

골리앗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나? 지는 편이 이기는 편의 종이 되어 섬기자는 제안 말이다. 텍스트는 그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 말에 놀라서 떨기만 했다고 한다(11절). 그러다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자 블레셋 군인들은 모두 달아났고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은 도망치는 블레셋 군인들을 쫓아가서 마구 죽여 시체가 사아라임과 가드와 에그론(모두 블레셋의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온 길에 널렸다”는 거다(51-52절). 사무엘상 17장의 무려 쉰여덟 절이 전하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이걸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불러야 하나? 정말 그런가?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48-49절). 왜 골리앗을 줄곧 ‘그 블레셋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한데 그 이유를 알 도리 없으니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다윗과 골리앗이 벌인 전투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위에 인용한 51절 이하는 일방적인 살육에 대한 얘기이므로 본격적인 전투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텍스트는 다윗의 동작을 ‘달려가다’ ‘(돌을) 들다’ ‘(팔매질) 하다’ ‘(골리앗을) 치다’라는 네 개의 동사로 표현했는데 골리앗은 그래서 ‘쓰러졌다.’ 다윗의 네 가지 단호한 행위는 골리앗의 말을 듣고 놀라서 떨기만 했다는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그것(11절)과 대조적이다. 한쪽은 두려워 떨기만 하는데 다른 쪽은 단호하기가 이를 데 없다.

 

 




<David and Goliath - Guillaume Courtois, Wikimedia Commons>



 

3.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전하는 텍스트를 잘 읽어보면 무엇으로 싸움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무기가 아닌 세 치 혀로 싸웠다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깝다. 실제적인 전투행위는 쉰여덟 절 중에 오직 두 절에 전해진다. 그러니 이젠 둘이 혀로 벌인 싸움을 살펴볼 차례다. 이 싸움 역시 다윗이 골리앗에게 완승을 거뒀는데 그 전에 다윗은 동족과 오픈게임을 치렀다. 그럼 오픈게임부터 살펴보자.

 

설화자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윗과 그의 집안을 소개한다. 앞에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이미 소개했는데 말이다(16:1-13). 설화자는 다윗의 고향(유다 땅 베들레헴), 족보(에브랏 사람 이새의 아들), 그리고 형제들(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를 비롯한 일곱 형제들)을 소개한 후 위로 형 셋이 사울을 따라 블레셋과의 싸움터에 나갔다고 말한다(12-13절). 막내 다윗은 어려서인지 싸움터엔 나가지 않고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라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블레셋과의 전투가 벌어지는(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새는 세 아들의 안부가 염려됐다. 다윗은 형들의 도시락을 들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엘라 평지로 갔다.

 

다윗은 거기서 놀라운 말을 듣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가 형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골리앗이 블레셋 군대 선두에 서서 앞에서 한 말을 반복하면서 싸움을 걸더라는 거다. 이스라엘 군대에서 자기를 상대할 대표선수 하나를 내보내 싸워 이긴 편이 진 편을 종으로 삼자는 얘기 말이다(8-9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서워 달아났는데 다윗은 그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크게 분노했다.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많은 상을 주고 그를 사위 삼겠다고 사울의 제안도 다윗의 귀에 들어오진 않았을 터이다.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이 받는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준다구요?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26절)라는 말에 그의 분노가 묻어나 있다. 다윗에겐 골리앗의 말이 이스라엘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었던 거다.

 

여기서 큰형 엘리압이 막내 다윗을 꾸짖었다.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28절). 아무라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지만 설마 다윗이 싸움 구경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겠나. 다윗이 건방지고 고집 세다는 형의 말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가 다윗을 아주 얕보고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장남의 막내에 대한 안하무인 식의 멸시였을까? 막내 주제에 감히 어른들 얘기에 끼어든 게 건방져 보였나? 그런데 다윗도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단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 보지도 못합니까?”(29절)라고 말이다.

 

누군가가 다윗이 한 말을 사울에게 전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불렀다. 그는 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32절)라고 말했다. 이런 다윗이 사울 눈에도 당돌했나 보다. 그는 다윗을 말렸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골리앗을 어린 소년 다윗이 무슨 수로 이기겠냐면서 말이다. 그러자 다윗은 전쟁터에서의 싸움을 양치는 일에 비유해서 말했다. 사자나 곰이 양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그는 곧바로 쫓아가서 그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왔다면서 “저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36절)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야훼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37절)라고 말하는 다윗을 사울도 더 이상 말릴 수 없어서 나가라고 허락한다. 사울로서는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모두 겁먹고 싸우러 나가려 하지 않는 마당에 자원자가 있는데 왜 말리겠는가 말이다. 그는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37절)라고 형식적으로 격려한 다음 그를 내보냈다. 야훼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자가 떨긴 왜 떨었을까.

 

야훼께서 너와 함께…”라고 말은 했지만 사울은 여전히 인위적인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다윗의 머리에 놋 투구를 씌워주고 몸엔 갑옷을 입혀줬으며 자기 칼까지 그의 손에 쥐어주는 등 다윗과는 대조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오로지 야훼 한 분만 의지하겠다는 다윗의 ‘설교’를 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모양이다. 다윗은 사울이 제공한 장비를 다 입고 몇 걸음 걸어보곤 벗어버렸다. 그런 장비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설화자는 여기서 야훼를 향한 그의 돈독한 믿음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양떼를 치던 때처럼 그는 지팡이와 무릿매와 돌맹이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4.

 

세 치 혀로 싸우는 싸움은 2라운드에 들어섰다. 골리앗(그는 내내 ‘그 블레셋 사람’으로 불린다)은 다윗이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42절) 그를 우습게 봤다.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나아오는 걸 보고 골리앗은 자길 개로 여기냐며 화를 내면서 “자기들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며(43절) 말하기를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마”라고 의기양양하게 떠벌였다(44절). 이에 ‘잘생긴 홍안의 소년’ 다윗은 다시 한 번 신앙에 찬 설교를 토해낸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 곧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야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알게 하겠다. 또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야훼께 달린 것이다. 야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45-47절).

 

누구 들으라고 한 설교였을까? 골리앗 들으라는 설교였나, 아니면 겁에 질린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 들으라는 설교였나? 후자인 것 같다. 안 그런가? 칼이나 창 따위를 들고 나와 야훼를 모욕하는 무뢰한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 벌벌 떨다니, 그게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믿는 사람들이 할 짓이냐면서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질타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의 전투는 찌르고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물리적 전투가 아니라 누구를 믿고 의지하는 게 옳은지 따지는 ‘신학적 전투’였던 거다.

 

‘나를 개로 여기는 거냐?’라며 싸우는 자와 ‘야훼께서 너는 오늘 내 손에 넘기실 것이다’고 선언하며 싸우는 자의 싸움에서 승패는 보나마나다. 구약성서 안에선 말이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두 전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귀결됐다. 둘 간의 실제적인 싸움 얘기가 두 절(48-49절)에 불과한 것도 그래서겠다. 다윗이 달려가서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무릿매로 던져서 골리앗의 머리를 때리는 다섯 번의 행동으로 싸움이 끝났다. 거함 골리앗은 그렇게 침몰했다.

 

싸움은 끝났는데 뒷맛은 개운치 않다. 너무 싱겁게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두 개의 퍼즐 조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골리앗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윗이 날린 돌에 맞아 죽었나, 아니면 다윗의 칼에 목이 잘려 죽었나? 범죄 수사관이나 법의학자나 관심 가질 법한 데 의문을 품는 건 텍스트가 두 가지를 다 말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대개 다윗이 던진 돌에 골리앗이 맞아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51절은 분명히 “다윗이 달려가서 그 블레셋 사람을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잘라 죽였다”라고 적었다. 또 50절에는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 하나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그는 칼도 들고 가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하니 분명 다윗이 칼이 아닌 돌로 골리앗을 죽였다는 게 아닌가.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 칼로 골리앗의 목을 잘라 죽였다니 어느 쪽을 믿어야 하나?

 

성서에서 엇갈리는 진술을 되도록이면 조화시켜야 하는 학자들은 돌로 죽인 후에 칼로 목을 잘라 ‘확인사살’했다고 본다. 골리앗의 목을 자른 칼도 다윗의 칼이 아니라 골리앗의 칼이었다는 거다. 전혀 그럴 법하지 않은 주장은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억지로 꿰어 맞춰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 성서에는 없고 칠십인역에만 있는 시편 151편(히브리 성서의 시편은 150편이 마지막이다)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건을 노래한다. 거기에는 골리앗이 무릿매와 돌로 죽었다는 말은 없고 칼로 죽었다는 말만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돌과 칼을 모두 살려서 이 이야기를 조화롭게 읽으려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쳐 의견을 바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취한 마지막 조치다. 설화자는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으나 그의 무기들은 자기 장막에 간직하였다”(54절)라고 적는데 두 가지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첫째로 예루살렘은 그때 유다 땅이 아니라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으니 그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는 이야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훗날 다윗이 수하 사병들을 거느리고 정복한 도시다(사무엘하 5:6-10).

 

둘째로 골리앗의 무기, 곧 칼은 훗날 놉이란 곳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갖고 있다가 다윗에게 건 낸 걸로 되어 있다(사무엘상 21:8-9). 다윗이 골리앗의 무기들을 자기 장막에 간직했다는 이야기도 이 진술과 안 맞는다. 물론 골리앗의 무기들 중 칼만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갖고 있었다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한 전승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는데 편집자가 ‘실수’했든지 나름의 의도를 갖고 있었든지 엇갈리는 진술을 그대로 놔뒀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다윗 이야기의 큰 흐름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야기이므로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가 단일 전승 아닌 다양한 전승의 복합체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대체 누굴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사무엘하 21장이 있다. 거기엔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 이름이 등장하는데 베들레헴 사람인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다고 전해진다(19절).

 

이게 무슨 말인가? 어찌 된 일인가 말이다.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다윗이 아니라 엘하난이라니! 사무엘상 17장에도 골리앗은 ‘가드 사람’이라고 출신이 밝혀져 있으니(4절) 동명이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근데 그를 죽인 자가 엘하난이라니! 다윗은 골리앗을 죽여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의 경력에서 이토록 중요한 업적이 다른 사람의 거라니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가 말이다.

 

이런 모순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해결책을 내놨다. 다윗과 엘하난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구약성서에는 두 가지 이름을 갖고 있던 사람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솔로몬도 ‘여디디야’란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사무엘하 12:25). 하지만 몇 절 앞에서는 다윗이란 이름을 사용하니(사무엘하 21:15, 16, 17) 다윗과 엘하난이 동일인물이란 주장은 신빙성이 별로 없다. 일찍이 이 문제를 발견한 역대기 사가는 엘하난이 골리앗이 아닌 그의 아우을 죽였다고 했다.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역대기상 20:5).

 

<역대기서>는 신명기 역사서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쓴 역사서로서 많은 경우 신명기 역사서를 그대로 옮겨왔다. 그런데 여기서 역대기 사가는 문제를 발견했던 게 분명하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하는데 사무엘하 21장은 엘하난이 그를 죽였다고 하니 말이다. 가급적이면 다윗의 약점을 감추고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애썼던 역대기 사가는 엘하난은 골리앗이 아니라 그의 아우를 죽였다고 적었던 거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만으론 누가 골리앗을 죽였는지 확증할 수 없다. 정서적으론 당연히 다윗에게 기울지만 사무엘하 21장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정서는 퍼즐을 푸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학자들은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본다. 두 사람의 싸움 얘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중엔 싸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면 엘하난이 죽였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어찌 해야 하나. 이것 역시 풀 수 없는 퍼즐인가…. 풀 수 없는 퍼즐을 무리해서 풀려고 하면 미궁에 빠진다. 이게 그런 경우다. 한편은 다른 편을 설득하지 못한다. 설득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므로 이 논쟁은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땐 결실 없는 논쟁을 중단하고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따져보는 것으로 진도 나가는 게 현명하다.

 

5.

 

현대 이스라엘의 한 고위 관리가 자기네 전투전술은 다윗에게서 비롯됐다고 말했단다. 전투를 잘 하려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무거운 갑옷 사양) 신속해야 하며 무기도 간단해야 하고(무거운 창칼 아닌 무릿매와 돌) 그걸 감출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럴 듯하지만 설마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목적이 전투전술을 전하는 데 있었겠나. 여기서 그런 걸 끄집어내겠다면 막을 수야 없겠지만 이 이야기의 본래 의미와 목적은 그게 아니었을 게다. 그럼 뭘까?

 

분명 이 이야기는 다윗을 높일 목적을 갖고 있다. 그건 누가 뭐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내적, 외적 갈등 상황에서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란 뜻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그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해도 거기엔 세대를 넘어서는 신학적 진실이 담겨 있다. 이 내용이 다윗 시대에만 소비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고 읽히고 해석되고 적용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곧 이 이야기를 전승한 사람들은 거기서 다윗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얼굴도 봤던 것이다. 물론 다양한 집단이 이 내용을 후대에 전했고 그들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이야기를 후대에 전한 까닭은 거기서 자기에게 의미 있는 진실을 찾아냈고 그것을 자기 현실에 맞게 해석했기 때문일 게다. 성서의 이야기나 사건에 대한 해석은 이미 성서 안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거기서 자기에게 필요한 진실을 찾는 노력은 성서가 닫힌 후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각 시대에 어떻게 해석되어 적용됐는지를 전부 아는 건 불가능하다. 합리적 추측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고 그것도 몇몇 특정한 시대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알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신학 작업이므로 하는 데까지 시도할 따름이다. 이 이야기가 각각의 시대에 어떻게 해석됐는지를 다 살피는 일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설 뿐 아니라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작업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는 싸움에 대한 이야기지만 싸움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그것은 두 절(48-49절)에 그친다. 대부분은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띠는 점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사울 및 이스라엘 군대의 ‘두려움’과 신뢰에 근거한 다윗의 ‘용기’가 대조되는 점이다.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뭘 하고 있었나? 그들은 진을 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블레셋 군대, 특히 골리앗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럼 블레셋 군대는 뭘 하고 있었나? 그들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골리앗이 ‘말’로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제압했을 때 그들은 꼼짝도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이렇듯 옛날이나 지금이나 압제자는 적나라한 폭력을 쓰기 전에 먼저 두려움과 공포로 지배한다. 피압제자는 압제가가 폭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두려워한다. 그 뒤에 뭐가 버티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레셋은 싸움도 하지 않고 몸만 풀고 있었지만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 떨었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큰형 엘리압의 행위는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무엘이 첫눈에 “바로 이 자다!”라고 생각했던 그 용모 수려한 젊은이 말이다. 사무엘이 야훼에게서 외모를 보지 말라는 핀잔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엘리압은 형들의 도시락을 갖고 온 다윗을 보고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28절)라며 구박했다. 왜 그는 다윗을 꾸짖었을까? 무슨 잘못을 했다고? 물어보지도 못하나?

 

여기에도 드러나 있지 않은 갈등이 숨어있다. 다윗 같은 언더독은 지배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양이나 치던 목동이고 일곱(여덟) 아들 중 막내이며 사무엘이 차기 왕을 찾으러 왔을 때도 존재감이 없던 사람, 이런 다윗을 그들은 자기들 판에 끼워주지 않으려 했던 거다.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간다면 적어도 그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줘야 하는 게 아닌가. 엘리압은 두 가지 생각을 갖고 다윗에게 핀잔을 주고 그를 꾸중했다고 보인다. 첫째로, 다윗이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데 객기를 부려서 나서려 한다는 생각과 둘째로, 다윗에게 그런 능력이 있든 없든 언더독 주제에 감히 낄 수 없는 판에 끼려 했다는 데서 온 불쾌감이 그것이다.

 

이렇듯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야훼를 신뢰하지 않는 데서 오는 이스라엘의 불안과 공포와 야훼에 대한 굳건한 신뢰에서 비롯된 다윗의 용기를 대비한다. 아울러 다윗의 용기는 자가발전한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야훼에게서 왔음도 보여준다. 다윗은 양떼를 지키려고 사자나 곰과 싸웠을 때 자기를 지켜준 하느님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자길 지켜 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오랫동안 동화 같은 이야기로 읽혀왔다. 무릿매와 돌맹이 다섯 개, 그리고 야훼에 대한 믿음 외에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꼬마 다윗이 중무장하고 나온 거인 장수 골리앗을 느닷없이 공격해서 쓰러뜨린 무용담으로 말이다. 돌멩이 다섯 개까지도 필요 없었다, 하나로도 충분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무릿매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야훼에 대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돌멩이를 다섯 개나 갖고 나갔다고 다윗의 믿음 없음을 비난했다. 그 점만 제외하면 믿음으로 승리한 나무랄 데 없는 이야기란 거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close reading) 많은 문제점을 발견한다. 그게 뭔지, 왜 생겼는지는 이미 위에서 살펴봤다. 우선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학자들이 많고 또 그 의심에 근거가 없진 않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실성 여부를 역사성에만 매달리는 것은 성서 이야기를 읽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 성서는 벌어진 사건을 그대로 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뭔가를 말하는 것이 목적이니 말이다.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에 하느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믿었으니 그들에게 한 사건을 ‘이해’한다는 것은 벌어진 대로 사건을 복기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끌어내는 거였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도 다윗과 골리앗 얘기의 역사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거기 들어 있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겠다.

 

이야기의 메시지는 왜 이 이야기가 필요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들어 있다. 사울 및 이스라엘 군인들의 불신앙과 불안과 비교해서 다윗의 믿음과 용기를 강조하는 게 이 얘기의 메시지인 거다. 다윗이 싸움하러 나가면서 사울에게 했던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야훼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37절)라는 말이나, 골리앗에게 했던 “야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야훼께 달린 것이다. 야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46-47절)라는 말에 이 얘기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말은 다윗이 한 말로 되어 있지만 실제 그가 이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화자는 ‘믿음의 연설’을 다윗 입속에 넣음으로써 그를 사울을 대체할 자격이 충분한 인물로 부각시키려 했다. 그런 식으로 다윗은 ‘만들어졌다.’ 구약성서, 특히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만일 다윗의 연설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상상하면 어떻게 될까? 말의 내용과 말한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어떻게 되나? 다윗이 한 말이 한때 부담 없이 받아들여졌다면 그것은 다윗이 그런 말 할 만한 사람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따져보니 다윗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가 그 연설을 다윗의 입속에 넣어줬단 얘기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군가가 그 연설을 만들어서 그의 입에 넣어준 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다윗이 한 연설의 의도와 그걸 다윗의 입에 집어넣은 설화자의 의도가 다를 수도 있겠다.

 

연설 내용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야훼에게 달려 있다는 거다. 상식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요즘 전쟁은 어느 편이 첨단장비를 많이 갖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 나는데 이런 연설에 귀 기울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누가 이런 믿음을 가질까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할까?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는 편에겐 이런 믿음이 필요치 않다. 미국이 중동전쟁을 했을 때 하느님 운운한 건 정말 전쟁의 승패가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을 세뇌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믿음은 군사력이 열세인 편에서나 필요한 거다. 믿을 게 그것밖엔 없으니까. 믿음만 갖고 승리한 얘길 후손에 전하고 싶어 했던 쪽도 당연히 그들이었다. 이런 믿음은 전형적으로 언더독의 믿음이었던 거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추앙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언더독으로 규정하는 건 난센스다. 하지만 그는 한때 언더독이었다. 그는 사울에게 쫓길 때 무뢰배를 모아 떠돌아다니면서 속된 말로 ‘삥’을 뜯곤 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그런 형편없는 자에게 야훼에 대한 믿음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필수 요소였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문제는 어떤 믿음이냐에 있다. 하느님이 군대나 무기를 통해 도와준다는 믿음과 그걸 갖지 못했으니 그냥 무턱대고 하느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믿음의 차이 말이다. 의지할 군대도 신뢰할 무기도 없어 기댈 데라곤 하느님의 도움 밖에 없는 자들의 처절한 생존본능, 다윗이 골리앗에게 무릿매와 돌멩이만 갖고 이겼다는 이야기를 후대에 전한 사람들에게 믿음은 이런 생존본능이었을 게다. 이 생존본능이 이 얘길 후대에 전하게 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중엔 변했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윗은 상당히 순진해 보인다. 그는 전쟁터의 이스라엘 군대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기댈 언덕이어야 할 맏형에겐 환영과 격려는커녕 핀잔과 꾸중만 들었다. 그를 골리앗과의 싸움에 내보낸 사울은 이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보다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그랬을 거다. 그런데 다윗이 이겼다. 그는 사울이 상습적으로 포상으로 내놓은 왕의 ‘사위’ 자리를 탐내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순진했다.

 

이랬던 다윗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해 보려고 노력 안 한 건 아닌데 아무리해도 그가 좋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다. 그의 고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읽지 않고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들은 좀 더 있어야 나온다. 몇 걸음만 더 나가 보자. 그러면 그의 고뇌가 조금씩 보일 터이니. 다음엔 왜 야훼가 다윗을 그토록 마음에 들어 했는지 살펴보자.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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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3)

 

다윗, 그는 악사인가 전사인가?

 

 

1.

 

이제 본격적으로 다윗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다윗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그는 구세주 예수의 조상이다. 마태복음 1장 1절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 7장 42절은 성경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이요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전하며, 로마서 1장 2-3절은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라고 적었고,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는 예수가 직접 나 예수는 나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교회들에 주는 이 모든 증언을 전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만하면 그 누구도 예수가 다윗의 후손임을 의심할 수 없다.

 

구약성서에는 특유의 탄생설화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 이삭, 에서와 야곱, 모세, 삼손, 사무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불임이던 어머니에게 태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모세의 경우는 어머니가 불임은 아니었지만 태어나자마자 파라오의 명령에 의해 죽을 뻔했다. 예수의 경우는 이 모든 경우의 종합이라고 할 만하다. 그의 어머니가 불임이 아니라 아기를 낳아서는 안 되는 처녀였다는 차이는 있지만 태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더욱이 그는 모세처럼 태어나자 곧 죽을 뻔했다. 그의 탄생시점을 기준으로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헤롯의 명령은 히브리인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조리 죽이라던 파라오의 명령과 비슷하다. 예수는 이삭, 야곱, 사무엘과도 같고 모세와도 같은 인물임을, 이 모두를 합쳤으니 누구보다 더 뛰어난 인물임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다윗에게는 탄생설화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토록 중요한 인물에게 탄생설화가 없을까? 물론 그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있을 만한 사람에게 없으니 왜 그럴까를 묻게 된다. 왜 그럴까? 왜 그에게는 탄생설화가 없을까? 그가 별로 중요치 않은 인물이어서는 아닐 게다. 그는 진정 중요한 인물이니 말이다.

 

룻기를 빼면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상 16장 13절(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야훼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로서 그 이후 그가 죽었음을 전하는 열왕기상 2장 10-11절(“다윗은 죽어서 그의 조상과 함께 ‘다윗 성’에 안장되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를 다스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까지 무려 마흔두 장에 걸쳐 전개된다. 이만하면 누가 봐도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 탄생설화가 없는 이유는 그의 집안이 워낙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말로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은 아니었던 거다. 탄생설화를 갖고 있는 인물은 개천에서 난 영웅이 많으니까.

 

 

 


<"Samuel anoints David, Dura Europos". Wikimedia Commons.>

 

다윗의 등장은 사울의 몰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울이 망하면서 다윗은 흥하기 시작했다. 사울이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다윗이 득세하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세례자 요한은 나사렛 예수의 등장을 목격하고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요한 3:26) 사울은 요한처럼 기꺼이 자기 자리를 내주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죽는 날까지 다윗을 한편으론 부러워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두려워했다. 다윗의 생애는 사울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는 나중에 얘기하고 여기선 둘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만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야훼는 사울을 왕으로 선택한 걸 ‘후회’한다고 했다(사무엘상 15:11). 그가 헤렘의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1장 참조). 사울은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렸지만 그걸로 야훼의 결심을 돌이키지는 못했다. 사무엘도 이 사태로 인해 괴로워했다니 야훼의 ‘후회’는 그에게도 반가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야훼는 괴로워하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냐? 너는 어서 뿔병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이미 그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 놓았다’”(사무엘상 16:1).

 

이게 무슨 말인가? 사울이 버젓이 왕좌에 앉아 있는데 야훼는 차기 대권을 거머쥘 사람을 점지해놨다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사무엘은 아무도 모르게(!), 특히 사울이 모르게 야훼가 점지해놓은 사람에게 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세우란 얘기다. 여기서 야훼에게 묻고 싶다. 왜 이렇게 했는가 하고 말이다. 왜 야훼는 먼저 사울을 왕좌에서 끌어내인 다음에 다윗을 즉위시키지 않았을까? 그게 더 자연스럽고 무리없는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다. 사울이 왕좌에 앉아 있는데 비밀리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면 둘이 싸울 건 안 봐도 뻔한데 왜 그랬을까? 사울을 폐위하고 다윗을 옹립하겠다는 결정은 야훼와 사무엘 사이에 지극히 사적으로 정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모르는 사람들 눈엔 다윗이 왕좌를 노리고 그가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여기지 않겠나 말이다. 왜 야훼는 이런 방법을 택했을까? 기회가 되면 왜 그랬는지 야훼에게 직접 묻고 싶은 정도다.

 

2.

 

사울 아닌 다른 사람을 왕으로 점지했다는 야훼의 말을 듣고 사무엘이 깜짝 놀라서(그런 말은 없지만 아마 그랬을 거다)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사무엘상 16:2)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게다. 사울이 멀쩡히 왕좌에 앉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왕으로 삼는다는 얘긴 곧 쿠데타를 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야훼의 입장에선 자기 의지가 모든 걸 좌우하니까 쿠데타니 뭐니 하는 게 무의미하겠지만 사람들 입장에선 어디 그런가, 이는 반역이고 쿠데타며 하극상이다. 야훼는 두려워하는 사무엘을 이해한다는 듯이 대비책을 주는데 그게 우릴 혼란스럽게 한다. 왜 그러냐고? 조금만 신경써서 읽으면 왠지 알 수 있다.

 

암소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야훼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말하고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그 제사에 초청하라는 게 야훼가 준 대비책이었다(16:2-3). 뜬금없이 왠 희생제사? 물론 희생제사를 드릴 수는 있지만 그것도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나? 희생제사를 드리겠단 말을 누구에게 하라는 건지부터 분명치 않다.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하라는 얘기 같은데 왜 그들에게 그 얘길 하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누가 물어봤나? 사무엘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베들레헴 주민이 아니라 사울과 그의 측근이 아닌가.

 

더 곤혹스런 점은 야훼가 사무엘더러 거짓말로 핑계를 대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야훼가 사무엘에게 거짓말하라고 시켰다! 희생제사 드리러 온 걸로 보이게 암소도 한 마리 끌고 가라고까지 했다. 반드시 속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아다시피 사무엘이 거기 온 목적은 희생제사 드리는 게 아니라 다윗(사무엘은 아직 이 이름도 모르지만)에게 기름부어 그를 왕으로 세우는 거였다. 희생제사 운운한 건 명백히 사람을 속이는 짓이었다. 텍스트는 희생제사를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사무엘 일행이 제사를 드리러 갔다고도 말하고, 다윗을 데려 오기 전에는 제물을 바치지 않겠다고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했지만 제사를 드렸다고 확실히 말하지는 않는다. 11절에서 사무엘이 그(다윗)가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제물을 바치지 않겠소.”라고 말했다고 새번역 성서는 번역했지만(11절) 원문대로 번역하면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앉지 않을 것이오(we will not sit down until he comes here).”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야훼가 거짓말하라고 시켰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고, 설사 제사를 드렸다고 해도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았으니 거짓말하라고 시킨 거나 마찬가지다. 안 그런가?

 

십계명에서 “거짓증언하지 말라”고 명령한 이는 다름아닌 야훼다. 여기서 ‘거짓증언’은 법정에서의 증언이나 맹세를 가리킨다지만 그렇다고 일상에서는 거짓말해도 된다는 얘긴 아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해도 비난받아 마땅한데 하물며 하느님이랴. 게다가 희생제사 드린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했으니…. 교회 다니기 전 초등학생 때 목사 아들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가끔 주일 아침에 남산 어린이회관에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는 교회 예배에 가지 않았다. 종일 어린이회관에서 놀고 저녁에 집에 오면 그 친구는 부모님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꾸중은 잠깐이고 즐겁게 노는 건 꽤 길었으니 부모님 꾸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는 내가 가잘 때마다 교회 빠지고 어린이회관에 갔다. 그땐 교회 안 다녀서 몰랐는데 나중에 내가 목사가 되고 부모가 되니 그때 친구 부모 맘을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그냥 거짓말도 그런데 희생제사를 드린다고 거짓말하라고 야훼가 시켰다니….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도착하니 그곳 장로들이 나와서 ‘떨면서’ 그에게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단다(4절). 그들은 사무엘을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적대감도 갖고 있는 걸로 느껴진다. 그들은 왜 사무엘이 두려웠고 적대감을 품고 있었을까? 좋은 일로 오는 것이냐는 질문은 또 뭔가 말이다. 마치 그가 올 때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성서 독자들에게 사무엘은 대체로 좋은 사람이요 신앙의 사람인데 그 시대엔 안 그랬나? 그는 나쁜 일을 몰고오는 두려운 사람이었을까? 사무엘이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척 궁금해지는데 텍스트는 이처럼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더 이상 말하지 않으니 우리로선 알 도리가 없다. 베들레헴 장로들은 사무엘이 여전히(!) 사울 편인지 궁금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겠다. 그가 여전히 사울 편이라면 유다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은 두려웠을 수 있다. 유다 지파에게 사울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사울은 북 이스라엘에 속한 베냐민 지파에 속했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관계는 구약성서의 이상화된(idealized) 서술과 달리 남남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 편이 아니더라도 두렵긴 매 한가지다. ‘무슨 꿍꿍이를 감추고 왔을까?’ 싶었을 테니 말이다. 무슨 음모를 꾸미는데 우릴 끌어들이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Walter Brueggemann, David’s Truth, 26).

 

장로들의 질문에 그는 좋은 일로 왔다고 대답한 뒤 이새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제사를 드리러 갔다. 사무엘은 그 중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 야훼가 기름 부어 왕으로 삼으려는 자가 그 아들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야훼는 그에게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야훼는 중심을 본다.”라고 말했다(7절). 그때는 ‘잘 생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거나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요즘 세태가 먹히지 않았던가 보다. 사무엘은 머쓱해서 뒷통수를 긁었겠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다 사무엘 앞에 섰지만 야훼의 승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남은 아들은 앙떼를 치러 들에 나가 있던 막내 다윗뿐이었다. 사무엘은 얼른 그를 불러오라고 지시한다. 그를 불러오기 전에는 앉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는 계속 서서 심사를 했나 보다. 드디어 그가 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고 한다(12절). 앞에서 야훼는 엘리압을 두고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설화자는 그런 야훼의 맘을 모르는지 여전히 외모 타령이다.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는 안 되고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은 괜찮았을까? 키는 상관없고 얼굴빛과 눈만 좋으면 됐을까? 그건 아니었을 거다. 야훼는 ‘중심’을 본다지 않았나! 여기서 ‘중심’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마음’ 또는 ‘심장’(heart)을 가리키는 ‘레바브’다. 히브리인들에게 ‘레브’ 또는 ‘레바브’는 감정 뿐 아니라 지성과 의지 모두의 자리로 여겨졌다(한스 발터 볼프, 문희석 역, 《구약성서의 인간학), 82-116). 그러니까 야훼는 사람의 외모를 보는 게 아니라 정신을 들여다본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런 야훼의 의지에 사무엘이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좌우간 그는 홍안의 소년이요 마음/심장을 야훼에게 내보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형들이 둘러서서 이를 목격하는 가운데 말이다. 그때 이후로 야훼의 영이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한다(13절, 새번역). ‘감동시켰다’라는 행위동사보다는 공동번역의 ‘머물렀다’라는 상태동사가 더 적합해 보인다.

 

3.

 

야훼의 영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갔을까? 바로 다음에 야훼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야훼가 보낸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미가야 예언자가 여호사밧 왕과 아합 왕에게 자기가 본 비전을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훼가 하늘 군대에 둘러싸인 가운데 누가 아합을 꾀어내어서 그로 길로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죽게 하겠느냐?”고 묻자 한 영(a spirit)이 나서서 자기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의 예언자들 입에 들어가 그들로 거짓말을 하게 해서 아합을 꾀어내겠다고 말한다. 야훼가 이에 동의하여(여기서도 야훼는 거짓말을 방조한다!) 그를 보냈단다. 이런 미가야의 말을 듣고 시드기야라는 자가 그의 뺨을 치면서 야훼의 영이 어떻게 나를 떠나 네게로 건너가서 말씀하시더냐?”라고 조롱했다(18-28절). 여기서 아합이 죽음으로써 미가야가 참 예언자로 밝혀지고 시드기야는 거짓 예언자로 판명된다. 시드기야의 메시지에 귀기울일 이유는 없지만 그의 생각은 흥미롭다. 야훼의 영이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는 대목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사울과 다윗에게도 일어난 모양이다. 야훼의 영은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 옮겨갔다. 그 빈자리를 ‘야훼가 보낸 악한 영’이 채웠는데 이 영은 사울 생전에 내개 그를 괴롭힌다. 이로써 사울이 저지른 ‘악행’의 책임소재가 모호해진다. 모든 게 야훼가 보낸 악한 영 때문이니 말이다.

 

 

 


<"Saul and David, by Rembrandt", Wikimedia Commons.>

 

사울이 악한 영 때문에 괴로워하자 신하들은 수금 잘 타는 사람을 들여서 악한 영이 왕을 덮칠 때마다 수금을 타게 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한다. 근래 들어 널리 활용되는 ‘음악치료’(music therapy)를 그 옛날에도 시행했던 걸까? 그건 아닌 것이, 그 시대에 음악은 단순히 오락이나 즐거움을 얻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음악에 주술적(magic)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음악에는 주술적인 힘, 곧 악한 영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던 거다(Robrt Anderson, “Music and Dance in Pharaonic Egypt,” in Jack M. Sasson et.al.ed.,Civilizations of the Ancient Near East [New York: Schribner, 1995], 2555-2568; Margaret Cool Root, “Music and Dance in Western Asia,” Ibid., 2615-2638). 사울은 단순히 불면증이나 신경쇠약에 시달렸던 게 아니다.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원인은 악한 영에 있다고 믿었던 거다. 수금 타는 사람으로 궁전에 들어온 다윗이 해야 했던 일은 신경 안정이 아니라 악령을 쫓아내는 주술사 역할이었다.

 

고대 중동에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막론하고 주술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주술사가 됐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들은 신내림 받은 무당처럼 타고난 주술사였을까? 그렇지 않다. 고대 중동의 주술사는 교육을 통해서 양성됐다.(J. F. Borghout, “Witchcraft, Magic, and Divination in Ancient Egypt,” in Jack M. Sasson et. al. ed., Ibid., 1775-1786; Walter Faber, “Witchcraft, Magic, and Divination in Ancient Mesopotamia,” Ibid., 1895-1910). 주술의 일종으로 수금을 타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금 타는 것도 배웠고 수금 타며 악령을 내쫓는 일도 배웠다. 다윗도 그랬을 개연성이 크다. 그냥 수금 타는 데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건 다윗이 언제, 어디서, 왜 주술로서 수금 타는 법을 배웠는가 하는 점이다. 구약성서 어디에도 이 궁금증을 풀 실마리가 없다. 그래서 구약성서 이야기의 역사성(historicity)에 회의적인 학자들은 악사로서의 다윗은 역사성이 약하다고 본다.

 

다윗이 수금 타고 노래했다는 데서 시편 대부분이 다윗의 작품이란 전통이 생겼다. 히브리어 구약성서(‘맛소라 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의 시편 가운데는 일흔세 편에 다윗 이름이 붙어 있는데 반해 그리스어 구약성서(칠십인역, LXX)에는 여든다섯 편이 그렇다. 칠십인역 성서가 만들어졌던 기원후 1세기까지도 각 시편 저자에 대한 견해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다윗의 시’라고 번역된 말의 히브리 원문은 ‘르 다빗’인데 히브리어 ‘르’는 ‘~에게’ ‘~위하여’ ‘~에 관하여’ ‘~에 속한’ 등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윗의 시편’이라는 말은 ‘다윗에게’ ‘다윗을 위하여’ ‘다윗에 관하여’ 등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이들 중에는 다윗의 생애에 일어난 특정 사건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시편도 있다. ‘다윗의 시’(르 다빗)라는 표제 다음에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한 뒤에 예언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 뉘우치고 지은 시”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시편 51편이 대표적이다.

 

학자들은 다윗이 시편의 저자라는 전통은 그를 제의(ritual)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묘사하는 역대기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실제 다윗이 음악에 대단한 소질이 있어서 시편들을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구약성서에서 보이라면 마땅히 보일 게 없다. 그가 수금 타는 사람으로 궁전에 채용됐다는 얘기에도 의심스런 점이 있고 시편이 다윗의 저작이란 주장도 지금은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한다. 확실한 점은 그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상태가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긴 사울을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다윗인데 그가 어떻게 사울을 고치겠나.

 

한편 다윗이 ‘전사’(warrior)로서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는 얘기는 ‘악사’(musician) 얘기보다는 역사적 신빙성이 높다고 말들 한다. 그는 악사였나, 전사였나? 아니면 둘 다였나?

 

수금을 타는 자가 도움이 되리라는 조언을 듣고 사울은 신하들에게 그런 사람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이에 한 신하가 베들레헴의 이새에게 그런 아들이 있다면서 그를 “수금을 잘 탈 뿐만 아니라 용사이며 용감한 군인이며 말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 사람인데다가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십니다.”(16:18)라고 소개했다. 수금 잘 타는 것과 용사나 용감한 군인이라는 것, 그리고 말 잘 하고 외모가 좋다는 점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직접 모른다 해도 세간의 평판에 근거해서 판단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것’이야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 점은 역사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신학적 진술이다. 여기엔 설화자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나 보다. 위의 여섯 가지는 앞으로 다윗의 생애에 나름 역할을 할 특성들이다. 그는 수금 타는 재주로 사울의 측근이 되어 권력에 다가갔고, 전쟁에 나가서 혁혁한 공로를 세움으로써 백성들의 인기를 누렸다. 그뿐인가, 그는 말도 잘 해서 외교로 대외문제를 풀기도 했다. 게다가 그가 백성의 인기를 독차지한 데는 전쟁에서의 공로뿐 아니라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란 점도 역할을 했으리라. 음악도 잘 하면서 싸움도 잘 하는 사람은 드문데 그가 그랬던가 보다. ‘용사’와 ‘용감한 군인’은 비슷한 말인데 왜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싸움을 잘 했다는 뜻일까?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결정적인 것은 ‘야훼가 그와 함께 했다’는 사실일 테니 말이다. 다윗 얘기를 읽어가면서 차차 분명해지겠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거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만날 때 ‘야훼가 그와 함께 했다’는 게 그것들을 푸는 열쇠인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하면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게 정말 답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야훼가 그와 함께 했다면 거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가 ‘야훼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면 왜 그런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그걸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못해 나중엔 ‘짜증’이 난다는 얘기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왕궁에 채용됐는데 가서 보니 사울이 그를 맘에 들어 했고 심지어 ‘사랑’하게 되어(히브리어로 ‘아하브’란 동사가 쓰였다) 그에게 자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중책을 맡겼다고 했다. 그 후 사울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서 그가 자기 맘에 드니 자기 시중을 들게 하겠다고 전했단다. ‘인턴’ 기간 동안 일을 잘 해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셈이라 할까….

 

다윗 하면 ‘목자’(shepard), ‘목자’ 하면 당연히 다윗이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엘이 그를 찾았을 때와 사울이 사람을 보냈을 때 모두 그는 양떼를 치고 있었다(15:11, 19). 그래서 그는 목자라는 건데, 이새의 막내아들로서 미혼인 그는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았으니 직업이 목자였다기보다는 아버지의 분부를 받아 양떼를 쳤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런데 ‘목자’ 하면 다윗을 떠올리는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다. 결정적인 건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이 다윗의 시편이라는 데 있다. 다윗 얘기에서 목자에 대한 언급은 사무엘상 16장 11절과 19절, 17장 15절, 28절, 34절, 40절, 그리고 사무엘하 5장 2절과 7장 8절 등에 등장하고 이 모두 다윗을 가리키긴 하지만 말이다.

 

다윗을 ‘목자’라고 부른다고 문제될 건 없다. 목자 노릇을 하긴 했으니까. 그런데 구약성서에서 ‘목자’라는 말에는 단순히 양떼를 치는 직업 이상의 의미, 곧 ‘지도자’ 또는 ‘영도자’나 ‘왕’이란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학자들이 다윗의 직업이 목자라는 데 의문을 품거나 양떼를 치는 사람이란 의미 이상을 끌어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곧 그가 목자였다는 데는 그 이상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거다. 그런 뜻에서 사무엘하 5장 2절은 인용할 만하다. 거기서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자들이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와서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야훼께서 ‘네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바로 임금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명백히 왕을 가리킨다.

 

구약성서에서 ‘목자’가 ‘지도자’ 또는 ‘왕’을 가리키는 구절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제 역할을 못한 목자/지도자/왕을 심판하는 에스겔 34장이 그렇다.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나 야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목자가 없기 때문에 양떼가 흩어져서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1-5절).

 

여기서 명백히 목자는 지도자나 왕을, 양떼는 백성을 가리킨다. 곧 목자와 양은 은유적 표현인데 이와 비슷한 표현이 미가 5장 2-3절과 스가랴 13장에도 등장한다.

 

4.

 

사무엘상 16장에 전해지는 얘기에는 찾아야 할 몇 개의 퍼즐 조각이 있다. 우선 사무엘은 야훼가 사울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했는데 그 이유가 뭔지 분명치 않다. 자기는 늙었지 자식들은 제멋대로지 제 손으로 왕으로 세운 사울과는 권력투쟁 중이지, 게다가 그렇게 세운 사울을 버려야 하는 처지였기에 괴로웠을까? 아쉽게도 이 퍼즐 조각은 결국 찾지 못했다.

 

다윗은 이렇게 세상이 등장했다. 베들레헴에 살던 이새의 막내 여덟 번째 아들(역대기에는 일곱 번째 아들로 되어 있다)로서 들에서 양떼를 치다가 사무엘에게 불려가서 영문도 모른채 슬그러미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 사울 왕의 부름을 받아 주술가로서 수금 타면서 악한 영에 시달리던 사울을 돕는 직책을 맡아 세상에 등장했던 거다.

 

다윗이 수금 타는 악사로 사울의 궁전에 들어온 것은 그가 악한 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곧 그는 불면이나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사울에게 잠을 부르는 수면제같이 부드러운 음악을 연주하러 궁전에 들어온 게 아니다. 그는 수금 타는 주술사로서 악령을 몰아내는 미션을 갖고 들어온 거였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나! 야훼의 영이 떠나고 빈자리를 채운 악한 영(역시 야훼가 보낸)과 싸우기 위해서 야훼의 영을 새로 받은 다윗을 사울이 채용했다니 말이다. 사울이 왜 다윗을 그토록 좋아했고 ‘사랑’하기까지 했는지 이로써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그에겐 야훼의 영이 머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야훼가 ‘중심(심장)을 보고’ 선택한 다윗, 야훼의 영이 머물던 다윗과 역시 야훼가 사울에게 보낸 악한 영과 싸우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만 말이다. 야훼의 영끼리 싸우는 상황, 이상하지 않은가?

 

전사로서 다윗에 대한 얘기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시작되므로 그 퍼즐조각 찾는 일은 다음 장의 과제가 되겠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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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1)

 

여는 글 - 다윗 이야기의 처음과 끝, 미갈

 

 

편집자 주/지난번에 실린 첫 회 “사무엘, 양다리 걸치다”는 다윗 이야기의 두 번째 글이었습니다. 이번 첫 글을 읽어보시면 앞으로 ‘다윗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1.

 

그녀를 박복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팔자가 드세다고 해야 할까. 사울의 둘째 딸이자 다윗의 두 번째 아내였던 미갈 말이다. 다윗에 대한 얘기를 왜 느닷없이 미갈에 관한 에피소드로 시작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다윗 이야기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미갈이 처음 등장하는 때는 사울의 자녀들을 소개하는 사무엘상 14장 49절이다(이하 책 이름이 지칭되지 않으면 모두 <사무엘상>의 인용이다). “사울에게는 요나단과 리스위와 말기수아라는 아들이 있었다. 딸도 둘이 있었는데 큰 딸의 이름은 메랍이고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다.” 여긴 그녀 가족관계와 이름 정도가 소개됐지만 독자들은 사울에게 미갈이란 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얘기가 전개되면서 그녀는 자존감이 세고 지혜로우면서 용기까지 갖춘 뛰어난 인물임이 밝혀진다. 그녀는 왕인 아버지의 뜻을 어겨가면서 남편 다윗의 생명을 구해줬고 유다의 왕이 되어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다윗을 비난해 마지않았던 주관이 강한 사람이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한 데는 사무엘상 18장 20절이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였다. 누군가가 이것을 사울에게 알리니 사울은 잘 된 일이라고 여기고…” 성서에서 ‘사랑’이란 뜻을 가진 동사 ‘아하브’는 이삭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삭은 리브가와 음식을 ‘사랑했다’(창세기 24:67; 27:4, 9, 14). 이삭이란 남자가 리브가란 아내를 사랑했다는 건 있음직한 얘기, 아니 당연한 얘기다. 옛날이라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게 대단한 일이겠나.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여자인 미갈이 남자인 다윗을 사랑했다니 말이다. 옛날엔 이런 일이 흔치 않았다. 그녀는 사랑을 겉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아버지 사울도 이 사실을 알았다니 말이다(18:20). 여기서도 그녀가 자존감 강하고 활달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뭘 보고 다윗을 사랑했는지, 그에 대해서 얼마나 알았는지 우린 모른다. 다윗이 사울의 신하였으니 이래저래 그를 볼 기회가 있었을 테고 그러다 사랑이 싹텄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땐 이미 다윗이 사울의 질투와 미움을 받는 처지였으니 이를 어쩌란 말이냐. 사울이 창을 던져 그를 죽이려 한 적도 있었다(18:6-11). 하느님이 보낸 악한 영에 짓눌려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랬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사랑하는 게 가능했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는 모든 걸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다고 봐야 할 게다. 안 그런가? 그럼 다윗은 어땠을까? 다윗도 그녀를 사랑했을까? ‘죽도록’까진 아니더라도 미갈을 사랑하긴 했을까? 차차 드러나지만 다윗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냥 그녀가 필요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결혼한 후 얼마동안 헤어져 있다가 다시 합쳤는데 그 와중에도 다윗이 미갈을 사랑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녀가 정치적으로 필요했을 따름이다. 다윗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그 여부는 텍스트를 차차 읽어가면서 확인해보자.

 

2.

 

본래는 미갈이 아니라 언니 메랍이 다윗의 아내가 될 뻔했다. 사울이 다윗에게 블레셋과 싸워 이기면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다. 그는 왕의 사위 자리를 미끼로 골칫거리 다윗을 블레셋 사람 손을 빌려 죽이려 했다. 하지만 사울은 메랍을 다윗 아닌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의 아내로 줬단다(18:19). 자기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거다. 다윗이 메랍의 남편 되는 걸 원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사울의 약속 파괴에 대한 다윗의 반응도 전해지지 않는다.

 

사울은 한 번 약속을 어겼으면서도 같은 약속을 또 했다. 이번엔 구체적인 내용을 덧붙여서 말이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지 알고 그걸 이용해서 그를 죽이려 했던 거다. 다윗이 미갈을 사랑하는지 여부는 사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 주제에 공주가 사랑한다면 감지덕지해야 했을까? 그는 신하들에게 왕의 사위 되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다윗을 회유하라고 시켰지만 다윗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임금님의 사위가 되겠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로 보입니까?”(18:23)라는 자못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이 말의 진의는 의심을 받을만하다. 그는 결코 ‘가난하고 천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베들레헴의 유력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다. 그의 집안이 사울 집안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다윗은 이렇게 짐짓 겸손한 태도를 보였을까? 그의 겸손은 진심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사울이 아니었다. 자기 딸의 사랑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윗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울은 결혼선물로 블레셋 사람들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라고 제안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결혼선물이 아닌가 싶다. 사울은 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윗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제안을 받고 다윗의 전투본능이 치솟았나 보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 양피를 무려 2백 개나 갖고 왔단다. 그가 양피를 가득 담은 보따리를 사울 앞에 내놓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신하들이 그걸 하나하나 셌을까? 웃을 수도 없고 안 웃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어쨌든 다윗과 미갈은 그렇게 결혼했다. 사울은 분노로 속이 까맣게 탔겠지만.

 

사울의 정신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사위가 된 다윗을 공개적으로 죽이겠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19:1). 하지만 다윗에겐 절친 요나단이 있었다. 사울의 맏아들 요나단은 왕위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단다. 그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마다 나타나 그를 구해주곤 했다. 그의 손길이 못 미칠 때도 있긴 했다. 사울이 수금 타던 다윗에게 갑자기 창을 던져 죽이려 했던 때처럼 말이다. 다윗은 가까스로 이를 피해 목숨을 건졌지만 사울은 분이 안 풀렸던지 그날 밤 부하들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서 그를 죽이라고 했다. 다윗의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는데 이때 미갈이 나서서 그를 구해준다. 다윗을 사랑한 것 말고는 존재감이 전혀 없던 그녀가 기지를 발휘해 남편을 구해준 거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홀로 남게 될지 몰랐을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낼 걸 미갈이 어떻게 알았을까? 왕궁에 첩자를 심어놨을까? 좌우간 그녀는 사울의 계획을 미리 알고 그날 밤 다윗을 탈출시켰다. 그러고는 침대에 테라빔을 갖다 뉘어놓고 머리에 염소 털로 짠 망을 뒤집어씌우고 옷을 입혀놓아서 다윗인 것처럼 꾸몄단다. 그게 들통 나서 사울은 딸 미갈에게 호통 쳤지만 미갈은 전혀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가 그러지 않았으면 남편이 아버지 손에 죽었을 거라고 말했단다. 요즘도 보기 드물게 당당한 여장부 아닌가. 이런 여자를 왜 다윗은 사랑하지 않았나 싶다. 그가 싫어하는 타입이었을까?

 

이렇게 다윗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사울은 그를 죽이려 끈질기게 쫓았지만 그가 블레셋 지역에 몸을 숨기자 더 이상 쫓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블레셋 땅에는 사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다윗과 블레셋, 또한 블레셋과 사울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점인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상세히 얘기하겠다. 이렇게 해서 다윗과 미갈은 ‘이산가족’이 됐다. 사울은 딸이 청상과부 신세가 된 게 불쌍했던지 그녀를 갈림 사람 라이스의 아들 발디의 아내로 준다(25:44). 아버지에 맞서서 남편의 목숨을 구했던 미갈은 타의로 못 보던 남자의 아내가 된 거다. 그녀의 팔자가 참으로 기구하다고 말한 게 이 때문이다.

 

3.

 

그 후 세월이 흘렀고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사울이 죽고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 다윗도 우여곡절 끝에 유다 왕이 됐다. 미갈의 오라비 이스보셋은 허수아비에 가까운 허약한 왕이었고 실권은 사울의 군사령관이던 아브넬이 쥐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에선지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했다(사무엘하 3:7, 이하 책 이름이 지칭되지 않으면 모두 <사무엘하>의 인용이다). 그것은 왕위 찬탈의 의지를 드러낸 행위였으니 아무리 허약한 왕이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이스보셋은 아브넬에게 항의했단다. 그가 항의에 그친 건 그의 왕권이 그만큼 허약했기 때문이다. 안 그랬다면 아브넬을 죽였을 터이다. 왕의 항의를 듣고 아브넬은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냈는데 왕은 그가 두려워서 한 마디도 못했단다. 이스보셋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워낙 무능해서….

 

왕의 항의가 기분 나빴던지 아니면 자기 위치를 더 공고히 하고 싶었던지 아브넬은 다윗과 협상에 나섰다. 그는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 나라가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니 임금님이 저와 언약만 세우시면 내가 임금님의 편이 되어서 온 이스라엘이 임금님에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3:12)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실권은 아브넬 손에 있었다는 얘기다. 다윗은 이 제안을 어떻게 여겼을까? 그는 뜻밖의 역제안을 한다. 과거 자기 아내였다가 사울에 의해 발디의 아내로 살아온 미갈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제안한 거다. “좋소! 내가 그대와 언약을 세우겠소. 그런데 나는 그대에게 한 가지만 요구하겠소. 그대는 나를 만나러 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볼 생각을 하지 마시오”(3:13). 매사 불여튼튼이라고 그는 이스보셋에게도 같은 전갈을 보냈다. “나의 아내 미갈을 돌려주시오. 미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바치고 얻은 아내요”(3:14). 앞에선 2백 개였는데 여기선 1백 개가 됐다. 어느 게 맞는 말이야?

 

그는 왜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미갈을 보내라고 했을까? 다윗은 원하는 여자는 모두 차지했다. 남의 아내였던 밧세바까지 차지하지 않았나. 그녀의 남편을 죽여 가면서까지 말이다. 이런 그가 남의 여자가 된 미갈을 왜 불러들였을까? 미갈은 다윗을 (한때) 사랑했지만 다윗은 미갈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럼 왜? 그건 다윗이 미갈과 처음 결혼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전에 왕이 되기 위해 왕의 사위라는 지위가 필요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사울의 사위 지위를 되찾는 게 필요하다고 봤던 거다. 이스보셋은 누이 미갈을 불러들인다. 그녀의 남편 발디(3장 15절의 ‘발디엘’은 ‘발디’의 변형이다. 성서엔 이런 예가 드물지 않다)는 울면서 바후림까지 따라왔는데 이를 보다 못해 아브넬이 그를 돌려보냈다고 한다(3:16). 다윗 이야기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라 할 만하다. 미갈과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다가 정치상황이 변했다고 아내와 강제로 헤어지게 되니까 헤어지기 싫어서 먼 길을 울면서 따라왔다는 발디가 측은하기 짝이 없다. 이를 생각하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른 후 나단에게 비판받은 후 다윗이 뉘우치며 썼다는 시편 51편이 달리 읽힐 정도다. 이렇게 미갈은 다윗에게 돌아왔다. 그 후로 그들은 사랑을 회복했을까? 미갈에게 다윗은 전처럼 사랑스러웠을까? 과연 그랬을까?

 

4.

 

미갈 얘기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때는 야훼의 궤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다(6:1-23). 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다윗은 “모시로 만든 에봇만 걸치고 야훼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었다”(6:14). “다윗과 온 이스라엘 가문은 환호성을 올리고 나팔 소리가 우렁찬 가운데”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 이때 미갈은 창밖으로 그 광경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왕이 야훼 앞에서 춤추는 걸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단다. 그녀가 다윗에게 핀잔을 준 얘기를 설화자는 이렇게 전한다.

 

다윗이 자기의 집안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궁전으로 돌아가니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맞으러 나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윗이 미갈에게 대답하였다. “그렇소. 내가 야훼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야훼께서는 그대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이 있는데도 그들을 마다하시고 나를 뽑으셔서 야훼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 주셨소. 그러니 나는 야훼를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야훼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야훼를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그래도 그대가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 이런 일 때문에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6:20-23).

 

우선 설화자가 그녀는 ‘사울의 딸’이라고 부르는 게 눈에 띤다. 둘째 아내이긴 하지만 그녀는 다윗의 아내가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설화자는 굳이 그녀를 ‘사울의 딸’이라고 부르니 이게 웬일인가? 그녀에게는 왕비 자격이 없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왜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까? 하지만 자기를 뭐라고 부르든 그녀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아버지 손에서 건져낸 그녀가 아니던가. 다윗을 빼돌렸을 때 그녀는 목숨을 걸었다. 이런 그녀였기에 다윗이 한 엉뚱한 행위를 그냥 넘기지 못했던 모양이다.

 

정작 자기를 불러들이고는 모른 척해서 화가 났을까? 다윗이 자긴 안 찾고 다른 왕비들과 후궁들만 찾아서 질투가 폭발했을까? 아니면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들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고 경박하게 춤을 춰서 창피했을까? 그가 자길 찾아주지 않았기에 그게 더 화를 돋웠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그녀의 말에서 그 어떤 잘못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못할 말을 했나? 다윗의 행위는 왕이 아니라도 핀잔 들을 만한 창피한 짓 아닌가? 하지만 다윗은 이를 묘하게 받아친다. 자기는 야훼를 찬양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뻐 뛰며 춤을 출 뿐 아니라 그 이상도 하겠다고 말이다.

미갈이 다윗에게 핀잔을 준 건 그가 춤을 췄기 때문이 아니라 ‘하체를 드러내고’ 춤을 췄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는 춤추는 걸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은커녕 권장한다. 시편은 기뻐 뛰며 소구 치며 춤추며 야훼를 찬양하라고 말한다. “춤을 추면서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소구 치며 춤을 추면서 노래하여라”(시편 149:3). “소구 치며 춤추면서 야훼를 찬양하고 현금을 뜯고 피리 불면서 야훼를 찬양하여라”(시편 150:4).

 

‘사울의 딸’ 미갈은 그 일 때문에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단다. 설화자는 이 일 때문에 야훼가 그녀의 태를 닫아서 자식을 못 낳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다윗이 그녀를 찾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불임이었을까? 그게 아니라 다윗이 그녀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그 일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다윗은 살아 있는 사울의 후손은 다 죽이려 했고 앞으로도 그와 관련된 아이가 태어나는 걸 적극적으로 막았다. 이것도 그런 경우다. 미갈이 사울의 딸이니 만일 그녀와 다윗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는 사울의 외손자가 되어 왕위 계승 질서를 흩트릴 테니 말이다. 다윗은 그걸 막으려 했던 거다. 참으로 똑똑하고도 주도면밀하지 않은가.

 

5.

 

서두에서부터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미갈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 에피소드가 다윗 이야기의 전체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윗은 입체적인 인물이다. 단순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특징이 있지만 그게 그를 다 설명하진 못한다. 다양한 모습들이 얽히고설켜서 한 사람의 성격을 이룬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서 진솔하고 진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본다. 예컨대 사무엘 테리언(Samuel Terrien)은 “다윗의 순수한 신앙은 현시대가 간과하는 유려함이 돋보인다.”고 말했다(Samuel Terrien, The Elusive Presence: Toward a New Biblical Theology [New York: Harper & Row 1979], 282). 존 멕켄지에게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온갖 나쁜 짓을 다 한 악당’이다. 그는 다윗을 “피에 굶주린 섹스광 부랑자”로 묘사했다(John McKenzie, The Old Testament without Illusion [Chicago: Thomas More Press, 1979], 236). 누군 맞고 누군 틀리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에겐 이 모든 면이 다 있으니 말이다.

 

다윗은 진지하고 솔직하다. 그는 솔직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하고 그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한 사람이다. 그는 하느님을 믿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시대의 아들이었으므로 그 시대 사람들이 믿는 식으로 하느님을 믿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좋은 신앙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쁜 신앙 또는 불신앙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결과가 좋으면 잘 믿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는 말이다. 다윗은 결과적으로 왕이 됐으므로 좋은 신앙인으로 인정받은 경우다.

 

다윗은 자기 신앙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놀랄 일 아닌가. 신앙의 모범으로 알려진 그가 자기 신앙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니 말이다. 그는 신앙이 없어 보이는 행동을 자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앙의 화신으로 보이는 것은 설화자 덕분이다. 설화자가 그를 그렇게 그리기 때문이다. ‘참회하는 다윗’이란 인상도 그렇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썼다고 믿어져왔다. 표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 시는 대표적인 참회시다. 이걸 읽고 눈물 흘리며 참회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덕분에 그는 참회할 줄 아는 신앙인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이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그게 다윗의 전부는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진실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욕망 덩어리도 아니었다. 그는 그 시대에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는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그걸 움켜줬던 사람이었다.

 

다윗의 생애를 전하는 <사무엘서>는 그를 매우 우호적으로 그린다. 오죽하면 헤럴드 불름(Harold Bloom)이 야훼를 ‘다윗과 사랑에 빠진 신’이라고 불렀겠는가(“Yahweh is the God who fell in love with David,” Harold Bloom and David Rosenberg, The Book of J [Grove Weidenfeld, 1990], 242). <사무엘서>가 그의 흠결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 경우도 있긴 하다. 밧세바와의 불륜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 얘길 읽어보면 그 사건 후에 썼다는 시편 51편 참회시의 감동이 반감될 정도다. <사무엘서>가 전체적으론 다윗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우호적이지만 말이다. 월터 브뤼그만은 다윗 이야기의 목적을 ‘정당화’(legitimation), ‘변명’(apology), ‘찬양’(glorification), 그리고 ‘정치선전’(propaganda)으로 정리한다(Walter Brueggemann, David’s Truth in Israel’s Imagination and Memory [Philadelphia: Fortress, 1985], 20). 이 점을 감안하지 않고 다윗 이야기를 읽는다면 우린 다윗에 대한 현대판 ‘신화’를 만드는 게 될 것이다. 다윗에 대한 ‘신화’는 이미 충분히 많다. 우선 구약성서가 그렇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공히 그는 신화적 인물에 가깝다. 무엇보다 구세주가 다윗의 후손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윗 이야기를 읽으면서, 특별히 설화자가 그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는 대목을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왜 그렇게 적었을까? 왜 그렇게 평가할까? 그 근거는 뭘까? 이런 질문들 말이다.

 

동시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첫째로 다윗 이야기는 한 언더독이 왕이 된 얘기다. 출신배경만 보면 다윗은 결코 밑바닥 사람이 아니다. 이새는 베들레헴의 유력자였고 다윗은 그런 이새의 막내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나락까지 떨어졌던 사람이다.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무뢰배로 살았던 적도 있고 원수 블레셋의 용병으로 연명했던 적도 있었다. 누가 이런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품었을까? 그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가까스로 연명했던 사람들이 아니었겠나.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진 그런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를 품고 그를 응원했을 개연성이 크다. 그가 왕이 된 이후론 달라진 그의 행태에 실망해서 등을 돌렸을 수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다윗과 주변 인물들의 사회적인 배경을 감안하고 다윗 이야기를 읽으려 한다.

 

둘째로 우리가 갖고 있는 다윗 이야기의 궁극적인 목적이 뭔지 따져가면서 읽어야 한다. 현재 우리 앞에 있는 다윗 이야기의 목적은 ‘역사적 다윗’(historical David)을 전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보기엔 ‘신화적’ 요소가 너무 많이 섞여 있다. 그럼 다윗 이야기는 그를 신화로 치장해서 이상적인 왕으로 그리는 게 목적일까? 정말 그럴까? 그런 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게 전부인가 말이다. 그걸 넘어서는 신학적 진실(theological truth)을 전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이 얘기가 다윗이란 인물의 이상화 또는 신화화에 그친다면, 곧 시대에 필요한 신학적 진실을, 나아가서 시대를 초월하는 신학적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게 과연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을까? 거기엔 분명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는 신앙적, 신학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 얘기와 씨름하고 있는 거다. 안 그런가? 우리가 다윗 이야기를 읽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 신학적 진실을 찾아내는 데 있다.

 

다윗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시작해서 <열왕기하>에서 끝나는 ‘신명기 역사서’(Deuteronomistic History, 줄여서 Dtr. 또는 DtrH.)의 일부다. 신명기 역사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부터 유다가 바빌론에 멸망했을 때까지 역사를 <신명기>에 전해지는 야훼의 계명이란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그 기간에 많은 왕들이 왔다갔지만 가장 중요한 왕이 다윗임을 두말하면 잔소리다. 모든 유다 왕들은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았다. 다윗의 길을 따랐는지 따르지 않았는지로 평가됐던 거다.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는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이렇듯 중요한 인물이다 보니 역사적 다윗에 많은 요소들이 덧붙여져서 신화적 인물이 만들어졌던 거다. 그래서 지금은 다윗이 누군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과거에 유행했다가 잠시 뜸했지만 지금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연구라는 게 있다. 예수에 대한 신화적 진술을 모두 거둬내고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 치하의 팔레스타인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연구하는 게 역사적 예수 연구다. 이 책은 다윗 이야기의 신학적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적 다윗이 누군지를 염두에 두고 그의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찾는 일도 어려운데 역사적 다윗 연구는 오죽하겠는가. 그것은 역사적 예수 연구보다 훨씬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게다가 구약성서 밖에는 그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무하다. ‘텔 단 석비’(Tel Dan Stele)와 ‘메샤 석비’(Mesha Stele), 그리고 ‘쇼생크 부조’(Shoshenq Relief) 등에 ‘다윗’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너무 단편적이어서 그것만 갖곤 다윗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없다. 다윗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구약성서, 그 중에 <사무엘서>와 <시편>, 그리고 <역대기서>가 전부다. 그나마 <시편>과 <역대기서>는 <사무엘서>보다 역사적 다윗에게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의외로 <역대기서>가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그 책은 다윗에게 불리한 얘기는 가급적 전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다윗이 사울을 섬긴 일, 그가 광야로 도망친 일, 나발을 죽이고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은 일, 블레셋에 몸을 의탁한 일, 밧세바와의 불륜사건과 우리야를 죽인 일, 암논의 죽음과 압살롬의 반역사건, 아도니야와 솔로몬의 갈등 등을 이 책은 전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다윗에 대해 뭘 전하나 싶은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역사적 다윗을 알기 위해서는 <사무엘서>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본격적인 학문적 연구서가 아니다. 내용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형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서 전체적인 그림을 만들어가듯 다윗이 누군지를 찾아가려 한다. 다윗 이야기가 전하려는 신학적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그 다음 일이다. 다윗이 누군지를 규명하고 그의 이야기가 전하려는 신학적 진실을 밝혀내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거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다. 다윗 얘기는 열왕기상 2장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열왕기서>도 일부 읽어야 한다. 성서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은 성서인데 이걸 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를 포함해서 성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성서에 ‘관한’ 책은 열심히 읽는데 성서 ‘그 자체’는 별로 안 읽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성서에 있다. 가끔 그게 쉽게 눈에 띠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성서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이른바 ‘close reading’이란 것 말이다. 나는 성서를 읽으면서 다윗이 누군지 알게 됐고 그 얘기가 전하는 신학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거기서 얻은 정보를 정리하고 틀을 갖출 수 있게 해준 책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 몇 권만 들어보겠다.

 

Robert Alter, The Art of Biblical Narrative (Basic Books, 1981)

Joel Baden, The Historical David: The Real Life of an Invented Hero (New York:

HarperOne, 2013)

Randall Bailey, David in Love and War: The Pursuit of Power in 2 Samuel 10-

12 (Sheffield: JSOT, 1990)

Adele Berlin, Poetics and Interpretation of Biblical Narrative (Winnona Lake:

Eisenbrauns, 1994)

Walter Brueggemann, David’s Truth in Israel’s Imagination and Memory

(Philadelphia: Fortress, 1985)

David Gunn, The Story of King David: Genre and Interpretation (Sheffield:

JSOT, 1978)

Baruch Halperin, David’s Secret Demons: Messiah, Murderer, Traitor, King

(Grand Rapids: Eerdmans, 2001)

Gwilym Jones, The Nathan Narratives (Sheffield: JSOT, 1990)

Jonathan Kirsch, King David: The Real Life of the Man Who Ruled Israel (New

York: Ballantine Books, 2000)

Sol Liptzin, Biblical Themes in World Literature (New Jersey: KTAV Publishing

House, 1985)

Steven L. 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Tryggve N. D. Mettinger, King and Messiah: The Civil and Sacral Legitimation

of the Israelite Kings (Lund: Gleerup, 1976)

Leonhard Rost,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of David: Historic Texts and

Interpreters in Biblical Scholarship. tran. David Gunn (Sheffield:

Almond Press, 1982)

Martin J. Steussy, David (Columbia: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99)

Phyllis Trible, Texts of Terror (Philadelphia: Fortress, 1984)

 

이 밖에도 참고한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꼭 필요할 때만 본문 중에 밝히겠다. 이 책에서 인용된 성서는 <새번역>인데 ‘주’를 ‘야훼’로,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바꾸었다. 유대인도 아닌데 굳이 ‘야훼’라는 이름을 피할 이유가 없고, 개신교 밖에서는 모두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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