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4)

 

김광석 21주기, 그 노래 그 사람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로 시작되는 그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젖어들게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도 그의 이 노래는 마치 우리 모두가 함께 통과해온 시간들에 대한 깊은 추억처럼 남게 됩니다. 그의 특이하게 애조 띤 목소리와 아무런 꾸밈없이 말하듯 다가오는 가사, 그리고 소박한 풍경화 같은 곡들은 한 시대의 눈물과 사랑을 일깨운 것입니다.

 

“김광석” 우리 노래의 역사 속에서 너무도 일찍 아쉽게 사라진 하나의 별 같은 존재. 그의 21주기가 바로 오늘입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배우 송강호가 북한 인민군 장교로 나와, 남한 군과 어울려 이 노래를 듣다가 “광석이 갸는 와 길케 일찍 갔네?”하고 난데없이 슬프게 읊조릴 때 관객들은 모두 그 말에 하나가 되고 맙니다. <이등병의 편지> 마지막의 “이제 다시 시작하자 젊은 날의 꿈이여”가 열창되는 순간, 어느 누구의 청춘도 결국 남루해지지 않게 됩니다.

 

 

 

 

그의 노래 <내 사람이여>는 이런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 줄 수 있다면/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 줄 수 있다면/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음 눈물이 고운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김광석”은 그렇게 자신의 시와 노래와 눈물, 그리고 사랑이 그득히 담겨 있는 영혼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났습니다. 1964년 생으로 1996년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으니 겨우 서른넷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였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아 인생을 좀더 맑게 살아야겠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지내야겠구나, 이 세상에 사랑해야 할 것이 이리도 많은데, 라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입에서 창과 칼이 뿜어져 나오는 가시 돋친 설전에 익숙해가고, 침략자를 닮은 눈매를 따라 배우며 날이 갈수록 초라해져가는 영혼의 실상에 눈이 멀어가는 그런 시대를 어루만지며, 조용한 음성으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진 한 청년 예술가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이 세월이 살만한 보람이 있는 듯싶습니다. 무대 위에서 잠시 객석을 흥분시키며 난무하는 춤은 있으나 오래도록 기억되어 따스한 피로 흐르는 몸짓은 보기 드물고, 열광하는 인기에 스스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 역시 많으나 시간이 갈수록 도리어 뚜렷해지는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는 이는 또한 흔하지 않습니다.

 

노래 <내 사람이여>에는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내가 너의 사랑이 될 수 있다면, 이름 없는 한 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 주겠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그는 지금 자신의 시를 들려주는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되어 우리 곁을 날아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받고 비틀거리며 아파하는 이들 모두에게 그의 노래가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는 그런 신비스러운 진동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좋은 노래가 살아있는 마을은 결코 황폐해지지 않습니다. 그 노래를 기억하고 부르는 이들이 많을 때 세월은 우리를 속이거나 배반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 때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우린, 웅크리고 숨을 죽이다가 그냥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일은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 젊은 날의 꿈이여”라는 그 애절한 열창이 못내 귀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4)

 

소리의 자본주의

 

요시미 순야(吉見俊哉)라는 일본의 문화 사회학자가 쓴 <소리의 자본주의>는 전화로부터 시작해서 라디오나 축음기에 이르는 사회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제목이 <소리의 자본주의>라고 붙은 것을 봐도, 저자의 인식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소리가 돈벌이가 되어가는 현실을 보여준 셈이었습니다.

전화나 라디오, 그리고 축음기는 다만 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하나의 사업이 되고 또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통신과 대중문화를 누가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화가 애초에 라디오 중계의 전신의 단계를 거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전화는 통신수단으로서 확대되어가기 전에 이미 오락적 요소로 그 기능을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88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의 경우, 그 안의 두 곳에 테아트르 폰이라고 하는 전화가 놓여 있었고 이 전화기를 통해 박람회장 안의 오페라나 공연 같은 것을 그대로 실황으로 들을 수 있게 해놓았던 것입니다.

 

 



어떤 극장의 주인은, 자신의 별장까지 전화선을 끌어 극장 안의 분위기나 반응도 이런 식으로 점검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라디오에서 전화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방식은 이런 과거의 모습과 사실 그리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도 전화로 중계하는 경우도 생겨났고, 드디어 선거에도 그 결과를 놓고 바로 이 전화 중계가 한 몫을 하게끔 되기조차 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전화 교환수의 목소리는 규격화되어갔고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라디오 역시 그곳에 쓰이는 목소리는 어떤 틀 속에 정형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라디오 특유의 것으로 그 모습을 자리잡아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권력의 요구나 자본의 이해관계와 서로 어우러지면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주체화하기 보다는, 점점 그 규격화된 소리에 그대로 일률적으로 따라 가는, 그래서 행동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소리는 이제 권력의 도구가 되었고 자본의 상품이 되어간 것이었습니다. 파시즘이 이 라디오를 선전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고, 따라서 이 소리들은 모두 “국가의 소리”가 되었으며, 또한 자본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군악대의 연주가 되어갔습니다.

결국 소리는 권력과 자본의 주도권 쟁탈의 목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의 소리가 가장 많이 울려 퍼지도록 하는가, 어떤 소리를 침묵시킬 것인가, 그리고 때로 어떤 소리는 왜곡되도록 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지금껏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소리의 자본주의> 체제 안의 현실입니다.

돈과 권력이 될 수 있는 소리와, 그렇지 못한 소리의 구별은 미디어 저널리즘의 일차적 원칙이 되어가고 있기조차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전쟁을 막고, 흔들리는 평화를 일으켜 세우며 진실을 밝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과 정의가 강처럼 흐르도록 하는 그런 미디어 저널리즘의 존재, 이런 것이 오늘날의 세상을 밝게 만들어 가는 힘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3)

 

고독한 바다와 마주하며

 

 


대학시절에 보았던 바다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동해 경포대의 백사장은 너무나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길고 넓게 펼쳐져 있던 모래 길은 뚝 끊어진 채, 과장하자면 손 뼘 만 한 백사장만 남기고 그대로 바다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여유와 품위를 잃어버린 해변은 우울해 보였습니다.

싸구려 유흥가로 변해버린 바다는 생존의 치열한 경쟁 끝에 기진맥진해버린 민초들의 절망을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들 그렇게 바다에 초라한 진을 치고 호객의 자리를 펴고 싶었겠냐는 항변이 들려오는 듯도 했습니다. 모두가 아귀다툼 끝에 뜯어먹은 바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던 작은 섬들은 이미 점령당한지 오래이며, 맑고 투명했던 동해의 영혼은 자신의 바다에서 쫓겨나간 채 홀로 슬피 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전히 가시철망에 포위된 주변의 해안선은 자연도 정치와 역사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열기에 물러설 곳이 없어진 도시에서 혹여나 하고 바다로 찾아간 나그네는 거기에서 또 하나의 작은 도시가 들어서 있음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어쩐지 갑자기 몰락해버린 도시의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곳이 된 셈입니다.

정작 보고자 했던 것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풍요한 풍경이었습니다. 도회지에서 몰려든 인파 앞에서 어설픈 화장을 하고 어색한 교태를 부리려는 여인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인 바다를 팔아 도시의 일부가 되려고 하는 욕망과, 그 욕망에 깔린 아픔을 마주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소박하고 순진했던 바다의 싱싱한 육체를 마구 유린해버린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저토록 동해의 백사장을 갉아 먹을 대로 갉아 먹어버려 백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꼴을 만들어버린 이들은 대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관동 팔경이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어도 탄식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바다는 이제 잃어버린 꿈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눈을 부비며 태양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해변은 태고의 순간처럼 정갈한 몸으로 미소 지을 수가 없게 되고 있습니다. 갯벌은 침략당하고 있으며, 모래는 약탈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며 포구(浦口)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분주한 새벽을 향해 깨어나려는 도시로의 귀환은 그러나 그렇게 두고 온 바다를 그래도 그리워하게 합니다. 아직은 회생의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릿한 바람 냄새도 사라지고, 조용하게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도 침묵해버린 곳이라도 바다가 도시보다는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바다가 고독해지는 때가 오면, 다시 바다로 떠나렵니다. 인파가 무심히 헤집고 가버린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며 기운을 차려가는 바다를 보고 싶어서입니다. 바닷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속에서 뱃사람들이 남기고 간 전설도 듣고, 어촌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밤도 지켜보는 겁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2)

 

태양과 장마가 만나면

 

태양과 장마가 서로 엇갈리면서 여름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숨이 막히도록 더운 공기와, 축축하게 습기가 찬 날씨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것도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것은 이 두개의 세력이 서로 반목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만이 존재한다면, 나무와 풀과 강은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흙은 먼지가 되고 사막은 점점 몸이 불어나, 화산이 폭발한 뒤에 쏟아져 나온 마그마처럼 숲과 도시를 기습해 들어올지 모릅니다. 바다조차 더 이상 해초와 물고기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태양의 신”은 저주를 내리는 존재가 되고 이를 떠받들던 사제들은 모두 깊이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양의 신을 위한 제단을 받들던 신화의 시대는 그로서 종식되고 재앙의 징벌만 난무하는 가혹한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온 지구의 몸속에 스며 있던 물기가 다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땅의 물은 그렇게 태양의 광선을 타고 올라가 하늘의 물이 되어 크기가 자라고 무게가 채워지면 낙하의 준비를 완료하게 됩니다.

 

 

 

 

태양이 작열했던 까닭의 하나가 어느새 지쳐가고 있던 지상의 기력을 다시 불려 들여 하늘의 기운으로 재충전하여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인 것을 이로써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건, 산과 들, 계곡과 하천에서 산만하고 미력하게 작업을 하던 일꾼들을 소환하여 대군으로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만나면 각기 자신이 있었던 곳의 소식을 교환할 것입니다.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할 겁니다. 흙 속 저 깊은 곳에 계속 갇혀 지낼 뻔한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고공비행을 하면서 파견임지를 바꾸는 흥분으로 들떠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름의 긴 장마는 그래서 지구의 새로운 소식과 접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는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저 파미르 고원과 아마존의 정글, 프라하의 이끼긴 시냇가와 아프리카대륙의 서안을 끼고 대서양을 막 돌아 마주치는 케이프타운의 이국적 풍경과 예기치 않게 만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비는 낙하의 순간, 지역을 따져 묻지 않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으며 빈부의 격차에 따라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땅에서 쌓은 노련한 연륜과 하늘에서 다시 받은 기력과 소명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우리의 들판 위에, 우리의 가슴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로써 숨이 막혔던 영혼들이 기운을 되찾고 흙먼지가 되어가던 희망이 다시 녹색의 대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태양은 축복이 되고 장마는 자신의 일을 마치면 물러갈 줄 아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으로 남을 겁니다. 그런, 좋은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0)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타부”라는 말은 본래 폴리네시안 즉,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 뜻은 “금기”, 또는 “접촉하면 안 되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초의 의미에는, “신성한 존재”, “신적 두려움”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타부”란,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사회적 금기로까지 확대된 문화인류학적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부”는 그 사회의 정신적 중심에 무언가 성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시상태에서부터 문명의 상태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의 현상입니다. 그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나름대로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보다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스러운 영역을 내세워 금기를 과도하게 부여할 때 그 사회는 억압적이 되고 맙니다.




“타부”가 많은 사회는 그래서 본래 의도했던 바대로 신성한 사회로 발전하기 보다는, 금기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를 권력과 풍속의 도구로 이용해서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현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과학적 진실이 별반 발언권이 없을 때에는, 이 타부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부당한 타부가 사라지고 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부와의 전쟁은 달리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할 진정한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감히”, 라든가 “그러면 부정 탄다”라든가 아니면 “성역을 건드리지 마라”식으로 할 말을 못하게 막는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정신과 문화가 진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모세의 예를 들면서 인간에게 두 개의 가족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자신을 낳아준 가족, 그 둘째는 그를 길러낸 가족입니다. 모세는 고대 이집트 제국의 노예 히브리 족속의 후예로서 죽을 고비에 처해 있을 때, 제국의 왕가의 딸이 그를 건져내 기릅니다. 이 두 가족의 문화와 위상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는 그를 사회적 존재로 길러낸 제국의 가문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본래의 가족관계로 복귀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그의 성장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2차 가족 관계라고 하는 사회적 현실이지만, 그 본심을 움켜잡게 되는 것은 1차 가족이라는 뜻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1차 가족에서 형성된 생각과 자세가 그에게 보다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차 가족 안에 만일 소통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가족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처벌위주의 타부가 많은 사회의 현실과 동일해지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너무 무질서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식이 되어 다시 권위를 다잡으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진로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금기가 강조되는 타부는 사라져야 마땅하며, 그 대신 그 자리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소통의 자유가 들어차야 합니다. 그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라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자유로운 생각, 그리고 제한 없는 상상력으로 자라나는 사람이 우리의 힘입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9)

 

<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서울 2016년 겨울>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너무 늙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뜻일까요? 작가 김승옥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그렇게 너무 빠르게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면서, 우울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던 세대의 자전적 독백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혁명은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난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추격자처럼 바짝 뒤쫓아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설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 둘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얼핏 그야말로 시시겁쩍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삼십대 중반의 사나이의 마구 헝클어진 인생과 기묘하게 얽혀 하루를 지내다가 그 사나이의 역시 돌연한 죽음과 함께 서로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나이의 아내는 그날 죽었으며, 그는 그 죽은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판 대가로 주머니에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서른 중후반의 사나이란 요즈음은 청년에 불과하지만, 그때 그 즈음의 그 나이는 전후(戰後)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던 인생의 피로함으로 상당히 지쳐있을 만한 처지였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에서, 통금시간이 가까운 때에 어느 집 문을 두드리면서 월부책값을 받으러 왔노라고 절규하듯이 흐느끼며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은 비틀거리고 있던 시대의 아픈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이십대 청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대학원생이고, 다른 하나는 시골출신 고졸의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처지나 위치가 다른 둘은 엽기적인 대화를 시작합니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여기서 파리는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파리, 모기 할 때 그 곤충을 말합니다. 질문을 받은 상대는 머뭇거리다가 반문합니다. “김형은 파리를 사랑하세요?” 둘 다 만만치 않습니다. “파리”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께 쓰다니. 괴담(怪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애초에 질문을 던졌던 안이라는 청년이 대답합니다. “예, 날 수 있으니까요. 날 수 있는 것으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 파리도 날아다니는데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날지 못하고 쭈그러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괴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오갑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어찌 보면 난데없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잃어가고 있을지 모를 세대의 입에서 나온 이 “꿈틀거림”이라는 단어는 사실 사뭇 절박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 절박함의 현실을 아까의 그 삽십대 중반의 사나이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으로 마감하는, 그러면서도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기억해주지 않을 시궁창 속의 비극이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두 청년은 서로의 나이가 이제 기껏 스물다섯임을 다시 확인하고는 이렇게 서로 주고받습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그 뭔가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서울 1964년 겨울>의 어느 골목에서 청년의 희망은 시들어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를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었습니다.

 

25세의 나이에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이 작품 속에서 김승옥은 희망에 대한 지독한 갈증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50여년이 흐른 지금, <서울 2016년 겨울>은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이라는 자조 섞인 조어를 되내이는 오늘의 스물다섯 살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있을까요? 약속은 남발한 부도수표처럼 거창하게 넘치고 막상의 현실은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8)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위안부 문제 한-일 외교협상은 일본 아베정권의 자위대 확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위한 것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여기에 조력한 것입니다.

 

1. 시한이 없는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준 사건입니다. 반인륜적 범죄 규탄과 응징에는 시한이 없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습니다.

 

2. 일본의 과거 식민지 통치의 피해에 대한 법적 정리를 졸속으로 처리한 1965년 한일협정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입니다. 일본은 이로써 한일협정에 규정된 법적 책임 해결문제를 재확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적 죄과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3. 만주 관동군, 이른바 황군에 복무한 박정희는 위안부의 존재를 모를 수 없습니다. 한일협정 협상 당시 이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은 과거는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4. 일본 아베 정권은 이로써 자위대 확대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완료한 셈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여기에 조력을 했구요. 한반도 평화는 더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5. 살아있고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는 피해 당사자를 배제한 사건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외교관계에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는 피해 당사자국가의 주권적 권리이자, 매우 중요한 외교적 기반입니다. 이걸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6. 우리,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의 위안부 문제제기에 중요한 지침이 되어 일본의 군사주의 체제 확대를 통제할 수 있는 지점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7.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총선 이후 철거 시도를 하려 할 것입니다. 일본이 이 소녀상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출발점으로 일종의 기념비처럼 대우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텐데,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소녀상은 여성의 권리를 짓밟은 반인류적 범죄를 증언하는 표상입니다. 이걸 철거하려는 순간, 박근혜 정권은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8. 이번 협정은 한국과 일본 내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성과를 일부 담아낸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협정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좀 더 확실하게 밀고 가면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걸 중도에서 멈추게 한 죄과에 대해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9. 위안부 한일 외교 협상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한-일 역사문제, 아시아 평화 문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포괄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을 전면적으로 논의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문제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0. 일본은 과거 명치유신 이후 영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은 후 끈질기게 재협상을 통해 내용을 바꾸어내 낸 바가 있습니다. 외교사는 그러한 선례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한일외교의 참사는 되돌이켜야 합니다. 아니면 한반도 평화통일에 매우 중대한 장애가 만들어지고 말 것입니다.

 

2016년, 우리는 어떤 21세기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대단히 결정적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위안부

 

칼끝이 목을 겨누면

진창의 군화가 젊음을 꺾어도

어쩌지 못했다

 

자상(刺傷)을 입은 육체는

이미 남의 것이 되었고

돌아갈 고향은

아버지의 수치와 어머니의 통곡이 기다리는

어느새 갈 수 없는 땅

 

삼천리강산이 봄을 빼앗기고

들판을 빛내던 청춘은

남십자성(南十字星) 아래 시궁창 냄새를 풍겼다

 

제국의 하녀가 되어버린 몸이

뒤틀린 시신(屍身)을 미리 보여주고,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비명을 지르는데

아무도 듣지 못하는가

 

밀림에 기록된 잔혹사의 일지(日誌)가

패전의 대본영 어느 구석에

폐지로 버려졌다

 

한때의 승자와 패자가

아니 한때의 주인과 그 머슴이

아니 아직도 그때를 그리워 잊지 못하는 자들이

악수를 나누고

한껏 웃은 뒤

막도장을 파서

꽝하고 기세 좋게 찍은

저 외교문서라는 종이는

우리의 전 생애를

몇 푼의 돈으로 팔아 넘겼다

 

김학순, 배봉기,

그리고 무수한 이름들이 적힌 치마저고리가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린다

 

우리는

그날 소녀였다

열여섯,

꽃처럼 피어나던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7)

 

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양아치과’

 

 

‘양아치’라는 말은 들판을 뜻하는 한자의 ‘야(野)’와 사람을 뜻하는 ‘치’가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아’가 들어가는 것은 두 단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어투입니다. ‘야’가 ‘양’으로 변하는 것은 ‘송아지’, ‘망아지’의 생성과정과 유사합니다. 아무튼 ‘양아치’는 들판을 마구 돌아다니며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아가는 이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 양아치라는 말은 농경사회가 확립되어가면서 유목생활을 했던 시대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농경생활이 주도권을 잡아가면서 유목민적 생활양식은 점차 비하의 대상이 되어갔던 셈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시대에, ‘양아치’는 이른바 비주류가 되어갔고 사회적 사각지대에 속하게 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치’라는 말이 붙는 것이 한때는 권세가를 뜻하는 ‘다루하치, 누루하치, 마루하치’등이었으나 이 ‘치’를 쓰는 북방계 유목부족의 위세가 차차 꺾이면서 격하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치, 저 치’ 등으로 상대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바뀌어 간 것이니 이 ‘양아치’라는 말도 애초의 괜찮았던 위상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수난을 겪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듭니다.

 

 

 

 

우리가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양아치’라는 말은 넝마주이부터 시작해 건달, 깡패, 하류인생, 쓰레기 같은 존재 등등으로 포괄적인 분화를 합니다. 격렬한 사회적 변동의 현실 속에서 낙오하거나 주먹으로 상대를 갈취하는 식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 ‘양아치’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치열한 생존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세계였습니다.

 

이들 양아치과에 속한 이들에게 무슨 양심이나 의리, 또는 도덕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양아치들 사이에 서로 의리나 동지적 연대가 있었을지는 모르나, 걸핏하면 별 것도 아닌 일에 함부로 주먹을 쓰고 비열한 욕이 입에 배어 있으며 추악한 일을 저지르기를 서슴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형을 ‘양아치’과는 담아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란 나름의 진화과정이 있게 마련이어서, 폭력배 수준의 양아치에게만 이런 말들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실력은 없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던 지, 위엄과 명예를 지켜야 할 때 치사하게 군다든지 당당해야 할 때 비굴하게 군다거나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지점에서 부하나 제3자를 걸고 넘어져서 그들을 희생시킨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양아치적 속성으로 지탄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양아치는 ‘3류’로 구는 것입니다. 본래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자유와 야망과 광활한 꿈을 안고 지냈던 존재들에게 붙였던 이름이, 그만 졸렬하게 구는 자들에게 붙이는 명칭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면 누구나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오늘날 정치권, 그리고 정부는 어떤 과에 속할까요?

 

치사하기 짝이 없는 책임전가에 급급하고 몸싸움과 주먹 쓰는 일에는 능하며 정작 필요한 실력은 없는 이들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누구 답을 알고 있는 이 없는지요?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6)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도 사실 더 관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점차 이루어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기대를 완성시키는 기쁨이 다가오는 듯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에게 허락된 여유를 치밀하게 측정해야 하는 초조함이 깊어질 것입니다.

 

 

 

 

한번 이상을 살아볼 수 없는 인생에서 아쉬움은 늘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있게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 어떤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본다 해도 실험할 수도 없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의 기회는 도저히 낭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낭비라는 것도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평가할 때 비로소 생기는 후회나 억울함이라면 사전에 이를 막을 도리는 아예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오만하려 해도 도저히 전지전능할 까닭이 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조건에 기인한 사태일 것입니다.

 

알고 보니 쓸모없는 경험, 이제 와서 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여정, 안목이 좁았던 탓에 미루거나 거부해버렸던 결정과 선택, 결코 놓쳐서는 안 되었던 인연 들 모두가 다 따지고 보면 충분히 기회를 용납해주었던 시간 앞에서 빈틈을 보인 자신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이를 뚜렷이 절감하기까지는 역시 시간의 훈련으로 마음이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가 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잃은 듯하지만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듯하지만 잃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상실했다고 슬퍼해도 그걸 넘는 깨우침이 있으면 그는 새로운 자아를 얻을 것입니다. 반면에, 무언가 성취했다고 즐거워해도 그것에 그대로 취하면 그는 황무지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영혼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하면 그나마 자신을 돌아보지만, 성공하면 세상의 갈채에 금세 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기로에 서서 자기 자신을 진실 되게 채울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란 어차피 가게 되어 있으며 늙음은 오지 말라 해도 우리 몸에 미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스며들고, 후회란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을 바에야 결국 부질없는 자기학대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면서 사실 그건 마지막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의 애틋한 시작임을 안다면,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앞서지 않을까 합니다. “그해 12월은 내게…” 하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깊어지는 나날입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5)

 

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지하도를 지나면서 라면 상자로 추위를 막을 준비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에 아프게 담겨왔습니다. 한 사람이 누워 지낼만한 자리가 머릿속의 허름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의 세계에서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무력하게 잠겨드는 삶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도시의 풍경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 익숙함이 결코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 없는 이들의 거리 노숙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하나의 깨우침을 던져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결국 자기 한 몸 누일 공간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을 하는 결론 비슷한 생각 말입니다.

 

물론 인생이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때로 고달프게 자도 괜찮다, 라든가 한 몸 누일 데가 있으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 절박한 처지에 대한, 냉정하고 무심한 평론 따위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빈곤의 궁지에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숙명의 사회학”을 강론코자 함도 또한 아닙니다.

 

 

 

 

겨울바람이 뼈 속으로 스며들 야밤노숙의 서러움을 오늘의 도시는 돌아보아 주지 않습니다. 다들 살아가는 일이 고되고 이웃을 돌아볼 겨를이란 도대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생기기란 참으로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서도 화려해지고 있는 도시의 외관과 저 엄청난 낭비의 기념비 같은 거대한 조명들은 우리의 이중적 처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기도 합니다.

 

라면 상자가 난데없이 기하책의 정육면체 전개도처럼 펼쳐지는 자리에 하루의 인생을 담아 눕는 이들의 삶에서 우리는 자신의 평범한 소유조차도 졸지에 사치가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돌아가 편안히 누울 곳이 있다는 사실 또한 엄청나게 대단한 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타자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증언해주는 재료가 되고 말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부당한 일이지요. 이웃의 비극이 나의 상대적 행운에 대한 감사를 일으키는 사건이 된다면 그건 우리를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어가고 말 겁니다. 도시의 품성을 더욱 가혹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터전이 그만큼 더 늘어나는 셈입니다. 인생의 제비뽑기에서 잘못 뽑은 이들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결론 내리게 되는 한 우리는 그래서 자기를 지켜내는 더 많은 소유와 더 많은 권한을 향한 치열한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남는 것은 자기 하나 누일 공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끝자리에 서보면, 기를 쓰고 쌓아올릴 탐욕적인 소유의 부질없음과 마침내 자신을 조잡한 인격으로 전락시키고 말 권력의 치사한 축적은 모두 자신을 결코 아름답고 위엄 있게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지는 않을까 합니다.

 

“날로 소박해지는 소유와 날로 깊어가는 성찰”이 사라진 인생에서 남는 것은 본질적인 황폐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소박함과 그 성찰의 깊이가 소중한 것으로 믿어지는 곳에서는 거리의 노숙은 더 이상 방치되지 않을 겁니다. 인생의 슬픔과 고단함, 그리고 희망 등을 서로 돌아보며 다독거리는 따스함을 나눌 줄 아는 우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겨울은 더욱 정겨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