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친구됨

- 전집 5일기 I1935년 일기 -

 

 

다음 달은 정상적인 발행이 가능할까, 이런 식으로 과연 조선 땅 전역과 오고 또 올 미래의 세대들에게 성서의 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한치 앞을 모르면서 매달 성실함과 소망으로 이어간 성서조선지 발간이 어느덧 10년에 다다를 무렵, 김교신은 뜻밖의 친구들을 만났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간 소록도에서 보내온 문신활의 편지는 김교신 스스로도 고백하듯이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었다.

 

문신활과 그의 동료들은 1932년 부산의 감만리나병원을 섬기던 손양원 전도사에게서 성조지를 소개받았다 했다. 전도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 해석을 재미나게, 희열에 넘쳐 들었다고. 그러나 성조지의 불순함을 지적하고 이단이라 핍박하는 무리들에 의해 손 전도사님은 쫓겨나고 600여명이나 되던 나환자 교우들도 이리저리 떨어져나갔단다. 남은 5. 돈 없고 반대에 부딪히는 고난 속에 겨우 한 권 신청하여 병원 뒷산 송목(松木)을 의지하여 은근히 모이어 읽을 때마다 썩어짐이 없는 진실한 부흥이 되었더이다.”(2105)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이후로도 기구한 사연으로 이리저리 몰리다 소록도에 모여 있다며, 김교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나환자가 찾아가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까봐 편지로 대신한다는 사연이었다. 이른 봄 소록도에서 온 소식을 받고 김교신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편집 조판까지 마친 후에 소록도 통신을 접하였다. 이것은 주필의 일생에 가장 큰 사변의 하나이다. 이 일을 지우들께 알리기를 지체할 수 없었다. 반도의 유위(有爲)한 청년들이 복음을 요구하지 않고, 유리한 전도지를 교권자 제씨가 강하게 독점하고자 할진대 우리는 애석할 것이 없이 퇴각하여 소록도의 5천 명 친구에게 가리라. 병자라야 의약이 필요하다. 단 면수의 한정으로 인하여 조군의 요한복음이 2면만으로 단축된 것은 미안 천만.

 

이 한 장의 편지는 막 조판을 마친 성조지뿐만이 아니라 김교신의 신앙과 향후 삶의 여정에도 큰 사변으로 작용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 위아래가 있겠느냐만, 기왕이면 리더십 있는 청년, 장래 촉망한 인사에게 전해 산 신앙의 영향력을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한반도에 뿌리내리게 하고픈 욕심이, 솔직히 있었다. 그런데 만날수록,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해와 무관심에 지치고 실망하던 한중간이었다. 그런데 이후 쏟아지는 소록도 통신들은 김교신 자신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복음의 심오한 깊이를 가진 살아있는 복음서요 예언서들이었다. 아아, 김교신은 결심한다. “나환자의 신서를 가슴에 품고 천국 길을 돌진하리라.” 변화는 비단 김교신뿐만이 아니었다. 문신활의 사연을 읽은 성조지 한 독자의 결심은 이러했다.

 

선생님, 진체 송금 340전 하였습니다. 이는 생()의 지대 1년분과 소록도 문신활 형에게 보낼 지대 1년분이올시다. 75호 그의 논문을 보고 지대를 제가 담당함이 가함을 느꼈나이다. 이 일을 절대로 공개하지 마시고 또는 위 문형 본인에게도 저의 이름을 교시(敎示)하지 마소서. 특별 부탁합니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삶의 결단을 담은 편지들이 이어졌다.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이야기들부터 연말까지 계속된 소록도행 선물꾸러미까지. 그들은 이미 문신활의 친구였다. 남도 나도 천형이라 여기던 병을 얻는다는 것, 몸이 아픈 것도 감당키 어려운 지경인데 가족과 이웃, 살아갈 의미를 주고 힘을 주는 이들과 격리되어 외로운 영혼의 싸움까지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했던 문신활과 그의 동료들. 그들은 외딴 섬을 찾은 성조지를 통해 친구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이들을 친구로 엮으신 진정한 친구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연인들의 편지가 이만큼 절절할까. “나병으로 인하여 외롭고 고독한 소생에게 둘도 없는 가장 유일의 벗이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기거동작 간에 가슴에 품고 틈만 있으면 들고 본다는 성조지를 통해, 이들은 하나의 에클레시아’(교회)가 되어갔다.

 

 

 

 

521일자 문신활의 편지는 차라리 한편의 예언서이다. 자나 깨나 성조지를 품고 다닌 이의 깨달음이 참으로 깊다.

 

, 오묘하도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이여, 찬송하리로다. 우주의 배후에, 조선의 역사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소록도의 배후에 절망한 나맹인(癩盲人)의 생활 위에 운동하실 줄이야 누가 알았으며, 병중에도 병을 더하여 낙망과 연민의 입장에 처한 나맹인으로서 천국의 희망을 심구할 줄이야 그 누구가 알았을까요. , 찬송하리로다, 우주에 충만한 그리스도의 생명, 학박사야 알았느냐, 나맹인의 참담한 사변 위에서, 그 형자님들의 눈물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적 창조의 묘법을, 세인들아, 너희는 몰랐으리라. , 현 교회의 신앙관은 심히 천박한지라, 우주에 충만한 복음, 삼라만상에서 생명적으로 뛰놀며 성장하는 진리, 즉 성서가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예수의 흔적만 남은 신조만 붙들고 밤낮 울고 있음을 구경하였음이다.

 

전형적인 예언서의 서문을 갖춘 그의 편지는 고통에 관하여 욥기를 뛰어넘는 문학적, 신앙적 성찰을 전한다.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듯이, 그리스도의 가혹한 사랑인 동시에 자기와 사람을 밀접한 교제를 시켜 놓고 견딜 수 없는 불행과 비운을 내리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나이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인간의 행복이 아니요 인간의 불행이다. , 그리스도의 사랑은 웃음이라기보다 눈물이었나이다. 그리스도에게 불리는 자, 그리스도에게 선택함을 입은 20세기의 복음의 종들은 자기의 소유는 빼앗기고 자기의 소망은 깨어지는 것이다. , 현 교회 사랑하는 형자들은 아직도 자기를 빼앗길 용기가 없다. 즉 땅의 것을 팔아 하늘의 것을 살 용기가 없다. 소록도 갱생원의 사랑하는 형자들이여, 나병에 시들고 남은 그 뼈, 그 살, 그 피까지를 주 예수께 바치사이다. 빼앗기사이다. 그럴 때라야 천국은 형자님들의 소유가 되리이다. 이를 못한 신자는 천박한 자기 지식과 관념에만 잡히어 영원히 죽으리다.

 

요즘 받는 편지마다 소록도 아니면 만주라는 김교신은 문신활과 동료들의 편지를 읽고 서신으로 왕래하다 726일자 일기에 그리 적고 있다. “그 중간 반도는 교권자와 신학자에게 맡기고자신은 성조지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친구들을 향해, 즉 주변으로, 변방으로, 복음의 사자가 되어 달려가겠노라고.

 

실은 인간 문명이 지어져온 이래 중심에는 산 신앙이 오래 버텨본 적이 없다. 요즘 방영되는 어느 드라마(제목은 송곳인데 웹툰이 원작이라 한다) 대사마따나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다른 법이다. 행여 복음의 생령을 가슴 뜨겁게 체험했고 그 핵심 메시지를 지식으로 안다 할지라도 인간 시스템의 심장부에 서면, 예수가 친구했던 이들과는 멀어지기 쉽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저 가난한 마음의 신앙고백이 터져 나온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문드러진 살, 쇠약해진 뼈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온전히 기쁨으로 주께 내어놓고 천국을 사겠다는 것인가! 저런 친구들을 두고서 어찌 중심을 향할까. 참으로 예수의 선언은 옳다. 가진 자는, 중심에 선 자는, 그 가진 것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가장 멀다. 문신활의 사연이 담긴 성조지를 읽고서 조선에서 한 사람을 사랑하시려거든 저이 한 사람이면 만족 만족 대만족이라고 고백했던 송두용처럼, 아마도 이때 김교신은 삶과 신앙의 방향성을 더욱 굳건히 했을 일이다. 주변에 서기로, 병자와 함께 하기로, 약하고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기로그 결심대로 살다가 결국 그는 변방의 한 공장에서 병든 조선인 노동자들을 돌보다 그들의 친구로 죽었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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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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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집 5일기 I1934년 일기 -

 

 

어려서부터 나는 유난히 잠이 많았다. 덕분에 청교도적 사명감으로 일분일초를 아끼며 사셨던 아버지로부터는 늘 게으르다는 핀잔을 들었고, 모처럼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이 40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선천적인 면역계통 이상으로 간과 신장이 안 좋다는 것을. 아하, 그래서 늘 저녁 8시만 넘으면 몸이 붓고 자면서도 끙끙 고열에 식은땀까지 났던 거구나. 어쩐지, 일년내내 감기일 리는 없고 이상하긴 했다. 하여 무조건 쉬는 게 답이라는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하는 조언을 내게도 전했다. 스트레스 쌓이는 일 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는 소리 말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그럼에도,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병명은 나에게 자유평안을 주었다. 뒤풀이에 끌려갈 세라 서둘러 사라지고 대부분의 친교 행사에 불참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는데, 병이라지 않나! 놀 기운이 없다지 않나! 죄책감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삶에는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이고, 내 체력에 나만의 한계가 있다하니 남들 같지 않음으로 인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선생으로서, 아내요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최소한 해야 하는 의무방어전만 감당하기에도 내 체력으로는 벅찬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건강 체질이라 생각했던 김교신도 뇌빈혈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접하니, (이러면 안 되지만) 반갑기까지 하다. 1934년의 일기에는 유난히 병석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잦다. 4월 어느 날의 일기다.

 

아침에 뇌빈혈이 재발하여 와상한 채로 수일을 지내다. 의사는 명하기를 독서하지 말고 사색하지 말고 집필하지 말라고 하니, 이는 나에게 거의 사형선고와 근사한 일이다. 허약한 신체는 아니면서도 무리한 학대를 육체에 가하고는 병신노릇 한다. 그러나 소인한거위불선(小人閑居爲不善)이라 하니 우리 같은 소인은 병석에서 쉬는 것이 차라리 감사이다.

 

어느 때인들 성서조선지 발행이 녹녹했겠는가마는, 1934년은 김교신에게 그야말로 힘겨운 한 해였다. 류석동을 비롯하여 그간 주요하게 집필을 담당했던 이들이 대거 글 싣기를 거절했으며, 일제의 검열도 날로 심해져갔다. 66호는 폐기될 뻔하기도 했다. 용산경찰서에 호출당하여 취조를 받고 이게 마지막이구나 싶었던 일들을 겪었다. 경무국으로부터 뒤늦게 범죄의사 없음’(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누구 기준의 범죄인 건지)으로 판명되어 속간을 허락받고 주일임에도 종일 인쇄소에 나가 교정하여 겨우 출간하였다. 1934년은 내내 늘 이게 마지막이지생각하며 한 호씩 출간하여갔던 한 해라고 적고 있다. 그 해에만 금단된 신문 잡지가 230여 종, 수입 신문 압수 1,414, 이입 신문 압수 842, 조선문 신문 압수 28, 그 외에 조선 내 발행 잡지의 삭제 402, 단행본 삭제 108”(1212일 일기)이라 하니, 성서조선지가 겪었던 수난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멀쩡한 사람에게도 뇌빈혈이 찾아올 일이다.

 

 

 

 

몸에 병까지 얻어가며 촌각을 아끼고 사투에 가까운 출간을 담당하다보니 김교신은 지인들의 편지, 제자들의 즐거운 소식에도 동참하거나 회신할 겨를조차 없이 산 날들이 이어졌다.

 

이러한[왕래는 어렵겠으나 교훈의 글월을 보내달라는] 특청(特請)에도 불구하고 축전도 못하고 엽서 한 장도 보내지 못하여 사랑의 부채만 늘어가는 것이 마음에 괴로웠다. 결혼식을 무의미한 것으로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다망하다는 핑계 때문이다. 근래에 원로(遠路)에서 방문한 모 친구가 정거장까지 전송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냉정함을 책()하였으나, 책망을 감수하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성조지를 발간하기 위하여는 이만한 교만을 용인(容忍)하라고 자가용(自家用) 특허를 맡았다. 서신에 회답이 태만한 것도 동양(同樣)의 특허권으로 인함이니 지우에게는 특히 이 사정을 통찰하여 주기를 기망(企望).

 

1934년이면 김교신이 겨우 삼십대 중반으로 들어설 무렵이다. 물론 그 시절의 서른 중반은 지금과 다르겠으나, 여전히 젊은이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의 뇌빈혈은 구독자들조차 걱정할 만큼 잦게 찾아왔었나 보다. 좀처럼 결근이 없던 김교신이 학교를 못나가게 된 날의 원인도 뇌빈혈에 있었다. 127일의 일기다.

 

피로가 축적된 결과인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뇌빈혈이 생겨 기상치 못하고 결근 휴양. ‘원컨대 건강이 반석 같아서 주야 불휴(不休)하고 일할 수 있었으면하기는 하지만 또한 게으른 자에게는 허약한 일도 적잖은 행복인 것을 병상에서 배우다. 건강하면서 할 일 다 하지 못하면 그 책임이 나에게 있으나, 하다가 거꾸러져서 못하는 것은 우선 나의 책임이 아니다. 몸은 약하여 누웠으나 마음에는 다할 수 없는 만족과 감사가 용연하다. “내가 약할 때에 강하니라는 바울 선생의 구가 자연히 나의 것으로 되어 입술을 흘러나온다. 밤에 겨우 성조 제 71호를 보낼 절차가 되어서 피봉 쓰기 시작하다. 약 일주간 쓸데없이 지체되었다. 독자에게도 미안하나 주필에게도 미안함은 일반사.

 

이 어찌 미안할 일일까. 물론 혹자는 비웃을 일이다. 성조지 발간이 뭐 그리 생사가 달린 일이라고 몸이 상할 지경으로 친교도 마다 않고 진행한단 말인가. 당시에도 그런 조언 내지는 비난이 없지 않았다. 오해도 많았다. 네 자존심이지, 네 체면을 위함이지. 그러나 이에 대한 김교신의 변은 확고했다.

 

학교에서 당직.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새벽 3시경까지 집필하여 신년호의 준비가 거의 완결되다. 오래 전 일은 망각하여 버렸으나 금년 1년 동안에 한 번이라도 모험적인 연일 과야(過夜)함이 없이 성조지가 되어 본 적은 없다. 이 한 호까지 내놓고는 거꾸러져도 가하다는 결심이 이르지 않고 성조가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안일하다. 세상에 난 것은 사업하기 위함이 아니다. 만일 할 사업이 있다면 학교 교사 노릇이다 충실히 하면 사회에 일원 된 의무는 다하는 셈이다. 성조 발간 같은 일은 누구에게 부탁 받은 것도 아니요, 감독 받는 일도 아니다. 발행일자가 늦어도 할 수 없고 폐간된대야 체면 관계될 것은 없다. 오직 참으려 해도 제지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하여 마지못하여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유희(遊戱)’라는 요소가 다()부분 개재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고로 초조할 것이 없이, 마치 일요일마다 물에 산에 소요하는 이들처럼 슬금슬금 쉬지 않고 걷고자 할 따름이다.

 

슬금슬금 쉬지 않고 걷고자 할 따름이다.” 아하, 드디어 내게도 페이스메이커가 생겼다. 김교신의 일상이 결코 슬금슬금으로 표현될 만한 페이스는 아니었으나, 소명으로 여기며 삶의 우선순위를 매길 일들이 있었고, 촌각을 아끼며 그 일에 매진하되, 몸져누워 쉬게 되면 그 역시 행복하고 감사하다 여기다가, 회복하면 다시 쉬지 않고 걷는그이의 발걸음이 내게는 내 인생의 걸음을 함께 해주는 페이스메이커의 달리기와도 같이 느껴졌다. 마라톤에 능하던 김교신이 아니던가. 단거리야 스피드가 중요하겠지만, 마라톤의 가치는 완주에 있지 않겠나. 자기와의 싸움이고, 제 몸의 페이스를 익혀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실은 어제 그제 그리고 오늘까지 삼일을 끙끙 앓으면서도 줄곧 스케줄러를 쳐다보던 내 모습이 한심하던 차에 발견한 복음이었다. 머리맡에 두고 읽을 기운이 날 때마다 펼친 김교신의 일기 5에서 슬금슬금 쉬지 않고 걷고자 할 따름이다.”라는 글귀에 감명을 받게 될지, 논문 쓰느라 바삐 읽었던 십 수 년 전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말이 맞다. 병상에 누움도 감사다. “삶은 미정(未定)”이라던 김교신의 지인 류영모의 글귀도 생각나는 날이다. 인간사에 어찌 완성이 있고 완벽이 있으랴. 제 소명 따라 하다가 죽는 것이지. 누군가 그 뜻이 귀하다 여기면 바통을 이어받듯 받아줄 생명을 기대하며(이는 함석헌의 표현이다.)...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담아내려 했던 뜻은 158(19423월호)로 그쳤지만, 한국 무()교회 3세대들에 의해서도, 21세기 청년들의 <성서한국> 모임을 통해서도, 또한 이렇게 저렇게 제도 교회 밖에서성서를 스스로 읽는 평신도들에게 용기와 방향성을 주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져 가지 않나. 슬금슬금 쉬지 않고! 그 정직하고 성실한 걸음이 위로가 되는 날이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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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5)

 

화(和)의 영이여, 오소서!

- 전집 5권 『일기 I』 1932~33년 일기 -

 

 

설마 진짜로 그럴까, 했다. 물론 지난 문명사에 뒷걸음질 친 사례들이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길게 보면 점차로 ‘앞으로 나아간’ 것이 역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마다 기득권자들은 그 ‘나아감’에 저항하다 결국 큰 흐름을 막지 못하고 가장 늦게 승차해오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과거사의 해석에 있어 단 하나의 ‘정답’은 없는 법이라고, 남아 있는 기록 자체가 이미 ‘승자들의 것’이기에, 과거의 역사를 해석하는 일은 더 많은 시각과 해석을 요하며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읽기’를 허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배워왔는데… 군주제였던 조선 시대의 왕들도 안하던 일을 하겠다 한다. 역사 해석은 1차적으로 전문적인 역사학자들의 몫이요, 그들이 자유혼과 학자적 양심으로 서로 깊게 파고 날카롭게 논쟁하며 결과물들을 세상에 내놓아야, 옳다. 오늘날의 시민들은, 특히나 교육수준이 높은 한국의 시민들은 그리 다양하게 소개되는 해석들을 읽고 공감 혹은 반박할 만큼의 역량을 가졌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서 단 하나의 ‘정답’을 만들려 하는 것일까? ‘만든 답’이 ‘정답’이라고 누가 판단하는가? 독일 문인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도 모른다’고 한 바 있다. 이 표현을 가져와 막스 뮐러는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이다.”라는 대선언으로 비교종교학이라는 학문의 장을 열었다. 하나만이 아니라 둘, 혹은 셋… 같은 사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을 다양하게 알고 배우며 ‘비교’해보라는 이 학문적 초대는 시민들에게 동등하게 권리와 능력이 부여되는 근현대 사회의 진행과 더불어 이제는 ‘당연’이 되어버린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 큰 흐름을 기어이 되돌려 시민을 한낱 ‘우매한 백성’으로 여기고(아니 그렇게 ‘만들려고’ 하고) 있음이,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상상력인가?

 

역사에서 배울 일이다. 자고로 단 하나의 정답을 만들려고 했던 자들은 모두가 권력을 독점하려던 사람들이다. 그건 종교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만큼 다양한 해석과 신앙 실천이 존재했던 시절도 없었다. “예수는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신앙고백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교부들과 성도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 체험을 통해 다양하게 고백하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신들을 살려내고 현재를 견디어내게 하며 나아가 죽음의 순간조차도 평안할 수 있게 만드는 절대적 힘을 가졌기에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그 어려운 박해의 시절에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그 다양성은 획일화된 교리로 좁아들고 굳어져갔다. ‘정통(orthodox)’의 탄생이었다. 사람을 살려야할 종교의 이름으로 이후 유럽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축출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성령이 진리의 영이고, 예수가 그리스도심이 정녕 사실이라면(난 그리 믿는다.) 무엇이 두려워서 ‘단 하나의 해석’을 고수하며 그것도 자신들이 만든 해석이 ‘정답’이어야한다고 고집했을까? 답은 명료하다. 하나의 제국이 된 거대 교회조직을, 아니 그 조직을 통해 유지되던 고위성직자들(그리고 그들과 결탁하여 힘을 나눈 정치적 세력들)의 기득권을 자자손손 계속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성서조선』지와 동인들은 시작부터 이단 시비를 받은 공동체이다. 제도로서의 교회 ‘밖’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들을 의심케 했으며, 우치무라 간조라는 일본인 아래서 성경공부를 했다는 것도 못마땅하게 비췄다. 더구나 40호, 50호, 그 호수가 이어지며 이들의 주장이 조선 땅에서 영향력을 끼치게 되자, 많은 이들이 『성서조선』의 ‘이단성’을 물고 늘어졌다.

 

김교신은 성서조선 동인들 중에서도 가장 ‘정통’신앙을 가진 이었지만, 교리가 그러하니 무조건 받아들였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산 신앙과 자유혼으로 철저하게 읽고 배우고 해석하면서 ‘아멘’할 정통신앙은 받아들여 왔던 그였다. 그러나 김교신은 칼뱅의 예정설은 인정하기 힘들었다. 어찌 구원받을 자가 ‘이미’ 정해져있다는 말인가? 성서 어디에 그런 말이 있나? 그리고 아무리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라도, 그것이 사는 동안의 행위와 상관없을 리 없다.

 

이렇게 생각했던 김교신은 “구원이란 개인적 보험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후구원의 부정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교리적·추상적 논쟁은 신학자에게 일임하고 평신도인 자신은 “순간순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과로 매일 사람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인생을 생활하여 죄와 세상을 이기고 개선하는” 구원의 현재성에 집중하겠다고 고백했다. 이런 고백과 삶이 ‘정통’에서 벗어나고 심지어 ‘하나님의 정답’에서도 벗어난다면, ‘이리 살다가 기꺼이 지옥에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방점은 앞에 있음을 주의하자. 지옥에 가겠다는 말이 아니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편협하고 배타적인 독재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지막 일인까지도 이런 삶의 결단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고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김교신의 신앙고백이다.그런데 이런 김교신의 신앙고백을 읽고, 한 독자가 경고문을 보내왔다. ‘망상을 그치고 오직 성서에만 집중하라’고 단언하는 이 독자의 자신만만함에 김교신은 이렇게 답했다.

 

이단자 칭호를 받기는 이번까지 두 번째다. 익명이므로 필자는 헤아릴 수 없거니와, 일독한 후에 느낀 것은 심신이 아울러 건전(sound)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소위 찬송가와 기도만 하는 것이 건전한 신앙생활이 아니다. 일정한 직업 특히 농공상의 직을 가지고 이마에 땀 흘리는 생활이 심령의 보건에도 대단 필요한 듯하다. 또한 기독신자일지라도 때로는 그 독서의 범위를 성서 이외에 확장하여 지력, 시가, 자연과학 등에도 미치는 것이 보건상 불가피할 것인 듯하다. 반드시 박학 군자라야 기독신자라는 것이 아니다. 난쟁이 두골(頭骨)이나 정구 선수의 팔처럼 기형적으로 발달하기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요긴한 듯하다 할 뿐이다.

 

성서 하나만 읽을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안에 담긴 유대인, 기독인의 신앙고백을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다른 학문과의 비교를 통해 읽어내야 ‘건전하다’는 말이다. 이는 보통의 의식을 가진 근대 시민이라면 동의할 보편적인 의식이다. 우리는 팔과 다리의 역할만 하면 되었던 전근대사회의 ‘신민(臣民)’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할 터이니 너희는 무조건 꿇어라, 그런다고 그냥 복종하는 이는 시민(市民)이 아니다. 신민이다. 적어도 근대 사회의 건설을 꿈꾸었던 시민 계급이 자기 삶의 터전을 이루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작동 원리로 ‘합의’한 것은, 각자의 의미 추구와 삶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되 이것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법’에 의거하여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자유와 평등의 살림살이였다. 그런데 ‘하나만 하라’니, 결국 손과 발만 하라는 소리다.

 

김교신과 성조지 동인들은 어찌 보면 철저한 신앙인이요 한편으로는 철저한 근대인이었다. 평민들의 역량을 믿었고 그들의 ‘각개’ 전투를 응원했다. 32년 1월 3일자 일기에는 평양 걸인 강만영 씨의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과 같은 방식이 아닌 ‘한 전도자’의 삶을 응원했다. 목회자 자녀로서 동경 유학을 한 이가 일부러 광인 행세를 하며 걸인 무리를 지도한다고 한다. 속한 걸인들이 모두 “먹고 남은 것, 입고 남은 것이 없으면 자기는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는”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는 말에, 김교신은 비록 그의 언행에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그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라고 긍정한다.

 

또한 수취인 사망의 연유로 돌아온 성조지 52호가 계기가 되어 알아본 독자 김운경 형제의 사연에도 김교신은 긍정의 끄덕임을 했다. 무지함에 음주는 일상이고 심지어 부친을 구타하기도 하는 이였는데 한번 회개하자 악행하던 열과 기로 전도에 열이 붙은 사람이었다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를 하는데 “날 봐라, 날 봐라” 고성으로 악을 쓰며 얼마나 열심을 내었는지 인후를 상해 토혈을 하고 결국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이 사연을 들으며 김교신은 그의 무모함을 판단하는 대신 “오호라, 무학한 악인 김 형은 ‘날 봐라, 날 봐라!’ 하는 힘이 있었다.”고 그 삶과 죽음을 기렸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특정한 집단 이익을 옹호하거나 지킬 필요가 없는 평민, 평신도는 각자의 신앙대로 제 삶을 살 자유를 누린다는 말이다. 반드시 하나의 방식, 하나의 외침이어야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1932년 12월의 일기는 이런 자유 때문에 평생 평민, 평신도의 삶을 살고자했던 그의 의지가 보인다.

 

이 점으로 보아 나는 일평생 신앙의 전문가 되지 말고 소인(素人) 되기를 원하며, 평신도인 것을 감사하는 바이다. 우리에게는 일가의 지설(持說)을 고집하여 전문가와 싸울 만한 아무 이유도 없고 체면도 없는 자이다. 배울 만한 것이면 언제 누구의 설이라도 수납할 수 있고 불가해의 것이면 학도의 양심으로 모른다고 할 뿐이다. 다만 그리스도를 주로서

 섬기는 이면 함께 할 것뿐이다.

 

 

김교신의 막역한 친구요 동인이었던 함석헌의 말마따나 “성령은 화(和)하는 영이지 동(同)하는 획일주의의 영이 아니다.”(전집 3: 18) 자유혼으로 각자 외쳐도 공동체의 와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성령이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 안에서 맘껏 뛰노는데 무엇이 걱정이랴? 그럼에도 굳이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정답’을 고집하는 이가 있다면 이들은 성령을 모르는 자요, 사람 안에 깃든 이 ‘신성한 하나’를 불신하는 자다.

 

때문에 획일을 강조하는 황당한 제안을 당하여, 신앙인이라면 ‘프로테스트’해야 한다. 『성서조선』을 열심히 구독하던 독자, 황해도 계명학원의 김형도가 보내온 글의 일부를 인용하며 개신교 정신, 즉 ‘프로테스탄트’의 소망을 되새겨본다.

 

풍전등화 같은 저 불들이 꺼지지 아니하도록 우리 성조지는 기름의 대용(代用)이라도 되소서. 그리하여 사나운 광풍에도 꺼지지 않고 더 일어날 강한 불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완전히 타버리고 성서조선 즉 성화낙원(聖化樂園)이 되기를! 마른 풀밭에 불의 대용(代用) 곳불을 놓고 있는 신프로테스탄트들의 소망이다. 현대의 교회야! 너는 인간극의 종막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느냐?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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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5)

 

하루씩

- 전집 5권 『일기 I』 1930년~31년 일기 -

 

 

살다보면 엉겁결에 맡게 되는 일들이 있다. 물론 ‘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상황이 되지 않는데, 공동체의 처한 정황상 ‘독박을 쓰는’ 경우다. 더 우아한 말이 있겠으나 개인에게는 이만큼의 부담이다. 김교신에게는 『성서조선』 편집주간이 된 일이 그러했다. 1930년 5월부터 김교신은 거의 단독으로 잡지의 편집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동안은 정상훈이 했던 일이다. 나라도 어수선했지만 한창 젊은 나이의 6인이었다. 직업면에서도 가정면에서도 이동이 잦은 시기였다. 양인성은 평북 선천에, 함석헌은 오산에, 류석동은 소격동에서 이렇게 저렇게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성서모임을 열어가며 ‘버티던’ 한중간의 일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함께 모여 진행했던 성서연구의 결과물들을 한데 모아 출판하며,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던 잡지가 『성서조선』이었다. 그런데 이 잡지가 주간의 몫을 담당했던 정상훈의 개인사정으로 1930년 4월호가 휴간된 마당이었다. 그야말로 잡지 존폐 문제에 봉착했다.

 

 

 

 

물론 인습이나 껍질뿐인 전통의 승계에 연연하지 않는 모임이니, 잡지를 그친들 그것 자체로 자괴감이나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다른 열정과 목표를 가지고 조선의 젊은 신앙인 여섯이 마음과 뜻을 모아 시작한 일이었다. 조선 팔도를 다 다닐 수는 없는 일이나 제 자리에서 치열하고 진지하게 묵상한 살아있는 말씀을 활자화하여 방방곡곡에 전할 수는 있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시작한 잡지 출간. 15호로 그칠 수는 없었다. 하여 이미 교사 일을 전직으로 하고 있던 김교신이 그야말로 ‘엉겁결에’ 책임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의 심정을 김교신은 이렇게 말한다.

 

제16호부터는 내가 그 임(任)을 위선(爲先) 담당하게 되었다. 집필자는 전과 다름이 없으나, 잡지에 관한 일체 책임을 일신(一身)에 지려 할 때 새로운 주저가 없지 아니치 못하였다. 금후(今後) 본지에 대한 책망이나 수욕(受辱)은 나 홀로 당할 작정인 까닭이다.

 

김교신으로서는 그야말로 ‘재능기부(?)’요 ‘자선사업’에 해당하는 노동이었다. 평신도 신앙인으로서도 주체적인 성서 묵상이 가능함을 알리며 시작한 제 소리이지만, 하여 그 결과물들을 모아 출간하기로 한 것이지만, 편집 일이야 말로 문외한인 영역이었다. 오탈자가 나도, 편집의 미(美)가 어설퍼도 다 김교신이 당할 몫일 터인데, 그야말로 득(得)은 없되 실(失)만 있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김교신은 이 ‘자선사업’을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자선사업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분배하는 일보다 더 큰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임이나 주장을 영구히 하려는 욕심을 가질 때 형식화와 제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또 이를 경계했던 무교회 신앙인들이었던지라, 김교신은 편집 주간을 맡으면서도 언제든 ‘그칠’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 잡지는 기백 호의 기념호까지 발간하리라는 아무 성산도 없고, 기어코 성공하리라는 고집도 안 가졌다. 그저 여적이 있으면 수집될 것이고, 없으면 언제든지 폐지될 것이다.

 

그렇게 ‘한 회씩’ 해보자며 이어간 잡지가 142호까지 출간되었다. 물론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김교신의 ‘고집’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세월이 너무 악하고 조선인들의 처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생명을 나누듯 그렇게 산 신앙의 호흡을 나누려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모아 놓은 금전력이 탄탄한 것도 아니었다. 박봉에 식구도 많은 김교신의 교사 월급이 수월찮게 그리로 들어갔다. 바쁜 일정에 원고를 모으고 5회 이상 통독을 하며 교정을 보는 노동은 또 어떠한가. 더구나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여야만 비로소 인쇄소에 넘길 수 있던 시절이었다. 교열교정이 끝난 원고는 경무국 도서과에서 원고 검열을 마친 후 찾아가야 했다. 보통은 편집이 완료된 이후에도 2주쯤 걸리는 까닭은 이 검열 때문이었다. “어느 날에나 편집자의 손에서 신선한 원고를 직접 인쇄소에 회부하는 세상에 살아볼까” 그리 한탄하는 김교신의 일기를 읽고 있자니, 그 “어느 날”을 살아가면서도 마감일을 툴툴거리는 우리네 일상이 부끄러웠다. 인쇄소의 상황도 지금 같지 않았다. 새벽 한 두시까지 인쇄소 직원과 함께 앉아 최후 인쇄상태를 점검하는 일도 오롯이 김교신의 몫이었다.

 

그렇게 ‘자식처럼’ 귀하게 만들어낸 잡지를 구독자들에게 우편물로 보내고 서점에 가져갈 때면 마음 한 가운데 뿌듯함도 일렁였을 터인데, 서점에서 일하는 이들의 수근거림은 김교신에게 또 하나의 상처였다.

 

제27호 나오다. 부업으로 하는 일이라 학년말 신학년을 당하여 부득이 늦게 되었다. 잡지를 시내 서점에 배달할 때마다 ‘이것도 잡지라고’ ‘팔리지 않는 잡지’ 등등의 말이 귀에 거친다. 때로는 모욕에 가까운 광경도 당한다. 물론 조선 사람들이요, 예수 혹은 기독이란 것을 그 간판에 관계한 서점들이다. 저편에서는 사실을 말할 뿐이겠지만, 이편은 부흥회나 참석하는 셈으로 매삭(每朔) 이 경멸을 당하기를 향락하니 감사. 가장 유효한 신앙 부흥은 예수의 이름 연고로 모욕 받는 때에 온다.

 

『성서조선』의 본 뜻과 무교회 신앙인들을 오해하여 받게 되는 수모들도 많았다. 권위나 자격을 의심하는 ‘무자격론’부터 교회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음모론’까지, 그가 당한 모욕을 다 합치면 참으로 장수하였을 터인데, 그리 보면 김교신의 짧은 생애가 안타깝기만 하다. 애정을 가진 지인들도 ‘말’로 거드는 일이 많았다. 금전적으로도 체력 면에서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만 그치라는 충고도 진심이었을 거다. 그 단단하던 이가 무리한 일정으로 종종 병도 앓았고, 병석에서도 책임감에 교정을 보고 인쇄소에 넘기는 모습을 보며 어찌 그런 조언이 나오지 않았겠나!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 김교신의 이 신심(信心) 가득한 ‘자선사업’은 일 년을 넘기면서 소망스런 결실을 맺게 된다. 신학교에 다니는 한 학도는 도서실에서 접한 『성서조선』을 보고는 소급하여 보고 싶은 마음에 김교신에게 편지를 쓴다. 집에서 용돈이 다음달 20일에나 오는데, 그럼에도 얼른 사서 보고픈 마음에 쓰노라고. 미리 보내주면 반드시 금액을 지불할 것이요, 만약 그리 안한다면 자신이 다니는 신학교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보내 자신을 책망해도 된다는 양심어린 고백까지, 한 호도 빠지면 안 된다는 ‘깨알’ 당부까지 담긴 그 편지에 김교신은 유쾌한 웃음을 웃었다. 교회 개혁에 뜻을 가지고 있었던 이용도 목사에게도 연락이 왔다. 『성서조선』을 읽었다는 그의 초대로 ‘제도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기회도 있었다. 간도 용정촌의 한 감리교회 목회자로부터 감사편지를 전해 받기도 했다.

 

얼마 전에 이용도 목사의 손을 거쳐 나에게 도래한 『성서조선』은 나로 하여금 크신 은혜를 맛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좋은 편달과 좋은 등대가 되옴을 느끼어, 동지들에게 전하여 그들에게까지도 크신 은혜가 되었음을 내가 믿습니다. 이제 저에게 더욱 크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귀한 글을 주옵시니 선생님의 후의에 감사하오며 아울러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되어지는 일임을 깨달아 더욱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이 내내 계시사 주님의 참뜻을 드러내시는 사명을 다하시이다.

 

한 목회자는 ‘매일 정오 포소리가 날 때마다 이 잡지와 독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약속까지 전해왔다. 그야말로 일 년 여간 성실과 인내로 김교신이 뛰어온 노력에 위로와 힘이 되는 글들이었다. 물론 인간의 ‘알아줌’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러나 사람은 ‘감응’하는 동물인데, 돌아오는 응답 없이 어찌 이 고단하고 벅찬 일을 감당하겠나! 이런 저런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하루씩, 한 호씩, 그렇게 일 년 여를 버텨낸 김교신은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자신의 각오를 다졌다.

 

『성서조선』은 필경 종말까지 소수일지는 다수일지는 모르나, 이 방법으로써 벗을 구하리라.”(1931년 7월 8일 일기)

 

그리고 그의 이 결심은 그의 동시대뿐만이 아니라 반세기후 아니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벗들의 감응과 응답을 받고 있는 중이다. 1996년 어느 늦가을, 낯선 미국 땅 하버드 옌칭 도서관 한국관 지하의 어둡고 축축한 한 구석에 뭉텅이로 쌓여있던 먼지 가득한 모습으로 『성서조선』을 만나 ‘벗’이 된 나 역시 그에게 감사한다. 그의 성실과 인내가 만들어준 선물이 오늘 ‘숨을 다하고도 아직 저 죽을 줄 모르는 말기 환자 같은 한국 교회’에게 살리는 숨구멍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또한 그의 벗된 우리가 살려내야 할 것은 어쩌면 ‘김교신’이라는 이름 석자 보다는 그가 ‘독박’을 쓰면서도 고집스레 이어갔던 그 사명처럼, 우리 역시 제 자리에서 제 목소리로 토해내는 책임 있는 산 신앙을 스스로 지어내는 그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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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의 그리스도‘론’

- 전집 4권 『성서 연구』 「골로새서 강의」 -

 

 

‘이단(異端)’이란 ‘다르게 서 있다’는 말이다. 같은 이름으로 혹은 비슷한 주장을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끝이 달라지므로 따르는 이들을 미혹케 한다. ‘기독신앙이란 교리 논쟁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는 산 신앙’이라고 주장했던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에게는 물론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던 단어다. 허나,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이 끝내 바로잡으려했던 기독 신앙과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바로 서’ 있도록 함이었으니, 결국 큰 범주에서 김교신은 ‘다르게 서 있는’ 이단과의 한판 겨루기를 피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교신은 이단과 치열하게 겨루었던 ‘정통(正統)’이다. 바르게 통하는 이다. 특히 그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는 ‘정통’의 범위를 기독론 교리논쟁을 통해 ‘합의’를 본 신조로 ‘좁혀’ 보더라도 ‘바르게 서’ 있다. 골로새서 1장을 “간결하고도 충족하고 조직적인 기독론”이라고 평가하는 김교신은 그리스도를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로새서

1:15) … 그러므로 예수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한

14:9)고 하셨고, 히브리서 기자도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채의 형상이시라”(1:3)고 증거하였다.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환영이요(요한 1:18) 그리스도를 보고도 하나님을 못 본 자는 영적 맹인이다.(요한 14:9) ‘먼저 나신 자’란 것이 원문에는 prototokos인데 관사가 없다. 관사가 없는 것은 장자(長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일층 밀접한 것으로 표현한 것인데, 우리 역문에는 나타낼 수 없다. … 먼저 나신 자 즉 장자는 하나님이 ‘낳으신’ 것이요, 만물은 ‘만드신’ 것이므로 그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러스트/고은비

 

 

이렇듯 김교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본체’에 있어서 다른 피조물들과 같지 않다는 신앙고백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까닭에 인간 ‘예수’와 하나님의 육화된 영(얼)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따로 보았던 류영모는 “우치무라와 김교신은 정통이고 톨스토이와 나는 이단이다”라고 말했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한 본체라고 고백한 ‘칼케돈 신조’(451년)에 의거하면 류영모의 평이 맞다. ‘정통’ 기독신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에서 성부와 동일본질이시며 인성에서는 죄 없으신 것 외에는 우리와 동일본질”이심을, “신성에서는 만세전에 성부에게서 나셨으나 인성에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야 하니 말이다.

 

분명 김교신은 ‘장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에 참여한 존재로서 모든 피조물을 “그의 손으로 지은” 존재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공교한 말”로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케하는 이들, 즉 이단을 배격해야함을 역설하는 바울의 논조에 적극 동조하면서, 김교신은 골로새서 묵상에서 그 어조를 재차 강하게 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2:4) …이 절의 ‘공교한 말’은 성서중에 여기 한번만 쓰인 자이다. … 남을 ‘설복시키는 언사’이다. 납득시키는 힘을 가진 언사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이지적이요, 변증적이요, 철학적 또는 신학적으로 되는 것이 그 특색이다. 예컨대 그리스도나 석가나 공자나 마찬가지로 성현으로 치고 그 교훈을 배우면 가(可)하고, 그 진리를 내 생활에 섭취(攝取)하면 족한 것이지, 하필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를 구주로 숭배하며, 특히 그 십자가상의 피의 속죄라느니, 부활이니, 재림이니 하는 기괴한 일을 말할 것은 무엇이냐고 하는 것이다. 즉 인간 고유의 오만심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에게 종속하는 일 없이 이성의 무한 발전과 인격의 수양, 완성을 시사하려는 것이니 이것도 ‘공교한 말’의 하나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한국에도 ‘구약’이 있고, 동양의 성현들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노라고 인정했던 김교신이, 아니 무엇보다도 ‘장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며 우리도 ‘차자(次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된 삶이라고 고백했던 그가, 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연합’함으로써 모든 인간 실존의 불안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과 고통의 현장에 담대하게 당당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설 수” 있다고 천명했던 그가, 예수와 그리스도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장자’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이루어냄을 어찌 ‘이만큼’만 설명하고 말았을까?

 

이 질문은 같은 성서조선 동인이면서 김교신의 막역한 친구였던 함석헌도 가졌었나 보다. 하여 오랜 기도와 묵상과 신학적 고민 끝에 함석헌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따로’ 보기로 결론지었다. 하여 그는 소위 ‘정통’ 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받게 되었다. 류영모의 영향이 제일로 컸다. 류영모는 ‘삼위일체’라는 논리가 서양 교리사의 특수 정황에서 나온 인간적 궤변이라고 비판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 안으로 온전히 육화되어 인간과 연합한 신성을 류영모와 함석헌은 ‘그리스도’ ‘얼’ ‘하나님의 속사람’이라고 보았다. 루아흐와 다르지 않고 실은 성령과도 동일하다는 말이다.

 

어머나, 이러면 큰일이다. 삼위(三位)가 이위(二位)로 줄어드니 말이다. 무엇보다 예수의 신성이 위협 내지는 치명적인 손상을 받으니 그야말로 끝이 달라 보인다. 김교신이 바울과 더불어 그렇게나 경고했던 ‘공교한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태초부터 존재했고, 하여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함께 참여했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일 뿐이라면, 예수의 선재성이나 유일성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으니 그야말로 ‘이단’사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 점에서 예수와 그리스도를 한 번도 ‘떼어서’ 생각해본 바 없는 김교신은 ‘정통’이라 평가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그럼에도 김교신이 같은 본문에서 남긴 다음의 구절들은 내게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20세기의 오늘날에도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안에만 임한다’느니 ‘교회 외에 구원이 없다’느니 하면서 잠꼬대를 부리는 편견자가 한둘뿐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에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벌써 황차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의 지파이며 유대인 중의 유대인인 것을 자랑하던 바울이 이 진리-비의(秘意)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풍성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은 첫째로 바울의 신경 계통이 지극히 건전하였다는 것과 둘째로 과연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깨달음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 하나님은 유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간격을 두시지 않고, 구교도가 생각하는 것처럼[최근에는 바꿔야하는 표현이겠다. ‘근본주의적 개신교도’가 생각하는 것처럼] 구교와 신교 사이에 장벽을 세우지 않으시며, 교회인이 생각하듯이 교회와 무교회 사이에 구제와 멸망의 거구(巨溝)를 세우지 않는다.

 

교회 ‘밖’에서도 구원상태를 누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예수와 그리스도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신앙고백은 내 신앙과 신학적 프레임에서는 ‘여전히’ 옳다. 예수 그리스도가 ‘장자’였음 역시 그렇다. 구약의 시대에, 아니 언어가 생기고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에 하나님의 영을 제 안에 받아 ‘연합’하여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 인간들이 전무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예수는 ‘임마누엘’의 삶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살아낸 ‘장자’다. 하여 ‘상징’이 되고 ‘의미’가 되고 ‘중심’이 된 유일의 존재다.

 

마치 광야의 구리뱀이 높이 들리듯이 십자가의 예수가 높이 들렸다는 것은 그의 피가 마술적 힘이 있어 우리 죄를 씻어낸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다. 무한이요 절대인 하나님을 인간이 어찌 다 드러낼까. 오직 제 안에 하나님의 영을 받고 연합한 삶과 죽음(그리고 다시 삶)으로 표현함을 통해서만 그 분을 보일 수 있을 뿐이니,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속사람은 오직 그와 연합하여 살아간 인간을 통해서만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세 번 째 위(位)’는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한 인간의 자리이다. ‘차자(次子)’는 오고 또 올 것이다. 그러나 ‘임마누엘’된 삶의 의미를 전하고 힘을 부여하는 상징은 첫 아들, 장자 하나면 족하다. 그래서 여전히 ‘예수는 그리스도다.’ 그래서 결국 다시 ‘삼위’는 ‘일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받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비밀을 깨달은 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반드시 제도교회 안, 특정 교단 안이 아니어도 말이다. 이렇게 고백한다면, 이 말들은 김교신이 못 다한 신앙고백의 끝을 잡고 이은 설명일까 아니면 그가 그리도 경계했던 ‘공교한 말’일까?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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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3)

 

‘염려’없는 노동

- 전집 4권 『성서 연구』 「기독신자의 처세 원리」 -

 

 

임금피크제를 놓고 노사정간 의견조율이 안된다고 한참 시끄러웠다. 극적 타결을 보았다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결국 앞으로 차차 의논하며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데‘만’ 합의를 한 모양이다. 그럴 일이다. 서로 “네가 양보해라”라고 주장하는 협상테이블에서 무슨 실질적인 합의가 나오겠나. 직업안정성이 있는 정규직이 날로 줄어드는 이 마당에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정규직 ‘부모’ 세대에게 ‘자녀’ 세대인 청년들의 고용창출을 위해 봉급을 깎자는 정부와 기업의 감성팔이는 생계형 노동현장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정서에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깎아서’ 청년들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어엿한 직장을 마련해준다면 모를까, 결국 더 싼 값에 유동적으로 대체가능한 임시계약직을 늘려놓고 ‘청년일자리창출’이라고 ‘아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실은 그간의 진행방향을 볼 때 그 가능성은 ‘농후하다’).

 

더구나 함께 논의되는 ‘일반해고 규정’은 임의대로 마음껏 해고하는 수퍼갑질을 행사할 법적 권한을 기업 경영진들의 손에 쥐어주기 십상이다. 화가 난 서민들의 댓글은 한결같다. 우선 국회의원부터 임금피크제 하자, 일반해고규정은 공무원부터 적용하자는 주장부터, 일 안하고 월세로 펑펑 쓰고 사는 건물주들에게는 왜 고통분담을 요구하지 않느냐는 주장까지! 결국 성실한 노동으로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서민들과 노동형 중산층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읽혔다.

 

 

 

 

노동이 더 이상 정당하고 합당한 대가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세상! 숨 쉴 시간조차 없이 달려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은 이제 자조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서열화한다. 바야흐로 신(新)신분제의 도래다. 부모가 누구인지, 아니 할아버지가 어떤 경제적·정치적 ‘신분’인지가 나의 미래를 보장한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적으로 떳떳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라’고 외치던 양심적 청년들에게는 구금과 수천 만 원의 벌금형이 행사되고, 분명히 ‘불법’인 상습마약복용은 힘 있는 기득권층의 자제라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포된다. 마치 오래전 봉건제 사회처럼 이제 ‘꿈과 희망’이라는 미래보장형의 단어들은 ‘잘난 부모’ 만나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난 아이들에게만 주어져있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성실히 살아보겠다고 200만원~3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밤낮없이 뛰는 서민 가장들의 노동의 대가를 이리저리 융통하여 경기를 살려보겠다니... 그야말로 벽돌 밑장 빼서 위에 얹는 꼴이지 뭔가. 결국은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말이다. 무노동, 혹은 과대평가된 노동의 금전적 대가에 대한 합리적 세금 부과가 먼저라는 것은 너무나 ‘합리적’인 생각인데, 하필 의사결정권자들이 대부분 ‘무노동과 과대평가된 노동임에도 천문학적 대가를 받는’ 경우에 해당하다보니 그쪽 영역은 건드릴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이 나올까. 강남 몫 좋은 곳에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는 집안 자손이면 그걸로 이번 생은 ‘할렐루야~’다.

 

이런 시절을 살아가면서, 성서적 가치를 이 땅에서 살아내고자 모인 공동체인 교회가 ‘대안’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동 없는 부, 아니 노동의 윤리성조차 묻지 않은 채 무조건 ‘헌금 많이 내는 교인이 경건한 교인’이라는 획일적인 메시지가 선포되는 교회 강단이 여전히 많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예수의 산상수훈은 이렇게 ‘교회헌금을 많이 하라’로 등치되며 애용되는 설교의 본문으로 등장한다. 부자들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다. 구조조정을 당하여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신자들에게조차 ‘걱정말라’고, ‘믿음의 분량으로 헌금을 하면 결국은 잘 살게 된다’고 설득하는 설교에는 여지없이 이 본문이 등장한다.

 

정말 그럴까? 새들도 먹이시고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선포하신 예수의 설교(마태복음 6장, 누가복음 12장)는 있는 돈 탈탈 털어 교회에 헌금을 하면 앞으로 살아갈 염려는 붙들어놓아도 된다는 메시지인가? 이 본문에 대한 김교신의 묵상을 나누어 본다.

 

… 염려라는 원어 merimnao는 분파, 분배 등의 뜻으로부터(고린도 전서 1. 12-13 및 동 7. 34 참조) 염려, 초려 등의 뜻이 되었다. 땅과 하늘,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 마음을 이분(二分)하는 일이 곧 가장 증오할 일이요,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제22절에 네 눈이 “성하면”이란 희랍어의 haplous 즉 ‘단일(單一)’이란 뜻이므로, 이 구는 ‘네 눈이 단일한 목적을 향하면 전신이 밝을 것이요’라고 번역할 수 있다. … 2개 이상의 목적을 관망하는 눈은 ‘흐린 눈’이요, 하나님이 꺼려하시는 것 중에 ‘두 마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음은 십계명의 제 1절을 보아도 잘 알 것이다. … 요컨대 믿으려거든 단일하게 믿으라. 마음이 이분(二分)하는 거기서부터 벌써 신앙이 아니요 헛된 일이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사람이 어찌 먹고 사는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같이 아사(장기적비고용상태) 아니면 과로사(1인3역이 요구받는 노동혹사상태)를 할 경쟁적 직업 환경에서 어찌 ‘염려’가 없을까? 김교신은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의 이 말씀이, 하늘만 쳐다보면 다 해결된다는 맹목적 신앙도, 있는 돈을 다 털어 교회에 헌금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신다는 투자성 신앙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성실한 노동은 게으르면 안 될 일이다. 다만 ‘두 가지 마음’을 품는 ‘염려’가 헛된 일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괘씸한 일이라는 거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그것에 궁극적 마음을 두고 신자의 마음을 양분하고 눈을 ‘흐리게’하지 말라는 권고이다. 결과에 대한 염려는 불신앙이라는 말이다. 의롭고 성실하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이 세상에서, ‘그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히 제 일을 해낸 뒤라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다. 행여 ‘먹고 살지 못하게 될까봐’(소위 ‘잘릴까봐’) 일하면서 불의와 타협하고 억울한 사람들 짓밟지 말라는 말이다. 신자의 마음을 양분하여 더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데 비중을 두고 투자하듯 헌금하지 말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노동 없는 부가 양산되고 ‘금수저’라고 찬양받는 이 시절에 대한 신앙적 물음 없이 먹고 입고 마시는 일에 신자의 눈을 ‘흐리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도바울도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하였다. …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과 ‘근로 절검하라’는 교훈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요, 참으로 신종의 생활에 있어서 그날그날에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는 받은바 천직에서 분골쇄신으로 자자근로하여 ‘아버지가 지금도 노작하시니 나도 노작하노라’(요한복음 5장 17절)는 그 아버지를 초사한 자녀의 생활이 자연히 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고 하필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두려워해야 한다.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는데” “솔로몬의 지극한 영광”같은 삶이라고 여호와를 찬양할 일이 아니다. 목숨을 일각도 더할 수 없는, 하는 만큼 해 보았자 들의 꽃만큼도 아름답거나 영화롭지 못할 옷과 음식을 위한 ‘염려’(두 마음을 품음)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 본문의 핵심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성스럽다.’ 성(聖)이 무엇인가?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이다. 힘 있고 돈 있는 특정한 권력층이라 해도 인간이 마음대로 소유선포를 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이 ‘성’스러운 것이다. 성서는 그 처음부터 노동하시는 신(神)을 고백한 텍스트다. 이 성스러운 노동은 모든 인간이 누려할 권리이며 의무이다. 많은 이들에게 성실하게 노동할 기회를 박탈하는 자, 또한 일하지 않고 입고 먹고 마시려는 자, 심지어 그런 ‘금수저’를 입에 물고 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두려움으로 마태복음 6장을 다시 읽어볼 일이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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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2)

 

‘기도의 자살(自殺)’

- 전집 4권 『성서 연구』 「주기도의 연구」 -

 

 

우리나라 교인들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경우도 드물 거다. 물론 일찍이 사도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지만, 적어도 시간을 따로 내고 특정 공간에 모여 함께 하는 기도로만 보자면 단연코 한국 기독신자들이 최고다. 거의 모든 교회가 하고 있는 새벽기도회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전통이거니와 금요철야기도회, 봄·가을로 진행되는 ‘특새’(특별새벽기도회)까지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기도회는 우리나라 교인들에게 교회부흥과 영성훈련의 집중적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뿐인가? 수험생 부모들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기도회, 청년들의 배우자를 찾기 위한 기도회…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기도회가 존재한다. 그야말로 영성 충만한 신앙심이다. 개인적 기도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구국기도회는 또 얼마나 잦은가? 중보의 힘이야 성서도 증언하는 바이고, 회중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위야 지극히 ‘성서적’이지만, 요즘 행해지는 구국기도회의 기도제목들을 들어보면 의아하다. 도대체 누구의 뜻이 이 땅에 도래해야하는 건지… 유대-기독교 신앙이 강조해온 기도의 방향성이 완전히 뒤집혔다.

                                      일러스트/고은비

 

이런 마당에, 주기도문을 풀이하면서 기독 신앙이 말하는 기도의 정수를 소개한 김교신의 「주기도의 연구」는 우리가 한 번 더 주목해 보아야할 내용이지 싶다. 기도를 “종교의 맥박”이라고 보았던 김교신은, 성서 안의 모든 기도 중에서 원문 57자로 이루어진 예수의 기도가 “구신약 66권이 전하는 기독교의 전체 즉 우주 경륜의 대진리”가 포함된 기도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그의 통찰력은 우리가 주문처럼 생각 없이 반복하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풀이하는 부분이다.

 

‘거룩하여지옵소서, 이름이, 당신의’라는 일구(一句)는 전혀 간접으로 소원을 진술한 것이 되었다. 지극히 신성하신 하나님 자신에 관한 일인 때문이다. 또한 그 의미하는 바가 사람의 힘으로써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직접 자신으로써 거룩함을 나타내심도 아니요, 하나님이 인류와 만물을 통하여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을 일컫는 것이므로 간접으로 소원을 진술케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유난히 질문이 많았던 나는 주기도문에서 이 부분이 항상 궁금했다. 이미 ‘거룩하신’ 여호와는 왜 굳이 신자들의 입을 통해 당신이 거룩한 존재임을 자꾸 확인받으려 하시는 걸까? 우리가 매주일 주기도문을 외우지 않으면 여호와는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분인가? 머리가 크고 신학을 전공하면서, 특히 본회퍼의 『행위와 존재』를 읽으며 나는 내 질문의 답을 찾아갔다. 그럼 그렇지. 그 답을, 김교신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류의 숭경(崇敬)을 기다리지 않고라도 본래 거룩한 것”이지만,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거룩함을 오직 “그 만드신 만물로 보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거룩하여지옵소서’라는 말은 hagiastheto, be hallowed 즉 holy(거룩)하게 하는 뜻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돌리는 것 혹은 토기일지라도 제단용으로 성별한 때에 거룩한 것이 된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질에 의당히 돌려야 할 존경과 숭배를 가지고 지성하신 하나님께 대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룩하여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우리가 무엇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성별하는지, 무엇이 ‘하나님의 것’ 즉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공평하게 골고루 누려야하는 은혜의 부분인지를 깨닫고 이를 구별하며 매일 삶으로 살아낼 때 비로소 이 땅에서 드러나는 거다. 주일 예배, 새벽기도회 열심히 나와서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나의 욕망 목록들을 나열하는 것은, 적어도 ‘거룩’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라고, 김교신도 말했다. 다만 남들 다 자는 시간에, 혹은 남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시간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 기도회나 기도하는 신자가 경건해지고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어떤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는 기도일까?

 

…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대신하는 일이 없이 만물 창조하신 주를 창조함을 받는 만물보다 더 경배할 줄 알게 되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여 상응한 숭경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소이(所以)의 하나요, 둘째로는 유대 사람과 기독자가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 19:2, 베드로전서 1:15)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로마서 12:1) 하나님을 거룩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시는 것이 된다.

 

내 욕망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는 아무리 간절하여도 그건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자면) ‘마술적’이다. 구약시대 예언자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을 꿰뚫은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우리 기도의 방향은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라고.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기도의 정수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게서 나타났다. 김교신도 언급하듯이 예수는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 영화롭게 하였나이다.”(요한복음 12:28)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뜻을 나나 내 공동체의 이기적 욕망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 이름이 영광되게 드러나실 수 있도록 몸으로, 삶으로 드리는 기도! 하여 김교신은 ‘기도는 결국 자살행위’라는 고백에 동의한다.

 

기도하는 자 자신의 뜻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것이니 이런 모순은 다시없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주기도의 이 절구를 칭하여 ‘기도의 자살(自殺)’이라고 하였다. 바른 말이었다. 기도는 자의를 달성하려 하는 것인데 도리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옵기를 기도하고 있으니, 모순이라면 생물이 자살하는 것 이하의 모순일 수는 없다. …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관철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소원이 하나님 뜻에 합치하옵거든…이다. 이 일을 가장 명료하게 가르치신 것은 주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이다. “할 만하시거든 이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 하여 이르되 ‘아바 아버지여, 능치 못하신 것이 없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5-36)라고 하여 삼각산 같은 우뚝한 소원을 진개(陳開)하는 동시에 양초가 여름날 염열(炎熱)에 무르녹아진 것 같은 유순(柔順)이 거기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에게 생명을 내어 놓으셨을 때에 그 만물이 누리도록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숨을 지켜내는 것, 힘세고 부유하고 영악한 이들이 ‘하나님의 것’을 독점하려 할 때에 이를 몸으로 삶으로 막아내는 삶, ‘산제사’와도 같은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여김을 받으신다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구절을 쉽게 읊조릴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은 내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일이면 예배순서 어디쯤에서 주께서 가르쳐주신 저 기도는 방방곡곡 울려 퍼질 거다. 그 기도가 우리에게는 결단과 각오의 선언이기를… 이기적이고 나약한 내 힘으로는 도저히 못하니 ‘여름의 뜨거운 날에 양초가 녹듯’ 그렇게 그리스도에 힘입어 하나님의 뜻에 내 뜻과 의지가 녹아들어가기를 기도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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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1)

 

응시의 윤리

- 전집 4권 『성서 연구』 「율법의 완성-간음과 이혼」 -

 

 

내가 김교신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거의 ‘완벽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윤리와 도덕에 엄격하다는 점이다. 나 역시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글쎄 내 생각이기만 할지도),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꼴’은 나나 남이나 잘 못 견디는 편이다. 그게 고스란히 드러나는지, 미국에서 목사안수과정을 밟는 중에 받았던 인성 테스트에서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평가인즉, 내가 목회를 한다면 교인들에게 너무 엄중한 윤리적 잣대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가정사로 인해 결국 안수를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족이 길었지만, 내 성향이 그러하다보니 김교신의 ‘극단의 도’가 나는 참 좋았다.

 

김교신의 엄격한 윤리적 수행성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세 배경을 말해야할 것 같다. 김교신은 아주 어려서(네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행여 아버지가 없어 버릇없이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 하셨던 것 같다. 하여 더욱 엄격하게 도덕적 훈련을 시키신 것으로 안다. 유교적 지식에 해박하신 분이셨기에 훈련의 준칙은 유교적 도덕률이 주를 이루었다. 여기 더하여 스무 살 무렵 스스로 기독교인이 된 김교신에게 기독교적 가르침은 ‘전적(全的) 기준’이 되어버렸다. 가정과 일터, 성경공부 모임과 『성서조선』 간행에 이르는 벅찬 일정 가운데서도 성실하고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삼중겹의 도덕 훈련 덕분이었을 거다. 오죽했으면 동료교사와 바둑을 두다 보내버린 세 시간의 여가를 놓고도 산상수훈을 적용했을까. 그만한 일로 ‘손을 잘라버리고 싶은 만큼’의 죄책감을 느낀다면 일상을 어찌 살겠나,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일이다.

 

 

 

 

그런 김교신이었으니, 만약 그가 요사이 매일 들려오는 사건·사고들을 듣는다면 어찌 반응했을지 궁금해진다. 얼마 전에는 놀이시설 여자 탈의실과 샤워장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동영상을 팔다 잡힌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그런 행위로 생활비를 마련하겠다는 발상도 어이없지만, 그걸 또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은 뭔가 싶다. 하긴 ‘하의 실종’이니 ‘시스루 룩’이니 ‘입다 만 것 같은’ 패션도(음, 나도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인가보다.) 결국엔 입는 이나 보는 이나 ‘몸’의 응시를 염두에 둔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여, 오늘날의 문화를 ‘육체문화’라고 부르는 사회학자도 있다. 사람이 언제 육체를 가지지 않은 적이 있었나? 왜 오늘날을 유난히 ‘육체문화’라고 이름붙이는 걸까? 인간 육체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전통사회에서 육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생식과 노동이었다. 때문에 튼튼한 몸이 기대되었고 그 몸은 감상용이 아니라 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몸이었다. 그러나 소위 ‘현대(modern)’ 사회로 진입하면서 생산 수단으로서의 몸의 기능은 상당부분 축소되었다. 여전히 다수의 서민들은 노동을 하지만 그것이 꼭 ‘육체적 힘’과 직결되는 노동만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노동이나 신체의 부분노동 측면이 더 많다. 또한 ‘생산’하는 자녀들의 숫자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남은 몸의 활용도는 ‘즐기는(성적 쾌락을 포함하여)’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 거다. 상업적 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후기 상태에 와 있다 보니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몸은 이제 소비의 도구를 넘어 사람을 ‘등급매기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나의 몸을 경이롭게 쳐다봐 준다면 그것이 ‘경쟁력’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이다. 타인의 시선을 훔쳐라! 나를 보게 만들어라! 이러한 응시의 명령이 마치 도덕률이라도 되듯 우리의 문화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너도 나도 ‘탐나는 몸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니 맞다. ‘육체문화’의 도래다. 이제는 몸에다가 도덕 판단을 부여하는(‘착한 몸’이라는 표현)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마당에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사람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28)라니! 예수의 윤리는 과연 이 ‘육체문화’의 한가운데서 적절한 윤리적 선언일까? 아니 세상을 살며 이 원칙을 적용할 수는 있는 걸까? 이에 대해 김교신의 생각은 단호했다.

 

간음(moicheia)이란 유부녀와 그 본 남편 이외의 딴 남성과의 불륜의 관계를 칭함이니, 이것이 모세의 율법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즉 타인의 처는 범할 것이 아니며, 인처(人妻) 된 자는 다른 남성과 관계할 수 없다는 것이 모세 계명의 주안점이었다. … 그런데 그리스도는 이에 대하여 ‘오직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여, 예와 같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진개(陳開)가 시작된다. 즉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 벌써 간음을 범한 것이라고. 행위의 말엽(末葉)을 논함이 아니요, 그 동기의 대두(擡頭)하는 곳을 다스리신다.

 

그러게 말이다. 모세의 법 지키기도 힘든 시절에 예수는 더 근본적인 것을 요구하신 게 아닌가?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던 당시 문화권에서는 실제로 율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처첩을 거느리는 욕망을 실현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은 ‘경건한 유대인’입네 자부심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많았다. ‘임자 없는 여인’이라면 ‘보고’ 품는 음욕쯤이야 무엇이 문제이겠나? 더한 일도 가능할 터인데... 지참금을 내고 데려오면 될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응시’의 윤리성이 더 근본적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간통이 형사법 상의 효력이 있던 당시에도 법적인 관건은 현장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했어?” 부부 관계의 신뢰성이 깨진 마당에 대부분의 남편과 아내 역시 이게 제일 중요한 집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김교신이 읽어낸 예수의 윤리는 이런 법적 실체성을 넘어선다. 문제는 오히려 ‘동기’요 ‘시선’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무릇 여인(혹은 남자)을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는 유부녀에 한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볼 때에 사념을 품음은 이미 간음을 행한 것이다. 예가 아닌 언사와 몸짓이 간음인 것은 물론이다. 누가 능히 핑계할 자인가.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 백체 중에 하나를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유익하고,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베어 버려라. 네 백체 중에 하나를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유익하니라. … 눈과 손을 운운한 것은 육체 중에서도 가장 근이(近易)하게 사념(思念)의 중개를 하는 기관인 까닭이다.

 

또 나왔다.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빠지느니 눈과 손을 우리 몸에서 떼어 내어 버리는 것이 낫다는 ‘극단의 도’ 말이다. 더구나 김교신은 남녀 쌍방에게 이 ‘극단의 윤리’를 제안했다. 이를 ‘율법주의적’으로 적용한다면 성한 눈과 손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아가 ‘이혼 금지’라는 더 엄격한 도덕규범을 제시한 김교신이고 보면, 오늘날 그의 윤리가 많은 기독 신앙인에게 은혜롭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김교신이 예수의 윤리에서 발견한 것은 ‘무조건 따라야하는 형식주의적 금지조항’이 아니었다. 김교신이 페미니즘을 모르던 인물임을 고려한다면 그 시절 기독교적 결혼의 근본 원리에 대한 그의 해석은 여성신학자의 입장에서도 솔깃한 부분이 있다.(물론 부분적으로)

 

기독교의 결혼관은 금전, 권세 등을 위한 책략 결혼이 아님은 물론이요, 단지 생식(生殖)을 위한 것도 아니므로 생남(生男)하지 못한 것으로써 칠거지악의 하나로 셀 수 없으며, 쾌락을 중심으로 한 것도 아니니 연애지상주의도 아니요, 우애결혼도 아니다. … 인간의 제반 관계 중에 부부의 관계처럼 오묘하고 심원한 것이 없으며, 이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에 직접 관계한 원시적 제도였다. “사람이 홀로 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를 위하여 도와주는 짝을 만들리라.”(창세기 2:18)

 

‘에제르 케네그도’(ezer kenegdo), ‘돕는 배필’로 번역된 이 단어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곁에 서서 동등하게 마주보고 응시하며 도움을 주는 짝’이라는 말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오고가는 관계의 신비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거야 다른 동물들도 받은 축복이니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다. 허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독처’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자유와 창조성을 자꾸 자기 확장과 타인소유에 사용하려 할 유혹을 가진다. 그걸 서로 견제해주면서 과한 욕망은 눌러주고 포기하려는 마음은 격려해주며 전인격적 관계 안에서 서로를 건설해가라고 만든 최초의 공동체가 바로 ‘나-너’(마틴 부버)라는 짝-공동체이다.

 

이 창조원리를 아는 신앙인이 아무런 사이도 아닌 몸을 뭐하러 훔쳐보겠나? 뭐하러 탐하겠나? ‘소비할 대상으로서의 몸’이 아니기는 내 짝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예수의 윤리를 ‘극단적’으로 읽어낸 김교신의 원칙은 이 시절에도, 아니 오히려 이 시절이기에 더욱 더 강조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응시에도 윤리적 시선이 필요하다. 전인격체로 바라보고 ‘너’로 마주할 윤리적 의무 말이다. ‘응시의 윤리’!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뽕띠도 말했던 이 윤리적 시선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꽉 차 있을 때에야 자연스럽고 성실하게 일상 가운데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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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완성, 은혜

- 전집 4권 『성서 연구』 「율법의 완성」 -

 

 

“이 바리새인 같으니라고!” 만일 이런 말을 들었다면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는 매우 불쾌할 것이다. 바리새인에 대해 선입견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바리새인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꾸짖으셨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신약 복음서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은 사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냉정한 율법주의자로 묘사되었기에, 기독 신자들은 일단 ‘심정적으로’ 바리새인들을 싫어한다. 더 극단적인 경우는 반(反)하나님적이고 불신앙적이며 위선자, 안하무인에 거짓신앙인과 동의어로까지 생각하면서 반감과 혐오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바리새파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졌던 대안적(혹은 대조적) 삶의 기준이었던 ‘여호와의 규례’(율법)를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경건하게 지켜내려던 종파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마케도니아에서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강대국의 지배를 연이어 받는 동안, 사실 이 바리새파보다 더 ‘경건’하게 ‘여호와의 규례’를 붙든 사람들도 드물었다. 기원전 2세기 즈음 헬레니즘 문화와 그리스적 종교 행태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며’ 이스라엘의 신앙을 위협하던 시절,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하시딤의 정신과 실천을 이어받으며 생겨난 신앙의 사람들이 바리새파이다. ‘헬라적’인 삶을 따라야 출세하던 시절에, 나아가 유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종교적 탄압과 고달픈 삶으로 이끌던 때에, 그야말로 여호와의 율법대로 세상을 살아내려 스스로를 시대적 조류로부터 ‘분리’(‘바리새’의 뜻)해낸 이들이 바리새파였다.

 

이교적 신앙 제의에 사용되었던 고기나 음식들은 아무리 싸도, 아무리 맛나도, 아무리 쉽게 구입할 수 있어도 먹지 않겠다. 반드시 십일조를 떼어드리고 난 음식들, 유대율법에서 ‘정결하다’고 명시된 먹거리만 먹겠다. 아무리 큰 이익을 보는 일이라 해도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겠다. 여호와께서 쉼의 거룩성을 선포하신 날이다. 말씀 묵상과 금식 기도를 쉬지 않겠다. 이런 경건한 신앙과 선한 의도, 엄격한 실천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칭찬과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예수도, 김교신도 이점은 인정했다.

 

근래에 ‘복음’이라는 말이 다종다양으로 혼용케 되었으나 본래의 의의는 바리새교인과 같이 엄격하게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완전한 의(義)에 달하려는 율법주의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신앙의 의에 달하는 은혜주의를 칭하여 복음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바리새교인의 노력이 있는 후에라야 복음다운 아름답고 반가운 소식으로 들리며, 율법 밑에서라야 은혜가 고마운 줄 알게 된다. … 결코 바리새교인의 진지한 노력 그것을 배척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복음답게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바리새주의에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려 ‘분리’ ‘구별’의 기준들을 세부적으로 나누었던 율법조항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경멸과 비난의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나 실천이라 해도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적용된 결과에 대한 예측 없이 언제나 지켜야하는 ‘교리’나 ‘주의’로 굳어버리면 오히려 ‘악한’ 도덕적·종교적 칼날이 되어 사람들을 옥죄고 죽이는 법이다. 토라만을 경전으로 여기던 사두개파와 같은 보수적 전통주의자들에 비해, 바리새파 사람들은 구전 율법과 랍비들의 해석도 광의의 율법으로 받아들인 부류다. 예수께서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표현하신 내용들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고 싶어 그들이 범위를 넓히고 해석에 해석을 더하는 동안, 어느덧 613개의 범주로 늘어나버린 율법 조항들은 1세기 평범한 유대인들의 삶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굴레가 되어버렸다.

 

당시 평범한 유대인들은 삼중의 세금을 내야만했다. 성전세, 유대지방정부에 내는 세금, 거기다 로마식민정부가 강탈해가는 세금까지 ‘빼앗기고’ 나면 먹고 살 돈도 빠듯했던 시절이다. 아니 그 세금 낼만큼을 벌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체납되는 날수가 많아지면 불법자가 되고, 하여 산으로 도망을 간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안식일이라고 어찌 쉼이 가능할까. 오히려 이들에게서 안식을 빼앗은 사람들을 향해 ‘율법 정신을 지키며 살아라’ 큰소리쳐야 할 상황에, 세부 율법조항에 매여 일하는 생계형 평민들을 죄인 취급하며 그들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고 ‘의롭다’ 자족했던 사람들이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었다. 심지어 자신들은 ‘의롭게’ 안식법을 지키느라 손 하나 꼼짝하지 않으려고 품삯 일꾼들에게 대신 일을 시킨 탓에 생계형 노동자들을 ‘죄인’ 만들었던 바리새인들도 적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이 결코 율법을 나노단위로 쪼개고 세부적인 항목들을 더 늘려서 일거수일투족을 ‘율법적’으로 수행하여 완전에 이르자는 의미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예수께서도 그러셨지 않았나? 성전 한가운데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자신은 율법을 하나도 어긴 적 없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기도하는 바리새인의 모습보다, 한 구석에 어정쩡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죄인이라고 통곡하며 회개 기도하던 세리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 의로운 사람이라고. 오히려 그가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이다.(누가복음 18:9-14)

 

하지만, 어찌 그것이 가능한가? 율법이 정한 금지조항대로 따르고 경건함을 위한 금식과 규례를 모두 다 지킨 바리새인을 놔두고 어찌 ‘죄인’인 세리가 더 의롭다하심을 입을 수 있나? 그게 ‘복음’이라면 세상사는 일이 참 쉬워지겠다. 막 살고 성전에 와서 가슴을 치며 회개만 하면 ‘의롭다’ 인정받겠네? 어이없지만 실제로 많은 개신교도들이 예수가 전한 복음을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예수도 ‘안 지킨’(적어도 ‘값싼 은혜’에 고무된 개신교 신자들이 보기엔) 율법을 우리라고 지킬 이유가 무엔가? 더구나 이 은혜의 시대에? 할렐루야! 구원받기 참으로 쉽구나~.

 

사실 예수 역시 언뜻 보기에는 ‘율법의 파괴자’처럼 보였다. 안식일의 세부 율법사항들을 지키지 않았던 일들, 그러니까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거나 밀 이삭을 까부러 먹는 ‘일’을 한 제자들을 변호해주었던 사건들만 해도 그렇다. 정결 의례에 어긋난 행동을 한 이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먹는 일도, 율법에 불경건하고 ‘더럽다’고 분류된 일들을 하는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말을 섞고 어울리는 것도, 예수는 여러 면에서 “구(舊)도덕의 파괴자요, 반역자”로 불릴 만했다.

 

그렇다면 모순 아닌가? 자신은 율법 조항과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서 어찌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태복음 5:17)고 하셨을까?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아뢰기만 한다면 죄사함을 입는다는 이 ‘은혜’의 복음은 어떤 점에서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인가? 다수의 개신교도들이 마술 지우개와도 같은 값싼 은혜로 해석하고 무책임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김교신은 “율법을 완성하러왔다”는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읽어냈다.

 

도덕률은 표면의 문제가 아니요, 저류의 문제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요, 내심의 문제다. 현대라 할지라도 도덕률은 엄연한 하나님의 부여물이다. 일점일획이라도 폐하기를 용납지 않는다. 완성하고야 말 것이다. … “완전케하러 왔노라”는 원어 plero는 영어의 fulfil 즉 충실, 영일(盈溢)의 뜻이다. 파괴나 배척이 아니라 진화, 발전, 완성케 한다 함이다. … 이렇게 하는 것[세부조항들에 얽매인 율법주의를 파괴하는 것]이 그리스도로 말하면 그 율법을 완성하는 소이(所以)였다. 그 형식으로서는 파괴하고 내용으로서는 더욱 충족한 의의로써 성취하였다. 개개의 조목을 다기다지(多岐多枝)로 세분하여 서기관보다 더 많은 조목을, 바리새교인보다 더 세심하게 실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제반 율법의 행위에 근본 되는 ‘사랑’을 충실케 하는 것이 곧 도덕률 전체를 완전히 실행하는 바이었다. … 사랑이 충실할 때에 우리가 성결함을 얻고 자유함을 얻고 율법은 자연히 행하여지고, 도덕은 형해(形骸)를 벗고 생명이 약동하게 된다. … 그리스도는 능히 그 형해를 털어 버리고 그 핵심만을 끄집어내어 지극히 충실하게 완성하신다.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어 살게 하신 생명이 이 땅에서 제대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율법 정신의 핵심이요 “도덕률의 저류”요 “인간의 내심”이어야할진대,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헤세드’(은총, 은혜)이다. 정죄함이 아니고 용서함이요, 분리가 아니라 감싸 안음이다. 성실하고 착하고 순한 민초들의 일상이 ‘죄’가 되는 환경에서라면 세부율법항목쯤은 훌훌 털고 오히려 ‘은혜’로 인간의 내심을 가득 채우라. 그것이 율법의 핵심이요 완성인 까닭이다. 하나님의 본성인 ‘헤세드’를 내 안에 받아 이를 내 안에서 차고 흘러넘치게 할 때 ‘여호와의 규례’는 ‘주의’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살리는 힘으로 나의 일상 한가운데서 작동할 것이다. 그러니 규례라서, ‘나’만 의롭기 위하여 행하지 말지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생명의 삶을 누리므로 말미암아 그 헤세드로 이웃을 살리는 은혜를 베풀어라. 그게 ‘살아라’하는 창조명령과 ‘살려라’하는 구원명령을 태초부터 인간에게 부여하셨던 하나님의 율법 정신의 핵심이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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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

- 전집 4권 『성서 연구』 「산상수훈」 편 2 -

 

 

결국엔 웃었다. 하지만 순간적이나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걸 보니 마음 한 구석에 ‘교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감정을 추스른 건 잘한 일이었다. 지난 학기말의 일이다. 처음 가본 작은 사학 공간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갑질’의 향연이었다. 대학 강사료가 워낙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갑’이었다. 그래도 아이들만 예쁘다면 나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교수’의 역할이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신의 전공 안에서 얻은 깨달음을, ‘프로페스(profess)’하는 직업이니까. 어느 강단이든, 어떤 대우를 받든, 나는 내 소리를 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초등학생도 아니고,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행정적인 ‘의무사항’들을 빌미로 교무처로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더니 급기야 학기말 성적처리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 거다. 도대체 출석점수를 후하게 주겠다는 교수에게, 학교가 정한 방식으로 일괄적으로 점수를 깎아서 다시 평가해오라고 언성을 높였다. 미리 공지라도 하지, 이게 원칙이라는 데 미칠 노릇이었다. 이미 상대평가로 그레이딩까지 다 마친 작업인데…. 융통성 제로에 소통은 불가했다. 무엇보다 태도가 아주 불쾌했다. 내가 합리적 질문을 하면 말끝마다 “자꾸 이러시면 다음 학기 강의 못 받으세요.”가 답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자 한 학기 내내 참았던 나의 인내심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말았다. 내가 그 학교에 고용된 ‘가신(家臣)’도 아니고 수시로 전화를 해서 어디냐고 묻는 무례함과, 그 어디든 한 시간 안에 당장 달려오라는 어이없음을, 다 참아 넘겼는데 결국은 이렇게 터지는구나! 화내기 직전 스스로에게 정당함을 부여했다. 그런데 순간, 한 학기 내내 참은 게 아까웠다. 아니,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처지를 ‘당하면서도’ 절절매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하여 요구사항대로 고치느라 나의 ‘피 같은’ 하루를 온통 다 써버렸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얼굴 한가득 하고서 그제야 허락도장을 찍으며 선심을 쓰듯 “앞으로는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고 말하는 담당자에게 나는 될 수 있는 한 가장 온화하게 웃으며, 그러나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 제가 다시 온다고 언제 그랬나요? 이제 다 된 거죠? 앞으로 다시는 저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규모가 작은 행정실이었기에 밝은 톤으로 던진 내 말은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시선들이 주는 따가움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우아하게 걸어 나왔다. 그렇게 ‘사람을 사람대접 아니해주는’ 낯선 공간에서의 ‘임시고용’관계를 끝냈다.

 

 

 

 

내공이 깊은 탓은 아니었다. 그 일 아니어도 먹고 살 거리가 많아서 배부른 객기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거다.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시스템에는 굴복하지 말아라. 그러니 할 말은 해라. 그럼에도 온유해라. 온유란 비굴함이나 유약함이 아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는 온유한 자가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김교신도 이 부분에 대해 깊은 묵상을 남겼다.

 

예수는 선언하신다. 강포한 자가 아니요, 온유한 자가 복스럽다고. 이에 ‘온유’라 함은 praus, 즉 온화, 유순, 겸손, 온량, 원만 등을 의미함이다. 성질이 관대하여 훼손, 경멸을 당할지라도 용이히 격노하지 않고, 초급(峭急)함이나 역기(逆氣)함이 없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에게 대하여 … 눈으로 눈을 갚고 이로써 이를 갚는다기보다 차라리 피해 수욕(受辱)한 대로 인내하기에 능한 자 특히 하늘에 불역(不逆)하는 것, 하나님이 내리신 모든 곤고, 환난을 달게 받는 성질을 칭함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자가 복스럽고 장차 땅을 자치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김교신도 글에서 인정하듯이 현실은 그 반대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의 구조가 견고하면 할수록, 온유한 자는 가지고 있던 땅도 빼앗기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자신이 그랬다. 하나님 나라, 그 넓고 광활한 ‘땅’을 선포했던 예수는, 그 땅이 지정학적 경계선을 가지는 영역인줄 알고 ‘제 땅 지키기’에 연연했던 유대의 성전엘리트들, 로마의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법정에서 군중에게 침 뱉음을 당했고” “그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며, 관속들은 손바닥으로 때리는”(마가복음 14: 65) 지경을 당하여서도, “군사들의 온갖 희롱을 당한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힌 때에도 지나가는 자들이 기롱(欺弄)하여 마지않았던” 그 순간에도 예수는 어린 양처럼 온유했다.

 

그러나 할 말은 하셨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 “내 나라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그 예수는 자신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 질서를 믿는 자들 모두가 온유하기를 권했고 온유한 이들을 축복했다. 복되어라, 너 온유한 자여.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그러나 가장 부드럽고 온화하게 평안한 얼굴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 질서를 꿋꿋하게 살아내는 너, 온유한 자여! 너는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이게 어찌 가능한가? 김교신은 온유한 자가 하나님을 향해 가진 ‘신뢰’에서 그 답을 찾았다.

 

오히려 저에게 영웅적 기개가 있었으므로 그처럼 온유한 것이었다. … 사람과 사회를 대하여 온유한 자의 그 온유의 깊은 곳에는 ‘공의로 심판하는 자에게 부탁하는’ 신뢰가 있다. 예수의 경우가 그것이었고 욥의 순종이 또한 거기서 발원한 것이었다. … 그리스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주장하신다. 악자의 난폭에 대항하지 말고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를 호위로 하라. 이랑이 포악하다고 양조차 포악할 것이 아니라 양은 양대로 온유하여 ‘그 생명의 안전은 다만 목자에게 대망(待望)하라.’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방도는 “나를 주의 날개 아래 덮이게”(시편 17:8) 하는 것뿐이다. 그리할 때에 우리들은 소원의 십배, 백배하여 설치(雪恥)도 하고 “권위 있는 자를 그 지위에서 내리치시고 온유한 자를 올리시는 자”(시편 113:6-9, 욥기 5:11, 누가복음 1:52)에 의하여 “장인들이 버린 돌인데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마태복음 21:42), 시편 118:22, 사도행전 4:11)을 보고 그 기이함에 놀라기도 하는 것이다. … 전도(顚倒)가 생기고야 만다. 사상상의 혁명으로써 이에 지날 것은 없었다.

 

물론 동의하는 바다. 예수도 그 날을 믿고 그 믿음을 ‘현재’ 소유한 채 자신의 몫을 살아낸 온유한 자였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의문이 남는다. 결국은 미래에 도래할 그 ‘땅’을 오늘 ‘믿고 사는 것’일 뿐 온유한 자가 현재 ‘땅’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예수가 선포한 이 축복이 나중에 죽어서 저 천국이 네 것이라는 미래적 소망만이 아니었지 않나? 여기, 현재의 세계 안에서도, 관계 안에서도 땅의 소유자가 될 것이라는 선포였지 않나? 나의 이 질문에, 그리고 어느 정도 내 안에 가지고 있던 답을 다시 확인시켜주며, 김교신은 이렇게 묵상했다.

 

현실에 있어서도 강포한 자는 안정을 얻지 못한다. … 저들은 수백 배의 토지를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실상은 아무 것도 소유치 못한 것이다. 마는 이에 반하여 온유한 자, 하나님의 자녀들은 입추(立錐)의 땅을 소유함이 없다 할지라도 지상에서 안강(安康)한 주거를 향락할 수 있고, 아무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모든 것이 유족하여 많은 사람을 부하게 한다.(고린도후서 6:10)

 

‘아멘’이다. 맞다. 이제야 속이 뚫린다. 최근 2~3년 사이에 내가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입추의 땅’이라… 송곳 설만한 자리가 없더라도 ‘권위를 나누고’ ‘소유를 나누며’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온유함으로 살아내는 이는 이 땅에서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이 온통 다 그의 것일 수 있다.

 

현대 관료제(bureaucracy)만큼이나 ‘자리’가 중요한 세상이 또 있을까? ‘자리’가 통치하는 세상에서 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통치권마저 빼앗기는 법이다. 하여 둘이 쓰던 작은 연구실 책상마저 ‘빼앗긴’ 뒤에 한동안은 나도 ‘데스크’(bureau)가 없는 관료의 설움을 느꼈었다.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 갈게요~.” 내 책상이 여전히 거기 있는 줄 알고 찾아오겠다는 학생들의 문자와 이메일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내 존재가 한참 작아지던 때가 잠시 있었다.

 

그 시절 계시처럼 꿈을 꾸었다. 길었던 스토리의 앞뒤 다 자르고, 깨고 나니 ‘르호봇'이라는 단어만 생생했다. 아, 이삭의 세 번째 우물 이름이었지. 수고로이 파 놓으면 빼앗기고, 수고로이 파 놓으면 또 분쟁이 나서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이삭은 분내지 않고 또 다시 묵묵히 우물을 팠지. 그 세 번째 우물의 이름이 ‘르호봇’이었다. ‘장소가 넓어 더 이상 다툼이 없다’는 의미이다. 싸우지 마라, 그러나 포기하지도 마라. 묵묵히, 담대하게, 온유하게 너의 할 일을 계속 행하라. 하여 방학을 맞아 이런저런 상담요청을 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말한다. “종로 2가 ***카페로 올래요?” “선릉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나요~.” 내 일상을 살아내는 한가운데서 시간을 내고 마음을 뚝 떼어 내어 제자들에게 줄 수 있는데, 장소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밥 한 끼 사 먹이고 등 한번 토닥이는 것밖에 해줄 것 없는 스승임에도 발걸음을 재촉하여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맞다. 내가 선 곳이 하나님 나라다. 나도 예수께서 약속하신 그 넓고 광활한 땅을 소유했다. 하여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하는 하루다. 묵묵히, 온유하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자. 그러니 성질 내지 말자! 하하.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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