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44)

 

너희는 참 좋겠다

- 학부모의 편지 -

 

 

2015년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의 잔치, 영원은 진중한 울림을 남기며 마무리되었습니다.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시간속에서 경당 친구들의 성장과 성숙, 더불어 함께함의 놀라운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잔치중에 자신의 딸을 경당에 보낸 학부모님이 경당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생명살림의 교육이 이 땅 가득 편만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친구들아~

 

작년 겨울 너희 학교는 새들마을학교라는 귀여운 이름에서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이라는 묵직하고 긴 이름으로 바뀌었지. 나눠주신 설명책자를 펼쳐보았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빽빽한 글씨로 무려 한 페이지 반에 걸친 이름에 대한 설명을 보며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더구나.

 

오늘 책장 한 모퉁이에서 그 책자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어.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더구나. 학교라는 기관으로써의 제한된 교육의 장을 넘어 사랑의 공동체적 관계로써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가르침과 배움의 길을 창조해 나가고자 하는 정체성과 방향성을 이름에 다 담아내셨더구나.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이루어지는 배움과 만남들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다시 읽는 지금 그 의미가 내 마음에 와 닿는 거겠지?

 

 

 

 

너희들은 참 좋겠다. 요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아주 유명하지. 너희들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 주는 그 드라마에서 골목이라는 건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삶이 공유되는 곳이고 아이들은 그 골목을 누비며 자라나지. “골목은 그저 시간만으로 친구를 만든다”라는 작가의 카피가 그 골목길에서 펼쳐졌을 수많은 사건과 만남을 그려보게 만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희는 이미 그런 골목을 가지고 있더구나. 골목뿐 아니라 너희의 배움을 지지하며 지켜봐 주는 이모 삼촌들까지 있으니 금요일 토요일 밤이면 TV 앞에 앉아 대리만족 하느라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겠더구나.

 

학교 선생님의 결혼식이 너희의 잔치가 되고 너희는 그냥 손님이 아니라 그 잔치의 또다른 주인공이 되더라. 너희가 배우고 익힌 것을 보여줄 때마다 박수쳐주던 이모 삼촌들은 또 어느새 놀랄만한 솜씨로 너희들을 가르치고 너희들이 먹는 음식을 만드시는 선생님이 되시지. 이 관계의 풍요로움이 참 부럽다.

 

너희는 참 좋겠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단순 산술계산이 통하지 않는 곳이더라. 한 친구를 새로 만나는 것이 원래 있던 친구들의 기운에 그 친구의 기운이 단순히 일인분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로 인해 학교 전체가 새로운 기운으로 탈바꿈하는 그런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신기한 곳이더라.

 

 

 

 

작년에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친구들을 보며 선생님들의 세심한 관심과 손길이 그만큼 쪼개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욕심이 담긴 우려를 했었단다. 그런데 너희 학교는 그런 일반적인 나눗셈이 통하지 않더구나. 어엿한 형님이 된 바람빛 학당 친구들의 의젓함과 오랜 시간 관계에 대한 훈련이 깊이 배어있는 친구들이 새 친구들을 맞아 더욱 풍성한 드라마를 만들어 가더구나.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나눗셈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 속에서 더욱 단단하고 깊어진다는 것을 보게 되었단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친구들아! 너희는 함께 모여 있지만 각자 너무나 다르지. 어떤 친구는 이 곳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봄비를 만난 씨앗처럼 순식간에 싹이 터서 쑥쑥 자라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겨울눈처럼 기나긴 시간동안 힘을 모으고 모으며 자신의 봄날을 기다리기도 하지.

 

그렇게 다른 너희들이 서로를 끝까지 사랑하고 도우며 함께 어우러지는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때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 골목길의 판타지는 이 비산동에서 현실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 길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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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43)

 

영원, 그 행복한 잔치에 초대합니다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교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이 시대 고달픈 삶을 영위하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의 학생들입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가향공동체의 이모, 삼촌들이 정성을 다해 일구어가는 교육터전입니다. 경당은 생명살림의 교육을 하고자 5년 전 안양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은 초중고 통합과정의 대안학교입니다. 현재 38명의 학생들과 9명의 선생님, 4명의 자원교사들이 정성을 다해 학교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경당은 매년 연말에 1년간 배우고 누려왔던 배움의 알짬들을 모아 생명의 잔치를 벌입니다. 올해는 12월 26일 토요일 3시에 안양시 동안평생교육센터 3층 대강당에서 열립니다. 그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래는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서 작성한 초대문입니다.

 

 

 

 

12월 26일 토요일 3시, 영원을 누리는 배움터경당의 축제에 초대합니다.

 

2011년 새들마을학교로 시작한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이 5년을 살았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은 것이 많아집니다. 물질로, 사랑으로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을 올해는 더욱더 꼭 뵙고 싶습니다. 배움터경당에서 가르치고 배우면서 넘치도록 누리는 기쁨과 사랑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 기쁨과 사랑이 더 많은 이들에게 넘쳐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라서입니다.

 

저희의 배움과 삶이 모든 이들에게 복이 되기를 간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삶과 배움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계신 여러분들이 저희의 증인이 되어 주세요. 어린 새싹들이, 작은 새들 같은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아름답게 장성하는지그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

 

사랑이 충만할 때, 우리는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순간으로 가득 찬 삶을 이뤄 가고 싶습니다. 그 소망을 담아 축제의 이름을 ‘영원’으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배움과 감격의 길이 지금 이 시대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도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염원을 담아 2015영원 축제의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일찍 오셔서 인사 나눠 주시고,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늦게 오시면, 일찍 가시면 너무 아쉬우니까요. 모든 순간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바쁘신 일이 많으시겠지만 이 시간을 위해 만사 제쳐 두고 달려오셔도 정말 잘했다 생각되실 거예요.

 

배움터경당의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깊은 사랑을 다짐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실현되는 이 영원한 찰나의 순간, 여러분과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떨리는 걸음으로 사뿐히 걸어오세요. 꼭 뵙고 싶습니다.

 

오시는 길은 지하철 4호선 범계역에서 하차하신 후 4번출구로 나오셔서 그 방향으로 쭉 걸어오시면 동안평생교육센터가 나옵니다. 보다 자세한 안내는 누리집(j.mp/kyungdang)을 보시거나 윤희윤 선생님께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010-3250-4488). 반가운 만남을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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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42)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주일학교

 

 

가향공동체에서는 주일학교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자주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사실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들의 가장 큰 고민가운데 하나가 주일학교입니다. 주일학교를 할 만한 공간의 부족, 더불어 함께 할 동역자의 부족, 목회자 개인의 시간부족, 어른사역 위주의 교회구조 등으로 인해 작은 교회들은 주일학교 교육을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작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는 주일학교 교육을 위해 중대형교회를 다니게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자녀들의 주일학교 교육을 위해 원치 않지만 중대형교회를 함께 다니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녀의 신앙교육의 일차 책임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의 내용과 가치관, 인생의 지향들은 그 자체가 신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양육하는 방식, 물질을 소비하는 방식,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 그 모두가 부모의 신앙입니다. 자녀들을 부모를 보고 자연스레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고 모방합니다. 부모의 말이 아닌 삶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부모를 통해 배우고 모방하는 신앙의 모습이 자연스레 아이의 의식과 삶속에서 체화되어지기를 기대하고 꿈꾸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시행되는 주일학교 교육은 그것을 돕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부모에게서 되어지지 않는 신앙교육을 교회 주일학교에서 제대로 감당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소망입니다. 아니 부모의 직무유기이며 교회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함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밝힌 바대로, 공동체에서는 오전에 온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함께 예배를 드림을 통해 아이들은 어른들을 통해 예배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배웁니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된 아이들은 1시간 30-2시간의 예배에 온 존재를 집중하여 참여합니다. 자연스레 예배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가 자신의 몸을 통해 체화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만의 모임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됩니다. 오전예배 후 공동식사를 하고, 오후 2시부터 있는 기초공동체 모임 때, 주일학교도 별도의 모임을 갖습니다. 현재 공동체에서의 주일학교는 두 개의 기초공동체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어린 아이들(4-11)로 구성된 꽃이 피는 마법의 시간모임이 있고, 다른 하는 조금 더 큰 아이들(12-17)로 구성된 한백 모임이 있습니다. 한백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깨어진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를 잇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모임의 이름은 매년마다 새롭게 바뀌는데 올해는 첫모임에서 이렇게 이름을 정했습니다.

 

현재 꽃이 피는 마법의 시간에서는 5명의 아이들과 8명의 선생님이, 한백모임에서는 4명의 아이들과 2명의 선생님이 함께 하십니다. 모임을 거듭할수록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고, 아이들을 통해 선생님이 배웁니다. 상호배움과 상호성장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모임에 대해 저의 인상평 또는 목격담을 나누는 것보다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누리고 계신 선생님들의 육성이 더욱 진실된 보고일 듯 하여 선생님들에게 글을 써 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들의 소감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강한종>

 

겨울에 태어나서일까요? 어릴 때부터 얌전하고 조용해서 부처님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요. 사람의 기운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과연 바뀌기는 할까 싶기도 합니다. 생기 넘치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어찌할 바를 잘 모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고 어디론가 피해 있고 싶기도 합니다. 가급적이면 나에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정적이고 차분한 공간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가향에 오고 나서 유독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고, 지금 꽃시-꽃이 피는 마법의 시간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또 가장 활발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낯설거나 어색하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막 활발하게 변해서 아이들에게 맞대응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있으면서 만남의 분량만큼 만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함으로. 아이들은 말이 서툰 대신 마음을 읽습니다. 그래서 숨기지 않고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있으면 됩니다.

 

어쩌면 소란스러운 곳을 피하고 싶은 것은 마음이 소란스럽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하면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과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잘 만나기 위해 다른 잡다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실하고 혼잡하지 않은 청결한 마음 하나가 필요합니다. 요즘 아이들과의 만남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윤주>

 

생명력 그 자체가 주는 힘이 있습니다. 매주 한 마디. 움직임 하나에 성장이 묻어나는 아이들과의 만남은 어두운 채로 있고 싶은 마음을 전복하는 마법의 힘이 있어요. 못 읽는 성경을 소리 내어 읽어보려는 친구, 성경 속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끝까지 붙들겠다는 친구, 다함께 나눠 먹을 간식을 준비하는 친구, 그 친구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잘 변해가고 싶어요.^^

 

 

  <이효진>

 

꽃이 피는 마법의 시간이름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과 바람, , 보이지 않는 우주의 모든 기운이 모여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것은 마법과 같은 일이지요. 그래서 한 송이 꽃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하늘과 어떤 바람과 어떤 땅과 어떤 기운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의 꽃으로 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온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만나온 하늘, 바람, , 우주의 기운이 어떠한지 아이들의 모습에서, 행동에서, 말에서, 생각에서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날 때 조심스러워지며 동시에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담겨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그동안 아이들이 어떠한 만남을 하고 있는지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만나지만, 사실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확장되어 갑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유, 도연이, 해람이, 도진이, 봄이를 만나면서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부모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부모, 함께 하는 이모, 삼촌들이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 긴밀하게 맺어진 관계 안에서만 서로를 이해하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더 잘 만나기 위해서는 부모와 관계를 잘 맺어야 하고, 부모를 잘 만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잘 만나야 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어떤 생각과 마음, 행동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떤 마법으로 이 생명력 넘치는 꽃들을 활짝 꽃피우게 도울 것인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나의 어떠함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니, 나 자신이 바로 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속에 가득한 생명력은 그 자체로 우리를 만나주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하는 것이 기쁘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함께 만나 나누는 인사에서, 함께 책을 읽는 모습에서,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모습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서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생명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했고, 성장했습니다. 아빠한테서 떨어지지 않던 친구는 이제 제 자리를 잡고 앉아 자기의 이야기를 잘 합니다. 무슨 얘기를 할지 몰라 하던 친구들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고, 동시에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바른 자세로 앉아서 잘 들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예배 시간, 모임 시간에 이모, 삼촌들의 모습을 보고 따라서 말씀도 읽으려고 하고, 나눔도 하려고 하고, 청소도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배움 앞에 열려 있고, 언제든 배운 것을 행합니다. 그러기에 짧은 시간 안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 앞에서, 더딘 우리의 변화와 성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명력이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이 된 우리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만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면 좋겠습니다.

 

 

 

<김난희>

 

꽃이 되기 전 상태는 겨울눈입니다. 최근 생태 선생님께 겨울눈은 희망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해와 내년을 이어주고, 이번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겨울눈은 추운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 목질의 옷을 겹겹이 입거나 보송보송한 털옷을 입습니다. 그 안에는 정확하게 어떤 형태를 띤 꽃이 숨어있는지 잘 모르지만, 귀한 생명이 움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꽃이 피는 마법의 시간그 첫 시간은 겨울눈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시간들이 펼쳐질지 모를 모호함에 이모 삼촌들은 물론 친구들도 움츠리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분명 그 안에 귀한 생명이 꽃처럼 피어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 만남의 처음 모습은 이랬습니다. 아빠랑 떨어지는 두려움에 힘센 헐크에게 몰입했던 도진이 ,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했던 소유, 모든 이야기에 자기를 담고 싶어 끼어들기를 서슴치 않았던 도연이, 함께 한 다른 이들을 재미진 눈으로 요리조리 살피는 해람이가 보였습니다. 이모삼촌들은 평소 어른 말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바꿔 말하느라 진땀을 빼내었지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눔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하늘로, 머리는 바닥으로 가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예배부터 쉼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로 이모삼촌들은 커피를 들이마시기 시작했지요. 이 상황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엇인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진이에게는 헐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소유의 이야기는 정갈해졌습니다. 도연이의 끼어들기는 사라진지 오래고, 해람이는 성경을 보며 마음대로지만 진지하게 읽어갔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봄이도 기도할 때, ‘~.’로 끝나는 부분을 함께 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에는 혼자만의 바람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바람이 담겨졌습니다.

 

찬양은 꼭 여러 곡 불러야 하고, 정해진 율동을 가미해야 한다.’ ‘말씀은 소수(한 명 내지 두 명) 어른들이 이야기해주고 거기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식의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를 가지고 무조건 강요하는 것들이 꽃시에서는 없었습니다. 꽃시에서는 예쁜 꽃이란 노래 한 곡을 두 달 동안 볶아 먹고 삶아 먹고 튀겨 먹듯이 불렀습니다.

 

자기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 속 주인공은 책을 덮는 순간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무의미해지는데, 자기가 살아온 삶을 나눔으로, 또 다른 아이가 살아온 삶을 들음으로 이야기가 끝나도 서로에게 의미가 지속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삶 나눔에는 하나님이란 구체적인 용어가 오르내리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일방적인 설교와 1시간 아이들과 공과책 가지고 말씀을 공부하며 드리는 예배와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정성을 다해 살아가려는 이모삼촌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정말 달랐습니다.

 

겨울눈이 그대로 겨울눈으로만 있으면 안 됩니다. 봄을 맞아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이어집니다. 겨울눈이 움을 트기 위해서는 봄이 봄다워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에 맞게 주시는 하나님의 빛을 충분히 받으며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인 것 같습니다.

 

 

 

<이명구>

 

아이들의 생명력에 감탄합니다.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고 이야기하는 순간순간을 보낼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본질이 꿈틀대는 걸 느끼게 됩니다. 꽃시 모임을 거듭하면서 아이들이 몸만 자라는 게 아니라 영혼이 자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이 망울망울 피어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든든하게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모삼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이승은>

 

아이들과 함께하게 된 시간은 무조건적 은혜가 허락된 시간입니다. 조금도 내 의를 주장할 틈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도 열심히 해서 얻었다는 생각을 조금은 할 법도 한데. 그 조금의 틈도 없이 감사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한 것이 진짜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이들이 나타나는 순간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웃기만 해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납니다.

 

아이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이 감격입니다. 그냥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명력은 하나님을 생각게 합니다. 그 빛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만남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 빛이 너무 환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어두운 내가 빛 가운데 머물게 되는 은혜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저 허락하신 감사의 시간, 내 어떤 것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시간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소감과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요. 진짜 너무 행복해서요.

 

일 년 정도 함께하니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게 됩니다. 진짜 쑥쑥 크고 자랍니다. 말도 잘하고 문장도 늡니다. 바르게 앉아 집중하는 시간도 늡니다. 무엇이든 배워서 열심히 합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늡니다.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없지만 영향을 줄테니까요. 선한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하고요. 힘이 되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고. 여튼 그래서 더 긴장하게 됩니다. 부족하지만 더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잘 하고 싶은데 미안할 때도 있지요.

 

체력적으로 피곤할 때 더 미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 힘겹다 느낍니다. 그런데 힘겨우니까 안하고 싶다,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에너지를 잘 충전하고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두 세 시간이 일주일을 더 기쁘게 합니다. 생각만 해도 진짜 웃겨서요. 너무 예쁘고. 용기와 힘을 주는 시간입니다. 생명력을 더해주는 시간!!!!!

 

하나님 앞에 더 진실하게 서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 하나님께 더 은혜를 구하게 되는 시간, 책임감이 더해지는 시간, 그래서 더 겸손과 은혜를 구하게 되는 시간, 그런데 너무 행복한 시간, 그 시간과 견줄 수 있는 충만한 은혜에 시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최한솔>

 

주일마다 아이들과 한 주 간의 삶을 나누고 말씀을 묵상한 것을 나눈다. 좀 더 쉬운 말로, 중요한 말 위주로 나눔을 준비할 뿐 어른들과 모임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나눔을 알아듣는다. 모르는 것은 묻는다. 이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수준을 내 생각대로 한정지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작은 것도 기억하고 따라한다. 모임 할 때 뿐 아니라 평소 행동에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던 것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고쳐졌다! 아마 아이들로부터 받은 생명력 덕분인 것 같다.

 

이처럼 아이들과 모임을 하며 실제로 생명력을 받는 경험을 한다. 생명력이 무엇인지, 생명력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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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41)

 

김장 하셨나요?

 

“김장하셨어요?” 요즘 만나는 이들 사이에 자주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혹한의 겨울이 오기 전에 김장을 하고 연탄을 쌓아 놓으면 어른들은 마음 든든하다 하셨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낼 전투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연탄사용을 목격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연탄을 태우며 한겨울을 보내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도시에서 연탄사용을 목격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장도 몇 백 포기를 하던 것에서 요즘은 몇 십 포기 정도를 하거나, 김치냉장고가 있으니 중간 중간마다 조금씩 김장을 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아예 김장을 안 하시고 마트에서 김치를 사다 잡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공동체도 매년 이맘때 김장을 하는데, 매년 김장을 하는 풍경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때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김장을 합니다. 배추구입부터 씻고 절이는 과정, 양념을 준비하고 김장을 하고 나누는 모든 일들을 공동체 지체 모두가 참여하여 진행합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김장을 하는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웃음바다의 연속입니다.

 

올해는 마을농부 기초공동체를 중심으로 김장을 하였습니다. 마을농부 기초공동체는 마을텃밭농사를 함께 하는 기초공동체입니다. 올해는 각 관심사별로 기초공동체를 연초에 구성하였는데, 매년 해오던 마을텃밭농사와 절기에 대해 관심 있는 지체들이 이곳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김장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진행한 한 형제가 쓴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목격자였고, 이 형제는 주체로 참여하였기에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더 진실하고 정확한 기술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김장을 하자는 마음이 모아져 8월 24일 배추를 심는 것으로 김장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배추와 무, 갓, 쪽파를 순서대로 심었고, 사람도 모이면 좋은 기운을 나누는 것처럼 배추와 쪽파도 함께 심으면 좋다는 것(벌레퇴치)을 알게 되어 함께 심었습니다. 농약을 치는 주변 밭과는 달리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한 것이 다른 밭과의 차이입니다. 벌레가 당연히 많이 꼬였는데 대안으로 죽초액과 목초액을 매일 1회에서 최대 2회 뿌렸습니다. 수확 전에는 볏단으로 배추를 묶어주어 속이 차기를 기다렸고 배추 24포기와 무, 갓, 쪽파를 수확했습니다. 부족한 배추와 김장에 필요한 부자재(소금, 고춧가루 등)는 생협에서 구입했습니다. 배추를 절일 때 필요한 큰 통은 이웃에게 빌렸고, 이후 김장김치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김장에 필요한 물품은(칼, 도마 등) 참가자들이 잘 준비하여 부족함 없이 김장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작년 말 공동체에 들어와서 올해 처음으로 김장에 참여한 한 자매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전 과정을 함께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배추랑 무랑 갓이랑 직접 길러서 하니까 김치가 달라 보이네요. 하나 하나 정성이 보여요. 예전엔 김치 먹을 때 무랑 갓이랑 양념보다는 배추만 쏙 빼먹었는데 양념들이 어떤 손길을 거쳤는지가 보여지니까 소중하게 느껴져요. 김장하는 것이 추고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김장 일의 한 부분을 하고 있을 때 다른 편에서 지체들이 또 다른 일을 하고, 나는 이것만 했을 뿐인데 일이 결국 완성되어지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부모님들이 정말 힘들게 우리를 기르셨구나 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었고, 김장을 하면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한 만남에서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생산하는 이와 소비하는 이가 분리된 현대사회에서 자기가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먹거리로 만들고, 그것을 소비한다는 것은 시대의 역행하는 아름다운 실천입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이고 모여 더 큰 실천을 가능케 하리라 생각됩니다. 공동체가 모든 먹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그날, 멀지만 언제나 마음 속 깊이 꿈꾸는 모습입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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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40)

 

신이 날 수밖에 없다

 

 

여자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하다.” 공동체에 있는 한 자매의 고백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축구공은 남자들만의 소유물이라 생각해왔던 자매들이 공동체 안에서는 신명나게 운동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이렇게 축구를 재미있어 할 줄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 봤을까요?

 

 

 

 

  한 동네에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또 쉽습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고, 아이들도 함께 키우고, 무엇보다 함께 운동하기가 좋습니다. 이래저래 바쁘고 분주한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참 쉽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있어도 환경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고, 환경이 뒷받침 될 때에는 함께 운동할 사람이 없기에 입만 다시다 끝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현대인들이 주로 운동하는 공간이 피트니스 클럽인 것은 개인주의화된 도시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도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면 자연스레 운동을 좋아하게 됩니다. 자기는 운동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상은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해보지를 않았으니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고, 익숙하지 않으니 하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두 번 하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재미날 수 있음을 증거하는 지체들이 주위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공동체가 주로 하는 운동은 축구입니다. 일 년 사시사철 계절에 상관없이 축구를 합니다. 물론 혹한기에는 축구를 자제합니다. 대신 겨울에는 실내체육관에서 농구를 합니다. 축구장과 농구장 모두가 동네 안에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안양 비산동을 공동체가 정착할 지역으로 결정할 때에 운동시설이 주위에 많다는 것도 매우 주요한 매력포인트였습니다.

 

 

 

  공동체가 운동하는 시간은 조금 이릅니다. , 가을에는 토요일 오전 630, 여름에는 6, 겨울에는 7시에 모입니다. 남녀 모두 자기 유니폼이 있습니다. 유니폼뿐 아니라 자매들 대부분이 축구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패스도 하고, 헤딩 및 중거리슛도 성공시킵니다. 남자축구보다 여자축구를 응원하는 일이 휠씬 더 재미있을 정도입니다.

 

2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난 후에는 공동체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인 경당에 와서 아침밥을 함께 먹습니다. 이때 먹는 아침밥은 매주 두 명씩 조를 짜서 준비합니다. 이때 먹는 메뉴들은 상상초월입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시간에 먹는 별미는 아침운동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침운동이 더욱 풍성해집니다. 밥상교제를 나누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된 식구임을 재확인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이들과 한몸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를 매주 절감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의 가장 큰 선물, 하나 되게 하신 이 은총을 더욱 힘써 지켜가야겠다고 매주 다짐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공동체의 운동시간은 늘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오십시오. 즐겁 게 뛰고 별미를 나누고 마음껏 웃으면서 천국의 삶을 누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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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39)

 

다시 본질이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항상 기뻐 보여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기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늘 기쁩니다. 너무 기쁘고 행복하여 미안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현실을 생각하면 아플 수밖에 없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데, 이 아픔과 탄식을 넉넉하게 이겨내도록 만드는 지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저를 늘 기쁘게 만듭니다.

 

요즘 만나게 되는 많은 분들을 뵐 때마다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인간에 대한 실망, 현실에 대한 절망, 미래에 대한 낙망 등, 어느 하나도 순탄한 것이 없습니다. 특히, 목사님들을 뵐 때마다 목회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교인수의 감소와 재정적 어려움은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된 난제인데 이것보다 더욱 큰 난관은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기대나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점점 시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러스트/고은비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자신이 소속된 교회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이들과 5년 후, 10년 후 어떤 공동체를 일구어가고자 하는 꿈이 없습니다. 그냥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잊혀지는 것입니다. 삶의 중요한 문제들은 나 홀로 판단하고 나 홀로 해결합니다. 예배는 함께 드리지만 일상에서 조우하게 되는 삶의 문제 앞에서는 철저하게 각개약진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강력한 한국사회의 철퇴를 맞으며 이런저런 상처들을 트라우마로 갖게 됩니다. 어느덧 본인의 심신이 망가지게 되고, 그 망가진 모습의 민낯으로 인해 관계v안에서 선한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막아보고자 저는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세워진 이 땅의 교회가 단순히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만으로 해야 할 바를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교회는 이기심과 탐욕으로 중무장된 세상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이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이 구현된 하나님 나라의 현실태가 교회이지 않은가?. 이것이 저의 오랜 고민이었고, 저는 당연히 그래야한다는 마음으로 공동체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공동체의 삶을 통해 제가 철저하게 확신케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순종하는 삶이 불순종하는 삶보다 휠씬 더 행복하고 풍요롭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풍요롭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 시대의 가치와 문화 앞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출애굽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가치로 중무장된 교회와 가정, 자기중심주의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맘몬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우리네 인생, 이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추종하고 따라가야 할 삶의 내용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면,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을 위한 금단현상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낯섬의 시간들을 인내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세워가야 하고,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더뎌 보여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그것은 바로 본질입니다. 속 빈 강정이 되지 않도록 속을 꽉 채우는 일입니다. 공동체는 그 본질을 붙잡아가는 여행입니다. 그 여행길이 기쁠 수 있는 이유는 좋은 길벗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그 길벗들과 누리는 잔치적 삶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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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38)

 

몸을 쳐서 훈련하는 일상

 

 

현대인들의 치명적 약점 중 하나가 머리는 많이 쓰지만, 몸의 훈련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공부를 하면서, 업무를 보면서, 심지어 사람을 만나고 쉼을 누리고자 하는 여가시간에도 끊임없이 머리를 씁니다. 그러나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워 몸을 단련하고자 하는 일은 늘 역부족입니다. 자기 몸이지만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의 근원적 한계지점입니다. 근대철학은 인간의 인식을 중시합니다. 올바른 사고와 좋은 지식들을 누적하게 되면 머리가 몸을 통제하고 지배하여 건강하고 올바른 삶이 태동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대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데카르트도 머리에서 몸으로 연결되는 송과선을 통해 머리의 지시를 몸에 하달하고 몸이 머리에 복종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머리가 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몸이 살아가는 바대로 머리가 그 삶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좋은 지식이 좋은 삶을 자연 태동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 경우에는, 좋은 지식을 많이 누적한 사람들이 파괴적이고 불합리한 삶을 창조해낼 수도 있습니다. 그 좋은 머리로 그 많은 공부를 한 결과, 세상을 더 어지럽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목격되고 있습니다.

 

 

 

 

몸을 쳐서 훈련하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의 삶 자체가 워낙 에너지를 소모하고 피로로 쩔어 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몸을 쳐서 훈련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몇 년 전부터 몸짱 문화가 유행을 하더니, 요즘 피트니스클럽을 다니면서 몸만들기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근육질 몸 혹은 균형 잡힌 신체를 만들기 위해 신실하게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몸을 쳐서 훈련하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이것도 몸을 쳐서 훈련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몸을 만든 사람들을 볼 때 우리가 하나 인정해 줘야 할 것은 그들이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온갖 어려움을 돌파해내며 신실하게 운동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실함의 대명사이고, 인내의 산 증인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언젠가 사라질 육체에다가 너무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특별히 동물적 근육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몸을 쳐서 연단한다는 것은 자기 몸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쉬고 싶고, 편안하게 있고자 하는 몸을 쳐서 감당해야 할 몫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마다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때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빈둥빈둥 주위를 서성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하겠지’가 아니라 ‘이것은 내 일이다’라는 마음으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워 그 일을 신나게 감당하는 것, 이것이 제가 말하는 몸을 쳐서 연단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일상의 훈련이 너무 중요합니다. 머리로 생각한다고 하여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참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늘 공동체는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체들이 부지런하기 때문입니다. 당번이 따로 없어도 모임이 끝나고 나면 지체들은 제각각 주변정리에 팔을 걷어붙이고 자기 몫을 감당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일상의 가정 그리고 공동체방 생활 속에서 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작은 싸움이 실상 큰 싸움입니다. 일상의 작은 훈련이 보다 큰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연단시킵니다. 작은 것을 결코 작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체방에서의 청소, 정리, 음식 만들기, 주변정리, 지체를 배려함,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만남, 시간을 아낌 등의 삶의 내용들이 사회 속에서의 그의 삶을 조형해 나갑니다. 좀 더 쉬고 싶고, 배려 받고 싶고, 편하고 싶은 몸을 쳐서 부지런히 움직이게 될 때 어느덧 타자를 배려하고 자기 몫을 감당하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공동체는 이 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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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36)

 

주일 밤을 달구는 생일축하의 시간

 

 

일 년에 한번 돌아오는 생일,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생일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생일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생일 당사자 입장에서는 축하를 받을만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과 미안함으로 인해, 주변인들은 어떻게 축하해 주어야 할지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생일을 관습적으로 치루며 지나가는 일들이 많습니다.

 

공동체에서의 생일은 잔칫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생일 당사자가 속해 있는 기초공동체에서는 생일축하를 위해 머리를 맞댑니다. 생일당사자에게 가장 적합한 생일축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라디오진행 형태로, 어떤 때는 게임의 방식으로, 어떤 때는 대회 및 경연을 중심으로, 어떤 때는 시낭송 중심으로 생일축하모임을 진행합니다.

 

 

 

 

생일축하는 보통 주일저녁에 모입니다. 주일예배와 기초공동체 모임을 마무리하고 모이는 것입니다. 오기 전에 지체들은 생일당사자에게 줄 생일축하엽서를 미리 씁니다. 그 지체를 생각하며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권면하고픈 이야기들, 만남으로 인해 감사한 이야기들 모두를 그 엽서 안에 담습니다. 만남의 시간이 축척되어갈수록 엽서의 내용들도 더욱 깊고 넓어지게 됩니다.

 

생일축하모임에는 공연도 있습니다. 보통은 생일당사자가 속해 있는 기초공동체에서 하나, 그리고 생일당사자가 살고 있는 공동체방에서 하나, 보통 두 개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공연의 장르도 다양합니다. 어떤 때는 노래, 어떤 때는 춤, 어떤 때는 연극, 어떤 때는 뮤지컬 등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의 장르도 공연의 수준도 점점 진화하고 있습니다.

 

생일축하모임 전, 생일 당사자가 속해 있는 기초공동체에서는 생일축하 후 함께 먹을 과일 등을 준비합니다. 생일축하모임이 끝난 후에 다과를 함께 하는데 보통은 제철과일을 먹습니다. 먹거리들을 미리 준비하고 정성스레 만든 케잌을 준비하면 생일축하모임이 시작됩니다. 모임 전에 생일당사자는 2층에서 준비를 하고, 모든 지체들은 1층에 모여서 생일당사자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사회자의 멘트를 시작으로 생일당사자가 1층으로 내려오면 지체들은 모두 생일축하노래를 부릅니다. 이 생일축하노래도 공동체에서 직접 작사, 작곡한 것입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OOO 생일 축하합니다

땅과 하늘 만물이 너를 품고 크게 울었어

가슴에 이는 감격 슬픔과 기쁨 가득한 아픔 그 아픔속에

하늘의 별 땅의 꽃 너를 보고 크게 웃었어

가슴 메이는 환희 슬픔과 기쁨 가득한 인생 그 인생속에

살아가는 널 축복해 담대히 살아가길

사랑하는 내 친구야 영원히 함께 하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OOO

생일 축하 축하합니다.”

 

가사 하나하나에 우리의 사랑과 정성, 기도의 마음을 담아 목청껏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생일당사자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케익의 촛불을 붑니다. 그리고 준비된 순서에 따라 모두가 참여하는 순서, 대표로 엽서 읽기, 공연 등의 순서를 갖고 생일당사자가 생일을 맞이한 소감과 기도의 제목을 나눕니다.

 

지막으로 모든 지체들이 생일담당자를 위해 기도를 하고 목사인 저나 기초공동체의 목회위원이 마무리 기도를 한 후 준비한 다과를 함께 먹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생일담당자는 지체들이 정성껏 준비한 엽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씩 지체들이 작성한 엽서를 읽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한몸된 은총을 온 존재를 통해 절감하는 시간입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수놓아 있는 지체들의 사랑과 배려, 다짐의 언어들이 존재 안에 온전히 뿌리내려지는 시간입니다. 주님 안에서 더욱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지난 1년의 시간보다 더욱 아름답게 살아야 할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공동체는 생일축하모임을 통해 우리가 온전히 하나 되었음을 확인합니다. 술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매번 온몸으로 누려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고착화된 생일축하모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우리 안에 창조하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도전은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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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36)

 

도시락으로 함께하는 주일 밥상교제

 

 

공동체에서는 주일 예배 후 한분도 빠짐없이 모든 지체들이 밥상교제에 참여합니다. 밥상교제뿐 아니라 주일날은 온 종일 함께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밥상교제를 하고, 2시부터는 기초공동체별 모임을 갖습니다. 기초공동체별 모임에서는 한 주간의 말씀묵상과 자신의 삶을 진솔하고도 투명하게 나눕니다. 오후 내내 기초공동체 모임을 가진 후에는 기초공동체별로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대부분은 모임 장소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생일축하모임을 가집니다.

 

공동체의 주일 일정은 보통 주일 오전 1020분부터 시작하여 저녁 9시까지 진행됩니다. 체력이 보통 강하지 않으면 함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더불어 함께 하는 시간이 누적되다보면 누구나 체력이 강해지고 자연스레 이 시간들을 온 맘 다해 즐긴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함을 통해 힘을 제공받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밥상교제는 너무 중요한 시간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되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누는 성찬의식입니다. 예수로 인해 우리가 만나게 되었고, 예수 안에서 하나되었으며, 예수의 길을 신실하게 따라가기를 결단하고 다짐하는 은총의 자리가 밥상교제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밥상교제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의 잔치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세상이 설정한 막힌 담을 허무는 은총의 자리인지를 온 몸 다해 확인하며 누린다는 것입니다.

 

일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허겁지겁 교회문을 나서는 이들, 밥상교제를 비롯한 성도간의 그 어떤 교제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실상 교회공동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미하며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누리는 예배의 내용은 의식으로서의 예배와 더불어 한 가족됨을 확인하는 밥상교제를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밥상교제를 갖지 않고 교회문을 나서는 이는 예배중간에 뛰쳐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보통 교회에서는 주일 밥상을 준비하는 이와 먹는 이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대형교회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는 용역을 돈을 주고 고용하기도 하고, 중소형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역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합니다. 식사담당을 맡은 한 달은 구역식구들에게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심지어 식사준비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주일밥상과 관련하여 모두가 함께 책임지며 준비합니다. 누구만이 짐을 지는 구조가 아닌 함께 책임을 분담하여 더욱 풍성한 밥상교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지체들은 교회에 오기 전에 각자 집에서 정성스레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자신의 집에 있는 반찬을 가져오기도 하고, 간단하게 요리를 하여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배 후, 식사를 위해 펼쳐진 도시락 반찬들을 보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습니다. 매 주일이 잔치입니다. 형제들, 자매들 모두 반찬 만드는 실력들이 점점 고수가 되어갑니다. 예배 후 상이 펴지고 도시락을 꺼내 놓은 후 식사준비가 완료되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식사노래를 부릅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쌀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어 있으며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베 짜는 이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진리를 행하고 서로 사랑하며

예수의 좋은 친구로 살겠습니다 살겠습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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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35)

 

온 세대가 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가향공동체 예배의 특징 중 하나는 온 세대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른에 이르기까지 70여명이 넘는 지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요즘 세대통합예배라 하여 공동체의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세대통합예배는 예배시작부터 특정한 순서까지만 함께 하다가 어린아이들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여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대통합예배도 매주가 아닌 한 달에 한번 혹은 특정한 절기에 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에 반해 가향공동체는 매주 세대통합예배를 드리고 있고, 예배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것에서 차별성이 있습니다.

 

저는 일반교회에서 주일학교와 청년부 예배를 따로 드리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청년들끼리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세상에서도 나이 드신 어른들과 청년세대간의 단절 혹은 불통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교회에서조차도 어른들과 청년들이 예배의 자리에서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일러스트/임종수

 

청년들이 어른들과 떨어져 독자적인 예배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찬양문화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CCM류의 찬양과 어른들이 좋아하는 복음성가간의 이질성, 이로 인해 세대간 독립하여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는 찬양문화로 인해 젊은이들과 어른세대가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어른들은 보통 어린아이들을 시끄러운 존재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게 되면 어른들의 경건한 예배를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대원시절에 사역했던 분당의 모교회에서도 담임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교역자회의 때마다 자주 하셨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할 때도 어린아이들은 입장시키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어린 아이들이 떠들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 교회에서는 본당입구에 권사님들이 수십 명 대기하고 계시다가 신생아들과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자 하면 그 아이들을 대신 봐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어른들의 경건하고 조용한 예배를 위해 어린아이들을 따로 분리시킨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자모실입니다. 일명 유리감옥이라 불리는 그곳에는 신생아를 둔 엄마 아빠들이 모여 있습니다. 힘겹게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와서도 회중들과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시끄럽게 할까봐 미리 그곳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신생아와 어린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울어 대고 장난치는 그곳에서 부모들이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모실은 부모님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탈바꿈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이 만연한 한국교회 안에서 온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과연 예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까, 아이들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른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가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등 무수한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위의 모습에 익숙한 분들이 공동체예배에 오시면 깜짝 놀라십니다. 1시간 30분 이상 지속되는 예배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과 똑같이 자세 하나 흔들림 없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을 받으십니다. 저는 아이들은 무조건 놀려야 된다, 어른들이 제대로 예배드리려면 아이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선입견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행하는 그대로를 따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젊은 이모 삼촌과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보며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최선을 다하여 예배에 참석합니다. 청년들은 나이 드신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그 무수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키시고 계신 어른의 존재만으로도 청년들은 은혜를 경험합니다. 오늘날 세대 간의 단절된 예배 속에서는 세대를 초월하여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누리게 되는 그 은혜를 상실해버렸습니다.

 

청년의 삶이 어린 아이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고, 어른의 삶이 청년들에게 삶의 방향타가 되는 그런 교회가 이 땅에 넘쳐나야 합니다. 세상 모든 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 공동체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에게만이라도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풍요로움을 누리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그 첫걸음이 함께 모여 드리는 한가족된 예배라 생각됩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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