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를 대하는 한국 종교의 호들갑과 사회적 뻘짓

 

성탄시즌이 시작하기 직전 통계청에서 2015년도에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를 발표하였다. 물론 이 자료에는 종교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10년마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내놓는 자료인지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이번 결과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신도수 순위가 많은 이의 예상을 빗겨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신도수 순위에서 1위를 달리던 불교가 이번 조사에서는 인구수 대비 15%정도인 760만 여명 정도로 960여만 명을 기록한 개신교에 이어 2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이 수치는 2005년 조사에 비해 120여만 명이 늘어난 것이라서 계속 신자들이 줄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입장에서는 좀 뻘쭘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2005년 신도수 5백만 명을 넘으며 기염을 토했던 천주교는 380여만 명으로 백여만 명 이상의 신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뚱맞은 각 종단의 호들갑

 

이런 결과가 나오자 각 종단별로 난리 났다. 1등에서 밀려난 불교계로서는 조사 결과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급기야 조사방식의 형평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전의 전수조사와는 달리 이번은 국민 대비 20%의 표본조사이고, 그것도 방문조사와 자발적 인터넷 참여조사를 병행했기에 상대적으로 노령층 신도가 많은 불교로서는 통계 왜곡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황스럽기는 1위를 차지한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무려 120만 여명의 신자수 증가는 개신교에게는 뻘쭘한 형국을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2005년 조사결과 발표 이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개신교는 실제 교회 현장에서도 신도수의 감소를 피부로 점감하고 있던 터라 백만 명 이상의 신자수 증가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통계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들이댄다. 2015년 통계에는 가나안 교회 성도가 포함되었다느니, 이단의 통계도 포함되어서 그랬다니 등등. 그러나 가나안 성도나 이단의 수치가 전체 통계에 영향을 주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만약 개신교 통계에 이들이 반영되었다면 비단 2015년도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단 신도들이나 교회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굳이 통계에서 개신교를 선택할 필연적 이유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겠나. 따라서 개신교 신도수 변화에 가나안교인이나 이단의 수는 상수라 보기 힘들고, 함수라 해도 그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천주교의 대응은 차분한 편이다. 물론 천주교 관련 몇몇 미디어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회의 선교 관심을 높여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을 펴는 곳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두 종단과 달리 천주교의 대응은 침착하다고 할 만하다. 아무래도 자체 내 통계에서 이미 지금의 수치를 가늠했던 탓이 아니었겠는가.

 

 

종교학자의 눈에는 이번 통계결과 발표에 보이는 각 종단의 호들갑이 오히려 더 생뚱맞아 보인다. 우선 불교의 경우, 언제 불교가 신도수 중심의 종교였던가? 입만 열면 수행의 종교라 하면서 왜 이럴 때는 정량적 수치에 급급해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이미 깨달음은 확보되었기에, 그 다음 수순으로 숫자 놀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불교는 기본적으로 출가자 중심의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적 수행과 절차, 의례에 매진하는 경우도 재가자보다는 출가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불교는 신자 수의 많고 적음에 그리 집착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다. 그들이 보다 투명하고 올곧게 자신들 수행에 집중하면 될 뿐이다. 그러니 불교로서는 신도 수의 증감에 그리 예민하게 굴 필요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번 순위에 집중하는 불교의 태도는 잘 요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스스로의 종교적 수행과 열정에 기대기보단 공적 자금과 기부에 의존하려는 불교의 오랜 습성이 남아있는 탓인가? 불교는 신도수 순위에 집착적 관심을 보이기보다 되려 주간 종교 활동 참여도 6%라는 참혹한 수치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이 수치는 설문결과 아무리 불자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제대로 된 불교신자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 1회 예배나 미사, 그리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참된 신자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6%의 참여도는 전체 불자의 수에 집착하는 종단의 행태를 머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따라서 불교는 무엇보다 소속된 신도의 종교적 활동 독려에 보다 더 신경을 쓰고,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고민할 때이지 순위가 어느 종단에 밀렸다고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교회와 관련된 화려한 사회적 뻘짓(?)

 

개신교의 경우는 이번 통계의 결과를 신도수의 증가로 봐야하나 고민스러울 것이다. 계속 진행 중인 교회와 관련된 화려한 사회적 뻘짓(?)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도 신자수가 늘었으니 진보측이나 보수측이나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를 간단히 ‘교회 성장’ 혹은 ‘부흥’으로 이야기하자니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있고, 또 받은 평판이 있으며, 게다가 현장 교회에서 올라오는 보고도 있는데 차마 그렇게 까지 포장하지 못하는 보수 쪽 입장도 있겠고, 2005년도에 비해 무려 120여만 명의 성장을 정상적인 것이라 인정할 수 없는 진보 쯕의 경직된 이념지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다시 보면, 개신교의 신도수는 그리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이른바 ‘1천만 신도’ 운운할 때가 언제인가?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천 2백만 신도라 목소리를 높혔고, 그때가 이미 80년대 아닌가! 그에 비한다면 지금 960여만 명 신도는 오히려 백여만 명 이상 감소한 셈이다. 물론 2005년 통계에 비해서 증가한 것은 확실하지만, 20년 전인 1995년도 19.4% 비율과 비교해 보면 2015년의 19.7%는 거의 제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큰 흐름에서 보면 개신교 역시 신도수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감소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다만 기존 통계청의 가택 방문조사가 가져온 ‘통계 착시’ 때문에 2005년도 결과가 심하게 왜곡되어 지금을 증가로 보게 만들고 있는 것뿐이다.

 

예서 잠시 이번 통계방식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보자. 전에는 에누리 없이 가택방문 전수조사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적지 않은 통계적 오류가 끼어든다. 이전 전수조사 방식은 설문의 대상이 특정 계층, 연령대, 성별대로 제약된다는 단점이 있다. 즉 오전이나 오후 직장이 아닌 집에 머무는 이는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술에 의해 가족 구성원의 종교를 일괄 조사하는 방식으로는 실제에 가까운 통계결과를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에 제대로 대면조사를 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기에 결과의 엄밀성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부터 보완한 방식이 ‘등록센서스’와 ‘표본조사’이다. 등록센서스는 기존 공적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수치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고, 이를 다시 20% 표본 전수조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2015년부터 도입된 조사 방법이다. 표본조사라 해도 20%에 해당하는 1천만 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그 결과치의 신뢰도는 상당한 수준이라 하겠다. 다시 표본조사는 가택 방문조사와 인터넷 조사를 병행하여 응답의 신뢰도를 높였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이번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결과는 이전의 어떤 통계보다 사실에 가까운 결과치를 보였다고 믿는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한국의 종교지형도에서 신도수로 나누는 순위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런 식의 응답으로 잡히는 신도수가 해당 종단에 유의미한 통계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인구조사를 통한 종교인 수 집계는 그냥 대강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종교인의 수를 그런 식의 설문으로 다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따라서 이는 그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그 결과로 전혀 일비일희할 필요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어쩌면 각 종단이 통계청의 발표에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한국의 종교들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단별로 신앙인 내지 신도수 통계는 매년 실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누구보다 종단본부 스스로 조직에 속한 신자수의 변화 추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통계청의 발표에 그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 조직의 통계를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게 관리해 왔다는 반증이라 하겠다. 이는 스스로 말하는 종교적 가치에 전면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도수에 대한 예민한 반응 자체가 한국 종교의 문제이면 문제이다.

 

사실 종교적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통계는 따로 있다. 구름 잡는 식의 전체 신도수가 아니라 바로 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직자의 수이다. 교직자라 함은 해당 종교행위를 통해 종단에서 녹을 받고 생활을 하는 ‘종교 직능인’을 말한다. 이들은 신도수보다 더 분명히 통계에 잡히고, 그 흐름도 상대적으로 명확히 추적할 수가 있다. 난 오래전부터 이 교직자수와 다른 몇몇 통계를 기초로 한국의 종교적 영향력은 인구센서스 조사와는 달리, <개신교-불교-천주교> 순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이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교직자 수를 보자.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체육관광부 발간, 2012) 개신교의 교직자 수가 14만 여명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이어 불교 4만 6천명, 천주교 1만 6천여 명이다. 교직자수를 통한 교세와 영향력 평가를 보완해주는 것이 교당수 통계이다. 이에 대한 수치도 개신교가 7만 7천여 개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만 6천여 개의 불교, 그리고 천주교는 1천 6백여 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또 한 가지 내가 유의해서 보는 통계는 온라인 포털에서 활동 중인 종교별 카페의 개수다. 예를 들어 카페활동이 가장 활발한 포털 서비스 업체인 다음(http://daum.net)의 경우, 총 종교 카페 수는 317,538개인데, 그중 개신교 관련 카페는 238,426으로 무려 75%의 점유율을 보인다. 반면 불교와 천주교의 경우는 각각 2만여 개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실제로 한국에서 정량적으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종교는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불교가 아니라 개신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 결과로 나온 종교인수의 순위 개신교-불교-천주교는 이전의 통계적 왜곡을 넘어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한계에 다다른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수명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난 신도수의 증감에 관심이 가겠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이전 조사보다 대폭 늘어난 비종교인 수가 더 크게 들어왔다. 2005년 47%에 머물던 비종교인의 수가 2015년에 들어 56%를 기록했다. 그중 남자 비종교인의 수는 이미 60%를 넘었고, 여성의 비율도 51.6%에 달했다. 이번 통계에서 주시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인의 비종교인 비율은 2012년도 <퓨 리서치센터>의 ‘세계종교 현황’ 보고서에서 발표한 세계 종교인 수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세계 인구 69억 명 중 대략 58억 명 정도가 종교인이다. 이는 인구 대비 84%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56%가 비종교인이다. 이 말은 한국의 세속화 정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차세대의 비종교인 비율을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이미 우리사회 40대 이하의 비종교인 수는 60%를 넘나들고 있고, 이중 20대가 64.9%로 가장 높다. 이제 한국에서 종교인이라 하면 5~60대 이상의 노인세대의 전유물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 결과치는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종단들은 종교에 비호감을 드러내고 있는 차세대를 위한 대비나 배려, 그리고 지원에는 무심하다. 그러니 종단별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법으로 바꾸고, 그들이 선호하는 매체에 담으려는 노력은 매우 더디고 드물 수밖에! 이는 특정 종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종교 대부분 그렇다! 그러니 청소년들의 눈에 종교 활동만큼 ‘구리고’, ‘후지고’, ‘재미없는 것’도 없다. 종교 말고도 차세대가 즐기고 누릴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은 쌔고 쌨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제 종단은 짙은 색 슈트에 감싸인 60대 남성들의 일방적 대변자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신들이 미성숙한 차세대를 관리하고, 훈계하고, 지시해야만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니 차세대가 그런 꼰대들의 종교에 관심이나 기울일까?

 

이런 점에서 이번 통계가 한국 종교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엄중하고, 지엄하고, 절망적이다. 통계가 웅변하는 바는,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수명은 거의 다되어감“이기 때문이다. 56%의 비종교인 비율이 주는 메시지가 그렇다. 그러니 신도수 순위에 호들갑 떨면서 난리칠 때가 아니다. 지금은 한국 종교들 스스로 제 몸을 살펴 종교로서 본질적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따져 물을 때이지, 한가한 순위 놀음에 일희일비 할 때가 아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3)

 

종교와 음식

 

 

요즘 미디어에는 요리와 음식관련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 한식, 양식, 중식, 패스트푸드 등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전국을 넘어 전 세계의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요리 관련 이야기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조리하는 이들도 언제부터인가 쉐프란 고상한 외래어로 수식되며 오래 수련 끝에 획득한 현란한 손기술을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시전하며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감탄사를 즐기고 있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다.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사람들은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왕이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식당에서 행복한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것이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은 세속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음식과 요리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종교들이 전통과 의례 속에 먹음의 행위를 잘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의 먹음 행위는 단순 배를 채우는 것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영성적 의미를 부여하며 음식과 요리를 더욱 풍성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잠시 대표적인 종교들의 음식이란 관점에서 살펴보자. 우선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성만찬 역시 이 먹음의 행위를 종교의례로 보존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떡과 포도주가 참으로 신의 몸이 된 것인지, 아니면 구속사적 행위를 기념하는 의식으로 성찬의례를 보건 간에 음식을 취한다는 점에선 여전히 먹음의 연장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불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탁발 위주인 남방 불교권이든, 고유한 사찰음식을 개발한 북방 불교권이든 아침의 공복을 깨는 공양의식은 엄숙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다. 탁발, 즉 구걸을 통해 끼니를 해결했던 남방 불교와는 다리 한국, 중국, 일본, 티벳 등의 북방 불교는 스스로 음식을 조리해 먹는 전통을 일궈냈다. 이때 북방 불교권의 사찰음식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채소 중에서 오신채라 불리는 ,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재료들이 지닌 강한 냄새도 이를 금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사찰음식은 약의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해 다양한 약리작용을 갖고 있고, 네 번째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여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었고, 마지막으로 제철 음식 위주로 요리를 하게 된다.

 

이슬람 역시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무슬림의 식사는 종교생활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식사행위는 그들의 경전과 종교전통을 철저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종교적 수순에 의해 도축된 육류만 섭취한다. 흔히 이를 할랄’(halal)이라 부르는데, 이 말은 허용된 것이란 뜻이다. 이른 바 할랄푸드는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된 육축의 고기를 말한다. 고기를 얻기 위해 무슬림들은 우선 동물에게 물을 먹인 뒤 메카 방향으로 자세를 잡게 하고 알라의 이름으로, 알라는 위대하시다!”를 낭송한다. 그리고 반드시 동물의 목 뒤 동맥이나 식도, 혹은 호흡기관 부위를 베어 도축한다. 이 과정을 거친 고기만이 무슬림의 식탁에 오를 수 있다.

 

무슬림들의 종교적 식사행위는 라마단이라 불리는 금식기간에도 도드라진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번째 달로 이슬람 전통에서 매우 성스럽게 여기는 기간이기도 하다. 1년 중 알라에게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해가 뜬 후부터 질 때까지 어떤 음식도 취하지 않는 것이 바로 라마단 금식이다. 하지만 이 금식기간에도 먹음의 행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해가 떨어진 후 사원을 중심으로 모여 무슬림 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이프타르(Iftar, 저녁식사)가 이 종교에서 음식과 먹음의 행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확인해준다.

 

 

                (출처: Korea.net (www.korea.net))

 

 

그 밖에 여러 샤머니즘 전통에서도 굿거리를 위한 푸짐한 한상의 식탁은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전통에서 이뤄지는 먹음 행위는 주로 의례의 한 요소로 들어와 있고, 그것은 제의(제사)로 정형화되어 있다. 따라서 일상적 생활세계에서 행해지는 식사행위와는 달리 엄격한 순서와 엄별한 식재료를 사용하게 된다.

 

종교전통의 제의에 제대로 집중한 종교학자로는 노르웨이의 크리스텐센(Brede Kristensen, 1867-1953)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특별히 고대인의 종교전통에서 제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크리스텐센은 고대 종교의 제의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지는 기능, 내지 역할 때문이다. 그는 연구를 통해, 고대인들에게 제의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통로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제의의 중앙에는 먹음의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먹는 일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된다. 크리스텐센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인간의 기원을 땅으로부터 찾았다. 왜냐하면 땅의 소출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자원이 되며, 따라서 땅은 생명을 품고 있는 신적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신은 땅을 비롯한 자연을 만들고, 그것은 다시 신적 에너지를 품고 다양한 식재료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모든 것이 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에 땅의 소산 역시 그 신적 에너지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땅의 산물로 연명하는 인간 역시 신적 에너지를 나눠받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생명의 순환 고리를 타고 신과 인간은 하나로 이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고대인은 이런 순환구조 속에서 신적 에너지의 약화를 읽고 있다는 점이다.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하고 있기에 주기적으로 그것을 다시 보충해야 한다. 땅 역시 신이 만든 피조물. 따라서 신의 힘을 담지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을 위해 땅이 소산을 내어 그 힘을 나누어 주었기에, 혜택을 받은 인간 역시 때를 따라 신에게 무언가되돌려주어야만 했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쌍방적이며 인간은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해 신에게 의존하며, 신 역시 에너지의 보충을 위해서는 인간의 종교적 행위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종교적 행위가 제의이며, 이 제의의 심장부에 바로 먹음의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생각 속에 먹는다는 것은 생존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면서 동시에 신, 혹은 절대 생명과 자신을 연결하는 종교적 행위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식사행위는 곧 종교 행위라 해석될 수 있으며, 제의와 연관된 공동식사는 신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현장이 되며, 아울러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영성적 통로가 된다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먹음의 행위는 일상적 생명연장의 수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신과의 교류’, ‘신과의 합일’, ‘우주 질서에의 편입등을 함주하고 있음을 종교의례의 구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먹음을 생각하면 그것을 위한 준비와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식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만이 아니라 신을 만나고, 우주의 핵심과 교류하는 신성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먹음의 행위가 자꾸 대상화되고 상품화되어 간다. 음식을 준비하며 기대하고 생각해야만 했던 신, 혹은 우주의 원리에 대한 배려는 망각한지 오래이다. 우선 급한 것이 지금 주린 배이고, 수량화되어 파악되고 있는 생명의 가치이다. 따라서 몇 칼로리를 보충하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먹음의 준비도 소홀해지고, 먹는 과정 역시 단출해졌다.

 

성스럽던 먹음의 행위는 단거리 경주처럼 빨리 처리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치부되어 버렸고, 따라서 먹음의 행위는 시간에 종속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런 배경 속에 이른바 페스트 푸드라 불리는 정크음식들이 현대 음식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어떤 연유로 이런 천박한 식사습관이 현대인을 지배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를 우리는 음식과 식사에 대한 진지했던 이전의 생각을 망각한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음식을 취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그리고 먹을거리를 인간에게 선사한 존재를 기억하며 그 모두를 하나로 이어보려고 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잃어버린 탓에 지금의 우리는 매우 천박한 음식문화를 소유하게 된 것은 아닌지.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2)

 

종교의 파렴치한 친일행각

 

 

2015.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병합으로부터 벗어난 지 70주년 되는 해이다. 이 날을 우리는 광복절이라 부른다. ‘빛을 다시 찾았다는 이 멋진 메타포는 해방의 감격을 표현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다만 이 멋스런 표현이 요즘 세대에게는 조금 낯설고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는 않을까 교육적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해방절이라 이름 지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리가 애초부터 주권이 없었고 노예였다가 풀린 것이 아니라, 반만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아주 잠시 일본제국주의에 주권을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온 것이기에 해방이란 용어는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도 역시 틀린 말은 아니게 들린다. 그럼 이 문제는 결국 적절하고 정상적인 역사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의 역사교육이라고 하는 것도 공유하는 것 못지않게 갈등점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 숙제이긴 하다.

 

내 생각엔 광복절, 해방절, 건국절 논쟁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1919년 있었던 31일 독립을 위한 만세 저항 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이다. 왜 이 중요한 저항의 날을 삼일절이라 발발한 날짜로만 한정해 이름을 붙였을까? 그날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 구석구석에서 많은 한민족이 한마음으로 독립의 의지를 표명하였고, 서울 한복판에서는 민족의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포고하였다. 당시 만세운동에 나선 이들이 백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만 해도 75백여 명, 구속된 사람은 47천명을 헤아린다. 이 정도의 독립운동이라면 응당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줘야 할 터인데, 우리 사회는 고작 날짜만으로 부르고 있다. 심지어 삼일운동의 정신 아래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것이 결국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지금 우리의 헌법도 적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논지는 1948717일에 제정 공포된 제헌헌법 전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확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 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各人)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이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7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이렇게 제헌헌법에도 대한민국은 1919년 삼일 독립운동을 통해 세워진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건국절은 815일이 아니라, 31일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예를 봐도 삼일절에 대한 대우는 조금 아쉽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74일인데, 이 날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날이 아니라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날이다. 그에 반해 독립선언문을 포고한 우리의 삼일절은 아직도 숫자로만 불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대입해 본다면 당연히 삼일절은 숫자이름이 아닌 독립기념일내지 건국절로 불러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굳이 1948815일 이승만 정부 수립을 건국절이라 부르고자 하는 이들의 저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친일의 흔적을 덮고 시작한 이승만 정부에 기대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저마다 있던 까닭은 아닐까? 그들, 친일세력들에게 1945815일은 절망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일제의 퇴거와 함께 그들도 세상의 앞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운명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1948815일은 친일의 주홍글씨를 지워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니 19488.15를 근대 대한민국의 기점으로 잡아야 그들의 트라우마가 지워질 터! 아마 여기에 지금 건국절 논쟁의 진의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역사는 우리의 진정한 건국은 191931일 만세 항거에서 잡고 있으며, 그것이 또한 헌법의 정신이다. 따라서 삼일절은 이제 숫자가 아니라, 그에 응당한 이름으로 불러줘야 한다. 독립기념일, 내지 건국절로서!

 

 

 

국경일 논쟁은 이제 뒤로하고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활동했던 종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잠시 생각해보자. 앞서 언급했던 삼일절을 보면 종교들의 독립 및 반일 운동은 찬란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른바 민족대표라 불리는 33인들 대부분이 천도교(15), 개신교(16), 불교(2)의 지도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삼일절은 독립을 갈망하는 종교들의 구국적 연합활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면면을 살펴보면 대표로 참석했던 많은 이들이 이후에 변절하여 일제에 협력했던 사실은 매우 씁쓸한 우리 역사의 그림자이다. 암튼 많은 역사가들이 삼일절은 천도교의 자금과 개신교의 조직이 선도한 독립을 향한 민족적 반일 저항 운동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종교들은 어떠했을까? 그 당시 그들은 이 땅의 민초들에게 어떤 희망의 언어를 건넸을까? 아니면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 시대를 살고 있었을까? 특히 종교와 그 지도자들은?

 

실제를 보면 매우 비참하다. 일제 때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보인 태도는 비굴하다 못해 염치없을 정도이다. 예서 간단히만 살펴보면, 개신교의 경우는 매우 적극적으로 일본 편에 서있었다. 당시 조선예수교 장로회에서는 중일전쟁이 난 이후에 수많은 강연회와 구국기도회를 통해 거액의 헌금을 모금하고, 그 돈으로 비행기와 군함을 구입하여 일본에 헌납하였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국민의례의 하나로 인정하여 적극 홍보하며 참석하였고, 그 중 몇몇 지도자들은 친히 일본으로 날아가 그곳 야스쿠니 신사에서 직접 참배를 하고 돌아오기까지 하였다.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을 정도의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보여줬던 친일행각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가톨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일제 때 가톨릭은 철저히 친일 쪽에 서 있었다. 심지어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가담했던 삼일운동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이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 폄하하기까지 했다.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뮈뗄 주교와 대구 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는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삼일운동에 대한 한국 가톨릭의 입장을 깔끔히 정리하고 있다.

 

우리 천주교인들은 이 운동에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정부에 대한 충성의 모범을 보였다.”(뮈뗄 주교)

 

일본 정부는 합법적 정부이므로 우리 가톨릭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쳤다.”(드망즈 주교)

 

물론 당시 한국 가톨릭이 주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는 것도 일제에 대한 태도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긴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저 두 주교의 발언은 그들이 속한 국가(프랑스)의 일본에 대한 입장과 같은 선 위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뮈뗄 신부는 안중근 의사의 일화에 한 번 더 등장한다. 안중근 의사가 처형 직전 종부성사를 청하자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뗄 신부는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그는 안중근 의사를 가톨릭 신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후에는 안 의사의 종부성사를 집행한 신부를 성무집행정지처분까지 내려버린다. 여러 주도적 위치에 있던 신부들의 신사참배는 개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의 전쟁 열병이 한창일 때는 대대적인 모금행사를 통해 비행기 2백여 대를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모아 헌납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친일 행각은 불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교 역시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자 조계종 산하 전국 사찰에 일본의 전승을 위한 기도법회를 열도록 재촉하였고, 또 무기구입을 위한 모금에도 열을 내었다. 그리고 이런 행사에 적극 나섰던 인사들이 이후 조계종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심지어 동국대의 총장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동학 역시 친일의 아픈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이용구가 이끌었던 일진회가 그러하다. 최초에는 독립협회 관련자들이 주도하여 유신회의 후신으로 설립되었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제로부터 자금 및 조직 지원을 받으면서 철저한 친일 조직으로 탈바꿈되어 갔다. 결국 동학은 일진회 때문에 이름을 천도교로 바꾸어야만 했고, 이후 교단 분열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다.

 

유교는 말한 것도 없다. 일제는 합방에 일정 부분 협력한 적이 있는 관료요원에게는 작위를 부여하고 은사공채’(恩賜公債)를 주어 그 이자로 여생을 편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외에도 친일파 양성책의 하나로 귀족이나 공로자의 유족들, 그리고 이전 조선정부의 관리 총 3,638명에게는 8,246,800원의 은사금(恩賜金)을 주었고, 전국 각지의 양반 유생 12,115명에게는 300,000원으로 분배하였다. 일제 초기 1원은 순금 두 푼(750mg)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만 원 정도이니 일제가 뿌린 금액의 규모가 어떠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은 유생이라야 황현(黃玹, 1855-1910)을 위시해 을사늑약에 비통해 자살한 20여명이 전부였다. 그때 일제가 나눠주던 은사금을 받고자 했던 유교식자층들로 인해 서울로 가는 모든 길이 북새통을 이뤘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유교 식자들의 민족의식도 참담할 지경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그때 받은 돈과 토지 등을 기반으로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주도층이 되어 갔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역사와 민족 앞에 제대로 진정어린 사과를 했다는 소리는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일제강점기 때 종교로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은 홍암 나철(1863~1916) 선생이 창도한 대종교 정도뿐이다. 나철선생은 과거에 장원급제한 엘리트로서 국가의 패망과 주권의 손실을 민족정신을 구심삼아 회복하려고 하였다. 당시 많은 독립을 희구하던 엘리트들이 대종교 운동에 동참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집중도 있는 독립운동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종교는 존재 자체가 너무도 미미하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왜 그 당시 종교인들은 다른 이들과 특별히 다를 것 없이 일제에 순응적 태도를 취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철저한 현실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라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기존 정권의 천부설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그들의 현실인식에서 이미 일본은 합법적인 한반도의 국가체로서 받아들였기에 저런 행위를 결과로 내어놓은 것은 아닐지. 그런 점에서 당시 종교인들은 내일을 말하며 철저히 오늘을 산 사람들이다. 오늘의 통치자에게 제대로 순응하며 미래는 수사적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신앙적이지 않은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종교, 그리고 신앙을 좇는 이들은 오늘에서 미래를 살아간다. 그래서 현실의 권력보다는 미래의 희망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종교인이 저처럼 미래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에 천착하고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이미 그들 마음속에 조선은 사라졌고, ‘대일본제국만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광복이, 해방이 그리 도적처럼 올 줄 알았으면 그들이 그런 판단을 했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신앙인이었을까? 오늘에 집중한 삶을 살았던 그들이 종교 지도자 인양 행세를 했는데, 과연 내일을 갖지 못한 이들이 어떤 믿음을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었을까. 신앙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이다. 그러니 지금도 오늘에만 집중하는 이들에게 감히 참된 종교인, 신앙인이라 불러 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의 교훈은 그렇게 치밀하게 우리의 오늘을 질타하고 있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1)

 

사교육 해결책?

 

 

사람들은 모른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조선조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교육 문제 역시 15세기의 가치관이 연장되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을 자꾸 21세기의 안목으로 해결해보려 한다. 정부는 밑도 끝도 없이 대입선발 제도 변경 실험을 반복하고 있고, 학부모들은 등골이 휘어가면서도 어떻게든 뭉칫돈을 마련하여 사교육 시장에 쏟아 붓고 있다. 학교의 교사들은 해체되어가는 공교육 현장에서 별다른 대책도 없이 교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도대체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청난 규모로 성장해버린 사교육시장. 공교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인이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많은 이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진단과 대안으로 우리사회의 교육문제에 훈수를 두려 한다. 하지만 그런 대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많은 경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앞서 나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왜곡된 사교육 시장의 모습은 21세기적 사건이 아니라 15세기적 가치관의 연장으로 해석했다. 즉 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과거 이념’이 만들어낸 문제이고, 결국 이 문제는 공평한 인재등용의 실패에서 오는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 아무리 공교육을 강화하고, 교육방송을 활용하고, 교사들의 수준을 높인다 해도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천여 년 간 우리는 한국에서 소위 출세를 위한 ‘유일한’(?) 지름길을 너무도 익숙하게 몸으로 익혀왔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제대로 출세하려면 어쩔 수 없이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한다. 그래야 좋은 인연과 각종 학벌의 우산 안에 머물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좋은 삶의 환경, 혹은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기에 다들 기를 쓰고 대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한번이다. 19년 정도 잘만 투자하면, 아니 초반부 5년 정도는 제한다 치더라도, 15년 정도만 죽었다 참아내고 잘 투자하면 적어도 50년을 편히 지낼 수 있는 이 구조!! 이 구조가 조정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사교육 열풍과 왜곡된 입시환경의 해결은 매우 요원할 것이다. 그러니 별스럽게 훈수둘 필요도 없다. 그냥 나둬라! 뭐라 작위적으로 작품을 만들려 해도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15년 투자해서 50년 이상 행복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적 열망’을 어찌 정부나 시민단체의 알량한 정책이나 제안으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이더냐!

 

이 문제는 애초에 모두가 동시에 손을 떼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 괜한 충동질로 한국 최대 종교조직인 이 일류대병에 더 불을 지필 필요도 없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소위 이 땅에 어깨 힘이나 쓴다는 이들 치고 좋은 대학, 좋은 집안, 좋은 금액을 갖지 않은 이가 있던가?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을 환경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지금 한국 사회 잘나가는 그룹에 그나마 평등적으로 낄 수 있는 것은 일류대에 진학하는 길 뿐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일류대란 없어서는 안 될 ‘종교적 성지’이다.

 

조선 사회가 과거라는 평등 인재 발굴 시스템을 통하여 사회의 안정적 유지를 도모했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입시라는 ‘현대의 과거’를 통해 만인이 단번에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는 해체하기 힘든 종교를 확산시키고 있는 셈이다.

 

어떤 환경 혹은 조건이든지 15년 정도 투자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평생의 숙원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 로또정신이 해체되지 않고서 어찌 입시와 사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가!

그렇다면 정녕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가? 앞서도 말했듯이 현 사교육과 입시의 문제는 공평한 인재등용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그나마 남은 유일한 인재등용 창구가 현 입시제도이고 일류대 진학이니 이 왜곡현상의 확대는 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꼬여있는 뿌리를 펴는 일 밖에는 없다.

 

인재 등용이 다변화해야 하고, 이를 정책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일류대 중심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됨됨이와 그가 스스로 쌓아올린 능력치를 보고 선발할 수 있는 개방적 인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 문제의 해결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학연, 지연, 인연, 가문 등을 중시하여 초야에 묻히는 많은 인재들을 발굴치 못하는 우를 제대로 교정해 나간다면, 의외로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 잘 만나고, 가정환경이 좋아서, 좋은 대학에 가서, 친구가 잘나서가 아니라, 지가 잘나서! 그런 외부의 고리가 없어도 사회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인재 발굴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이 문제의 해결은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문제는 이처럼 쉬운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연줄과 패거리문화가 주는 각종 이득의 달콤한 유혹이 커도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0)

 

‘과거’ 이데올로기

 

 

해마다 두 차례, 여름과 겨울이 오면 강남 코엑스는 고등학생과 그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바로 수시와 정시를 위한 입시 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매년 백여 개 이상의 4년제 대학과 10만 명 가까운 수험생과 그 가족이 이곳을 방문한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생부를 든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자기 성적으로 입학 가능한 학과가 무엇인지를 상담하게 된다. 2015년도에도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수시입시박람회가 진행되었고, 총 137개의 대학이 참석하여서 열띤 홍보전을 벌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시 과열은 정평이 나있다. 이런 행사도 그런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노린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런 입시에의 과열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아무래도 우리는 과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조선시대를 지탱하던 과거라는 시험 시스템을 가벼이 취급한다. 그저 그런 많은 국가시험들 중의 하나이거나, 혹은 흔해빠진 국가공무원 선발 시스템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란 제도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아니 과거 제도야 말로 조선이라는 왕정을 유지토록 해준 최고의 공신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교의 근본덕목이랄 수 있는 ‘입신양명’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과거라는 제도이다. 따라서 조선의 통치자들은 이 시험의 문호를 특정계층 외에는 모두에게 개방하여, 적절히 백성들의 출세에의 욕구를 조절하여 자신들의 통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기를 수백 년, 아니 958년 고려 광종 9년에 처음으로 과거를 시행했으니 그것으로부터 치자면, 무려 천년을 넘어가도록 이 제도는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견인하는 가장 큰 권력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이 과거 제도가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는 기계적 평등이다. 특정인들 말고는 누구든 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또 그 결과에 따라 걸맞은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 말이다. 이 만큼 입신양명의 실현을 위해 최적의 조건은 있을 수 없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 이런 과거 이념에 천년 이상 노출되다 보니 우리 역시 입시에 대해서는 예민할 정도로 평등과 균등을 강조한다. 그러다보니 대학입시에서 정작 주관자이자 주체자라 할 수 있는 대학의 역할은 부차적이다. 입시정책의 알파와 오메가를 정부가 좌지우지 한다. 물론 정부의 정책과 대학의 입장에는 일정한 알력관계가 존재하고, 또 줄다리기도 여전하다. 아울러 이 양자 사이에 학부모 단체는 마치 무슨 이익단체처럼 모든 교육정책에 사사건건 토를 단다.

 

이런 상황이니 교육부는 ‘3불 정책’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불 정책이란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 ‘기여 입학제’, ‘고교등급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 바 힘깨나 있는 메이저급 대학들은 알게 모르게 3불 정책을 거스르는 입시전형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꼼수가 들통이라도 나게 되면 이런 저런 학부모 단체가 연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학당국과 교육부를 질타한다. 문제는 3불 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시행됨으로써 제한될 수 있는 자식들의 입시환경에 있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난리를 치고, 정부는 그들의 표와 여론이 무서워 눈치를 본다. 그리고 대학은 정작 신경 써야 할 교육보다는 준비되어 있고, 집안 환경 좋고, 미래가 나름 보장된 학생들을 뽑아 쉽게 학벌 네트워크를 확장하려고만 든다. 참으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현대 시민사회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주체가 되어 각자 필요한 곳에서 적절한 능력을 발휘하여 함께 사는 삶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터인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시민의 마음을 휘감고 있는 과거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따라서 한국적 마인드에 빠져있는 대다수 시민들은 여전히 ‘과거급제’라는 환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론 주도층을 위시한, 이 땅의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마저도 과거 이념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것을 줄 세워 순위를 매겨야 하며, 소질이나 능력보다 학교의 이름이 중요하고, 잘나가는 학과에 소속된 것이 핵심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습관이나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이 사회를 이끌고 있는 가장 큰 이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제 아무리 대학들이 발버둥 쳐가며 다양한 혁신사업을 통해 학교를 개량하려해도 한번 줄 세워 매겨버린 순위의 변동은 요원하다.

 

요즘은 국내 순위에만 연연하지 않고 더 나아가 세계 대학 순위에 목을 맨다. 그래서 세계 100위권 대학으로의 도약이 어떠니, 글로벌 명문 대학이 어떠니 화려한 수식어로 대학을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다. 허나 정작 그 대학별 순위라고 하는 것이 발전기금의 양이나 전문가 집단에서의 평판 등을 따져 매기는 일종의 심심풀이 인기투표 같은 것인데, 과거 이데올로기에 매여 있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그것이 마치 전부인양 또 호들갑을 떨어대며 엄청난 양의 자금을 쏟아 붓는다.

 

그러다보니 정작 지금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적 기능인 양산에는 실패한다. 그러다보니 적절한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제공해줄 사회 내 대학의 역할은 작동되지 않고, 최상위 1인을 중심으로 쭉 줄서는 문화만이 여전히 번창 중이다. 특히 잘난 놈들이 판치고 있는 사회와 그들이 속한 영역에서 나는 구린내는 천지를 진동한다. 그래도 별 소리 없다. 왜? 그들은 1등이니까.

 

과거를 급제한 놈들은 많은 것이 용서된다. 그래서 집안의 어른이라 할지라도 싹수가 있어 공부와 암기에 재능을 보이는 사내아이가 나오면 골이 빠지라, 등골이 휘라 시험 지원에 여념이 없을 정도이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한 놈의 입신양명에 기대 자신의 이름도 빛을 내길 원하는 이 제도.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누천년!

 

그러니 이 사회 구석구석에 이 과거라는 시스템의 영향력은 대단하고 막강하다. 최근에 우리 사회의 이 과거시스템, 즉 입시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예서제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과거 이념은 이미 신앙되고 종교화된 거대한 가치체계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과거 이념이 제공해준 ‘줄서기 가치관’은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 뇌리에 깊게 박힌 하나의 유전질환처럼 되어 버렸다. 최고라고 하는 것, 1등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맨 앞의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종교마저도 이 과거 이데올로기에 붙어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교회마다, 성당마다, 사찰마다, 그리고 점집마다 넘쳐나는 손님들.. 그리고 정성들.. 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엄청난 자금의 흐름들! 여전히 이 나라는 줄 세우기 이데올로기가 빛을 발하며 힘 꾀나 써대는 주술의 미몽에 빠져있는 셈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9)

 

남자화장실 청소를 왜 여자가 하죠?

 

 

독일 유학 중일 때였다.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 식당에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함께 식사하고, 커피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독일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 동양 아가씨들에 대해 묘한 판타지가 있어 매번 나를 다리로 하여 한국 여학생들과 접촉을 하려하던 상당히 전술적(?)인 친구이기도 했다. 하여간 이모저모 이 친구는 동양 아가씨와 결혼하고픈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과감히 한국어를 배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꿈(?)을 이루기 위한 이 친구의 노력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용기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1년여 짧은 어학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었겠지만, 나름대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한동안 젖어 있던 탓인지, 이 친구 다른 독일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각 잡힌 한국통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우연히 이 친구를 버스에서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어학연수를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의례적 인사로 한국에서의 경험이 어땠는가?”를 물으니, 이 친구 침이 튀는 무례함을 각오하면서까지 한참이나 생전 처음 경험한 이국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그때 그가 던진 말 중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이다.

 

이 친구는 한국에 와서 다른 것보다 다음 두 가지에서 생경함을 느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이 무언가 하니, 하나는 겨울철 너무도 자주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입마개였다고 한다. 추운 날 감기가 돈다 싶을 때면, 아니 그저 날씨만 싸늘해졌다 싶어도 어김없이 한국 사람들은 입마개를 하고 거리에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흔한 일상이 되어 있는지라 별 감흥이 없긴 하겠지만, 이 친구가 속한 사회에서 하얀색의 마스크는 지독한 전염병이 돌기 전에는 좀처럼 착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거리에 가득한 마스크의 등장은 이 친구에게는 상당히 생경했을 것이다.

 

 

 

 

나 역시 독일생활을 늦가을에 시작한지라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15명 정도가 속한 클래스에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추운 날 일본 여학생 하나가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가 온 강의실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일단 독일어 선생부터 무척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병이냐?”, “왜 그런 아픈 몸을 이끌고 수업하러 왔느냐?” 등등 연신 걱정스런 말투를 쏟아내었고, 다른 유럽 학생들도 그 친구의 곁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앉으려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이 일본 여학생은 유행성 독감이 아니라 단순히 감기에 걸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얀색 마스크가 그녀의 감기를 강력한 유행성 독감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그 사건 이후 강의실에 속했던 학생들은 그처럼 세계의 문화는 다양하다는 실제적 가르침을 얻게 되는 한 계기가 되었다.

 

흰색 마스크 외에 이 친구가 생경함을 느낀 또 다른 것은, 바로 남자 화장실 안에서 만난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사실 한국에서 화장실 청소는 대부분 여성들이 맡는다. 우리에게야 매우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 또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여성들도 연세 지극하신 분들이 대부분인지라 그런지 별 감흥 없이 이 난감한 사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 남자 화장실을 위풍당당하게 거닐고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남성들에게는 사실 상당히 당황스럽고 불편한 상황이라 하겠다. 성인 남성들이 죽 줄 서서 중요한 부위를 노출하고 용변을 보는 현장에 어쨌거나 여성의 몸을 한 이들이 당당히 활보하고 있다는 이 어색함! 게다가 종종 흘리지 말고 정확히 용변을 보라고 호통까지 치시는 여성들의 고압적 자세를 우리는 별반 거부감 없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사실 남자 화장실에 그처럼 여자들이 자유롭게 활개를 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유럽에서는 보통 남자 화장실은 남성이, 그리고 여자 화장실은 여성이 맡아 관리한다. 물론 여성이 남성 화장실을, 그리고 남성이 여성 화장실을 청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이용자가 없는 시간이거나, 화장실 입구에 그 사실을 공지한 후에야 가능하다. 하여 우리처럼 무자비하게 이용 중에도 불쑥 들어와 자신의 공무를 집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잘은 몰라도, 만약 외국에서 한국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여자 용역에게 성적 수치감을 유발시켰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에서 고소, 고발이 터져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경한 그림이 왜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먼저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떠올랐다. 대부분 화장실을 청소하는 여성의 나이는 폐경기를 지났음직한 중년 이상이 많다. 보통 50대에서 60대 초반의 연배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많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남자 화장실을 관리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화장실 청소에 남녀의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나이에 이른 여성들의 성적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무시하거나 제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자 화장실에 20~30대 젊은 여성을 투입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50~60대 폐경기에 이른 여성은? 어쩌면 그들은 여성이 아니라는, 혹은 그들을 여성으로 보지 않으려는 사회적 폭거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종종 외면하는 인간학적 질문이 파생되는 순간이다. 단순히 화장실 청소에서 성차별 폐지라는 취지에서 보자면, 당연히 20~30대의 젊은 청소용역들의 모습도 남자 화장실에서 볼 수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50~60대 여성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성차별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지.

 

우리 사회는 그처럼 폐경기가 지난 여성들에게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지위보다는 '어머니'라는 사회학적 신분을 주로 강요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여성성이 보호받고 강조되기 보다는 안락한 가정, 혹은 공동체 환경의 유지를 위한 용역 신분으로 고정된다. 따라서 화장하는 어머니, 멋진 드레스로 몸을 감싸는 어머니, 야한 영화를 보는 어머니, 황혼의 로맨스를 꿈꾸는 어머니들은 어머니가 아니라는, 어머니일 수 없다는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을 아무 감각 없이 자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니 남자 화장실을 활보하는 여성 청소용역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가진 또 하나의 폭력적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구별이 때로는 더 정직한 사회의 모습일 수 있다. 앞으로 남자 화장실에서는 남자 청소 용역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여자 화장실에도 남자 용역을 배치해 성차별이 사라진 확실한 사회상을 보여주든지.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8)

 

안 낳는 것인가, 못 낳는 것인가?

 

 

“1.21”

2014년 한국에서 임신 가능한 여성들이 평생 출산하게 될 아이의 숫자이다. 저 정도 출산율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2005년 1.08로 최저치를 찍은 뒤,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상승 국면 일변도는 아니다. 2007년 1.25를 찍은 뒤 다시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2012년 다시 1.30으로 최고점에 오른 뒤 다시 내려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1.21”이라는 수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우선 출산율 저하는 경제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 올 것이고, 줄어든 노동자의 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이주민을 대규모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런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원화·다변화 속도는 상당히 빨라질 것이다. 그 결과 한국도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사회로 접어들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기조를 이루던 많은 것들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각종 채널을 통해 다문화교육을 홍보하고, 또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 그러니까 두 명이 만났으니 적어도 셋 이상은 낳아야 인구가 현상 유지나 증가가 될 터인데, 둘이 만나 겨우 하나 낳을 정도니 인구의 줄어듦은 눈에 본 듯 빤하다. 앞으로 이 때문에 우리 후세들은 취업걱정이 아니라 세금 걱정에 허리가 휠 것이고, 경제인구와 노년계급과의 심리적, 사회적, 계층적, 경제적 갈등은 말할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아무튼 지속적으로 후속세대들이 태어나 줘야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텐데 타개책 찾기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정부대로 낮은 출산율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데 제시되는 대책은 좀 일변적이다. 즉 보육 및 육아시설 확충, 가임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 확대, 여성들에게 집중되는 육아문제 해결을 위해 남녀 공동 육아 휴직 주기 등 출산율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대부분 사회 경제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인구에 관한 문제는 사회적 관심분야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사회적이기 이전에 생리적이고 생물적이고 발생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출산율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회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보다 총체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선 통계의 그물에서 빠질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단순히 결과론적인 출산율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임신 시도와 실패에 대한 비율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통계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의 비율과 그들의 성공 비율, 그리고 유산 비율 등등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두고 출산율 저하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러니까 다들 사는 게 힘들고, 애 키우는 게 버거워서 임신을 꺼리고 있는 것인지, 아이는 갖고 싶고, 또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데도 좀처럼 생기지 않고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아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자신의 삶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인지 좀 더 분명하고 광범위한 통계자료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 후 각각의 통계들이 말하고 있는 의미와 이유를 촘촘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요즘 한 다리만 거쳐도 어렵지 않게 유산 경험이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 하더라도 과연 의도적으로 출산을 거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출산율과 더불어 유산율 그리고 불임율의 상관관계도 우리는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후진국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국가의 출산율이 확연히 높다는 것이다. 참고로 2014년 종합 출산율에서 1위는 아프리카 국가인 니제르로 6.89명이었고, 말리(6.16명), 부룬디(6.14명), 소말리아(6.08명), 우간다(5.97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나라의 여성들은 경제적 압박을 덜 받아서 저토록 높은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신체는 생각보다 미묘하고 또 뛰어난 자생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동물의 경우도 스스로 출산율을 조정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처한 외부 환경이 열악하다면 오히려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먹을 게 적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개체 번식에 더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지금 생이 어렵고 고단하다면, 몸은 오히려 ‘지금’을 포기하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것이다. 그런데 먹이도 풍부하고 삶의 조건이 여유로워지면, 의외로 종족번식 활동을 등한시 한다고 한다. 이를 신체가 지금의 환경을 ‘즐기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좀 과한 것일까. 아무튼 이런 동물 관찰의 결과는 의외로 생명체의 출산율은 자연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출산의 가능성을 조절해가며 ‘지금 세대’가 ‘미래 세대’를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몸이 지닌 이 미묘한 종족 보존 사이클을 우리 사회 출산율 저하에도 포함시켜 해석해보면 어떨까. 표면의 결과가 때로는 본래의 원인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출산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며 동시에 몸의 문제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좀 더 중요한 요인들을 잊고 있는지 모른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7)

 

지리산가리산, 한국교회(?)

 

 

인간은 시간의 동물이다. 많은 동물들 중 인간만이 유별나게 시간을 미리 느끼고, 그것을 궁금해 하며, 또 그 때문에 고민한다. 보통 우리 주변의 동물들은 지금의 생존을 가장 중시한다. 물론 몇몇은 내일의 먹을 것을 위해 음식을 저장한다. 나무 위에 걸쳐놓거나 땅 속에 묻어놓거나, 아예 몇 개의 위장에 나누어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이지 인간처럼 일주일, 한 달, 1년, 아니 그 이후까지 로드맵을 만들어 준비하고 고민하고 안타까워하는 동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이는 인간만이 지닌 특권이요 혹은 본질적 천형(天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요상한 버릇이 인간에게 있다. 인간에게 자명종은 필수품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외부의 도움을 받는 동물은 아마 인간뿐일 것이다. 자명종에, 모닝콜에, 핸드폰에 갖가지 장치를 해두고 우리는 잠을 청한다. 그렇게 ‘지금’ ‘여기’ 살고 있으면서도 ‘내일’, ‘저기’를 생각해야만 하는 인간은 시간이라는 천형 속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오늘보다는 내일이 문제다. 이 점에서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 역시 끊임없이 내일을 묻고, 미래를 확인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또 우리를 기다린다. 인간은 분명 시간을 인지하고 미래를 생각하지만, 그 내일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내일은 언제나 우리를 불안케 한다. 이 불안은 지금 편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공평하게 작동된다. 오늘 풍족하다면 내일의 궁핍을 걱정하고, 지금 어렵다면 그것이 더 심해질까 우리는 또 내일을 근심한다. 그러니 시간의 흐름을 알아챘지만 그것의 지향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내내 불안하게 살아간다. 교회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 신앙인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신앙인 역시 인간이므로.

 

게다가 지금 한국교회는 적잖은 곤란함에 빠져있다. 안으로는 90년대 이후 둔화된 성장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호처럼 외치던 1200만 성도는 지난 2005년 인구센서스 조사로 허수임이 밝혀졌다. 멀게 갈 것도 없이 성결교회 신자 수 역시 좀처럼 시원하게 위로 뻗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몇몇 거점교회들의 증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대형 교회의 성장 역시 신자들 간의 이동에 의한 것이지 순수 입교자의 수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거기에 더해 외부에서 가해오는 교회에 대한 평가는 심하다 못해 아프다. 참으로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단어가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고, 또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바닥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이러니 교회는 지금 미래를 고민한다. 그것도 매우 아파하고 불안해하며 미래 한국 교회의 그림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을 눈여겨보며, 또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래를 말하는 이들의 소리에는 익숙한 단어 하나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이 이상야릇한 단어가 연신 그들 입에서 튀어나오며 ‘한국교회의 미래는 포스트모던을, 혹은 그 사조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얼마나 잘 준비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포스트모던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우물쭈물한다. 이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아리송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많은 이들이 힘주어 말하고 있긴 하지만 좀체 손에 잡히지 않고, 또 머리에 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쩌든지 이 포스트모던을 꼼꼼히 살펴보면 한국교회의 미래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궁금증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이 포스트모던에 대한 대응 내지 대비도 제각각이다. 어느 쪽에서는 포스트모던이야 말로 ‘반-기독교적’이고 ‘반-유신론적’이기 때문에 가급적 멀리하고 또 확실히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이미 현대 사회가 포스트모던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시민들 역시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던적이 되었고, 따라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교회 역시 이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면 모두 타탕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여전히 포스트모던의 정체는 짙은 안개 속 풍경처럼 여전히 아득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포스트모던이 좋다는 것인가, 나쁘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또 헷갈려한다. 같은 문제에 대한 각기 다른 처방이니 어느 한쪽은 맞거나 틀린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떠오르는 물음 하나는 ‘지금 한국사회가 포스트모던인 것은 맞는가?’이다. 사실 포스트모던은 인식의 문제이다. 중세 이후 철저하게 인간 이성을 지배하고 있었던 일원론적 세계 이해에 대한 처절한 거부의 몸짓을 우리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서구 사회는 하나 된 세계를 경험하고 또 그 안에서 살았다. 서구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험적 ‘세계’(World)를 가능하게 했던 로마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를 선택한다. 로마를 통해 인류는 ‘세계’, ‘우주’, ‘보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또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로마가 다양한 민족, 인종, 문화로 구성된 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통합으로 인류는 거대한 단위의 ‘한’ 국가, ‘한’ 문화권, ‘한’ 신앙을 ‘역사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중세 유럽을 이끄는 ‘그리스도교 보편국가’(res publica christiana)의 기초를 놓았다. 그 이후 산업혁명과 계몽의 시대를 건너 인간 이성과 개인의 주체를 강조하는 모던의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그 중심을 꾀는 생각은 하나의 관점으로 세계를 관통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일원론적 사상이었다. 그것이 신앙이든, 이성이든 간에 세계는 하나의 목적 아래 진보적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거친 반항이 서구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물론 멀리 잡으면 기존 관념론, 그리고 이성 중심의 철학들을 허물어뜨리려 망치를 휘두른 니체(1844~1900)로부터 포스트모던의 조짐을 읽으려는 이들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서구 사회의 본격적 포스트모던의 시작은 20세기 후반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골자는 일원론적인 인식에서 다원론으로 전환이다. 세계를, 우주를, 역사를 이제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핵심이다. 따라서 교회 역시 이 변화된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잘 감안하자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하나의 생각, 하나의 관점, 하나의 신앙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제 평균적인 생각과 생활방식을 지닌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이질적인 이들의 집합이 현대, 그리고 미래의 사회이기 때문에 교회 역시 충분히 대비와 준비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곧바로 다른 물음 하나가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시각이라면 그러면 우리 사회는?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사실 포스트모던의 속성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 전에 ‘포스트모던적’이었다. 한국에서의 포스트모던은 바로 지금이 아니라 줄잡아 이미 백여 년 전에 시작되었고,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서구교회가 경험했던 포스트모던적 충격 하에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하고, 또 그에 대한 대비를 운운하는 것은 진단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시대와 사조 구분을 아무런 반성이나 치밀함 없이 서구사회의 것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한데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조선조 사회는 서구의 중세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신앙체계로 구축된 ‘종교국가’였다. 즉 주자학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일원론적인 세계였다. 그 사회에 서구와 일본세가 끼어들면서 새로운 가치관이 이미 19세기 중반이후 강하게 조선 사회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런 일원론적 세계의 붕괴 와중에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바로 기독교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미 전래 초기부터 포스트모던의 ‘환경요인’ 중 하나로 한반도에 들어온 셈이다. 서구교회가 포스트모던이라는 환경에 대응하야 하는 일원론 주체라고 한다면, 한국교회는 그 반대 입장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교회는 이미 포스트모던적 환경에 잘 적응했고, 또 그 안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하며 변화할 것을 강조하니 한국교회는 난감할 수밖에! 이미 백 년 전에 내린 처방을 다시 써먹으려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안타까울 수밖에!

 

따라서 우리는 생각을 좀 바꿔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변화된 환경, 바뀌어버린 시민들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에서는 한 번도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혹 그에 버금가는 목적론적 이성 중심주의를 가지고 이 사회를 지배한 적이 없었다. 있었다면 성리학적 세계관이었고, 또 한 번도 기독교가, 교회가 이 사회의 주류였던 적은 없다. 물론 20세기 후반 들어 한국 여론 지배층의 많은 수가 신자화 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교회는 20%를 돌파하지 못한 소수였고, 이 수치는 당분간 급격하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정인데 우리는 또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었던 서구 사회의 진단과 처방을 별다른 고민도 없이 사용하려 든다. 오히려 이런 성급하고 무반성적인 진단과 처방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좀 체 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종교란 말은 라틴어 ‘religio’를 번역한 것이다. 키케로는 이 말을 ‘다시 읽는다’(re-legere)로 푼다. 그리고 락탄시우스는 ‘다시 묶는다’(re-ligare)라 해석한다.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것을 종교라 본 것이다. 이런 풀이는 우리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을 ‘통’(通)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곤란함은 ‘소통’의 문제이고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전래 초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성도들의 절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가?’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신앙의 열정을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찾고 확인해야 할 것은 21세기 서구교회의 사례가 아니라 19세기 후반 한반도에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고백의 기쁨을 한국사회에 전파하기 시작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이며, 바로 그들의 영성에서 지금 한국교회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귀중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6)

 

메르스와 왕조 바이러스

 

 

중동발 호흡기 증후군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어김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그중 압권은 6월 11일 국회 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나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의 외마디였다.

 

“국가가 뚫린 겁니다. 이것은!”

 

 

 

 

위 선언은 메르스 환자에 대한 삼성병원의 미숙한 초동대처가 사태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질타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것이다. 뉴스를 통해 젊은 의사의 이 같은 외마디 선언을 듣고 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최고 학부를 나오고, 배울 만큼 배웠고, 거기에 더해 국내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과장 자리에 있는 이른바 우리 사회의 엘리트 입에서 저런 문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 더더욱 놀란 것은 저 발언 이후에 나온 우리 사회의 반응이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의심했고, 또 무엇에 놀란 것일까?

 

우선 나는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이고, 아울러 균형 잡힌 시민교육을 시행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슈퍼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이의 입에서 ‘국가’란 단어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발설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가진 집단”

 

뭐 이 정도야 초등학생 수준만 되어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국가의 3요소를 댈 수도 있다. 바로 국민, 영토, 주권이다. 그렇다면 국가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영토를 포함한 집단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즉 추상적인 사회적 개념이 바로 국가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들을 영토로 하고, 거기에 거주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집단이 국가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젊은 의사는 ‘국가’가 뚫렸다고 한다. 그때 그가 말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보다 더 정확히 뜻을 새기자면 그가 하고픈 이야기는 국가라기보다는 ‘정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염내과 과장은 뜻을 한 번에 새기기에는 매우 불편한 길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과의 논박 속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려다보니 부지불식간에 제대로 된 단어를 선택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통용되는 우리 사회의 ‘국가=정부’라는 의식은 우리가 제대로 된 민주적 시민교육을 시행하고 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부는 주로 행정부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정부는 행정부와 더불어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를 통괄한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공적 기관이다. 그렇게 정부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고, 그 운영의 주체도 국가를 구성하는 주권자의 선택에 의한 임시적인 것이다. 왕정이 아니기에 시민사회의 권력은 시한이 있으며, 또한 주권자의 공정하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주기적으로 교체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뚫릴 수 없다! 만약 뚫렸다면 그건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특정한 공적 기관이 뚫린 것이다! 그러므로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의 저 발언은 우리 사회가 지닌 복고적 사회의식의 한 단면을 적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헌데 더 놀라운 것은 저 발언 이후에 보여준 우리 사회의 반응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무반응’이다. 다들 저런 수사가 익숙한 양 젊은 의사의 왜곡된 우리말 사용을 지적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시민이 주권의 원천이 되는 공화국이다. 군주가 통치하는 왕정국가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올곧게 우리 사회에 자리하고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 ‘국가가 뚫렸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은 튀어 나왔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해되고 통용되고 있다는 것! 내가 의아함을 넘어 놀라기까지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왕조 마인드의 주술 안에 있다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많은 미디어와 그곳에 똬리를 틀며 각종 다양한 이슈마다 참견을 해대는 평론가에 논객이라 하는 이들도 이 선언엔 별다른 언사를 더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왕조 바이러스는 심각하게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납세자요 주권자로서 스스로 주체적 행위자로 자리매김해야 할 시민들이 오히려 복종자가 되고, 을이 되어 우리가 택하고, 돈을 내어 지원하고 있는 공복들의 종이 되는 코미디가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2015년의 메르스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알리는 바로미터가 되어 간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5)

 

메르스가 던지는 메시지

 

 

바이러스. 그 이름은 ‘독’을 뜻하는 라틴어 비루스(virus)에서 왔다. 그런데 사실 바이러스는 그렇게 해롭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만은 아니다. 늘 있어왔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리고 실제로 지구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기물질이 바로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묘하다. 독립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구성체라고는 일정한 유전물질과 단백질,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껍질 정도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 독립적으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기에 반드시 숙주를 필요로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세포에 있는 핵산을 통해서만 자신의 고유한 유전정보를 복제하여 증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생존 방식 때문에 바이러스는 적당한 선에서 숙주와 공생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자신의 유전정보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존재방식 덕분에 바이러스는 지구라는 혹성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거의 무소편재하다. 세포로 이루어진 유기체라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가리지 않고 기생한다.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작은 크기이지만, 지구상의 바이러스를 쭉 줄 세운다면 수십억 광년의 길이로도 모자를 것이다. 매일 마시는 한 컵의 물에도 수백억 개의 바이러스가 요동치고 있고, 깨끗한 척 유난을 떠는 우리의 몸에도 언제나 바이러스는 똬리를 틀고 있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숙주 모르게, 숙주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니 바이러스 연구가들이 노래처럼 읊조리는 “신은 바이러스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숙주로 인간을 만들었다”라는 말이 지나치게 들리지 않는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원출처

 

 

암튼 이런 성격의 바이러스는 속성상 숙주와 잘 지내야 한다. 허나 몇몇 경우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숙주마저 파괴하는 폭주 형 바이러스가 생기곤 한다. 그래서 복제하려 들어온 숙주를 죽게 만들어 결국 자신도 파멸하는 어리석은 운명이 되곤 한다. 2002년의 사스가 그렇고, 2012년의 메르스가 그렇다.

 

그런데 2015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란 이름의 바이러스는 아주 묘한 구석이 있다. 치사율 40%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이 녀석은 매우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를 치유할 수 있는 백신은 아직까지 개발이 안 된 상태이다. 아무리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3년이나 지났는데 왜 백신이 없는 것일까? 2009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신종플루만 해도 ‘타미플루’라는 치료약이 곧바로 개발되었는데 메르스의 백신은 왜 없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이 안 되는 이유는 강한 독성을 지닌 이 바이러스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전파력에 있다. 신종플루는 공기 중 감염이 이루어지기에 순식간에 많은 이들에게 확산되는 반면, 메르스는 사람 사이 밀착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다보니 주로 병원 안에서, 그리고 생활공간이 밀착되어있는 가족 간 감염이 주를 이루게 된다. 그러니 속도와 파급도가 다른 공기 중 감염되는 바이러스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이런 상황이니 구태여 이 바이러스를 위한 백신에 천문학적 연구비를 들일 이유가 없다. 밀착 접촉형 감염이다 보니 적절한 방역망이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첫 발원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곤 확진자의 숫자가 현저히 적다는 것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확진자 수로 보자면, 영국이 4명(3명 사망), 독일 3명(1명 사망), 프랑스 2명(1명 사망), 미국 2명 정도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예상과 달리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상당한 수준의 의료 환경을 구축한 나라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메르스에 융단 폭격을 당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당국의 미숙하고 안일한 초기 대응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그것만으로 탓하기에는 한국 사회 메르스 확산의 이유가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요소는 없는 것인가? 이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가 보이는 매우 독특한 의료 서비스 환경을 꼽고 있다. 바로 ‘병원 쇼핑’이다.

 

‘병원 쇼핑.’ 사실 우리 사회에서 소문난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 유랑하듯 헤매는 사연자를 찾아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 한 병원에 진득이 눌러 앉아 질병의 진원지를 찾아내려하기 보다는 빨리 차도를 불러낼 수 있는 용한 명의에게 진료 받으려 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이고,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병원도 가까운 동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 싸게 파는 대형 할인마트를 찾는 것처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쇼핑하듯이 우리는 병원도, 의사도 손쉽게 바꿔 탄다. 그래서 이 병원에서 차도가 없으면,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다.

 

일방적인 목적 지향적 에토스가 만들어낸 사회적 질병이다. 이 질병에는 기다림이나 인내는 사치이다. 차분히 묻고 따지며 원인과 이유를 살피기보다는 즉각적인 몸의 반응과 차도를 요구하기에 침상을 옮겨 다른 병원을 찾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옮겨간 병원에서 보다 빠른 치료의 대상이 되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전하는 데 크게 힘을 쏟지 않는다. 다만 이런 저런 관계와 라인을 통해 빨리 무언가 차도가 있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힘을 다하고 압력을 가한다. 그러니 손쉽게 수술을 하고, 주사를 주입하고, 강도 높은 항생제가 처방된다.

 

급하다. 묻고 따질 시간이 없다. 질병에도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을 텐데.. 언제 그것을 묻고 자시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빨리 떼어버리고,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하고, 빨리 내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상과제이고, 최선의 목적일 될 뿐이다. 과정은 번거롭고, 진단은 구차하고, 설명은 비루하다. 빨리 수술을, 어서 주사를, 더 많은 약을 얻고, 받아 째고, 맞고, 먹으면 될 뿐이다! 이처럼 메르스는 반성 없고 성급한, 제대로 따져묻지 않는 우리 사회의 허술한 면역 체계를 적확히 노리고 파고든다. 적잖은 희생과 아픔을 치르면서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면역체계의 문제점을 진단받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병원 쇼핑이라는 독특한 한국의 의료 환경이 메르스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헌데 어디 우리사회가 병원만 쇼핑하고 있던가. 종교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단, 종파를 가리지 않고 제 맘에 드는 공동체를 찾아내기 위해 방랑하듯 유랑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니 누구 설교가, 아무개 강론이, 어떤 이의 법설이 좋다면 천릿길도 단숨에 오가는 것이 지금 종교계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니 차분히 앉아 자신에게 찾아온 체험의 비밀을 음미하거나 되묻는 반성의 시간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그런 사유와 명상, 그리고 반성을 촉구하는 이들은 어디서든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저 당장의 결과와 축복만이 절실하고 갈급할 뿐이다. 그러니 어느 종단을 막론하고 우리의 실존을 제대로 진단해낼 수 있는 신학적 결과물은 요원하다.

 

예까지 생각이 미치니 우리 몸에만 메르스가 덮친 것이 아닌 것 같다. 반성 없고, 사색 없는, 그래서 신학(교학)마저 영혼이 빠져버린 한국의 종교계는 이미 오래전에 메르스에 점령당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병원 쇼핑 못지않게, 종교 쇼핑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주제라 하겠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