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연의 아기자기(26)

 

워킹맘과 육아빠의 세계로

 

 

8월 3일, 약 13개월의 육아휴직을 접고 복직을 했다. 그 전날 마음이 참 복잡했다.

 

돌아보면, 다시 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이었음에도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과 또 오늘의 무수한 반복이 지겨울 때도 있었다. 누구든 한 아이를 키우면서 감당해야 할 일정한 일은, 어제했다고 오늘 안 할 수 없었고, 내일 몫을 오늘 해 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육아의 9할을 이제 내일이면 남편이 맡는다. 나는 사실상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1할을 맡게 될 테다. 그리하여 언제나 똑같기만 했던 오늘이었는데, 그 오늘이 오늘은 (실제로는 똑같은데도 마음으로는) 괜히 더 특별했다.

 

무엇보다, 나의 복직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손 치더라도 (그러나 엄연한 우리의 선택이었다) 남편과 이루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다. 남편은 내일도 변함없이 반복될 ‘오늘’의 일과를 (둘이 하다 혼자) 감당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오죽하면 스스로도 ‘우울증’에 걸릴까 걱정된다고 말할까. 미안하면서도 걱정이 돼서 내일 출근해서 일에 집중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육아의 짐을 “아주 많이” 덜 수 있게 돼 홀가분한 마음으로, 또 일 중심적인 본성이 드러나 숨어 있던 열정이 마구 샘솟아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지만, 며칠 전부터 (엄마의 복직에 대해) 얘기해서 알 건 다 알 듯한 이루에게 미안한 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루가 기대며 지내 온 세상의 한 축이 갑자기 빠지는 일이니 분명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당분간 짜증과 떼가 늘어서 아빠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복직을 앞둔 부모들에게 하는 조언들을 찾아보고 나름 지키려고 하겠지만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고,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아는데도 어느새 ‘걱정’은 마음 한 편 비집고 들어와 보란 듯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말에는 무조건 남편을 집밖으로 내보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줄 작정이다. 주말에는 무조건 이루와 함께할 작정이다. (물론 남편이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하면 내가 이루를 데리고 나가거나,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가고 싶다 하면 그것도 오케이! 주말에 내가 아프면? 그땐 염치 불구하고 교회 식구들에게 SOS를….)

 

주로 여성이 주 양육자인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은 퇴근을 한 후 혹은 주말에 자신을 한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라고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야근이 잦고, 새벽같이 출근하느라 주말에 밀린 잠이라도 자야만 다시 생계 전선에 뛰어들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더 야박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기에, 그리고 내가 주 양육자라고 생각했을 때 바깥일을 하는 배우자가 이 정도는 해 주길 바라기에 아직은 결심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좀 기특하다고 생각되는 이런 결심을 해 본다.

 

아, 그리고 이 글이 육아일기의 마지막 글이다. 역시 마음이 복잡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연대, 우정의 손을 내미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보라고 하신 꽃자리 출판사 대표님의 제안에 선뜻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저 멀리 유럽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기도 했고, 늘 댓글로 응원해 주시는 분도 만났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우리 이루가 커 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하지만 특별하거나 본받을 만한 내용이 아닌 그저 평범하고 또 평범한 내용들로만 글을 채워서, 혹시 뭔가 도움을 받기를 기대했던 분들이 있었다면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기에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제대로 남편 흉 한 번 보는 글을 써 보라고 한 친구도 있었는데, 기회를 만들지 못해 그 또한 아쉬운 마음이다.^^

 

편집자의 바람/ 이제 못내 하지 못했던 이야기, 아빠가 이어서 쓰면 어떨까 ^^

뭐, ‘김은석의 좌충우돌’ 쯤 ㅎㅎ, 걍 ‘바람’이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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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25)

 

머리 커도 괜찮아, 비 맞아도 괜찮아

 

 

에피소드 1.

 

“이루는 원래 좀 작게 태어나긴 했지만 지금도 좀 작은 편이네요.”

 

9-12개월 사이에 받는 영유아검사가 있어서 동네 소아과에 갔다. 그리고 이루가 또래보다 작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치를 접하고서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그 느낌은 이내 반성으로 이어졌다.

 

평소 남편과 나는 이루가 통통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또 아빠를 닮아 (여보 미안^^) 머리가 큰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그보다는 가끔 이루 또래 아기를 키우는 지인들을 만날 때 듣는 이야기가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잘 먹는가 보다” “10키로는 더 나가겠는 걸?” “묵직하네.” “우리 애는 그맘때 정말 작았는데” 등의 말은 그분들이 어떤 뜻으로 한 말이든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런 이야기 듣는 게 싫어서 내가 먼저 선수를 칠 때도 있었다. “우리 이루 머리가 좀 크죠” “통실통실 요 살 좀 보세요” 등등.

 

그런데 이루는 전혀! 통통한 아기가 아니었다. 100명 중 키는 앞에서 11번째, 몸무게는 19번째, 머리 둘레는 15번째로 작았다. 그 동안 특별히 작은 아기들만 봐 온 탓인지, 간호사 선생님이 이루를 보자마자! “머리가 참 작다”고 하는 말을 믿지 못하고 괜히 “아니에요. 우리 이루는 머리가 좀 큰 것 같은데요”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아니, 살집이 있으면 어떻고 머리가 좀 크면 어떤가. 그런데도 나는 은근히 내 딸 이루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다. 보통 수준의 키, 몸무게 그리고 이왕이면 (남들도 원하는 대로) 머리는 좀 작았으면 했다. 미인대회에 나갈 정도로 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뚱뚱해서’ 행여 이루가 친구들에게 놀림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됐고 이루 스스로 몸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질까 짐짓 염려되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범하다는 말에 잘못 깃들어 있는 못된 의미를 버리지 못한 건 분명 못난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루가 혹시 또래보다 뚱뚱하고 머리도 큰 아이로 자라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가르쳐 주는 엄마가 되자고. 사람의 참된 가치는 내면에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는 엄마가 되자고.

 

 

 

 

에피소드 2.

 

건이네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별안간 굵어졌다. 등에 업혀 있던 이루가 비에 맞아 아직 다 낫지 않은 감기가 심해질까 걱정이 됐다. 어둑한 밤거리에 비까지 오니 혹시 좀 무서울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지만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감기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이루가 비오는 밤거리를 무서워할 거라는 생각은 다분히 기우라는 판단이 들었고, 엄마 등에 업힌 채 비 오는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이루에게는 즐거운 놀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루는 우산살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젖혀 손을 뻗었다. 드문드문 비를 맞기도 했는데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발 구르기를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내가) 주눅 들지 않기 위해, 또 이루가 심심할까 봐 집에 오는 내내 노래를 불렀더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철없는 엄마라고 욕먹을 수도 있겠으나, 다행히 이루 감기가 낫고 있어 면피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장대비 쏟아질 때 우리 아이가 그 비 피하기를 바라는 게 ‘평범한’ 생각이라면 나는 그 평범한 바람 대신, 이루가 때로 장대비 맞으면서 비의 질감을 느끼고, 비를 내리시는 신의 일반계시를 깨닫기를 바라는 엄마가 되자고. 비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엄마가 되자고.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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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24)

 

‘생명의 자람’은 신비로웠다

- 일 년을 돌아보며 -

 

 

지난주에 이루는 (무려) 만 한 살이 되었다. 예정일보다 보름 일찍, 2.6킬로그램의 작디작은 몸을 입고 세상 나들이를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라니.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볼 때 (가장 상투적인 표현을 빌려 쓰는 수준을 혜량해 주시길) 감회가 남다르다. 표현은 상투적일지언정 정말이지 감회가 남다르다. 내가 엄마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내가 일 년이나 아이에게 젖을 물릴 줄은 또 아무도 몰랐겠지.

 

어쩌면 엄마가 되고서도 (실제 이루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과 별개로) 여전히 ‘모성애’ 혹은 ‘헌신’이라는 단어보다는 ‘자기애’에 애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도 꽤 있을 거다. 무엇보다 상상만으로도 버거웠던 ‘아기 엄마’로서 일 년이나 살게 될 줄 몰랐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이 사람아, 이 생애 끝 날까지 당신은 이루 엄마일세.)

 

 

 

 

아무튼 그렇게 이루의 일 년은 다가왔고, 매일 화상 전화를 하며 “이루야 보고 싶어”를 외시는 시부모님을 위해 지난주에는 시댁 식구들과 외식을 하는 것으로 돌잔치를 갈음했다. 한 해 동안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준 이루에게 고맙고, 또 이루가 이렇게 잘 자라도록 물심양면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니 두루두루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잔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이런 부분에서는 공히 게을러서 가족끼리 식사만 하기로 했다. (이루 외가 식구들과는 다음 달에 만나기로 했다.) 그 대신 지금껏 이루를 위해 해 준 게 너무 없어서, 생일빔으로 옷 한 벌 사 주고(아직 외출복은 한 번도 사 주지 못했기에. 흑) 지금까지 찍어 온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고, 스튜디오 촬영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 게으름을 핑계로 생일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아무것도 못했다.)

 

돌아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육아를 위해 남편이 무려 회사를 그만두고 부부가 함께 육아를 했지만, 둘이 키운다고 남들이 아기에게 쏟는 에너지의 두 배를 쏟지는 못했다. 측정 기준이 불명확하기에 ‘사랑’이 부족했다고 할 순 없지만, 에너지는 짐짓 가늠이 되니 돌아보면 그런 듯하다.

 

우리는 (이루가 무척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육아가 버겁다’는 말을 자주 했다. 최근에는 이루의 떼가 늘기도 했고, 전에 썼듯 이사 후 이루의 수면 리듬이 깨진 탓에 우리 부부의 육아 에너지는 한참 달렸다. 거기에 더해 한없이 자상하던 남편이 에너지가 소진되어 내게 조금이라도 퉁명스럽게 대하면 나는 그게 참 서운했다. 그 동안 이유를 모르게 계속 되어 온 (그러나 견딜 만했던) 가슴 통증이 최근 심해진 것도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져 며칠 전 작정하고 병원에 갔더니 이스트 감염이라고 했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통증이 줄어서 좋은 게 9라면, 꽤 오랫동안 미련하게 참은 게 1쯤은 억울하다.)

 

 

 

 

이렇게 에너지는 부족한데 스트레스는 쉽게 받는 우리 부부가 모자란 부모 노릇을 일 년씩이나(?) 해 온 데 대해 주위에서 격려해 주셨을 때, 내 자식 내가 키우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괜히 좀 뿌듯했던 이유는 모든 게 ‘처음’이었던 지난 일 년을 지내 온 결과, 이루가 이토록 사랑스럽게 자라주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우리의 노력이 1이라면 주님의 돌보심과 은혜가 9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을 만큼 ‘생명의 자람’은 신비로웠다. (10이라고 하지 못하는 부족하고 귀여운 믿음을 주님이 어여삐 여겨 주시길.)

 

이번 주 들어 우리 부부의 스트레스 지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낀 남편이 ‘아기의 울음을 몹시 견디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수면 교육에 나서 이루를 재우는 게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밤중수유를 끊은 것은 물론이고 이루 재우기에서도 해방되었다!) 게다가 요즘 이루의 애교는 날마다 정점을 찍고 있다. 어제는 못하던 ‘예~쁜 짓!’을 오늘은 하고, 뜬금없이 엄마를 쳐다보며 씩 웃지를 않나, 사부작사부작 아빠에게 기어가 배에 머리를 기대기도 하고, 가르쳐준 적 없는데 ‘나 잡아 봐라~’ 하는 시늉을 하며 도망을 갈 때면 그 모습이 몹시 예뻐 눈물이 날 정도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건가 싶다.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건가 싶기도 하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의 한계와 모남에 부딪히는 어제를 살면, 오늘은 이루가 유난히 사랑스럽고, 그렇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게 지난 일 년을 지내왔나 보다.

 

이루야 고마워. 언제나 축복해. 날마다 사랑해.

 

남편 그간 애썼어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내일 이루 똥 기저귀는 내가 치울게요.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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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23)

 

노는 게 너무 좋아

 

 

 

오후 1시 반, 여태 오전 낮잠을 자지 않고 버티던 이루가 밥을 먹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요즘 이루와 거의 전쟁을 치르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니, 겉으로는 그러하나 사실은 나 자신과의 전쟁이다.) 이사를 하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리고 또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이루는 사람놀이를 좋아하게 된 듯하다. 또래 친구들과 은근히 놀 줄도 알고 (주로 예쁘다 예쁘다하며 쓰다듬기, 뽀뽀하기 등 스킨십을 시키면 곧잘 따라한다. 그 외엔 아직 한자리에 있어도 각자 알아서 노는 수준이다) 교회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모들에게만 안기다가 지난 주일에 삼촌들에게도 덥석 안길 때는 괜스레 뭉클하기까지 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이 얼마나 즐거운 시간인가. (이사하기 참 잘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루의 생활 리듬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오전, 오후에 한 번씩 낮잠을 자고 저녁 9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들어서 편했는데 그 좋던 시절이 다 간 듯하다. 오늘처럼 오전 낮잠을 자지 않고 버티기 일쑤고, 교회 모임이 있어 제 시간에 재우지 못하는 일이 한두 번 생기자 아예 밤에도 자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티거나 울어 젖힌다.

 

 

 

 

사실 내가 가장 힘든 부분은 그러면서 수유 횟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밤중 수유를 다시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돌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아기가 밤중수유가 웬 말인가.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돼 제 스스로 끊었던 밤중수유다. 최근에는 하루 세 번, 아주 규칙적으로 수유를 해 왔고 곧 하루 두 번으로 줄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잠을 이기는 데 젖만큼 좋은 게 없는지 졸리면 꼭 젖을 찾고 마지못해 수유를 하고 나면 언제 졸았냐는 듯 충전이 되어 생기 가득한 얼굴로 한두 시간은 더 놀아야 겨우 잔다. 게다가 새벽에 두어 번씩 꼭 깨서 젖을 찾는다. 밤에 젖을 찾은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당연히 젖 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울음이 달래지지 않아 젖을 줬더니 뚝 그치는 거다. 그렇게 밤중수유를 한 지 벌써 3주째다.

 

이사하고 첫 일주일은 밤에도 잘 잤는데, 그 다음 주부터 이러니 꼭 이사 스트레스만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것 같지 않고, 이가 나는 때도 아니다.) 그러나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 것은 분명하니 어쨌든 이 아이에게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고, 기다려 주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게 문제일 뿐.

 

남편이 내가 자는 시간을 신성불가침 영역이라 할 만큼 나는 잠을 좋아한다. 아니, 나는 잠을 못 자면 두통이 찾아와 매우 괴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다시 신생아를 키우는 때로 돌아간 듯 새벽에 두 번씩이나 깨서 젖을 주려니 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다. 몇 번 젖을 주지 않으려고도 해 봤지만 주택가라 새벽에 이웃에도 민폐가 될 게 분명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젖을 준다. (이미 옆집 사는 아주머니와 앞집 젊은 부부가 골목에서 이루를 보고 아 이 예쁜 아기가 새벽에 깨서 우는구나하셨단다.)

 

젖만 고이 먹고 자면 그런 대로 힘들다 하고 말 텐데, 저도 잠결이라 젖을 먹다 말고 울면서 젖을 찾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슴을 힘껏 밀어내고, 위아래 네 개씩 난 이로 젖가슴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 투정을 사랑으로 받아 주지 못하고 결국 짜증을 내고 만다. 겨우 몇 단어씩 알아듣는 돌쟁이인데도, 젖을 먹다가 울기라도 하면 엄마 말 알아듣는 거 안다. 왜 이 새벽에 깨서 엄마를 힘들게 하느냐, 곱게 먹고 자라부터 시작해서 내 졸음을 나도 못 이긴 채 아기를 달래야 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지면 아 좀!” 하며 화를 내 버린다. 그런다고 아기가 알아듣고 얌전해지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운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밤중수유를 해 오고 있는 뭇 많은 엄마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우리 집에 찾아온 고귀한 손님이라 말하는 내 딸 이루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정신을 차리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때는 이미 이루가 양껏 먹고 만족해서 잠에 빠져든 후다.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 건 이루 탓이 아니다. 새로운 집,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느라 새벽에 깨는 저도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게다가 이웃에 폐 끼칠 수 없다고 밤에 젖을 물렸으면 낮에 젖을 찾을 때도 줘야지 왜 일관성 없게 낮에는 안 주겠다고 버텨서 오늘처럼 20분이나 아기를 울리는 건지. 생각하면 도리어 이루에게 미안한 것투성이인데 그럼에도 오늘 밤에는 짜증내지 않고 잘 돌보겠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이런 못난 엄마인데도 아침에 눈 뜬 이루가 웃으며 엄마에게 안기는 건, 엄마가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엄마, 아빠 말고 자신을 믿고 맡길 데가 없음을 저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작고 여린 아기를, 세상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사랑아닌 다른 무엇으로 돌볼 생각을 한다면 그게 죄 아닐까 싶다. 죄 짓지 말고 살아야겠다(그러나 이 역시 장담은 못하고, 좀더 노력할 밖에는.)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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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22)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은평구 주민이 된 지도 벌써 3주째다. 이사하는 날부터 ‘이웃’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고 기대했던 대로 ‘사람이 사람에게’ 가 닿는 만남 속에 살고 있다.

 

이사하는 날, 평소 가까이 지냈고 우리가 은평구로 이사하는 데 큰 이유가 되었던 건이네 가족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건이 아빠는 차를 빌려서 인천까지 와 주었고 건이 엄마는 휴가를 냈다. 그 덕분에 남편이 이사를 관장하는 동안 나는 이루를 데리고 건이네와 나들이를 갔다.

 

이사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한 가지 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었다.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전에 다니던 교회를 자연스레 떠나게 되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거리가 멀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새로운 교회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어영부영 고민하는 사이 임신을 했고 몸이 힘들다는 핑계와 갓난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교회에 발걸음하지 못했다. 다닐 만한 동네 교회를 찾는 것도 솔직히 귀찮았다. 웬만한(?) 교회가 아니라면 인천에 뿌리내리고 살 것도 아닌 뜨내기 처지인 우리가 다닐 만한 교회는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루가 어려서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문화적으로) 기독교를 접하고, 신앙의 좋은 선배들을 만나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한편의 마음과 나와 남편도 좋은 신앙 공동체를 만나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해 가고 싶다는 또 다른 편의 마음이 조금씩 커져 가던 때에 이사를 하게 되어 이 동네에서는 꼭 교회를 다니고 싶었다. 그들과도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고.

 

은평구에는 결혼 전에 남편이 다니던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가 있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작은 교회’였고, 사실 전에 우리 소개로 건이네도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으며 몇 안 되는 교회 식구들 중 다수를 알고 있었기에 큰 낯섦 없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주일마다 ‘교회 다녀왔느냐’ 물어 보시는 시부모님께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었는데, 이제 ‘효도용 거짓말’에서 해방되었다!)

 

 

 

교회에는 건이 뿐 아니라 이루 또래의 아기를 키우는 또 다른 가정도 있다. 그 가정도 며칠 전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만날래?’ 전화 한 통하고 5분이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그런 거리다. 교회 갈 때 차도 얻어 타고, 잠깐 들렀다가 때 되면 밥도 같이 먹고, 필요하면 아이들 이유식도 나눈다.

 

요 사이 이루는 제법 말귀도 알아듣고 사람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능력도 발달한 듯하다. 그래서 이모, 삼촌들이 집에 오면 제일 먼저 기어 나가 맞는다. 특히 이모들이 오면 소리까지 지르며 손을 흔들고 웃는 통에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이모들이 잘 놀아 주니 나는 잠시라도 이루를 맡기고 부엌일을 할 수 있어 좋다. 이루는 어색해 하던 친구들과도 제법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이웃을 만나고 싶었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불편한 점도 있고(확실히 서울은 덥다, 음식물 쓰레기를 특정 요일에만 버릴 수 있다, 자전거를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집 앞에 둬야 한다, 옆 집 공사 소음에 창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다…) 모기 때문에 며칠 괴로워하기도 했지만(특대형 모기장을 사서 지금은 괜찮다) 이루가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나나 남편도 이웃들과 왕래하며 같이 밥 먹고 삶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으로 이 좋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면 원치 않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인연이 오래된 지방 어느 공동체의 대표님 부부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그분들께 내가 공동체에서 살면 옆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거라고 말했다. 가슴 저미는 말이었으나 내가 어떤 일에 대한 기준이 높고 그걸 타인(주로 남편)에게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한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내게 관용이 부족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못난 나도 이웃과 자주 부대끼며 지내는 동안 좀더 둥근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루에게도 그런 마음 넉넉한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루와 함께’ 삼십대 중반을 향해 걷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다양한 빛깔로 물들일 뭇 사건들을 기다린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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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21)

 

엄마와 다이어트

 

 

남편과 싸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싸우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개 비슷한 이유와 패턴으로 싸운다. 주로 내게 중요한 감정과 일들을 상대가 세심히 살펴주지 못하거나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다를 때 다툼이 일어난다. 사실 다툼은 쉽게 일어나지 않고 보통은 내가 삐치고 짜증을 내는 쪽이고 남편은 달래는 역할을 맡는다. 간혹 오늘 남편이 표현한 대로 내가 혼자 끙끙거리다 "허리케인을 만들어 오는 날에는" 남편도 억울해서 "대체 뭐가 문제냐"고 하면 싸움이 되는 거다. 우리 부부가 싸웠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내 마음에 왜 갑작스레 '허리케인'이 만들어졌는지 얘기해 보려고 한다.

 

한 차례 다투고 (사실 일방적으로 내가 짜증을 내고) 잠시 휴전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이유 모를 화가 계속 올라왔다. 그래도 이유도 없이 짜증을 낸 게 미안해서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다시 다툼이 됐다. 보통 내가 사과를 하려고 하면 남편이 먼저 사과를 하는데, 오늘은 내가 사과를 했는데도 남편이 억울해 하며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참 못났지) 바로 사과를 못하고 한 차례 더 다툰 다음, 결국에는 남편이 사과를 하고서야 싸움이 끝났다.

 

"이거 먹고 화 풀어" 하며 남편이 초콜렛을 건넸을 때, "이거 먹고 살찌라고?!" 하며 심술을 부리다가 깨달았다. 불청객처럼 찾아와 내 마음속에 '허리케인'을 일으킨 녀석의 정체를. 늘어난 '몸무게'가 원인이었다.

 

며칠 전, 외출을 하려고 옷을 꺼내 입었는데 옷이 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옷이 꼈다. 이루 낳고 처음 입은 옷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 이런 느낌은 거의 못 받았다. 산후에 계속 살이 빠져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몸무게가 다시 늘었다. 정확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수유 횟수가 줄었는데 먹는 양은 줄지 않아서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옷 사이즈가 안 맞는 걸로 드러난 거다. 그날은 조금은 당황스럽고 우울했지만 그럭저럭 지나갔는데 그게 마음에 계속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남아 있었다. 그 사이 계속 모임이 있거나 집에 손님이 찾아와서 그 생각에 집중하지 못했을 뿐,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쪘구나. 그래 쪘어.'

 

사실 임신했을 때 산후 다이어트에 대해 약간의 기대마저 했었다. 적극적으로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건 아기를 낳으면 자연스레 살이 빠질 테니 그때 평소에 빼고 싶었던 살도 같이 빠지면 좋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기대였다. 다행히 이루를 낳고 시간이 흐르면서 별 노력 없이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방심이 화근이었다. 수유 횟수가 줄었을 뿐 아니라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운동도 안 하고, 남편과 같이 육아를 하면서 고생도 덜하는데 아무렴 살이 찌지 빠질까.

 

행여나 몸무게가 늘어난 걸 남들이 알아차릴까 의식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살이 쪘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반추하는 계기가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루가 태어난 후 내 삶은 당분간 육아가 중심이어야 했기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있다.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책 읽기, 혼자만의 시간 갖기 등은 2순위가 되어야 했고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고 그래서 여전히 내 삶의 1순위는 이루다. 그러나 그 말이 곧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루를 사랑하는 데 신경을 쏟다 보니,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건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78432191@N03/6877015492/>

 

사실 육아일기를 연재하게 된 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우리 가정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해야 하는 글이다 보니 남편은 내심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내가 육아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동의해 주었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 어떻게든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좋았다. 내가 나다워진다고 생각되는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이루를 돌보는 것 외에 뭔가를 해야 할 때면 시간을 쪼개 쓰는 게 피곤했고, 만사 귀찮아질 때도 있었다.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편이 집에서라도 영화를 다운받아 보자고 꽤 자주 말했지만, 지금까지 딱 한 편 본 게 전부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언지 온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아이에게만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하면 할수록 나는 작아진다. 아마 그런 게 심해지면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나는 사라지고 이루에게 집착하는 '이루 엄마'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루 엄마'로서의 정체성만으로 살고 싶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칫 그렇게 되어 버리기가 쉬울 듯하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이루와 함께 온 하루를 보내니까.

 

피곤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버려야겠다. 틈만 생기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습관도 깨트려야겠다. 대신 책도 읽고, 이루가 낮잠 자는 시간에는 잠깐이나마 산책도 하고, 컨디션을 위해 낮잠도 좀 자야겠다. (요즘 새벽 5시 전후로 깨는 이루 덕에 나도 그 시간에 일어나 자정께나 잠자리에 드니 피곤이 일상이 되어 더 예민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루를 배 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이루가 태어나면 나 자신을 그리고 남편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게 곧 이루를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라도 위에 결심한 것들을 지키면서 나를 지키자. 나를 사랑하자. 그런 의미에서 일단 살을 좀 빼야겠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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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20)

 

‘셀프 울컥녀’의 안녕 우리 집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최고의 ‘셀프 울컥녀’야.”

 

저녁밥을 먹다 혼자 또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엄마를 지켜보던 이루는 내가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자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이루가 울잖아. 그만 울어.”

 

나는 울음을 그치기 위해 이루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어흑흑.”

 

노래를 부르다 이내 또 울음이 터졌다. 좀 부끄러운 이유로 울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좀 우울하고 누군가 “더 울어 봐” 하면 충분히 오래 울 수 있을 것 같다. 아,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의 ‘셀프 울컥녀’는 내가 맞다.

 

 

 

 

이제 3일 후면 이사를 한다. 몇 달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그만큼 이유가 충분하고 또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지낼 시간들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셀프 울컥녀’인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을 떠나는 게 영 아쉽고 슬프다. 이루 때문이다.

 

이 집에 살면서 이루를 얻었다. 이 집에서 열 달을 지내며 이루는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했다. 아기를 낳으러 가기 전날 밤에도 나는 집 정리를 했다. 새 식구를 들일 공간이었으니까. 솜털처럼 가벼운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날, 눈도 잘 뜨지 못하는 아기를 데리고 이 방 저 방 다니며 “이루야, 여기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야. 우리 잘 지내 보자” 했다. 그리고 다시 열 달을 이루와 이 집에서 지냈다. 이 공간은 정말이지 이루의 (그토록 짧은) 인생 대부분의 추억이 깃든 곳이란 말이다. 이 집에서 뒤집기를 했고, 앉았다. 기기 시작하고서 이루는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모든 게 장난감이었고 모든 공간이 놀이터였다.

 

요 며칠 이사할 집 도배며 청소를 한다고 남편이 계속 바빴다. 남편은 먼 길 오가며 일하느라, 나는 집에서 혼자 아기 보느라 수고했다며 한 상 차려 놓고 밥을 먹던 참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사 이야기가 나왔고 맞은편 식탁의자에 앉아 있던 이루를 보는데, 이 집에서 이루랑 쌓은 추억이 엄청 많고, 그게 이루에게는 인생 대부분의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울음이 터진 것이다.

 

추억은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고 말 그대로 이미 지나 버려 과거에 속한다. 시간으로서의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추억의 장소는 때로 찾아가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다시 올 수가 없다. 발코니에서 유리문에 기대서서 빨래 너는 엄마를 보며 활짝 웃던 이루, 화장실까지 따라오겠다며 성큼성큼 기어 오던 이루, 최고의 놀이터 주방에서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히죽히죽 웃던 이루. 그 모든 모습을 이제 마음에만 고이 담아 두어야 한다. (이게 뭐 울 일이라고 거 참. 눈물이 다 아깝다?)

 

이루야 이 집에서 우리 참 행복했어, 그렇지? 내일은 우리 이루 데리고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사진 찍어 줄게. 책장 붙잡고 서 있는 모습도 찍고, 책상 밑에 들어가서 노는 모습도 찍자. 안방에 가서는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찍어야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까꿍 놀이’도 하자.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자.

 

새로운 집에서도 즐겁게 지내겠지만, 아마 처음부터 이 집에서처럼 익숙하게 놀지는 못할 거야. 아니, 처음에는 낯선 공간에서 지내는 게 아기에게도 스트레스라고 하더라. 몇 번 같이 가서 ‘앞으로 이 집에서 지낼 거’라고 얘기해 주긴 했지만 엄마도 어색할 텐데 너도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도 차차 적응하면서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 가자. 엄마 아빠랑 같이 있으면 어디에서나 이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기니까 잘 할 수 있겠지? (혹시 잠자리가 바뀌어서 자주 깨더라도 엄마 아빠가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안심시켜 줄게.)

 

이루 핑계를 대며 이 집을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달랜다. 안녕 우리 집, 잘 있어.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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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19)

 

예방접종 생각

 

 

이루가 아팠다. 3일간 열에 시달리다 어제 열이 떨어졌다. 콧물이나 기침과 같은 감기 증상도 없고, 보채기는 했지만 활동력도 떨어지지 않아서 병원 갈 생각을 않고 기다렸다. 다행히 열이 잡혔다. 그런데 열이 내리니 온 몸에 열꽃이 피었다. 그제야 이게 돌발진이구나 했다. 등과 배부터 시작해서 목덜미와 이마까지, 오돌토돌 피어오른 열꽃은 회복의 신호라는 걸 전에 주워들어 알고 있었기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보기에 영 안쓰럽긴 하다.

 

사실 아기가 아프면 제일 먼저 병원 생각이 난다. 아픈 원인을 찾아야 하고 그래야 치료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웬만큼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한 이루는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키우고 싶다. 물론 아프지 않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프면서 큰다는 말도 있듯이 병치레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게 여러 면에서 현명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은 물론, 아플 때도 좀 지켜보면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이루가 지금까지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기초 예방 접종이 무엇이 있는지 그 종류도 다 외지 못하는 모자란 부모긴 하지만, 꼭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전부터 이루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주변에 앞서 예방접종에 대해 고민한 선배 부모들이 꽤 있다.

예방접종에 대한 무서움(?)을 처음 느낀 건 2008, 내가 일하던 잡지사에 한 선배가 쓴 육아일기를 읽고 나서였다.(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591)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기 전에는 자세한 내용을 잊고 있었는데 새삼 예방접종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글의 일부를 보자.

 

미국의 백신연구자 사이너 박사는 유아돌연사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디티피(DTP)와 소아마비백신을 접종하는 2~4개월 사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백신 접종 후 4일 안에 매년 3000명의 아이가 사망한다. 또 접종 후 3주까지 돌연사 비율이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고 한다. 그밖에도 백신 종류와 접종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폐증학습장애만성피로증후군주의력결핍장애소아당뇨류머티즘성관절염소아천식 같은 질병이 늘어났다고 미국백신정보센터(NVIC)는 밝히고 있다.”

 

물론 이와 전혀 다른,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비롯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전문가든 나처럼 아이를 둔 부모든 그들의 주장을 존중한다. 다만 세상에는 그들이 믿고 주장하는 내용에 의문을 갖고 고민하기 시작해서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른 이들이 분명 있고, 그들의 선택을 더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내 생각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덮어 놓고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대신(아는 사람이야 그나마 이렇게 예의를 갖추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안티 백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미개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먼저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한번쯤 찾아봐 주면 어떨까.

 

어제 남편과 예방접종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사실 시대가 변하면서(보통은 발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본 예방 접종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도 예방접종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야. 전에는 필수가 아니었는데 요즘은 필수라는 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거지? 어떤 의사는 나는 〇〇는 필수로 맞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고, 또 전에 갔던 소아과 의사는 부작용에 대한 염려를 이해한다면서 기본 세 가지만 맞히라고 했잖아. 이건 의사들도 꼭 생각이 같지 않다는 건데.

 

남편: 많이 맞힐수록 좋은 거라는 생각은 결국, 그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고 싶고, 나아가 죽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욕망에 기인한다고 봐.

 

: ‘욕망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포인트네. 사실 필수라고 하는 백신을 다 맞히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아.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필수 백신을 못 맞히는 이들도 있을 텐데.

남편: 미국에서 백혈병에 걸린 자녀를 둔 부모가 백신을 맞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등교 거부 소송을 낸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백혈병 환자는 바이러스에 치명적인데 말이지.

 

정답을 내리기 힘든 어려운 질문에 봉착한 때에 이루가 깨서 우리 대화는 끊겼다. 하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우리의 고민은 계속 이어져야 할 듯하다. 사실 이루가 태어나기 전에 끝난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대화하면서 다시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선택은 응당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래야 그 결과도 합당할 테니 말이다. 그 고민이 끝나기 전에 이루가 크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내 자식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이 마음은 욕망일까, 소망일까. 욕망과 소망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밤이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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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18)

 

이사를 가는 이유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한 날 바로 다시 하고 싶었던 이사다.

 

2년 전, 여러 사정과 상황을 반영하여 태어나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동생과 같이 살게 되어 방 한 칸 더 있는 집이 필요했고, 남편은 외곽으로 빠지더라도 좀더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 문제는 내가 아파트를 참으로 괴기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었다. 좁은 땅덩이에 머리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콘크리트를 수십 층 쌓아 올려 그 위에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곳이 아파트 아닌가. 어려서부터 마당 있는 집에 산 까닭에 인구가 미어터지는 서울에 살면서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한 미련한 사람이 아파트를 좋아할 리 없었다.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 나는 일기장에 ‘감옥에 입장하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남겼다.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짜증과 동시에 몸이 조여 오는 듯한 갑갑함에 분노가 일었다. 포로가 된 것 같은 억울함이랄까. 내 등 아래로 누군지 모를 11명의 배가 있는 것이나, 내 배 위로 8명의 등이 있는 이 상황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이게 과연 집인가. 왜 좀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왜 좀더 (아파트는 싫다고) 내 주장을 펼치지 못했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곳에 사는 2년 동안 이 생각은 옅어지다 못해 나는 아파트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기에 한 번 물리지 않고 여름을 났고, 주택에 살면서 두 번이나 도둑이 들었지만 아파트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밤낮 골목을 울리며 지나는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도, 위층에서 내려오는 찢어지는 듯한 아주머니 목소리도 없었다. 4월이면 아파트 단지가 온통 벚꽃으로 뒤덮였고 5월이면 이팝나무 흰 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수납공간이 충분해 청소도 수월했다. 아, 아파트의 장점을 말하라면 밤도 샐 수 있겠다.

 

 

 

 

 

하지만 이루가 태어나면서 남편과 나는 계속 이 곳에서 사는 게 과연 괜찮은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 없는 이 동네에 사는 것이 이루에게 좋을지, 또 우리가 외롭지 않게 육아를 할 수 있을지 자문했을 때 이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사는 몇 지역이 후보에 올랐다. 하연이네가 사는 광명, 지아․민아네가 사는 부천, 건이네가 사는 서울, 로미네가 사는 남양주, 수린이네가 사는 양평…. 모두 이루 또래의 자녀를 키우고 있고, 지금보다 가까이 지내고 싶은, 좀더 멀리 함께 인생을 내다볼 수 있는 친구들이었기에 우리 부부는 몇 달 동안 어디로 이사를 할지 거듭 고민했다. 그 결과, 내가 일하는 곳까지의 거리를 감안하고 또 아빠가 육아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이네가 사는 서울 은평구로 결정했다. 너무 오래 고민한 탓인지 지역을 결정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하지만 외곽에 살다가 도심(이라고 해봤자 지하철 6호선 끄트머리이지만…)으로 이사를 하려니 아파트는 엄두도 못 내고 지금보다 좁은 다세대 주택으로 가야 하는 현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부동산에서 소개해 주는 몇 군데 집을 다녀 보니, 이 집에 살면서 새로 산 장롱, 소파, 책장, 식탁 모두 버려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지도까지 외울 정도로 인터넷 부동산을 뒤진 끝에 오래되긴 했지만 가구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보름 후에는 그 집에서 새로운 날들을 보내게 될 테다.

 

거처를 옮길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 그러했듯 만 2년을 채우고 이사를 하는 이번에도 그러하다. 이루는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작고 여리지만, 그래서 가장 세심하게 이 아이의 필요를 살펴 채워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보다 환경은 조금 모자라지만, 이루가 또래와 함께 자랄 수 있는 곳에 살게 되어서 다행이다.

 

우리의 이사가 ‘사람이 사람에게’ 가닿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말과 생각은 번지르르한데, 정작 이사 후에 지근거리에 친구를 두고 살면서도 다시 외딴 섬에 사는 듯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물없이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고 충심으로 조언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이 되고 싶다.

 

이사 전에 도배와 입주 청소도 해야 하고, 줄어드는 수납공간을 감안해 불필요한 것들도 미리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대출 신청한 것이 무리 없이 잘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여러 해야 할 일들에 치여 어느 때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 이루에게 소홀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사를 하는 이유가 바로 요 소중한 녀석 때문이니까.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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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연의 아기자기(17)

 

괜시리 울적한 결혼기념일에 쓴 편지

 

 

남편에게.

 

오늘로 우리가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어요. (불필요한 가정이겠으나) 이루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거나 여의치 않으면 근사한 저녁을 먹고 선선한 밤거리를 걷다가 어느 호젓한 카페에 들어가 마주 앉아, 결혼기념일마다 해 오던 대로 서로를 향해 편지 한 장씩 썼겠지요?

 

하지만 오늘 우리는 새벽 4시 반에 깬 이루가 우는 탓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요.” 한마디씩 하고는,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이루랑 놀아주다가 오전 7시에 이루를 재우고 뻗어 버렸어요. “어서 일어나라는 당신의 재촉에 못이겨 겨우 눈을 떴을 때는 좀더 자게 두지 않는다며 섭섭해하기까지 했죠. 이루가 일찍 자니까 저녁은 무리고 점심에 외식이라도 하자고 했지만, 이루가 12시부터 졸려하다가 1시에 낮잠이 들어버렸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외식도 물 건너가고, 저녁에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은 게 전부네요. , 그리고 방금 우리가 결혼기념일마다 편지를 써 왔다는 사실을 당신이 잊고 있었음을 확인했어요.

 

 

 

 

한 아이의 존재가 이 많은 걸 바꿔놓은 것인지, 결혼하고 5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별일 없이 지나가도 괜찮은 때가 온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괜시리 울적해요. 흑흑.

 

다행히 울적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하루가 의미 있는 날이 되려면, 나머지 364일을 잘 보내야 한다는아주 기특한 생각이요. 그런 관점에서라면 우리는 지난 1년을 아주 의미 있게 또 행복하게 지냈잖아요? 그 나날들이 그래, 지난 1년 너희 참 잘 살았다고 말해주고 있을 거예요.

 

결혼 관계에서 잘 산다는 건 뭘까요? 나는 나 자신에게 또 당신에게 솔직해지는 것그리고 상대를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는 내가 잘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배운 것이기도 해요.

 

가끔 당신에게 4의 섭섭함을 느끼면 9만큼 섭섭한 척을 하곤 했어요. 감정을 과하게 표출해 당신이 내 마음을 풀어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결혼 관계에서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당신을 보면서 배웠답니다. 빨리 마음을 풀고 빨리 웃을수록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그동안 참 못나게 군 적이 많아요.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졌죠?^^)

 

이루를 함께 돌보며 24시간을 같이 지내니, 서로의 성격을 훨씬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서로의 습관이나 생각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고요. 그러니 우리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때도 거의 정해져 있더라고요. 집안일을 하면서 내가 자주 당신에게 하는 말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요. ‘꼼꼼하지 못하고 게으르다는 말 말이에요. 그런데 그건 내 기준, 내 욕심에서 비롯한 말이라는 사실을 나는 또 당신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칭찬이라면 모를까) 당신은 나에게 그런 식으로 판단을 섞어 말하지 않거든요. 당신은 내 기준에서 조금 느린 사람이고, 내 기준에서 섬세하지 못한 것일 뿐, 그게 본래의 당신임을 인정해요. (그래도 가끔 신경질 섞인 짜증이 툭툭 튀어나와 미안해요.)

 

며칠 전 이루가 태어난 지 300일 되던 날, 우리는 네팔 지진 구호금을 이루 이름으로 보냈어요. 그때는 이루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영원한 기쁨이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를, 또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이루 역시 기댈 언덕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곰곰 돌아보면서 마음의 소원을 담아 이름을 지어주는 것까지는 부모로서 할 수 있지만 이루가 실제로 어떻게 살든, 그 삶 자체를 인정하고 축복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아니면 이루에게도 역시 내 바람을 잣대로 삼아 평가를 내리게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다짐과 마찬가지로, 이루의 생각, 행동에 따라 감사의 조건을 채우려 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네요.

 

오래 전 내가 사랑이 뭘까요?” 하고 물었을 때 당신이 했던 말 기억하죠? “사랑은 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잖아요. 그 말은 지금도 내 가슴에 머물며, 내가 사랑하지 못할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요. “사랑은 하는 거라고 했잖아.” 오늘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나는 저 말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 한마디가 내 스승이 되어 나를 일깨워 온 셈이죠.

 

사랑이 명사가 아닌 동사라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는 서로에게 솔직하고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걸 가르쳐 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내일 또 이루가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아빠를 피곤으로 몰고, 이루랑 놀아주다가 뒤늦게 잠이 들어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고집 피우는, 그런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아니 그런 반복이 곧 인생이기도 할 텐데, 그럴 때 오늘보다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기를 기대해요.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다시 심기일전할 수 있도록 서로 기다려 주기를 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만 더 부탁할게요. 결혼기념일마다 우리가 해 온 소박한 의식은 계속 지키는 게 좋지 않겠어요? 게다가 내가 편지 받는 거 무척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그러니 이 편지 받고 답장 꼭 써 주기예요. 호호.

 

이종연/IVP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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