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5)

시간이 없어

 

 

대학로를 거닐다 보면 언제나 드는 생각. 서울대병원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의 공간이 뚜렷이 나뉘어 있구나. 한쪽은 생기발랄한 음악과 문화의 향기가 물씬 나는 거리 공연, 젊은이들의 활기찬 걸음으로 메워져 있고, 한쪽은 육신의 고통, 미래를 알 수 없는 근심, 신음 소리 등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내리쬐는 햇살의 양은 동일한데 이편과 저편의 기운은 건널 수 없는 협곡이 가로놓인 것처럼 다르다.

 

나 역시 이편과 저편이 확연히 다르다. 이편에서 돌아가는 나의 분주한 일상은 순식간에 나를 해치워야 할 일들로 몰아간다. 빨리,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도엽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도엽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세계로 갑자기 이동하는 기분이다. 특히나 도엽 어머니의 눈물을 들을 때면 나는 수화기 너머의 저 세계도 아득하게 느껴지고, 할 일이 빼곡히 쌓여 있는 이 세계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모호한 중간지대에서 어느 곳이 진짜 현실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리곤 한다.

 

                          도엽의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도엽의 상태, 가족들의 증언, 그리고 의사선생님의 예측으로 미루어 보아 도엽의 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순간에 결코 이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상과 현실은 좀체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다. 어느 곳이 진짜 현실이건 간에, 게다가 말로 잘 표현되지 않아 언어가 계속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 지금까진 도엽과 함께 독자들을 향해 글을 썼다면, 이젠 거꾸로 독자들과 함께 도엽을 향해 글을 써야겠다. 도엽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도엽이 알게 해주고 싶다.

 

이루지 못한 꿈, 현재진행형인 꿈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해로 오래 오래 떠올리는 해는 중3 시절, 거의 혼자 살아야 했을 때다. 일식 요리사였던 아빠는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엄마와 함께 지방으로 가게를 하러 떠났다. 대학에 들어간 큰누나는 분주했고, 작은누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끔씩 들어왔다. 큰누나가 한 번 들어올 때마다 국을 한 냄비 가득 끓여 놓고 가곤 했다. 그런데 어린 도엽은 한여름에 국을 끓여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혼자 있으니 별로 밥을 차려 먹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면 허옇게 곰팡이가 슬어 모두 내버려야 하곤 했다. 그러면 그것을 음식쓰레기 봉투에 놓아두고 또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쓰레기봉투를 열어 보니 온갖 벌레들이 번식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제일 싫어하는 애벌레! 지금이라면 그것을 밖으로 가져가 내버릴 판단력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해하면서도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밖으로 내버렸다.

 

 

                          도엽의 초등학교 시절

 

 

1년을 거의 혼자 살아 본 경험은 그에게 독립심을 키워 주었다. 도엽 스스로 그 시절을 독립심이 키워진 때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열여섯 살 때 1년의 자취 생활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쓸쓸하고 외로운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일을, 그는 독립심을 키우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그에게는 니체가 말한 일종의 운명애같은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역경을 오히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는 것.

 

내가 가족이 아니라 이런 어려움을 덤덤하게 말하는 건가 도엽의 어머니에게 여쭌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걔가 그렇게 덤덤해서 오히려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했다.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그는 1을 생각하면 2와 같은 다른 숫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으로 넘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친구였다고 한다.

 

21살에 골육종이 발병하고 나서 가족들이 거의 모든 것을 챙겨 주려 할 때마다 도엽이 입버릇처럼 말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할게였다. 가족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해주려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 게다가 실명을 하고 나니 가족들이 밥까지 떠 먹여 주려는데, 그게 다 사랑인 걸 알고 있지만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독립적인 삶이 그에겐 그만큼 중요했다.

 

중학교 때 혼자 살아 본 경험은 대학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함께 자취 생활을 하는 꿈으로 이어졌다. 자취하면서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해 보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중에서도 요리를 가장 해 보고 싶었다. 각종 재료들을 이리 썰고 저리 썰고, 도마 위에서 현란하게 칼놀림을 하며 김치찌개, 제육볶음 같은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오래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그 꿈을 포기했다. 그 꿈.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는데. 이룰 수 있는 꿈이었는데. 도엽의 인생에선 그런 꿈조차 사치스러운 것이었을까.

 

하지만 병에 걸리면서 새롭게 꾸게 된 꿈이 있다. 하나는 시각장애인용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시각을 잃고 보니 시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길 만한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어린이도 성인도 아닌 암환자여서 소속감이 없었는데, 시각장애인이 되니 그래도 자신이 속할 그룹이 명확해졌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소속감이 있어도 이들과 함께 놀 만한 것들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으니 함께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시각장애인들이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던 도엽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끼리 더 재미있게 사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연히 지인에게 이러한 도엽의 꿈을 이야기했는데, 지인은 프로그래머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자신이 한번 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도엽과 연락을 취했고, 도엽이 구상하는 게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대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엽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러나 이 꿈은 지금 도엽이가 긴 잠에 빠져들어 있다 하더라도 프로그래머인 그분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도엽의 또 하나의 꿈은 지역(local) 암환자 커뮤니티를 돕는 것이다. 이것은 도엽을 담당한 의사선생님의 꿈이기도 한데 도엽은 그 꿈을 돕고 싶다 했다. 이 꿈 역시 다른 많은 이들에 의해 점차 이루어질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이상, 나 역시 도엽의 꿈에 동참하고자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자취하면서 요리를 멋지게 하며 살고 싶던 도엽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도엽의 새로운 꿈은 다른 이들의 마음에 심겨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도엽의 고등학교 시절

 

도엽에게 보내는 편지

 

도엽은 현재 코로 숨 쉬지 못해 입으로 호흡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진통이 잦아져 이전보다 더 많은 진통제를 먹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 상태에 이르렀다.

 

최근까지 치료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암세포만을 제거하는 표적치료도 해 보려 했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 확률은 1-5퍼센트 정도이고, 그 효과 역시 생명 연장 최대 4개월이라는 말을 듣고서 그는 표적치료를 포기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손톱, 발톱이 빠지고 살이 짓무르는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표적치료도 그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했다. 도엽과 그의 가족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자가조혈모세포이식도 완치에 대한 희망으로 그 끔찍한 과정을 통과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져 암이 순식간에 다시 퍼진 건 아닌지 엄마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도엽이 눈을 완전히 잃은 건 병원을 가는 길 위에서였다. 걷다가 길 위에서 도엽의 세상은 갑자기 캄캄해진 것이다. 이런 일들까지 겪었는데, 치료 효과가 지극히 저조한 치료법을, 그것도 부작용을 감내하면서까지 다시 시도해 본다는 건 엄마로선 다시 한 번 무기 없이 아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 길로 가도, 저 길로 가도 아들에겐 모두 고통의 길이다. 엄마가 대신 가 줄 수만 있다면 몇 백만 번이라도 가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멈추게 할 도리가 지금으로선 전무하다.

 

물론 엄마는 하루라도 더 아들을 이 땅에 붙들어 두고 싶은 심정이다. 면역력 좋아진다는 주사도 구해서 맞춰 보고, 몸에 좋다는 홍삼도 먹여 보고, 각종 건강식품도 먹여 보았다. 아들은 엄마가 돈 쓰는 걸 염려하고 미안해하지만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옆에 머물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할 수만 있다면 엄마는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뭔가를 구해 올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때다.

 

지난 8월 포천의 자작나무숲으로 가족이 여행을 떠났을 때 물가에서 엄마는 도엽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해. 네가 옆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도엽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 건강해질 거야.” 도엽은 엄마가 아들바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엄마는 도엽이 절대 힘든 얘길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끔찍이도 사랑할 때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다.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제안받았을 때도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엽에겐 지금 11초가 아쉬운 형편이다. 더 함께 있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고, 더 대화하고 싶다. 이제 곧 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까.

 

시간이 없어라는 도엽의 말에, 나는 도엽의 친구들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순간 도엽이가 일전에 알려 준 친구들의 연락처가 떠올랐다. 그들에게 연락을 했다. 도엽에게 꼭 하고 싶은 말들을 진심을 담아 보내 달라고. 도엽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게 해주자고. 큰 사랑으로 도엽이를 잘 보내 주자고. 연락을 받은 도엽의 친한 친구들은, 도엽이가 친하게 지내지 못해 연락하기조차 부끄럽다고 말한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몇 명은 즉시 메일을 보내왔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적은 거라 두서없고 짧은 글이지만 진심이 도엽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아직 편지를 쓰지 못했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 정말 하고 싶은 얘기 다 쓰면 되죠? 편집 알아서 잘해 주실 거죠?”라고 눈물을 가득 머금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 쓰세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거든요, 사랑할 시간이. 아마도 도엽이는 그걸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만 허락되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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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이*에게

 

(* 도엽의 어린 시절 이름은 중원이었다. 도엽에게 좋지 않은 일이 거듭되면서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이름을 중원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지푸라기가 100개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지푸라기라도, 엄마는 지푸라기 100개를 모두 잡았을 것이다.)

 

중원아 나 준영이.

고등학교 때 같이 지냈던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동영이한테 많이 묻기도 했고 듣기도 했어.

어제 동영이 전화 받고선 실험실에서 펑펑 울었다?

이 녀석아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뭐가 그리 걱정이야.. 나도 찾아가지 않은 게 잘못이긴 하네.

진짜 막 고등학교 때 내 성격으론 막 잔소리 하고 때려주고 싶은데. 이 녀석아이 김중원 착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 찾아가면 혼낼 거야?

보고 싶은 중원아내가 너 많이많이 좋아하거든? 진짜진짜 좋아해.

진작 찾아가지 못했던 게 너무 미안해진심으로 보고 싶어. 중원아 보고 싶다.

ps 1. 이름 바꾼 건 나한테 말 안 해줬으니 중원이라 계속 부르려 했는데.

ps 2. 도엽이 보고 싶다.

 

- 준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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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이에게

 

중원아 나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해진이다. 기억나니?

동영이랑 영권이랑 너랑 나, 넷이서 몰려다닌 거 잊은 거 아니겠지?

학교 야자 끝나면 매일같이 노래방 가서 놀고, 노래방 안 가는 날이면 옆 중학교 운동장에서 늦게까지 이야길 했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괜시리 웃음이 난다. 하는 건 없었어도 참 재밌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었지만 쉬는 시간, 청소 시간마다 복도 끝 창가에 모여서 수다 떨었었지. 그때는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너와만 연락이 끊기면서 섭섭했지만 가끔 만나는 동영이나 영권이를 통해 재수한단 이야기, 대학 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쁘니까... 각자 열심히 살다가 언젠간 보겠지'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어느 날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 줄은 몰랐어... 알려 주는 사람도, 자세하게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들었는데... 순간 멍해지더라.

내가 아는 중원이가 그 이야기 속 도엽이란 친구가 맞으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들 전부 학교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자리도 잡아서 번듯하게 한번 만났어야지.... 세상에 재밌고 아름다운 게 얼마나 많은데 즐기지도 못하고 벌써 가려고 하냐 이 친구야... .

내게 학창 시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내가 매일 기도할게.

고맙고 사랑한다, 중원아.

 

- 혼자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는 해진이가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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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4)

 

절대 고독의 자리

 

 

도엽은 지금 긴 잠에 빠져들어 있다. 지난 토요일, 짜장면을 먹고 싶다 하여 어머니와 같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지만 모든 것을 게워냈다고 한다. 그런 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누나들과의 저녁 산책을 유독 기다리며 1시간 정도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루의 큰 낙인데, 이번 주는 한 차례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아침 7시쯤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들고 오후 3시쯤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든다. 그리고 저녁에 누나들이 퇴근했을 때도 잠을 자고 있다. 오늘도 어머니가 영양 보충을 위해 마련한 음식들을 모두 토해 냈다. 이번 주는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고 있다 했다. 게다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이라는 졸음과 변비를 호되게 겪고 있다. 어머니는 불안해서 자꾸 그를 깨워 밥이나 죽을 먹여 보려 노력하지만 도엽은 쏟아지는 잠이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남들의 세 배는 자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도엽에게 전복죽을 끓여 주기 위해 장을 보러 나서면서 힘없이 내게 건네신 말이다. 남들이 8시간을 잔다면 그는 24시간을 잔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 도엽의 잠은 그의 어머니에게 24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적막의 소리

 

솔직히 이번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착잡해지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14년 전 이맘때쯤 나의 아버지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죽음을 겪은 사람은 오랫동안 그 경험을 잊지 못한다. 아니, 해가 갈수록 그 경험은 새로운 기억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것은 문득문득 일상의 휘장을 뚫고 갑자기 침입해 들어와 감정을 교란시킨다. 그 기억엔 해석이 덧붙여진다. 해석은 매년 달라진다. 해가 갈수록 그때 그 장면, 그 기억들이 이전보다 성숙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워진 관점이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그 사람의 아픔을 이제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떠난 사람의 아픔을.

 

몸이 아픈 사람들의 절대 고독. 14년 전 이맘때 어느 날엔가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가족들이 모두 잠시 밖에 나가 있었던 시간이었고 아빠만 홀로 침대에 누워 계셨다. 사건은 하필 그런 ‘부재’의 교집합 시간에 일어난다. 어떤 사건이었는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 아빠가 늘 누워 계시던 침실에 딸린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새고 있었다. ‘똑. 똑. 똑. 똑.’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누워 계셨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된 말기암 환자에게 적막 속 수돗물 소리는 점차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고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때론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하게.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한낮에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방울 소리에 예민한 귀를 곧추세우고 있을 사람은 아픈 환자들뿐일 것이다. 그것도 수도를 잠그기 위해 그곳까지 걸어갈 수조차 없는 환자들. 아빠는 수돗물 소리 때문에 잠을 주무실 수가 없었고, 누군가 수도를 잠가 주길 바라셨고, 하지만 우리에게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대개의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뒤덮는 다른 것들로 머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미세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집 앞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귀에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노는 소리, 시소가 삐거덕거리는 소리, 크레인이 흙을 뒤엎는 소리, 한낮의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 나무 위의 새소리도 감지하지 못한다. 블라인드가 바람에 날리다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도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하더라도 오롯이 홀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와중에도, 아빠는 그 소리들을 들으셨다. 물속에 잉크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그 입자는 곧 물 전체에 퍼져 들어가 액체의 색깔을 바꾸어 버리듯이,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돗물이 똑, 똑, 듣는 소리조차 그들 하루의 색상을 좌우하는 압도적인 소리가 될 수 있다. 지루함과 권태로움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까지 첨부되어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이 적막의 소리에 익숙할 것이다. 도엽은 지금 긴 잠 뒤에 잠시 깨어나 이 적막의 소리를 듣고 다시 긴 잠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공감이라는 능력

 

언젠가 도엽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친한 친구들이, 수술을 막 하고 나온 도엽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시험을 너무 못 봤다, 여자친구가 힘들게 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는 이렇게 아파서 힘든데 이 아이들은 저런 게 힘들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절대적으로 공감해 줄 수는 없는 거구나. 내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느끼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할 수는 없겠구나. 약간 이해하는 정도라고 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타인의 아픔이나 감정을 통째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기대하지 않겠다는 자기방어적인 자세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상대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객관성을 회복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친구들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금 후회하는 것이 있었다.

 

“저에게 좀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요…. 어릴 때 힘든 일을 겪어서 그런지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안 좋은 버릇이었죠…. 내가 사귈 만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스스로 조숙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철없고 어린 애들, 생각 없는 애들, 재미없는 애들과는 말을 별로 섞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주 차갑고 이상하게 대한 건 아닌데요.…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몹시 후회돼요. 제가 정말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남자들의 특성상, 자기 서열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속한 또래 그룹에 끼워 주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키가 크고 유머감각도 있고 의학 지식도 많이 알고 있으니 친구들을 좀 가렸고, 그랬던 기억이 21살 골육종이 발병한 이래로 내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지금은 제가 제일 바닥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제가 뭐라고 그때 그랬을까요. 너무 오만했던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그 아이들도 참 괜찮은 아이들이었는데…지금은 연락하기가 부끄러워요.”

 

적막의 공기, 절대 고독의 자리에서 그는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지냈나 보다. 남들이 빛의 속도로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자신은 정지된 삶을 살게 되었고, 이젠 그 빛조차 볼 수 없게 되어 미세한 소리 하나하나를 감지하게 되니,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공감하지 못한 것, 사랑하지 못한 것 역시 세세하게 감지되었다. 육신이 통증 있는 부위에 온 초점을 맞추듯, 마음도 건강하지 않았던 내면의 부위에 집중되었다. 그는 그 마음을 꺼내놓고 바라보았다. 후회하고 반성했다. 그리고…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그렇게 적막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의 키는 소리 없이 훌쩍 자라고 있었다.

 

도엽아, 힘내자

 

아직 써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도엽과 상의하고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고 빵도 먹으면서 쓸 것이 남아 있다…. 편안하게 모자를 벗어 바람에 민머리를 통풍시키기도 해야겠고, 누나들과 가을 밤공기를 쐬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듣고 웃음도 지어 줘야 할 것이다. ‘하.하.’ 그의 웃음소리는 독특하게 분절된 음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책에서 읽는 웃음소리 같은 ‘하.하.’ 하는 도엽의 웃음소리를 얼른 들어야겠다. 기운을 차리고 이 긴 잠에서 헤어 나와 도엽, 네가 나에게 건네 놓은 많은 이야기들--가족 이야기, 가족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들, 친구들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꼭 이루고 싶은 꿈 이야기--을 다시 같이 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도엽아, 힘내자.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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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3)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어요

 

도엽을 다시 만났을 때 도엽의 표정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평온해 보였다. 통화나 문자로 자주 접촉해서 그런지 그는 첫 만남 때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다. 모자를 벗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모자를 벗으니 약간 곱슬한 머리카락들이 땀방울처럼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첫 만남 때 도엽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 몇 가지를 잘 담아 왔었다. 그중 하나가 모자 이야기였다. 그것도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 물론 실명 전의 일이었다. 작년 1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하고 나서 3개월 만에 암이 재발된 후 어느 여름날, 그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근처 강에서 플라이피쉬라는 수상기구를 탈 수 있었다.

 

그땐 강한 항암치료를 거친 직후라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모자를 쓰지 않는다면 환자라는 것이 눈에 띌 테니, 물놀이를 하면서도 엄마는 도엽이의 비니를 챙겼다. 그래도 남들 눈엔 건강하게 보여서 도엽이 사람들의 예의주시하는 시선 때문에 상처 입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도엽은 물놀이장에서 비니를 쓰고 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슴에 꽂고 있는 정맥관 때문에 안전조끼도 불편했다. 잠시 엄마와 투닥거리고 있는데 이내 모터보트에 달린 커다란 고무보트가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나게 달리는 고무보트 위에서 도엽의 머리를 덮고 있던 비니가 휘리릭 하고 날아가 버렸다. “나 간다~” 하고 로켓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엔 반원 모양의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었다. 도엽의 머리에서 이륙하여 빙그르르 돌아 하늘로 날던 비니는 어느 지점에 이르더니 수면 위 어딘가에 제멋대로 착륙해 버렸다. 도엽은 웃음이 났다. 너무 웃음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시원하게, 통쾌하게, 하하하하, 웃음을 내질렀다. 바람에 날릴 머리카락도 없는데, 버릇없는 비니는 도엽의 머리를 다 드러내 놓았는데, 도엽은 외려 웃음이 났다. 엄마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잃어버린 비니보다 자식의 초라한 머리가 안쓰러웠다. 감춰 주려 애썼는데 저리도 허탈하게 날아가 버렸다.

 

 

 

              바닷바람, 파도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을 즐기다

 

 

도엽의 중대한 약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노출되고 만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하지만 도엽은 짓궂은 모양으로 날아가 버리는 비니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후련했다. 늘 압도하듯 짓누르는, 무게가 산만 한 그 무언가가, 이거 보라는 듯, 별 게 아니라는 듯 가볍게 떨어져 나가 버리는 것 같았다. 물놀이장에서 비니를 쓴 어색한 자신보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자연스런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좋았다.

 

무엇보다 그때 그 상큼한 강바람, 시원하게 내달리던 속도감, 마음속 알 수 없는 희망을 안겨 준 무지개, 비니가 로켓처럼 날아가 버리는 모양새,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도엽의 머릿속에 흔적을 남겼다. 지금도 가끔 그 이미지를 생각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곤 한다. 이미지. 아름답고 선명한 이미지는 도엽이 눈을 잃은 이후 꼭 붙들어두고 싶은 것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그는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단지 육체의 눈이 사라진다 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붙들어두고픈 특별한 기억이 아닌데도 실제로 이미지가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의 창문이 보이기도 한다. 가로로 넓은 나무틀을 가진 창문. 눈이 보였을 땐 유심히 보지도 않았던 창문이다. 그런데 창문이 보인다. 익숙했던 집안 물건들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앞은 칠흑으로 뒤덮인다. 질병이나 사고로 시각을 상실하면 뇌는 갑작스런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 없는 상을 만들어내는데, 그런 뇌의 활동이 빚은 결과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뿐,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모든 감각을 쉬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뇌도 평생 해 오던 일을, 순식간에 멈출 수가 없다. 환시는 뇌의 관성인 셈이다.

 

몰입이라는 삶의 기술

 

뇌 자체도 평생 해오던 일을 멈추기가 힘든데, 뇌를 지닌 사람은 어떨까. 생의 가장 강력한 수단을 잃고 행동반경이 현저히 축소된 사람의 욕구는, 평생 해오던 일을 멈춘 뇌가 계속해서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를 훨씬 초과할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해질까,라고 생각하면 끝도 없어요.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세상은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작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살아 있는 게 다행인 세상이더군요.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세상이었던 거였어요. 알지 못했던 것뿐이죠.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잖아요. 다른 사람이 볼 때 어떤 사람의 삶은 남부러울 것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쁜 일도 많잖아요. 그걸 받아들이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보다 행복한 사람 훨씬 많죠. 그래서 가끔 우울하고 나쁜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많아요. 그런데 사로잡혀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풀려요. 아예 우울하면 저 자신을 놓아 버릴 텐데, 성격이 그렇게 놓아두지 않는 것 같아요.”


도엽은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그 어떤 대단한 투지를 의지적으로 끌어들인 게 아니다. 어쩌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길을 걷게 된 사람이 지닌 현실주의 덕분인지도 모른다. 알렉상드르 졸리앵의 말처럼, 인생엔 어쩔 수 없이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쉽게 낙담하지 않고 전투의 필연성을 잘 되새기면서, 잔혹한 맞수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좀더 수월하게 피해가는것인지도 모르겠다인간이라는 직업», 36-37).

 

이미 도엽은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쉽게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억에도 없는 유년 시절의 오른쪽 안구 적출 때문에 20여 년을 한쪽 눈으로 살았던 그가 나는 왜 외눈으로 살아야 할까?” “두 눈으로 본다는 건 무엇일까?”를 묻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더하여, 사춘기 때까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남몰래 간직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출발했다.

 

그는 좀더 자신의 특별한 취향을 존중했고, 하고 싶은 것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여유 있게 했다. 건강하게만 커 달라는 엄마의 소원대로 그는 다른 욕심 없이, 유유히, 건강하게 자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글씨를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단 한번 공부에 손을 대자 성적은 일취월장했다. 재수를 할 때는 전액장학금을 받고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천체 현상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더운 여름날 보충 수업이 있는 시간, “일식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수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일식을 보러 나갔다. 어느 겨울날은 월식을 보기 위해 친구를 새벽 3시에 불러내어 덜덜 떨며 구경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혜성이 온다고 해서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누나와 함께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오로라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꿈도 쟁여 놓았다. 그는 세상에서 대단해 보이는 무엇이 되는 게 꿈이 아니라 극지방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큰 고래와 오로라를 보는 게 꿈이었다. “고통, 공허, 위협이 엄습해 오는 것에 맞서 기쁨을 쌓는 일”(위의 책, 38)을 어려서부터 별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현재 자신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보통의 말기암 환자들처럼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과 그래도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 사이를 분주하게 걸어 다니기도 한다. 실은 모든 사람이 직면해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두드러진 현실, 바로 일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도엽과 일반인의 차이다. 또한 치료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정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의미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보내려 하는 것이, 불안에 떨며 병원을 떠날 줄 모르는 많은 암환자들과 도엽의 차이다.

 

희망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가족들이랑 산책할 때나 웃을 때,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하면서 웃을 때 정말 행복해요. 저도 참 신기해요.”

 

 

 

             골육종 발병 전 가족들과의 단란한 산행

 

작년, 이식이 끝나고 두 번째로 암이 재발했을 때, 도엽도 가족들도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TV에서 암환자들이 산에 열심히 올라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서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도엽도 엄마와 함께 집 앞 북한산을 올랐다. 가끔 누나들도 함께했다. 하루 두 시간 정도 산에 오르고 나면, 얼마나 힘들었던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지곤 했다. 항암치료를 한 직후 민머리에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산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파란 하늘과 내려다뵈는 풍경을 바라보며 엄마랑 누나들과 함께 과일을 먹으면 그것만큼 기분 좋고 상쾌한 경험이 없었다. 큰누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그 높은 곳에서 무섭다고 울상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엄마와 도엽과 작은누나는 배꼽을 잡고 웃곤 했다. 도엽은 아프다고 주눅 들긴 싫었다. 한 번에 1알 먹던 진통제를 이제 9알로 늘렸어도, 코를 이미 점령해 버린 암세포 때문에 자주 코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닦아내야 해도, 그는 순간순간 웃고 행복해한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이 남기고 싶은 글의 주제들을 생각해 내고 나에게 보내 놓는다. 아빠 공항, 기타, 별명, 강동 일식, 할머니, 별똥별, 소설, 귀신, 누나 언니, 영양제, 독립심.

 

그를 버티게 해주는 건 투지가 아닌 몰입이었다.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고, 지나치게 냐고 묻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삶의 기술이었다. 온 감각을 곧추세워 살아갈 시간은, 지나간 시간도 앞으로의 시간도 아닌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일깨우고 있었다. 그러자니 지금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우울하고 찡그린 채로 살기도 싫었다. 죽음의 위협 앞에 위축되기도 싫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몰려와도 나룻배에 태워 떠내려가도록 했다. 숨을 쉬는 동안만큼은 우울하고 고통스러워할 만한 기억과 정서에 붙들려 있기보다는 즐겁고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발견해 내려 노력했다. 그것은 삶의 유한성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대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각성된 눈 때문이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세계적인 죽음 연구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기암 환자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퀴블러 로스가 만난 환자들 중 모델 출신의 베스는 마흔둘에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었다. 암에 걸리기 전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암세포의 파괴력은 더욱 놀라웠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들과 소모적인 투쟁에 소중한 에너지를 모두 써 버리지 않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죽음을 긍정하고 수용하여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베스. 그녀가 남긴 시를 읽으며 나는 도엽의 몰입, 도엽의 삶의 기술을 떠올렸다. 햇살 속 산책, 친구와의 농담, 가족과의 웃음, 작은 친절,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 주어진 과제에의 몰입. 모두 이미 가질 수 있고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만 더해진다면.

 

눈부신 햇살 속을 거닐다 보면

살아서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합니다.

 

미용사와 약속이 있고

의사와도 약속이 있어요.

미용사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겠죠.

의사를 만나면 어떨지,

그건 잘 모르겠군요.

 

내 삶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 거겠죠?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요?

 

- 베스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중에서)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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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2)

 

그럼에도 삶에 대해 하려 하네

 

 

보통 사람들은 66년을 건강하게 산대요. 뉴스 통계에서 들었어요. 그거 듣고, , 다들 오래 건강하게 사는구나, 했어요. 저는 한 20년이었거든요.”

 

첫 만남이 있기 전, 도엽과의 통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건강한 기간이 66년이라는 것도, 그가 20년 정도 건강했다는 것도 그날 처음 들었다. 하지만 그 20년도 온전히 건강한 날수를 채운 것은 아니었다. 13살 때 오른쪽 눈에 양성 종양이 생겼으니 말이다.

 

한 사람의 병력이 약력처럼 보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거쳐 온 병의 역사를 보면.

 

도엽이는 생후 100일 때 망막모세포종으로 오른쪽 안구를 적출했다.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해 보았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다. 오른쪽 눈을 적출함으로, 왼쪽 눈은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13살 때 의안을 한 오른쪽 눈 안쪽에 양성 종양이 생겨 수술을 했다. 6학년 때였으니까그는 그때 졸업식에 가지 못한 게 수술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 땐 병원에 자주 다녀도 다닐 만했다. 다양한 지식들을 많이 아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병원에 관한 지식이나 의학 정보를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독특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의학 정보가 주는 자부심보다 육체가 주는 고통의 크기가 훨씬 더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21살에 코에 골육종이 발병한 것이다.

 

 

 

            어린 시절 오른쪽 눈에 의안을 한 도엽

 

 

 17, 그 무력함의 자리

 

아마도 도엽에게 인생에서 결단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면 21살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선 어느 17일간의 기억일 것이다. 도엽이 21살이었던 201111월 말,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이 진행되었다. 허벅지의 살을 떼어 뇌막을 잇는 수술이었다. 수술 후 그는 17일간 허리에 관을 꽂고(수술 중 뇌막이 손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뇌척수액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한 요추 배액관이었다) 내내 누워만 있어야 했다. 자세를 바꾸지도 못했고, 살아 있는 목각 인형처럼 침대에 놓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볼 수 있는 것은 천장뿐이었다. 수액으로 영양제를 맞으며 연명했다. 온몸,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것은 쉬 말로 표현될 수 없는 통증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프기만 한, 무력함의 자리였다. 17일이 지난 후 일어나 보라고 하는데 온몸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한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근육 강도가 현저히 떨어진 탓이었다. 그때 이후, 정말로 다시는 수술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수술만은 피하고 싶었다.

 

수술이 끝나자 이번엔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사이클의 치료를 6, 그러니까 6개월에 걸쳐 받았다. 첫 달, 한 번의 항암치료가 있고 나서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한 뭉텅이씩 빠지는 머리카락. 결국 병원 아래층에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기로 했다. ‘남들은 군대 갈 때 머리를 민다는데 나는 이렇게 머리를 미는구나생각하니 거울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엄마는 머리를 미는 도엽의 옆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웃음은 그에게 최선의 방어이자 수용이었지만 엄마의 울음은 막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처럼 하루에 일만 개씩 떨어져 버리는 자식의 생기를 지켜보기엔 엄마는 힘이 없었다. 순간 정적을 대면하는 일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항암주사는 한 번에 72시간 정도 맞았다. 21살의 젊은 암환자는 딱히 소속될 곳도 없어, 소아과 병동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암병동에서 그는 온전한 성인도, 그렇다고 어린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소아과 병동에서는 아이들이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어요. 거기 오래 입원하면 엄마들이 아예 집처럼 살림을 차리거든요그게 좀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뭐그분들도 어쩔 수 없었겠죠.”

 

아이들을 간병하는 엄마들이 의사들 험담도 하고 수다도 떨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나 보다. 스마트폰이나 TV를 크게 틀어 놓기도 했다. 아픈 아이를 계속 돌봐야 하는 고된 간병의 피로감과 병원에 갇혀 있는 갑갑함을 달리 어떻게 풀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몸이 아프면 촉수가 더 민감해지기 마련. 무던하고 성격 좋은 도엽이조차 항암치료 기간 내내 마주해야 하는 소란스러움이 버거웠다. 그러나 그분들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그의 생각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습관이 일찍부터 배어 있는 공감의 습성에서 난 것이었다.

 

그렇게 6개월간의 항암치료가 끝났다. “고통은 제발 그를 한숨 좀 놓게 하라!” 시위하고 싶지만, 세상 밖이나 몸 안이나 시위가 먹히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암은 꿋꿋이, 자신은 살아 있노라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술과 6개월간의 항암치료 후 3개월 만의 재발이었다.

 

더 이상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 수술이었다. 1년 동안 더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겨우겨우 버텨낸 1년의 항암치료가 무색하게, 결국은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첫 수술을 할 때 의사선생님은 아주 모질고 거칠게, 모든 걸 다 제거해야 한다고, 적출해야 한다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래서 담당수술의를 바꾸기로 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배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좋다 해도 가차 없는 말들로 마음까지 절개해 버리는 사람에게, 도엽의 몸에 댈 그 차가운 메스를 다시 맡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의 두 번째 수술을 맡은 의사선생님은 상냥하고 따뜻하게, 친절하게 그를 대해 주었다. 그는 그 의사선생님의 스케줄이 빌 때까지 기다렸다. 첫 번째 수술 이후 대략 만 2년 만인 20139월 두 번째 수술이 이루어졌다.

 

 

 

          올여름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이것으로 치료는 완료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하면 완전히 나을 것이라 했다. 완치라는 단어는 곧이어 이어질 강력한 치료의 고통을 상쇄할 만큼의 유혹이자 희망이었다. 20141월 그는 무균실로 들어갔다.

 

항암치료가 폭탄급이라면,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은 핵폭탄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예의 덤덤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은 고용량의 강한 항암 후 조혈모세포를 채집하여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이식하는 것이었다. 가슴에 삽입해 놓은 정맥관인 히크만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항암보다 더욱 강한 고용량 항암인지라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몸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더군요. 저는 그래도 제 몸의 피를 이식한 건데도 그렇더라고요. 예를 들면침이 탕수육 소스보다 걸쭉해져요. 그래서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해요. 구토가 나고 입안 점막도 헐고, 계속 항생제를 먹으니까 설사를 하고. 하지만 저는 그나마 자가이식이니까 운이 좋았던 편이죠.”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그. 타가이식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덜 힘들 거라고 했다.

 

무균실에서 그의 몸은 온갖 기계 줄들과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식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약제들이나 항암제, 항생제 등을 주입하기 위해, 가슴 쪽 정맥에 삽입한 히크만이라는 관 두 개에 수십 개의 수액라인이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기분이었다. 수액라인이라는 액세서리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만큼 유쾌하게 그 공간의 무게를 덜어낼 상상물이 있을까.

 

주렁주렁 많은 장식들을 매달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움직이기 어렵듯, 그 역시 침상을 떠나기는 어려웠다. 첫 수술 직후만큼이나 힘들었겠다는 나의 말에, 그는 그래도 괜찮았다고 한다. 첫 수술 때만큼 누워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TV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겐 큰 진보로 느껴졌다. 게다가 타가이식을 하는 사람은 그 고통이 더할 거라고, 자기는 그 통증까진 모른다며, 그는 더하리라 짐작되는 고통 앞에 자신의 고통을 무릎 꿇린다. 또한 자신을 돌보는 엄마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보다 앞세운다. “저 때문에 엄마가 많이 고생하셨죠.”

 

인터뷰를 하며 내내 의아했던 것은 25살 젊은 청년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왼쪽 눈마저 잃은 것 아닌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자가조혈모세포이식 후 3개월 만에 암은 재발되었고, 7개월 후인 작년 11월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조차도 자신의 고통이 가장 끔찍한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들 사람들을 생각했다.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으로 가볍게 넘어가려 애쓰면서 자신보다 더 마음 아파할 가족들을 생각했다. 왜 그런 걸까.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걸까. 억제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압력을 견디지 못해 어딘가 다른 곳으로 튀어나왔을 텐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좋은 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의자를 바꿔 가며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시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그 시인은, 어떤 시인의 시에서 의자를 많이 바꿔 앉은 것이 보이면 , 이 사람, 나보다 많이 생각했구나, 잘 썼구나하고 생각한다 했다. 어쩌면 도엽이는 좋은 시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쉬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일찍부터 겪어 왔지만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의자를 계속 바꿔 가며 삶을 바라보고 타인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에 대해 하고 응답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다져 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투엔 투정이나 원망이 아닌 덤덤함과 받아들임이 시종일관 묻어나 있었던 듯하다.

 

이제 또 어떤 의자가 도엽을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의자에 앉아 그는 삶을 바라보게 될까. 그 기다림을, 그 주시를, 나는 잠잠히 지켜보기로 했다.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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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1)

 

“나는 25살, 비니를 쓴 김도엽입니다”

 

 

도엽이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4월 6일 한 선배를 통해서였다. 선배의 교회 지인이 대학병원 의사인데, 그곳에 안구암을 앓고 있는 청년이 있다는 것이었다. 청년의 몸 상태는 현재 좋지 않은 편이라 했다. 달리 말하면, 의학적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은 책을 남기고 싶어 한다고 했다. 선배는, 내가 그 일을 해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망설여졌다. 3년 전 폐암 말기 환자와 전국 자전거 여행을 동행하며 책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기 2주 전, 주인공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쓴 책의 주인공이, 그것도 수개월간 함께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인터뷰를 했던 주인공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느낌이란 게 어떤 건지를 생생하게 경험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다시 겪을 수도 있는 작업을 굳이 내가 맡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 제안을 건네 준 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도엽이는 30대 중반의 그 의사 선생님과도 말이 매우 잘 통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20대 중반의 청년이라 했다. 21살 때 암이 재발했고 암은 제거되지 않았다고 했다. 도엽이의 상황을 건네 듣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좀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내 앞에 산재한 일상의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런 일들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며 생각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기도를 할 때마다 도엽이에 대한 부담감은 점점 더 마음속에 차올랐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의사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내 보았다. 작가를 구하셨냐는 질문을 했다. 구해 보려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답이 바로 왔다. 내가 한 번 해 보겠노라고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테지만 이 작업은 나의 작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길을 가보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첫 만남

 

180이 훌쩍 넘는 큰 키. 깔끔한 무늬의 남색 셔츠, 그리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카멜색 바지. 옷차림도 센스 있는 한 사람이 눈앞에 등장했다. 큰 키를 지탱하느라 그런가, 아니면 이제 가족과 몇 명의 친구 외에는 유일한 눈과 귀가 되어 주는 스마트폰에 집중해서 그런가, 도엽이의 목은 아주 약간 앞으로 굽어 있었다.

 

도엽이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엽이보다 훨씬 키가 작으신 어머니가 제과점 2층으로 도엽이의 허리를 붙들고 올라오고 계셨고, 도엽이는 한 팔로는 어머니의 어깨를 붙들고 한 손으로는 계단 난간을 더듬거리며 올라왔다.

 

25세 청년 도엽이의 머리는 비니로 가려져 있었다. 오랜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도, 눈썹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새하얀 얼굴에 두 눈은 감겨 있었다. 도엽이가 세상의 빛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지는 이제 10개월이 되었다.

 

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을 본 적은 꽤 있어도, 가까이서 대화를 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도엽이와 가까워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빵을 집어 드는 것을 도와주고, 의자의 위치를 손으로 직접 알려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도 도엽이의 손목을 잡아끌어 알려 주고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워 자리를 옮길 때에도 의자에 자리 잡도록 했다. 그런 식의 도움을 받는 것에 도엽이는 별 자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편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잘 받는 사람은 건강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인데, 도엽이는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달걀형의 작은 얼굴에 총명해 보이는 이목구비, 그리고 어른스러운 점잖은 어투. 지금 한창 데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진로 걱정을 하고,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영화를 보러 다닐 나이에, 도엽이의 인생은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고, 내가 하는 영화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도엽이는 <어벤져스>를 무척 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레 실명이 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 나는 별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다고 하니 그는 하하, 하고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영화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아는 것은 오히려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욕망은 금지된 것에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모두 다 얼마나 소중한가요

 

도엽이는 생후 100일 때 망막모세포종으로 오른쪽 눈을 잃었다. 그때 이후로 쭉 의안을 했다. 도엽이는 그때 어떻게 아팠는지도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한쪽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못하진 않았다. 그는 선천적으로 좀 게으름이 있는 것 같다고 웃지만, 게으른 것치고는 늘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마침내 대학에 들어갔다. 어른스러운 성품에,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 도엽이에겐 다가오는 친구도 많았다.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마음껏 대학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실제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렸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코에 골육종이 발병했다. 망막모세포종에 걸린 사람들이 쉽게 걸리는 병이라 했다. 3년간의 지난한 항암치료를 거치고, 두 번의 끔찍한 수술, 골수이식까지 했다.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버티게 해준 건 희망이었다. 이것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 이것만 잘 버티고 나면 다른 사람처럼, 다른 친구들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희망은 순순히 도엽이의 것이 되어 주지 않았다. 골수이식만 하면 완치된다고 했던 의료진의 예상과는 달리 암은 3개월 만에 재발되었고, 도엽이의 몸에 안착해 버렸다. 이제 병원에선, 더 이상 답이 없다고 말한다. 암은 도엽이의 몸 안에서, 문득 천천히 걷다가, 다시 빠른 걸음을 하다가, 그렇게 몸의 주인도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 지금은 귀에 물이 차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다.

 

다른 시한부 환자들은 여행을 가고 싶다든가, 추억을 쌓아가고 싶다든가 하는 소원이 있는데, 도엽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책 한 권을 갖고 싶다는 소원이 있다. 이제 그 길로 향하는 걸음을 조심스레 한 걸음 떼게 되었다.

 

“가끔 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왜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 같아요. 제가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소중한 것들이 바로 옆에 있을 거라는 거. 공기처럼 늘 내 옆에 숨 쉬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모두 다 얼마나 소중한가요. 하나하나 잃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 만난 날, 도엽이가 내게 해준 말이다.

 

도엽이의 이야기로, 도엽이가 가진 마음의 눈으로, 건강한 눈을 가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건강한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면,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병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 와야 했던 도엽이가 응원을 얻는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는 실현된 것이라 믿는다.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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