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최후의 심판(5)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선진국도 아니요 선진국 아닌 것도 아니요 개도국(개발도상국)도 아니요 개도국 아닌 것도 아닌 아주 묘한 나라에서 대법원장을 역임한 사람이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물론 판사의 자리가 아닌 피고의 자리지요. 다른 사람과 달리 피고석을 내려다만 보다가 자기가 피고석에 서서 판사석을 올려 다 보니까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것 참! 평생 남을 재판만 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 판에 와서 이렇게 피고석에 서게 될 줄이야! 살아 잇을 적에 그걸 염두에 두었어야 하는 건데 그만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깜빡 잊었지 뭡니까? 잊은 건 댁의 사정이고 여기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에누리는 일체 사절이라 하는 수없이 대법관 나리께서도 최후의 판사이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섰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


“판사 일을 했습니다.”


“그랬느냐? 거참 힘들었겠구나! 내가 직접 해 보니까 재판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라. 어쩌다가 하고 많은 일거리를 두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하였더란 말이냐? 고생이 많았겠다.”


대법관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동정심을 베푸시는 것 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았습니다만 , 바로 여기서 일단 점수를 따놓는 게 상책이다 싶어서 근엄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지금 재판장께서는 피고를 향하여 사소한 동정심을 표현하셨는데 재판장으로서 특정 피고에게 사심(私心)을 품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이점의 즉각적인 시정을 요청하는 바이올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상을 찌푸리셨습니다.


“흠, 내가 너에게 동정심을 베풀면 안 된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그래, 너는 평생 피고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베풀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만 피나는 수련 과정을 통해 마침내 감정-극기의 묘수를 터득했습지요.”


“참으로 장하다. 너는 어쩌면 하나님인 나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더란 말이냐? 어허, 참으로 장한지고!”


대법관은 이제 결정적으로 점수를 따놓았으니 됐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흐뭇했습니다.




“기록을 보니 너의 대법원장 재직 기간이 꽤 길었구나?”


“오래 한 셈이지요. 그 자리가 아무나 앉을 자리는 아니었으니까요.”


“흠, 그렇겠지! 그런데 대통령이 죽으면서 너도 그 자리를 물러났구나?”


“저의 사직과 대통령의 죽음은 무관합니다.”


“그렇겠지. 법과 정치는 상호 독립이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그래, 너는 판사로 있는 동안 정치권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았더란 말이냐?”


“그렇지는 않습지요. 가끔 대통령과 골프도 쳤으니까요.”


“골프?”


“예. 건강 관리상 썩 좋은 운동입지요.”


“건강 관리에 좋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재판장 각하! 그러나 골프 이야기는 본 법정의 사안(事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골프를 치면서 너와 대통령이 서로 나눈 얘기는 꽤 중요한 증거물이라고 보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무슨 얘기 말씀입니까?”


“국사범(國事犯) 아무개를 재판할 적에 대통령이 너에게 그는 사형감이라고 말했지 않았느냐?”


“글쎄요.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으니 다시 들어 보아라.”


하나님은 천신에게 명령하여 주먹만한 기계를 가져 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 인간들이 세상에서 한 모든 말을 담아 놓은 녹음기다. 소크라테스가 아카데미에서 강의한 말도 들어 있고 우간다 대통령 이디 아민이 침실에서 첩과 나눈 얘기도 들어 있다.”


하나님은 녹음기 위에 돋아나 있는 작은 단추를 누르셨습니다. 바람 소리가 약간 들리면서 이윽고 대통령의 쉰 목소리가 분명하게 재판정에 울려 퍼졌습니다.


“…어떻소? 내 생각에는 이번 참에 두꺼비가 이 나라를 위해서 죽어 줘야겠다고 보는 데…(잠시 말이 끊겼다가)… 딱!”


“저 딱-하는 소리가 골프 공치는 소리고 두꺼비는 국사범 아무개를 말하는 게 아니냐?”


“그런 것 같습니다.”


“옳거니! 좀 더 들어 보아라.”


“…(발걸음 소리 들리다가, 대법관의 목소리로)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


‘탁!’ 소리 나게 녹음기를 끄고 하나님께서는 대법관에게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네가 말하는 ‘나’란 재판관으로서의 너냐? 아니면 골프 치는 사람으로서의 너냐!”


“글쎄요, 둘 다겠지요.”


“흠, 그도 그럴 듯하다. 아무리 안팎이 다른 자라 해도 역시 사람은 하나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현명하신 재판장 각하!”


“존경하는 재판장이니 현명하신 재판장이니 하는 말은 네가 세상에 있을 때 즐겨 듣던 호칭이니 여기서도 너에게 붙여 주마. 자, 그럼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네가 그 국사범 아무개에게 사형을 선고한 데 대하여 그것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스스로 심판하여라.”


“추호도 사심(私心)은 없었습니다.”


“그럼, 공심(公心)으로 판결을 내렸단 말이로구나?”


“그렇지요.”


“공심(公心)이 아니라 공심(共心)이겠지. 대통령과의 공심(共心) 말이다.”


“우연히 생각이 같았을 뿐입니다.”


“알았다.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좌우지간에 너는 살아 있을 때 대통령과 짝이 맞았었으니 죽어서도 함께 있는 게 어떠냐?”


“그… 그건 싫습니다.”


“왜지?”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허허… 역시 판사라서 알긴 제대로 아는 구나?”


“하나님! 제발 한 번만 봐 주십시오.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린지 잘….”

대법관은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판사는 피고에게 동정심을 베풀면 안 된다고 했잖느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그의 발밑이 푹 꺼지면서 천길 만길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현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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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최후의 심판(4)

 

위대한 종님

 

놀라운 신유(神癒)의 은사를 받아 숱한 환자를 고쳐 주던 목사님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받고 절망 가운데 헤매던 환자들이 그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다시 살아난 일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죽은 지 여섯 시간이 지난 소녀를 소생시켰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는데, 사실은 헛소문이었습니다만, 사람들은 그 소문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죽을병에 걸린 환자들을 고쳐주어도 사람들은 치료되는 숫자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병에 걸리고 그러다가 끝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놀라운 신유의 종님도 마침내 숨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종님”이라는 좀 웃기는 말을 하게 된 것도 다 유래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집회 끝에 병자들을 안수하고 있었는데 한 환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고맙습니다. 할렐루야. 제 병이 나았음을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유의 종님!”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 뒤로 종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님’이라는 꼬리말이 아주 자연스레 붙어 그 목사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올시다.”

 

“그래, 네가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어디 알아보자.”

 

하나님은 이어서 천사장에게 일렀습니다.

 

“저기 아무개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스크린을 가져 오너라.”

 

천사장이 손바닥만한 얇은 판대기를 가져다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 작은 스크린에 네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언행이 프린트되어 있다. 어디 보자.”

 

하나님이 작은 단추를 누르자 스크린에 목사님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흠! 아주 신색이 좋구나. 얼굴에 기름이 흐르고 있어.”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 덕분입니다요.”

 

“그래. 좋다. 그런데 살이 좀 과하게 찐 것 같지 않느냐? 턱이 두 개나 되는군.”

 

“실은 살을 빼기 위해 애도 많이 써 보았습니다. 평균 사흘에 한 번은 사우나엘 가야 했으니까요.”

 

“사우나라는 데가 뭐 하는 곳이냐?”

 

“땀 빼는 곳이지요. 그런 데가 있습니다.”

 

“땀이란 열심히 일하면 빠질 텐데?”

 

“그래도 일부러 빼지 않으면 안될 만큼….”

 

“알았다. 결국은 내가 너에게 너무 지나친 건강을 준 셈이로구나.”

 

목사님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심판이라고 해서 무슨 굉장한 건 줄 알았는데 고작 얼굴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자니 어쩐지 싱거운 꿈을 꾸는 것만 같고 도무지 현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 네 얼굴이 신문에 나 있구나!”

 

하나님이 신기한 듯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쳇! 또 얼굴 이야긴가?”

 

목사님은 심드렁해서 하나님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최후의 심판이라면 영혼이 어쩌고, 신앙이 어쩌고, 영생이니, 낙원이니 뭐 그런 말이 나와야 할 게 아냐? 시시하게 얼굴에 살이 쩠다느니 얼굴이 신문에 났다느니… 이건 좀 아무래도 이상한데?’

 

이렇게 생각하고 서 있는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참 대단하구나. 난 한 번도 내 얼굴이 신문에 난 적이 없는데 너는 거의 매일 나다시피 했어. 여기, 이 글을 읽어 보아라.”

 

‘금세기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님, 드디어 대구에 오시다.’ ‘능력 충만, 성령 충만, 축복 충만.’ ‘병든 자는 다 내게로 오라! 신유의 종님, 아무개 목사님이 부산에 오시다.’

 

이렇게 신문에 다 알리는 것을 광고라고 한다면서?”

 

“그렇습니다. 광고를 해야 사람들이 몰려들거든요. 광고를 하지 않으면 병자들이 어떤 은사 집회가 어디에서 있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건 그렇겠지.”

 

그 때 하나님 우편에 계시던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세상에 있을 때 병자들 좀 고쳐 준 일이 있는데…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예수님 아니십니까?”

 

“그래, 맞았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 광고라는 걸 한 일이 없다.”

 

“그건 그 때에 신문도 없고 방송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니지. 그 때에 없었던 것은 광고매체가 아니라 광고주였다!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내가 너를 고쳤다’고 했더냐?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는 말은 했지! 그 때에 사람들의 병을 고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나를 광고한단 말이냐?”

 

목사님은 갑자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개야, 네가 나의 종님으로서 수고는 많았다만 내 나라에는 네가 있을 곳이 없을 것 같다. 병자가 없으니 아무리 위대한 신유의 종님이라도 소용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느냐?”

 

“하나님, 그럼 저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어디 병자들만 사는 데가 있을 게다. 내가 곧 알아보마.”

 

이현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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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최후의 심판(3)

 

당신이 누구요?

 

 

대개 불교에서는 스님의 불심(佛心)이 크다고 해서 큰 스님이라고 부릅니다만 기독교에서는 예배당이 크면 큰 목사가 되더군요.

 

아무튼지 간에 누가 뭐라고 해도 지상에서는 큰 목사로 유명자자 하던 목사님 한 분이 “때가 되어”(이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높은 무대 위에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도 없는 분이 앉아 계시는데 사람들이 줄을 지어 그분 앞에 한 사람씩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흠! 내가 설교 시간에 늘 말하던 그 모양 그대로구나!’

 

목사님은 속으로 흐뭇했습니다.

 

‘이제 곧 내 차례가 되겠지!’

 

목사님은 자기가 이룩한 찬란한 공적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릴 순간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한 일이지요. 분명히 앞으로 걸어 나가는 데도 심판대와 자기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만 한참 동안 걸어 가다가 이제 내 차례가 되었으니 하고 쳐다보면 여전히 심판대는 저 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었어요.

 

 

                            미켈란젤로/최후의 심판

 

목사님은 갑자기 다리가 아팠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세상에 사는 동안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건데 너무 자가용 신세만 진 것이 약간 후회가 되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제 자리 걸음인 것이, 마치 세상에 있을 때 가끔 들렸던 헬스 클럽의 자전거 타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헬스 클럽의 자전거는 싫증이 나거나 피곤하면 안장에서 내려올 수가 있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뒤에서 자꾸만 사람들이 목사님의 등을 밀어댔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착실하게 앞으로 몸을 앞으로 떼어 놓았습니다. 몸이 앞으로 나가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옳지! 됐어.’

 

목사님은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어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판대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를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분명히 이건 부정한 놈들이 새치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기관차 화통 같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거 앞에 새치기하는 놈들, 회-애-애-개하고 써∼억∼ 물러 가거라!”

 

사람들이 모두 목사님을 두려운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이 얌통머리 까진 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새치기를 하는 거냐? 배워먹지 못한 것들아!”

 

한참 이렇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저쪽 심판대로부터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얘, 아무개 목사야. 왜 그렇게 시끄러우냐? 여기가 네 교회당의 사무실인 줄 아느냐?”

 

목사님은 자라처럼 목을 움추리고 잠잠해졌습니다.

 

“네 교회에서는 네가 황제였겠지만 여기서는 내가 왕이다. 시끄러워서 사무를 보지 못하겠으니 딱한 일이로구나. 너에게 큰 목청을 준 것이 내 실책이긴 하다만 목청이 크다고 말이 큰 것은 아니다. 좀 잠자코 있어라.”

 

목사님은 용기를 내어서 한 말씀 드리기로 작정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그렇지만 이 신성한 심판대 앞에서 염치도 없이 새치기를 하는 자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새치기라니?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냐?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닙니다! 분명히 새치기 꾼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까부터….”

 

“아까부터 부지런히 걸었는데 같은 자리에 있느냐, 그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그건 바로 네 탓이다. 그러니 너나 새치기 할 생각 말아라.”

 

“하나님! 제 탓이라니요? 그런 말씀이야말로 얼토당토 않는 말씀이십니다.”

 

“네 이 녀석! 아무리 세상에서 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했기로서니 감히 하나님 보고 얼토당토 않는 소리라니? 잔소리하지 말고 기다려라!”

 

목사님은 하릴없이 제 자리 걸음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지요. 그 때, 웬 헙수룩한 차림을 한 남자가 목사님을 보고 꾀죄죄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청해 왔습니다.

 

“어이쿠, 목사님. 마침내 여기서 목사님을 뵙게 되는군요.”

 

목사님은 심기가 불편한데다가 상대방이 워낙 초라해 보여서 마뜩찮은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습니다.

 

“당신이 누구요?”

 

“목사님, 저를 모르시는군요.”

 

“모르니까 묻잖소?”

 

“목사님 교회에서 교육관 오층 복도 청소를 하던 아무갭니다. 직원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는데요.”

 

“오십 명이 넘는 청소부를 내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한단 말이오?”

 

“아무렴 그렇습죠.”

 

“그런데 아까 당신 말이, ‘마침내 여기서 뵙게 되는 군요’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주일마다 나를 봤을 텐 데.”

 

“아무렴, 그렇습죠.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님을 뵙고 제 딱한 사정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면담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되었읍지요.”

 

“당신도 아다시피 내가 얼마나 국내외적으로 바쁜 몸이었소? 청소부까지 만나 줄 시간은 없었소. 양해하시오.”

 

“아무렴, 그렇습죠. 이젠 다 지나간 얘긴데요 뭐!”

 

목사님은 심판받는 자리에서 청소부하고 노닥거리는 것에 다시 불끈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 저는 심판하시지 않는 겁니까?”

 

“너는 지금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만나 주시지도 않았으면서.”

 

“너도 아다시피 내가 얼마나 우주적으로 바쁜 몸이냐?”

 

이현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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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최후의 심판(2)


불공평한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참 착하게 살았구나. 아주 잘 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었으며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위로를 주었으니 내가 주는 상을 받아라. 이제부터 너는 내 앞에서 내가 주는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하늘의 황홀한 음악을 즐기며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하여라.”


그러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황송무지로소이다. 생각컨데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준 기억이 없습니다. 더구나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다니요, 결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니신지요. 황송하옵니다.”


“아니다. 내가 어찌 사람을 잘못 보겠느냐? 너에게 그런 기억이 없는 까닭은 네가 내 말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일 하나 하고는 아래 위로 생색을 내는 것들은 이미 땅에서 받을 상을 다 받았으니 내가 줄 게 없다만 너처럼 제가 무슨 착한 일을 하는 줄도 모르면서 착한 일을 한 사람을 보면 나는 좋아서 죽겠구나! 오, 나의 착한 아이야, 이리 오너라. 내 오른편 자리에 앉도록 하여라.”


그러자 사람이 더욱 펄쩍 뛰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옵니다! 하나님, 만일 제가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저의 공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손과 발과 눈과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과 피와 생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없었다면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한 일인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상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만 하옵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듣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과연 네 말이 지극하구나. 네가 나에게 준 모든 기쁨과 행복을 갑절로 하여 너에게 주노라.”




                                미켈란젤로/최후의 심판



그 사람에 대한 심판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째서 평생을 도둑질, 이간질, 사기, 폭력에다 공갈과 협박으로 살았느냐? 약한 사람을 때리고 애매한 사람을 능욕하고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고… 너 이 고얀 놈! 차마 뭐라고 더 말할 수가 없구나. 너는 저 불붙는 지옥으로 내려가 거기서 영원한 고통을 맛보아라. 네가 남에게 입혔던 온갖 상처를 두 배로 받아라.”


그러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황공하오나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언제 남의 물건을 훔쳤단 말씀입니까? 사기에다 폭력을 휘두르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로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게 틀림없습니다. 다시 한 번 명단을 살펴보시지요.”


하나님께서 성을 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막중한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하다니? 너 이놈, 하나님을 뭘로 보고 있는 거냐? 다른 것은 관두고 나를 우습게보고 있는 이 죄만 가지고도 너는 당장 지옥행이 마땅하다! 그러나 네가 그런 나쁜 짓을 한 기억이 없다는 말은 옳다. 너도 악한 일에는 일찍이 도사(道士)가 되었으므로 오른손이 하는 나쁜 일을 왼손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기를 치면서도 자기가 사기를 치는지 몰랐고 남의 권리를 도둑질하여 제 배를 채우면서도 그게 도둑질인 줄 알 턱이 있었겠느냐? 너 같은 자를 보면 내 속이 다 뒤틀린다. 네 몫인 영원한 벌을 받아라.”


사람이 두 손을 휘두르며 대꾸했습니다.


“하나님, 그러지 마십시오. 그래요, 제가 그 모든 나쁜 짓을 했다고 하십시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제가 한 짓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손과 발과 눈과 하나님께서 주신 가슴과 피와 생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없었다면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몸으로 한, 즉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옵니까? 왜 그 책임을 제가 져야 합니까? 만일 제가 받을 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우물쭈물하자 하나님이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그 벌은 너에게 손과 발과 눈과 함을 준 내가 받아야 한단 말이냐? 어허, 이놈이, 제 아비 아담을 쏙 빼닮았구나. 여봐라, 이놈이 제 발로 지옥을 가지 않으려 하니 너희가 끌고 가거라!”


천군(天軍)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를 끌고 가는데,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십니다. 먼젓번 친구는 제가 하지도 않았다는데 온갖 상을 주시고 나에게는, 역시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온갖 벌을 주시니 어떻게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겠습니까?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불공평이 너에게는 공평이니라. 너는 나의 몸뚱이로 너의 삶을 살았고 이 친구는 나의 몸뚱이로 나의 삶을 살았으니 어찌 두 사람이 같다고 하겠느냐?”



이현주/동화작가


1)하나님 맙소사http://fzari.com/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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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최후의 심판(1)

 

하나님 맙소사!

 

 

세상에는 참 공교로운 일이 많은지라 어느 날 사장과 비서와 운전기사가 함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셋이 차를 타고 가다가 벼랑에 굴러서 함께 죽었던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아주 까마득한 미래의 어느 날엔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죽는 날, 그 날이 바로 최후의 심판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이 세 사람은 누구 때문에 죽게 된 것이냐를 따질 겨를도 없이 그야말로 졸지에 세상을 떠나 엉겁결에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먼저 사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떠냐? 이렇게 갑자기 이리로 오게 될 줄은 몰랐지?”

 

“예.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몇 가지 정리를 해 놓았을 텐데요.”

 

“정리라니? 무슨 정리를 말하는 거냐?”

 

“우선 기업체에다 빌려 주었던 사채를 모두 회수하여 처자식들에게 분배해 주었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제 비밀 거래를 모르고 있으니 그 돈은 모조리 떼인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액수는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께서 그건 알아 뭘 하시겠습니까?”

 

“허허, 그건 네 말이 옳다. 모두가 먼지처럼 되었는데 그까짓 액수는 알아 뭘 하겠느냐? 수백, 수천억 원이나 단돈 10원이나 여기서는 마찬가지다. 그래, 네가 이제 판결을 받아서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해야 할 터인데 네 생각엔 어떠냐? 너는 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느 쪽 길로 줄곧 걸어 왔느냐? 천국의 길이냐? 아니면 지옥의 길이냐?”

 

“지옥의 길을 걸어 천국 쪽으로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고?”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천국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허허, 그것 참 대단하구나. 그러나 그건 이곳의 논리와 맞지 않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천국의 길 뿐이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지옥의 길뿐이다. 길이 곧 천국이요 길이 곧 지옥이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세상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주일(主日)을 빼먹거나 헌금을 잘라먹은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은 여기 함께 온 비서와 기사가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아, ‘주일을 빼먹다’니 그건 무슨 말이냐?”

 

“성스런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일을 한다든가 놀이를 한다든가….”

 

“성스런 주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사장은 한심하다는 듯 하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래 보여도 장로입니다. 아무렴 그런 것도 모를까 봐서 물어 보시는 겁니까?”

 

“장로는 또 뭐냐?”

 

“교회의 평신도들 가운데 우두머리를 장로라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회장이라고도 하지요. 그게 다 비슷비슷한 겁니다.”

 

“네 말은 갈수록 어렵구나. 평신도는 또 뭐고 우두머리는 또 뭐냐?”

 

“이런!”(여기서 사장은 속으로 ‘제길!’ 하고 중얼거렸음)

 

“내가 무식해서 말이 안 통한다 이 말이냐?”

 

사장은 하나님이 자기의 속을 꿰뚫어 보는 바람에 흠칫 놀라서 목을 자라처럼 움츠렸습니다.

 

“좋다. 그래 너는 헌금도 꼬박꼬박 지켰으니 그만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않느냐, 이말이렸다?”

 

“뭐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어쨌든 제 입으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시골의 가난한 성직자들에게 매달 송금한 돈만 해도….”

 

“그래.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너는 네가 말하는 주일에도 부하 직원들을 출근시켰지.”

 

“사무실을 비울 수는 없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제 사업이라는 게 죽은 사람에게 관을 파는 것이었는데 어디 사람들이 날을 골라서 죽어 줘야 말이지요. 주일에는 죽는 사람이 없다는 무슨 원칙이 있었다면 물론 주일에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그런 원칙이 있을 수는 없지. 내가 그런 원칙을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러게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부하 직원들만 사무실에 출근시키고 너는 꼬박꼬박 주일을 지켰다 이 말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네 이놈!”

 

갑자기 하나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네놈 하나 천국 보내자고 숱한 부하 직원들은 지옥으로 가도 좋다고 생각했더란 말이냐? 어어, 고얀놈이로고!”

 

“아… 아니올시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이놈을 당장 지옥으로 데리고 가거라!”

 

“지… 지옥이라니요? 아이쿠, 하나님 맙소사! 아, 지금껏 지옥에서 살았는데 또 지옥으로 가란 말씀입니까?”

 

“땅에서 지옥생활을 한 자는 죽어서도 지옥으로 가고 땅에서 천국생활을 한 자는 죽어서도 천국으로 가느니, 이것이 나의 원칙이니라.”

 

천군들이 사장을 끌고 가자 곁에 서 있던 비서와 기사가 허겁지겁 따라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사장님. 혼자 가시면 어떡합니까? 같이 가셔야지요.”

 

천사장 미카엘이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 두 사람은 심판도 받지 않고 지옥으로 가는데, 그냥 두십니까?”

 

“버려두어라. 저것들은 지상에 있을 때부터 사장의 수족노릇만 하던 자들이다. 몸이 가는 곳으로 수족이 따라가는 것이야 마땅한 일 아니냐? 남을 수족처럼 부리던 자도 천국에 못 가겠거니와 남의 수족 노릇으로 만족하던 자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노예를 부리는 자가 없는데 노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도매금으로 살던 자들은 도매금으로 가게 하여라.”

 

이현주/ 동화작가

 

 

http://fzari.com/774 불공평한 하나님(2)

http://fzari.com/782 당신이 누구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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