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석의 '금서 읽기'(2)

금지된 시를 위한 변명

 

한 편의 시를 읽는다.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때론 고통을, 그것을 통과한 마음자리를 시보다 절절하게 표출하는 그 무엇이 있을까. 시는, 아니 모든 문학은 인간의 모든 절체절명의 순간을 기록하는, 인류가 발명(혹은 발견)한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게 시는 삶의 아름다움을 표출하지만 한때는 권력에 의해 금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시 자체로 금지된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보다는 시인이 금지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 땅의 질곡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면 새벽을 노래했던 시인들은 오랜 시간 금지된 인물로 살아야만 했다.

월북 시인들에게 남겨진 꼬리표

일제강점기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시와 시인들은 모두 금지되었고, 한국 전쟁 전후로는 정치적 이유로 많은 시들이 읽혀지지 못했다. 특히 월북 시인들의 시는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 금지되었다. 시대가 조금 지나면 체제 저항적인 시인들의 시가 모두 금지되었다. <향수>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은 물론 최근 활발하게 재조명되고 있는 시인 백석이 오랫동안 읽혀질 수 없었다. 시인 오장환, 설정식 등도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금지된 이름들이었다. 이들의 시는 대개 1980년대까지 읽을 수 없었다.

혹자는 월북 시인과 작가들의 작품에는 정치적 색깔이 다분하니 금지된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물론 월북 시인들의 작품에 정치적 색깔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정치적 지향이 사회주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의 경우는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일했다. 백석의 평론은 상당 부분이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는 데 할애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작품이 모두 체제의 문학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백석의 시 세계는 물론 그의 문학 전반이 연구 초기 단계에 있어 그 전모를 다 알기도 어렵다.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월북 작가 혹은 시인들의 정치적인 성향의 작품이 있다고 해도 작품을 선별해서 발표할 수는 없었느냐고. 오장환 시인의 삶을 한 번 살펴보자. 오장환 시인은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 좌익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에 월북했다. 시인은 붉은 깃발등 체제 선전적인 시집을 선보였다. 하지만 행과 연을 무시한 새로운 형식의 시를 통해 전통적인 시의 기법을 혁신했다. 또한 문명을 비판하는 퇴폐적 분위기의 시와 함께 고향을 잃은 지식인의 자의식을 노래했다. 이만하면 북한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한국 전쟁 이후 우리 정권을 지탱할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고, 미국의 원조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월북 작가의 작품을 서정시라는 이유로 차용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백석과 정지용, 오장환의 시가 이제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다. 그럼 왜 정치지형이 아닌 문학사에서도 월북 시인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월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문학적 성취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사에서 월북 시인들을 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원래 그런 시인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장환, 정지용, 백석 등 월북 시인들의 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결국에는 1980년대 말 해금을 보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월북 시인들의 시는 제대로 보존되어 재출간되기조차 어려웠다. 정지용의 시는 <향수>가 대중가요로 불리면서 비교적 일찍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월북 작가들의 재조명은 늦어지고 있다. 그들의 작품들이 북한에서만 전해졌기 때문에 해금이 되었지만 작품들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시인들은 단편적으로 몇 편의 시만 전해지는 경우도 많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전쟁을 기점으로 월북했던 작가들의 경우는 대부분 봉인이 해제되었음에도 심리적으로 금지된 시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첨예한 지금, 월북 작가 혹은 월북 시인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을 견뎌내며 노래한 저항 시인들 

월북 시인들의 뒤를 이어 금지된 시를 쓴 시인들은 김지하, 신경림, 김수영, 박노해, 양성우, 조태일 등이었다. 체제의 불의에 시로 저항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언급조차 거북한 이름이 되었지만 김지하는 그 유명한 <오적>을 통해 한때 세상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로 시작하는 <오적>은 세상을 제 손바닥 주무르는 재벌, 국회의원, 장성, 고급공무원 장차관들의 염치없음을 고발한다.

양성우 시인의 시집 <겨울공화국> 역시 금서가 되었다. 지금이야 문학적 수사로 자주 쓰이지만, 시인의 시집은 제목부터 날카롭다. 그렇게 유신시대를 상징하는 말로 겨울공화국은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는 있다. <겨울공화국>의 일부다.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 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시인들은 시가 금지되면서 사회적인 활동에도 제약을 받았다. 지금 시인들은 시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 에세이도 쓰고, 방송에도 나간다. 그러나 그 옛날 금지된 시의 시인들은 이런 사소한 고통이 아니라 체제의 억눌림을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생활전선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일거수일투족이 사찰되는 시인들에게 밥벌이를 줄 곳은 많지 않았다. 물론 시인들의 힘겨운 투쟁은 개인은 물론 우리 문학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시는 아름다움의 수단이지만 때론 확실한 저항의 수단이었다. 함축적인 언어가 가진 일종의 구호성 때문에 그것이 주는 울림을 실로 컸다. 시는 사회를 개혁하고 혁명하는 크나큰 도구인 셈이다. 물론 시는 이같은 정치적 영향력보다는 시 자체가 갖는 문학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 문학성이 인류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다시 그것이 변화와 변혁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시를 포함한 문학을 얼마나 너그럽게 대하느냐가 결국은 한 사회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이해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적 상상력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닫힌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닫힌 사회에서는 문학적 발랄함을 향유할 수 없고, 그런 사회에서는 정치적 자유 또한 없다. 문학은 문학 자체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척도인 것이다.

장동석 <기획회의>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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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금서를 꺼내 읽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먹지 말라고 하는 건, 두 말하면 입만 아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금지된 것은 늘 그 너머의 일이 궁금한 법이다. 오죽하면 양귀자의 소설 제목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었을까. 내게는 책이 그랬다. 읽지 말라고 한 책이 한사코 읽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선데이 서울>의 인기를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지금처럼 많은 잡지들이 쏟아지던 때가 아니어서 그랬지만 <선데이 서울>은 젊은, 아니 모든 남성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잡지였다. 지금이야 공중파에서도 걸그룹 멤버들의 치마를 들춰내는 세상이지만 1980년대는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온갖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선데이 서울>의 인기를 상종가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핫한 사진이라고 해봐야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한 탤런트의 전신 브로마이드가 전부였지만, 당시로서는 그것도 파격적이었다. 졸저 <금서의 재탄생>의 한 대목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딱 한 번, 대학생 형의 심부름을 핑계로 <선데이 서울> 한 권을 사들고 집으로 내달린 적도 있다. 낮은 천장에 도배도 되지 않은, 그저 집안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다락방으로 달려가 한참을 읽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숨겨 놓은 곳은 많았다. 낡은 옷가지 사이도 좋았고, 한 귀퉁이에 쌓여 있는 책들 틈에 넣어 두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 잡지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은 평범해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파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브로마이드를 찍은 탤런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칼 마르크스 동상 (출처: doratagold (http://www.flickr.com/photos/elidorata)

 

 

 

<선데이 서울>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금서 읽기 역사는 오래 지속되었다. 이미 여러 매체에 썼지만 군대에서는 태백산맥자본을 읽었고, 몇 해 전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널리 홍보까지 한 국방부 덕에 미처 읽어보지 못했던 책들을 찾아 헌책방 순례도 했다. 읽었으면 써야 하는 법. 이젠 그간 읽은 금서를 써내는 것으로 금서와의 인연을 이어가고자 한다.

 

두 가지 관점에서 연재를 병행하고자 한다. 하나는 금서를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글이다. 정치와 종교, 성담론, 이 모든 현상을 아우르며 드러난 한국의 금서 현상을 분석한 글을 큰 축으로 삼고자 한다. 선지자들이라 칭해도 좋은 금서의 저자들이 박해와 수난을 당하며 남긴 위대한 유산들은 결국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와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각 권 금서가 가진 당대의 영향력과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풀어보고자 한다. 특히 문학 작품, 그중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다양한 형태로 금서가 되었던 영미소설을 중심으로 산업화와 인간 파멸로 이어지는 근현대성의 이면을 짚어보려고 한다.

 

특별한 것도 없는 글을 쓰려고 하면서 거창한 출사표 하나를 던진다. 모쪼록 쉼 없이 달려갈 수 있도록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한다.

 

 

장동석/<기획회의>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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