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교회(2)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 제 1회 임진강 민통선 생태탐방로 트레킹 후기 -

1.

날이 흐렸다. 꾸무럭한 하늘이 먹구름 새로 간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이른 아침 식구들과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일산까지 내처 달리는 동안 비가 많이 내리면 어떻게 할까 의론들을 했다. 자유로에 들어서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급기야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단톡방에 날씨 관계로 9km 코스를 6km로 줄였다는 임진강 트레킹 안내소 측에서 알려온 소식이 떴다. 그래도 뭐 그 정도 걸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다행히 임진각에 도착할 쯤엔 비가 멎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임진각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몇 년 전 가족들과 와 보았다. 망배단이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가 새겨진 노래비며, TV에서 많이 보았던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이 매달린 울타리며 6.25 이후 국군 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임시로 가설됐던 자유의 다리며, 탄환에 벌집이 된 채 멈춰진 녹슨 기차며 경의선 철로 분단선의 자취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몰려들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며 강의 이쪽저쪽에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며 강을 따라 펼쳐진 젖은 산과 논 다락과 마을들의 풍경은 아스라한 게 뭔가 아득한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분단이고 민간인 통제고 너무나 오래 된 나머지 자연의 일부분처럼 이제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돼버린 아득함과 아스라함이다. 철조망을 뺀다면 손에 닿는 거리에 펼쳐진 이 풍경에 이상스러운 점은 없다. 이 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가을 풍경일 뿐이다. 이제 경의선이 복원되고 기차가 운행된다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 남과 북 모든 곳의 역사는?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는 시조도 있지만 의구한 산천이란 눈앞의 이 산천은 아닐 것이다.

 

현재 경의선의 민통선 이남 최북단은 임진강 역이고 민통선 너머에 도라산 역이 있다. 남북한 관계자들의 통행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도라산을 지나면 비무장지대 너머 장단 역, 판문 역, 봉동 역, 손하 역 다음이 개성 역이니 하나, 둘, 셋, 넷 겨우 다섯 정거장이다. 거기서 26개의 역을 지나면 평양이다. 우리는 이 철도를 경의선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평양과 부산을 잇는 철도라 평부선이라 한다. 이름을 뭐라 붙이든 그것이 뭔 상관이겠는가 마는, 이 작은 나라에서 분단이 이렇게 고착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의아스럽다. 작아서 가능한 것인가? 작은 것들의 고집스러움? 모든 이러한 의아스러움들아 빨리빨리 사람들의 뇌리를 흔들어다오.

 

2.

일행은 속속 도착했다. 자유인교회와 지혜교회에서 모인 사람은 35명. 이들이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뭘 시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로선 막막하기도 하거니와 사실 무얼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마 무엇을 안 하자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겠나. 무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안 하자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 무엇을 함이 있다! 있으려나? 도무지 쑥스러워 말장난 같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함과 그렇다고 무엇을 아니 하고자함도 아니라함 사이, 두 부정 새에서 모종의 긍정이 출현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한답시고 길을 나선 것이 무슨 캠페인도 아니고 거창한 프로그램이랄 수도 없다. 그냥 걷는 것뿐이다. 탈(脫)예배당이라든가 탈(脫)교의라든가, 호연지기(浩然之氣)라든가 길 위의 사상, 무위(無爲)의 위(爲)라든가 하는 말들을 불가피하게 갖다 대 봤지만, 그건 그저 끌어다 붙인 것이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길 위의 교회를 위해 그럴듯한 한마디를 내놓음으로써 걸음을 시작해야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또 자라목 들어가듯 난감해지리라. 그러나 사람들을 모아 길 위에 나섰으니 화두(話頭) 비슷한 걸 던져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는 조바심으로 생각해둔 게 있긴 있었다.

 

 

 대충 ‘트레킹이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준비해 두었다. 이 뜬금없는 질문은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누군가의 칼럼에서 표절해온 것이다. 사실 무슨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니라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함에 있어, 메뚜기 한 무리 같은 우리들 모두의 조바심을 덜어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다른 말로 바꿔도 그 말이 그 말인 ‘트레킹이란 무엇인가?’는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걷는다는 건 무엇인가?’ ‘길이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 ‘고독이란 무엇인가?’ 대답이 있을 리 있나. 그러나 이러한 대답 없음으로 모든 의문을 차단하고 그야말로 닥치고 걷는 행위 속에서, 과연 이러한 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거기서 뭔가 스스로 떠오르고 생각하게 되는 의미가 저절로 생겨나리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의 대회당이 아닌 광야의 한적한 길에서. 모든 앎(소유)의 서사가 끊어진 자리에서 태초와 이어지는 시원(始原)의 첩경, 그 가벼움과 신비와 신선한 상쾌함! ‘아! 이런 것도 있네.’라는 식으로. ‘아! 이런 것도 예배가 되네.’ ‘아! 이런 것도 기도가 되네.’ ‘아! 자기 발견이 곧 자기부인이네.’ ‘아! 이런 것을 통해 발견하는 재미가 있네.’ 온갖 ‘맛있군(MSG)’에 중독돼 혀의 감각을 상실해버린 사람이 어쩌다 먹게 돼버린 박한 음식에서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으로 본래 있음으로 충분한 고유의 맛을 느끼고 상실된 미각을 회복하듯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또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는가. 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아부할 대상도 없이 말장난을 해대는 아첨꾼이 되긴 싫다. 하긴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하면 세상 어떤 사람들은 그딴 걸 이제 따라하느냐 웃을지 모르니 더욱 하기 싫어진다. 뭘 해도 새로운 걸 해보려면 이런 주눅이 든다. 무책임한 주변머리 없음이거나 실력 없는 아마추어만 같아 곤혹스럽다. 트레킹이란 고독한 것. 마음속에 있는 것. 나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임진강 올레길 안내소의 안내원이다.

 

3.

안내원들은 대개 초로(初老)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설사’라 소개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이런 해설사들을 볼 수 있다. 능숙하게 일정을 설명하더니 일행을 3열종대로 세우고 인원점검을 한다. 끼어들 여지가 없다.(그래 그냥 가자. 허전하긴 하지만 의미 진지 설명은 여기서 체념이다.) 우리 35명에 개별로 온 부부가 끼어 있었다. 트레킹을 자주 해온 듯 준비된 옷차림이었다.(한 팀이라지만 탐방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사탕을 주었을 때 손을 짧게 내밀어 받으며 고맙다 했을 뿐,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충실했다.) 일행은 가슴에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라 새겨진 노란 천을 두르고 안내원을 따라 민통선 통문으로 갔다. 철조망이 쳐진 울타리 문이 열리고 양쪽에서 소총을 멘 초병 둘이 나타났다. 철모 밑 희멀건 얼굴에 볼 살이 통통하다. 삼엄한 곳을 지키는 군인들인데 웃음이 난다.

 

강변을 따라 타작 철에 내린 비로 하루 드팀 열흘 드팀이 돼 놀고 있는 황금빛 논 다락이 펼쳐져 있다. 강둑을 따라 철조망이 쳐있고 비포장 탐방로가 개설되었다. 순례자들의 발길에 패이고 빗물이 고여 질척인다. 해설사는 앞과 뒤 두 사람이 붙었으나 서로 조율이 잘되지 않았다. 앞선 초로의 남자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다는 데 설명 해주고 싶은 열의가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비가 뿌려 대면서 우산을 펼쳐든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하는 통에 대열은 길게 흩어지고 해설은 무용이 돼버렸다. 모든 게 이렇다. TV 다큐로 보았던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이미 해설은 충분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둘둘 삼삼오오 혹은 혼자. 일행은 추적거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사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통선 내에는 촬영이 금지인데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군인 한사람이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삭제하는 걸 확인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 됐다.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굽니까? 모두의 집중된 궁금증. 접니다, 벌써 삭제했어요. 그래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길 위에서 가끔 상영되는 소동은 오늘도 싱겁게 끝났다. ‘여군(女軍)이 다 지켜봤는가보다’며 함께 웃었다. CCTV는 여군들이 지켜보는 데 가끔 나이든 남자들이 아무생각 없이 소변을 참지 못해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는 민망한 희극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해설사는 여군이 다 보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 그것도 풀 칼라(full color)로! 다시 걷기 시작. 비속의 길은 질척해 일행의 행로는 묵묵해졌다. 마치 이런 순례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다행히 6시간짜리 길을 3시간으로 단축한 트레킹은 적당한 중간에 끝났다.

 

4.

인적 없는 시골 마을 정차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안내원 아저씨는 여기서 문산으로 퇴근한다고 했다. 또 다른 신학대학원 상담 과정을 다닌다는 안내원 여자는 금촌이 집이라 했다. 이성복의 「금촌 가는 길」이라는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건 금촌에 대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니 몰라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따라온 차를 타고 돌아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는지 누군가 짧게나마 설교를 해주셔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설교를 중시하는 풍토로 신앙(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그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여기선 그것 말고는 별 볼일 없다는 말도 된다. 그 말은 다른 데서는 설교(만)를 뺀 나머지들이 설교를 빼고도 내세울만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설교(만)를 중시하는 목회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 바로 그걸 하지 않아보려는 것이다. 설교 말고도 내세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마저도 내세울 게 아니다 싶어서다. 사는 데 필요한 건 설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설교가 사는 일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작금의 설교만 빼고 나머지가 중요해진 교회의 현실이 증거가 아닌가. 그러나 그나마 그것도 시들해져버린 지금 새로운 길은 고전적 설교의 부흥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또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하나. 차라리 이성복의 「금촌가는 길」의 한 구절을 읽어줄까.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깨어나야 푸른 잎사귀가 될 수 있을까

기어이 흔들리려고 나는 全身이 아팠다

어디서 깨어나야 그대 내 잎사귀를 흔들어 줄까

그대 손잡으면 그대 얼굴이 지워지고

가슴으로 걷는 길

얼음장 밑 환한 집들

 

지혜교회 정 전도사가나 대신 나섰다. 독일에서 13년 공부하고 돌아와 가까이 친하고 싶은 목사를 찾다가 발견했다. 비슷한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발견은 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대충 그런 길을 가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 칭찬의 말은 민망했지만(한 팀 아닌 부부가 옆에 있어 신경이 쓰였다. 이 사람들 웃기네! 할까봐.), 고마운 부분이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과 그런 길을 가는 것의 차이는 뭘까? 고독의 차이? 우리가 걷겠다고 나선 길이란 우리가 지나온 저 진흙탕 길이 아니라 본래 이런 길일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고백일지라도. 버스가 도착해 일행은 작은 버스에 꽉 기름을 짜고 들어차 마을길들을 곡예하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임진각으로 돌아갔다. 승차장에 내리자 곧바로 우박과 함께 격렬한 비가 쏟아진다. 우리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지혜교회 교우들은 파주시내로 자유인교회 교우들은 근처 두부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포로 이사 와서 새로 피자집을 연 집사님 댁에 들러 교우들과 이야기 꽂을 피웠다.

 

 

5.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책이 있다. 아는 목사님이 쓰신 전도용 책이다.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곤혹스러운 사람들의 시대에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신에 대한 신앙을 붙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전신이 아플 때가 있다. 무력감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든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난 이미 다 수락했는데 계속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러면 차라리 돈이라도 주시든지. 아니면 사람이라도. 아니, 아니 용기(勇氣)라도.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열심히 함께 걸었던 지혜교회 병관 형님 곁에서 적당히 모른 척 걸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으로 걷는 길, 고독하지만 함께 있어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리하여 대충 그런 길이 아니라 그런 길을 가는.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내달 트레킹 땐 둘러앉아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시켜보고 싶다. 살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말들에 대하여. 우리들 작고 여린 가슴들 속에 하나님으로 깃드신 하나님에 대하여.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어린 생명 다복(多福)을 위하여.

 

*다복이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임신 중이라 약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씩씩하게 건강을 회복해 아기를 잘 보호하고 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1. 교회, 길을 걷다 http://fzari.tistory.com/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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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교회(1)

교회, 길을 걷다

-제1회 임진강 민통선 트레킹에 부쳐-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당을 벗어나 길 위에 나서 보자고 시작한 첫 번째 시도로 임진강 민통선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두 교회 약 30명이 함께 합니다. 예배도 설교도 기도도 찬양도 없이 그저 함께 걸어보려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예배당과 조직과 교의와 ‘이런 게 교회다운 교회’라는 지난 백년간의 철갑을 두른 틀에서 벗어나 보려고요. 아니죠. 우리가 어머니께로 나올 때 우리가 무슨 기독교도라거나 무슨 교의를 신봉함으로써 인생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 후에 결국 이런 사람들이 됐을망정 사람의 본질인 영혼은 역시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도 가둘 수도 갇힐 수도 없는 것이죠. 인생의 의미란 각자의 길 위에 서서 각자의 길에 적응하는 것일 뿐. 있다면 이 길이라는 공통의 길의 법이 있을 뿐 아닌가 합니다.

 

돌이켜 보면 길에 적응하는 동안 길이 길을 열고 길을 내고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떠나고 떠나고 떠나왔습니다. 어떤 인류의 스승께서 가르쳐준 말씀처럼 ‘모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믿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깨달은 것으로부터의 자유. 도달하고 이룩한 것으로부터의 자유. 이제 교회라 불리는 모임도 길 위에 나서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안다는 아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이르렀습니다. 교의가 아니고 교파가 아니고 교단이 아니고 우리가 놓인 이 공동의 생존 조건 속에서 길이 길을 가르쳐주기를, 길이 길을 열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거창할 것도 거창하게 주장할 것도 없이 두벌 옷과 지팡이를 지니지 않은 맨 몸과 빈 맘으로 나서보려 합니다. 길을 나선 우리의 몸이 맘이 각자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요? 아무 생각이 없이 걸음에 집중하게 되는 거기서부터 진정 필요한 숨과 힘이 우리의 결핍과 해답을 가르쳐 줄 겁니다.

 

 

임진강은 한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은 자연이라 그 무슨 법으로도 이념으로도 철조망으로도 댐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를 연결해주는 임진강을 그동안 우리는 한반도를 가르는 강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렇게 믿어왔고 믿다보니 실제로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꿈으로만 말로만 글로만 상상력으로만 꿈꾸고 말하고 쓰고 그려보던 일들이 사실은 본래 현실 그 자체라는 이 쉽고 간단한 진리를 다른 무엇이 아닌 새로운 길 위의 나선 맨몸으로 느끼고 인정해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모든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가 우리의 서로를 갈라놓은 거짓된 임진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겁니다. 비무장 지대에서 총기가 사라지고 자유왕래가 시작된다니 이게 본래 그런 것이 아니고 뭣이었겠습니까. 본래 그런 것을 그런 것으로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눈물과 참혹하고 악독한 거짓들이 벌어졌습니까? 모든 것이 그 거짓의 교의에 종사하며 모든 것이 우리를 옥죄었습니다. 정치나 이념뿐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참 종교였습니다. 모든 본래 그러한 것이 본래 그러한 것으로 인정되기까지 우리를 가로막고 서있던 정신상의 우상.

 

 

 

지난 주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년 11월 6일~2018년 10월 22일) 목사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미스터 선샤인>에도 나온 이 이름은 ‘고귀하고 위대한 이’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책은 단지 몇 권 읽어봤습니다 마는, 기억나는 건 세 가지쯤입니다. 첫째는 자기가 20대에 처음 목사로 부임해 목회를 시작할 때, 그 교회에 가서 느낀 첫인상이 자기 목회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성도들이 한결 같이 개성이 없이 똑 같은 지. 그것이 마치 개성뿐 아니라 지성도 명철도 현명함도 눌려서 상실된 것과 같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자기의 목회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것’, 그것이 되어야할 것이라고. 그렇게 10년을 했더니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두 번째는 ‘이제 바쁘다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바쁘다’는 게 단지 여유를 가질 수 없이 할 일이 많은 걸 가리키는 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학의 문제가 된 바쁨은 오직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인식상의 고정된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바쁨의 신학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개인의 사업을 멈추고 교회로 가서 목사를 도와 하나님의 사업(교회 일) 열심히 하라는 결론으로 갈 수가 없죠. 그 바쁨이 사회적 문제가 아닌 신학의 문제라 했을 때는 반드시 이대로는 아닌 근원적 사색과 행동을 요구하는 문제의식으로서, 우리가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라 제시하는 모든 교의와 의식과 봉사와 실천의 종교 전체를 신학적으로 재검토하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 신학적 의미로 지금 교회들은 너무 바쁩니다. 그 바쁨은 게으름이기도 한 것이죠. 너무나 바빠서 정신을 못 차리고 너무나 게을러서 오로지 답습의 보수 말고는 알지를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바쁜 거기에 종속돼 있는 것 말입니다.

 

셋째는 개인적인 것인데,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 하나로 ‘사모의 얼굴은 목사의 이력서’라는 말입니다. 사모뿐이겠습니까? 모든 부인들의 얼굴은 남편의 이력서지요. 또 모든 남편의 얼굴은 부인의 이력서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결국 하나입니다. 모든 인위에 지치고 피곤하고 메마르고 강퍅해지고 부패하고 오염되고 악해지고 마침내 공허해진 모든 거짓된 말들과 의식과 허세와 사업. 그 모든 이미 아는 척으로부터 모든 이들의 믿고 안다고 믿어온 거짓 종교를 해방시킬 때가 왔습니다. 아니, 2000년 전 유대 예루살렘의 젊은 스승 예수의 말씀처럼 거짓 종교에서 정직을 다해 스스로 해방될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예배당에 갇힌 신은 신이 아닙니다. 더 이상은 교의에 갇힌 신도 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나누고 배제하고 배타하고 구별하고 낮게 보고 정복하고 교화시키려드는 더 강한 신들의 바쁘디 바쁜 종교사업도 더 이상 권장할 것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아서는 안 됩니다.

 

나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가장된 좋은 것입니다. 이력서는 꾸밀 수 있지만 얼굴을 바꾸진 못하죠. 얼굴은 고칠 수 있지만 영혼으로부터 발산되는 지성과 지혜와 명철의 빛은 조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가장 거룩함과 고결함과 장엄함을 가장하고 꾸며내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영혼의 양심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 그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지금 교회라 불리는 추상적 명칭과 그 추상을 힘입어 위세를 부리는 조직에는 신이 안 계시고 역사적으로도 늘 안 계셨고 본래 신께는 그런 사원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음을.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역사적 교회라는 서사로부터 벗어나야지만 진정한 신께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아니 아니라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될 것임을.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로마서 11:33~36)

 

인정할 것을 인정함으로써만 우리 모두를 지금의 거짓된 현실로부터 우리들 자신이 해방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교회가 기로에 서있습니다. 부득불 불가피하게 하던 사업들을 끝내야할 때가 온 겁니다. 특히 교회는. 모든 사업(死業)을 멈추고 처음 출발했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각자의 역사를 핑계로 하나님의 뜻을 인위적으로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목회는 99.9999%가 부동산이라고. 그러니 우리의 출애굽은 건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겁니다. 건물이 만든 신과 신학과 사업들. 정말 우리가 하나님과 돈을 함께 숭배할 수 없는 거라면, 그것이 맞는다면, 우리는 서둘러야 할 겁니다. 문제라 하면서도 그대로 눌러 앉아 뭉개고 있는 신앙은 이제 내밀만한 이력서가 못될 마이너스 스펙이 될 겁니다.

 

 

아직도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오만하다고, 편협하다고, 또 사랑이 없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늘 그랬으니까요. 그런 거라면 우리는 오히려 모든 저마다 바쁜 사람들의 대충 그러한 진리의 적이 되는 오해도 불가불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가진 것으로부터의 자유, 의지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아는 것, 가진 것, 의지하는 것에 의거해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죠. ‘가난한 너희들은 행복하다. 천국은 너희 같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니까.(누가복음 6:20)’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도 교회도 길 위에 서 있고 길을 걷도록 부르신 이것이 또한 신의 부르심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를 보다 분명한 실제의 길로 부르시는 부르심이 아닐까요? 그러나 교황님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라’입니다. 우리는 대통령도 아니고 군인도 공무원도 검찰도 법관도 목사도 의사도 사업가도 학생도 어린이도 노인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참되게 아무것도 아님을 알 때 우리는 참되게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걸을 뿐. 길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울 뿐. 그 길에서 평등하게 만나는 예배를 위하여. 신 없는 교회를 벗어나 사원 없는 신께 경배 드리러 예루살렘의 고루한 서사가 끊어진 광야로 나가려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야훼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사무엘상 2:10)’

 

하나님의 자녀의 출애굽(Exodus)을 가로막는 파라오는 그의 화려하고 잡다한 신전과 함께 공허하게 허물어질 겁니다. 세습까지 하며 자기들의 제단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저들의 바쁨에 비하면 얼마나 통쾌한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오직 맨 몸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하실 겁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우리의 전도라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한 것 없이 보수를 받은 사람처럼 행복할 겁니다. 다복(多福)과 조이(Joy)와 이수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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