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4)

 

유대인의 기도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큰 보자기 모양의 숄을 머리에서 어깨까지 두른다. 잘 살펴보면 보자기 아래 끝 부분에 술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술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찌찌트’라 하며, 찌찌트가 달린 보자기 모양의 숄을 가리켜 ‘탈릿’(기도보)이라고 한다. 정통파 유대인의 경우 결혼한 남자만 사용할 수 있으나, 보수파나 개혁파에서는 성인식을 마친 모든 유대인 성인에게 사용을 허락한다. 여자의 경우 기도할 때 탈릿을 반드시 사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명문화시켜 금하지도 않는다. 정통파 유대인 여자들은 법으로 금하지는 않으나 탈릿 사용을 꺼리는 편이고, 그 외의 보수파나 개혁파에서는 여자용 탈릿을 따로 개발하여 사용하며 남자용에 비하여 그 모양이나 색상이 다양하다.

 

탈릿(기도보)의 구조와 용도

 

보통 가로 1.5미터, 세로 0.6미터 정도의 탈릿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가로 1.8미터, 세로 0.9미터 혹은 가로 1.8미터, 세로 1.2미터까지의 탈릿도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도보(탈릿)의 크기가 일정한 규격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규정이 있다면 스카프가 아니라 숄을 두른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의 크기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쉽게 감쌀 수 있는 정도가 기도보(탈릿)의 크기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이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반드시 탈릿을 두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기의 몸을 탈릿으로 감쌈으로써 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릿은 기도자를 외부와 차단하여 주는 역할을 한다. 탈릿을 사용함으로써 기도자는 쉽게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다. 천의 재료는 무명이나 모로 만든 것이 사용되며 비단도 허용된다. 그러나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섞어 짠 천은 금기이며 기도보의 재료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비단은 무명이나 모 어느 쪽과 섞어도 무방하다.

 

찌찌트(술)의 구조

 

유대인의 탈릿을 잘 살펴보면 아래 부분 네 귀퉁이에 술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술을 가리켜 찌찌트라 한다. 유대인들은 민수기 15장 37-41절에 근거하여 반드시 탈릿(기도보)에 찌찌트(술)를 단다. 술이 달리지 아니한 탈릿(기도보)은 단지 보자기일 뿐 탈릿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탈릿이 탈릿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찌찌트(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많은 유대인들은 성인식 일주일 전에 찌찌트가 달리지 않은 탈릿을 아들에게 선물하여 미리 그 사용볍을 가르친 후, 성인식 날에 찌찌트를 단 탈릿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한다. 탈릿을 머리에서 어깨로 둘러 온몸을 감싼 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된 13세의 유대인, 그는 비로소 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독립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그날부터 평생 행사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단순히 늘어뜨린 장식실로 보이는 찌찌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찌찌트를 만드는 과정과 그 구조를 이해한다면 왜 유대인들이 찌찌트를 그렇게 중히 여기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본인이 직접 자신의 찌찌트를 만들어 쓸 것을 권장한다. 찌찌트는 탈릿 양쪽 끝단 네 귀퉁이에 부착한다. 탈릿의 아래 부분 양 쪽 끝에서부터 가로 세로 5cm 안쪽에서 수직선을 그어 만나는 점에 구멍을 뚫고 술을 단다. 오른쪽 양쪽 끝에 두 군데, 왼쪽 양쪽 끝에 두 군데, 모두 네 군데에 구멍을 뚫고 찌찌트를 단다.

 

술을 만드는 데 쓰는 재료(실)는 보통 유대인 책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한 조에 16가닥의 실이 들어 있는데, 네 개는 길고 열두 개는 짧다. 먼저 할 일은, 긴 실 하나에 짧은 실 두 개씩하여 네 개의 조로 나누는 일이다. 긴 줄을 가리켜 ‘샴마쉬’라하며 아래의 설명과 같이 짧은 줄을 감는데 쓰인다. 찌찌트(술)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그림참조)

 

 

 

먼저,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겹매듭을 먼저 만든 후 긴 줄(샴마쉬)로 짧은 줄을 일곱 번 감아주고, 다시 겹매듭을 만든다. 동일한 방법으로 기 줄로 여덟 번 감아 주고 겹매듭을 만들고 다시 열한 번 감아 준 후 겹매듭을 만들고 열세 번 감아 준 후 마지막 겹매듭을 만든다. 다시 마지막 겹매듭을 만든 후 매듭 밑으로 여덟 가닥의 줄을 늘어뜨린다. 끝으로, 여덟 가닥의 줄을 한 줄로 정렬한 후 조금이라도 긴 줄은 잘라 내어 같은 길이로 마무리한다.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찌찌트의 술을 정렬하여 같은 길이로 맞출 때에 가위나 칼을 사용하여잘라 내는 것은 금물이며, 반드시 이빨로 물어뜯어 길이를 맞추어야 한다. 탈릿을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면 흔히 찌찌트의 어느 한 쪽이 먼저 닳아 술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에는 이빨로 긴 쪽을 수시로 물어뜯어 기이를 일정하게 맞추어야 한다. 가위나 칼의 사용은 허락되지 않는다.

 

찌찌트의 의미

 

유대인들은 찌찌트를 만들 때 위에 제시된 모든 숫자를 어밀하게 지킨다. 실을 한 번이라도 더 가지도 덜 감지도 않는다. 모든 숫자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숫자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찌찌트를 만들 때 처음에 일곱 번과 여덟 번을 감아 준다고 하였는데, 일곱 번과 여덟 번의 합은 열다섯이다. 유대인의 숫자 계산법에 의하면 15라는 아라비아 숫자는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 중 요드 헤를 대표한다. 다음 열한 번 감아 준다고 하였는데, 11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 중의 와우 헤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일곱 번 감고, 여덟 번 감고, 열한 번 감는 이들 숫자의 합은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에 상응하는 숫자의 합과 같다. 이런 연유에서 찌찌트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찌찌트를 보는 유대인은 하나님을 생각한다. 다음에 열세 번을 감는다고 하였는데, 13이란 숫자는 ‘하나’를 뜻하는 히브리어 에하드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들 전체의 숫자를 히브리어 자음체계와 연결시키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문장 “아도나이 에하드”를 이룬다. 그러므로 찌찌트를 보는 사람마다 신명기 6장 4절의 쉐마를 연상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계명의 총합을 613개라고 믿어 왔다. 놀랍게도 찌찌트는 유대인 계명의 총합 613을 상징한다. 어떻게 그러한가? 찌찌트란 히브리어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풀 때 600이란 아라비아 숫자에 상응한다.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찌찌트는 여덟 개의 줄과 다섯 개의 겹매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숫자를 모두 더하면 613이 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찌찌트를 보거나 착용할 때 그들이 지켜야 할 613개의 계명을 생각한다.

 

찌찌트는 탈릿에만 다는 것이 아니다. 탈릿에는 물론이요 평상복에도 달도록 되어 있다. 예루살렘이나 뉴욕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종교적인 유대인들에게서 쉽게 찌찌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양복 할단을 살펴보라. 어김없이 늘어뜨린 술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모두가 찌찌트이다.

 

찌찌트의 목적

 

민수기 15장 37-4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ㄹ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찌찌트를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위의 말씀에 근거하여 탈릿이나 상의 하단에 세 가지 목적으로 찌찌트를 부착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기 위함이요 둘째로,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기 위함이요 셋째로, 거룩하게 살기 위함이다.

 

찌찌트는 유대인의 삶에 깊이 밀착되어 있다. 누구든지 윗도리를 입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윗도리를 입으면 윗도리에 달린 찌찌트도 함께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가는 곳에 찌찌트도 함께 간다. 그가 어는 곳에 있든 간에 자기옷단에 달린 찌찌트를 보게 되며, 찌찌트를 볼 때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이 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기억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게 되며, 결국은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살기 원하는 유대인의 소망을 찌찌트에 관한 그들의 규정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낮에는 반드시 찌찌트가 달린 옷을 입어야 하며, 기도할 대는 반드시 찌찌트가 달린 탈릿(기도보)을 두르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릿을 입는 법

 

기도하기 전에 유대인은 먼저 탈릿을 머리로부터 어깨에 두른다. 진실하게 온전히 하나님께만 전심으로 기도하고자 하는 유대인의 소원은, 탈릿을 입으며 기도를 준비하는 유대인의 모습에 잘 나타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탈릿을 두르기 전에 먼저 시편 104편 1-2절을 음송하며 그 의미를 묵상한다. 묵상이 끝난 후 탈릿을 손에 들고 다음과 같이 음송한다.

 

“엄위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복되도다. 하나님의 입재여! (요드 헤)의 하나님과 (바브 헤)의 하나님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모든 이스라엘의 이365개의 나의 혈관이 613계명의 상징인 찌찌트의 빛으로 감싸입니다.”

 

이와 같이 음송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기도를 준비한다. 그의 모든 뼈마디가, 모든 혈관이 하나님께 집중된다. 탈릿을 두르기 전 탈릿을 앞으로 활짝 펼치며 다음과 같이 음송한다.

 

“복되신 이여, 주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우주의 왕이시여, 당신의 계명으로 우리를 성별하신 이여,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우리를 (탈릿의) 찌찌트로 감싸라 하시나이다.”

 

이때 기도자는 자신의 온몸이 계명으로 보호되는 순간을 기대하게 된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때 탈릿의 꼭대기 부분에 입을 맞추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다음, 탈릿을 뒤로 돌려 머리부터 덮어씌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탈릿을 두르는 자가 완전히 탈릿으로 감싸여져서, 외부로부터 차단되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도자는 다음과 같이 음송한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친절이 얼마나 귀하신지요. 사람이 당신의 날개 아래서만 피난처를 구할 수 있나이다. 그가 당신의 전에서 기름진 것으로 충족되며 당신의 기쁨으로 음료를 삼나이다. 당신과 함께함이 생명의 샘이요 당신의 빛 안에서만 우리가 볼 수 있나이다. 당신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 친절을 베푸시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의를 보여 주옵소서.”

 

이와 같이 음송한 후 비로소 탈릿을 어께에 두르고 온몸을 감싼다.

 

 

 

 

예배 시 착용하는 탈릿

 

유대인들은 아침 예배(샤하릿)나 추가 예배(무싸프)에 탈릿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통 오후 예배(민하)에는 인도자만 타릿을 입는다. 어떤 이들은 샤밧(안식일)의 저녁 예배나, 그 밖의 절기 예배 때도 탈릿을 사용한다. 유대인들은 예배드릴 때 항상 쉐마를 낭송한다. 쉐마 낭송 전에는 반드시 기도 순서가 있다. 이때 모든 기도자는 찌찌트의 술을 하나로 모아 한 손가락에 감싸 쥔다. 이는 지구의 네 모퉁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상징하며, 기도자는 다음과 같이 낭송한다.

 

“축복과 평화를 신속하고 빠르게 지구의 네 모퉁이로부터 우리에게 허락하옵소서.”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대로 찌찌트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쉐마의 선포를 상지한다. 이 찌찌트의 술을 하나로 모아 쥐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하나 되심을 극적으로 강조한다. 유대인에겐 쉐마를 낭송하는 동안 찌찌트라는 말이 언급될 때마다 찌찌트에 입을 맞추는 전통이 있다. 어떤 유대인들은 찌찌트란 단어가 음송될 대마다 네 번씩을 입을 맞추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네 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쉐마의 마지막 문구를 낭송할 때 모든 회중을 자기의 찌찌트에 네 번 입을 맞춘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 계명을 지키며 살겠다는 믿음의 표시이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가면 탈릿을 머리부터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몸을 앞뒤로 흔드는 이유는 온몸으로 하나님께 말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어떤 이는 소리를 지르며, 어떤 이는 속삭인다. 공통점이 있다면 누가 와서 쇠를 질러도 모를 정도로 기도에 몰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이유일까? 탈릿을 머리에 쓸 때 기도자는 외부의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다. 작은 보자기에 불과한 탈릿, 그러나 탈릿을 머리에 두를 때 탈릿 안에서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탈릿 안의 세계, 이는 하나님을 만나는 세계이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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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3)

 

유대인의 장막절(2)

 

구약에 나타난 장막절

 

모세는 그의 고별설교에서 매 7년 마지막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율법을 선포하라고 명하였다(신명기 31:1-13).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된 후 성전에서 제일 처음 지킨 절기는 다름 아닌 장막절이었다. 이때 이스라엘 모든 족속의 족장들이 소집되었고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벌어졌다. 다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장막절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느헤미야 시대에 있었던 축제를 들 수 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 끝에 고국 땅에 돌아온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유대인의 재건을 위해 전 국민적인 장막절 운동을 일으켰다. 느헤미야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느헤미야 8;16-17).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집들의 포로생활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회상하며 대대적으로 장막절을 축하했다. 이는 여호수아 이후 최대의 장막절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해방 직후 맞은 장막절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장막절 행사 중 하나였다. 에스라는 이 기간 7일 동안 매일 율법을 낭독했고 8일째에는 성회를 베풀었다(느헤미야 8:15-18).

 

 

 

   씸핫 토라에 토라를 꺼내 들고 가는 유대인의 모습

 

제단에 물 붓기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는 매일 희생제물을 다 바친 후면 으레 포도주를 제단에 부어 헌주(Wine Libation)했다. 그러나 장막절에는 포도주대신 물을 제단에 부어 바쳤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비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은 장막절이 지나면 비를 기원했다. 곧 밀, 보리의 파종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는 헌수(Water Libation)라는 특별한 예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 예식은 욤 토브인 첫째날을 제외한 나머지 날에 매일 행해졌다. 이 행사는 심핫 벳 하쇼에바라고 알려져 있으며 문자적으로는 물 긷는 곳의 기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제사장은 금으로 만든 물 단지를 들고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었다. 돌아오는 길에 성전의 수문(Water Gate)을 통과하여 성전 안 뜰에 들어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를 맞았다.

 

이때 제사장들은 은나팔을 불었다. 다른 제사장들은 이사야 선지서의 말씀을 성가로 찬양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때 또 다른 제사장들은 긴 버드나무 가지들의 끝을 가지런히 하여 제단 쪽으로 향하게 올려놓았다. 제사장은 물이 가득 든 금으로 만든 물 항아리를 들고 앞으로 나가 제단 위에 부었다. 제사장들은 다시 은나팔을 세 번 불었다. 제사장들은 버드나무가지들 들고 제단 주위에 둥글게 서며, 레위인들은 성가대석에서 시편 118편으로 찬양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면 모든 회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높이 들어 빙빙 돌리며, 레위인들의 찬양에 가담하여 시편 113-118편으로 만든 할렐송(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을 함께 불렀다. 유대인들이 특별히 중요시하는 마지막 축도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편 118;25-26)

 

구원하소서의 히브리어 원문은 호사나이다. 이 용어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장막절의 마지막 날을 호사나 라바라고 부른다. ‘라바라는 말은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며, 유대인들은 장막절의 마지막 날을 큰 구원의 날로 지킨다. 유대인들은 이날이야말로, 지난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죄의 날이요 기쁨의 날이라고 믿는다.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며 유대인들은 나팔을 불고 찬양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춤을 추었다.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사죄의 기쁨과 구원의 감사를 표현하였다. 이대 유대인들은 거룩한 영(성령)에 사로잡히기를 원하여 황홀경에 빠진다. 미쉬나는 증거하기를, 누구든지 춤과 노래, 악대가 동반된 장막절에 행해지는 이 행사에 참여해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장막절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습을 알고 나면 왜 메시아의 다시 오심이 묵시 문학에서 장막절과 연관되어 예언되었는지 좀 더 쉽게 이해된다. 스가랴는 새 시대가 도래하면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을 축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에 참여하는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에 가담하게 되지만 장막절에 참석하지 않는 나라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지막 세계의 마지막 종말이 장막절의 배경에서 설명되었다,

 

신약에 나타난 장막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한복음 737-38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의 장막절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한다. 이 날은 유대인의 장막절 마지막 날인 호사나 라바’(큰 구원의 날)에 해당한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모든 유대인들은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면서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고, 성령에 사로잡히기를 간구하고 찬송하며 춤을 춘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자신에게 오라고 하시며, 그리하면 성령충만 하리라고 외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부터 나귀를 타시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백성들의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구야의 장막절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과 부합된다.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 엘리야, 또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가복음 17;4)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 믿게 된 베드로에게 얼른 생각난 것은 초막이었다. 모든 유대인은 구약의 전통에 따라 메시아는 장막절에 오신다고 믿었다.

 

호사나 라바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일곱 번째 날을 가리켜 호사나 라바’(큰 구원의 날)라고 부른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아르바 미님을 손에 들고 호사나 라바가 되는 날, 회당을 일곱 바퀴 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이 성전의 제단을 돌며 백성들과 함께 춤추던 전통을 따르기 위함이다. 일곱 바퀴를 다 돈 후 버들가지의 줄기를 으깨어 부순다. 줄기가 으깨어지는 것을 보며 그들의 마지막 죄까지도 다 으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또 비가 내리기를 간구하며, 내년에도 버들에 물이 오르기를, 그들의 삶과 영혼에도 물이 오르기를 기원한다.

 

쉐미니 아쩨렛

 

장막절이 시작된 지 여덟째 날을 쉐미니 아쩨렛으로 지킨다. 이는 여덟째 날이란 뜻으로, 이날은 비를 위하여 기도한다. 이로써 새로운 해가 시작되며 유대인들은 파종을 준비한다. 10,11월의 이른 비는 파종에, 3,4월의 늦은 비는 결실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씸핫 토라

 

장막절이 시작된 지 아홉째 날은 씸핫 토라, 유대인의 토라(유대인의 성경)를 기뻐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쉐미니 아쩨렛과 씸핫 토라를 여덟째 날에 같이 지키는 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아홉째 날을 따로 정하여 씸핫 토라의 명절로 지킨다. 이날로 1년 치 토라를 다 읽고, 다음 날부터는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된다. 이날 회중은 토라궤(성경 보관 상자)에서 토라를 꺼내 회당 안에서 원을 그리며 주위를 돈다. 어른들은 토라를 어깨에 메고, 어린이들은 사과와 깃발을 들고 춤을 추며 따라간다. 일곱 바퀴를 다 돌면 토라를 토라궤로 가지고 가서 신명기의 마지막 단락을 읽는다. 이로써 1년 치 토라를 완독하게 되는 것이다. 이날 유대인들은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은 취할 때까지 포도주를 마신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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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2)

 

유대인의 장막절(1)

 

 

우리 식구는 이스라엘 유학 시절의 대부분을 ‘길로’라는 동네에서 보냈다. ‘길로’는 예루살렘 남부, 해발 800미터의 구릉지대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어느 집이든 네 평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베란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던 3층 아파트에도 베란다가 있었는데, 가끔 고기를 구워 먹기에 좋았다. 모든 아파트는 아래층이 위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설계되어 있었다. 1층이 가장 넓고, 2층은 3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고, 3층은 또 4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건축되어 있었다. 베란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설계에 철저하게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이든 그곳에 누우면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어느 아파트 주민이든 영공 소유권(?)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밤이면 가끔 베란다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헤곤 했다. 이따금 베란다에 앉아 예루살렘 서쪽으로 지는 낙조를 구경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낭만일 것이다.

 

그러던 중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 가운데 하나인 장막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장막절이 제일 먼저 찾아온 곳은 다름 아닌 아파트의 베란다였다. 장막절이 가까워지자 집집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나뭇잎으로 지붕을 장식하고, 과일들을 걸어 놓는 등 장식을 하며 베란다마다 멋진 초막이 들어섰다. 그제서야 왜 아파트에 베란다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막절에 초막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유대법은 큰 나무 밑이나 다른 건축물 밑에 초막을 짓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초막에 누웠을 때 초막 지붕으로 꾸민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장막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집 뜰에 초막을 만들고, 일주일 동안 그 안에서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한다.

 

우리가 살던 ‘길로’의 아파트 단지에 있던 그 무수한 베란다들은 마당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초막을 지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었다. 일주일간의 초막 생활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겪었던 장막 생활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그럼 장막절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장막절의 유래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또는 The Feast of Booths)은 초막절이라고도 부르며, 히브리어로 ‘쑤콧’이라고 부른다. ‘쑤콧’은 우리말로 초막 또는 장막을 뜻한다. 장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의 하나로 고대에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었다. 따라서 장막절은 ‘여호와의 절기’ 또는 단순히 ‘절기’라고 불렀다. 절기 중의 절기였기 때문이다. 가을 축제인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지속된다. 태양력으로 티슈리월은 보통 9월이다. 첫날은 일이 금지된 완전한 휴일 ‘욤 토브’로 지키며, 나머지 나은 일이 허락된 반 공휴일로 지킨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첫째 날과 둘째 날을 ‘욤 토브’로 지킨다.

 

장막절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역사적 요소요, 둘째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을 지키는 농경적 요소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막절과 수장절은 같은 명절이다. 이는 유월절이 곧 무교절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농부들은 일 년에 세 번 추수하며, 이 추수기들이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을 이르고 있다. 겨울 보리를 거두는 무교절 혹은 유월절, 여름 보리와 밀을 거두는 맥추절 혹은 칠칠절, 올리브와 포도를 거두는 수장절 혹은 장막절이 그것이다. 그럼 왜 모든 절기들이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농경적인 요소와 역사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겨울 보리를 추수하고 묵은 누룩을 없애는 무교절이,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절기가 유월절이다. 또 여름 보리와 밀을 거두는 추수 감사와 성격이 강한 맥추절이 시내 산에서 계명을 받은 역사적 사실과 결합된 것이 칠칠절이며, 일 년 중 마지막 추수를 축하하는 수장절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결합된 것이 장막절이다.

 

예수님 당시의 장막절

 

예수님 당시의 가장 큰 명절은 유월절과 장막절이었다. 삼대 절기의 하나였던 칠칠절은 유월절과 장막절에 비하여 그 중요성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는 명절은 유월절이었지만 장막절에도 그에 못지않은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유월절에 비하여 장막절은 보다 더 자유롭고 들뜬 분위기였다.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평생에 한 번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소원이었다. 성지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유월절이나 장막절 중 하나를 택하여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를 다 지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근교인 ‘루드’라는 동네는 장막절이 되면 동네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아 동네 전체가 죽은 듯이 조용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기 때문이다. 유월절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가장 많았던 곳은 바벨론이었다. 유월절이나 장막절이 되면 바벨론에 사는 유대인들만도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바벨론의 ‘나하르테아’ 또는 ‘니시비스’에 모여 카라반을 구성한 뒤, 무리를 지어 예루살렘 순례의 길을 떠났다. 모든 유대인들은 성전에 바칠 성전세를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성지순례를 못하는 다른 유대인들의 성전세까지도 대신 가지고 길을 떠났다. 보통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이 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예루살렘이 가까워지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합류하게 되어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지중해 연안에 살던 유대인들 중에는 배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중 부자들은 마차를 타고 오고, 어떤 이들은 당나귀나 낙타를 타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걸어서 왔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걸어서 하는 성지순례를 가장 영예롭고 값진 것으로 여긴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과 동시대의 인물로 유명한 랍비 힐렐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걸어서 순례했다고 한다.

 

농부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월절이나 칠칠절보다 장막절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기에 더 편했다. 유월절이나 칠칠절에는 보리나 밀 수확으로 집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반면, 올리브와 포도 추수가 끝난 후인 장막절에는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있었으며, 보통 10월중에 새로 파종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한가했기 때문이다.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된다.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가 된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모든 과일을 추수하고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저장하는 시기다.

 

신명기는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명령한다. 온갖 곡물과 과일들을 추수한 후 유대인들은 추수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장막절을 축하했다. 그러나 이 기쁜 추수의 계절에 유대인들은 옛날 그들의 선조가 광야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잊지 않기 위하여 초막을 짓고 고통스러웠던 광야 생활을 재현한다.

 

장막절의 의무와 ‘아르바 미님’

 

장막절을 지키는 방법은 레위기 23장 39-43절을 따른다.

 

“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 월 십오 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 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의 여호와니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장막절이 되면 두 가지 사항을 지킨다. 첫째로 일주일 동안 초막에 거주한다. 레위기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일주일 동안 초막에서 먹고 잔다. 유대법에 의하면, 먹는 것만 의무이고 자는 것은 의무가 아니지만 대부분을 초막에서 자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혹 비가 오더라도 약한 비 정도는 참으며 식사를 강행하지만 장대비가 쏟아질 때에는 실내로 자리를 옮긴다. 디아스포라의 경우 지역에 따라 비가 많이 오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이시기에 비가 오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또 아주 추운 지역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식사만 장막에서 하고 잠은 실내에서 자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장막에서 자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둘째로, 장막절이 시작된 첫날에 “아름다운 과일 실과와 종려나무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하나님 앞에 칠 일 동안 줄거워하라”는 명령을 지킨다. 레위기는 여기서 네 가지 식물을 언급한다. 랍비들은 이 네 가지 식물을 가리켜 ‘아르바 미님’이라고 부른다. ‘네 가지 종류’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아름다운 과실실과는 레몬 비슷한 실과인 ‘에트로그’이고, 무성한 가지는 ‘도금양 나뭇가지’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네 가지 식물이란 이 두 가지 외에 종려나무 가지와 버드나무 가지를 합한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에는 감람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느헤미야서에는 버드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느헤미야서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초막의 지붕을 덮는 나무들로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랍비 전통은, 네 가지 식물을 레위기의 전통에 따라 아름다운 실과(Etrog), 종려나무 가지(Lulav), 도금양 나뭇가지(Hadass), 버드나무 가지(Arava)로 규정하였다. 성전 시대의 유대인들은 장막절이 되면 모두 ‘아르바 미님’을 손에 들고 성전에 나가 장막절을 축하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모든 유대인들은 일주일 동안 ‘아르바 미님’을 들고 다니며 파괴된 성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카이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 유대인의 전통이 되어 해마다 장막절이 되면 모든 유대인들이 ‘아르바 미님’을 들고 다니며 파괴된 성전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아르바 미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가장 오래 된 해석은 이 네 가지의 식물이 비를 기원하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비가 없으면 이 네 가지 식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비가 없다면 온 세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이 네 가지 식물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다. 유대인 가운데 유행하는 해석을 하나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네 가지 식물은 네 종류의 유대인을 대표한다. 아름다운 실과(Etrog)는 맛도 있고 향도 있으므로 토라(하나님 말씀)를 알기만 할 뿐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종려(열매)는 맛은 있으나 향은 없으므로 토라는 알지는 못하지만 선을 행하는 유대인을 대표한다. 마지막으로 버드나무는 맛도 없고 향도 없으므로 토라를 모를 뿐 아니라 선도 행하지 않는 유대인을 대표한다. 또 종려나무는 척추를, 아름다운 실과는 심장을, 도금양 나무는 눈을, 버드나무는 입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장막절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릴 때 시편의 할렐송(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 시편 113-118편)이 울려 퍼지면, 유대인들은 각 시편의 25절을 읊을 때 ‘아르바 미님’을 흔든다. 이때 종려나무 가지는 오른손에, 도금양 나뭇가지 세 개와 버드나무 가지 두 개, 에트로그 한 개는 왼손에 든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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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의 유월절(2)

 

 

그리심 산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주후 70년 로마에 의하여 제2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성전에 모여 희생제물을 바치며 매년 유월절을 축하하였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자 제일 먼저 불가능해진 것은 유대 종교의 핵심적 자리를 차지했던 희생 제사였다. 그 후 유대 종교는 희생제사 없는 새로운 종교로 발전되어 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전의 희생제사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전에 사라진 유대인의 유월절 희생제사 의식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름 아닌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유대인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경 시대에는 일 년 내내 항상 희생양을 제물로 바쳤으나, 오늘날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일 년 중 하루, 니싼월 14일 유월절 날에만 제물을 바친다는 점이다. 이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성경 시대의 전통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의식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많은 관심을 끌어 왔다.

 

 

<By Illustrators of the 1897 Bible Pictures and What They Teach Us by Charles Foster , via Wikimedia Commons>

 

 

필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꼭 한 번 그곳에 가서 그들이 드리는 유월절 희생 제사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일 년에 한 번밖에 없었다. 유월절에 가야만 사마리아 사람들이 드리는 유월절 희생 제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스라엘 유학 기간 중 벼르고 벼르다가 1986년 유월절에 드디어 그리심 산에 가 볼 수 있었다.

 

사마리아인들도 다른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유월절 전날이 되면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며, 모든 유교병을 집안에서 없애 버린다. 유월절이 되면 모든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세겜에 있는 그리심 산으로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리심 산은 한때 그들의 성전이 서 있던 곳으로 신성한 산이다. 산에 도착하면 가 가정별로 텐트를 치고 유월절을 준비한다. 그들은 유월절기간 내내 그곳에서 지낸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의 유월절은 계속 새로운 전통을 만들며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오늘날 유대인의 유월절 행사는 구약시대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제2성전(예수님 당시의 성전)시대 이전의 유월절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그들이 다른 유대인들과의 접촉을 일체 피해 왔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다른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행하는 포도주를 마신다든지 하는 후대의 전통을 모른다. 이러한 전통들은 이미 사마리아 사람들이 일반 유대인들로부터 분리해 나가고 상당한 시일이 흐흔 후대에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월절 의식의 기준을 철저하게 구약성경에 두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구약성경과 어긋나는 것은 전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관습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오후가 되면 본격적으로 유월절 희생 제사를 준비한다. 모든 사마리아 남자들은 흰 옷을 입고 유월절을 기다린다. 마침 필자와 필자의 아내가 그리심 산에 도착했을 때는 유월절 전날 오후였는데, 흰 옷을 입은 사마리아 남자들과 기념 촬영도 할 수 있었다. 못 보던 동양 사람을 만나서인지 유난히 우리에게 친절했다. 그들에게서 매우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가 보니 불을 피우기 위한 큰 구덩이를 두 군데 파 놓은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알아보니 한 곳은 양을 불에 굽기 위하여 다른 한 곳은 희생제물의 내장을 불사르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었다. 그들은 곧 구덩이에 준비한 나무를 넣고 불을 붙였다. 두 구덩이에서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을 담기 위한 큰 상자모양의 쇠로 만든 통도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그들은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희생제사는 해지기 30분 전에 시작된다. 대제사장이 개회를 선언하면 모든 사람들의 묵도로 행사가 시작된다. 이때 모든 사마리아 사람들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때 그들의 성전이 서 있었던 그리심 산 정상으로 얼굴을 향한다.

 

대제사장은 목소리를 높여 일련의 기도문을 낭송한다. 정확하게 해가 지기 시작할 때, 대제사장은 그의 얼굴을 해가 지는 서쪽으로 향하고 유월절 희생양을 잡으라는 말씀이 있는 구약의 말씀을 읽기 시작한다. 열댓 명의 젊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손으로 양을 잡아 두 다리 사이에 눕혀 높고, 타오르는 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들러 서서, “모든 이스라엘의 회중은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양을 잡을지니라하는 대제사장의 명령을 기다린다. 이때 한 마리의 양을 여분으로 준비한다. 만일 제물로 바치는 양 중에 흠이 있는 것이 발견되면 대체하기 위함이다. 대제사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사마리아의 젊은이는 일제히 양을 도살한다. 그리고 양의 피를 취하여 자기의 얼굴에 찍어 바른다. 모든 사람들은 환호하며 서로 어깨를 끌어안고 인사를 나눈다. 자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상대방의 왼쪽 어깨에 대고 서로 끌어안은 다음, 다시 자신의 왼쪽 어깨를 상대방의 오른쪽 어깨에 대고 끌어안는 유대인 특유의 인사법이다. 끌어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볼에 입까지 맞춘다.

 

흥미로운 사실은 양을 도살한 후 양의 항문에 바람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펌프는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아마도 내장을 쉽게 분리시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사마리아 젊은이들은 도살한 양을 즉시 끓는 물에 집어넣어 가죽을 벗겨 내었다. 두 개의 구덩이에는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구덩이 위에는 거대한 석쇠 모양의 쇠망이 걸쳐 있었고, 그 사이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양의 내장은 분리한 후 따로 모아 불구덩이 위에 놓인 석쇠 모양의 망에 올려놓고 불로 태워 버린다. 사마리아 오경은 내장을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장이 제거된 양은 물로 깨끗이 씻은 후 소금을 쳐서 피가 완전히 빠지기까지 두 시간 정도 기다린다. 10시경이 되어 피가 완전히 빠지면 대제사장은 양고기를 불에 구우라고 명령한다. 청년들은 피가 완전히 제거된 양들을 나뭇잎과 풀잎으로 싼 뒤 흙을 발라 불에 구울 준비를 한다. 대제사장의 기도와 합께 청년들은 막대기에 꿴 양들을 어깨에 메고 나가 불구덩이 위에 올려놓는다. 양이 불에 잘 구워지려면 적어도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 동안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도하든지, 잠을 자든지, 혹은 서로 이야기하며 양이 익기를 기다린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행사는 출애굽 당시 급하게 먹던 전통을 따라 불에 잘 익은 양고기를 급히 먹는 유월절 식사로 절정에 이른다. 유월절 식사는 양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은 후, 즉 하나님과 화해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서 먹는 거룩한 식사이기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타내는 축복의 식탁이다. 1시경이 되면 모두 일어나 손과 발을 씻고 흰 옷을 입고 유월절 식사를 준비한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뜯어 온 쓴 나물과 무교병(마짜)을 잘 익은 양고기 위에 얹어 놓는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대제사장이 축복기도를 올린다.

 

기도가 끝나면 양고기를 텐트에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나눠 준다. 이때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던 때를 회상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양고기를 먹는다. 보통 20분 이내에 양고기를 다 먹는다. 마짜와 쓴 뿌리는 빼놓을 수 없는 유월절 식탁 메뉴다. 대부분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도하며, 찬양하며, 혹은 서로 출애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침이 오기까지 밤을 새운다.

 

자유를 노래하는 축제

 

유대인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 편안하게 먹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법령 해석집인 미쉬나에 보면 모든 유대인은 유월절 식사 시에 반드시 뒤로 기대어 먹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날만은 뒤로 기대어 느긋하게 먹도록 규정하고 있다.

 

왜 이런 전통이 생겼을까? 로마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당시 모든 자유인은 식사할 때 뒤로 기대어 음식을 먹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당시 랍비들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유월절들에게 유월절 식사만은 뒤로 기대어 먹게 함으로써 그들이 자유인인 것을 만끽하며 누리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이집트에서 노예였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서 자유인이 된 역사적 사실을 축하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유월절

 

예수님은 최후의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하셨다.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며 그것을 자신의 살과 피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이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다. 당신 자신을 유월절에 바쳐질 희생양으로 인식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을 때 하나님이 신이 그들을 넘어가셔서(유월:pass over) 이스라엘이 축음을 면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갖는 자마다 생명을 얻을 것을 가르치셨다. 유월절마다 수많은 양들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희생되실 것을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유월절 식사를 통하여 가르치신 것이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예수님을 유월절의 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니싼월 14, 즉 유월절 바로 전날에 처형되었다. 이날은 유월절 양이 도살되는 날과 일치한다.

 

인류를 살리신 유월절 양

 

사마리아 그리심 산에서 본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행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오르자 도살되는 앙의 모습, 불에 타는 양의 내장, 불에 그을리는 양고기 등이 떠오르며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서리쳐졌다. 아 용서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차창 밖을 내다보니 사마리아의 구릉 지대가 빽빽한 올리브 나무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문득 도살된 양을 장대에 꿰어 높이 세 놓은 모습이 떠오르면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 위로 오버랩되었다. 예수님이야말로 온 인류를 살리신 유월절 희생양이시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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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0)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1)

 

 

제2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기 전,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은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순례객들, 전 세계의 디아스포아라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의 성지 순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요셰푸스에 의하면, 주후 65년경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적어도 삼백만 명의 순례객들이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셰푸스의 이 기록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인구를 십만 명 정도로 추정하여, 유월절에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이십만 명 정도의 인구가 몰려들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당시 예루살렘의 크기를 오늘날의 옛 성 전체의 크기로 본다고 해도 이십만 명이면 이미 포화상태다.

 

유월절 스케치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최소한 일생에 한 번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다. 또한 명절 중 제일 큰 명절인 유월절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원하는 순례의 시기였다. 유월절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겨우내 내린 비로 온 들과 산은 녹색으로 물들고 각종 꽃들이 만발하는 시기다. 일 녈 중 예루살렘이 가장 붐비는 시기가 이때였다.

 

모든 여관은 순례객들로 만원을 이루었고, 집집마다 순례객들로 가득 메워질 뿐 아니라, 빈 터마다 순례객들이 친 텐트들로 인해, 온 예루살렘은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민박을 하는 경우 어느 누구도 숙박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희생제물로 바친 양의 가죽을 집주인에게 주는 정도였다. 양가죽은 양피지나 물주머니, 포도주 주머니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유용했으나 여행중에 있는 사람이 가공하기에는 너무나 번거롭고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텐트에 숙소를 정한 사람들은 유월절 기간 내내 그곳에 머물렀다. 좁은 예루살렘에, 그렇게 많은 순례객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유월절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탈무드에 서는 기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순례하러 온 유대인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시리아, 소아시아, 싸이프러스, 그리스, 바벨론, 로마, 이집트 등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마다 그 지방 특유의 복장과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어도 다양하였다. 이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아람어, 헬라어, 히브리어 등이 혼용되었다. 유월절이 가까워 오면 예루살렘에서는 양, 소, 향료 등의 거래가 활발하였다. 양이나 소는 이스라엘 내에서 공급되었으나 향료는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부터 수입되었다. 향료를 실은 낙타의 대열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모습은 유월절 전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유월절이 가까워져 예루살렘이 인파로 북적거리면 로마의 병사들도 바빠졌다. 지중해 해변의 시세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총독은 유월절이 되면 시세리아 본부로부터 군인들을 파병, 예루살렘에 있던 군대와 합류시켜 유대인들의 동태를 감시하게 하였다. 연중 가장 낳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드는 이때야말로 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헤롯의 궁 옆에 있던 로마 군대의 요새는 성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높게 건축되어 있었다. 로마 군인들은 높은 요새 위에서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오늘날도 예루살렘에 가면 옛 성의 욥바 문과 다윗의 탑 사이에 남아 있는 당시 로마의 요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24반열로 조직되어, 돌아가며 한 반열씩 성전의 일을 돕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레위인들은 고향에 머무르며 가사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유월절이 되면 24반열 모두가 성전에 나가 봉사하였다. 따라서 유월절이 되면 수천 명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의 일을 도왔다.

 

유월절 전날

 

유대 전통에 따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유월절 하루 전에 자기 집에 남아 있는 모든 빵과 빵 반죽을 없애야만 하였다. 유월절에는 절대로 누룩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월절 전야가 되면 모든 유대인들은 올리브 램프에 불을 켜고, 흑 빵 부스러기라도 집안에 남아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뒤졌다. 찾아 낸 빵이나 빵 부스러기, 반죽 등은 한 곳에 모아 놓고 성전에서 보내는 신호를 기다렸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유교병(누룩이 들어 있는 모든 빵이나 반죽)을 불에 태워 없애야했기 때문이다. 신호는 감사 제물로 바쳤던 유교병 두 덩어리로 하였다. 유월절 전날 제사장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화목제의 감사 예물로 드렸던 빵(유교병) 두 덩어리를 성전 바깥에 회랑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빵(유교병) 두 덩어리가 회랑 꼭대기에 보이는 동안에는 유교병을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제사장이 한 덩어리의 빵을 치워 버려 단지 한 덩어리의 빵만 보이면 그 시간부터 유교병(빵)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제사장이 두 번째 빵마저 치워버리면 그것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유교병을 불에 태워야 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예루살렘 온 시가지에 정확한 시각을 알릴 수 없었다. 성전이 잘 보이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보조 수단이 강구되었다. 제사장들은 감람산 꼭대기에 두 마리 암소를 데려다가 쟁기질하게 하였다.

 

두 마리가 다 쟁기질하고 있으면 아직은 유교병을 먹을 수 있다는 표시였고, 한 마리만 쟁기질을 하고 있으면 그 시간부터 유교병을 먹을 수 없다는 표시였다. 나머지 한 마리마저 보이지 않으면 즉시 유교병을 불에 태워 없애라는 표시였다. 시계가 없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런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동시에 유교병을 없앨 수 있었다.

 

 

 

 

유월절 첫째 날

 

유월절 첫날 점심 무렵이 되면 모든 유대인들은 양이나 염소를 어깨에 메고 성전으로 나아갔다. 오후가 되면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오후 3시경에 제사가 시작되었다. 제사는 세 차례 반복되었다. 첫 번째 들어온 예배자들이 성전 뜰을 가득 채우면 레위인들은 성전문을 닫았다. 성전문이 닫히면 쇼파(양각나팔)를 불어 희생제사가 시작됨을 알렸다. 양이 도살되는 동안 레위인들은 주악에 맞춰 감사 찬송을 불렀다.

 

첫 번째 예배자들이 희생제사가 끝나면 두 번째 예배자들이 희생제물을 갖고 성전에 들어왔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 예배자들이 성전에 들어온다. 당시 세 번째 예배자들은 ‘게으름뱅이들’이라고 불렸다. 한번은 힐렐 시대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늙은이 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깔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이후 크게 걱정한 유대인들은 유월절 희생 제사를 엄숙하고도 질서 있게 진행하였고, 그 결과 예수님 당시에는 두 시간 정도에 모든 유월절 희생 제사를 질서 있게 마칠 수 있었다.

 

희생 제사를 끝낸 유대인들은 각각 자기의 희생제물을 어깨에 메고 성전에서 나와 자기의 처소로 돌아가 유월절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유월절 첫날밤인 ‘구속의 밤’을 준비하였다. 예루살렘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양과 염소를 나무꼬치에 꿰어 굽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화로는 흙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는데,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이었다. 활로는 흙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는데,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이었다. 만일 비가 오면 집 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무리지어 함께 양고기를 먹으며 유월절의 첫날밤을 축하였다.

 

이날 밤 모든 사람들은 흰색 옷을 입었고, 이 시간은 친척, 친구, 노인, 아이, 가난한 사람, 부자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잣집에 초대받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밤이기도 하였다. 이날 밤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함께 나누었다. 온 예루살렘은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의 기적을 노래하며, 출애굽의 역사를 재현하는 거대한 민족적 축제로 밤을 새웠다.

 

유대인의 절기는 음력을 따른다. 따라서 니싼월 14일 전야를 절기로 지키는 유월절은 보름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 예루살렘 이곳저곳에 모여 앉아 양고기를 먹으며 출애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마짜와 쓴 나물을 먹으며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였고, 포도주와 양, 염소고기를 먹으며 자유의 기쁨을 노래하였다. 포도주를 마시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이 밤이 다른 날 밤과 다릅니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는지 이야기하고 희생양, 마짜, 쓴 나물 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였다.

 

설명을 마치면 다 함께 할렐송(감사 찬송)을 부르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찬송이 끝나면 축도로 모든 순서가 마쳐진다. 당시 축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적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과 로마 군인으로부터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월절 식사가 끝나면 밤이 깊어 새벽 1시 혹은 2시 정도가 되었는데, 이때부터는 자유롭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린이들은 잠자리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또 다시 모여 출애굽에 관한 성경 말씀에 대하여 계속 토론하였다. 한밤중에 성전문이 다시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가 기도와 찬송을 밤을 새웠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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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유월절(2)

 

당시 우리 가족은 예루살렘 선지자 거리에 있는 유대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아내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돕고 있었는데, 그 교회의 골드베르그(Goldberg) 장로님이 우리를 유월절 식사에 초대하였다. 우리 옆 동에 살던 그는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특히 열정적인 설교가 인상적인 분이셨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모든 식구들이 모여 잔치 분위기였다. 식사 전에 그는 나에게 키파를 쓰게 했다. 이 유월절 식사를 ‘쌔데르’ 또는 ‘하가다’라고 부르며, 유월절 명절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그날 경험했던 유월절 식사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유월절 식사

 

유월절 식사는 보통 가장이 인도한다. 유월절에는 여섯 가지의 특별한 음식들이 준비된다. 정강이 뼈, 삶은 달걀, 쓴 나물(양고추냉이,horseradish), 파슬리(parseley)나 샐러리(celery) 혹은 양상추, 소금물, 하로셋 등의 음식이다.유대인들은 쓴 나물(양고추냉이)을 먹으며 이집트에서 그들의 선조들이 겪었던 노예 생활의 고역을 기억한다. 하로셋은 사과에 호두나 잣 등을 으깬 것에 꿀, 포도주 등을 붓고 계피 등을 섞어 만든 고추장 비슷한 양념장의 일종이다. 색깔은 보통 황갈색이다. 하로셋이란 말의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학자들에 따라서는 진흙을 뜻하는 ‘하르씨트’라는 말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하로셋의 색깔이 진흙과 같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진흙으로 벽돌을 굽던 노예 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쓴 나물을 하로셋에 찍어 먹는 것이다. 정강이뼈와 삶은 달걀은 제2성전이 파괴된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며, 이 음식을 먹으면서 성전에서 행하던 희생 제사를 기억한다. 소금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흘렸던 눈물을 상징한다. 파슬리나 셀러리, 양상추 등은 봄이 왔다는 의미에서 생명을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기쁨과 축복을 의미한다.

 

마짜(무교병)

 

유월절 음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짜’이다. 무교병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급히 떠났기 때문에 발효시키지 못한 채 들고 나왔다는, 출애굽의 긴박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음식이다. 그러므로 마짜(무교병)는 유월절 식탁에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유월절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유월절 식탁에는 각자의 접시마다 보통 마짜 세 개를 포개어 올려놓고 냅킨으로 덮어 놓는다. 마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유월절 첫날 저녁에 먹는 유월절 식탁을 위한 마짜와 유월절이 끝나기까지 일주일간 평소에 먹는 보통 마짜이다. 유월절 첫날 저녁에 쓰기 위하여 만든 마짜를 가리켜 ‘계약의 마짜’(마짜 쉘 미쯔바)라고 한다.

 

고대의 마짜는 꽤 두꺼웠다. 탈무드 시대에는 마짜의 두께가 네 손가락 두께를 넘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의 논쟁이 있었다. 당시에는 마짜를 만들기 위해서 세 사람의 여자가 동반되었다. 한 사람은 반죽하고, 한 사람은 마짜의 모양을 만들고, 나머지 한 사람은 굽는 일을 했다. 중세기에는 마짜의 두께가 손가락 하나 이하 정도로 얇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짜는 점점 얇아지고 바삭바삭해져서 최근에는 얇은 비스킷만큼의 두께로 되었다. 오늘날은 기계로 대량생산하여 어느 슈퍼마켓에서나 살 수 있으며, 보통 책받침 정도의 크기이다. 마짜는 밀가루로 만든다. 그러나 유대 종파 중 신비파에 속하는 캐라이트 유대인들이나 일부 정통파 유대인들은 보릿가루를 고집한다. 보릿가루로 만든 마짜는 밀가루 마짜보다도 더 맛이 떨어진다. 마짜를 고난의 떡으로 이해하는 그들은 보릿가루로 만든 마짜를 고집한다.

 

 

 

 

식사의 순서

 

식사의 순서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 과거의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고, 현재의 축복을 감사하며, 미래의 소망을 기원하는 순서다.

 

첫 번째 컵에 포도주를 따른 후 인도자가 쎄데르에 적혀있는 축복문을 낭송함으로 유월절이 온 것을 축복한다. 축복이 끝나면 각자 부엌이나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은 후, 파슬리나 샐러리 혹은 양상추를 소금물에 찍어 먹는다. 야채는 새봄의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고 소금물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흘린 눈물을 상징한다. 다음에 마짜를 손으로 부러뜨린다.

 

세 개의 마짜를 포개서 쥔 다음 가운데를 잘라 접시에 내려 놓는다. 첫 번째 컵의 포도주를 마시고 빈 컵에 다시 포도주를 채워 놓는다.

 

과거를 기억하며

 

유월절 식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서는 출애굽 사건을 재현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해 아버지(인도자)가 답변하는 형식을 따른다. 전통에 따라 가장 어린 자녀부터 네 개의 질문을 던진다. 이는 성경이 출애굽기에서 세 번, 신명기에서 한 번 등 모두 네 번에 걸쳐서 아버지는 반드시 그의 자녀들에게 출애굽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들은 이스라엘의 과거를 기억하도록 고안된 것들이다.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왜 이 밤에 우리는 마짜를 먹습니까? 둘째, 왜 이 밤에 우리는 쓴 나물을 먹습니까? 셋째, 왜 우리는 이 밤에 파슬리를 소금물에 두 번 찍어 먹습니까? 또 쓴 나물을 왜 하로셋에 쩍어 먹습니까? 넷째, 왜 우리는 유월절 음식을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 먹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며 인도자(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경험했던 일들을 이야기로 재현한다. 인도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급하게 무교병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설명한다. 또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하여 쓴 나물을 먹는다고 설명하며, 이집트에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여 소금물에 파슬리를 찍어 먹는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자유로운 백성으로서 뒤로 기대어 먹어도 될 만큼 여유와 기쁨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뒤로 기대어 편히 음식을 먹는다고 설명한다.

 

이때 인도자를 위한 베개가 준비되며, 인도자는 의자 뒤에 베개를 받치고 편안한 자세로 음식을 먹으면서 출애굽 역사를 이야기를 통하여 재현한다. 인도자가 베개를 베는 이유는 이제는 옛날같이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으로서 편안히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것은 열 가지 재앙에 대한 관습이다. 인도자(아버지)가 이집트에 임했던 열 가지 재앙에 관한 이야기를 재현할 때 식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약간의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 있다가 재앙의 이름이 나올 때 마다 준비된 그릇에 뱉어 낸다. 이와 같은 일은 유대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출애굽은 3,500년 전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 과거의 사건은 유월절 식사를 통하여 현재의 유대인들에게 늘 새로운 현재의 출애굽으로 경험된다,

 

모든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들에게 베푸신 이적과 기사를 찬양하며 ‘다에누’라는 노래를 합창한다. 어린이들은 신나는 곡조와 간단한 가사 때문에 특별히 이 노래를 좋아한다. “그가 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충족한가!”라는 내용의 노래이다. 노래가 끝나면 포도주를 마신다. 이것이 두 번째 잔이다.

 

 

 

 

현재를 축복하며

 

유월절의 음식과 마짜(무교병)를 위하여 축복기도를 올린다. 먼저 쓴 나물을 먹는다. 이때 쓴 나물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므로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 먹지 않고 똑바로 앉아서 먹어야 한다. 쓴 나물은 달콤하고 고소한 하로셋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이와 같은 관습은 과거에는 쓰디쓴 노예 생활을 했으나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로 달콤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을 상징한다. 쓴 시절이 지나 달콤한 시절이 왔다는 것이다.

 

다음은 쓴 나물을 마짜(무교병)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이 샌드위치를 가리켜 ‘힐렐 샌드위치’라고 부른다. 마짜(무교병)는 발효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아주 맛이 없는 음식이다. 이렇게 맛이 없는 마짜 사이에 쓴 나물을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이 없을까 상상해 보라.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유월절의 맛있는 메인 디쉬 전에 맛없고 쓰디쓴 힐렐 샌드위치를 먼저 먹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을 때 얼마나 쓰디쓴 인생을 살았으며 못 먹고 살았는가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힐렐 샌드위치를 먹고 나면 특별히 맛있게 준비된 유대인 최고의 요리인 유월절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음식을 다 먹은 후 아피코만을 후식으로 먹는다.

 

아피코만

 

이미 위에 기술한 대로 유월절 식사가 시작될 때 모든 사람을 마짜 세 개를 포개어 손으로 쥔 다음 가운데를 부러뜨려 자른다. 이때 부러진 마짜의 큰 쪽을 아피코만 이라고 부른다. 이 아피코만을 메인 디쉬가 끝날 때까지 먹지 않고 보관했다가 후식으로 먹는다. 그런데 아피코만에는 재미있는 관습이 있다. 누구든지 상대방의 아피코만을 훔칠 수 있다. 특별히 아이들은 아버지(인도자)의 아피코만을 훔치려고 노력한다. 잃어버린 아피코만을 다시 찾으려면 무엇인가 보상해야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은 아버지의 아피코만을 훔쳤다가 아버지가 자기의 아피코만을 찾을 때 선물을 요구한다. 아버지는 선물을 약속하고서야 자기의 아피코만을 찾아 갈 수 있다. 따라서 마짜(무교병)를 부러뜨린 후 모든 사람은 자기의 마짜(무교병)를 남이 못 보는 곳에 숨기고자 애쓴다. 보통은 손 씻으러 갈 때 다른 사람의 아피코만을 훔친다. 오랜 시간 진행되는 유월절 식사 의식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지루 할 수 있으나, 이와 같은 관습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좋은 추억거리를 제공한다.

 

미쉬나에 보면, 유월절 식사 후에는 아피코만을 남기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유월절 밤에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을 반드시 유월절에 제물로 바친 희생양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성전이 파괴된 후 더 이상 성전에서 양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없어졌다. 자연히 제물로 바친 양을 먹는 일도 없어졌다. 성전 시대에는 제물로 바친 유월절 양을 마지막 음식으로 먹었으나 오늘날은 아피코만이 마지막 음식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전이 파괴된 후 아피코만은 성전에 바쳤던 희생양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아피코만을 먹으며 성전에 제물로 바쳤던 희생양을 기억한다.

 

그 밖에도 아피코만과 관련된 관습이 많이 있다. 아피코만에 구멍을 뚫어 집이나 회당에 매달아 놓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여행시 휴대하고 다닌다. 아피코만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로코나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은 아피코만을 냅킨에 싸서 어깨에 올려놓고 출애굽 당시 무교병을 나르던 모습을 재현한다.

 

집주인이 아피코만을 어깨에 올려놓고 4미터 정도 앞으로 가면 “당신은 어디에서 오늘 길입니까?”라고 한 사람이 묻는다. 그는 “이집트에서 오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라고 다시 물으면, 집주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내년에 모두 예루살렘에서 축하합시다”라고 화답한다. 디아스포라에 살며 예루살렘을 그리는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히 의미 있는 관습이다.

 

아피코만을 먹으며 유월절 식사가 끝난다. 인도자가 음식에 대한 감사, 축복기도를 올린 후에 모든 사람을 세 번째 컵의 포도주를 마신다.

 

미래를 바라보며

 

식사가 끝나면 문을 열어 놓는다. 준비된 엘리야의 컵에 인도자가 포도주를 채우고 나면 모든 사람은, “이 일이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는 그(엘리야)가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때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들어와 메시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기를 기다린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선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어떤 문제를 논의하다가 해결책이 없으면 흔히 “엘리야의 결정에 맡기자”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함께 ‘엘리야 후 하나비’(선지자 엘리야)라는 노래를 부른다. 유대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메시아가 이 땅에 옴으로써 온 인류에게 궁극적인 평화와 자유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잠시 엘리야가 들어오기를 기다린 후 유대인들은 감사와 찬양의 시를 낭송하고, 유대인 특유의 노래들을 몇 곡 더 부른다. ‘레샤나 하바아 베루샬라임’(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이라는 노래를 부름으로써 모든 유월절 식사 의식을 끝맺는다.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마다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자는 그들의 꿈을 이 노래를 통하여 표현해 왔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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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7)

 

유대인의 유월절(1)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명절은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유대인의 유월절이다. 유월절은 무려 3,500년이나 된 명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명절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은 무엇일까? 역시 유월절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사건을 기념하는 유대인 최대의 명절이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니싼월 15일에 시작되며 7일 동안을 명절로 지킨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을 ‘욤 토브’라 부르며, 이날에는 일을 못하도록 규정하여 완전한 공휴일로 지킨다. 중간의 5일간은 ‘홀 하모에드’라 부르며, 반공휴일로 일하는 것이 허용된다. 중간의 5일간 대부분의 유대인은 정상 근무한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8일간을 명절로 지킨다. 이들은 8일 중에 처음의 이틀과 마지막의 이틀을 포함한 4일간을 ‘욤 토브’로 지킨다. 유월절은 부활절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때에 겹쳐지는데,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끝나는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절기는 음력을 따르기 때문에 보통 부활절을 전후하여 유월절이 오게 된다.

 

 


<By Illustrators of the 1897 Bible Pictures and What They Teach Us
by Charles Foster , via Wikimedia Commons>

 

유월절에 대한 추억

 

이스라엘 유학 시절의 일이다. 당시 만 3세의 고은이(필자의 딸)는 유대인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고은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신이 나서 말했다. “아빠, 이거 내가 학교에서 만든 빵인데 먹어 보세요.” 가만히 살펴보니 밀가루로 만든 과자 같은 빵인데, 건빵과 비슷한 맛이었다. “이게 무슨 빵이니?”라고 물으니 “마짜라는 빵인데요, 선생님이 가르쳐 주셔서 만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아, 이게 성경에서 나오는 무교병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얼른 들었다.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에게 무교병을 직접 굽도록 하면서 유월절에 대해 가르쳤던 것이다.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빵을 직접 굽게 한다는 것이 의외였다.

 

슈퍼마켓에 가 보니 빵을 살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곡식의 가루로 만든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없었다. 밀가루든 보리 가루든 옥수수 가루든 일체의 곡식을 만든 제품이 진열되었던 곳은 하얀 종이로 붙여 버려 고객의 접근초자 허용하지 않았다. 8일 동안은 빵이나 밀가루 음식 또는 일체의 발효제(이스트)가 들어 있는 음식을 살 수 없었다. 아내는 국수를 사려고 했으나 슈퍼마켓에서 거절당하고 말았다. 먹을 것도 별로 없는데 국수마저 없이 8일 동안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렇다고 무교병을 일주일이나 먹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유대인 재래시장인 ‘마하네이 예후다’에 나가 보았다. 평소 국수를 사던 집에 가서 국수를 달라고 사정했다. 주인은 처음에 거절했으나 잠시 머뭇거리더니, 외국인이니까 준다고 하면서 국수 두 다발을 내주었다. 필자가 처음 경험한 유월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유월절은 어떤 명절이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유월절 준비

 

유월절 전날이 되면 모든 유대인 어머니는 집안을 샅샅이 청소한다. 특별히 부엌은 구석구석까지 살펴, 혹 누룩이 들어 있는 음식이 남아있는 일이 없도록 깨끗이 청소한다. 어머니의 청소가 끝나면 다음은 어린이의 차례다. 유대 어린이들은 촛불을 켜서 들고 다니며 침대 밑이나 옷장 뒤 등을 샅샅이 살핀다. 혹시라도 누룩이 든 음식물 찌꺼기가 있으면 철저하게 수거한다. 빵 부스러기, 과자 부스러기, 씨리얼 부스러기 등이 없는지 살핀다. 왜 이와 같이 누룩을 제거하는가? 누룩을 제거하는 일은 부정을 제거하고 악을 말살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누룩에 대한 유대인의 부정적인 시각은 예수님에 의해서도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1절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여기서의 누룩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악한 교훈을 상징한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9절에서 누룩을 거짓 교리에 비유하여 사용했다.

 

유대인들은 묵은 누룩이 완전히 제거된 뒤에야 유월절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수거된 누룩은 따로 모아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 불에 살라 완전히 제거한다. 누룩이 제거되면 유월절을 위한 그릇, 접시, 포크, 나이프 등을 준비한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유월절에 유월절을 위한 식기나 그릇 등을 따로 준비하여 사용한다. 가정에 따라서는 가장 좋은 그릇들을 가보로 남겨 대대로 물려주면서 유월절에만 사용하도록 한다.

 

키트니욧

 

‘키트니욧’은 빵을 만들 수 있는 일곱 가지의 곡식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누룩이 든 빵을 금할 뿐 아니라 일체의 곡식을 금한다. 따라서 유월절이 되면 밀, 보리, 옥수수, 콩 등의 곡식을 일체 금한다.

 

카메츠와 쎄오르

대인들은 유월절 기간의 7일이나 8일 동안 ‘카메츠’를 먹거나 소유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카메츠’는 인공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발효된 밀. 호밀, 보리, 귀리, 맥아 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유월절이 되면 집에 있는 모든 밀, 호밀, 보리, 귀리 등의 곡식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하여 랍비들이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날 ‘카메츠’를 이웃의 이방인에게 팔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월절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이방인으로부터 사들인다. 대부분의 회당은 회중들이 카메츠를 팔았다가 다시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절차를 마련해 놓고 있다.

 

‘쎄오르’는 곡식을 발효시키거나 발효를 돕는 모든 이스트나 그와 유사한 물질을 가리키는 용어다. 유월절 기간 동안 카메츠와 마찬가지로 ‘쎄오르’의 사용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유의할 점은 이 법이 곡식과 관련된 법이라는 것이다. 발효된 곡식만이 금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도를 발효하여 만든 포도주는 금지되지 않는 식품이다. 곡식으로 만든 식품은 무교병(마짜)만이 허용된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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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쩨 샤밧

토요일 저녁 해질 무렵이 되면 샤밧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이렌이 우린다. 샤밧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을 가리켜 ‘모쩨 샤밧’이라고 부른다. 문자적으로는 ‘샤밧에서 빠져나옴’을 뜻한다. 모쩨 샤밧이 되면 다시 차를 탈 수 있으며 버스도 다닌다. 그리고 시내의 극장들도 샤밧을 끝내고 나온 인파들로 붐빈다. 우리 가족도 몇 번 모쩨 샤밧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 경험이 있다. 많은 이스라엘의 젊은 남녀들은 모쩨 샤밧에 데이트 약속을 한다. 토요일 저녁부터 이스라엘 사회는 다시 기지개를 켜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음 샤밧까지 이스라엘은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샤밧 음식

흰 샤밧 빵, 물고기 요리, 포도주, 이 세 가지는 샤밧 저녁을 빛내는 가장 전통적인 음식이다. 흰 샤밧 빵은 ‘할라’라고 하는데, 원래는 구약시대에 빵 반죽 중 제사장의 몫을 가리켜 ‘할라’라고 불렀다(민수기 15:19-21 참조). 그러나 제2성전이 파괴되고 난 이후 유대인들은 더 이상 제사장에게 빵 반죽을 바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유대인 주부들은 샤밧에 빵을 만들 때마다 빵 반죽의 일부를 떼어 불에 던지는 관습을 지켜 왔다. 제사장 몫을 따로 바치는 풍습이다. 이러한 관습과 관련되어 유대인의 샤밧빵을 가리켜 ‘할라’하고 부른다. 샤밧 식탁에는 두 개의 할라를 준비 한다.

할라 빵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난주에 남겨 놓았던 효모 반죽에 밀가루를 부어 반죽한다. 기다렸다가 반죽이 부풀어 오르면 반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때려 준다. 반죽이 가라앉으면 빵 반죽을 얹는 팬에 빵의 모양을 만들어 얹는다. 반죽이 팬에 자리 잡으면 솔로 달걀 흰자를 바른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깨를 뿌려준다. 깨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상징한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오븐에 넣어 굽는다.

유대의 딸들은 샤밧 때마다 어머니를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샤밧의 빵인 할라 만드는 법을 배운다. 빵을 반죽하며, 부풀은 반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다시 팬에 빵 모양을 만들고 오픈에 넣으며 할라 빵을 만드는 이 시간이야말로 유대의 전통이 전수되는 시간이다. 유대인 모녀들은 이런 시간을 통하여 가까워진다. 이 때 그들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함께 나눈다. 시집갈 때는 친정집에서 반죽의 일부를 떼어 간다. 떼어 간 반죽을 효모로 사용하여 계속 샤밧 빵을 굽는다. 딸을 낳으면 그에게도 빵 반죽부터 굽는 법까지 가르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유대의 전통은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그 딸에게서 손녀에게로 맥을 이어간다. 그러나 최근에는 효모 반죽대신에 이스트를 사용하는 가정이 많다.

샤밧에 물고기 요리를 먹는 관습도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물고기를 먹는 것이 물고기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학자들의 해석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물고기는 샤밧의 유대인 식탁에 주요 메뉴로 계속 사용되었다. 탈무드에서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유대 전통에 의하면, 샤밧에 집으로 향하는 유대인 뒤에 천사 둘이 따라간다고 한다. 집에 도착했을 때 샤밧이 잘 준비되어 있으면 착한 천사가 “다음 주 샤밧에도 이렇게 되기를”이라고 말한다. 악한 천사는 할 수 없이 “아멘”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만일 샤밧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악한 천사가 “다음 주 샤밧에도 이렇게 되기를” 이라고 말한다. 착한 천사는 이때 “아멘”이라고 응답할 수밖에 없다.

촛불을 켠 후 유대인들은 ‘샬롬 알레이헴’(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란 샤밧의 노래를 부른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이 노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샤밧 때 각 가정에 보내 (위에서 말한) 천사들을 환영하는 노래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집안을 오가며 ‘샬롬 알레이헴’을 부른다. 유대인은 이 시간에 샤밧의 기쁨을 노래로 표현한다. ‘샬롬 알레이헴’ 외에도 샤밧에 관한 많은 노래가 있다.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두세 곡의 샤밧송을 더 부르기도 한다.

샤밧에 찬송을 부르는 관습은 16세기의 카발라 운동을 통하여 일반인들 사이에 더욱 널리 유행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최근에는 정통파 유대인들도 샤밧 저녁 식사 때, 토요일 점심 식사 때, 또 샤밧을 마감하는 토요일 저녁 식사 때에 샤밧의 노래들을 부른다.

 

가족을 위한 축복(비르캇 하미슈파하)

이삭이 그의 아들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고, 야곱이 그의 열두 아들을 축복한 구약의 전통을 따라 유대인 부모들은 매주 샤밧마다 자녀를 축복한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축복할 때 창세기 48장 20절을 그 모범으로 삼는다.

자녀를 위한 축복은 아들들과 딸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녀의 머리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이때 자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아들을 위한 기도 : “하나님이여 이 아들에게 영감을 주소서. 그리하여 이 아들이 우리 만족의 삶을 계승해 온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전통을 따라 살게 하소서.”

딸을 위한 기도 : “하나님이여 이 딸에게 영감을 주소서. 그리하여 이 딸이 우리 만족의 삶을 계승해 온 사라, 레베가, 라헬, 레아의 전통을 따라 살게 하소서.”

매주 이러한 축복 기도를 부모로부터 받는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유대의 전통을 따라 살게 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위의 기도문에 자기가 원하는 기도를 첨가하여 그의 자녀를 축복한다. 자녀를 축복한 후 계속하여 민수기 6장 24-26절의 제사장을 위한 축복 기도를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올린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워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운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자녀를 축복한 아버지는 이제 남편으로서 아내를 축복한다. 잠언 31장의 말씀을 아내를 위하여 낭송함으로 아내를 향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한다. 다음은 잠언 31장의 말씀 중 몇 구절을 추려서 아내를 위한 낭송문으로 유대인들이 만든 것이다. 유대인의 아내들은 남편이 이 말씀을 낭송할 때 더욱 현숙한 여인이 되기를 간구하며, 아내와 어머니된 것을 행복으로 느낀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전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내밀며,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아내를 향한 잠언 낭송이 끝나면,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시편 112편을 낭송한다. 다음은 시편 112편중에서 몇 구절을 발췌하여 만든 남편을 위한 축복 기도문이다.

“여호와를 경회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그가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삶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아내는 자기의 남편이 시편 112편의 사람과 같은 신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아내의 낭송을 듣는 남편은 자기가 그와 같은 남편과 가장이 되기를 소원한다. 자녀와 아내, 남편을 위한 축복이 끝나면 가족 전체를 위한 다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다.

“하나님, 우리 가족을 인하여, 우리 가족이 의미있다는 것을 인하여, 우리 각자가 당신 앞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당신에게 기울어지고, 당신에게만 충성될 때, 그때야 비로소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로 주는 일에 앞서게 하소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을 전혀 기억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용서한 것을 세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위에 이웃이 있음을 감사하게 하시며, 우리의 사랑과 친절이 그들에게 표현되게 하소서. 우리로 부드럽게 말하게 하소서. 우리가 비판할 때 부드러운 말과 남을 돌보는 말을 찾게 하소서. 상대방을 안타까워하며, 이해하는 격려의 말, 칭찬의 말을 할 기회를 잊지 말게 하소서. 우리 가족을 건강과 기쁨, 만족감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당신의 영으로 우리 가정에 늘 머물게 하소서. 기쁨과 평화의 가정을 세우는 지혜를 우리에 주옵소서.”

 

키두쉬(포도주와 축복)

가족을 위한 축복이 끝나면 포도주를 컵에 따르고 출애굽기 20장 8절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을 낭송하고 기도한다. 이 기도문을 낭송하며 기도하는 행위를 가리켜 ‘키두쉬’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이 축복 기도를 통하여 샤밧이 다른 평일과는 다른 거룩한 날로 구별된다고 믿는다. 키두쉬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성화’ 혹은 ‘거룩하게 함’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즐거운 날’ (이사야 58:13)이라 믿는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포도주는 즐거움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예, 시편 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은 반드시 포도주를 통하여 거룩하고 기쁜 날로 구별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유대인의 악식일은 포도주를 컵에 담아 놓고 행하는 축복 기도를 통하여 거룩하게 구별된다.

이러한 축복 기도(키도쉬)는 두 가지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내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근거로 먼저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과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을 제시한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휴식을 취한 날을 샤밧으로 지키라고 명령한다. 반면에 신명기 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샤밧을 지키라고 명령한다(신명기 5:6). 축복 기도의 문장 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 구별된 날입니다.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로 이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삶, 건강, 일, 휴식, 가정, 사랑, 우정에 감사합니다. 창조의 영원한 표인 안식일에 우리는 우리가 당신의 거룩한 모습대로 창조되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겁을 높이 들어 감사합니다.”

 

 

모찌(샤밧 빵과 축복)

키두쉬가 긑난 후 유대인들은 샤밧 빵인 할라를 내어 높고 축복의 말을 낭송한다. 이때 낭송하는 축복문을 가리켜 ‘모찌’라고 부른다. 이 축복문을 통해 유대인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약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할라는 두 개의 빵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두 개의 샤밧 빵(할라)을 준비하는가?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이는 금요일에 내린 두 배의 만나를 상징하기 위함이다(출애굽기 16:22). 유대인들은 샤밧 빵을 내어 놓고 축복하기 전까지 빵을 흰 천으로 덮어 놓는다. 이것은 광야에 내렸던 만나를, 아래로는 시나이 반도의 뜨거운 모래로부터, 위로는 타는 듯한 태양열로부터 보호한다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에 따라 어떤 이들은 할라(샤밧 빵)를 꺼내 놓고 축복 기도를 올리기 전에 손을 씻는다. 이들을 가정의 식탁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만큼이나 거룩한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성전 시대의 제사장들이 제물을 바치기 전에 손을 씻은 것처럼 고대의 랍비들은 식사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었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많은 유대인들은 거룩한 식사에 앞서 손을 씻는다. 모든 사람이 손을 씻고 돌아온 후 축복 기도를 시작한. 축복 기도가 끝나면 모든 사람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와 같이 아멘으로 답하는 관습은 신명기 27장에서 레위인들에게 아멘으로 화답한 이스라엘의 전통에 기초한다. 축복이 끝난 후 빵을 자르는데, 예루살렘 성전에 바쳐진 제물들에 소금을 뿌렸던 성전 시대의 전통에 따라, 어떤 유대인들은 샤밧 빵에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식후 감사 기도

식사가 끝나면 신명기 8장 10절의 전통에 따라 감사 기도를 올린다. 식후 감사 기도는 시편 126편으로 시작되며 음식을 공급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이스라엘에게 땅을 허락하신 일에 대한 감사, 예루살렘을 허락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예루살렘의 안녕을 위한기도, 평화를 간구하는 기도, 전 세계를 위한 평화의 간구로 끝을 맺는다.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샤밧 식사는 외견상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순서에 따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식탁을 경험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먹는 것이라면 유대인은 이 먹는 일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들의 역사를 경험하고, 공동체를 경험하며, 신앙을 경험한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샤밧을 통하여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한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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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안식일(3)

 

2세기 말 미쉬나 보면 기름 램프에 점화하는 것과 함께 샤밧이 시작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당시에는 촛불이 없었고, 흙을 구워 만든 램프에 심지를 넣고 거기에 올리브 기름을 부어 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미쉬나 구절에는 샤밧에 어떠한 심지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신 구약 중간기에 이미 기름 램프가 샤밧에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가 생기자, 기름 램프대신 촛불이 사용되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최소한 두 개의 촛불을 켜야 한다. 이 두 개의 촛불은 출애굽기 20장 8절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의 구절에 나오는 두 개의 동사 “자코르(기억하라)”와 “샤모르(지키라)”를 상징한다.

촛불 점화

두 개 이상의 촛불을 켜는 것은 허용되지만 두 개 이하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두 개의 촛불을 기본적으로 켜고, 자녀 일 인당 하나씩의 촛불을 더 추가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은으로 만든 촛대를 사용하나 대부분 청동으로 만든 촛대를 쓴다. 촛대는 항상 번쩍거릴 정도로 깨끗이 닦아 놓는다. 초가 없는 경우 가스불이나 전깃불도 허용된다. 그러나 이 경우도 촛불 점화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켜야 한다.

 

 

유대법에 의하면, 남자나 여자 모두가 촛불을 점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촛불을 점화하는 것이 관례다. 촛불은 반드시 해지기 전에 켜야 한다. 일단 해가 지면 샤밧은 시작되고, 샤밧이 시작되면 불을 켤 수 없기 때문이다. 불을 켜는 것은 창조 행위이고, 샤밧에는 어떤 종류의 창조 행위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켜지는 촛불은 평일과 샤밧을 가르는 상징적인 빛이다. 일과 휴식을 가르는 빛이며, 염려와 평화를 가르는 빛이며, 세속과 거룩을 가르는 빛이다. 촛불을 점화하는 삶은 촛불 위로 다음의 축복문을 낭송한다.

오 우리의 주 하나님이시여,

우주의 왕이시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법과 계명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성별하시고,

우리로 샤밧의 불을 밝히도록

명하셨나이다.

샤밧의 촛불을 밝히며

우리는 삶의 거룩성을 보존합니다.

우리가 점화하는 거룩한

불빛 하나 하나로

세상은 더욱더 조화된 세계로

밝아집니다.

 

어린이들이 참석했을 경우는 더 많은 축북의 문장을 낭송하기도 한다. 두 세 사람이 돌아가며 다음의 축목문을 낭송한다.

 

샤밧은 평일과 다릅니다.

샤밧은 식탁에 켜 놓은

촛불의 아름다움이며,

샤밧은 달콤한 포도주를 마시며

부르는 기도의 송가입니다.

샤밧은 부드러운 금빛의 할라빵을

깨물어 먹는 것이며, 샤밧은

가족을 위한 축복입니다.

샤밧은 우리의 전 가족이 하나님,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대화입니다.

 

촛불 점화와 샤밧에의 부름을 알리는 축복 중 어느 것이 먼저 와야 하느냐에 상충된 견해가 있다. 한 견해는 촛불을 켰으면 샤밧이 시작 된 것이니 샤밧이 시작되었다는 축북을 낭송할 우 없다는 것이고, 다른 견해는 일단 샤밧이 시작되었다는 축복이 낭송되면 샤밧이 이미 시작되었으므로 촉불 점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합의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해가 지기 몇 분 전에 촛불을 켜서 손으로 가린 후 샤밧의 축복을 낭송함으로 샤밧이 시작된 것을 선포하고 손을 촛불에서 떼어 가렸던 촛불을 보이도록 한다. 이대 눈을 감는 사람들도 있다. 축복을 먼저 낭송했다면 촛불을 켜지 못하고, 촛불을 먼저 켰다면 축복을 낭송하지 못하는 모순을 이러게 해결했다.

유대인의 달력에는 매주 금요일의 해지는 시각이 기록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달력에 기록된 시각이 실제 해지는 시각보다 18분 빠르다는 사실이다. 해지는 시각을 기준하여 몇 분 전에 미리 촛불을 켜도록 돕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정통파 유대인들은 이 시각을 지켜 촛불을 켠다.

이스라엘의 샤밧(안식일) 준비는 금요일 점심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집집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청소하는 모습, 오후 3시경부터 풍기기 시작하는 음식 만드는 냄새, 빵 굽는 냄새 등으로 금요일 오후 이스라엘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이틀 치 음식과 생필품을 구입하느라 시장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샤밧 기간 동안 모든 시장과 가게, 슈퍼 등이 문을 닫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샤밧이 다가오면 음식과 생필품 등을 준비해야만 했다.

예루살렘에 살던 유학 기간 동안 주로 큰 장은 ‘마하네이 예후다’라고 불리는 시장에서 보았는데, 그 시장은 특히 금요일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보는 사람들 중에 여자보다도 남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여자들은 주로 집안을 청소하거나 음식 등을 주비하고 남자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시간 뿐 아니라 슈퍼마켓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이스라엘의 금요일 오후는 항상 활기찬 모습이었다. 샤밧을 맞기 위한 준비는 해지기 전에 끝나야 한다. 일단 샤밧이 시작되면 모든 일을 쉬어야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오후 6시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샤밧이 시작됨을 알리는 사이렌이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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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의 안식일(2)

 

주후 70년에 제2성전이 파괴된 후 처음 3세기 동안 랍비들은 구약 성경을 기초로 안식일에 관한 법을 정리하며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정하였다.

첫째로, 안식일의 불 사용에 관련된 조항과 안식일에 얼마나 활동할 수 있는가 하는 행동 범위에 관한 조항이다. 안식일의 불 사용에 관한 규제 조항은 출애굽기 353절에 나타난다. “안식일에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를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 랍비들은 이 구절을, 샤밧이 시작되기 전인 금요일 해지기 전에 피운 불은 샤밧이 끝나는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는 그대로 피워 놓아도 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안식일 전에 피운 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규정을 어기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즉 안식일이라는 특정 시간 안에서만 새로 불을 피우지 않으면 된다는 유권 해석을 내린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이 되기 전에 필요한 불을 미리 피우거나 켜 놓고, 안식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끄지 않는다. 샤밧 촛불도 미리 켜 놓고 안식일이 끝나기까지 끄지 않는다. 병원이나 회사 공공건물들도 마찬가지다. 만일 안식일에 불을 쓰거나 켜지 못한다면 샤밧은 완전히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 공급하는 모든 장비도 전기로 작동되는 것은 다 꺼야 할 것이다. 그때에 오게 될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샤밧이 되기 전에 병원이나 기타 공장 등의 최소한의 필요한 장비들은 미리 전기를 켜놓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끄지 않는다.



성전 파괴와 안식일 법의 정비

안식일의 활동 규제에 관한 법조항은 출애굽기 1629절에 나타난다.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 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글 개역의 처소라고 번역된 히브리 성경의 마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개역 성경에는 처소라고 번역되었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는 장소라고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장소 혹은 처소는 어느 장소(처소)를 가리키는 가? 자기 집을 가리키는 말인가? 아니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말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엇인가? 만일 본문에 나오는 장소를 자기의 집이라고 규정한다면 안식일에 집에서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집을 나오는 순간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장소를 동네라고 규정한다면 동네를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랍비들은 이 구절의 마콤(장소)동네또는 마을로 해석하였다. 이로써 같은 동네에 있는 친구를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회당에 나가 예배할 수도 있게 되었다.

둘째로, 안식일에는 일하면 안 되는데 과연 어떤 것을 일이라고 규정하는가가 문제였다. 랍비들은, 광야에서 사용하는 성막을 짓는 데 필요했었던 모든 활동을 일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랍비들은 샤밧에 해서는 안 될 39가지의 금지 조항들을 정하였고, 그 일들은 쟁기질, 씨 뿌리기, 추수, 추수단 묶기, 타작, 도리개질, 곡식 씻기, 제질, 방아질, 반죽, 빵 굽기, 양털 깎기, 표백, 재료 배함, 염색, 샐 뽑기, 베틀에 실 얹기, 방적, 천짜기, 다 된 물건 치우기, 매듭짓기, 매듭 풀기, 찢기, 바느질, 덫 놓기, 도살, 껍질이나 가죽 벗기기, 무두질(가죽 이기기), 긁기, 포시하기, 모양대로 자르기, 쓰기, 지우기, 짓기, 무너뜨리기, 불붙이기, 불끄기, 망치질, 공공장소에서의 운반 행위 등 39가지이다. 이러한 39가지의 금지된 사항 외에도 이와 유사한 일은 어떤 일이든지 모두 금지된다.

안식일 준비

유대의 전승은 샤밧이 오는 것을 여왕이 방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한다. 유대 문헌에 의하면, 심지어 중세기까지도 이스라엘의 싸훼드에 살던 유대인들은 금요일 오후가 되면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해질 무렵 동네 어귀까지 나가 샤밧의 여왕을 맞이하곤 했다. 귀한 손님이 방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대인들은 여왕을 맞을 때에 준하여 모든 것을 준비한다.

준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샤밧의 여왕에 대한 전승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유대 가정에 내리신 명령이다. 랍비들에 의하면, 샤밧을 잘 준비하는 것은 십계명의 명령이다. 출애굽기 208절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한다. 이 구절에는 두 가지 명령이 있다. 하나는 기억하라는 명령이고 또 하나는 지키라는 명령이다. 왜 단순히 지키라고만 하지 않고 기억하라는 명령을 먼저 하였을까? 랍비들은 기억하라는 명령을 준비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한다. 기억하는 일이 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곧 준비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주부들은 금요일 오전이 되면 집안 청소를 시작으로 샤밧을 준비한다. 미리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며, 샤밧 빵을 굽는 등 샤밧에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가능하면 모든 가족이 샤밧을 준비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한다. 금요일 오전에 예루살렘의 마하네이 예후다 시장에 가면 그곳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의 60-70퍼센트가 성인 남자들인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의 남편들은 매우 가정적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주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샤밧 테이블에 장식할 꽃을 선택하게 한다. 깨끗한 사각보로 식탁을 단장하고 샤밧만을 위해 준비된 가장 귀한 그릇들을 꺼낸다. 옷은 새 옷이나 가장 깨끗한 옷을 입는다. 탈무드에서는, 남자는 셔츠, 여자는 블라우스를 입도록 권장한다. 보통은 깨끗한 흰색 옷을 입는다.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을 아름다운 촛대와 꽃, 깨끗한 식탁보와 훌륭한 그릇들로 장식하고,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나면, 샤밧의 여왕을 맞을 준비가 끝난다. 탈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샤밧은 여왕의 오심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비천한 가정집도 궁전으로 변합니다.”

샤밧이 준비된 유대인의 가정은 아무리 가난하고 비천한 집이라 할지라도 평화가 흐르며, 축복이 넘치는 궁전과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여왕이 있는 곳이 곧 궁전이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샤밧이 되기 직전에 가족들은 구제함(푸슈케)에 구제금(쩨다카)을 넣는다. 유대인들은 매주 샤밧 때마다 구제함에 구제금을 넣는다. 이를 통하여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구제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구제함이 다 채워지면 가족 회의를 열어 구제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으로 샤밧을 맞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자세로 샤밧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일이라고 믿는다.

이때 어떤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기도문을 미리 작성하여 낭송한다. 또는 자기가 쓴 것은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종교시를 준비하여 낭송하기도 한다. 어떤 가정들은 다음과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샤밧이 시작되기 전, 식구들이 식탁 주위에 모여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지난주에 자기에게 있었던 좋은 일을 나눈다. 이때 문구의 시작은 다음과 같이 한다. “이번 주에 저에게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작의 일을 나누며 식구들은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그들이 하나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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