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펀치볼은 그 옛날 운석이 떨어져 생겼다는 설과 차별침식분지라는 설이 양분합니다. 전 노아의 홍수 지구 재편 때 만들어진 하나님 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그분이 빚은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도 격려가 될 겁니다.”


함광복 장로님이 그렇게 표현했던 펀치볼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처음부터 긴 팔 옷을 입고 나선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조금만 가면 돌산령터널이 나오는데 돌산령터널 안은 한 여름에도 추우니 꼭 긴팔 옷을 챙겨 입으라고, 전날 보건지소에서 만난 마을분이 일러준 말을 너무 고지식하게 따른 결과였다. 바람막이 긴팔 옷은 이내 땀에 젖고 말았는데 그러면서도 터널이 금방 나타나겠지 싶어 옷을 벗지 않은 채 걸음을 이어갔으니, 역시 모르면 모르는 만큼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금방 나온다고 했던 터널은 한참을 걸었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먼 길을 걸어서야 터널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터널로 향하는 길 바닥에는 파란색으로 그려진 자전거 길이 있었는데 자전거 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것이 있었다. 철조망이었다. 저것이 악보를 적는 오선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철조망에는 음표 대신 ‘지뢰’라는 경고판이 같은 음으로 매달려 있었다. 파란색 자전거길 표지와 붉은색 지뢰 표지,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그렇게도 평화와 위험이 가까이 공존하고 있었다.


해안에서 양구로 가는 길목,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일러주듯 돌산령터널은 참으로 길었다.


돌산령터널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도솔산을 옆으로 끼고 해안과 양구를 잇는 터널이었다. 돌산령터널과 도솔산전투 또한 파란색 자전거길 표지와 붉은색 지뢰 표지만큼이나 역설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돌산령터널 입구까지 오느라 땀은 가득하고 숨은 벅찼지만 곧장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길을 걸으며 정한 원칙 중의 하나는 고개를 만나면 아무리 힘들어도 고개를 넘은 뒤에 쉬자는 것이었다. 힘들다고 중간에 쉬면 다시 일어나 걸을 때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었다.


터널 안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가장자리로 사람이 걸어갈 만한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도로에서 그랬듯이 터널 안에서조차 사람이 걸어갈 길이 따로 없으면 얼마나 위험할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도로보다 조금 높은 곳에 일정한 크기의 콘크리트 덮개가 이어져 있었다. 덮개는 걸을 때마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차 한 대만 지나가도 터널 안에 엄청난 공명이 생겨 마치 거대한 터빈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괴롭기가 여간 아니었지만, 그래도 터널 안에 보행자 통로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만 다행이라 여겨졌다.


돌산령터널의 길이는 2995m, 꼭 5m 모자라는 3km였다. 말이 3km지 터널 속을 그만큼 걸어간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하얀 작은 점 하나가 보이는데 출구지 싶은 그 희미한 점은 가도 가도 여전히 같은 크기를 유지하며 가까이 다가오지를 않았다.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를 돌산령터널은 터널 속을 걷는 내내 생각하게 했다.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준 정장로님.


지루하다 싶을 만큼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또 걸으니 어느 샌가 저 끝으로 하얀 빛의 동그라미가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일이 생긴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터널 맞은편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역광이기도 했지만 혹시 내가 환영을 본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은 그동안 길을 걸으며 길을 걷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처럼 길을 걷는 사람이 있구나, 그 사람을 터널 안에서 만나다니, 기가 막힌 인연이다 싶어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인사라도 나눠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터널 안을 큰 목소리가 울렸다.


“목사님…!”


순간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둠 속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 양 옆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는 맞은 편 사람은 저벅저벅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와서야 나를 향해 걸어온 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성지교회 정장로님이었다. 내가 멍-해 있는 사이 장로님은 빼앗듯이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을 벗겨 자신이 메고는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왜 그랬을까,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장로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었다. 엉엉 울고 싶었다. 두 눈이 금방 흐려졌다.


터널 밖으로 나왔을 때에야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터널 밖에는 장로님의 부인 김권사님이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 내외는 새벽 일찍 길을 떠나 내가 걷고 있겠다 싶은 길을 짐작하며 역(逆)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제법 먼 길을 왔다 싶은데도 내 모습이 보이질 않자 펀치볼 입구인 돌산령터널까지만 가보고, 그래도 보이질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했단다. 그런 마음으로 돌산령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는데 누군가 터널 속을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걷는 모습이 힘이 하나도 없어 보여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하긴 터널까지 오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였으니 걸음이 힘찼을 리는 없을 일이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두 분은 터널 끝으로 나가 차를 유턴하여 반대편으로 온 것이었고, 길가에 차를 세워둔 뒤 장로님이 터널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 만남이 세상에 어디 흔할까? 일어난 일이 비현실적이다 싶어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권사님은 차에 챙겨온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주셨고, 우리는 길가 바닥에 앉아 드문 만남이 주는 은총을 마음껏 누렸다.


길을 걷다 쓰러지면 안 된다고, 앞서간 권사님이 정한 식당은 토종닭 백숙집이었다.


그날 장로님은 바로 돌아서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같이 걸었다. 권사님은 우리보다 앞서가며 식당을 예약하는 등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차를 운전하는 권사님이 여전히 목사의 배낭을 대신 메고서 걷는 장로님께 배낭을 차에 싣자고 했다. 차 뒷자리에 싣고 빈 몸으로 걸으면 훨씬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으니 나도 그러자고 했는데, 장로님은 배낭 안에 큰 보물이라도 있는 듯 고집을 부렸다. 지지 않아도 될 배낭을 종일 메고서 걸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모습이 보물이었다.


그날 나는 장로님을 통해 짐을 함께 진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짐이 무엇인지 짐을 어떻게 벗을 수 있는지 말로 하는 것도 아니었고, 짐을 진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혹은 함께 편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짐을 나누어지는 것, 그러느라 함께 땀을 흘리는 것, 그것밖엔 없었다.


길고 지리한 돌산령터널, 내 배낭을 대신 메고 앞서 걸어가는 장로님의 뒤를 따라 터널을 빠져나올 때, 내가 빠져나온 것은 돌산령터널만은 아니지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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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3)


이 땅 기우소서!


산은 말없이

길을 품고

길은 말없이

산을 넘느니

좋은 벗 좋은 길

좋은 벗 좋은 길


-‘동행’


매해 여름이 되면 부산 <기쁨의 집>에서 주최하는 독서캠프가 열린다. 책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만남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2박3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웃음과 눈물이 터지는, 따뜻하고 진지하고 맑은 모임이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데, 몇 해 전 모임을 가질 때였다. 모임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모임을 마치는 날 ‘동행’이라는 짧은 글 하나를 썼고 노래꾼으로 참여한 박보영 씨가 곡을 붙였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였지만 어렵지 않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던 것은 가사와 곡이 단순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행’의 의미를 서로가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함께 길을 걸을 사람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김정권 목사님이 찾아 왔다. 길을 떠나며 몇 몇 분들에게 기도 부탁을 할 겸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 형이 하루라도 같이 걷고 싶다면서 먼 길을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길을 걷는 일정 동안 형이 유일하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라고 했다.


정권 형은 지금 영월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영월에서 떠나 원통으로 달려왔다. 어둔 밤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형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을 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다음날 일정을 위해 시간을 아꼈다. 형과 둘이 한 방에서 같이 자는 잠, 피곤한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아 형이 잠을 못 이루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아 그날 밤이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단히 씻고는 문제가 된 발을 처치했다. 발가락은 물론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으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떠나기 전날 오집사님이 전해준 약품을 꺼내 할 수 있는 모든 처방을 다했다. 걷기 초반에 탈이 나면 안 된다 싶었기 때문이다. 두툼한 폼 드레싱을 통째로 발바닥에 깔고 압박붕대로 칭칭 감은 뒤에 양말을 신었다.


오늘 걸어야 할 구간은 원통에서 시작하여 양구 해안, 펀치볼까지다. 함장로님이 적어준 로드맵에는 30km로 되어 있지만 이틀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보다는 분명 더 먼 길을 걸어야 할 것이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아는 이는 다 아는 익숙한 말이다. 오지 중의 오지라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입대를 해서 인제나 원통으로 배치를 받으면 마치 땅 끝으로 배치를 받는 느낌이 들었던, 바로 그 원통 길을 걸어서 가게 된 것이다.


곳곳에 탱크로 된 조형물이 있었다. 평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탱크라는 역설.


역시 원통은 최전방 지역이다 싶었다. 지축을 울리며 지나가는 탱크도 여러 대를 보았고, 곳곳에서 총소리도 자주 들려왔다. 탱크가 지나갈 때면 아예 길 밖으로 서너 걸음 피해 있어야 할 만큼 탱크의 위용은 대단했다.


일정 내내 날씨가 비슷했지만 그날 형과 걷는 길은 더욱더 유별났다. 하늘에선 구름을 찾기가 어려웠고 볕은 벌침 같이 쏟아졌는데,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길을 걷는 내내 그늘을 만나기도 쉽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훨씬 더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선배가 함께 걸으니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정권 형은 원통에서 목회를 한 경험이 있어 인근 지리에도 익숙했다. 때마다 길을 묻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한지 몰랐다.


땡볕 아래를 걷다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정권 형이 길가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마을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후배 목사님이었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가려 하는데, 굳이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아직 길은 멀고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 그런데도 후배의 말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던 것은 그 마을을 지나가면 한동안 식당이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후배가 안내한 식당은 후배 목사님 교회의 교우가 하는 식당이었는데, 길가 바로 옆에 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최고의 식당이었다. 그날 우리가 먹은 콩국수를 두고 선배는 당신 생애에 가장 맛있는 콩국수였다고 했는데, 그 칭찬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은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문을 한 콩국수는 한참 만에 나왔는데, 식당을 꾸려가는 분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주문을 받은 뒤에야 콩을 갈았다. 그래야 고소함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면발은 신기할 만큼 쫄깃했다. 궁금해서 여쭸더니 직접 반죽을 해서 만든 면발이라고 했다. 팔과 어깨가 아프도록 치대면 그렇게 쫄깃해진다는 것이었다. 면발이 그렇다면 말씀의 깊은 맛은 더욱 가볍게 드는 것이 아닐 것이었다.


그 식당에서 콩국수 맛보다 더 감동했던 것은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콩국수를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드리자, 당신들은 식당을 찾는 이들은 손님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모처럼 찾아온 형제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저 맘 하나면 되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었다.


고맙고 든든한 점심을 먹고 다시 나선 길, 도로는 더욱 달궈져 있었다. 도로 위에 계란을 깨뜨리면 얼마든지 프라이가 될 것 같았다.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어쩌다 그늘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그늘 아래로 들어 배낭을 베고 누웠는데,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났다. 쓰러지는 것보다는 고꾸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아예 잠이 들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고단한 일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벌침 같은 볕 아래를 걷는 것은 순간순간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드물게 그늘이 보이면 그야말로 고꾸라지고는 했다.


그날 기억될 것은 지글지글 가마솥 같던 날씨도,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던 35km 거리도 아닐 것이다. 먼 길을 찾아와 함께 걸어준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길이 멀고 험할수록 동행은 더욱 든든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갈라진 이 땅 기워달라는 기도가 간절함으로 남은 날이었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다. 점심을 먹으며 정권 형이 드린 기도다. 형은 나직한 목소리로 간절함을 담아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갈라진 이 땅을 기우소서!”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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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2)


지팡이와 막대기


길을 걷는 동안 내내 한 손에 스틱을 잡았다. 스틱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되랴만, 그래도 짐의 무게를 줄이려고 하나만 챙겨 떠난 스틱이었다.


스틱은 몇 가지 점에서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걸을 때면 자동차가 지나는 쪽 손에 스틱을 잡았는데, 운전자가 길을 걷는 나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 스틱을 손에 잡았다는 것은 하나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를 내가 들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동네를 지날 때마다 짖어대는 개들에게는 유용했다. 묶여 있는 개야 묶인 채로 짖다 말 뿐이었지만, 이따금씩은 풀려 있는 개를 만날 때가 있었다. 개가 볼 때에도 그냥 한 사람이 지나간다는 것과 지나가는 사람의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다는 것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스틱은 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짖어대는 개들은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이해하게 했다. 대부분의 개들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짖어댔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는 듯이 짖는 개도 있었고, 그것이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어서 밥값을 하듯 짖어대는 개들도 있었다. 죽어라고 짖어대는 개들도 있었는데,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짖기 시작하여 한참을 지나가도록 짖어대곤 했다. 다른 개가 짖으니까 덩달아 짖는 개들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짖어대는 개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거나 저 스스로가 겁이 많은 개들 아닐까 싶었다. 자기가 겁이 많아 그토록 열심히 짖어대는 것이라 생각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


분명히 나를 처음 보는데도 짖지 않는 개들이 있었다. 유심히 내 모습을 살필 뿐 함부로 짖거나 나대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는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보다는 짖지 않으면서 나를 살피는 개가 오히려 무섭게 여겨졌다.


짖지 않는 개들은 경험이 많아 자기 앞을 지나가는 존재가 자기가 지키고 있는 영역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지의 여부를 금방 파악하고 있다 싶었다. 경계해야 할 때와 경계할 필요가 없는 때를 분간할 줄 아는 지혜와 나설 때와 바라볼 때를 구분하는 용맹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개라 여겨졌다. 김이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고 하지 않는가.


몇 번인가는 길을 걷다가 뱀을 만난 적이 있다. 도로 위로 나왔다가 차에 깔려 죽은 뱀이 의외로 많았다. 한 번은 굵기와 크기가 보통이 아닌 보기 드문 구렁이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몇 번은 살아 있는 뱀을 보았다. 그 중에는 살모사지 싶은 독사도 있었다. 그럴 때면 스틱으로 탁 탁 소리를 내어 뱀에게 피할 시간을 주었다. 뱀도 같은 대지에서 살아가는 생명 아닌가. 사람이 뱀을 잡아먹기 시작한 뒤로 들쥐가 많아지고, 그러면서 렙토스피라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뱀은 뱀대로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지키는데 필요한 자기 몫이 있을 것이었다.


스틱을 잡고 걸으니 생각지 않은 유익함도 누릴 수 있었다. 허리의 각도를 유지하게 해 주었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기가 쉬울 터인데 스틱이 그것이 막아주었다.


도로에 떨어져 있는 것 중에는 못이 많았다. 달리는 차 바퀴에 박히면 어쩌나 싶어 보이는 대로 치워냈다.


스틱의 가장 유용한 소용은 따로 있었다.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못을 치울 때였다. 이상하리만치 도로에는 많은 못이 떨어져 있었다. 한 뼘쯤 되는 긴 못으로부터 어떤 타이어라도 단번에 뚫을 것 같은 굵은 나사못에 이르기까지, 떨어져 있는 못의 종류도 다양했다.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펑크가 나는 주된 원인이 타이어에 못이 박히는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먼 길을 운전을 하고 다녀올 일이 있어 떠나기 전에 가까운 정비소를 찾아갔다. 타이어의 공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을 넣으며 공기압을 재던 정비사가 대뜸 말했다.


“펑크네요.”


바람을 넣어도 공기압이 올라가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타이어에 박힌 못을 빼내는데, 놀랍게도 타이어에는 두 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눈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못이 두 개나 박혀 있다니, 그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달렸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길을 걷다가 못이 보일 때마다 못을 도로 밖으로 치워냈다. 그럴 때마다 스틱을 이용했다. 스틱 끝으로 못을 치워냈는데, 그렇게 치운 못이 제법 많았다.


길을 걷다가 만난 철판. 나사못 몇 개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걸어가며 못을 치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신이 달리는 도로 위에 못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과 누군가 길을 걸으며 그 못을 치웠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생각지 못한 큰 은혜를 힘입어 살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길을 걸으며 스틱이 전해준 유익함은 의외로 많았다. 문득 ‘지팡이와 막대기’가 떠오른다. 목자이신 주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지켜준다는 말씀(시 23편) 속에는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놀라운 은총이 담겨 있을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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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1)


숨겨두고 싶은 길


아직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십이선녀탕 입구는 한산했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식당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가니 할머니가 맞아 주셨다.


걷는 시간을 통해 덤처럼 누렸던 즐거움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때마다 누렸다. 식당에서 만난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손님이 없어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식들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렇게 시골에 살면 외롭지 않으세요?”


할머니에게서 묻어나는 표정을 보면 전혀 외로운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할머니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전혀요. 저는 이곳이 참 좋아요. 실은 친정이 바로 옆 동네예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셈인데 여전히 좋아요. 공기 좋지요, 물 맑지요, 마음 편하지요, 사람들 순하지요, 도시에서 복작거리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간 나는 지복(至福)을, 천복(天福)을 누리며 사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족(自足)하기를 배운 이에게는 그가 서 있는 그 자리가 하늘과 잇닿은 자리이자 은총의 땅, 세상에 부러울 것이 따로 없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숨기고 싶은 길, 알리고 싶지 않은 길이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 걸어야 하는 길을 두고 로드맵에는 ‘반드시 강을 따라가는 옛 국도 고원통로를 찾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로드맵에 ‘반드시’라는 말이 나오면 긴장을 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를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고원통로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 일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식당 주인 할머니의 친정 동네가 그 쪽이기 때문이었다. 젊어서 원통까지 걸어서 다녀오기도 했다는 할머니는 길을 손금처럼 떠올리며 자세하게 일러주었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고원통로 초입을 찾을 수가 있었다.


고원통로는 열하루 일정 중에서 만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세상에서 서너 걸음 물러난 듯, 사람들의 눈길에서 벗어난 듯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도로와 계곡 사이에는 미끈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은 마냥 푸른빛이었고, 떠가는 흰 구름은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것 같았다. 게다가 도로를 지나는 차들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맘 놓고 걸어갈 수도 있었다.


너른 바위 위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햇볕과 바람은 마음까지를 말려주었지 싶다.


계곡 옆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용케 그곳을 알고 있다 싶은 이들이 텐트를 치고서 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두고서 계속 걷기만 하는 것은 고지식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 너른 바위 위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지고 있던 배낭은 물론 스틱, 모자, 신발과 양말까지 벗었다. 목을 두르고 있던 스카프와 손에 끼고 있던 토시도 물에 빨아 바위 위에 펼쳐 놓았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가 편한 바위를 찾아 발을 담갔다. 깨끗하고 맑게 흘러가는 물에 발을 담그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깨끗한 물이 지친 발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수고했다고, 기특하다고 자꾸만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걷느라 발에 남았던 모든 피곤함이 모두 씻겨 나가는 같았다. 옛 선비들이 즐겼다는 ‘탁족’(濯足)이 이런 즐거움이었구나 싶었다.


둘러보니 산과 물과 바위와 나무와 하늘이 막힘없이 어울린다. 그 무엇 하나 어색한 것이 없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자니 나 또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맞다, 나도 자연의 일부,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탁족의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너른 바위로 돌아와 앉아 발을 치료한다. 물집 잡혔던 곳을 둘렀던 밴드를 모두 떼어내고 햇볕을 쬔다. 새로 생긴 물집의 물기도 빼내고 바람을 쐰다.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일 것이지만, 정말로 발을 치료할 것은 약이 아니라 바람과 햇볕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볕은 따가웠지만 바위 위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세월도 저리 흘러가는 것이겠다 싶다.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 되는 건데 무엇 그리 순리를 역행하며 살까,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이 문득 어리석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불쌍하고 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바위에 앉아있는 시간은 마음까지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느라 날이 저물고 소나무 아래 어디선가 하루를 묵어도 좋겠다 싶지만 아직도 남은 길이 있다. 햇살이 배어 가볍게 느껴지는 배낭을 다시 메고, 햇살이 말린 뽀송뽀송한 양말을 신고, 햇살이 눅눅함을 모두 지워낸 신발을 신고 일어서니 걸음이 새롭다.


이름도 위치도 다 말했으니 이런 어리석음이 어디 있을까만, 그래도 그 길은 끝내 숨겨두고 싶은 길 중의 하나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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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0)


도움 받으시다


우연히 눈에 띈 표지판 덕에 번잡한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걷던 중 한 미술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다 있구나 싶은,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백공미술관>이었다.


때마침 한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몇 시에 개관을 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10시라 했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시간 차이가 제법 났다. 그냥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가 말했다.


“관심 있으면 들어오셔도 돼요.”


덕분에 2층으로 된 미술관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나를 받아준 직원은 일일이 전시관의 조명을 켜주며 불편 없이 둘러보게 해주었다. 수화 김환기, 고암 이응노 등 익숙한 화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낯선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낯선 것은 그의 한계가 아니라 나의 한계다. 내가 그를 모르는 것이다.


작품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준 직원에게 고맙다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는데, 얼마쯤 걷다보니 저만치 정체불명의 물체가 눈에 띄었다. 도로 옆 잣나무 숲에 뭔가가 서너 개 놓여 있는데, 바위 같기도 했고 무엇인가를 덮개로 덮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가야 할 길이 멀어 그냥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생각하니 내가 이 길을 언제 또 지날 수 있을까 싶었다. 걸음을 되돌려 잣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조각상이었다. 그것도 예수님에 관한 조각이었다. 작품마다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 십자가 지시다’,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 조각이었다. 커다란 화강암을 쪼아 만든 작품이었는데, 돌이라 그랬을까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이 묵중하게 전해져 왔다.


잣나무 슾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각 작품. 예수 십자가 지시다,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작품 앞에서 사진을 한 장씩 찍고는 다시 맨 앞에 있는 작품 앞으로 왔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다 알 수가 없었다. ‘예수 키레네시몬의’이라는 제목은 보이는데 그 다음 제목이 떨어진 잣나무 마른 잎에 덮여 있었다.


조각된 내용이 작품의 제목을 짐작하게 해주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조각 앞에 무릎을 꿇고는 마른 잎을 손으로 치워냈다. 마침내 묻혀 있던 제목이 드러났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이랬다.


‘예수 키레네시몬의 도움 받으시다’


제목을 확인해야 했던 첫 번째 작품,  예수 키레네시몬의 도움 받으시다.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새기게 했다.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조각된 작품은 마치 돌에 새겨진 두 사람이 걸어서 나오듯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구레네 시몬이 지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야 복음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마치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만난 것처럼 작품은 다가왔다.


가만히 바라보니 예수님도 시몬도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다. 십자가는 모순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순명(順命)이란 눈을 감는 것이다.


어쩌면 구레네 시몬은 억울함과 불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에게 멍에처럼 주어진 존재의 모순과 함께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시몬에 대한 미안함으로 두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다. 하지만 허투루 지지는 않는다. 힘에 부친 십자가를 행여 놓칠까 두 손으로 십자가를 꼭 붙들고 있다. 십자가는 시몬의 어깨와 뺨에 닿아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어느새 기꺼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겨진다.


시몬의 바로 뒤에 예수님이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보이지 않는다. 앞뒤로 두 사람이 섰지만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예수님인지를 대번 알게 하는 표지가 있다. 얼굴의 크기나 모양이 아니다. 머리에 쓴 가시면류관이다. 가시면류관은 한 사람의 머리에만 씌워져 있다.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빛의 광채가 아니라 가시면류관을 쓴 모습이 그가 예수님임을 말없이, 그리고 충분히 일러준다.


그 때 그랬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위나 규모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광채나 후광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머리에 쓰고 있는 가시면류관이 그가 예수님의 참 제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십자가를 시몬에게 넘긴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모습으로 당신 대신 십자가를 지는 시몬을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품을 바라보며 두 눈이 뜨거웠던 것은 십자가를 시몬에게 넘긴 예수님의 두 손이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당신 대신 십자가를 지지만, 여전히 주님은 한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있었다. 너희들이 십자가를 질 때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시몬의 어깨와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두 눈을 감았지만, 당신의 십자가를 지는 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를 주님을 알고 계시다. 무엇을 가장 힘들어 하는지도 알고 있다. 눈을 감아도 아신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손을 내미신다.


자신의 어깨와 얼굴에 닿는 예수님의 손길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것을 알기에, 시몬도 자신의 눈을 감은 것인지도 모른다.


십자가의 길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나만 혼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뒤에서 주님도 나와 함께 그 아픔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주님이 눈을 감듯, 내게 필요한 것도 눈을 감는 것이었다.


내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몰랐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걷다가 우연처럼 만난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는 늘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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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9)


작은 표지판


진부령 정상에서 용대리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걷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게 했다. 아직 세상이 눈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한적한 길, 그런 길을 혼자 걷는 즐거움을 어느 누가 흔하게 누릴까. 오가는 차도 드물뿐더러 길도 내리막길어서 나도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제법 걸어 내려왔다 싶을 때 저만치 앞쪽으로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기암괴석이 질주하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용대리(龍垈里)라는 지명이 바로 저 바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용 용’(龍) 자에 ‘터 대’(垈) 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암괴석은 영락없이 용의 등 비늘을 빼닮았다.


     용의 등 비늘을 닮았지 싶은 바위가 산등성이를 내달리고 있었다.


마침 길가에 문을 연 식당이 있었다. 황태전문식당이었는데 30년 외길을 걸어온 원조집이라 쓰여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는데 주인인 두 부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 모습이 두 가지 점에서 반갑고 고마웠다.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 찾은 나를 기꺼이 맞아주었다는 것이다. 혼자 들어가면 받아주지 않는 식당도 있었는데, 그런 일은 걷기 전에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경험이었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 가야 한다는데, 황태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서른세 번 손이 간다고 한다. 최상품 황태는 ‘하늘과 손을 잡아야 나온다’ 할 만큼 자연의 도움 없이는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바람, 눈, 햇볕, 기온, 네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용대리는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본래 황태의 고향은 함경도 원산이라 한다.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원산의 실향민들이 황태 덕장을 만들 곳을 찾았는데,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들의 눈에 띈 곳이 인제 용대리였단다. 입지 조건과 기후 조건이 원산과 그 중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국내 최고의 적설량과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 ‘풍대리’라 불릴 정도로 거세게 부는 찬바람, 용대리는 명태를 황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덕장의 입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용대리에서 나는 황태는 최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데, 전국 황태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혼자서 먹는 밥이 무엇이 맛있겠는가만 그날 아침 황태해장국은 달랐다. 황태해장국이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감탄을 했다. 황태해장국을 처음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맛에 반하기는 처음이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얼마나 시원하고 달고 고소하던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비웠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걸음도 가벼워진 듯했다.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매바위 인공폭포 삼거리가 금방이었다.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간 적이 여러 차례 있어 익숙한 곳, 하지만 걸어서 그 앞을 지나가니 그곳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생각지 않은 길을 발견한 즐거움은 컸다. 한적한 길을 걷다가 만난 풍차.


다음 행선지는 백담사와 십이선녀탕이다. 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뜩해지려 할 때, 생각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작은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백담사라 적힌 표지판이 큰 도로에서 벗어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인근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 물었더니 맞단다, 그 길로 가도 백담사 방향으로 갈 수가 있다고 했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표지판을 내내 감사할 정도로 새로 정한 그 길은 한적하고 편했다. 2차선으로 된 도로로, 주로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 같았다. 그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내가 걸어가고 있을, 차들이 질주하고 있는 도로를 개울 건너편으로 바라볼 때마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은 새로웠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제 자리에 서 있는 표지판은 귀하다. 아무리 구석진 자리에 서 있어도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는 표지판은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표지판의 소용은 크기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에 서서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는데 있다. 자기 자리에 서 있기만 하다면 누군가에게는 두고두고 고마워 할 길잡이가 된다.


오래 전에 드렸던 ‘어느 날의 기도’ 하나를 다시 떠올린다.


어느 날의 기도


볕이 쬐면 볕을

비가 오면 비를

눈이 날리면 눈을 맞으며

자리를 지킵니다

실핏줄처럼 금이 가고

푸른 이끼 멍처럼 돋아도

몸에 새긴 글씨

지켜내게 하소서

폭풍 속 흔들려도

꺾이지 않게 하시고

외발로 선 시간

막막하지 않게 하소서

머무는 이 없어도 좋습니다

초라하면 어떻습니까

갈림길 끝

길을 찾는 누군가에게

가야 할 곳 제대로 가리키는

바른 표지판이게 하소서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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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8)


왜 걸어요?


이 또한 드문 경험이었다. 그곳이 식당이든, 길가 평상이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면 누군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드물기도 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행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겠다 싶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나는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한 나절이 아니라 여러 날 걷는 사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배낭 때문이었다. 배낭이 유별났던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만난 이들 중에는 배낭의 무게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따로 재어보질 않았으니 나도 몰랐다. 일정 중에서 도피안사를 찾아갈 때였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이라니, 그 오랜 세월을 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불과 몇 백 미터를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표지판을 잘못 이해를 하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필이면 도피안사(到彼岸寺)로 가는 길에 길을 잘못 접어들다니,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긴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나는 법이니까.


농로를 걸어가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길을 확인하며 보니 제법 큰 저울 위에 블루베리가 담긴 광주리가 올라 있었다. 저울에 배낭 무게를 재보아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얼마든지 그러라 했다. 배낭 무게는 11kg 정도였다.


그러니 배낭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배낭보다는 배낭 뒤에 걸려 있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배낭 뒤에는 대개 덜 마른 양말이 걸려 있었다. 다른 빨래와는 달리 아침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 양말을 옷핀으로 배낭에 매달고 걷다보면 어느 샌지 잘 마르고는 했다. 혹시나 싶어 챙긴 옷핀은 의외의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양말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은 신발이었을 것이다. 폭우 속에 진부령을 넘은 것을 안 이 장로님은 먼 길을 신발을 사가지고 달려오셨다. 내미는 신발을 대하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따뜻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낭 무게를 줄인다며 떠나올 때 여벌 신발을 챙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신발이 한 켤레밖에 없으니 젖은 신을 신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길을 걷는 중간 중간 신발을 벗어 햇볕에 말리곤 했다.


장로님 마음에는 젖은 신발로 걷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을 것이다. 하긴 젖은 신을 신고 먼 길을 걷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물집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일이었다.


배낭 안에는 짐이 더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다행히 장로님이 신발과 함께 전해준 물품 중에는 간단한 고리도 있어서, 신발을 배낭에 매달 수가 있었다. 덜렁덜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낭에 매달린 신발이 춤을 췄다.


이따금씩은 신발이 잘 매달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배낭 뒤에 매달려 있어 눈에 보이질 않으니 손을 돌려 만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오른쪽으로 한 번은 왼쪽으로, 신발을 차례로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굳이 두 짝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두 짝 중에서 하나만 없어져도 나머지 하나는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 속에는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남은 하나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발이었다.


막 떠나기 시작한 기차에 오르는 순간 구두 한 짝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굴러 떨어지자 얼른 나머지 한 짝을 기차 밖으로 벗어던졌다는, 간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러냐고 수행원들이 놀라 물었을 때 간디는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누군가 내 구두를 신는다면 두 짝이 다 있어야 신지 않겠나?”


길을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걷느냐는 질문이었다. '하늘 꼬리'라는 '천미리'를 지날 때, 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까마득하다.


무더위 속 양말과 신발을 배낭 뒤에 매달고 다니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이들은 뭔가 궁금한 것이 있어 내게 다가와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이었다.


열하루를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은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왜 걸어요?

-어디까지 가요?

-혼자서 걷는단 말이예요?


도대체 왜 걷는 걸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길을 걷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제주도 올레길이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는 이유는 뭘까, 대뜸 짐작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허리가 잘린 이 땅에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분단의 땅 DMZ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대답을 하면 대개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까지 가요?”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로 바뀌었다. 일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루에 30km 이상씩 열하루 동안을 걷는다는 것도 그렇고, 열하루를 걸으면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를 걸을 수 있다는 것도 평상시엔 떠올리지 못한 생각이지 싶었다.


세 번째 질문도 많이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혼자 걸으면 너무 외롭지 않느냐, 위험하지 않느냐, 대개는 그랬다. 걸어보니 외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대답을 하면 나를 성격이 별다른 사람인양 바라보고는 했다.


연배가 나와 비슷한 이들은 세 가지 질문 외에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이곤 했다. 물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지금 나이가…?”


내 모습을 보니 나이가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젊어 보이는 나이도 아니었을 터, 내가 나이를 말하면 반응은 비슷했다.


“대단하네요!”

“나도 한 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십이선녀탕으로 가던 중에 만난 한 남자 분은 특히 관심이 많아 햇볕에 널어 말리던 내 신발이 나무 그늘 안으로 들자 얼른 햇볕 밖으로 옮겨주면서까지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걷고 있는 로드맵을 궁금해 하여 메일 주소를 받았고, 다녀온 뒤에 보내드렸다. 언젠가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가만히 보면 오르막 같기도 하고 내리막 같기도 하다. 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김화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중년의 남자 분이 있다. 점심을 먹고 이어갈 길을 확인하느라 길을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그는 DMZ를 따라 걷는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식사를 다 마쳤음에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던 그가 내 나이를 물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나이를 확인한 뒤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 그런 일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에 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꼭 걸어봐야겠네요.”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된 자극이 고마웠던 것일까,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고 싶었을까, 그 분은 이야기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점심값을 계산했다. “모든 일정을 건강하게 잘 마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행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정체, 차림새만 보고도 먼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엄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과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만한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살아가는 모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 모습만 보면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는 믿음의 표지와 표식이 과연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문득 떠오르는 말씀(베드로전서 3:15)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우리를 향한 권면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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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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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7)


오래 걸으니


오래 걸으니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걷기 전에는 몰랐고, 알았다 해도 희미한 것들이었다.

 

내 발이 비로소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발이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느낌은, 그동안 내 땅에 발 딛고 살면서도 내 발이 충분히 현실에 닿지 못했다는, 허공을 딛듯 현실과 거리감을 두고 살아왔다는,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어설프고 어색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낯설고 새로웠다. 오래 걸으니 어느 순간부터 땅이 내 발을 붙잡는 것 같았다


속도에 대한 느낌도 새로웠다. 걸어보니 이게 맞는 속도구나 싶었다. 풀이 자라는 속도, 꽃이 피어나는 속도, 바람이 지나가는 속도, 곡식이 자라는 속도, 나비와 잠자리가 나는 속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속도, 냇물과 강물이 흘러가는 속도, 농부가 논둑을 따라 걸어가는 속도…, 걸어보니 그게 맞는 속도라 여겨졌다.


잠자리 한마리가 길 위에 앉아있다. 어릴적 왕잠자리라 불렀던 잠자리를 오랜만에 보았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질주하는 것, 비행기를 타고 나라와 대륙을 건너는 것, 우리가 점점 익숙해져 가는 기계의 속도는 본래의 속도가 아니었다. 그러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참으로 많았고, 우리가 놓치는 것들은 우리 삶에 더없이 소중한 본질적인 것들이었다. 엉뚱한 것들을 쫓느라, 엉뚱한 것을 쫓는다는 것을 잊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분주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주하다는 것을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하면서.


이른 아침 진부령을 떠나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폭우가 내린 다음날 이른 시간이라 그랬을까 아침 공기가 더없이 신선했다. 계곡을 따라 마음껏 피어나고 있는 산안개는 계곡 전체를 한 폭의 수묵화로 만들었고, 나는 마치 그림 속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얼마든지 풍경 속으로 사라져도 좋을, 우주 속 먹물 한 방울 같은 존재였다.


산안개가 퍼져가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산 중턱에 선 늠름한 소나무였다. 때로는 부는 바람을 따라 산안개가 걷히며 나타나기도 했다. 은은하면서도 위엄이 서린 붉은빛이 감도는 장대한 소나무가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을 것 같은 산 중턱에 의젓하게 서 있었다. 막 퍼져가는 산안개를 바라보다가, 그러다가 슬쩍 걷히는 산안개를 바라보다가 거기 말없이 서 있는 소나무들을 보았다. 굵은 소나무가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슬며시 제 몸속에 긋고 있는 나이테, 그 속도를 생각했다.


밤꽃이 피고 장미가 피고. 그것이 집을 다 덮어도 동네 사람들이야 그곳이 가게임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길을 걷고 있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전봇대 전선 위에 앉아 노래를 한다. 왜 그럴까, 작은 새일수록 노래가 더욱 해맑게 들린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새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분다. 주거니 받거니, 한동안 노래가 이어졌다. 살아 있는 매 순간을 노래하는 새, 그 또한 맞는 속도겠다 싶었다. 노래와 시를 잃은 삶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작은 새를 지나오니 이번에는 까마귀가 반긴다. 전봇대 꼭대기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뭐라고 뭐라고 지껄이기 시작한다. 떠들어대는 투가 제법 사람의 말투를 닮았다. 말을 마치자 앞쪽에 있는 전봇대 위에서 다른 까마귀 한 마리가 대꾸를 한다. 방금 지껄인 까마귀와는 사뭇 다른, 낮은 목소리로 말을 받는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보면 앞쪽의 까마귀가 상관 같은데, 내 짐작에는 이런 말을 나누지 싶다.


-여기 이상한 사람 하나가 지나가고 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수상한 가방 하나를 메고 있다. 이처럼 이른 시간에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어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뭔가 수상하다, 오버!


-알았다. 나도 보고 있으니 계속 감시하고 수시로 보고하라, 오버!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소임을 다하며 사는 삶, 그것 또한 지당한 속도일 것이다.


숭의전 입구 어수정에 들렀을 때이다. 어수정(御水井)은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과 철원(당시 태봉)을 왕래하면서 마시던 물이라 한다. 샘이 얼마나 맑고 시원한지 한 바가지 가득 물을 떠선 꿀꺽꿀꺽 물병에 물을 채우듯 단숨에 다 마셨다. 시원함을 넘어 물이 달기까지 했다.


하지를 맞아 어수정에서 감자를   씻고 있는 동네 할머니. 때를 따르는 삶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마침 어수정에는 한 할머니가 나와 감자를 씻고 있었다. 어수정에서 솟은 샘물로 씻는 감자, 그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햇감자를 캐셨나 봐요?”


할머니께 여쭸더니 할머니가 나직이 웃으며 대답을 하신다.


“예, 오늘이 하지여서 하지감자 쪄 먹으려고 좀 캤어요. 날이 가물어서 그런지 감자알이 생각보다는 작네요.”


할머니는 ‘하지’(夏至)를 ‘하지’로 보내고 있었다. 무심하게 보내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날이 일 년 중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지를 하지답게 보내기 위해 그동안 자란 감자를 캔 것이었다. 시간만 된다면 할머니를 따라가 하지감자를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자연 속에서 살며 자연의 흐름을 순연히 따르는 삶, 저보다 순박하고 그윽하고 아름다운 삶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절기는 물론 언제 계절이 지나간 줄도 모르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시간의 흐름을 따르며 즐거워하며 사는 삶, 그것이 맞는 속도였던 것이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내 발이 내 땅에 닿았다.

오래 걸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속도가 보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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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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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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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6)


할머니 민박


폭우가 쏟아지는 진부령을 걸어 오르다 만난 두 사람의 웃음이 선하다. 부부지 싶은 두 사람은 우비를 입은 채로 버스 정류장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 서 있는 두 대의 자전거, 필시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서 길을 나섰다가 생각지 않았던 폭우를 만나 버스 정류장으로 피한 것이리라.


여전히 비를 맞으며 그 앞을 지나가자 두 사람은 빙긋 나를 보고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 나도 두 사람을 향해 빙긋 웃었다. 두 사람도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았으리라. 때로는 말로 하지 않아도 웃음 하나로도 나눌 수 있는 고마운 마음들이 있다.


다녀보니 숨어 있는 아름다운 곳들이 많았다. 모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마침내 진부령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폭우 속을 걸었으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젖어 있었다.


잠을 어디서 자야 할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로드맵에도 진부령에서는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그곳에 감리교회가 있다니, 마지막 기댈 곳 하나는 있는 셈이다 싶었다.


진부령미술관 맞은편으로 식당 몇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마침 식당 밖에 나와 있던 한 아주머니가 어서 들어오라며 나를 맞는다. 내게 급한 것은 저녁을 먹는 것보다도 숙박할 곳을 정하는 것이었다.


인근에 잠을 잘 곳이 있는지를 묻자 아주머니는 펜션이 한 곳 있긴 한데 문을 열었는지를 모르겠다면서 전화로 확인을 했다. 잠시 서서 결과를 기다렸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것을 보니 영업을 안 하는 것 같단다. 비수기에는 문을 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난감해하고 있는 내게 아주머니는 저만치 아래를 가리키며 할머니가 하는 민박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보라고 알려준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걸음을 옮기려 하자 아주머니는 내게 저녁부터 먹고 가라고 한다. 세상에나, 온몸이 다 젖은 것을 보면서도 저녁부터 먹고 가라니. 아마도 아주머니는 내가 다시 당신네 식당을 찾아올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먹겠다며 걸음을 옮겼는데, 나중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 있는 곳으로 올라가자 아주머니는 나를 예약손님처럼 반겼다. 눈에 들어오는 메뉴를 가진 식당이 그 옆에 있는데도 나는 무슨 의무감 혹은 부채감 비슷한 것으로 아주머니네 식당으로 들어갔다. 묘한 기분이었다.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나오는 내게 아주머니는 저녁을 맛있게 먹었는지가 아니라 내일 아침은 몇 시에 먹을 것인지를 물었는데, 아주머니는 그렇게 식당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분이지 싶었다. 어설프게 대답을 하면 내일 아침 아주머니가 민박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내일은 새벽 같이 길을 나설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실제로도 새벽에 길을 나섰다.


길가에 접해 있는 할머니 민박집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누가 계시냐고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을 더 큰 소리로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 숙소를 못 구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 마침 전화번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화를 드리니 할머니가 받으신다. “오늘 민박 안 하나요?” 여쭸더니, “아니요, 내가 지금 안에 있는데요.” 하신다. 잠시 후 창문이 열리는데 할머니였다. 잠깐이긴 했지만 우리는 얼떨결에 핸드폰을 들고서 영상통화를 한 셈이었다.


진부령 정상의 할머니 만박집. 할머니가 켜준 보일러 덕분에 젖은 빨래들을 모두 말릴 수가 있었다.


밖으로 나온 할머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대뜸 “보일러를 켜드려야겠네.” 하며 집 뒤편으로 가신다. 더운 여름 날씨라 해도 비에 다 젖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한눈에 알아보신 것이었다. 어디선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방바닥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배낭을 열어보니 배낭 안의 옷들도 다 젖어 있었다. 챙겨간 세 권의 노트도 마찬가지였다. 배낭에 덮개를 씌웠지만 폭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배낭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죄 꺼내 방바닥에 폈다.


내게는 꼭 필요한 숙소였다. 보일러를 켠 숙소 덕분에 빨래를 말릴 수가 있었다. 물론 신발은 다 마르지가 않아 어쩔 수 없었지만, 다른 빨래들을 말릴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더할 나위없는 다행이었다.


모든 숙소는 선불이었다. 하긴 잠을 자다 말고 어디론가 사라지면 숙박료를 받을 방법이 없을 터이니. 할머니께 숙박료를 물으니 2만원이라 했다. 생각 없이 2만원을 드렸는데, 다음날 길을 걷다 생각하니 2만원이면 보일러 기름 값도 안 되었겠다 싶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느라 할머니를 뵙질 못했다. 언제라도 진부령을 지날 일이 있으면 하루 묵었던 할머니 민박집을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지 싶다. 보일러를 틀어주신 할머니의 배려에 비하면 머리맡에 놓고 온 천 원짜리 두 장은 너무 형식적인 인사였다 싶기 때문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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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5)


몇 가지 다짐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다. 걸으면서 지킬 몇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첫째, 잠은 허름한 곳에서 잔다.

둘째, 밥은 최소한의 것을 먹는다.

셋째, 꽃 한 송이, 풀잎 하나 꺾지 않는다.

넷째,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킨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지키기 쉬웠던 것은 네 번째 다짐이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다니면서 내가 버리지는 말아야지 했다. 배낭 밖에 있는 주머니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 담았다가 숙소에 들어가면 봉지를 비웠다. 당연한 일인데도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또 하나 잘 지킨 것이 세 번째 다짐이다. 사실은 그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야생 더덕을 만나도 캐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었는데 마음이 슬쩍 슬쩍 흔들리던 순간들이 있었다.


강원도 외진 곳에는 먹을 것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도 잘 익은 오디가 곳곳에 흔했다. 어릴 적만 해도 오디가 익을 철이 되면 동네 어린 우리들의 입은 누구 따로 예외 없이 먹물 묻은 듯 시커멓게 변하곤 했다. 오디가 까맣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차례가 돌아오질 않으니 아직 덜 익어 신맛을 내는 붉고 푸른 오디를 따먹곤 했다.


그런 시절을 두고 이제는 오디를 딸 사람이 없어 그냥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골마다 아이들은 없고 노인들은 손이 미치지 못하고, 커다랗게 잘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 그냥 지나갔다.


곳곳에 산딸기도 많았다.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가 보이면 침이 고였다. 특히 목이 마를 때 딸기가 눈에 띄면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폐가지 싶은 돌담에 잘 익은 앵두가 올망졸망 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개량 보리수이지 싶은 붉은 열매가 눈에 띌 때에도 얼마든지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몇 번인가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띄었지만 그 또한 뜯지 않았다. 그냥 두면 나중에 누군가가 행운처럼 만나지 않을까.


세 번째 원칙을 지킨 것이 준 도움이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가 있었다. 로드맵에는 하루 평균 걸어야 할 거리가 30km 정도라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차량 내비게이션 거리, 실제 걸어보니 35km 정도가 되었다. 오디를 따거나 산딸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날그날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도움 받은 것도 소화와 관련이 있다. 일정 내내 배낭에 넣은 휴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평소에 먹고 마시던 음식과 물이 다르기에 소화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써야지 싶어 비상용 휴지를 챙겼는데,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빨래를 했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숙소는 그래도 좋은 숙소였다.


허름한 집에서 자겠다는 첫 번째 다짐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숙소는 허름한 모텔이었다. 묵는 곳이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하룻밤 잠만 자고 다음날 일찍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굳이 좋은 곳을 택할 이유도 없었다. 샤워를 할 때 따뜻한 물이 나오고, 빨래를 한 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곳이면 매우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하루는 할머니가 하시는 민박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자기도 했다. 큰 회관에서 혼자 잠을 자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눕기만 하면 이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묵었던 옥계리 마을회관.다음날 아침 부녀회장님 댁에서 먹은 아침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가족 5명과 한 식탁에 앉았으니까.


이틀 밤은 생각지도 않게 편한 숙소에서 잤다. 화천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큰 훈련을 마친 때라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았고, 덕분에 숙소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망설이다가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하여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후배는 아예 교우가 하는 펜션을 잡아주었다. 일정 중 마지막 밤은 일부러 먼 길을 달려온 이 장로님의 배려로 편안하고 조용한 펜션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밥을 최소한의 것으로 먹어야지 했던 두 번째 다짐도 첫 번째와 비슷했다. 혼자 다녀보니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식사였다. 밥은 모두 식당에서 사 먹었는데(두 끼는 식당을 만나지 못해 비상용 간식으로 대신했지만),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 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안 받는다고 하여 도로 나온 식당도 있다. 받아준다고 해도 혼자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많지도 않았다. 백반과 김치찌개, 콩국수가 그 중 무난한 메뉴였다.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메뉴 선택도 제한이 되었다.


열하루 동안 땡볕 아래를 걷는 일정,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쓰러진다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 분들이 있었다. 정 장로님 내외분, 이 장로님 내외분, 화천의 박 장로님 내외분,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단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고마운 격려를 듬뿍 전해 받는 시간이었다.


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길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지 싶다.

인생의 길과 믿음의 길도 그러면 어떨까 싶다.

사소해 보여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며 걸어간다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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