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0)


어머니의 마중


아흐레째 일정은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했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솟는 호텔이 있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호텔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빨래 말리는 건조대까지 구비가 된 좋은 숙소였다. 입구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고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성지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한 구수감리교회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주인은 구수교회 권사님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내게 권사님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꿀을 전해주었다. “정말로 좋은 꿀이에요. 걸으면서 드세요.”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권사님이 주신 꿀을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섞어서 마셨다.


걸음을 서둘렀다. 전날 희준 형(兄)이 전화를 해서는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한 터였다. 길을 걷는 동생을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형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백마고지역에서 점심때쯤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옛 다리와 새로 놓은 다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땅이었다. 한탄강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숨은 비경들이 한참 이어졌다. 시간만 된다면 천천히 걸으며 곳곳의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다. 가야할 길이 있고 점심 약속도 있는지라,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야 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도피안사를 거쳐 철원제일교회 앞을 지날 때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형은 일찍 도착을 했던 것이었다. 열하루 일정의 후반부, 그렇지만 걸음을 재촉했다.


철원이면 그래도 익숙한 지명, DMZ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긴 철조망이 도로 양쪽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철조망에는 지뢰가 묻힌 곳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이 땅의 아픔은 그렇게도 길고 질긴 것이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주마간산처럼 지나가는 것이 무척 아쉽게 여겨졌다.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길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기다리는 대신 내가 걷는 길을 짐작하여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니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동행을 했나, 아내가 같이 왔나 짐작이 안 됐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며 보니 어머니였다. 멀리서도 흰 머리가 보였다. 어머니가 형과 동행을 하여 찾아오신 것이었다. 저 앞에 걸어오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솟았다. 내일 모레가 아흔인 어머니가 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마중을 나오실 줄이야.


군에 입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막 자대에 배치를 받은 어느 토요일, 갑자기 내부반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를 온 사람이 있으니 속히 옷을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은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알릴 새가 없었는데 누가 면회를 온 곳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위병소로 갔을 때 저만치 눈에 들어온 사람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큰 형 가족과 함께 면회를 온 것이었다.


그 때도 왈칵 눈물이 솟았었다. 입대하던 날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전라남도 광주, 광주에서 떨어진 송정리, 그곳에서도 한참 떨어진 평동, 어찌 그 외진 곳에 배치 받은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일까.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돌아서는 어머니께 다시는 면회를 오지 마시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면회를 다녀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모금과 노력동원으로 지어진 건물.

전쟁 중 내부는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벽체는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길을 걷는 내가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목사의 어머니로서 가뜩이나 아들과 아들의 목회를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괜한 걱정만 끼치는 일이다 싶었다. 그래도 거리가 저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른 눈물을 삼키고 감정을 추슬렀다.


“애도 아닌데 무슨 마중을 나오세요?” 밝은 웃음으로 어머니와 형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길을 걸었다. 마중이 길었던 만큼 함께 걷는 길도 길었다.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며 젊은 시절 어머니가 남쪽으로 넘어오실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여쭤 들었다. 새댁 시절, 일 년 전 서울로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셨던 어머니, 내려오면서 겪었던 무용담 같은 일들,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어떻게 그런 담력과 용기를 가지셨을까,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어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시고는 한다. 군에 가는 손자에게,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당신의 젊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얼마든지 용기를 내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하시고는 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온 어머니의 마중과,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만나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어디 그런 시간 그런 길이 흔할까, 그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17. 오래 걸으니 http://fzari.com/980 

18. 왜 걸어요 http://fzari.com/981

19. 작은 표지판 http://fzari.com/982 

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23. 이 땅 기우소서! http://fzari.com/98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25. 해안(亥安) http://fzari.com/991 

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34.,거미의 유머 http://fzari.com/1010 

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http://fzari.tistory.com/1013 

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http://fzari.com/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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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목사님 어디쯤이신가요?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 한영순 권사님 댁이 김화 사거립니다. 이 폭염에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김화를 지나면서는 함광복 장로님이 꼭 찾아가기를 권했던 한 권사님을 뵙고 가기로 했다. 김화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점심 무렵,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함 장로님이 권한 찌개 잘한다는 식당이었을까,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그런지 손님이 많아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은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을 찾았고, 마침 보신탕과 삼계탕을 하는 식당을 찾았다. 삼계탕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밥값까지 계산을 했다. 당신과 나이차가 많지 않은 사람이 열하루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얻게 된 용기에 대한 답례였지 싶다.


찌개 잘하는 곳이지 싶은 식당에 손님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점심을 먹은 뒤 한 권사님 댁을 찾아보려 한다고 함 장로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이내 답장이 왔다.


“그 집이 소문이 났나 봐요. 저희가 갈 때도 늘 붐볐습니다. 점심 드시고 한 권사님 만나보세요. 봄에 지나갈 때 행정서사 간판은 내려지고 한영순 문패는 있었으니까 생존해 계신다는 뜻일 텐데~. 그새 혹시?”


식당 주인은 물론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 권사님을 아는 이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화가 박수근 씨의 결혼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던, 순교자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했다. 마침 연세가 지긋한 분이 오래되었지 싶은 가게를 지키고 있어 여쭸더니 다행히도 집의 방향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영순 권사님 댁. 우편함에는 두 분의 이름이 여전히 적혀 있지만 한권사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뒤였다.


맞았다. 집 앞 벽에 걸린 우편함에 한영순·이종녀 두 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마찬가지,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영 아쉬운 걸음, 바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출타했다 돌아오시는 건 아닐까 싶어 현관문 위에 흙으로 지은 제비집도 쳐다보고 길가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참 잘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백발의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시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신다. 이종녀 할머니 되시느냐 여쭸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다.


꼭 찾아뵙기를 원했던 함 장로님의 당부는 물론 오래 전에 있었던 일도 말씀을 드렸다. 단강에서 목회하던 시절, 원주지역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국내 성지순례 길을 나서 철원, 김화 지역을 방문하여 순교하신 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을 제안한 사람도 안내를 맡은 사람도 모두 함 장로님이었다. 그 때 한영순 권사님을 뵙고 권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있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던 이종녀 권사님은 밖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셨다. 땀과 먼지에 젖은 허름한 행색, 조심스러웠지만 거듭되는 권유에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잠깐 기도를 드리는 사이, 권사님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다.


먼저 한영순 권사님의 근황부터 여쭸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다. 2013년 8월,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괜한 걸 여쭤서 죄송해요.” 말씀드리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시는데 목소리가 더없이 낮고 조용하셨다. 이종녀 권사님은 혼자 살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약봉지들, 권사님도 건강이 좋아 보이시지가 않았다.


한영순 권사님의 부인 이종녀 권사님. 말씀을 아끼시는 모습이 오히려 많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이미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싶었다.


권사님께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에 대해서 기억나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지만, 권사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왜 그랬을까, 모두가 지난 일이라는, 더 이상 순교의 의미도 찾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 소중한 이야기를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시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종녀 권사님은 말씀을 아끼시고, 오래 전 한영순 권사님께 들은 이야기는 희미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함광복 장로님이 쓴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라는 책에는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글로, 12명의 순교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함 장로님의 글을 찾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순교자들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도 남기지 않았다. 추가령 열곡대의 바이블루트에서는 12명의 기독교 목회자가 순교했지만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DMZ 순교사는 '꾸며낸 얘기'란 비아냥이 늘 뒤따르고 있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38선 이북에서 일어났고, 전쟁은 공교롭게 그 사건 현장에서 끝났다. 그 자리를 밟고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순교 사건은 이렇게 DMZ 속에 묻혀버렸다.


DMZ의 그 사건이 들먹여질 때마다 나는 큰 눈에 우람한 몸집의 노인 한영순씨(韓英珣..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생각했다. 노인은 학사 4거리에서 그의 고향 금성 가는 길 쪽으로‘한영순 행정서사’ 간판을 내고 20년 째 '반 대서소, 반 농사 일'을 하고 있다. DMZ 넘어 금성까지는 50리. 그곳은 그의 할아버지 한사연(韓士淵)목사의 금성교회와 노목사의 순교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한 목사는 8.15 해방을 71세에 맞았다. 김화 창도 금성 3교회의 감리사를 맡고 있을 때다. 그가 목회인생을 바쳐 온 장단, 평강, 김화, 삭녕, 김화, 금성, 창도, 회양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제 때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는 ‘짚신을 신고 성경과 찬송가를 등에 진 해괴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착의를 달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됐었다. 공산당의 세상이 되자 목사는 다시‘모두 나눠먹기 패’(공산주의)를 거부했다. 이번엔 ‘이중생활을 하는 자들의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목사는 월남하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만 살겠다고 교인을 버릴 순 없다”고 거부했다. 일제 수난기를 살아 온 목사의 교육관은 특이했다. 어느 시대이든 농사꾼과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뜻대로 맏아들 문옥, 둘째 명옥 씨는 농사꾼이 됐다. 그리고 셋째 상옥, 막내 병옥 씨는 세브란스를 나와 각각 창도와 통구에서 내과의로 개업해 있었다. 그들도 부친의 뜻에 따라 월남하지 않았다.


1950년 6월 24일 늦은 밤, 38선을 향해 탱크와 대포를 싣고 부산히 내려가던 금강산 전철의 수송작전은 이미 끝났다. 전쟁 전야의 금성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 금성교회 목사관을 두드렸다. 그는 “회의가 있다”며 잠자리에 든 한 목사를 깨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일요일인 이튿날 금성교회의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영순 씨는 한목사의 둘째아들인 명옥 씨의 아들. 김화고급중학교에 다니던 영순 씨는 그해 7월말쯤 전선에 동원되기 위해 김화인민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아놓고 있었다. 우연히 김화정치보위부 울타리를 지나가다가 할아버지 한 목사를 만났다. 우람한 체격의 백발노인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 함께 동아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영순아, 네가 증인이다. 증인이 돼야한다!”


한 권사님 댁 마당에 핀 밤꽃. 순교의 향기를 밤꽃에 비길까만 점점 우리는 그 향기를 잊어가고 있지 싶다.


한 목사의 가계는 철저히 유린됐다. 맏아들은 김화 생창굴 속에서 폭사 당했으며, 의사인 셋째 상옥은 원산으로 끌려갔다. 역시 의사인 막내는 김화 쑥고개 칠성정에서 총살당했다. 해주교회 사모로 시집간 외동딸 만옥은 행방불명됐다. 둘째아들 명옥만 월남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금성이 고향인 사람들의 연말모임에서 영순 씨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신시옥(작고)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한 목사는 원산 앞바다에서 4명씩 철사줄에 묶여 수장됐다”고 일러줬다. 신 씨는 그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사람이며 그는 그날을 10월 3일로 기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난 94년 여름 북한의 오성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구김화읍 읍내리 민통선 북방의 한 벌판에서 들었다. 영순 씨는 “여기가 보위부자리, 저기가 내가 막내 작은아버지 시신을 묻어 놓고 표식으로 구두 두 짝을 올려놓았던 그 밭…”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그는 “‘네가 증인이 되라’고 한 할아버지의 유언이 가슴에 박힌 커다란 가시 같다”고 말했다. “기막힌 이 사연을 글로 옮길 재주도 없고, 이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는 이도 없다”며 그때 노인은 소년처럼 울었다.


6년이 지난 최근 한영순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늙어 70세 노인이 돼 있었다. 2년 전 병을 얻어 민통선 출입영농도 일부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내게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한 순교자의 유일한 증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말을 그 때처럼 다시 했다.


그의 가슴엔 아직도 그 가시가 박혀 있었다. 변한 건 어눌해진 말투뿐이었다.


12 순교자 가운데 유일하게 서기훈 목사만 순교비가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장흥교회 뒤뜰에 세워져 그의 순교사가 전해지고 있다. 장흥교회는 1920년 장방산 아래 설립된 이래 80년 째 그 자리에서 서있다. 그리고 이웃 한탄강 언덕의 대한수도원은 장흥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지켜봤던 산 증인이다. 그나마 서목사의 순교사가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사연 목사처럼 나머지 11사람은 지금 어느 후손 또는 어느 성도의 가슴에 묻혀 파낼 수 없는 가시가 된 채 DMZ 벌판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바이블루트의 사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감리교회 서부연회 수난사》(윤춘병 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빈칸이 너무 많다. 방승학 목사는 그가 시무했던 교회를 밝히지 못했으며 월정교회에 지석교회에 시무하다 피랍된 김유해 목사와 월정교회 이운성 전도사는 납치일을, 석왕사교회에서 순교한 김축수 목사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유득신 장종식 목사는 시무교회도 납치 또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이 기록의 내역 란은 더욱 불충분하다.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 순교했느냐?”는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기록을 꽤 오래 전에 입수했다. 그리고 원로학자가 못 다 채운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누군가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DMZ 벌판을 구도자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이 한 발짝, 한 발짝씩 DMZ에 다가서며 십자가를 세우던 젊은 목회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했다. 어떤 이는 “내가 맡은 사명이 아니라”고 끝까지 얘기를 듣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함부로 순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노인들에겐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한 번 자세히 얘기해 주겠다”고 하던 노 장로가 문득 생각나 그를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블루트의 그 사건은 이제 더 먼 옛날 얘기가 돼 있었고, 보나마나 "꾸며낸 얘기"라고 비아냥거릴 사람들의 비웃음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 '빈칸'을 채울 그를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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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벅차게 수피령을 오를 때에 비하면 내리막길은 편하고 쉬웠다. 경사가 그랬고, 바람이 그랬다. 걸음을 옮기며 따로 힘을 주지 않아도 걸음은 절로 옮겨졌다. 땀 흘린 뒤에 맞는 바람은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원했고 고마웠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 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수현공원>이었다. 인적도 없는 이 한적한 곳에 웬 공원, 생뚱맞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살지만 그래도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의 얼굴이 생각났다.


지자체마다 수익이 되는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이다보니 빚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혹시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가 그 탤런트가 태어난 곳이고, 아무리 그가 유명하다고 해도 이런 외진 곳에 공원까지 세우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싶었다.


공원 앞을 지나칠 때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공원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탤런트의 얼굴이 아니라 충혼비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원으로 걸음을 옮겨 충혼비에 새겨진 글을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연들이 적혀 있었다.


김수현 병장 충혼비. 외진 곳에 <수현공원>이 마련된 이유를 대번 알 수가 있었다.


<수현공원>의 주인공이자 충혼비의 주인공인 김수현 병장은 1964년 11월14일 수피골 일대 대침투작전 때 숨은 적을 추격해 1명을 사살한 후, 또 다른 1명과 전투 중 복부 관통상을 입었으나 사력을 다해 적에게 관통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남파된 북한 공작원들은 최정예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교전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싶다. <수현공원>에는 추모비를 중심으로 북한군의 침투로, 은거했던 바위, 전투호, 교전 중 발생한 피탄 흔적 등이 보존되어 있었다.


적의 침투로. 글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씨 옆으로 한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으로 표시된 작은 원들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바위가 김수현 병장과 교전하던 북한 병사가 몸을 숨기던 곳이었다. 바위에 표시된 흰색 원은 교전 중에 생긴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잠깐 <수현공원> 일대를 둘러볼 때 마음이 숙연해졌다. 1964년이라면 내 나이 겨우 5살, 내가 알지도 못할 때에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다가 한창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었다. 서로 교전을 벌였던 북한 병사도 비슷한 나이 아니었을까? 그 또한 명령을 받고 남쪽으로 넘어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했을 당시, 얼마나 두려웠을까.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해 보면 모두가 젊은이들, 남과 북 사는 곳은 달랐지만 모두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었다. 분단 상황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같은 나라 같은 젊은이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이들이었다. 어쩌면 같은 학교에서 만나 공부를 했을 수도 있고, 혹 잘하는 운동이 있었다면 같은 팀에서 운동선수로 땀을 흘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공부를 마치고는 같은 회사나 공장에 다니는 동료가 되었을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분단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프게 전해져 왔다. 공원을 빠져나오며 처음 섰던 충혼비를 찾아가 그 앞에 다시 섰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자 나도 모르게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극도의 긴장 속에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댈 때, 얼마나 떨리며 두려웠을까?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까지를 떨리게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 이 땅에 없기를, 이 땅의 젊은이들 사이에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추모했다.


다시 걷는 길, <수현공원> 표지판을 보며 가졌던 선입견을 미안한 마음으로 버린다. 돌아보면 우리는 별 것 아닌 것에 별별 선입견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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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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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7)


오르막과 내리막


수피령은 정말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로드맵에도 수피령을 두고는 ‘직등코스’라 적혀 있었고, 전날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심마니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넘어야 한다고 일러준 터였다.


‘수피령’이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물 수’(水)에 ‘가죽 피’(皮)에 ‘재 령’(嶺), ‘水皮嶺’이라 쓰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 싶은데 함장로님은 ‘말이 씨가 되었나, 96년 대홍수 때 대성산 수피령은 온통 물을 뒤집어쓰는 대피해가 있었다.’고 수피령에 얽힌 일 한 가지를 소개했다.


이른 아침 숙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볕인데도 벌써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 한 고개이니 여느 길보다도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일종의 오기였을까, 고개를 다 넘기 전까지는 쉬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힘든 길일수록 중간에 쉬면 쉬고 난 다음이 어려웠다.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졌고, 걸음은 나도 모르게 무거워지곤 했다.


수피령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웠다. 하나는 완만한 경사였고, 다른 하나는 급한 경사였다. 완만한 경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완만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완만한 경사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 안에 있는 힘을 다 소진시키게 했다. 차라리 힘이 들어도 급한 경사를 단 번에 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어느 순간 급경사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경사였다. 한 번 주저앉거나 자빠지면 데굴데굴 굴러 처음 떠났던 자리로 물러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새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숨은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김처럼 뜨겁고 소리도 거칠어졌다. 심장은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올라 “뻥!” 하며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한 순간에 파열될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의 한계였다.


마침내 나티난 수피령 정상. 고개 하나를 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자명하게 여겨졌다.


몸의 한계를 느끼는 것을 좋아했었다.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서울 냉천동에 있는 감신대(監神大)에서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학년 대항 체육대회를 했다. 과(科)라고는 달랑 신과(神科) 하나, 한 학년 학생이라고는 50명, 당시의 감신대는 마치 수도원 같은 분위기였다.


한 학년이 50명인데다가 우리 학년은 유난스레 여학생이 많았다. 내 기억에는 16명이었지 싶다. 남학생들 중에서도 더러 군대를 가고 휴학을 하고 나면 그 수는 더 줄어들었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학생도 부족하다보니 나는 거의 모든 경기를 뛰어야 했다. 당시의 주종목은 배구와 농구였는데, 경기를 모두 마치는 오후가 되면 거반 녹초가 되었다.


체육대회의 마지막 종목은 단축 마라톤이었다.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마라톤도 뛰었다. 그 때 느낀 것이 몸의 한계였다.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한계를 마주하며 계속 달리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뭔지 모를 희열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1학년 때의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하여 2학년 때는 친구와 함께 뛰기도 했다. 수피령을 오르며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학!, 학!, 학!”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식처럼 비명처럼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때마다 단내가 확 풍겼다. 그러던 중 마침내 더는 견딜 수 없다 싶은 순간이 왔다.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쉬지 않기로 한 다짐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목사다, 마지막 한계에 왔다 싶을 때 내뱉는 소리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학!” 소리를 “주여!”로 바꿨다. 자신이 매달릴 무거운 통나무를 자신의 어깨에 메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비척거리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그러다가 여러 차례 쓰러졌던 예수님을 생각했다.


내가 등에 메고 있는 것은 고작 배낭 하나, 게다가 채찍을 내리치는 로마군병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의 조롱소리가 들리는 것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겼다. 몸과 마음의 한계 속으로 누군가가 가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화천과 철원은 수피령을 경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는 오르기가 힘들었지 내리막길은 저절로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견딘 것 만큼을 누리는 것이었다.


마침내 나타난 정상, 고개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고꾸라지듯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요새 눕기보다 쓰러지는 법을 배웠다.” 황동규 시의 한 구절일 것이다. 해발 780m 고개를 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한계가 자명하게 여겨졌다. 배낭에 기대 누워 생각하니, 고개를 다 넘은 여유 때문이었을까, 옛 시절 보릿고개를 넘는 일은 수피령 고개 넘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청정지역 철원입니다’


눈앞에서 반기고 있는 표지판 속 ‘철원’이라는 글자가 더없이 반가웠다. 화천과 철원은 그렇게 수피령을 경계로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 정상까지 오르기가 어려웠지 그 다음은 쉬웠다. 로드맵에 적혀 있는 것처럼 ‘30리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저절로 가지 싶은 걸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람이었다. 저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수피령을 오를 때는 없던 바람이었고, 고개를 오르느라 수고했다는 듯이 온 몸 다 젖은 땀을 내내 말려주었다.


살다보면 오르막길을 만나기도 하고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오르막길도 없고, 언제까지나 내려가기만 하는 내리막길도 없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서로 어울리며 이어진다. 오른 자만이 내려갈 수가 있다. 내리막길을 가볍게 걷는 즐거움은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른 자만이 누릴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아낸 만큼을 누리는 것이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에 비하면 저절로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주었던 때는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를 때였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벅찬 오르막길을 끝까지 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등을 밀어주는 때는 내리막길을 편하게 내려갈 때가 아니라,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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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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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뜻이 있어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기도의 일정은 열하루로 정해졌다. 주일 지나 월요일에 길을 떠났고, 길 떠난 다음 주 금요일에 말씀을 나눌 신우회 예배가 있어 목요일까지는 돌아와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열하루의 일정이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성의 명파초등학교에서 파주의 임진각까지의 거리를 열하루의 일정으로 나누니 조금 무리다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었던 것도 일정을 정하는데 있어 큰 몫을 했다.


일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는데, 곰곰 그 의미를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같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천성환 목사님은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다.


길을 걷다가 만난 벽화.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는 옆집으로 소금을 얻으러가던,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샬롬!

폭염에 목사님 건강을 지켜 주시길 손 모읍니다. 전 요즘 성도들과 함께 민수기 말씀을 큐티하고 있는데…,


모세와 함께 시내산을 출발하여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는데, 도중에 메추라기 일로 한 달을,, 미리암이 모세를 대적한 일로 일주간을 광야에서 더 머물러야 했지요. 정탐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는데,,, 정탐을 고집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면서…


인간의 명석한 이성(?)이 당대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실감합니다.


목사님의 열 하룻길의 걸음이 제 목양 사역에 돌아가는 길이 아니길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목사님의 발걸음!》



가데스바네아는 길을 걸으며 묵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주일을 맞아 혼자 예배를 드리며 가데스바네아를 생각했던 것도 천 목사님의 글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목회와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걷는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교역자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회의를 마치고 마주앉아 식사를 하던 고신복 목사님은 걷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성서원어를 공부하는 일에도 열심인 고 목사님은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꼭 걸어보고 싶다며 내가 걸었던 일정표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함 장로님이 만들어 주신 로드맵을 메일로 보냈더니 정성이 담긴 답장을 보내주었다.


들판에 서 있는 솟대. 허름한 솟대지만 그것을 세운 이의 마음은 지극했을 것이다.


샬롬

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를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로드맵을 읽으면서 처음 출발하셨던 명파초등학교가 제 장인어른이 교장으로 처음 발령 나신 곳이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걸으신 명파초등학교에서부터 임직각까지의 로드맵이 출애굽의 로드맵 가운데 라암셋(고센)부터 마라까지의 여정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의미를 부여 해 보았습니다.


1) 여정에서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200만 정도의 사람들이 하룻길을 걸은 거리와 목사님이 하룻길을 걸은 거리가 거의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은 로드맵은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고센에서 마라까지를 제한한 거립니다. 출애굽한 백성들도 거의 하루에 평균 30km를 걸었는데 목사님도 하루에 평균 30km를 걸으셨네요.


둘째로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하여 마라까지 걸린 일자가 10일인데(제가 조사해 본 지금까지의 자료를 통해서 보면) 그 기간 동안 걸으셨네요. 유대의 날짜는 오후 3시를 관습에 따라서 하루를 시작하는 저녁의 시작이라고 보고 오후 6시를 저녁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사님께서 점심 식사 후에 명파 초등학교를 출발했다고 보면 유대 날짜의 계산으로 보면 10일이 되네요.


2) 의미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임진각’까지 도착했을 때 많은 교훈을 얻으신 것을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듣고 싶었지만 많은 것을 전해 듣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30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시면서 많은 싸움을 하셨을 텐데 그 싸움에서 승리한 교훈을 가지신 목사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목회의 여정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에 앞서서 십계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교훈(법도와 율례)을 받은 곳이어서 마라가 마치 임진각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해 주신 후에 ‘법도와 율례’(출 15:25)를 주셨는데 그것은 십계명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법도(호크, ‘하카크’ <새기다> : 엄중한 계명으로 십계명 1-4번째 계명에서 표현할 때 사용)는 보통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고(아닐 때도 있지만), 율례(미쉬파트, ‘샤파트’ <재판하다> : 인간 사이에서 재판하는 것으로 5-10번째의 계명에 사용)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주어지는 법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제가 로드맵을 받은 후에 마음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가 목회하면서 어떤 액티비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11일간의 수고한 여정을 제가 복사하듯이 마음에 품었다가 언젠가 한 번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들었습니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출애굽을 했던 백성들을 생각하고, 그 가운데서도 고독했을 것 같은 모세를 생각하면서 한 번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목회의 전환점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제 마음에 새겨 주실 법도와 율례를 생각하고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요즘 목회의 한계라 할까요? 많이 힘들었는데 무엇인가를 다시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볼까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언제 멈춘 것일까, 경운기를 온통 칡순이 덮고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해주는 것이 있다. 되늦게서야 알게 되는 의미도 있다.


생각지 못하고 보낸 일정, 그러나 두 목사님의 글은 내가 걸었던 길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다. 우연히 정한 일정이었지만 그 안에도 얼마든지 마음에 새길 나도 모르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의미들이 있다. 돌아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H. D. 소로우가 했던 말도 어렴풋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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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5)


혼자 드린 예배


걷는 기도의 일정이 열하루였으니 도중에 주일이 한 번 들어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주일이 되면 걷기를 멈추고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드려야 할까, 그런 뒤에 다시 걷기를 이어거야 할까, 아니면 계속 걸을까…,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다. 계속 걷기로 했다. 주일 예배 설교를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걱정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또 하나 이어지는 고민, 그렇다면 걷다가 만나게 되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러다가 그것도 결정을 내렸다. 그것 또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혼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일정을 보니 주일을 맞게 되는 곳은 화천이었다. 화천은 친구 목사가 오랫동안 목회를 한 곳으로 아는 후배 목사들이 있는 지역이었다. 잘 알고 있는 장로님들도 몇 분 있는 곳이기도 했다. 불쑥 예배 시간에 맞춰 한 교회를 찾아들어가 예배를 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그건 아니겠다 싶었다. 그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그날 관심의 중심은 내가 되고 말 터였다.


길을 걷다가 만난 주일, 조용한 계곡에서 혼자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돌아보니 혼자서 드린 예배가 아니었다.


화천을 떠나 다목리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새 아침 7시, 성지교회에서 1부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함께 마음을 모았다. 9시 즈음엔 2부 예배를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의 모습이며 찬양대의 모습이며 주일에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 선하게 그려졌다. 그러던 중 11시가 가까워졌다. 이왕이면 섬기는 교회의 예배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예배하고 싶었다.


혼자 예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걷고 있는 도로 옆으로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었는데, 때마침 계곡으로 향하는 포장된 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예사롭지 않은 오토바이에 교통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멋스러운 옷차림, 한눈에 보기에도 오토바이 즐겨 타는 사람이다 싶었다.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파주에서 떠나 화천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훌쩍 길을 나선다고 했다. 표정에서 묻어나는 여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다 싶었다.


내 일정을 듣더니 대단한 결정을 했다며 마치 자기의 일처럼 좋아라 한다. 오토바이와 도보, 방법은 달라도 모두가 길을 가는 사람들, 잠깐 사이에도 왠지 모를 동류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믿음과 사역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서 동류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야기를 나눈 뒤 길을 떠나는 그분께 조심해서 가시라 인사를 하며 “이 오토바이를 얻어 타면 제 목적지 파주 임진각까지 금방 갈 텐데요.” 했더니 “정말 그러네요. 그럴래요?” 하면서 호탕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두두두두둥…” 오토바이 배기음 소리가 낮고 묵직하면서도 듬직했다.


새들과 계곡물이 찬송을 했고 나무들이 기도를 했다. 

뜻밖에도 축도는 바람이 맡았는데, 더없이 은혜로웠다.


가까운 곳 나무 그늘 아래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리고 마음을 모은다. 혼자 드리는 예배는 얼마만인가.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어딘지도 모르는 계곡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 가만히 눈을 감자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도 있었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있었다.


이어 찬송 시간, 누가 찬송을 할까 할 때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는 또 다른 새소리로 이어졌다. 바로 앞 물소리도 화답을 했다. 아름다운 조화로 이루어진 훌륭한 찬송이 한참 이어졌다.


다음은 기도 시간, 누구든 기도를 하렴, 하며 눈을 감았다. 나무가 기도를 했다. 나는 오직 나일뿐입니다, 내가 선 자리 사랑하게 하소서, 다른 나무 다른 자리 다른 높이 부러워하지 말게 하시고 다만 내 잎과 꽃과 열매를 피워내게 하소서, 어떤 폭풍우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뿌리 깊게 내리게 하소서, 나무의 기도가 이어졌다.


다음은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 가데스바네아를 생각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초입,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걸음을 되돌리고 만다. 가나안 정탐으로 인해 불거진 불순종이 그들의 걸음을 되돌리게 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과 그 소리를 듣고 밤새도록 울부짖었던 백성들, 가데스바네아는 복과 화를 가르는 극명한 분기점이다.


예배 후 성찬처럼 먹은 호두과자. 

누군가의 정이 누군가에게는 성찬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아찔한 분기점에 선다. 그곳에서 어떤 이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들은 복을 등진 채 광야로 돌아선다.


마지막 축도 시간, 눈을 감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한 바람이 계곡을 따라 불어왔다. ‘바람’은 ‘성령’과 같은 단어, 몸도 마음도 바람에 내맡겼다. 꼭 필요한 손길이 온 몸과 맘을 부드럽게 시원하게 어루만졌다.


예배를 마치고는 성찬을 나누듯 호두과자 몇 알을 먹었다. 전날 화천을 찾아와 저녁을 든든하게 사 준 이 장로님이 사 온 과자였다.


조용한 계곡에서 혼자 드린 예배는 참으로 호젓하고 평온했다. 마음속 지문처럼 남을 드문 예배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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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4)


거미의 유머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해학(諧謔)을 뜻하는 ‘유머’는 막혔던 숨을 탁 터뜨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싶다. 마치 물속에 잠겨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던 이가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그런 순간처럼 말이다.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지는 것과도 같아서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단번에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도무지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피령은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걸음을 이어가야 했다.


한 유머 강사는 그의 책에서 ‘당신은 테러리스트인가, 유머리스트인가?’를 묻고 있는데, 그의 질문에 의하면 유머리스트의 반대말은 재미없는 사람이나 딱딱한 사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맞겠다 싶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 실수로 선서를 잘못하는 바람에 취임식이 끝난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를 다시 했는데, 그 때 오바마는 선서를 다시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한 번 하기로 했습니다.”


그만한 여유와 유머가 있어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갔지 싶기도 하다.


열하루 동안 길을 걷다가 만난 거미의 유머가 있다. 화천을 떠나 철원으로 향할 때였다. 화천과 철원이 강원도에 있는 것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한 가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화천과 철원 사이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가진 어떤 지역이 자리를 잡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다.


마침내 수피령 정상이 보인다. 정상이란 무릇 인내와 인내가 합해진 결과였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화천과 철원은 고개 하나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화천 다목리에서 수피령 고개를 넘으니 바로 철원 땅이었다. 물론 수피령 고개는 걸어서 쉽게 넘을 고개가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고통을 내내 참으며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앞뒤 어디에도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외진 길을 한참을 걸어가다가 도로 곁에 있는 밭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 외진 곳도 누군가 땅을 놀리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다.


그런데 보니 밭 가장자리엔 말뚝이 나란히 박혀 있었고 말뚝에는 전선이 묶여 있었다. 전기가 흐르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먹을 것을 찾아 밭으로 내려오는 산짐승들을 쫓기 위한 전깃줄이다 싶었다.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글을 모르는 짐승들만 놀라 뒷걸음질을 치겠구나 싶을 때였다. 밭이 끝나는 자리에 마지막 말뚝이 섰고 전선들도 그곳에서 멈춰 섰는데, 마지막 말뚝과 그 옆에 서 있는 자작나무 사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선들이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유심히 바라보니 거미줄이었다. 마치 마지막 말뚝에서 멈춘 전선을 슬며시 잇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를 먹든 다 같이 나눠 먹지 전깃줄이 다 뭐래요, 어디선가 숨어 슬며시 건네는 거미의 유머에 피식 웃음이 났고, 수피령 험한 고개가 문득 너그럽게 여겨졌다.


크지 않은 나라, 그런데도 화천과 철원이 고개 하나로 어깨를 걸고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매주 <드문 손길>이라는 주보를 만든다. 우리 손 잡아주신 주님의 손이 흔한 손 아니었듯이,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내미는 손이 흔한 손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보 이름을 <드문 손길>이라 정했다.


주보 표지에는 짤막한 글 하나씩을 싣는다. 차 한 잔 마시듯 잠깐 생각을 가다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의 신앙을 일반 언어로 바꾸는 노력이기도 하다.


걷기를 마치고 돌아와 주보 표지에 ‘거미의 유머’라는 짧은 글을 실었다. 유머를 유머로 받았으면!


화천과 철원은 같은 강원도라 해도

설마 고개 하나로 이웃인 줄은 몰랐는데

수피령은 결코 만만한 어깨가 아니어서

함부로 걸어 넘을 고개가 아니었다

앞뒤 어디에도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가르마 같은 길을 걷다 만난 길가 밭 가장자리엔

박아 놓은 말뚝을 따라 전깃줄이 내달리고

전기가 흐르니 주의하라는 경고문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글을 모르는 짐승들만

기겁하듯 뒷걸음질을 치겠구나 싶을 때

밭이 끝나는 자리 마지막 말뚝에 이르러

전선도 달리기를 멈췄는데

마지막 말뚝과 곁에 선 자작나무 사이

빛나는 선들이 아침햇살에 그네를 탄다

저게 뭘까 유심히 바라보니

멈춰선 전선을 잇듯 거미가 친 거미줄이었는데

얼마를 먹든 나눠먹지 웬 욕심이래요

어딘가 숨어 슬며시 건네는 거미의 유머에

수피령 가파른 고개가 문득 너그럽지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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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깊은 산중으로 이어지는 길, 걸어도 걸어도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 외진 곳에 가게가 있을 리는 만무한 일이었고, 물 없이 길을 나선 나는 점점 심해지는 목마름을 어렵게 견뎌내야 했다. 원래 사람이 없는 곳인지, 날이 무더워 밖으로 나오지를 않은 것인지 한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도 어려울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정 안 되면 계곡물이라도 마셔야지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내 사람을,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길가 밭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외진 곳에서, 목이 말라 고통스러울 때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물 좀 마실 수가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안녕하세요!”나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보다도 물 얘기를 먼저 한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던 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얼른 일손을 멈추고는 얼마든지 오라며 손으로 나를 불렀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허름한 농막이었다. 얼기설기 몇 개의 기둥이 서 있고 비닐과 천막으로 하늘과 벽을 가려 볕과 비를 겨우 가릴 수 있겠다 싶은 그곳에는 몇 개의 살림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산에서 떠온 물이라 뭐가 좀 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물은 좋은 물이예요.”


긴 목마름 끝에 마시는 물인데 어찌 달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염치도 없이 필시 산에서 어렵게 떠왔을 그 물을 서너 컵 연이어 받아 마셨다.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시듯이 고마운 마음으로 물을 마셨고, 물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목마름의 맨 밑바닥부터 채워오기를 시작했다. 시들어가던 식물이 물을 먹고 되살아나듯이 긴 목마름 끝에 물을 마시자 생기가 회복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느낌만이 아니어서,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의 하나는 생각하지 못한 만남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연배가 비슷한 그 이가 왜 깊은 산중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를 들었고, 그는 내가 왜 먼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서 들었다.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며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마음이 아쉬웠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한참 남았으니 무한정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배낭을 메고 농막 밖으로 나올 때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엇 하는 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목사라는 것을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알릴 일도 아니다 싶어 말하지 않은 터였다.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그러자 그가 말한다.


“어쩐지, 느낌이 남달랐어요.”


궁금하긴 했지만 남달랐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따로 묻지는 않았다. 목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한 마디를 했다.


“실은 저도 이곳에 들어올 때 성경책 한 권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틈틈이 읽고 있고요.”


걸음을 멈추고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이 순간적으로 지났지만, 그곳 주소와 그분 이름을 수첩에 적는 것으로 대신했다. 다시 한 번 뜻밖의 만남이 주어져 심중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간이 은총처럼 허락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낯선 길을 걷다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보였다. 저 많은 벌통을 두고 어디로 간 것인지 주인은 보이지를 않았다.


폭염주의보는 거의 날마다 날아왔다. 날이 뜨거우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한결같은 내용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야외활동이 아니라 실내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아재개그를 건네며 불볕더위가 주는 고통과 염려를 물리고는 했다.


지친 이에게는 작은 고개 하나를 넘는 것도 벅찬 일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파포(巴浦)와 봉오(峰吾)를 지나 그날의 목적지인 다목리를 향해 걸었다. 다목리는 작가 이외수 씨가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곳이다. 젊은 시절 그의 글을 눈여겨 읽기도 했으니 얼마든지 이외수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다 싶었지만, 그보다는 ‘다목리’가 왜 ‘多木里’가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다목리는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다목초등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사람을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를 않았다.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든지, 아니면 표지판을 만나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길가 둔덕 위에 자리 잡은 동네 노인정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노인정 옆 정자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물었다. 길을 가르쳐주던 그가 거기 서서 그러지 말고 올라와서 물이나 한 잔 하고 가라며 권했다. 쉬지 않고 내처 걸었더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시간의 여유도 있어 정자 위로 올라갔다.


허름하고 편안한 옷차림을 한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심마니였다. 혼자 깊은 산에 올라 약초를 캐는 심마니, 심마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 주로 그가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들었지만 이야기는 재미도 있었고 유익하기도 했다. 전혀 모르는 세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22년째 이어오고 있는 일이 있다. <교차로>라는 생활정보지 ‘아름다운 사회’란에 매주 한 편씩 칼럼을 쓴다. 전국 길가에 꽂혀 누구라도 꺼내보는 정보지, 세상과 신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간, 우리 아이들 어릴 적 피아노 레슨을 한 선생님이 그곳에서 우연히 칼럼을 읽게 되었다면서 전화를 한 일도 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야 하는 일, 그 일을 22년째 이어오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아찔하다. 무엇보다도 미련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싶다.


걷기를 마치고 돌아와 칼럼을 쓰며 심마니 이야기를 썼다. 얼마든지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심마니의 자존심’은 교차로 칼럼으로 썼던 글이다.


심마니의 자존심


그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DMZ 인근마을을 따라 혼자 걷기 위해 나선 열하루의 길, 이레째 되는 날의 목적지는 화천 다목리였습니다. 작가 이외수 씨가 사는 곳으로 알려진 동네였지요.


날이 얼마나 뜨거운지 벌써 며칠 째 국민안전처에서 폭염주의 경보를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날이 너무 뜨거우니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경보 문자였습니다. 날이 뜨거운 것이야 길을 걸어보니 알겠는데, 그 정도가 야외활동을 삼가야 할 수준이라는 것을 경보문자는 확인시켜 주었는데 그렇다고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열하루 동안 걸어갈 길이 정해져 있기도 했거니와, 걷기 시작한 지 둘째 날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한 것도 적잖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폭우와 우박이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야단이었던 진부령을 걸어서 넘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경험하고 나니 어떤 악천후도 이겨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목리로 가는 오후, 이글거리는 땡볕 때문인지 한참을 걸어도 밭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보이질 않았습니다. 길을 물으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데 아무도 보이질 않으니 내심 당황스러웠는데, 그를 만난 것은 그렇게 길을 물을 사람을 찾던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길가 옆 정자에 앉아 있어 길을 물었더니, 길만 묻지 말고 올라와서 물 한 잔이라도 하고 가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꺼이 정자 위로 올라갔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처음 만난 사이, 하지만 이야기는 시간을 잊고 이어졌습니다. 마침 다목리도 멀지 않았고, 예정보다는 여유 있게 온 것이어서 마음도 편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심마니라 소개를 했습니다. 혼자서 산을 다니며 산삼을 캐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만 들었지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산에서 그 중 위험한 것이 멧돼지나 뱀보다도 벌이라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계곡에 들며 막대기로 나무를 쳐서 탁 탁 소리를 내면 멧돼지나 뱀은 자리를 피한답니다. 그러나 잘못 벌집을 건드려 쏘이면 그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삼 씨에 대한 이야기도 귀했습니다. 산에서 만나는 산삼은 오래 전 누군가가 씨를 뿌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에 의해 삼이 자라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는 것이지요. 그걸 잘 알기에 자신도 기회가 될 때마다 누군지 모르는 이를 위해 삼 씨를 심는다고 했습니다.


그 날 나눈 이야기 중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그가 지키고 있는 자존심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좋은 삼을 구해서 팔면 전문가들도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 누군가를 속이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몇 뿌리가 되었든 자신이 캔 삼을 정직한 값에 팔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아껴 키운 멋진 삼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헤어지며 전한 인사 속에는 그의 삶을 격려하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다 담겼답니다. -‘아름다운 사회’ (2017년 7월 12일)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의 하나는 뜻밖의 만남이 허락된다는 것임을 배운 날이었다. 농막에서 물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나 정자에 앉아 심마니와 나눈 이야기는 분명 내 마음속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맞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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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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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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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단순한 실수가 중요한 실수가 될 때가 있다. 가볍고 단순하다 싶어도 실수의 결과가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그 날 일도 그 중의 하나였다.


화천에서의 숙소는 생각지 못한 곳으로 정해졌다. 화천읍내에 도착을 해서 보니 거리마다 군인들이 가득했다. 삼삼오오 군인들끼리 어울려 다니기도 했고, 면회를 온 애인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들이 흔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무슨 큰 훈련을 마친 뒤여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한꺼번에 외박을 나온 것이라 했다. 


거리만이 아니었다. 후배 목사를 만나기 위해 잠깐 찻집에 들렀을 때, 찻집 안을 가득 채운 것도 군인들이었다. 애인과 마주앉아, 아니면 옆자리에 앉아 마음에만 두었던 이야기와 쟁여둔 그리움을 풀어내는 모습들이 정겨워 보였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모습이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면회를 온 여자 친구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보다는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 모습이 더 가까운 사이라고 여겨졌다. 어디에 앉느냐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늠하게 하는구나!


화천에는 그냥 지나가면 서운해 할 이들이 몇 명 있지만,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었다. 주일을 앞둔 토요일이어서 행여 그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를 따로 만나는 것은 조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많은 군인들로 화천 인근의 숙박업소가 이미 꽉 찼다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길가 철물점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런 일을 자주 경험을 하는 것인지, 화천읍내 인근의 숙소가 다 찼다는 말을 하면서도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투였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새삼스러웠다.


할 수 없이 후배 이 목사에게 전화를 했고, 얼마 후 이 목사를 찻집에서 만났다. 이 목사는 내 전화를 받고는 교우가 하는 숙소에 연락을 했고, 마침 빈 방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두 가지 점에서 다행이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숙소가 정해져서 다행이었다. 없는 숙소를 찾으려면 그 또한 많은 시간과 신경을 써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우가 하는 숙소가 다음날 가야 할 길 쪽에 있다는 점이었다. 지치고 피곤했기 때문일까, 걸어가야 할 길을 차로 대신할 마음은 없었지만 막상 숙소가 그렇게 정해지고 나니 괜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제법 터가 넓은 <시아네 펜션>은 깨끗했고 조용했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누렸다. 무엇보다도 숙소 앞 개울에 다슬기가 많고 덕분에 반딧불이도 많이 볼 수 있다는 말이 반가웠다. 
<시아>는 손녀 이름이라 했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이 그 하나만으로도 물씬 느껴진다. <시아네>는 <詩안에>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묵었던 시아네 펜션.
집 앞 개울에 다슬기가 많고 덕분에 반딧불이가 많다는 말이 반가웠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나며 물을 챙기지 못했다. 물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길을 가다가 가게를 만나면 물을 사야지 했던 것이었다. 늘 그렇게 다녔으니 그래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문제였다.


가도 가도 가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외지고 한적한 길, 가게가 나타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이 없다는 것을 알자 괜히 목이 더 마른 것 같았다. 한 번 목이 마르다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자꾸 침을 삼키게 되었고, 목마름은 더욱 심해졌다.

 

길을 걷다가 만난 버스 정류장.
버스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지만 버스 정류장은 혼자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목마름이 엄살만은 아닌 것이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된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금방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게는 아니더라도 동네가 나타나면 물을 얻어 마셔야지 했지만 동네도 보이질 않았고, 모처럼 만난 동네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누구 한 사람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집이나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물을 달라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목이 마른 것도 그렇지만, 목마름을 참으며 길을 걷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 단순한 일, 왜 물을 챙기지 못했을까?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


먼 길을 걸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위험한 것인지를 마음에 새겨야 했던 날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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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1)


몰랐던 길 하나


평화의 댐 정상에 있는 물 기념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 식당이 있는 것이 다행이었는데, 메뉴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산천어가스였다. 화천은 세계적인 겨울축제로 자리 잡은 산천어축제가 유명한 곳, 산천어로 튀김을 한 요리였다. 화천에 왔으니 당연하다 싶은 마음으로 산천어가스를 택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식당에서 일하는 분께 다음 행선지에 대해 물었다. 화천까지 가려고 한다 하니 대답이 쉽다. 40분 정도 가면 될 걸요, 했다. 차가 아니라 걸어서 가려고 한다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로드맵에는 댐 정상을 통해 대붕터널과 산과 산을 연결한 비수교, 재안터널을 통과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있었다. 댐이 공사 중이서 댐 정상으로는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댐 정상에서 점심으로 먹은 산천어가스. 당연하여 고민할 것이 없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 걸까.


그렇다고 평화의 댐 아래로 내려가 옛 길을 따라 걸으면 길이 멀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했다. 그 길로 가면 구불구불 먼 길을 돌아가게 되는데 평화의 댐에서 화천까지 족히 40km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해가 길다고 해도 점심을 먹고 떠나 저녁에 도착할 수는 없는 거리였다.


그래도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싶었다. 로드맵에는 버스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걷다 보면 북한강 상류를 안동철교로 통과하는 민통선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를 만날 수도 있는데, 만약 버스를 만나면 그것은 횡재니 무조건 “accept!!”하라는 내용이었다.


버스에 대해 물어보니 직원 한 분이 친절하게도 몇 곳에 전화를 걸어 버스에 대해 알아봐 주었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버스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버스는 늘 다니는 것이 아니었고 손님이 있을 때만 다니는데, 만약 와달라고 요청을 하면 저녁 5시쯤에나 평화의 댐으로 올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댐에서 길이 막히다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차 한 잔을 하며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직원 한 사람이 다가와선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하면서 한 가지를 일러주었다. 민통선 입구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혹시 민통선을 지나다니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이따금씩 민통선을 지나가는 차가 있는데, 민통선을 통과하면 화천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이기에 화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라는 귀띔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반색을 하자 될지 안 될지는 저도 몰라요, 하는 것이었다.


인근에 있다는 민통선 검문소를 찾지 못해 같은 길을 서너 번 왔다 갔다 했다. 딱히 물을 사람도 보이지를 않았다. 마침내 검문소, 저만치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 행색을 살피는 초병의 눈에서 빛이 난다.


걸어서 화천까지 민통선을 지나서 갈 수가 있는지를 물었더니 안 된다고 한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투다. ‘민통선’(民統線)이란 말 그대로 ‘민간인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이다.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선 앞에 민간인이 서서 지나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사정을 이야기 하며 혹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시 한 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살핀 군인 한 명이 잠깐 기다려보라 하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상관에게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잠깐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통화를 마치고 다가온 군인은 내게 “신분증을 주시겠습니까?” 했다. “신분을 확인하고 차가 오면 같이 타고 지나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신분증을 받으면서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이나 댐을 공사하는 차들이 사전 허락을 받고는 왕래를 한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기다리며 초병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1년부터 군 생활을 했으니 그들은 까마득한 후배들이었다. 아들 규민이도 지난해 제대를 했으니 아들 같기도 했다. 비상용으로 남긴 배낭의 초코바와 육포를 전해도 되는지를 묻자 규정상 안 된다며 사양을 했다.


만들어진 길을 걷기도 하지만, 걸으면 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길을 걷되 길을 만드는 사람, 부르심의 자리는 거기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있는데 언덕 위에 있는 막사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쏟아지듯 막사 밖으로 나왔다. 함성과 구호 소리가 웃음 속에 이어지는 것을 보니 뭔가 행사를 갖고 있지 싶었다. 초병에게 물었더니 소대장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고 했다. 함께 지내던 소대장을 떠나보내는 전별식을 하는 중이었다.


순서를 마쳤는지 소대장은 차를 타고 검문소 앞까지 왔고, 소대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차를 뒤쫓아 달려왔다. 서로가 정이 많이 든 사이구나 싶었다. 하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 외진 곳에서 함께 지냈으니 어찌 정이 들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가 형제 같을 터였다.


소대장의 차가 멈춰 서자 초병이 다가가선 하차를 명한다. 차에서 내리는 소대장을 보니 얼굴이 앳되다. 소대원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연배의 젊은이들이었다.


소대장이 차에서 내리자 초병 두 명이 자동차 안은 물론 차량 하체를 검사하는 도구를 끌고 다니며 사방으로 차량 검사를 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함께 지내던 사람을 떠나보내기 전 함께 지내며 늘 했던 일을 마지막 관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베풀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젊은이가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다른 부대로 떠나가는 전별식은 웃음 속에서 이어졌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괜히 짠했다. 누군가를 보내고, 누군가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언제라도 마음을 짠하게 하는 법이다.


40 여분이 지났다 때 마침내 차가 다가왔다. 평화의 댐 쪽에서 레미콘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를 세운 초병들은 조금 전 소대장을 보낼 때처럼 차량 검사를 했고, 검사를 마친 뒤 기사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젊은 레미콘 기사는 선뜻 차에 타라고 했다.


레미콘의 높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높았다. 경사가 아찔했다. 자리에 앉으니 시야가 탁 트인다. 부산 쪽에서 일을 하러 왔다는, 선하게 생긴 젊은이가 운전하는 레미콘 차를 타고 민통선 안을 달렸다.


철조망 밖과 무엇 하나 다를 것이 없는 풍경과 공기,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민통선 안과 밖이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은 뭔지 모를 통증처럼 여겨졌다.


평화의 댐에서 화천까지 가는 길, 막혔던 길 하나가 그렇게 열렸다.


길이 있어 가기도 하지만, 가면 길이 되기도 한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길도 그렇게 열렸으면! 마음이 오가고 걸음이 오가며 몰랐던 길 하나 우리네 가슴 속에 화들짝 활짝 열렸으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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