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깊은 산중으로 이어지는 길, 걸어도 걸어도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 외진 곳에 가게가 있을 리는 만무한 일이었고, 물 없이 길을 나선 나는 점점 심해지는 목마름을 어렵게 견뎌내야 했다. 원래 사람이 없는 곳인지, 날이 무더워 밖으로 나오지를 않은 것인지 한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도 어려울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정 안 되면 계곡물이라도 마셔야지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내 사람을,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길가 밭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외진 곳에서, 목이 말라 고통스러울 때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물 좀 마실 수가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안녕하세요!”나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보다도 물 얘기를 먼저 한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던 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얼른 일손을 멈추고는 얼마든지 오라며 손으로 나를 불렀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허름한 농막이었다. 얼기설기 몇 개의 기둥이 서 있고 비닐과 천막으로 하늘과 벽을 가려 볕과 비를 겨우 가릴 수 있겠다 싶은 그곳에는 몇 개의 살림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산에서 떠온 물이라 뭐가 좀 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물은 좋은 물이예요.”


긴 목마름 끝에 마시는 물인데 어찌 달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염치도 없이 필시 산에서 어렵게 떠왔을 그 물을 서너 컵 연이어 받아 마셨다.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시듯이 고마운 마음으로 물을 마셨고, 물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목마름의 맨 밑바닥부터 채워오기를 시작했다. 시들어가던 식물이 물을 먹고 되살아나듯이 긴 목마름 끝에 물을 마시자 생기가 회복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느낌만이 아니어서,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의 하나는 생각하지 못한 만남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연배가 비슷한 그 이가 왜 깊은 산중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를 들었고, 그는 내가 왜 먼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서 들었다.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며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마음이 아쉬웠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한참 남았으니 무한정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배낭을 메고 농막 밖으로 나올 때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엇 하는 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목사라는 것을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알릴 일도 아니다 싶어 말하지 않은 터였다.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그러자 그가 말한다.


“어쩐지, 느낌이 남달랐어요.”


궁금하긴 했지만 남달랐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따로 묻지는 않았다. 목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한 마디를 했다.


“실은 저도 이곳에 들어올 때 성경책 한 권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틈틈이 읽고 있고요.”


걸음을 멈추고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이 순간적으로 지났지만, 그곳 주소와 그분 이름을 수첩에 적는 것으로 대신했다. 다시 한 번 뜻밖의 만남이 주어져 심중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간이 은총처럼 허락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낯선 길을 걷다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보였다. 저 많은 벌통을 두고 어디로 간 것인지 주인은 보이지를 않았다.


폭염주의보는 거의 날마다 날아왔다. 날이 뜨거우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한결같은 내용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야외활동이 아니라 실내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아재개그를 건네며 불볕더위가 주는 고통과 염려를 물리고는 했다.


지친 이에게는 작은 고개 하나를 넘는 것도 벅찬 일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파포(巴浦)와 봉오(峰吾)를 지나 그날의 목적지인 다목리를 향해 걸었다. 다목리는 작가 이외수 씨가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곳이다. 젊은 시절 그의 글을 눈여겨 읽기도 했으니 얼마든지 이외수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다 싶었지만, 그보다는 ‘다목리’가 왜 ‘多木里’가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다목리는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다목초등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사람을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를 않았다.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든지, 아니면 표지판을 만나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길가 둔덕 위에 자리 잡은 동네 노인정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노인정 옆 정자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물었다. 길을 가르쳐주던 그가 거기 서서 그러지 말고 올라와서 물이나 한 잔 하고 가라며 권했다. 쉬지 않고 내처 걸었더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시간의 여유도 있어 정자 위로 올라갔다.


허름하고 편안한 옷차림을 한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심마니였다. 혼자 깊은 산에 올라 약초를 캐는 심마니, 심마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 주로 그가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들었지만 이야기는 재미도 있었고 유익하기도 했다. 전혀 모르는 세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22년째 이어오고 있는 일이 있다. <교차로>라는 생활정보지 ‘아름다운 사회’란에 매주 한 편씩 칼럼을 쓴다. 전국 길가에 꽂혀 누구라도 꺼내보는 정보지, 세상과 신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간, 우리 아이들 어릴 적 피아노 레슨을 한 선생님이 그곳에서 우연히 칼럼을 읽게 되었다면서 전화를 한 일도 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야 하는 일, 그 일을 22년째 이어오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아찔하다. 무엇보다도 미련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싶다.


걷기를 마치고 돌아와 칼럼을 쓰며 심마니 이야기를 썼다. 얼마든지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심마니의 자존심’은 교차로 칼럼으로 썼던 글이다.


심마니의 자존심


그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DMZ 인근마을을 따라 혼자 걷기 위해 나선 열하루의 길, 이레째 되는 날의 목적지는 화천 다목리였습니다. 작가 이외수 씨가 사는 곳으로 알려진 동네였지요.


날이 얼마나 뜨거운지 벌써 며칠 째 국민안전처에서 폭염주의 경보를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날이 너무 뜨거우니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경보 문자였습니다. 날이 뜨거운 것이야 길을 걸어보니 알겠는데, 그 정도가 야외활동을 삼가야 할 수준이라는 것을 경보문자는 확인시켜 주었는데 그렇다고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열하루 동안 걸어갈 길이 정해져 있기도 했거니와, 걷기 시작한 지 둘째 날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한 것도 적잖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폭우와 우박이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야단이었던 진부령을 걸어서 넘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경험하고 나니 어떤 악천후도 이겨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목리로 가는 오후, 이글거리는 땡볕 때문인지 한참을 걸어도 밭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보이질 않았습니다. 길을 물으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데 아무도 보이질 않으니 내심 당황스러웠는데, 그를 만난 것은 그렇게 길을 물을 사람을 찾던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길가 옆 정자에 앉아 있어 길을 물었더니, 길만 묻지 말고 올라와서 물 한 잔이라도 하고 가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꺼이 정자 위로 올라갔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처음 만난 사이, 하지만 이야기는 시간을 잊고 이어졌습니다. 마침 다목리도 멀지 않았고, 예정보다는 여유 있게 온 것이어서 마음도 편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심마니라 소개를 했습니다. 혼자서 산을 다니며 산삼을 캐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만 들었지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산에서 그 중 위험한 것이 멧돼지나 뱀보다도 벌이라는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계곡에 들며 막대기로 나무를 쳐서 탁 탁 소리를 내면 멧돼지나 뱀은 자리를 피한답니다. 그러나 잘못 벌집을 건드려 쏘이면 그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삼 씨에 대한 이야기도 귀했습니다. 산에서 만나는 산삼은 오래 전 누군가가 씨를 뿌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에 의해 삼이 자라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는 것이지요. 그걸 잘 알기에 자신도 기회가 될 때마다 누군지 모르는 이를 위해 삼 씨를 심는다고 했습니다.


그 날 나눈 이야기 중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그가 지키고 있는 자존심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좋은 삼을 구해서 팔면 전문가들도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 누군가를 속이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몇 뿌리가 되었든 자신이 캔 삼을 정직한 값에 팔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아껴 키운 멋진 삼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헤어지며 전한 인사 속에는 그의 삶을 격려하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다 담겼답니다. -‘아름다운 사회’ (2017년 7월 12일)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의 하나는 뜻밖의 만남이 허락된다는 것임을 배운 날이었다. 농막에서 물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나 정자에 앉아 심마니와 나눈 이야기는 분명 내 마음속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맞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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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단순한 실수가 중요한 실수가 될 때가 있다. 가볍고 단순하다 싶어도 실수의 결과가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그 날 일도 그 중의 하나였다.


화천에서의 숙소는 생각지 못한 곳으로 정해졌다. 화천읍내에 도착을 해서 보니 거리마다 군인들이 가득했다. 삼삼오오 군인들끼리 어울려 다니기도 했고, 면회를 온 애인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들이 흔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무슨 큰 훈련을 마친 뒤여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한꺼번에 외박을 나온 것이라 했다. 


거리만이 아니었다. 후배 목사를 만나기 위해 잠깐 찻집에 들렀을 때, 찻집 안을 가득 채운 것도 군인들이었다. 애인과 마주앉아, 아니면 옆자리에 앉아 마음에만 두었던 이야기와 쟁여둔 그리움을 풀어내는 모습들이 정겨워 보였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모습이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면회를 온 여자 친구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보다는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 모습이 더 가까운 사이라고 여겨졌다. 어디에 앉느냐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늠하게 하는구나!


화천에는 그냥 지나가면 서운해 할 이들이 몇 명 있지만,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었다. 주일을 앞둔 토요일이어서 행여 그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를 따로 만나는 것은 조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많은 군인들로 화천 인근의 숙박업소가 이미 꽉 찼다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길가 철물점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런 일을 자주 경험을 하는 것인지, 화천읍내 인근의 숙소가 다 찼다는 말을 하면서도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투였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새삼스러웠다.


할 수 없이 후배 이 목사에게 전화를 했고, 얼마 후 이 목사를 찻집에서 만났다. 이 목사는 내 전화를 받고는 교우가 하는 숙소에 연락을 했고, 마침 빈 방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두 가지 점에서 다행이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숙소가 정해져서 다행이었다. 없는 숙소를 찾으려면 그 또한 많은 시간과 신경을 써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우가 하는 숙소가 다음날 가야 할 길 쪽에 있다는 점이었다. 지치고 피곤했기 때문일까, 걸어가야 할 길을 차로 대신할 마음은 없었지만 막상 숙소가 그렇게 정해지고 나니 괜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제법 터가 넓은 <시아네 펜션>은 깨끗했고 조용했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누렸다. 무엇보다도 숙소 앞 개울에 다슬기가 많고 덕분에 반딧불이도 많이 볼 수 있다는 말이 반가웠다. 
<시아>는 손녀 이름이라 했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이 그 하나만으로도 물씬 느껴진다. <시아네>는 <詩안에>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묵었던 시아네 펜션.
집 앞 개울에 다슬기가 많고 덕분에 반딧불이가 많다는 말이 반가웠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나며 물을 챙기지 못했다. 물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길을 가다가 가게를 만나면 물을 사야지 했던 것이었다. 늘 그렇게 다녔으니 그래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문제였다.


가도 가도 가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외지고 한적한 길, 가게가 나타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이 없다는 것을 알자 괜히 목이 더 마른 것 같았다. 한 번 목이 마르다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자꾸 침을 삼키게 되었고, 목마름은 더욱 심해졌다.

 

길을 걷다가 만난 버스 정류장.
버스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지만 버스 정류장은 혼자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목마름이 엄살만은 아닌 것이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된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금방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게는 아니더라도 동네가 나타나면 물을 얻어 마셔야지 했지만 동네도 보이질 않았고, 모처럼 만난 동네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누구 한 사람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집이나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물을 달라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목이 마른 것도 그렇지만, 목마름을 참으며 길을 걷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 단순한 일, 왜 물을 챙기지 못했을까?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


먼 길을 걸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위험한 것인지를 마음에 새겨야 했던 날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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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1)


몰랐던 길 하나


평화의 댐 정상에 있는 물 기념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 식당이 있는 것이 다행이었는데, 메뉴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산천어가스였다. 화천은 세계적인 겨울축제로 자리 잡은 산천어축제가 유명한 곳, 산천어로 튀김을 한 요리였다. 화천에 왔으니 당연하다 싶은 마음으로 산천어가스를 택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식당에서 일하는 분께 다음 행선지에 대해 물었다. 화천까지 가려고 한다 하니 대답이 쉽다. 40분 정도 가면 될 걸요, 했다. 차가 아니라 걸어서 가려고 한다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로드맵에는 댐 정상을 통해 대붕터널과 산과 산을 연결한 비수교, 재안터널을 통과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있었다. 댐이 공사 중이서 댐 정상으로는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댐 정상에서 점심으로 먹은 산천어가스. 당연하여 고민할 것이 없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 걸까.


그렇다고 평화의 댐 아래로 내려가 옛 길을 따라 걸으면 길이 멀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했다. 그 길로 가면 구불구불 먼 길을 돌아가게 되는데 평화의 댐에서 화천까지 족히 40km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해가 길다고 해도 점심을 먹고 떠나 저녁에 도착할 수는 없는 거리였다.


그래도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싶었다. 로드맵에는 버스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걷다 보면 북한강 상류를 안동철교로 통과하는 민통선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를 만날 수도 있는데, 만약 버스를 만나면 그것은 횡재니 무조건 “accept!!”하라는 내용이었다.


버스에 대해 물어보니 직원 한 분이 친절하게도 몇 곳에 전화를 걸어 버스에 대해 알아봐 주었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버스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버스는 늘 다니는 것이 아니었고 손님이 있을 때만 다니는데, 만약 와달라고 요청을 하면 저녁 5시쯤에나 평화의 댐으로 올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댐에서 길이 막히다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차 한 잔을 하며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직원 한 사람이 다가와선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하면서 한 가지를 일러주었다. 민통선 입구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혹시 민통선을 지나다니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이따금씩 민통선을 지나가는 차가 있는데, 민통선을 통과하면 화천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이기에 화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라는 귀띔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반색을 하자 될지 안 될지는 저도 몰라요, 하는 것이었다.


인근에 있다는 민통선 검문소를 찾지 못해 같은 길을 서너 번 왔다 갔다 했다. 딱히 물을 사람도 보이지를 않았다. 마침내 검문소, 저만치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 행색을 살피는 초병의 눈에서 빛이 난다.


걸어서 화천까지 민통선을 지나서 갈 수가 있는지를 물었더니 안 된다고 한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투다. ‘민통선’(民統線)이란 말 그대로 ‘민간인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이다.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선 앞에 민간인이 서서 지나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사정을 이야기 하며 혹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시 한 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살핀 군인 한 명이 잠깐 기다려보라 하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상관에게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잠깐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통화를 마치고 다가온 군인은 내게 “신분증을 주시겠습니까?” 했다. “신분을 확인하고 차가 오면 같이 타고 지나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신분증을 받으면서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이나 댐을 공사하는 차들이 사전 허락을 받고는 왕래를 한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차를 기다리며 초병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1년부터 군 생활을 했으니 그들은 까마득한 후배들이었다. 아들 규민이도 지난해 제대를 했으니 아들 같기도 했다. 비상용으로 남긴 배낭의 초코바와 육포를 전해도 되는지를 묻자 규정상 안 된다며 사양을 했다.


만들어진 길을 걷기도 하지만, 걸으면 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길을 걷되 길을 만드는 사람, 부르심의 자리는 거기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있는데 언덕 위에 있는 막사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쏟아지듯 막사 밖으로 나왔다. 함성과 구호 소리가 웃음 속에 이어지는 것을 보니 뭔가 행사를 갖고 있지 싶었다. 초병에게 물었더니 소대장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고 했다. 함께 지내던 소대장을 떠나보내는 전별식을 하는 중이었다.


순서를 마쳤는지 소대장은 차를 타고 검문소 앞까지 왔고, 소대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차를 뒤쫓아 달려왔다. 서로가 정이 많이 든 사이구나 싶었다. 하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 외진 곳에서 함께 지냈으니 어찌 정이 들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가 형제 같을 터였다.


소대장의 차가 멈춰 서자 초병이 다가가선 하차를 명한다. 차에서 내리는 소대장을 보니 얼굴이 앳되다. 소대원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연배의 젊은이들이었다.


소대장이 차에서 내리자 초병 두 명이 자동차 안은 물론 차량 하체를 검사하는 도구를 끌고 다니며 사방으로 차량 검사를 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함께 지내던 사람을 떠나보내기 전 함께 지내며 늘 했던 일을 마지막 관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베풀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젊은이가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다른 부대로 떠나가는 전별식은 웃음 속에서 이어졌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괜히 짠했다. 누군가를 보내고, 누군가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언제라도 마음을 짠하게 하는 법이다.


40 여분이 지났다 때 마침내 차가 다가왔다. 평화의 댐 쪽에서 레미콘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를 세운 초병들은 조금 전 소대장을 보낼 때처럼 차량 검사를 했고, 검사를 마친 뒤 기사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젊은 레미콘 기사는 선뜻 차에 타라고 했다.


레미콘의 높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높았다. 경사가 아찔했다. 자리에 앉으니 시야가 탁 트인다. 부산 쪽에서 일을 하러 왔다는, 선하게 생긴 젊은이가 운전하는 레미콘 차를 타고 민통선 안을 달렸다.


철조망 밖과 무엇 하나 다를 것이 없는 풍경과 공기,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민통선 안과 밖이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은 뭔지 모를 통증처럼 여겨졌다.


평화의 댐에서 화천까지 가는 길, 막혔던 길 하나가 그렇게 열렸다.


길이 있어 가기도 하지만, 가면 길이 되기도 한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길도 그렇게 열렸으면! 마음이 오가고 걸음이 오가며 몰랐던 길 하나 우리네 가슴 속에 화들짝 활짝 열렸으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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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이때껏 찾은 적 없었던 ‘평화의 댐’을 걷는 기도 중에, 걸어서 처음으로 찾게 될 줄이야. 방산을 떠나 화천으로 가던 중에 ‘평화의 댐’을 지나게 되었다. 17km의 거리를 오전 내내 부지런히 걸었더니 점심때쯤 ‘평화의 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평화의 댐’은 이름과는 달리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로 남아 있다. 1986년 당시 건설부 장관은 모든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북한을 향하여 ‘금강산 댐’ 공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문이었다.


평화의 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북한이 휴전선 북방 10㎞ 북한강 본류와 금강산이 만나는 곳에 대규모 ‘금강산 댐’을 건설하여 물을 원산 쪽으로 역류시켜 발전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데, 이 댐이 완공될 경우 북한강을 통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오는 연간 18억 톤의 물 공급이 차단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약과였다. 온 국민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이 ‘금강산 댐’을 붕괴시켜 200억 톤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하는 이른바 수공(水攻)을 벌이면 남한은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럴 경우 물이 63빌딩 중턱까지 차오를 수 있다며 방송에서는 연일 그래프까지 동원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방송마다 경쟁하듯이 보여주던 자극적인 영상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63빌딩이 저 정도라면… 두려움과 공포는 매우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온 나라가 물에 잠길 것 같은 두려움이 이미 물에 잠긴 것처럼 퍼져갔다. 마침 그 때가 서울에서 열리는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둔 시점,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책략일 수도 있다는 그럴듯한 생각이 보태져 급속도로 번져갔다.


세계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든 평화의 종. 

이래저래 평화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조된 분위기는 대응댐 건설 계획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수공을 막기 위한 댐을 건설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반강제적인 할당도 적지 않았다. 각 기업은 물론 초등학교 아이들도 코 묻은 돈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성금이 모두 733억 원, 정부는 이듬해 대응댐 공사에 들어갔다.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국에 대한 관심들이 온통 금강산댐으로 모아졌고, 어수선했던 모든 것들이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잠깐 가라앉는다고 영원히 가라앉는 것도 아니고, 가라앉는다고 모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평화의 댐 건설 당시 모금한 성금의 사용내역과 금강산댐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일자 김영삼 대통령은 감사원에 진상규명을 지시했고, 감사 결과 금강산댐의 위협과 이를 대비하기 위한 ‘평화의 댐’의 필요성도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평화의 댐’은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 거짓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대학생들로부터 2위로 꼽히기도 했고, 〈워싱턴포스트〉지에서는 ‘불신과 낭비를 상징하는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 부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평화의 댐’은 이래저래 평화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평화의 댐’에 도착했을 무렵, 왜 그런지 기운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걸음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씨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염주의보가 연일 문자로 날아오고 있었다. 국민재난처였던가, 날이 뜨거우니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내용이었다. 머리 위에서 벌침처럼 쏟아지는 뙤약볕은 물론 도로에서 후끈 바람에 실려 올라오는 지열까지, 길을 걷기에는 분명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날씨였다.


‘평화의 댐’에 들르려면 경사진 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그냥 지나쳐 갈까, 지친 상태였기에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걸음을 옮겼다. 내가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까, 그런 생각이 걸음을 옮기게 했다.


‘평화의 댐’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미국 서부에 있는 ‘후버댐’을 본 적이 있는데, 규모면에서는 뒤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저만한 구조물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댐에서는 요란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만한 높이도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것인지, 어딘가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것인지 댐 곳곳에 불안한 만큼 키가 큰 크레인이 세워져 있었다.


'비목'의 배경이 되는 곰삭은 나무 십자가와 그 위에 걸린 철모. 

나라를 위한 무명의 희생과 헌신을 생각하게 했다.


‘평화의 댐’을 지나 정상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에 부쳤다. 그러면서 비목공원을 지난다. 백암산 부근에서 십자 형태의 나무만 세워져 있는,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지키고 있는 비목을 보고서 조국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쓴 시 ‘비목’(碑木), ‘비목’을 기리기 위한 곳이었다. 저만치 세월에 곰삭은 나무 십자가 위로 녹슨 철모가 걸쳐 있는 모습이 보인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돌에 새겨져 있는 ‘비목’을 눈으로만 따라 불렀다. 세상에는 평화를 가장한 평화 아닌 것들이 참으로 많다. 간디가 자주 인용했다는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선한 동기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화의 댐’은 평화에 대해서 역설적인 말을 건네고 있다 여겨졌다.


어쩌면 깨어 있는 한 사람을 속이는 것보다는 무지한 다수의 군중을 속이는 일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속는 자가 다수일 경우 속는 자들은 자신이 다수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다수에 속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선택을 신뢰하고 지지하며, 고민하지 않거나 고민을 외면한다.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를 엄격히 구분하신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세계 30여 개의 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는 평화의 종 앞에 서서 ‘평화의 댐’ 일대를 내려다보며 한 줌의 기도를 바친다.


‘댐을 만든 동기야 어떻다 하더라도 이 댐이 부디 평화를 위해 쓰이게 하소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바꾸소서!’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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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9)


산양의 웃음


양구를 떠나 화천까지 가는 날이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엿새째, 절반쯤을 지나고 있는 셈이었지만 아직은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이른다.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는 곧바로 길을 나섰다. 로드맵에 ‘전 여정 중 가장 난코스’라 적혀 있는 날이었다. 38.3km, 걸어야 할 거리 또한 가장 긴 날이었다.


동네 앞을 흐르는 큰 개울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멋진 수묵화를 누군가가 맘껏 그리고 있었다. 저 한없이 부드럽고 막힘없는 붓질이라니! 문득 단강에서 물안개를 보며 썼던 ‘두 개의 강’이 생각났다. ‘좋은날 풍경’ 박보영 씨가 곡을 붙인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외로울까 봐

흐르는 강물 따라

피어난 물안개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나란히 흐릅니다

나란히 가는 두 개의 강

벌써 바다입니다


전날 밤, 장로님 일행이 다녀간 이야기를 들은 함광복 장로님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참 하나님은 그렇게 절묘하십니다. 전 내일 해산을 넘으실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해산은 태산이거든요. 이제 육군으로 전역하세요. 성도님들도 그 감동을 나눠 갖게 하셔도 좋을 것 같아서요. 뭘 드시겠냐고 물으시면 닭이나 오리를 선택하세요. 마라토너 딘사모와 세계랭킹 3위권 친구들에게 저녁을 산 일이 있었는데 닭고기를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에너지를 순발력으로 발산하는데 그게 최고라면서요. 아, 장로님들 오늘밤 행복하겠다!! ㅎㅎ”


'하늘 꼬리'라는 뜻을 가진 '천미리'는 그냥 얻은 이름이 아니었다. 첩첩산중 저 아래로 가르마 같은 길이 지나고 있다.


금악리를 떠나 천미리로 가는 길, 이번엔 오천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산이 많은 강원도라 그런지 곳곳에 터널이 많았다. 1,296미터의 오천터널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돌산령터널을 지난 경험 때문일 것이다. 돌산령터널은 2,995미터였다. 하지만 오천터널이 5,000m가 아닌 것은 참 다행이었다.


‘하늘 꼬리’라는 뜻을 가진 ‘천미리’(天尾里)는 그냥 얻은 이름이 아니었다. 오천터널을 빠져나와 고개 위에 서니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집 몇 채는 개미집처럼 작고도 아뜩해 보였다. 눈이 모자랄 만큼 장엄하게 겹겹이 둘러선 산봉우리들, 가히 하늘 꼬리라는 이름을 얻을 만한 지형이었다. 가르마처럼 산과 산 사이를 지나는 도로는 우람한 산맥에서 삐져나온 실뿌리 같았다.


천미리를 향해 내려오면서 보니 도로 옆으로는 낙석을 방지하기 위한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철망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산양의 주요 서식지입니다”


바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듯, 산양 한 마리가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현수막을 보고선 산세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아찔한 높이로 솟은 산과 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럭바위와 선바위들, 산양이 살기에는 적지겠다 싶었다. 아니, 깎아지를 바위도 무서워하지 않는 산양만이 살 수 있는 곳이겠다 싶었다.


천미리 일대는 산양이 사는 서식지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발걸음도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설마 산양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랄 일은 없겠지만, 현수막을 보고나니 나도 모르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산양이 어디 있는지 볼 수 없어도 어디선가 산양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고갯길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을 때, 튀어나오듯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 있었다.


자동차 행렬이었다. 저 아래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자동차 한 대가 보인다 싶었는데, 자동차는 연이어 나타났다. 뱀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자동차들은 꼬리를 물고 달려왔다.


모두가 죽어라고 내달리고 있었다. 방금 들었던 굉음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나는 소리였다. 바람처럼 내 앞을 스쳐 지나간 자동차 행렬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단번에 치달려 요란한 소리만을 남긴 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벤츠, BMW, 렉서스, 포르쉐 등 모두가 외제차였다.


잠깐 사이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을 정도였다. 산양이 살고 있는 하늘 꼬리, 고요함과 장엄함이 산맥 가득히 배어 있는 심심유곡, 산양이 놀랄까 발걸음도 조심스레 옮기고 있는 터에 저, 저, 지랄 같은 짓거리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욕이 터졌는데, 그 때 슬그머니 떠오르는 한 모습이 있었다. 조금 전 현수막을 통해서 본 산양의 모습이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허연 수염, 산양이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이르는 것 같았다.


‘내버려 두소. 모두들 자기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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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8)


인민군 발싸개


돌산령터널 안에서 만나 하루를 꼬박 동행했던 정 장로님 내외분과의 일정은 방산에 도착하면서 마쳤다. 폭염 속 땡볕 아래를 종일 같이 걸었던 시간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방산에 도착을 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독일을 처음 찾았을 때였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집회를 마치고 그곳 목사님의 안내로 독일 안에 있는 종교개혁과 관련된 곳을 돌아보던 중 벨기에를 찾았다.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곳에 유명한 성지가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벨기에로 들어가는 길, 국경을 넘는 일이니 당연히 겹겹의 철조망과 총을 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방금 국경을 지나왔어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독일 땅을 달리고 있는 줄로 알았을 것이다.


국경을 그냥 넘다니! 국경을 이렇게 쉽게(?) 넘어도 되나 싶었다. 마치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접어들 듯 아무 일도 없이 통과를 했으니, 내가 다 걱정이 될 정도였다. 여권 검사도 없었고 총을 든 군인들을 만난 것도 아닌데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들어가다니, 나는 내 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며 뭔가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게 뭐지, 마음속으로 이어지던 충격과 혼란은 지금도 새롭다.


방산을 찾으며 불쑥 그 때의 경험이 떠올랐던 것은 ‘방산’이라는 지명 때문이었다. 방산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防産’으로 이해를 했었다. 방산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있으니 당연히 온갖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나 보다 했다.


그러고 보면 분단 시대의 산물은 의외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의식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방이 산이어서 얻은 이름일까, 방산(方山)은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흙이 좋아 예로부터 백자로 유명한 곳이었다. 조선시대 왕실 도자기를 공급하던 경기도 광주 분원에 원료를 공급했던 곳으로, 방산 일대에서는 40기의 옛 가마터가 확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방산자기박물관을 세운 것이었다.


하루의 피곤과 여전한 더위를 달랠 겸 콩국수를 하는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엔 정 장로님 내외분과 인사를 나눌 참이었다. 그런데 막 식사를 마칠 때쯤 전화가 왔다. 이 장로님이었다. 방산 가까이 왔는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다. 



돌산령터널 안에서 만나 방산자기박물관까지 동행한 정장로님. 장로님은 일정을 모두 마칠 때까지 내 배낭을 내려놓지 않았다.


정 장로님도 그랬고 이 장로님도 그랬다. 시간과 장소 등 만날 곳을 약속한 것도 아니었고, 만날 것을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길을 떠나며 미리 전화를 한 것도 아니었다. 두 분 모두 불쑥 찾아온 걸음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 그래서 그랬을까 반가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은 새롭고도 컸다.


떠나려던 걸음을 늦춰 정 장로님 내외분도 이 장로님 일행을 만났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의 만남, 우리는 다 같이 방산자기박물관 뒤편에 있는 평상에 둘러앉았다. 한낮의 무더위와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함께 웃으며 나누는 이야기가 더욱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이런 시간이 다 허락되는구나,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우리가, 이런 것이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길벗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자꾸 마음에 새겨지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은 일이 있었다. 걷기에 나선 뒤 몇 몇 교우들의 전화와 문자를 받은 일이 있다. 특히 나이 많으신 권사님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는데 어떻게 뙤약볕 아래 길을 걷느냐며, 전화를 해서 울먹이기도 했다.


교우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싶어 길을 떠난 뒤 아무 소식을 전하지 않기로 했던 생각을 바꿔 교회 홈페이지에 짤막한 근황을 올리기로 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걱정을 더는 길이다 싶었다. 글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함께 올렸는데, 올린 사진 중의 한 장을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쓰러지면 안 된다며 오집사님이 놓아준 링거는 몸보다도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을 가라앉히기 위해 두툼한 폼 드레싱 한 장을 발바닥에 깔고 압박붕대로 칭칭 감은 사진을 올린 것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폼 드레싱과 압박붕대를 전해준 오 집사님은 왈칵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오 집사님은 그런 모습의 사진을 보고는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차를 수소문하여 동행을 한 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웃었던 것은 ‘인민군 발싸개’라는 말 때문이었다. 물집 잡힌 발을 처치한 사진 속 모습은 영락없이 ‘인민군 발싸개’였다는 것이다. ‘인민군 발싸개’라니, 그 말은 너무도 적절했고, 너무도 실감이 났고, 너무도 재미있었다.


오 집사님이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인민군 발싸개.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하긴, 나는 지금까지 폼 드레싱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압박붕대를 써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배운 적도 없다. 그저 상황에 맞춰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서 처치를 했을 뿐인데, 전문가가 보기엔 아니어도 영 아니었던 것이다.


걱정을 하며 내려온 집사님께 여전히 풀지 않고 있던 인민군 발싸개를 내보이며 그렇게 처치를 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은 참 잘했다며 내가 한 서툰 처치를 인정해 주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넓게 잡혔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정말로 그런 것인지, 내 쑥스러움을 덜어주려는 것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진실을 모르고 있다.


잠깐 사이 시간은 흘렀고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돌아갈 길이 멀었다. 돌아서는 길에 집사님과 장로님이 숙소로 찾아왔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오 집사님은 먼 길을 내려오며 그냥 내려오지를 않았다. 몇 가지 약품과 함께 영양제 주사를 챙겨왔다. “걷다가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세상에나!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영양제를 다 챙겼을까.


영양제는 몸 속으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덕분에 링거를 꽂은 채로 방에서 인사를 나눴고, 링거를 꽂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주사기를 빼냈다.


사방이 고요한 깊은 밤,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잠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먼 길을 찾아왔던 분들은 다들 잘 돌아갔을까, 그처럼 좋은 믿음의 벗을 주신 은혜가 참으로 크고 감사했다. ‘어렵게 준비된 잔치가 아름답다’고 했던 생텍쥐페리의 말은 바로 오늘 같은 날을 두고 한 말이었겠다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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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7)


팔랑리 풍미식당


너덜너덜해질 만큼 로드맵을 손에 들고 다닌 것은 그것이 내가 지닌 유일한 나침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열하루 동안 걸을 길을 지도도 없이, 다른 기기의 도움도 없이 단지 지명이 적혀 있는 인쇄물만을 들고 다니는 나를 걱정 반 딱함 반으로 바라보던 김정권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로드맵을 따라 양구 동면에 있는 팔랑리를 지나게 되었다. ‘팔랑리’라는 지명은 낯설다. 무슨 내력이 있을 것 같아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팔랑(八郞)은 한자로 여덟 팔(八)에 사내 랑(郞)이라 씁니다. 이곳에서 젖이 4개 달린 여자가 4쌍둥이씩 두 번을 출산을 해서 8형제가 태어나서, 모두 낭관(郎官) 벼슬을 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팔랑리로 불러집니다.>


<조선 중기쯤 함경도에 살던 전주 이 씨인 이학장(李學長)이라고 하는 도사(都事: 관리의 감찰과 규찰을 맡아보던 조선조의 종5품 관직)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가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다가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지금의 동면 팔랑리(八郞里)에 이르렀다. 이곳 산수가 가히 자기의 뼈를 묻을 만 한 곳이라고 생각한 그는 몇몇 친족들과 함께 여기에 터를 닦고 살게 되었다.


이학장은 여기에 터를 잡고 집도 세웠으나 늘 허전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학장이 허전해 하는 것을 본 이웃 사람들은 “큰 집을 짓고 그것을 혼자 지키니 그럴 만도 하지. 집을 지었으면 아내를 맞아 들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이학장에게 처녀를 맞아 짝을 지을 것을 권했다. 이학장은 결국 마을 사람들에 의해 이웃 마을에서 아리따운 낭자를 천거 받아 그 낭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아내를 맞이한 첫날, 이학장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리따운 아내의 가슴에는 마치 짐승과 같이 네 개의 젖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이학장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것도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며 배필이라고 생각하고 젖이 넷 달린 신부를 그대로 맞아 살기로 결심했다. 이학장의 신혼생활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1년이 채 못 되어 이학장의 아내는 아이를 가져 출산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네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몇 해 있다가 또 출산을 했는데, 또 네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아들 여덟 명을 낳은 것이다. 그제야 이학장은 자신의 아내가 젖이 네 개 달린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


두 부부는 8명의 아들을 정성을 다해 잘 길렀다. 어느덧 8형제는 장성해서 성인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했으며 무술이 뛰어났다. 어느 해 봄 8형제는 나라에서 행하는 과거시험을 보고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래서 나란히 낭관(郎官) 벼슬(조선조의 6품관 벼슬)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이 마을은 여덟 사내아이를 낳아 낭관 벼슬을 시킨 곳이라고 해서 팔랑리(八郞里)라고 불렀으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러지고 있다.>


그만한 사연이 있는 동네 팔랑리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민요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팔랑리는 곰취로 유명한 곳인데, 그래서 그럴까 나물 뜯는 노래인 <얼러지타령>이 전해져 내려온다.


돌산령, 달산령 선질꾼이 떴다 재작장이의 공지갈보야 술 걸러 놓아라.

대암산 용늪에 쌓인 눈이 녹거든 임자 당신과 소녀 단둘이 얼러지 캐러 갑시다.

대암산 용늪에 얼러지가 나거든 우리나 삼동세 얼러지 캐러 가세.

돌산령, 명당 구비에 쌓인 눈이 녹거든 당신하고 나하고 얼러지 캐러 갑시다.

대암산 멀구다래가 열거든 우리나 삼동세 멀구 따라 가세.

산천에야 그물은 머루 다래 인간에 그물은 당신이로구나.

돌산령 샛바람이 휘몰아치니 심곡사 종소리 요란도 하구나.

못 살겠구나 못 살겠구나 나는 못 살겠구나 돈 그리고 임이 그리워 나는 못살겠구나.

천질만질을 뚝 떨어져서 살았거든 정든 임이야 떨어져선 나는 못살겠구나.

바랑골 뒷산에 머루 다래 열거든 당신하고 나하고 머루 따러 갑시다.

산수갑산에 다랑칡은야 얼그러설그러졌는데 당신하고 나하고 언제나 얼그러설그러지느냐.

어스름 달밤에 백우산을 받고서 요리가자 조리가자 날 호리는구나.

무정한 기차야 말 실어다 놓구서랑 고향 실어줄 줄은 왜 날 몰라주나.

요놈아 총각아 손목을 놓아라 물같은 손목이 얄크러진다.


팔랑리는 지나가는 곳인데, 로드맵에는 팔랑리를 그냥 지나가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풍미식당’(구 한중관)을 꼭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풍미식당을 찾아가라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장면이야 어디서든 먹을 수 있지만, 풍미식당에 가면 그곳에만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


“내가 뽑은 자장면 길이가 휴전선 철조망 길이의 열배쯤 될 것이라던 주인장은 뒷방신세. 며느리가 최전방에 사제 냄새를 올려 보내는 일을 하고 있음.”


풍미식당에서는 망설일 것도 없이 자장면을 시켰다. 제일 맛있는 자장면은 배고플 때 먹는 자장면일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가 먹는 자장면이었으니 그날의 자장면은 최고의 맛이었다. 후룩 후룩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자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사실 풍미식당을 찾으면서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자장 맛이 아니었다. 자신이 뽑아낸 자장면 면발의 길이를 휴전선 철조망에 빗댄 뒷방신세 영감님을 뵙고 싶었다. 그분의 얼굴에 배인 세월의 흔적을 마주하며 그동안 수고하셨다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또한 시아버지의 솜씨와 마음을 잇고 있는, 그래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게 여겨지는 며느리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자장면을 먹고 나오면서 계산대에 있는 할머니께 풍미식당을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잘 계신지 근황을 여쭸다. 그러자 할머니는 선뜻 대답을 못하시고는 이내 두 눈이 먼저 젖어들었다.


“어쩌지요, 남편은 지난해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손님이 여간 고맙지가 않은데 할아버지는 안 계시니, 그런 고마움을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대신하려는 듯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돌아가시던 날도 산에 가서 나무도 해오고, 자장면도 70여 그릇을 손수 만들어 팔았는데, 그렇게 정정했는데 그날 밤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뽑은 자장면 길이가 휴전선 철조망의 열 배쯤 될 것이라 했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당신이 일손을 놓을 때쯤엔 철조망도 거두어지기를 바라지 않으셨을까.


할아버지 이야기를 이어가던 할머니가 생각이 났는지 주방에 있는 며느리를 불렀다. 할머니는 내게 들었던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했고,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는 목이 메는지 이내 숙연한 표정이었다.


시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하고 풍미식당을 소개해준 사람이 고마웠기 때문일 것이다, 며느리는 풍미식당을 소개한 분의 이름을 물었고, 메모지에 그 이름을 적었다.


휴전선 철조망 길이의 열배나 되는 자장면을 뽑아내던 할아버지는 훌쩍 이 땅을 떠나고 지금이야 며느리가 그 일을 잇고 있다지만, 과연 풍미식당 자장면 사제 냄새는 언제까지나 최전방 고지로 퍼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팔랑리나 그 인근을 지날 일이 있다면 풍미식당을 찾아가 자장면을 맛보시기를 권한다. 자장면이야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지만 오직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있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며느리가 있는 곳이니 얼마든지 들를 만하다 싶다.


한 가지, 풍미식당을 찾을 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식당은 아침 11시에 문을 연다. 일찍 간다고 대충 받아주지 않는다. 음식 준비를 제대로 한 뒤에야 손님을 맞으려는, 그 또한 할아버지가 남긴 미더운 고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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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6)


‘화’와 ‘소’



끝을 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얼마만큼을 견디면 주어진 시간이 끝날 지를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든 것은 끝을 모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보다는 때를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다.


2995m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는 거지, 돌산령터널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터널은 만만치 않았다. 길어도 정말 길었다. 심호흡을 길게 한다 생각하면 빠져나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가도 가도 제자리다 싶었다. 중간에 만들어놓은 차량 대피소를 몇 차례나 지나야 했다. 터널 끝 출구로 보이는 하얀 점은 커지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아, 내가 걸어가는 만큼 뒤로 물러서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길을 걸으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늘도 그랬고 나무도 그랬다.



해산을 떠나 돌산령터널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지쳤던지라 그야말로 터널 속을 터덜터덜 가고 있는데,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내 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뭔가가 눈에 띄었다. 눈여겨보니 ‘화’라는 글자였다.


이게 뭐지 싶었다. 왜 이 글자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이 소위 화두(話頭)라는 것, ‘화’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뜻일까 싶었다.  


걸어오면서 드리고 있던,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을 위해 드리던 기도를 잠시 멈추고 우연처럼 만난 글자 ‘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이끄시는 그 분의 인도하심일 수도 있을 터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음속의 ‘화’였다. 내 마음속에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분노(anger)들이 있다. 모두 거룩한 분노는 아니다. 잡다한, 어리석은 분노도 있다. 내 맘에 ‘안 드는’ 것은, 내 속이 ‘좁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주님이 말씀하신 ‘멸망의 자식’(요17:12)이 떠오르니,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和’도 떠올랐다. 하나 됨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걸까, 큰 숙제처럼 다가온다. ‘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가 합해진 글자, 곡식을 함께 경작하여 함께 먹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일까? 함께 심고, 함께 가꾸고, 함께 먹는다면 화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중의 무엇 하나가 빠지든지,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니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겠지…. 


‘花’도 떠올랐다. 꽃처럼 산다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머잖아 진다는 것을 알기에 피어있는 순간을 절정으로 삼는 것. 남에게 보일 때가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이 될 때가 아름답다는 것. 망초가 장미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모습으로 설 때가 자연스럽다는 것….


나도 있어요, 끼어들 듯 ‘貨’도 떠올랐다. 재물에 대한 생각은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 테르스 테겐의 시로 대신했다.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탁 터져서 장비 없이 빈손으로/ 많이 모은 소유는 우리 동작에 발꿈치에 무거울 뿐/ 원하거든 쓰러지도록 소유하라/ 우린 버리고 가리라/ 적은 것을 사랑하며/ 부득이한 것만을 한 손에 움켜쥐고.”


그래,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살자!

 

 

 

무시무시한 구호가 적혀 있을 것 같은 군부대 담장에도

얼마든지 따뜻한 글과 그림이 담겨 있었다.

 


‘화’에 대해 생각하며 걸은 걸음이 제법이다 싶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빛의 출구는 저 멀리 아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가 내가 걸어갈 길을 알고 미리 앞서가면서 뭔가를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하나의 숙제를 마쳤더니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소’였다. 문득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짐짓 물리고 다시 ‘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 단강에서 썼던 ‘소’가 떠올랐다. 


“소는 착해요/ 불쌍하게 착해요/ 질긴 침 질질 흘려/ 논밭을 갈고/ 싫단 말 한번 없이 험한 밭 갈고/ 쉬는 시간/ 여물을 꺼내 씹고/ 혓바닥 아프게 핥아준 귀여운 새끼/ 겅중 송아지/ 어디 멀리 팔아도/ 이틀 울음뿐/ 나머진 속울음/ 그러다가 마지막 죽어 고기로 남는// 소의 두 눈엔/ 엄마가 보여요/ 껌벅이는 두 눈 속엔 엄마가 있어요” 


소의 걸음, 소의 눈매, 우직하고 미련한 소 같은 삶을 생각했다.


‘자연스레 ‘小’와 ‘少’가 떠올랐다. 작음과 적음, 작아짐과 낮아짐과 떠밀림과 잊힘을 견디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단단해져야 하는 걸까를 생각했다.


‘笑’가 떠오르는 순간, 딸 소리가 떠올랐다. 첫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笑里’라 지었다. 너 사는 마을에 너로 하여 웃음 넘치기를, 그런 축복의 마음을 담았다.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집갈 때까지 끼고 살아야지 했던 것과는 달리 소리는 지금 독일에서 지내고 있다. 독일에서 목회를 마치고 귀국을 할 때 소리가 고3, 한창 부모의 배려와 격려가 필요할 때에 동생 둘을 맡기고 귀국을 했으니 아비로서는 참 모진 선택을 한 셈이다. 두고두고 미안한 일,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이 와락 밀려들었다.

 

 

 

혼자 길을 걷다 보면 뭔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일들을 만나고는 했다.

 


 

터널 속에서 만난 ‘화’와 ‘소’라는 글자.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지만 끝내 ‘기’나 ‘전’이라는 글자를 만나지 못한 것을 보면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화와 ’소‘이기에 길을 걸으며 그것을 생각하라는 그 분의 뜻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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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5)


해안(亥安)


‘해안’이라는 지명은 낯설었다. 오히려 ‘펀치볼’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 땅인데도 영어로 된 이름이 더 친숙한 아이러니라니!


‘펀치볼’은 6.25전쟁 당시 미군 정찰병들이 해안의 특이한 지형을 보고는 과일 화채를 담는데 쓰이는 ‘Punch Bowl’과 그 모양이 흡사하다고 해서 별명처럼 붙여준 이름이라 한다.


해안을 떠나며 언덕에 서서 바라보니 그곳이 왜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를 한눈에 이해하게 되었다.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채 그 안에 펼쳐진 드넓은 땅, 펀치볼은 그야말로 하늘을 향해 놓인 빈 그릇 같았다.


‘해안’이라는 이름의 뜻도 뜻밖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을 가리키는 ‘海岸’이 아니었다. 실제로 ‘해안’에는 어디에도 바다와 맞닿은 곳이 없어 ‘海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이다.


‘해안’은 ‘亥安’이라 쓰고 있었는데, ‘돼지 해’(亥)에 ‘편안할 안’(安)을 합한 말이었다. 이름이 ‘亥安’이 된 데에는 유래가 있다고 한다. 분지로 이루어진 그 지역엔 유독 뱀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뱀의 천적이 되는 돼지를 많이 키우게 되었는데, 돼지들이 그 많던 뱀을 잡아먹고 나서야 그 지역이 안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亥安’이라니,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채 그릇 모양으로 둥근 산이 둘러싼 해안, 그 그릇이 얼마나 큰지 감자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해안에서는 두어 가지 마음에 남을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해안보건지소 직원들의 친절을 잊을 수가 없다. 원통에서 동행한 김정권 형은 그날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떠났고, 다시 나만 혼자 남았다. 마침 해안에 도착한 시간이 보건소가 문을 닫기 전, 서둘러 보건소를 찾았던 것은 발 상태 때문이었다. 물집 잡힌 것이 여전하여 앞으로 걸어갈 길이 걱정이 되었다.


배낭을 멘 채 지친 모습으로 들어섰기 때문일까, 훅 풍기는 땀 냄새 때문이었을까, 늘 보던 익숙한 주민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보건소 직원은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왔는지를 물었다. 잠시 상황을 설명하며 발에 잡힌 물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야기를 들은 보건소 직원은 순간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보건소를 담당하는 공중보건의가 출타 중이어서 규정상 자신들은 진료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서려 하자 잠깐 기다려 보라 하더니 이내 시원한 음료부터 가져다주었다. 과일즙을 희석시킨 음료가 참 시원하고 개운했다. 이번에는 다른 직원 한 분이 압박붕대와 폼 드레싱을 찾아 전해주었다.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동안 그들은 내게 왜 길을 걷는지를 물었고, 걷는 이유를 말하자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혹시, 목사님이세요?”


무엇이 나를 목사로 보이게 했을까?


“어떻게 알았어요?” 하자


“실은 우리도 크리스천이랍니다.” 하면서, 비무장지대를 따라 걸으며 기도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렇게 짐작을 했노라고 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지만 잠깐 사이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두 직원과 나누는 대화는 미덥고 즐거웠다.


보건소에서 나와 보건소로 가면서 본,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던, 주인이 멀리 나가 있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모텔 앞으로 와서 주인이 올 때를 기다리며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있는데, 조금 전에 만났던 보건소 직원이 급히 그곳을 찾아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모텔을 하는 분과 통화를 했는데, 식당 뒤편에 있는 문이 열려 있답니다. 그러니 식당에 들어가서 편히 쉬며 기다리라 해서요.” 알고 보니 2층 모텔과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의 주인이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나그네 된 입장에서 보자면 해안보건지소의 두 여직원은 천사처럼 친절했다. 지나가는 지친 길손에게 그들은 의무 이상의 배려를 전해 주었다.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보라색 붓꽃이 맘껏 피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해안을 떠나 양구를 향할 때였다. 돌산령터널을 향해 걸어가다가 ‘펀치볼 야생화공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눈이 모자랄 만큼 드넓은 땅에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다. 노란꽃창포가 눈길을 끌었고,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보라색 붓꽃이 맘껏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양구군 해안면은 토지 경사도가 높고 마사토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다가 토질은 모래와 모래 진흙으로 되어 있어 겨울이 지나며 언 땅이 녹을 때나 많은 양의 비가 올 때면 다량의 흙탕물이 발생하여 하천 생태계의 오염이 심각했다고 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군에서는 토사 유출의 방지를 위해 피복력이 강한 향토 야생화와 토양을 덮어 풍해나 수해를 방지하여 주는 지피식물 (地皮植物)을 집단으로 재배하기로 한 것이었다. 야생화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생태계를 보존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도한 것이었으니, 그런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여겨진다.


토사 유출과 흙탕물 방지를 위해 만든 것이 야생화공원이라니, 그런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맞다, 많은 경우 꽃은 좋은 대안이다.


야생화 단지를 바라보며 길을 걷고 있자니, 망초 꽃이 가득 피어난 구역이 눈에 들어온다. 망초 또한 넓은 땅에 무리지어 피어나니 마치 안개꽃처럼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순간 드는 생각, 야생화공원에서 일부러 저곳에 망초를 심었을까, 그냥 방치한 땅에 망초가 피어난 걸까, 하긴 망초도 야생화이니 얼마든지 저 자리를 차지할 권한이 있는 꽃인데…, 그러다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흔한 꽃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 일부러 그곳에 심은 거라고.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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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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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펀치볼은 그 옛날 운석이 떨어져 생겼다는 설과 차별침식분지라는 설이 양분합니다. 전 노아의 홍수 지구 재편 때 만들어진 하나님 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그분이 빚은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도 격려가 될 겁니다.”


함광복 장로님이 그렇게 표현했던 펀치볼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처음부터 긴 팔 옷을 입고 나선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조금만 가면 돌산령터널이 나오는데 돌산령터널 안은 한 여름에도 추우니 꼭 긴팔 옷을 챙겨 입으라고, 전날 보건지소에서 만난 마을분이 일러준 말을 너무 고지식하게 따른 결과였다. 바람막이 긴팔 옷은 이내 땀에 젖고 말았는데 그러면서도 터널이 금방 나타나겠지 싶어 옷을 벗지 않은 채 걸음을 이어갔으니, 역시 모르면 모르는 만큼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금방 나온다고 했던 터널은 한참을 걸었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먼 길을 걸어서야 터널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터널로 향하는 길 바닥에는 파란색으로 그려진 자전거 길이 있었는데 자전거 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것이 있었다. 철조망이었다. 저것이 악보를 적는 오선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철조망에는 음표 대신 ‘지뢰’라는 경고판이 같은 음으로 매달려 있었다. 파란색 자전거길 표지와 붉은색 지뢰 표지,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그렇게도 평화와 위험이 가까이 공존하고 있었다.


해안에서 양구로 가는 길목,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일러주듯 돌산령터널은 참으로 길었다.


돌산령터널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도솔산을 옆으로 끼고 해안과 양구를 잇는 터널이었다. 돌산령터널과 도솔산전투 또한 파란색 자전거길 표지와 붉은색 지뢰 표지만큼이나 역설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돌산령터널 입구까지 오느라 땀은 가득하고 숨은 벅찼지만 곧장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길을 걸으며 정한 원칙 중의 하나는 고개를 만나면 아무리 힘들어도 고개를 넘은 뒤에 쉬자는 것이었다. 힘들다고 중간에 쉬면 다시 일어나 걸을 때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었다.


터널 안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가장자리로 사람이 걸어갈 만한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도로에서 그랬듯이 터널 안에서조차 사람이 걸어갈 길이 따로 없으면 얼마나 위험할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도로보다 조금 높은 곳에 일정한 크기의 콘크리트 덮개가 이어져 있었다. 덮개는 걸을 때마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차 한 대만 지나가도 터널 안에 엄청난 공명이 생겨 마치 거대한 터빈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괴롭기가 여간 아니었지만, 그래도 터널 안에 보행자 통로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만 다행이라 여겨졌다.


돌산령터널의 길이는 2995m, 꼭 5m 모자라는 3km였다. 말이 3km지 터널 속을 그만큼 걸어간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하얀 작은 점 하나가 보이는데 출구지 싶은 그 희미한 점은 가도 가도 여전히 같은 크기를 유지하며 가까이 다가오지를 않았다.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를 돌산령터널은 터널 속을 걷는 내내 생각하게 했다.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준 정장로님.


지루하다 싶을 만큼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또 걸으니 어느 샌가 저 끝으로 하얀 빛의 동그라미가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일이 생긴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터널 맞은편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역광이기도 했지만 혹시 내가 환영을 본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은 그동안 길을 걸으며 길을 걷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처럼 길을 걷는 사람이 있구나, 그 사람을 터널 안에서 만나다니, 기가 막힌 인연이다 싶어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인사라도 나눠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터널 안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다.


“목사님…!”


순간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둠 속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 양 옆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는 맞은 편 사람은 저벅저벅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와서야 나를 향해 걸어온 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성지교회 정 장로님이었다. 내가 멍-해 있는 사이 장로님은 빼앗듯이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을 벗겨 자신이 메고는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왜 그랬을까,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장로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었다. 엉엉 울고 싶었다. 두 눈이 금방 흐려졌다.


터널 밖으로 나왔을 때에야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터널 밖에는 장로님의 부인 김 권사님이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 내외는 새벽 일찍 길을 떠나 내가 걷고 있겠다 싶은 길을 짐작하며 역(逆)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제법 먼 길을 왔다 싶은데도 내 모습이 보이질 않자 펀치볼 입구인 돌산령터널까지만 가보고, 그래도 보이질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했단다. 그런 마음으로 돌산령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는데 누군가 터널 속을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걷는 모습이 힘이 하나도 없어 보여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하긴 터널까지 오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였으니 걸음이 힘찼을 리는 없을 일이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두 분은 터널 끝으로 나가 차를 유턴하여 반대편으로 온 것이었고, 길가에 차를 세워둔 뒤 장로님이 터널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 만남이 세상에 어디 흔할까? 일어난 일이 비현실적이다 싶어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권사님은 차에 챙겨온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주셨고, 우리는 길가 바닥에 앉아 드문 만남이 주는 은총을 마음껏 누렸다.


길을 걷다 쓰러지면 안 된다고, 앞서간 권사님이 정한 식당은 토종닭 백숙집이었다.


그날 장로님은 바로 돌아서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같이 걸었다. 권사님은 우리보다 앞서가며 식당을 예약하는 등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차를 운전하는 권사님이 여전히 목사의 배낭을 대신 메고서 걷는 장로님께 배낭을 차에 싣자고 했다. 차 뒷자리에 싣고 빈 몸으로 걸으면 훨씬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으니 나도 그러자고 했는데, 장로님은 배낭 안에 큰 보물이라도 있는 듯 고집을 부렸다. 지지 않아도 될 배낭을 종일 메고서 걸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모습이 보물이었다.


그날 나는 장로님을 통해 짐을 함께 진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짐이 무엇인지 짐을 어떻게 벗을 수 있는지 말로 하는 것도 아니었고, 짐을 진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혹은 함께 편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짐을 나누어지는 것, 그러느라 함께 땀을 흘리는 것, 그것밖엔 없었다.


길고 지리한 돌산령터널, 내 배낭을 대신 메고 앞서 걸어가는 장로님의 뒤를 따라 터널을 빠져나올 때, 내가 빠져나온 것은 돌산령터널만은 아니지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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