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5)


몇 가지 다짐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다. 걸으면서 지킬 몇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첫째, 잠은 허름한 곳에서 잔다.

둘째, 밥은 최소한의 것을 먹는다.

셋째, 꽃 한 송이, 풀잎 하나 꺾지 않는다.

넷째,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킨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지키기 쉬웠던 것은 네 번째 다짐이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다니면서 내가 버리지는 말아야지 했다. 배낭 밖에 있는 주머니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 담았다가 숙소에 들어가면 봉지를 비웠다. 당연한 일인데도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또 하나 잘 지킨 것이 세 번째 다짐이다. 사실은 그것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야생 더덕을 만나도 캐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었는데 마음이 슬쩍 슬쩍 흔들리던 순간들이 있었다.


강원도 외진 곳에는 먹을 것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도 잘 익은 오디가 곳곳에 흔했다. 어릴 적만 해도 오디가 익을 철이 되면 동네 어린 우리들의 입은 누구 따로 예외 없이 먹물 묻은 듯 시커멓게 변하곤 했다. 오디가 까맣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차례가 돌아오질 않으니 아직 덜 익어 신맛을 내는 붉고 푸른 오디를 따먹곤 했다.


그런 시절을 두고 이제는 오디를 딸 사람이 없어 그냥 나무에 매달려 있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골마다 아이들은 없고 노인들은 손이 미치지 못하고, 커다랗게 잘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 그냥 지나갔다.


곳곳에 산딸기도 많았다.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가 보이면 침이 고였다. 특히 목이 마를 때 딸기가 눈에 띄면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폐가지 싶은 돌담에 잘 익은 앵두가 올망졸망 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개량 보리수이지 싶은 붉은 열매가 눈에 띌 때에도 얼마든지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몇 번인가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띄었지만 그 또한 뜯지 않았다. 그냥 두면 나중에 누군가가 행운처럼 만나지 않을까.


세 번째 원칙을 지킨 것이 준 도움이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가 있었다. 로드맵에는 하루 평균 걸어야 할 거리가 30km 정도라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차량 내비게이션 거리, 실제 걸어보니 35km 정도가 되었다. 오디를 따거나 산딸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날그날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도움 받은 것도 소화와 관련이 있다. 일정 내내 배낭에 넣은 휴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평소에 먹고 마시던 음식과 물이 다르기에 소화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써야지 싶어 비상용 휴지를 챙겼는데,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빨래를 했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숙소는 그래도 좋은 숙소였다.


허름한 집에서 자겠다는 첫 번째 다짐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숙소는 허름한 모텔이었다. 묵는 곳이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하룻밤 잠만 자고 다음날 일찍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굳이 좋은 곳을 택할 이유도 없었다. 샤워를 할 때 따뜻한 물이 나오고, 빨래를 한 뒤 탈수기를 쓸 수 있는 곳이면 매우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하루는 할머니가 하시는 민박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자기도 했다. 큰 회관에서 혼자 잠을 자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눕기만 하면 이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묵었던 옥계리 마을회관.다음날 아침 부녀회장님 댁에서 먹은 아침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가족 5명과 한 식탁에 앉았으니까.


이틀 밤은 생각지도 않게 편한 숙소에서 잤다. 화천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큰 훈련을 마친 때라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았고, 덕분에 숙소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망설이다가 후배 목사에게 전화를 하여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후배는 아예 교우가 하는 펜션을 잡아주었다. 일정 중 마지막 밤은 일부러 먼 길을 달려온 이 장로님의 배려로 편안하고 조용한 펜션에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밥을 최소한의 것으로 먹어야지 했던 두 번째 다짐도 첫 번째와 비슷했다. 혼자 다녀보니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식사였다. 밥은 모두 식당에서 사 먹었는데(두 끼는 식당을 만나지 못해 비상용 간식으로 대신했지만),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 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안 받는다고 하여 도로 나온 식당도 있다. 받아준다고 해도 혼자서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많지도 않았다. 백반과 김치찌개, 콩국수가 그 중 무난한 메뉴였다.


혼자 들어가면 난감해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메뉴 선택도 제한이 되었다.


열하루 동안 땡볕 아래를 걷는 일정,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쓰러진다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 분들이 있었다. 정 장로님 내외분, 이 장로님 내외분, 화천의 박 장로님 내외분,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단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고마운 격려를 듬뿍 전해 받는 시간이었다.


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길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지 싶다.

인생의 길과 믿음의 길도 그러면 어떨까 싶다.

사소해 보여도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며 걸어간다면!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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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4)


행복한 육군


자주 혹은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기회가 될 때면 함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다. 로드맵을 만들어주신 뒤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난 건 아닌지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들어 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무시면서 꾀를 내세요. 응원군을 불러 물도 간식도 챙기고 잠자리를 구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꾑니다. 걷는 것 이상으로 그런 일이 더 힘든 겁니다. 


육군 행군 훈련은 먹고 자는 것은 지원부대가 따로 해주기 때문에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해병대는 그것까지 스스로 해결합니다.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소속변경하시는 것을 강추!! 저만 알고 있을게요. 


‘하나님 우리 목사님 흉흉한 이 세상에 당신의 종이 된 저 깊은 속을 위로하세요. 아멘.’


요일 별로 담긴 비타민과 영양제. 그것을 먹을 때마다 우린 당신을 응원합니다 하는, 따뜻한 격려로 와닿았다.


다음날 소똥령 마을을 향해 오르다 잠시 도로 옆 나무 그늘에 들어 쉬는 시간, 장로님께 답장을 드렸다.


“진부령으로 가는 길, 잠시 그늘 아래에 앉았습니다. 전해주신 로드맵이 큰 도움이 됩니다. 군 생활은 육군에서 했지만, 걷기는 해병대를 택하고 싶습니다.


그렇잖아도 지원군을 자청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필요하면 이야기 하겠노라 했습니다.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다 싶습니다.


아침에 대대리를 지나며 대대교회에 들렀습니다. 먼저 소천한 친구 목사가 목회하던 교회였지요.


저 멀리 병풍 같은 산이 보입니다. 어서 오라 팔을 벌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걸어야겠어요.”


막 일어서려는데 장로님이 답장을 보내왔다.


“대대리를 지났으면 오늘 길은 헷갈릴 데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숙박이 문제, 진부령에 감리교회 기억하시죠? 원래 해병대가 멋있지요. 멋지세요.”


해병대와 육군, 재미난 표현이었다. 단어 하나에 내가 갖는 시간의 의미와 성격과 빛깔이 오롯이 담긴다 싶었다. 군더더기를 버린다면 짧은 말 한 마디에도 충분한 의미가 담길 수 있는 법이다.


먹는 것이 부실하면 쓰러진다며 먼 길을 찾아와 토종닭 백숙을 사주신 분도 있었다.


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고마운 제안들이 있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 같이 길을 걷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다. 행여 부담을 끼치거나 번거롭게 할까 싶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같이 걷자고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먼저 동행자가 되겠다는 말은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었다.


얼마든지 그러자고 했지만 결국은 혼자 걷게 되었다. 마음과는 달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이도 있었고, 생각지 않은 일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혼자 걷기로 한 내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물러선 이도 있었다.


동행하겠다는 말도, 동행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포기하는 모습도 모두가 고마웠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언제든지 한걸음에 달려가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떠난 길이었기에 모든 일정을 ‘해병대’로 마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고마운 만남, 고마운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거미줄에 걸린 이슬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이듯 걷는 기도의 시간을 의미 있게 해 준 소중한 사람들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병대’에서 벗어나 ‘행복한 육군’이 되고는 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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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3)


아, 진부령!


소똥령 마을에서 어렵게 점심을 먹고 다시 진부령으로 오르는 길,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발은 제법 굵었지만 성근 빗줄기, 그러다가 그치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산 전체는 비로 가득했고, 비와 함께 천둥과 번개가 하늘과 계곡을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지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샌가 달리는 차들은 라이트를 켜기 시작하더니 그래도 더욱 빗발이 거세지자 내남없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얼른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 입으며 메고 있는 배낭을 덮개로 덮었지만 거센 빗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몸은 금방 비에 다 젖고 말았고, 신발은 구멍 난 장화처럼 물이 흥건했다.


위아래로도 좌우로도 제법 경사가 진 진부령의 도로가 빗물로 가득했다. 그만한 경사라면 당연히 빗물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야 할 터인데, 쏟아 붓듯 비가 오니 흘러내릴 새가 없었던 것이다.


개울처럼 변한 도로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자 도로 위에는 아름다운 비꽃이 피어났다. 마치 판화를 찍은 것처럼 아름다운 문양이 피어났다.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문양을 보며 왜 하필 먹지도 못하는 닭발이 떠올랐을까만, 아름다운 문양이 비로 가득한 도로 위에 가득 피어났다.


황무지에 꽃이 피듯, 그 모습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도 도로 가득 피어나는 빗줄기의 문양은 대책 없이 아름다웠다.


저 멀리 진부령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이름이 왜 그리 반갑던지. 먼 길을 걸은 자는 모든 이름이 반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어느 순간부터 우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깨를 때려대는 우박이 제법 따가웠다. 하늘의 안마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깐, 모래 알갱이만 하던 것이 어느새 공깃돌만큼이나 커졌다.


위험하다 여겨져 주변을 살폈더니 마침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물 이동로이지 싶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얼른 그 안으로 뛰어가 우박을 피하는데, 바로 앞 수풀 사이에는 금세 우박 알갱이가 소복이 쌓였다.


계곡을 가득 채운 장한 빗줄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천둥과 번개, 거기에 더해 느닷없이 쏟아지는 우박,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날씨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런 악천후를 만난 적은 없었다. 폭우, 천둥과 번개, 우박, 길을 걷는 내겐 어느 것 하나 쉬울 것이 없는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몸은 다 젖었지만 그래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도로 옆으로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걷기를 중단하고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안전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진부령을 넘을까 싶기도 했는데, 비에 다 젖은 나를 태워줄 이가 누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정했다.


그냥 걷자!


그냥 걷기로 했다. 이런 시간이 내 생애 언제 또 찾아오겠는가 싶었다. 어쩌면 내 생애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악천후, 그것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맞으며 그 속을 걸어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악천후가 그렇듯이 그 속을 걷는 일 또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울려대는 계곡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아주 모르지 않기에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몇 번인가는 바로 머리 위에서 비단 천을 찢듯 번개가 갈라지고, 잠깐 멍해 있는 사이 고막이 찢어질 듯 천둥이 울려대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계곡 어디선가 우르르 쾅쾅 요란한 굉음을 내며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굴러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나는 손엔 스틱을 잡고 있었고, 다 젖은 바지 호주머니 속엔 핸드폰과 보조배터리가 있었다. 서툰 지식에도 번개에게 좋은 표적일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지금 너무 무식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막무가내로 하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을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더없이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빗속을 그냥 걷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비를 만난 그 날은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날씨를 이유로 걷기를 중단한다면 길을 걸을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 마음속으로 했던 대답도 떠올랐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거냐고,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을 두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맞겠다고, 비를 맞을 터이니 대신 이 땅의 가뭄을 끝내 달라고 대답했었다. 이 땅에 이어지고 있는 가뭄이 지독한 가뭄이라면 장한 비를 맞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마침 그날은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날이었다. 걸으면서 떠올렸던 사람들, 누구의 삶도 쉬운 삶이 없었다. 힘겨운 삶을 떠올리며 기도를 바치기엔 오히려 그런 악천후가 제격이다 싶었다.


진부령에서 만난 시간은 내 생애 가장 심한 악천후였다. 그 시간을 통과하듯 지나자 다른 날씨는 얼마든지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차를 운전하며 폭우 속을 달리는 이들은 폭우 속에 진부령을 오르는 내 모습을 보며 필시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상해도 여간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비도 아니고 우박과 천둥과 번개가 온통 난리인데 그 속을 걸어 진부령을 넘다니, 세상에는 참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니!


빗속을 걸어가며 마음속에 찾아든 엉뚱한 생각이 있었다. 혹시 지나가는 어떤 이가 차를 세우고 타겠느냐 묻지 않을까 싶었다. 폭우 속 진부령을 걸어 오르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재난상황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누가 물으면 대답해야지, “저는 괜찮아요, 저는 됐으니 그냥 가세요, 하지만 그렇게 물어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환하게 웃으면서 얼마든지 그렇게 대답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차는 없었다. 단 한 대도 없었다. 돌발적으로 닥친 위험한 상황을 속히 벗어나려는 듯 비상등을 켠 채 빗속을 내달릴 뿐이었다. 비의 양을 감당하기 힘든 와이퍼만 미친 듯이 돌아가며 차들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다.


만약 내가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나처럼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라면 차를 세웠을까 생각을 하다가, 누가 목사 아니랄까, 이어진 생각은 이랬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차를 세우고 거센 빗줄기가 안으로 들이치는 데도 차에 타지 않겠느냐 물을 때, 문득 열려진 차창을 통해 룸미러나 대시보드에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면, 그 십자가의 의미는 얼마나 절실하게 와 닿을까, 싶었다.


이 다음 언제라도 폭우 속을 운전하다가 나처럼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이렇게 말을 건네야지, 빗속을 걸어가며 다짐을 한다.


“혹시라도 내가 도와드릴 일이 없나요?”


마침내 진부령 정상, 두 시간 이상 이어지던 악천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가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산 아랫동네의 일이라는 듯 진부령 정상은 내가 걸어온 시간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 젖은 몸과 배낭,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야 하나, 그런 걱정을 해야 했지만 내게는 그런 생각을 할 기운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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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2)


소똥령 마을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적인 기대와는 달리 소똥령 마을로 향하는 길은 매우 단조롭고 밋밋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46번 국도를 걸어 올라야 했다.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열기가 담겨 숨을 마음대로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길 어디에도 소들은 보이지 않았고, 소똥 냄새는 물론 소 모는 아이들 소리나,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길을 걸어보니 알겠다. 급경사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급경사는 얼마 동안만 참고 견디면 된다. 오히려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완만한 경사 길을 계속해서 걷는 일이었다. 완만한 경사는 당장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언젠지도 모르게 체력과 정신력을 바닥나게 만들고는 했다.


이름부터 정겨운 소똥령 마을. 어디선가 풀을 뜯는 소떼들과 소를 모는 소년들의 모습이 보일 것도 같았고,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올 것 같았다.


소똥령 마을까지가 오전 일정,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 오후를 위해서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소똥령 마을에 이르렀을 때쯤엔 온통 땀범벅, 몸이 축 처지고 말았다.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니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흔할 것으로 짐작했던 식당은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경사진 길을 가리키며 계곡 아래로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일러준다.


계곡 아래엔 넓은 캠핑장이 있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식당을 찾아가니 마침 단체 손님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 무슨 거창한 모임인지 축사와 인사말이 계속 이어졌고, 순서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누구에게 주문을 해야 하나 기웃거리는데도 누가 따로 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갖는 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식당 주방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마을 부녀회 대표가 식당을 맡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단체 손님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 손님은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인근에 다른 식당이 있는 지를 물었지만, 없단다.


난감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도 진부령은 만만치가 않을 터인데 점심을 굶고 큰 고개를 넘게 생겼으니, 기가 막혔다. 소똥령 마을에 오면 말린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건가 했던 것은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낭만적인 기대였다.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점심을 안 먹으면 나도 안 돼요.”


단체손님 때문에 손이 바쁜 아주머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걸어서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밥하고 김치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소똥령 마을에 가면 말린 소똥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나 싶었는데, 너무 낭만적인 기대였다.


걸어서 진부령을 넘겠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딱했는지 기특했는지 주방 한쪽 구석에 의자를 갖다 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쟁반에 밥과 반찬 두어 가지를 담아왔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펄펄 끓는 탕 한 그릇을 가져다준다.


염소탕이라고 했다. 아마 단체 손님들의 주 메뉴가 염소탕인 모양이었다. 한 그릇을 잠깐 사이에 비우자 이번에는 수박과 토마토도 가져다주었다.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얼마를 드리면 되지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값을 물었다. 걸식하듯 밥을 먹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운영하는 식당,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었다.


“만원만 주세요.”


묻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배려를 가벼운 호의로만 받았다면 아주머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지 않은 곳에서 점심을, 그것도 염소탕을, 그것도 만원에 먹었으니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주방 밖으로 나서며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도 인사를 한다.


“염소탕을 먹었으니 진부령도 염소처럼 가볍게 넘으세요!”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야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진부령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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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다보니 위험한 길들이 참 많았다. 지뢰나 낭떠러지, 무서운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길이 의외로 많았다. 도로에 차도만 있지 인도가 따로 없었다. 인도가 없는 길은 자동차를 타고서만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인지, 차가 없다면 돌아서 혹은 날아서 가라는 것인지, 도로를 만들 당시의 규정을 따른 것이겠지만 길을 만든 이들의 심사가 무심하게 여겨졌다.


어쩔 수 없이 도로 가장자리를 걷는 수밖에 없었다. 차들이 달리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고, 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니 기도를 드리거나 마음을 집중하기에도 좋을 것이 없었다.



길을 걸어보니 위험한 길이 의외로 많았다. 무엇보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들이 위험했다.


대개는 마주 오는 차를 마주보며 걸었다. 하나를 가지고 떠난 스틱을 오른손에 잡았던 것은 그래도 위험을 줄이려는 생각이었다. 뭐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운전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도로 위를 걷고 있는 나를 두고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얼마간 거리를 두고 지나가면 좋겠는데 마치 왜 도로 위를 걷고 있느냐는 투로 바싹 가까이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실은 대부분의 차들이 그랬는데, 덩치가 큰 트럭이 그렇게 지나갈 때는 아찔하곤 했다.


길을 걷는 나를 보고는 속도를 줄여 다가오고, 나와 간격을 두고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차들도 있었는데 그 잠깐의 순간이 참 고마웠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따뜻하고 충분한 배려로 전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도 다를 것이 없겠다 싶었다. 누군가의 곁을 함부로 지나가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 곁을 지나간다 해도 내가 지나치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며 지나가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시인 이성선은 <다리>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그러고 보면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리를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태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었다.



오천 터널을 빠져나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훈련 중인 군인 트럭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프 차량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군인들을 태운 여러 대의 트럭이 줄을 지어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군인 트럭 사이에 있던 승합차 한 대가 느닷없이 트럭을 추월한 것인데, 승합차는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한적한 길이라 괜찮다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하필이면 커브 길에 추월을 나왔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급히 피한 것인데, 황급히 핸들을 돌려 다시 트럭 사이로 끼어든다는 것이 내 곁을 스치듯이 지나간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아뜩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승합차 운전자는 저도 놀랐는지 나머지 트럭들도 추월을 하더니 꽁지가 빠져라 내달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돌아서서는 “이런! 이런! 이런!” 달려가는 승합차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놀라기도 했거니와 화도 났다. 하긴, 종일 혼자 길을 걸으며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터에 모처럼 말을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도망을 치듯 내달리는 승합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무례한 것은 난폭한 것이구나! 무례한 것은 그냥 무례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무례하게 행한 이는 짐작을 못하거나 자신이 한 일을 가볍게 여길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난폭함이 되는 것이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또 하나 이어지는 생각이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나를 그냥 지나친 모든 차들이 새삼 고마웠다. 방금 전 아찔하게 스쳐간 승합차처럼 얼마든지 나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내 곁을 지나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를 지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든지 나를 공격하고 쓰러뜨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지나간 많은 사람들, 그들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었다.


맞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 중에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도 있고, 다리를 위태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다리 지날 때마다 우리는 다리를 다리답게 해야 할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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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소똥령 마을, 이름부터가 정겹다. 그곳이 어디든 고개를 넘는 소떼들이 보이고, 그러느라 소들이 싸댄 똥들이 여기저기 멋대로 나뒹굴고 있을 것만 같다. 냄새조차도 역겹지 않아 바람은 여전히 구수하게 불어올 것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어디선가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도 같다.


소똥령을 향해 가는 길에 대대리를 지나게 되었다. 문득 대대리 삼거리가 눈에 익다. 같이 신학을 공부하고 대대리 이 외진 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찍 주님 품에 안긴 친구가 있다. 최경철 목사, 눈매와 웃음이 참으로 선한 친구였다. 그 때만 해도 대대리는 땅 끝처럼 여겨졌다. 그가 대대리에서 목회를 할 때 친구들과 함께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고찰 건봉사를 찾던 기억도 여전히 새롭다.


        최경철 목사가 섬기던 대대교회.


대대삼거리에서 보니 저만치 대대교회가 보였다. 아무리 갈 길이 멀다 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른 시간, 예배당엔 아무도 없었는데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예배당으로 들어서다가 입구 벽에 부착된 명판을 보았다. ‘최경철 목사 기념예배당’이라 쓰인 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1988년 3월 대대교회에 오셔서 교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1996년 2월 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최경철 목사님의 삶과 뜻을 기리며…

-1997년 2월 5일 대대교회 교우일동>


예배당 입구에 새겨진 명판. 교우들의 마음이 따뜻했고 미더웠다.


마음이 뭉클했다. 무엇보다 고마웠다.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 했던 모리 교수 이야기대로 하자면, 친구 최목사는 여전히 교우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었다.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교우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미덥게 느껴졌다.


예배당 안의 분위기도 여느 예배당과는 달랐다. 수도원에 들어온 것 같은 차분함과 고즈넉함이 물씬 전해졌다. 제단이 낮은 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설교 또한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모든 것 또한 친구가 남긴 흔적이지 싶었다. 최 목사는 성품이 맑고 조용했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최 목사와 대대교회를 생각하며 기도를 바쳤다.


대대교회 예배당 안. 조용한 수도원 같았다.


수수한 풍경, 대대삼거리에 문을 연 식당이 보였다. 기사식당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던 것은 소똥령을 아침을 거르고 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식당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는데도 반찬을 푸짐하게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식당주인은 대대교회의 집사님, 최 목사가 목회할 때에도 신앙생활을 하던 분이어서 최 목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최 목사와 같이 신학을 공부한 친구 목사라고, 최 목사가 목회를 할 때 대대리를 찾은 적도 몇 번 있다고, 길을 걷다 대대교회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라고 하자 더없이 반가워한다.


식당 주인에게 벽화 이야기를 했다. 대대교회 마당에 있는 화장실 벽에는 벽화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인사를 하고 있는 재미난 그림이었다.


친구의 목소리처럼 다가왔던 그림. 사람은 가도 남는 것이 있다.


이모티콘을 닮은 모습이 정겨웠다. 얼굴은 네모 모양, 한쪽 눈은 윙크, 가슴엔 작지만 붉은 하트, 그림을 보는 사람을 덩달아 빙긋 웃게 만들었다. 그림 옆에는 그림 속의 사람이 건네듯 “안녕”이라는 인사말이 네모 칸 안에 담겨 있었다.


화장실 벽에 그려진 그림과 “안녕”이라는 말을 보는 순간 마치 최 목사가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고 하자, 식당 주인이 울컥한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날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두 눈을 훔친다.


오래 전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어딘가 가만 숨죽이고 있던 시간이 그 어떤 것을 계기로 다시 숨을 쉬며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친구는 여전히 젊은 시절 그 해맑은 웃음으로 식당 주인과 나 사이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었다.


사람은 가도 남는 것이 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가슴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흘러가는 세월 속 여전히 함께 숨을 쉬고 있는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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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잠깐 기도를 드렸다. 지금은 남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초등학교, 하지만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나라 중심에 있는 학교가 되기를,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내가 서 있는 이 운동장에서 맘껏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잠깐의 기도에도 간절함이 담겼다.


기도 끝에 짧게 보고를 드리고는 첫 걸음을 옮긴다.

‘저 이제 떠나요!’


대지를 적시는 비가 먼 길 나서는 걸음을 기억하고 격려하는 하늘의 손길처럼 여겨졌다. 첫날 일정은 거진항까지다. 로드맵에 적힌 거리는 15.5km, 앞으로 걸을 길이 만만치 않으니 첫날은 가볍게 몸을 풀라는 배려 같았다.


걷는 길에는 대부분 아무도 없었다. 한적한 곳이라 그랬을 것이다, 사람도 표지판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열하루 길을 걸으며 나처럼 길을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를 못했다. 앞에도 사람이 없었고, 뒤에도 사람이 없었다.


길을 걷다 만난 장승.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길, 사람처럼 반가웠다.


혼자 걷는 것이 너무 외로워서 뒤로 돌아 자기 발자국을 보며 거꾸로 걸었다는, 문득 사막을 걷던 사람 이야기가 생각이 나 몇 번은 몸을 돌려 거꾸로 걸어보기도 했다.


“반갑소이다!”


사람 대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길가 장승의 웃음이 반가웠다.


따로 지도 없이 로드맵만 가지고 걷는 길, 대신 자주 길을 물어야 했다. 중요한 길일수록 거듭 묻고는 했는데, 그러면서 성경의 의미 하나를 공감했다.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같을 때에만 그 증언이 인정 되었다.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서로의 대답이 같을 때 그 길을 택했다. 설명이 불분명하거나 서로의 이야기가 다를 때면 최종 결정을 보류해야 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일 것이다. 한 과학자가 한 그 말을 나는 설교와 연관시켜 기억을 한다. 진리는 난해함보다는 평범함에,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에 가까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니 길을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는 이가 있고,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는 이가 있었다. 길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 인생에 있어서나 믿음에 있어서나 중요한 일이구나 싶다.


누구의 손길이었을까, 외진 곳에서 생각지 못한 인사를 받는다.


버스를 타고 명파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대진보건소를 간다시며 내리는 곳이 어딘지를 내게 물었다. 처음 오는 곳이라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잠시 곤란해 하시던 할머니는 이번에는 두어 자리 앞자리에 앉은 다른 승객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초로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저도 지금 그 보건소에 가는 길이거든요.”


나도 그리로 가니 나만 따라오라니, 그보다 고맙고 확실한 설명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바른 표지판을 만날 때마다 반가움과 고마움이 컸다. 길 경계에서는 더욱.


거진항을 떠나 대대리를 향할 때였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데 사람이 보이질 않아 난감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길을 물을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가다보면 문을 연 식당을 만나겠지 하며 나선 길이었는데, 아무리 가도 식당은 보이질 않았고 식당이 나올만한 풍경도 아니었다. 바다 옆에 있는 솔밭으로 들어가 배낭 안에 있는 비상용 간식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있는데, 저만치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길을 물었다. 길을 정해야 하는 내 절실함에 비해 농부의 대답은 너무 단순했고 짧았다. 바로 앞 수초가 자라고 있는 작은 개울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개울만 쭉 따라가면 되요.”


설명은 더없이 간단했지만 걸어보니 정말로 개울은 대대리를 향해 흐르고 있었고, 몇 번의 갈림길을 만났을 때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둘째날 아침, 거진항을 떠날 때 막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거진항에 거반 다 왔다 싶을 때였다. 아직 오후 해가 제법 남아 있어 여유가 있었는데, 때마침 길가에 깨끗한 찻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찻집 이름도 ‘다온’, 정겨웠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찻집으로 들어갔다.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커피라떼를 주문했는데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마시는 커피였기 때문일까, 커피가 참 맛있고 그 시간과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싶었다.


걸어오며 있었던 일들, 들었던 생각들, 커피를 마시면서 배낭에 있던 노트를 꺼내 몇 가지 메모를 했다. 먼저 와 있던 단체 손님들이 빠져나가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묻는 주인에게 거진항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물었더니 거의 다 왔다며 30분 정도만 가면 될 것이라 했다. 나는 조금 더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런 망외의 느긋함도 여행의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호사를 누린 뒤 다시 길을 나섰는데 이게 웬일, 거진항은 가도 가도 나오지를 않았다. 30분이면 간다는 거진항이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분명 거진 다 왔다고 했는데… 그래서 거진항인 거야?’ 속으로 툴툴거리다가 혼자 웃었다.


괜한 여유를 부리다가 결국은 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거진항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로드맵을 전해준 장로님이 첫날 일정을 걱정하실 것 같아 잘 도착을 했다고, 그런데 거진항에 거진 다 왔다고 해서 느긋해하다가 뒤늦게 먼 길을 걸었다고, 아마도 커피집 아주머니는 내가 축지법이라도 쓰는 줄 알았던 모양이라고 장로님께 문자를 보냈더니 장로님이 답장을 보내왔다.


“영동사람들 거리감 과장은 유명합니다. ‘요기’가 엄청 먼 거립니다.”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쉽고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길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길을 걷고 돌아와 마음에 담아두는 것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다짐도 있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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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8)

가장 좋은 지도


“목사님, 혼자 걸으실 것을 감안해 코스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노인은 늙어가고 젊은이는 사랑하며 아이는 태어납니다. 목사님 그 땅 사랑하시는 줄 진작부터 알기 때문에 저도 광야 같은 그 길 ‘강추’합니다. 터널이 많이 생기고 도로가 넓혀지면서 걷기 좋던 그 길이 위험천만한길로 변했다는 것이 문젭니다. 하여튼 다음 주 중 코스를 만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예비 일을 이틀 정도 두시면 좋겠습니다. 고성~철원은 궁예가 강릉을 출발해 철원으로 가며 걸었던 길, 철원~파주는 왕건이 철원을 오가던 길이라 생각하면 재미 있습니다.”


“목사님, 아주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걸으시는 거 로드맵입니다. 숙박처, 식당 등은 일일이 다 체크를 못했습니다. 중간 중간 연락드릴 수 있습니다. 하루 30km의 무리한 거리로 잡았는데도 11일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할 때는 45km까지도 했었습니다만 몸져 눕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침내 함광복 장로님이 ‘걸어서 휴전선’이라는 제목의 로드맵을 보내주셨다. 누구보다 많이 그리고 오래, 어쩌면 한 평생을 DMZ을 밟았기에 그 땅을 손금처럼 잘 알고 계신 분, 왜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거룩함이 배어 있는 우리 땅을 두고서 외국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지를 늘 안타까워하시는 분, 로드맵을 대하면서 평소 장로님이 가지고 있는 이 땅에 대한 애정과 그 땅을 혼자 걸으려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물씬 전해졌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로드맵만을 가지고 길을 나서기로 한 것은 그런 마음이 담긴 로드맵이 있었고, 그런 로드맵이야말로 가장 좋은 지도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장로님이 만든 로드맵이 하나의 새로운 길이 되기를, 의미 있는 길을 향한 좋은 초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눈다. 누군가 길을 만들면 누군가는 그 길을 걸을 수가 있는 것이니까.


“걸어서 휴전선”


□ 구간 : 고성 - 인제 - 양구 - 화천 - 철원 - 연천 - 파주

□ 소요시간 : 11일(걷는 시간 약 110 시간)

□ 걷는 거리 : 약 340km

□ 드리고 싶은 말씀


- DMZ는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五感을 작동하십시오.

- 내비게이션 개념의 거리 표시입니다. 이 여정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 전 코스가 보건진료소를 지나갑니다. 목사님 체력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 길 묻는 걸 주저하지 마십시오.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00 가는 길이 어딥니까?”식은 효과 반감. 바로 “00 이리 가나요?” 식으로.

- 저를 Control Tower라고 생각하시고 자주 전화 요망.


걷는 기도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고성 명파초등학교. 장도를 축복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일> 명파초등학교 - 거진항(15km)

01 명파초등학교 - 거진항(15km)


명파초등학교(점심 후 출발, 특별한 메뉴는 없는 곳. 금강산 가는 4차선 도로를 확장, 처음부터 온통 헷갈리니 조심) - 금강산 콘도(여기서 국도에서 벗어나 대진항으로) -대진항(5.7 항구 남쪽 끝 횟집들 주차장에서 해안 철조망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 - 초도항(세상에서 제일 작은 포구. 앞 금구도는 광개토대왕릉이란 설) - 화진포 이승만 별장(10.5. 이승만 이기붕 김일성 별장. 그래도 이승만 별장은 들러 가세요.) - 화포리 삼거리(화진포 지나 왼쪽 긴 고개를 넘으면 다시 바닷가 절벽도로) - 거진항(15.5. 숙박. 해군부대 옆에 ‘제비호’라는 음식점이 좋습니다.)


<2일> 거진항 - 진부령 미술관(28.8km)

02 거진항 - 소똥령 마을길 입구(18km)


거진항(성원오션이라는 무지막지한 해변 아파트 쪽으로 ‘해오름 해변길’) - 반암 해수욕장(4. 동해대로로 가면 No! 터널로 가지 않는 옛 국도로) - 북천강 쉼터(6) - 대대리 삼거리(6.7, 동해안주유소. 46번 국도로 진부령으로) - 간성향교(8.8) - 광산초교(11.1) - 소똥령 마을길 밤나무민박(18. 이 어간에서 아주 든든한 점심. 태백산맥을 넘으실 테니까.)


03 소똥령 마을길 - 진부령 미술관(20.8km)

밤나무민박 - 소똥령 가는 길 펜션(24) - 구 진부령휴게소(25.5 #이제부터 무인지경 고갯길) - 진부령미술관(28.8 진부령 정상. 숙박 장소가 마땅치 않음. 주변에 선돌교회가 있습니다.)


<3일> 진부령미술관 - 원통(25.5km)

04 진부령미술관 - 원통(32km)


진부령미술관 - 군계교(2.8 인제 고성 군계. 조금 더 내려가 약간 위험하긴 하지만 신설도로를 이용하면 거리 단축) - 매바위 인공폭포 삼거리(5.7 미시령/진부령 갈림) - 백담사 삼거리 백담휴게소(9.4) - 십이선녀탕 입구(용천파크 모텔. 13.7 여기쯤에서 점심. ## 곧 용대터널, 반드시 강을 따라가는 옛 국도 고원통로를 찾아야 합니다.)


05 십이선녀탕 입구 - 원통우체국(25.5km)

십이선녀탕 입구 - 한계삼거리(내설악광장휴게소. 20.5) - 원통고등학교(24.5) - 원통우체국 (25.5 여기쯤에서 숙박. 염소탕이 유명한 군사도시)


 화진포를 지나며 걸어보니 곳곳에 숨겨진 비경들이 참 많았다.



<4일> 원통 - 해안분지(30km)

06 원통 우체국 - 서화초등학교(14km)


원통우체국 (출발부터 고개. 453 지방도 옛 고성 외금강으로 가던 길. 그러나 무척 지루한 길) - 월학1리 냇강마을(3.4) - 서흥 2리(10) - 천도리 서화초등학교(14. 배우 장미희 출신교. 여기쯤서 점심)

07 서화초등학교 - 해안분지 양구전쟁기념관(30km)


서화초등학교 - DMZ평화생명동산(그냥 패스) - 평촌교(18.6 옛 민통선, 잠시 후 군부대 담을 따라 난 비포장(?) 도로가 외금강 넘어가는 길. 해발 450m밖에 안 되는 삼재령이 영동영서를 가르고 있음. 무인지경 고갯길.) - 해안분지 양구전쟁기념관(29.9. 펀치볼은 1년 농사로 3년을 먹는다는 부자동네. 볼 것이 많지만 다음으로. 퇴근시간 전이면 전쟁기념관에서 숙박처를 소개받을 수 있음)


<5일> 양구전쟁기념관 - 양구 방산자기박물관(31km)

08 양구전쟁기념관 - 동면 팔랑리 풍미식당(14km)

양구전쟁기념관 - 돌산령 터널(8. 2,995m의 긴 터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터널을 통과하지 않으면 한니발처럼 도솔산전투의 돌산령을 넘어야. 높고 길고 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도보로는 통행이 안 되는 민통선지역. 키 큰 분이 벙거지 모자에 가방 멘 모습은 5분 대기조 출동에 딱 좋은 view. 터널 진입까지 도보길이 옆에 있음) - 팔랑리(14. 풍미식당(구 한중관)을 꼭 찾아가십시오. “내가 뽑은 자장면 길이가 휴전선 철조망 길이의 열 배쯤 될 것”이라던 주인장은 뒷방신세. 며느리가 최전방에 사제 냄새를 올려 보내는 일을 하고 있음.)


09 팔랑리 - 양구 방산자기박물관(31km)

팔랑리 풍미식당 - 동면교회 삼거리(17.5 삼거리에서 오른쪽 ‘양구/춘천’ 표지판 방향) - 삼거리(낮은 고개를 넘으면 453지방도와 31번 국도가 만나는 또 삼거리. 반드시 오른쪽 ‘평화로’ 평화의 댐, 또는 방산 방향으로 가야함. 왼쪽은 31번 국도 시발점 부산 기장으로 가는 길) - 도고터널(21km. 길이 600m. 무조건 통과, 이 터널 위에 백호터널이 있으나 폐쇄) - 고방산 교차로(26. 오른쪽은 금강산 가는 길, 내금강 가는 가장 빠른 길, 여기서 장안사 차로 40분. DMZ에서 북쪽으로 가는 모든 길은 금강산으로 가고 있지요.) - 양구 방산자기박물관(31.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 21사단 신병교육대, 65연대 등이 있어 숙박시설 양호. 여기 白土가 경기 광주분원으로 실려가 궁중 그릇을 구웠음. 개인적으로 이 ‘백토의 길’은 사실 사향과 인삼을 궁중으로 나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자료를 가지고 있음. 氣가 성한 동네니 힘 좀 받아보십시오.)


<6일> 양구 방산 자기박물관 - 화천 풍산리 물소리 펜션(38.3km)

# 전 여정 중 가장 난코스

10 양구 방산자기박물관 - 평화의 댐(17km)

방산자기박물관 - 금악리 - 오천터널(10. 무조건 통과. 그렇지 않으면 항령이란 1,000급 고개를 넘을 수 있음) - 천미리(13.5 하늘꼬리라는 뜻을 가진 빈 마을. “여기엔 아무도 읍습니다.”) - 평화의 댐(17km. 수자원공사 평화의 댐 휴게소에서 점심. 세계 종 공원, DMZ 아카데미 등 다양한 것이 있지만 콘텐츠 부재. 평화의 종이나 한 번 쳐보십시오.)


11 평화의 댐(17km) - 물소리 펜션(38.3km)

평화의 댐(세 가지 길 A. 댐 정상을 통과. 대붕터널, 산과 산을 연결한 비수교, 재안터널 통과하는 길 B. 댐 하부를 통과 옛 평화의 댐 길로 가는 길이 있으나 A를 선택해야 함. # Maybe. 북한강 상류를 안동철교로 통과하는 민통선 길의 마을버스를 탈 수도 있음. 이건 횡재니 꼭 Accept!!) - 해오름 휴게소(27.8 간이 휴게소. 김옥상의 조각이 있음. 이 고개 반 좀 더 올라왔음) - 해산터널(29km. 해산은 우리말 이름. 일제는 日山이라고 기록. 1986년에 완공했다고 길이도 1986m로 굴착한 군사문화의 소산. 90년 대 중반까지 국내 ‘최장 최고위 터널. 터널을 지나면 삼십 리 곤두박질 길) - 해산휴게소 삼거리(38. 좌회전) - 성동휴게소 물소리 펜션(38.3. 여기쯤서 쉬어가십시오. 더는 무리. 7사단 신병교육대 인근이어서 어느 정도 갖췄을 것임.)


 길에 나뒹구는 삐라 어릴적엔 신고를 해야 했는데 이젠 그냥 지나친다.


<7일> 화천 물소리 펜션 -다목초등학교(31.1km)

12 화천 물소리 펜션 - 상서제일교회(15.6km)

물소리펜션(두 가지 길 A. 풍산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 무인지경 비상도로, ‘새덕이로’로 고개를 넘으면 세밀교, 좌회전하면 신읍리의 지름길 B. 화천읍내 산천어축제장과 그 옆에 서있는 최헌영 목사님의 화천제일교회 앞을 지나는 길. 고민 끝에 B를 강추) - 산수화 터널(3.7. ‘산천어와 수달이 노니는 화천’ 이건 공무원식 발상) - 화천제일감리교회(5,3) - 상리 삼거리(여기부터 개울을 따라 도보길 가능) - 신풍아파트 앞 - 군칠성교회(10.8. 7사단 정문 앞) - 장촌1교(13. 5번 국도를 버리고 다리를 건너 ‘다파로’ 마을길) - 상서제일교회(15.6. 여기쯤에서 점심. 상서면 소재지니 뭔가)

13 상서제일교회(15.6km) - 다목초등학교(31.1km)

상서제일교회 - 봉오우편취급국(23.7) - 다목초등학교(31.1. 多木, 이름만큼 멋지진 않지만 李外秀가 사는 동네. 엄청난 고개가 기다리니 여기쯤에서 숙박)


<8일> 다목초등학교 - 철원 고석정(35.4km)

14 다목초등학교 - 김화사거리(17.4km)

다목초등학교-水皮嶺(3.4. 해발 800m 직등코스. 그 다음엔 30리 내리막길. 水皮, 말이 씨가 되었나. 96년 대홍수 때 대성산 수피령은 온통 물을 뒤집어쓰는 대피해) - 수피령고개 군인교회 - 육단리아파트 앞 삼거리(10) - 근남면시외버스 앞 삼거리(56번 국도를 버리고 개울 따라 난 마을 길) - 신흥교회 삼거리(13. 옛 국도를 따라 좌회전) - 와수리(와수11리까지 있는 도시형 동네) - 김화 사거리(17.4. SK주요소 맞은편에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 손자 한영순 권사님네 정사각형 집. 행정서사 간판은 없고 문패만. 바로 옆 골목 찌개백반 식당이 잘 합니다. 점심)

15 김화 사거리(17.4km) - 고석정(35.4km)

김화 사거리(김화교를 건너가면 곧바로 옛 국도 청양로를 찾아 진입) - 지경보건진료소(26.1. 백골부대 백골마크를 보며 고개를 넘으세요) - 문혜교차로(29.7. 태봉로로 우회전) - 철원소방서 - 문혜초교사거리(30.8) - 한탄대교(33.7. 새로 놓는 다리까지 다리 세 개. 오래된 다리 승일교는 사회주의 건축, 두 개의 새 다리는 자본주의 건축. 승일교로 건너면 강 건너편 언덕 너머에서 큰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고석정 철의삼각전적지관광 사업소(35.4. 여기서 저녁을 드세요. 고석정 내려가는 오솔길 직전 임꺽정가든. 한탄강 메기는 아닙니다. 여기쯤에서 숙박. 바로 옆에 게르마늄온천 한탄스파리버사이드호텔. 여기 농민들은 새벽 일반 목욕탕처럼 이용하니 꼭 한 번.)



마침내 임진각, 열하루를 걸으니 동에서 서, DMZ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9일> 고석정 - 신서면사무소(27km)

16 고석정 – 백마고지 역(16.4km)

고석정(출발하면 왼쪽으로 순교하신 서기훈 목사님의 장흥교회와 장방산이 진흙 한 줌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看山’으로 생략) - 화지삼거리(9. 금학로로 우회전) - 도피안사 삼거리 - 월하삼거리(11.2. 왼쪽 언덕에 월하교회) - 철원제일감리교회(12.2. 복원교회 옆에 옛 터 보존. 그때 가보신 그곳) - 노동당사(12.7) - 백마고지역(16.4. 이 부근에서 점심. 이태준 문학비가 대마리에 있음) - #《철원제일교회에서 많이 지체되면, ‘제일교회 - 새우젓고개 - 율이로 - 3번 국도변 이태준 생가터’ 방법도 있음》

17 백마고지역(16.4km) - 신서면사무소(27km)

백마고지역(경원선과 나란히 난 3번 국도로 남하) - 이태준 생가터(밭 가운데 비딱한 표지판만 있음) - 신탄리역(22.3. # 경기도는 물가 도보길이 잘 다듬어져 있음. 연천군은 이런 길을 찾는 것이 관건) - 대광리역(26.8) - 신서면사무소(27. 대광리 역이 있는 여기쯤에서 숙박)


<10일> 신서 - 백학면사무소(31.7km)

18 신서면사무소 - 군남면사무소(15.5km)

신서면사무소 - 열쇠회관(1.8) - 신망리역(6.5) - 군남면사무소(15.5. 민통선에 바짝 붙은 남서방향 하행길. 여기쯤에서 점심)

19 군남면사무소(15.5km) - 백학면사무소(31.7km)

군남면사무소 - 연천 왕징면 미산 우체국(19.5) - 마진보건진료소(23.5 조금 지나면 산 밑에 4거리. 헷갈리지만 숭의전 가는 길을 찾으세요) - 숭의전지(25. 왕건 등 고려 충신들의 위패.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어수정 물 한 모금 하시고 잽싸게 올라가 알현하심이) - 백학면사무소(31.7. 여기서 숙박. 여긴 전방에선 후방, 후방에선 전방이어서 숙박처가 어정쩡하긴 합니다만)


<11일> 백학 - 임진각(32km)

20 백학면사무소 - 장파사거리(17.3km)

백학면사무소 - 장남면사무소(8.4) - 임진강 新장남교(10.6. 셰익스피어 맥베드에 “숲이 움직이면 전쟁을 준비해야 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걸어 내려오시는 그 벌판 가득 중공군이 풀을 꽂고 남하할 때 임진강 건너 영국 크러스터 대대는 그 대목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벌판에서 한 많은 임진강 전투를 생각하시면 덜 피곤하실 겁니다. 신장남교는 새로 놓은 것이고, 옛날 다릿발 하나를 우기고 우겨서 남겨놓았습니다.(2월까지 있었는데, 아직 있겠지요. 그 다리 밑 두지나루에 황포돛배가 있었는데 돈벌이가 안 되니까 없앤 모양입니다. 요샌 북한이 황강댐을 열었다 닫았다 물장난을 하는 바람에 임진강 황복은 고사하고 참게까지 최악의 세월이랍니다. 혹시 宗漁라는 물고기를 아세요? 다음에 뵐 때 얘기해 드릴게요. - 적성교차로(# 여기서부터 구 국도를 찾는 게 관건입니다. 그러나 가장 빠른 길은 새로 난 4차선. 요령껏!) - 두지삼거리 - 두지사거리 - 장파사거리(17.3. 늦은 점심. 여기에 묘하게 먹거리 거리가. 이유는 전진교 건너가 바로 민통선 해마루마을 그리고 판문점, 완전 군사경제권이기 때문. 장파리의 다른 이름은 ‘장마루촌’. 이 때문에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1969)의 무대로 와전되기도)

21 장파사거리 - 임진각(32km)

장파사거리 - 파평면사무소(20.6) - 두포리 또또와 펜션&캠핑장 (22.5) - 율곡1교(화석정,27.2) 화석정에 올라 임진왜란을 생각하기엔 갈 길이. 여기서부터 임진각까지 국도로 가면 크게 우회합니다. 임진리로 들어서서 주내 순복음교회, 마정교회, 마정초등학교 등을 묻고 찾으며 길을 내야합니다. 마지막 구간입니다. 자, 조금만 더!) - 임진각(32) 도착! 정말 큰 일하셨습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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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열하루 동안 DMZ 인근마을을 따라 홀로 걷기로 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휴식이나 유람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열하루 일정을 ‘걷는 기도’라 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야 늘 드려왔다고는 하지만, 구별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허리가 잘린 채 철조망을 두르고 있는, 서로를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내 나라 그 땅을 내 발로 걸어가며 드리는 기도는 가만히 앉아 드리는 기도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을 생각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외에도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지금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와 늦어지고 있는 교육관 건축, 내가 걸어가야 할 목회의 길 등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이 떠올랐다.


생각한 기도 내용 중에는 의미도 있고 소중하기도 하겠다 싶은 것도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며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시간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기도하는 중에 떠오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떠오르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면 기도를 드리는데 얼마만큼 시간이 필요할까, 나도 궁금했지만 전혀 짐작이 되질 않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걷는 내내 이어졌다. 철조망을 볼 때마다, 부대를 지날 때마다, 군인들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군 트럭과 탱크를 만날 때마다, 사격 훈련하는 총소리와 포 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도를 했다.


철조망과 지뢰 경고문은 DMZ을 걸으며 만난 그 중 흔한 풍경이었다.


군부대는 대개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서 통일이 되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부대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관이 되게 해달라고, 저 엄청난 철조망을 녹여 호미와 괭이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수도 없이 묻혀 있을 모든 지뢰를 파내고 그곳에 씨앗을 뿌리게 해달라고, 지뢰밭에서 곡식을 거두어 남과 북 누구라도 배고픈 동포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같은 기도였지만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가슴과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평화와 갈등의 공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속살은 그런 모습이었다.


태어나서 만났던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는 어릴 적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로 시작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가족들이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이들은 가족이었을 것이다.


동네 친구들, 선후배들, 어른들도 떠올렸다. 흑백 영사기가 돌아가듯 생각지도 못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 고향교회 목회자들과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떠올랐다. 성경연속동화는 얼마나 우리들의 목을 길게 만들었던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신학대학,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군 생활을 하던 시절도 떠올렸다. 기억의 창고 속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번엔 목회 여정을 따라 기도를 했다.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시작을 했다. 부곡교회, 미아중앙교회, 수원종로교회, 정말로 많은 이들을 만났고, 고마운 만남이 많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만남도 있다.


첫 목회지인 단강교회, 이미 주님 품에 안긴 분들의 얼굴도 한 분씩 떠올렸다. 떠올릴 때마다 따뜻함이 밀려와 마음을 적셨다. 마음으로 떠올린 분들이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 것도 같았다.


프랑크푸르트교회, 아픔도 많았고 보람도 많았던 곳이다. 주님의 교회가 상처 입기는 쉬워도 회복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시간들, 한 사람이라도 기억에서 빠뜨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집중했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온, 반갑고 고마운 얼굴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다음은 지금 목회하고 있는 성지교회 차례다. 돌아가신 분부터 시작하여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 모든 교우들과 새로 나온 사람들, 청년부와 중고등부, 유초등부와 유치부, 교사들과 성가대원들, 몸이 아픈 사람들, 마음속으로 정한 기준을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렸다.


걷는 기도를 드리던 중에 기도를 요청받은 일도 있었다. 긴히 기도를 청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를 잠시 멈추고, 긴급한 기도를 이어가기도 했다. 실은 모든 기도가 그랬다. 마주 오는 차도 살펴야 하고, 그 때 그 때 주어지는 상황도 대처해야 하고, 기도는 중간 중간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기도를 다시 잇고는 했다.


‘하나님, 조금 전에 제가 어디까지 했지요?’


떠오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보니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며 형편 등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만났고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무한대는 아니었다. 열흘 여 기도의 시간에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 기억 속에 담고 있는 사람들은 무한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그들이, 그들과의 만남이 내 인생인 까닭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길, 그게 서로의 삶인 것이다. 무한정한 만남이 허락된 것이 아니라면 만남이 허락된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기도할 때의 가장 좋은 자세가 무릎을 꿇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새벽 예배를 드린 뒤 제단에 올라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 때면 발이 저릴 때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열하루 길을 걸어보니 기도하기 정말 좋은 자세 중의 하나는 걷는 것이었다. 길을 걸어가며 드리는 기도는 얼마든지 기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겠다 싶었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 기억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면서 배우게 된 기도의 의미가 있다. 기도란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였다. 서로를 따뜻하게 기억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남이 아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하고 축복하며 우리가 여전히 든든함과 고마움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 그것이 기도였다.


그것을 기도라 생각하니 기도를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기도를 그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어쩌면 걷는 기도를 받으신 분께서 걷는 기도를 바친 이에게 주시는 선물 아닐까 모르겠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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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명파는 또 하나의 땅 끝처럼 먼 곳에 있었다. 월요일 새벽, 아들 규민이와 함께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전날 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아침 6시 30분 속초행 고속버스를 예약해 둔 터였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버스에 타면서 표의 절반쯤을 잘라내던 것은 이젠 옛 시대의 유물, 이제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예약한 내용을 핸드폰으로 보여 주기만 하면 되었다. 핸드폰에 있는 예약권을 단말기에 대니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앉을 좌석번호까지를 알려준다. 마치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기계가, 그것도 친절한 목소리로!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승객이 많았다. 드디어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한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눈을 뜨니 어느새 고속도로 동홍천 요금소를 막 빠져나가고 있었다. 도로표지판에 인제 속초라는 지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로는 잠깐 사이에 지나가는 길을 나는 한 마리 벌레처럼 느릿느릿 걸어서 지나가게 될 것이었다.


속초고속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고성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으려 하니 오후에나 있다면서 길 건너편으로 가 시내버스를 타라고 일러준다. 한 아주머니께 물어 확인한 시내버스를 기다려 타면서 명파초등학교를 간다고 하자 근처까지 밖에는 가지를 않는다 한다.


어떻게든 연결이 되겠지 하며 요금을 물으니 5,480원이란다. 시내버스 요금이 5천원이 넘다니,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으니 맞는단다. 6천원을 요금 통 속에 넣자 땡그르르 잔돈이 떨어진다. 붉은 빛이 선명한 10원짜리 작은 동전을 오랜만에 대하지 싶었다.


시내버스 요금치고는 이상하다 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버스는 자기가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갔다. 지명을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동네를 두루두루 거친 끝에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듯이 멈춰선 곳이 대진항이었다. 이름은 시내버스였지만 버스는 고성과 거진을 지나 대진항까지 자기소임을 다할 때까지 달린 것이었는데, 버스가 멈춘 곳은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버스 종점이었다. 하긴, 어느 순간부터 버스 안의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길을 걷다 만난 우편함. 웃음과 애잔함이 동시에 지나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한 부대의 구호가 눈에 띈다. “이겨놓고 싸우는 000부대” 구호를 보는 순간 괜히 웃음이 났다. 이겼는데 왜 싸운담,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보나마나 이기는 싸움이라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질 수 없다는, 져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담은 말이리라.


때로는 비논리적인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구나 싶었다. 논리 정연함으로 설득력을 잃는 일도 있고, 비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경우도 있는 것이었다.


버스종점 대합실은 흡사 폐창고처럼 허름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대합실도 마찬가지였다. 표를 파는 창구도 따로 없었는데, 한 가운데 놓인 평상에서는 기사지 싶은 분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머쓱해져서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타고 온 버스를 청소하기 위해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명파로 가는 길과 방법을 물으니 버스로는 어렵고 걷기는 머니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준다.


때마침 막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 지나가는 차는 별로 없었는데 그렇다고 손이 선뜻 올라가질 않았다. 서너 대 차를 보낸 뒤 이래선 안 되지 싶어 다가오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냥 지나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차를 태워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만치 방금 지나쳐 간 차가 멈춰 선다. 그러더니 후진을 하는 게 아닌가.


차를 향해 달려갔더니 창문을 내리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부부가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명파라 하자 거기가 어디냐 한다. 나도 모른다 하자 운전을 하던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다.


“여기서 아주 멀지는 않네요. 차 안이 어수선한데 그래도 좋으면 타세요.”


옷가지며 과자며 여러 도구며, 차 안은 정말로 어수선했다. 아직 이삿짐을 정리하지 않은 방 같았다. 두 사람의 사연이 궁금했는데,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난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큰 맘 먹고 일주일간 시간을 내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고 했다. 어디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기를 벌써 나흘째라고 했다.


나더러 왜 명파를 가느냐고 묻기에 대답했다.


“저는 열하루 길을 혼자 걸으려고요.”


남편이었나 부인이었나, 내 대답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보다 더한 사람도 있네.”


      걷는 기도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명파초등학교


어느새 명파초등학교 앞, “이곳이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초등학교랍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더니 “그래요? 우리는 몰랐어요.” 하며 두 사람도 따라서 내린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다. 이른바 셀카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했더니 그동안 다니며 늘 그렇게 찍었다면서도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으로 명파초등학교 앞에 섰다. 빗속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까 모르겠다.


빗속에서 차를 되돌려 돌아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 문득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길을 떠나니 길을 떠난 자를 만나는구나.’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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