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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던 의사 최초이자 하나뿐인 평전 『장기려 평전』은 『한국의학 인물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과 의사 8인 중 한 명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 과학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하여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2018)한 성산 장기려(張起呂, 1911-1995) 평전이다. 정부보다 10년 앞서 의료보험(현 국민건강보험)의 성공적 실시로 가난한 환자를 위해 살다 간 장기려 관련 저서는 2023년 7월 현재 32권(성인 16, 아동 16)이 검색된다. 『장기려 평전』은 아무런 정치적 고려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장기려를 서술했다. 이전의 연구나 전기들이 지나쳤거나 외면했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고, 사안에 따라서 그의 선택이나 결정을 문제 삼았다. 그의 유족, 의사 제자, 그의 이름이나 아호를 앞세운 유관 단체의 일관.. 2023. 7. 14.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 어제 모임을 마친 후 잘 들어가셨는지요? 모처럼의 만남이 참 반가웠습니다. 더 깊은 대화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영 아쉬웠습니다. 요즘 저를 사로잡고 있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자꾸 설치다 보니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컨디션 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찬 바람에 연신 옷깃을 여미면서도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만났으니 벌써 30년도 더 되었네요. 생각해보면 미숙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참 치열했습니다. 진실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열망과 시대가 빚어내는 우울이 미묘하게 뒤섞여 우리는 비틀거리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사는 모습도 자리도 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중심을 향해.. 2023. 7. 3.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이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대기가 축축한 게 후텁지근해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몸은 나른해져요.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마당가에 심겨진 여러 식물들과 눈맞춤을 하지요. 요즘은 나리꽃과 백합화가 한창입니다. 키 작은 옥매(玉梅)나무에는 오종종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포도도 많이 맺혔습니다. 초가을이 되어 보라색으로 익어갈 것을 생각만 해도 흐뭇해집니다. 매실은 따지 않고 두었더니 하나 둘씩 저절로 떨어지더군요. 가을에 알밤을 줍듯 화초 사이에서 매실을 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매실을 손에 쥐어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그 오묘한 빛깔과 모양에 눈길을 주다가 가만히 베어물기도 합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 2023. 6. 27.
사명을 망각한 자의 비운(悲運) 현재 촛불행동 상임대표로 있는 김민웅 목사의 설교 “어리석은 싸움, 진정한 목표”는 이스라엘의 분열이 솔로몬 이후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윗의 통치기에 이미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을 주목하고 있다. 애초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라는 최고의 사명이 뚜렷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보다는 권력을 관리하고 이를 강화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둔 최고 권력자의 모순을 성서가 폭로하고 있음을 김민웅 목사는 일깨우는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의 신화적 예찬에 집중하기 쉬운 해석과는 달리, 그는 이들의 본질적인 실패를 주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예수운동의 진정한 목표를 조명하고 있다. 권력이 진실로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가 택한 본문은 사무엘하 19장 40-43절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 2023. 6. 26.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독서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답답해서 던진 질문이겠지만 그 질문 속에 담긴 쓸쓸한 비애를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돈에 포획된 교회의 현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교회를 사고파는 사람들, 목사 선정 과정에서 후임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지요? ‘저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쉽게 정죄하지 않으려고 애써 보지만 결국 도리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 부끄러움조차 없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종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평가적 감정입니다... 2023. 6. 19.
이디오테스(idiotes) 이디오테스(idiotes) 평안하신지요? 가장 빛나는 계절인 봄을 우리는 늘 고통의 기억과 더불어 지내게 됩니다. 접동새 우는 4월에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세월호 참사자들이 떠오르고, 5월이면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넋들을 떠올리게 되고, 6월에는 이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뜬금없이 유치환의 ‘깃발’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아마도 저 광장과 길가에서 나부끼고 있는 노란 리본과 배너 때문일 것입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형용 모순의 표현 때문에 어떤 절절한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옵니다. 언제쯤 되면 우리는 이 봄을 한껏 경축할 수 있을까요? 노루처럼, 사슴처럼 .. 2023. 6. 18.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평안하신지요? 집에서 사무실로 나오다 보니 숙대 뒤뜰에 있는 산딸나무가 희고 정갈한 꽃을 피워냈더군요. 몇 해 전에 고려대학교에 계신 어느 교수님이 네 갈래로 피어나는 꽃잎이 십자가를 닮았다며 교회 마당에 심어보라 일러주던 꽃이기에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이집 저집 담장을 흘낏거리며 걸었습니다. 탐스럽게 핀 장미꽃들이 싱그러웠습니다. 문득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했던 릴케가 떠올랐고, 곧 마음속에서 이미 상투어로 변해버린 그 문장을 떨치려고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루 살로메가 떠올랐고, 그 매혹적인 여인을 향한 릴케의 연정이 되짚어졌습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 2023. 6. 17.
성공 바이러스 경계령 다시금 '깨끗한 부자'가 뜨는 모양이다. 하기사 실패를 좋아하고 성공을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성공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인사는 “부자 되세요.”, 축복은 “성공하세요.”이다. 부자 되기를 마다하며, 성공하기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한 때 이명박 장로의 경우도, “성공 하세요.”를 대선의 구호로 내세웠으니 말이다. 이 성공에 대한 열망과 맞서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당장에, “그렇다면 실패하란 말이냐?”라는 날카로운 반발이 나올 법 하다. 그러나 어떤 성공인지, 무엇을 위한 성공인지, 그리고 이 성공 이데올로기가 퍼지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는지 성찰하지 못하면 그건 성공이 아니라 보다 깊은 실패일 뿐이다. 롯은 아브라함과 결별하면서 성.. 2023. 6. 6.
자신의 욕망과 권력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의 최후 김기석 목사의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라”는 설교는 이번에 출간한 에 실려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쟁, 그리고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유다가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시리아와 동맹을 맺었던 상황, 그리고 결국 그런 선택이 자기 무덤을 파는 일로 가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그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사고하기보다는, 힘 위주의 발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권력자의 비극을 보여 준다. 예언자들은 바로 이러한 권력자의 오만을 용기 있게 치고 들어가서 백성들의 진정한 안녕을 도모하는 역할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조차 권력자에 대해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설교가 주는 메시지는 자못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기석 목사는 역대하 16장 7-10절의 말.. 2023.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