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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9

불멸과 소멸, 자매들의 전쟁에 관하여 딸들에게 주는 편지(5) 불멸과 소멸, 자매들의 전쟁에 관하여 ‘쁘레스뚜쁠레니’와 ‘나까자니에’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라는 소설에는 - 다른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 두 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은 맏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연히 맏딸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제일먼저 󰡔구약성서󰡕의 장자(長子)의 권리를 둘러싼 끝없는 암투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선택(選擇)과 유기(遺棄)라는 인간문제의 근본적 조건이 아닐까 싶다. 너희가 읽어보면 알게 될 테지만, 구약성서의 장자 다툼은 대부분 차자(次子)의 승리로 끝난다. 그 기나긴 싸움의 역사는 한 형제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의 장자는 가인이지만 신께서는 차자인 아벨의 편을 들어주었다. 창세기는 가인과.. 2016. 1. 18.
나는 아무래도 직선으로 살아야할까 보다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0) 나는 아무래도 직선으로 살아야할까 보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목사님적 목사님’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보수적 스탠스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과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근엄함과 엄숙함이다. 그것은 대체로 그러한 태도에서 자신의 말에 권위가 나온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차이점은 한 편은 그대로 보수적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편의상 중립을 표방하는 것이고 다른 한 편은 그 반대의 경우다. 그런 의미에서 두 편이 표방하는 중립이라는 것도 전혀 다른 내용일 수 있다. 이재철 목사님은 아마도 전자의 가장 대표적이며 성공적인 사례가 아닐까. 순전히 내 생각에 불과하지만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목회자 1위. 종교를 뛰어넘어 .. 2015. 12. 27.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9) 이별의 인사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1. 새해가 되면 팔순이 되는 우리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나를 깍쟁이라고 부르셨지만 지금은 그 깍쟁이와 함께 살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얼마나 깍쟁이인지 잘 알고 있고, 내가 간혹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탄식할 때가 많다. 세상에 자식을 알기로 그 어머니만 하겠는가. 어머니의 깍쟁이라는 말은 모름지기 나에게 적확한 비난이면서 가르침이고 매질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나 내가 깍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오늘날까지 해결해내지 못한 나의 이 깍쟁이스러움이 이쪽저쪽으로 역동을 하여 나의 두 측면의 성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하나는 깍쟁이로서의 나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깍쟁이.. 2015. 12. 19.
반(反)동성애 전도사에게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8) 반(反)동성애 전도사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가 있다. 이 노래는 의외로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非)신자들도 많이 부른다. 여기서 ‘사랑 받는다’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에겐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일 테지만 비신자들에겐 이 노래를 불러주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보편적 의미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이건 인간의 사랑이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박정희를 다니엘의 반열에 올린다? 에로스니 아가페니 하는 분류법이 있지만 사실 사랑은 전부 다 아가페고 에로스가 아닐까? 사랑의 본질은 똑같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사랑의.. 2015. 11. 22.
모든 진리는 하나다 딸들에게 주는 편지(4) 모든 진리는 하나다 자기를 사랑하는 내가 있는데 또 나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이고 저들은 누구이고 우리 모두는 누구인가? 나의 생각은 저들에게서 오고, 저들의 생각은 나에게로부터 생긴다. 빼어난 천재의 영감은 그보다 더 월등한 전체의 의식으로부터 주어지고 천재는 그 답례로 공동체에게 그를 낳은 보람을 선사한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고 고상하거나 천한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가 높고 낮은 것이며 우리 모두가 고상하고 천박하다. 전체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은 공부가 깊어지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빨리 그것들을 사랑한다고, 사랑해야한다고 말하지 마라. 도스또옙스끼(Фёдор Миха́йл.. 2015. 11. 1.
자기를 사랑함, 생각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딸들에게 주는 편지(3) 자기를 사랑함, 생각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영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 3:8). 사람이 살면서 직면하는 모든 경험은 그 사람의 인생의 내용이자 그에 대한 공부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이 ‘인간은 자연 중에 가장 약한 한 줄기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을 때, 두 가지를 말한다. 갈대와 생각! 갈대의 생각은 흔들림이고 흔들림은 갈대의 본질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냥 갈대(흔들림, 생각)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다.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인간은 무의미한 생각들에 불과할지라도 그것들을 개관(槪觀, 생각)함으로써 전혀 다른 .. 2015. 10. 24.
국정교과서, 사무엘의 혼백을 불러올리랴?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5) 국정교과서, 사무엘의 혼백을 불러올리랴? 큰딸과 함께 영화 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영화엔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의 삼대가 등장한다. 마지막 정조의 등장은 불행한 아버지에 대한 미화인가, 아니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화해일까? ‘자식이 출세하면 붓으로 조상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 정조의 아버지 추숭은 사도세자에 대한 미화일 가능성이 많다. 사실적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도저히 그대로 왕위를 이을 만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니까. 그러나 적어도 영화에서 정조의 분량은 파괴된 역사의 화해를 말하는 듯하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감독은 아마도 이것을 화해라 제시하려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야 어쨌든 정조대왕의 아버지 존숭은 개인적으론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일 수 있을 것이.. 2015. 10. 20.
진정성에 대하여 딸들에게 주는 편지(2) 진정성에 대하여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그 다음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말도 아니고 이웃과 타인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다. 이 둘은 언제나 같이 간다. 같이 감으로써 서로를 보완하고 고쳐주고 완성시킨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먼저는 자신을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자기 자신에 기반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때의 실천이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육친(肉親)적 사랑이다. 육친(肉親)이란 곧 내 몸이다. 아빠가 너희를 사랑하듯, 엄마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는 곧 우리의 몸이다. 누가 자기 몸을 이 세계의 전부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이란 그런 것이니 억.. 2015. 9. 16.
영적인(참된) 삶에 관하여 딸들에게 주는 편지(1) 유언(遺言) 나는 지난 6월 메르스에 감염되어 서울대병원 격리병동에서 1주일간 투병했다. 내게는 팔순의 노모와 아내 그리고 세 딸이 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3학년이다. 아이들의 외할아버지는 앞서 메르스에 감염되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돌아가셨다. (주께서 그분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할아버지와 아빠의 감염으로 아이들은 40여 일간을 집에서 격리된 채 보냈다. 아이들은 한 집에서도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 방에서 지내야 했다. 학교에 가는 것은 물론, 제 엄마조차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뿐 가까이 다가 갈 수 없었다. 내가 한밤중에 구급차에 실려 격리 병동에 들어가야 했을 때, 어머니와 아내와 아이들은 마당에 나와 집을 떠나는 나를 전송했다. 나는.. 2015.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