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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물러가라 기쁨도 잠시,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온 식구가 예배당에 나온 그날 밤 늦게까지 잠 못 이루던 아주머니가 ‘쾅’하고 울어대는, 마치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괴상한 소릴 들은 것이다. 놀래 온 집안 식구를 깨우고, 플래시를 들고 온 집안을 둘러보는 등 수선을 피웠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잠을 설쳐야 했다. 듣는 사람들 마음속엔 개종을 허락지 않으려는 역사로 다가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예배를 드렸지만 밤중 괴상한 소리는 여전히 났다. 이번엔 남편도 그 소리를 들었다. ‘쾅’하는 소리에 온 집안이 울릴 정도였다. 또 다시 온 식구가 밤잠을 설쳐야 했다. 괴상한 소리의 이유는 다음날 밝혀졌다. 한 모임에 나갔던 남편이 그 얘기를 조심스레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으로부.. 2021. 10. 26.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정말 모든 게 겁나게 올랐다. ‘제사상 차리기도 어려워졌다’는 말이 빈 탄식이 아니다. 단하나, 농산물만이 멀뚱멀뚱 한다. 바보처럼. 무엇 그리 억센 놈에게 발목 잡혔는지 땀 벅벅 한숨 벅벅 농산물만 남겨두고, 비웃듯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 1991년 2021. 10. 25.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축제의 모임. 환희와 찬미소리 드높던 그 행렬, 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던 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시 42:4)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시인의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이 모두 돌아와 함께 예배할 그날은 언제일지, 이 작은 땅에서 그려보는 그날이, 옛일 그리는 옛 시인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 1991년 2021. 10. 24.
토끼몰이 쉽게 생각했던 토끼도 이젠 잔뜩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점점 포위망이 좁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울 방학 중 임시 소집일을 맞은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눈 쌓인 뒷산으로 올라 토끼몰이에 나선 것입니다. 몽둥이를 든 아이에 깡통을 두드리는 아이, 산을 빙 둘러 몰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구경하듯 느긋하던 토끼가 아이들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행동이 빨라지자 차츰 당황하게 된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에 놀라 저쪽으로 도망가면 “와!”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막아섰고, 이쪽으로 뛰면 기다란 작대기를 든 아이들이 막아섰습니다. 이리 뛰고 자리 뛰고 하는 사이에 산을 에워싸던 아이들의 원은 점점 좁혀들었고, 그제야 토끼는 자기가 위태로워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간 게 종대 앞이었습니다. 아이.. 2021. 10. 21.
통곡소리 내 기억 속에는 몇 가지 소리가 남아있다. 메아리 울리듯 지금껏 떠나지 않는 소리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고향집 뒤편 언덕에서 들려왔던 통곡소리다. 쌓인 눈이 녹았다가 간밤 다시 얼어붙어 빙판길이 된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집 뒤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울음이 아니라 통곡소리였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는데, 그때 그 아주머니는 언덕너머 동네에서 계란을 떼다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계란을 떼 가지고 오는 길이었는데 빙판이 된 언덕길에 미끄러져 그만 이고 오던 계란을 모두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듬성듬성 미끈한 소나무 서 있던 뒷동산, 털버덕 언 땅에 주저앉은 아주머닌 장시간 대성통곡을 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어릴 적 기억, 그러나 그때 계란 깨뜨린 아주머니의 .. 2021. 10. 20.
하나님 하고 못 사귄 단강으로 들어오는 직행버스 안에서의 일입니다. 용암에서 한 남자가 탔는데, 못 보던 분이었습니다. 운전기사 바로 뒤에 앉은 그 남자는 버스기사와 열심히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얘기 중에 이어진 것이 교회 욕이었고 신자 욕이었습니다. 자리가 빈 버스인데다가 남자의 목소리가 여간했던 탓에 일부러 귀 기울이지 않아도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욕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내용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기사 아저씨가 욕을 해대는 남자의 말을 받았는데, 그 말을 듣고는 풉, 웃음이 났습니다.“ 어째 아저씨는 하나님하고 그리 못 사귀셨어요?” - 1989년 2021. 10. 18.
백두산에 오르는 꿈 친구와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지만 가슴은 얼마나 뛰고 흥분되던지. 오르다말고 잠에서 깨어서도(아쉬워라!) 설레는 가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기똥찬 꿈을 꿨으니 꿈을 사라 했다. 거참 신나는 일이라고 친구도 덩달아 좋아한다. 언제쯤일까, 먼 길 빙 돌아서가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을 지나 백두에, 天地에 이를 날은. 설레는 오늘 꿈이, 꿈만으로도 설레고 고마운 오늘 꿈이 정말로 가능한 그날은. - 1989년 2021. 10. 17.
밤이 깊은 건 잘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을 오늘은 보고 싶습니다. 내 어디쯤인지 어떤 모습인지 어디로 가는지 거울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일 없이 턱 없이 밤이 깊은 건 그 때문입니다. - 1989년 2021. 10. 16.
아기 잘 나았심니더 “기도해 주신 덕분에 아기 잘 나았심니더.” 김남철 씨의 전화였습니다. 지난 봄 마을 보건진료소 소장님과 결혼한 김남철 씨가 아기 아빠가 되고 나서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를 꼭 닮았심니더.” 전화였지만 목소리만 듣고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입이 귀에 닿은 웃음이 눈에 선했습니다. 낮선 마을로 들어와 마을사람들과 따뜻한 이웃되어 살아가는,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김남철 씨가 이젠 아기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보면 가만있지 못하는, 아기 유난히 좋아하는 평소 그의 성품으로 보아 가뜩이나 정겨운 신혼살림에 더욱 더 웃음꽃 피어날 것이, 전화 속 전해온 웃음만큼이나 눈에 선했습니다. - 1989년 2021.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