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20)


서로 죽이기 위해 태어난 생물



<기생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사실 지난 글에서 끝판왕이 깨지는 장면을 전해드렸는데요. 평온을 되찾은 지구, 그 이후의 짧은 에피소드가 강렬하게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어찌 보면 작가는 끝판왕이었던 기생수들의 연합체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만화 중간쯤 괴물을 알아보는 살인마로 잠시 등장했던 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거리에서 주인공 신이치와 마주 치는 거죠.

 

연쇄살인범인 그는 신이치에게 어떤 대답이 듣고 싶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말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생괴물과 몸이 섞인 신이치는 살인마인 자신을 진정 순수한 인간으로 봐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답을 들으려는 태도가 좋지 않습니다. 신이치의 여친을 칼로 위협하며, 그는 내가 누구냐, 네가 말해봐라 묻습니다.


 

대답해! 내가 진짜 인간이지? 단지 본능에 따를 뿐이니까! 누구보다도 정직한 내게서 인간사회는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지. 그러니 인간과 괴물 사이에 서 있는 자로서 한말씀 해 주실까?”

 

그의 주장이 꽤 그럴듯합니다.

 

왜 다른 놈들은 이렇게 참을성이 강할까? 인간이란 원래가 서로를 죽이는 생물 아냐? 괴물 따위는 필요 없어! 인간은 원래 서로 잡아먹게 돼 있다구. 수천 년 전부터 그래 왔어! 그걸 갑자기 막아 버리니 5,60억으로 인구가 늘어난 거라구. 그냥 두면 지구가 뻥 터져 버릴걸.”

 

인간이란 원래 서로를 죽이는 생물이랍니다. 선뜻 반박이 나오지 않습니다. 최근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크리스천 교수, 탄저균을 연구하기 위해 국내에 밀반입한 주한미군, 아들과 아버지의 진흙탕 싸움이 된 롯데경영진 사태, 국정원 불법 행위가 발각될 때마다 죽어나가는 국정원 직원 등등.. 우리는 정말 서로를 죽이는 생물인 걸까요.

 

학살의 역사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는 또 어떤가요. 전쟁과 전쟁에 버금가는 잔인한 학살의 역사에 인격을 입힌다면, <기생수>에 등장하는 저 살인마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뻔뻔하게 살인을 저지르며, 이것이 진짜 인간이다! 외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학살자의 역사가 증명하는 듯합니다. 인간이란 원래 서로를 죽이는 생물이라고.



5.18기념재단 / 김녕만 Kim Nyung-ma


 

그런데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보니, 저자 한강은 80년 광주 학살의 현장에서 야만과 숭고,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본 듯합니다. ‘소설 속의 책 속에 등장하는, 그러니까 작가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법한 문장을 여기에 가져와 봅니다.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5-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섬세한 감수성과 치밀한 문장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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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95)

 

인간이 근원적으로 품은 야만은 충분히 목도하고도 남았으니,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고난 숭고함을 찾아내야 합니다. <기생수> 마지막회에서 오른쪽이는 인간만이 타고난 숭고한 그 무엇을 인간의 한가함에서 찾습니다.

 

신이치 길에서 만나 알게 된 생물이 문득 돌아보니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왜 슬퍼지는 걸까?

오른쪽이 그야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구.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길에서 만나 알게 된 생물이 문득 돌아보니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왜 슬퍼지는 걸까?”



 

그렇군요.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빼앗겼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군요. 그렇다면 죽임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가함을 누리는 이들에게서 인간의 근원적인 숭고함을 발견할 수 있겠군요. 소년이 온다, 19805월 광주에서 야만과 숭고의 극단을 오고가는 상황을 재현합니다. 소설이지만, 실제상황입니다. 도청에 남아 총 한 자루씩 쥐고 계엄군과 맞서던 어린 청년 말입니다. 죽일 수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자기의 죽임을 받아들인 그 한가로움(마음의 여유)의 순간.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117)

 

다시 물어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수천 년 역사가 증명하듯, 살인마의 외침처럼, 원래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생물일까. 단정 짓기에는 다소 이른 듯합니다. 우리에겐 아직 숭고’ ‘한가로움’ ‘마음의 여유’ ‘양심따위의 단어가 남아있습니다.

 

이범진 /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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