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20)


서로 죽이기 위해 태어난 생물



<기생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사실 지난 글에서 끝판왕이 깨지는 장면을 전해드렸는데요. 평온을 되찾은 지구, 그 이후의 짧은 에피소드가 강렬하게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어찌 보면 작가는 끝판왕이었던 기생수들의 연합체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만화 중간쯤 괴물을 알아보는 살인마로 잠시 등장했던 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거리에서 주인공 신이치와 마주 치는 거죠.

 

연쇄살인범인 그는 신이치에게 어떤 대답이 듣고 싶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말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생괴물과 몸이 섞인 신이치는 살인마인 자신을 진정 순수한 인간으로 봐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답을 들으려는 태도가 좋지 않습니다. 신이치의 여친을 칼로 위협하며, 그는 내가 누구냐, 네가 말해봐라 묻습니다.


 

대답해! 내가 진짜 인간이지? 단지 본능에 따를 뿐이니까! 누구보다도 정직한 내게서 인간사회는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지. 그러니 인간과 괴물 사이에 서 있는 자로서 한말씀 해 주실까?”

 

그의 주장이 꽤 그럴듯합니다.

 

왜 다른 놈들은 이렇게 참을성이 강할까? 인간이란 원래가 서로를 죽이는 생물 아냐? 괴물 따위는 필요 없어! 인간은 원래 서로 잡아먹게 돼 있다구. 수천 년 전부터 그래 왔어! 그걸 갑자기 막아 버리니 5,60억으로 인구가 늘어난 거라구. 그냥 두면 지구가 뻥 터져 버릴걸.”

 

인간이란 원래 서로를 죽이는 생물이랍니다. 선뜻 반박이 나오지 않습니다. 최근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크리스천 교수, 탄저균을 연구하기 위해 국내에 밀반입한 주한미군, 아들과 아버지의 진흙탕 싸움이 된 롯데경영진 사태, 국정원 불법 행위가 발각될 때마다 죽어나가는 국정원 직원 등등.. 우리는 정말 서로를 죽이는 생물인 걸까요.

 

학살의 역사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는 또 어떤가요. 전쟁과 전쟁에 버금가는 잔인한 학살의 역사에 인격을 입힌다면, <기생수>에 등장하는 저 살인마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뻔뻔하게 살인을 저지르며, 이것이 진짜 인간이다! 외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학살자의 역사가 증명하는 듯합니다. 인간이란 원래 서로를 죽이는 생물이라고.



5.18기념재단 / 김녕만 Kim Nyung-ma


 

그런데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보니, 저자 한강은 80년 광주 학살의 현장에서 야만과 숭고,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본 듯합니다. ‘소설 속의 책 속에 등장하는, 그러니까 작가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법한 문장을 여기에 가져와 봅니다.



소년이 온다

저자
한강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5-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섬세한 감수성과 치밀한 문장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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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95)

 

인간이 근원적으로 품은 야만은 충분히 목도하고도 남았으니,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고난 숭고함을 찾아내야 합니다. <기생수> 마지막회에서 오른쪽이는 인간만이 타고난 숭고한 그 무엇을 인간의 한가함에서 찾습니다.

 

신이치 길에서 만나 알게 된 생물이 문득 돌아보니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왜 슬퍼지는 걸까?

오른쪽이 그야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구.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길에서 만나 알게 된 생물이 문득 돌아보니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왜 슬퍼지는 걸까?”



 

그렇군요.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빼앗겼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군요. 그렇다면 죽임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가함을 누리는 이들에게서 인간의 근원적인 숭고함을 발견할 수 있겠군요. 소년이 온다, 19805월 광주에서 야만과 숭고의 극단을 오고가는 상황을 재현합니다. 소설이지만, 실제상황입니다. 도청에 남아 총 한 자루씩 쥐고 계엄군과 맞서던 어린 청년 말입니다. 죽일 수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자기의 죽임을 받아들인 그 한가로움(마음의 여유)의 순간.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117)

 

다시 물어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수천 년 역사가 증명하듯, 살인마의 외침처럼, 원래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생물일까. 단정 짓기에는 다소 이른 듯합니다. 우리에겐 아직 숭고’ ‘한가로움’ ‘마음의 여유’ ‘양심따위의 단어가 남아있습니다.

 

이범진 /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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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7) 


 

'전도사 총리' 약인가, 독인가?

 

다시 <기생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기생수' 관련 글 순서 [링크]

01. '아는 놈'들이 배신할 때 

02. 피곤이 쏟아질 때 눈물이 쏟아질 때 

03. 다이어트가 하고 싶을 때 

04. 솟구치는 성욕을 참을 수 없었다고? 

05. 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 

06. 잔인한 장면이 필요하다. 

07. 악당들의 사랑이 부럽다. 

 

TV로 방영된 <기생수>는 총 24회로 종영되었습니다. 원작인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대방출됩니다!)

 

주인공 신이치가 막판에 만난 끝판왕은 ‘고토’입니다. 일본어 숫자 5를 뜻하는 “ご”(고)의 그 고토인데요. 다섯 마리의 기생수를 합쳐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무적 ‘무결점 기생’ 괴물입니다. 똑똑하고, 빠르고, 힘도 셉니다. 주인공 신이치는 이런 고토에 비하면 너무 약합니다. 전투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오른손에 기생하고 있는 ‘오른쪽이’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난 전투에서 오른쪽이는 고토에게 먹혀버렸거든요. 오른쪽이를 잃은 외팔이 신이치고토에게 죽임당하기 직전 궁지에 몰려 집어든 것은 산속 깊은 곳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쇠파이프 하나. 날카롭고 강력한 칼로도 당해낼 수 없었던 고토를 그깟 쇠파이프로 상대할 수 있을까요?



‘거의 가능성 제로잖아...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확실한 제로야.’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쇠막대 한 방에 고토의 다스림 속에 일사불란하던 기생수들이 분열을 일으키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때를 틈타 고토의 몸속에 갇혔던 ‘오른쪽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탈출. 결론적으로 고토를 무찌르는 데 성공합니다. 운 좋게도 쇠파이프에 독이 묻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체내에 독이 들어온 것을 감지한 기생수들이 고토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이어지는 오른쪽이신이치의 대화

 

오른쪽이 : “네가 녀석에게 쑤셔 넣은 쇠막대는 여기서 주은 거야?”

신이치 : “응, 그런데 독이라니?”

오른쪽이 :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크릴 성분이 불에 타서 생긴 시안화수소가 포함되어 있던 건지도 몰라."

신이치 : "그건 독이야?"

오른쪽이 : "맹독."

신이치 : "그런 맹독을 이런 데 함부로 버리고 가다니!"

오른쪽이 : "하지만 그 덕분에 이겼잖아."

신이치 : "결국 인간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뜻이지."

 

그때! 고토의 부활이 시작됩니다. 자잘한 단위로 절단된 체세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거죠. 더 이상 인류가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씨를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이치는 묘한 동정심(?)을 느낍니다. 살려고 꿈틀 거리는 생명들을 죽이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뭔가 불쌍하네. (기생수는) 뭘 위해 태어난 걸까. 넘쳐나는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지구를 더럽힌 인간을 없애기 위해? 분명히 인간이 만들어낸 독이 생물에게 해가 되는 건 알고 있어. 이거야말로 그래. 그만큼 강했던 고토가 쇳조각에 묻어있던 독에 어이없이..’

 

“우리는 하나. 우리와 인간은 하나의 가족이다.”

 

그렇다.

 

‘생물 전체로 보면, 인간이 독이고 이 녀석들이 약인가? 생물 인간이 독이고. 누가 정하지? 인간과 그외의 생명의 가치를 누가 정하는 거지?’

 

그리곤 ‘오른쪽이’한테 말합니다.

 

“죽이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살려고 하는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아.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보물이잖아. 죽이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은.”


인간이 독이고, 이 녀석들이 약인 걸까...


과연 결론은? - to be continue...

 

요즘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누가 독이고, 누가 약일까요? 맹독을 만들어내며 지구를 더럽히는 인간이 ‘독’입니까, 그런 인류를 위협하는 것들이 ‘독’입니까? ‘(독처럼) 쓴 게 몸에 (약이 되고) 좋다’는 말이 있고, 혀에 단 것이 ‘단거’(DANGER:위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독과 약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황교안 씨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목동성일교회 전도사님입니다. 담임목사에 따르면, 고교 때부터 40년 동안 성가대 지휘자로, 13년간 청년부 설교자로 섬겼다 합니다. 교회주보에는 여전히 ‘황교안 전도사’가 찍힙니다. 그의 아내는 찬양음반을 낸 복음가수라 합니다.

 

병역비리, 돈(떡값) 비리 등 의혹종합선물세트로 불린 그는 청문회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들에게 “의혹을 입증하라”며 역대 총리후보에게선 볼 수 없었던 뻔뻔함까지 보였습니다. 그가 평생을 바친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독입니까? 약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안검사 황교안은 독입니까? 당장에 단 것만을 취하다가 단거(DANGER)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독과 약, 우리 또한, 저 역시, 명심해야 할 경계입니다.


P.S. 혹시 모를 일입니다. 쇠파이프의 '맹독'이 천하무적 고토를 끝장냈듯이, 박근혜 정권의 맹독성이 약이 되어 3대 독불장군 김정은의 붕괴를 가져올지. 어쨌든 참, 독한 놈들의 세상입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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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2)


'대한민국 1진' 박근혜 대통령님께

 

최근 세 차례의 글에서 찌질한 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애썼는데요. 구김살 없는 성격을 지닌 부자들의 사랑, 권력자들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만큼의 작은 우정도 쌓지 못하는 들의 처절한 각자도생이 뼈아픕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풍경이 이와 같았겠지요. ('세월호 유족과 요플레 뚜껑' '찌질한 을들의 전투, 베데스다 리그' '악당들의 사랑이 부럽다' 클릭)

 

고민의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운이 좋아 을 얻는다 해도, 그것이 생활밀착형 적용이 되기까지는 꾸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대개의 경우 정답은 훌륭합니다. ‘문제가 항상 라서 안타까운 거지요. 회의주의에 빠지려는 어느 밤, 우연히 한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었던 영화였는데요.

 

한국에서 2014년에 개봉한 일본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둔대>입니다.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제작노트가 더 깔끔하겠지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2014)

The Kirishima Thing 
7.4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하시모토 아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오오고 스즈카, 시미즈 쿠루미
정보
드라마 | 일본 | 103 분 | 20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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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의 남자 배구부 주장인 키리시마가 갑자기 동아리를 그만두고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다. 스포츠는 물론 성적도 우수하여 교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학생과 사귀고 있던 키리시마. 학교 내에서 높은 서열에 위치했던 키리시마의 부재는 보이지 않는 계급관계 속에 살고 있던 학생들 사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은 동시대 고교생들의 독특한 가치관을 반영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10대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청춘은 빛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학생 혹은 평범한 학생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키리시마의 부재를 계기로, 그 세계를 평온하게 지탱하기 위해 숨겨져 있던 것들이 서서히 분출되고 그들의 권력 관계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갈 무렵, 현실이 아무리 잔혹해도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을 보여주고 그렇게 사람들은 영화에 희망을 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 주의) 재밌는 건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잘나가는 키리시마,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일진그룹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지요. 여러 학생들의 시점에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구성이 재밌습니다.

일진과 가장 먼 그룹
(학창시절엔 ‘jot이라고도 불렀고 108진이라고도 불렀습니다)의 학생들로 시선이 옮겨지기도 하는데요. 108진의 모습을 비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배구부 에이스 키리시마의 공백을 메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만년 후보선수, 야구로는 이미 대학진학이 좌절되었으나 2학기에도 야구시합에 매달리는 고3 야구부 주장, 검도부의 창고쯤 되는 공간을 동아리방으로 쓰는 영화부 부원들, 한마디로 지지리 궁상들의 향연이랄까요. 영화를 검색해보니 리뷰가 많지 않습니다. <씨네21>에 실린 송경원의 오늘을 충실히 사는 법이 눈에 띕니다. 그는 이 영화 속 학교에서 계급을 포착합니다.

 

 

영화 속 학교는 분명한 계급 사회다. 매일 즐거운 척 적당히 살아가는 능력자들과 별달리 인정받지 못해도 오늘을 즐기며 버텨나가는 하위 집단의 학생들로 나뉘어져 있다. 인기 있는 상위의 학생들은 중심이던 키리시마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반목한다. 반면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하위의 학생들은 그의 부재와 관계없이 각자의 하루에 충실하다.

 

여기서 잠깐,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립니다. 영화 속에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는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요. 다만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우리 대통령을 통해서요. 대통령이 4.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키리시마 패거리가 그렇듯, 대통령의 패거리도 하나둘 자기자리를 잃고 있습니다.(‘넘버3’ 최경환 부총리가 행정부 수장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이승만 하야 직후 딱 한 번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언제나 1진이었을 것이다. ⓒ공공누리


박근혜 대통령님 대학시절 바자회(동아리활동?)에서. 인생 전체가 '1진'이었던 대통령님은 어쩌면 '일상'과 직면하는 법을 모를지도 모른다. 108진과 교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악수도 거부하던 그녀가 아니었나. 세월호 1주기에 서둘러 비행기에 올라 도망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인간대 인간으로서, 마음이 아려온다.(비꼬는 게 아니다) ⓒ공공누리



1
진들의 우두머리인 키리시마가 사라지자 그를 둘러싼 1진 또는 2진들은 갈팡질팡합니다. 적어도 키리시마의 리더십은 허상이었음이 증명된 셈입니다. 반면 하루하루 자기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는 건 108진들입니다.

 

 

영화동아리 부장 마에다 료야(가미키 류노스케)는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다. 료야와 친구들은 상위 그룹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도 신경 쓰지 않고 좀비영화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영화를 찍기 때문이다. 료야가 만드는 좀비영화 속 대사,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는 그런 하위 그룹 학생들의 결연한 심정처럼 들린다.

 

 

옥상에서 촬영 중, 일진 친구들로부터 능욕을 당한 영화동아리 부원들. 그래도 해야 할 말을 하고, 응당한 저항을 했다는 데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몇몇은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정도 굴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고 다시 영화 제작에 들어갑니다. 키리시마의 부재로 우왕좌왕하는 1진급 학생들의 모습과는 상반됩니다. 그때, 대사를 외지 못하는 후배를 꾸짖으며 몇 번씩 반복되는 대사가 바로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입니다. 영화감독이 108진 학생들, 베데스다 연못에 머무는 우리의 일상을 빌려 하고 싶었던 말이었겠지요.

 

 

제가 몇 번씩 돌려본 장면은 마지막입니다. 영웅 키리시마의 절친인 히로키(사실상 키리시마와 가장 우정의 연대를 돈독하게 다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장인물,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연기했습니다. 그는 영화 <기생수>에도 나옵니다. 이상 사족.)108진 영화동아리 부장의 대화입니다. 1진학생이 108진학생에게 장난스레 8미리 카메라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거친 필름에 담긴, 찌질하지만 숭고한 우리의 일상들.


 

 

1: 장래엔 영화 감독이 될 겁니까?

108: ...글세

1: 여배우랑 결혼합니까?

108: ?

1: 아카데미 수상도 합니까?

108: ....... 뭐 그럴 일은 없겠지..... 영화감독은 무리야.

1: 그럼... ...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굳이 왜 영화를..?

108: 그건... 그래도 가끔 말야.. 우리들이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들이 찍고 있는 영화가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정말로 가끔이지만... 가끔이지만 말이야.

 

 

1진 히로키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옥상에서 내려와 연락이 두절된 부재중키리시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멀리 운동장에선 야구로는 대학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연습중입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야구랑 지금 우리들이 하는 야구랑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에 밤늦은 시간까지 땀을 흘리는 거겠지요. 여기서 영화는 끝나는데요. 저는 상상합니다. 히로키는 키리시마가 전화를 받으면 무엇이라 말할지를. 불현듯 대한민국 1진 박근혜가 겹쳐지면서요. 저도 부재중인 그녀에게 음성사서함을 남깁니다.

 

“1진인 당신이 버리고 간 동아리 대한민국이 누군가에겐 전부입니다. 당신이 무정하게 떠나버린 416일이 누군가에겐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영원의 찰나였습니다. 당신이 그날 이후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자 당신의 친구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흩어졌으나, 보잘것없는 108진들이 찌질하고 굴욕적인 일상으로 대한민국이란 동아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하는 겸손이 지나쳐 숭고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히로키는 키리시마가 전화를 받으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키리시마! 동아리를 떠나라, 영원히.”


동아리는요. 영화감독이 될 수 없어도, 아카데미 수상을 못해도, 여배우와 결혼할 수 없어도, 영화를 찍어내는 이땅의 수많은 '영화감독'들에 의해 간당간당 유지됩니다. 


이범진/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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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9)

 

악당들의 사랑이 부럽다

 

 

최근 이사한 집은 전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정도 더 들어가야 합니다. 가파른 길이라 마을버스가 꽤 힘겹게 오르내립니다. ‘달동네라 불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달동네슈퍼라는 이름의 슈퍼가 있습니다) 집 근처에 그 흔한 편의점 한곳 없어 처음엔 좀 불편했는데요. 작은 구멍가게가 두 곳이나 있고, 꽤 늦은 시간까지 어두운 골목을 밝혀줍니다. ‘아는 척을 해주며 인간적 관심을 보이는 주인할머니도 정이 가고요. (얽힌 이야기) 마을버스 운전하는 아저씨들 얼굴도 이젠 다 외울 정도.

 


이렇게 예쁜 동네는 아닙니다만, 느낌은 비슷합니다. ⓒ이범진



이런 곳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30년 가까이 살던 동네를 떠나와 새로 정착한 이 동네에 정을 붙이려는 중이었습니다.

"사람 좀 고만 태워요!”


출근길 마을버스에서 누군가 외쳤습니다
. 사람이 좀 많아 저도 좀 예민해진 상태였는데요. 그래도 뭐, 우겨넣으면 몇 명 더 탈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몇 명의 탄식이 겹치고, 아우성이 됩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어우, 밀지마세요!”

아침 출근길부터 기분이 나빠집니다. 애써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하며 화를 억눌러봅니다.

 

조금 늦은 퇴근길. 다행히 여유가 있는 마을버스. 갑자기 아주머니의 느닷없는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내 아들 딸 같아서 쳐다봤는데.. 이 싸가지 없는 것들아. 버스 안에서 그 지랄하고 있냐? 내 자식이었으면 너넨 벌써 얻어터졌다 ... 아유~”


술이 조금 취한 듯한 어느 아주머니가 젊은 커플에게 딴죽을 걸고 있었습니다
. 사실 스킨십을 엄청 심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요.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당황한 듯한 커플. 공교롭게도 아주머니와 같이 내린 커플. 급기야는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걸까요?

 

엄기호 작가(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단속사회)의 강연을 들은 이후라 마음은 더 복잡했습니다. 엄 작가는 강연에서 을 강조했습니다. 공동체의 다른 말이었는데요. 대한민국 사회의 무너진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선 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남고 이 사라진 우리네 가스러진 삶을 진단하며, ‘으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의 책 단속사회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으며 을 생각합니다. 정감 넘치는 사람들 모여 여기저기 아나바다운동의 거점이 있는 활발한 동네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필요이상으로 밀쳐내는 곳. ‘의 반전이 있는 곳. 어쩌면 그냥 가장 못사는 동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절망의 끝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들이 모인 자존감 낮은 곳. 곁이 있는 삶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걸까요?


악당들의 진정성


반면,곁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입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야당의 우윤근 원내대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의 재회를 한 것인데요. 우 원내대표는 정말 저도 마음이 아팠다. 도와드리지 못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보였고, 이를 이완구 국무총리가 토닥이며 자신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습니다. ㅅㅂ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 이완구 총리의 수많은 비리와 의혹을 파헤치려 했던 건 쇼였을까요? 어쨌든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비웃고 비아냥거렸지만, 사실 전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 느껴졌거든요.

 


어쨌든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비웃고 비아냥거렸지만, 사실 전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진.정.성이 느껴졌거든요.(경향신문, 2015.2.25)

 

 

흔히 우리는 저들의 우정과 연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들이 서로의 욕심을 주체 못하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실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뇌물을 주고, 가족의 대소사를 살뜰하게 챙기며 헌신적으로 자신의 곁을 챙깁니다. 다른 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를 위해 고결한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이들입니다.(비꼬는 거 아님)

 

전두환의 추징금을 걷는 과정에서 경매로 나온 일부 미술품들을 측근들이 사서 다시 돌려주었다는 일화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악당들의 이야기지만 분명 감동적입니다. 단순히 권력이 무서워서였을까요? 서로를 정말 사랑한 겁니다.

 

엄 작가도 자신의 목격담을 이야기합니다.

 

강남의 H고등학교 다니다가 공부 잘 못해서연세대 온 애들이 있습니다. 열댓 명씩 몰려다니면서 서로를 너무 사랑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필요를 못 느끼죠. 또한 자기네 동네를 너무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제 주변엔 하나같이 애정결핍증, 2, 관심병 환자들인데요. 상처는 왜 그리도 많고, 왜 다 가난뱅이들일까요? 4대보험 적용되는 곳에서 일하는 친구는 극히 드물고, 자존심인지 잔존심인지 모를 것을 지키느라 싸우고 삐치고. 그러다 술 한 잔 기울이며 쌓였던 감정을 친구 아이가하며 넘어가는 데, 우정이나 사랑 때문이 아니라 회피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도 찌질함을 감추기 위해 민주주의’ ‘인류 구원따위의 꽤 거창한 말로 연막을 칩니다. 제 친구들의 이야기이자, 제 이야기입니다.

 

오른쪽이의 조소 "흥, 자기희생이라니, 웃기고 있군."

기생수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쿠라모리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기생생물에게 고용되어 주인공 신이치를 미행하고 관찰하는데요. 말이 사립탐정이지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드러난 신이치의 정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며 비장함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그런 그를 신이치는 죽이지 않고 설득해보기로 합니다. 기생생물이 침투한 것,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인간에게 들켜도 기생생물에게 들켜도 안전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동요하던 쿠라모리 탐정. 이내 냉정한 표정을 되찾는데요.




 

쿠라모리 그래서 날더러 어쩌라고?”

신이치 우리에 대해 아무 말도 말아주세요. 이쪽 사정은 대강 알았을 테니. 더 이상 뒤를 밟거나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쿠라모리, 갑자기 표정을 비장하게 바꾸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네 얘기로는 아직 괴물들이 더 있다는 건데? 그놈들을 그냥 놔두라고? 만약 정말 인류를 위해서라면 네가 직접 나서야지. 설령 실험대상이 되는 한이 있어도!”

 

구원의 사도 나셨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는데요.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인류 전체를 생각해야지. 그게 인간 아냐?”

 

듣다 못한 오른쪽이가 그를 죽이려드는데요. 신이치가 말리는 통에 한 번 더 참습니다. 그리고 평소대로 논리를 이용해 쏟아내는 말.

 

"흥, 자기희생이라니, 웃기고 있군. 잘 들어! 네게 살 권리가 있듯이 우리 기생생물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 아무튼 우리는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신이치가 실험대상으로 나서는 건 내가 허락 못해! 때문에 네가 내 적이 되겠다면 가차 없이 죽이겠다.”

 

이어지는 오른쪽이의 감동 대사. 평소와 달리 감정에 호소합니다.

 

"이 녀석을 잘 봐. 아직 10대인 고등학생이다. 너에 비하면 한참 어린애지. 그런 어린애가 어머니를 잃고 시체의 산을 넘고, 온갖 참혹한 지경을 당하고서도 꿋꿋이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가엾지도 않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라. 너 같으면 견딜 수 있겠어?”

 

단지 생명 유지를 위해 전략적 공존을 하고 있던 신이치와 오른쪽이’. 이제는 운명 공동체(共同體)가 되어서일까요? ‘오른쪽이는 평소대로 논리적·과학적 접근을 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몸(?)을 이룬 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되는 과정도 기생수의 관전 포인트입니.

 

다시 우리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하나같이 육식동물에 쫓기다가 벼랑 끝에 몰린 초식동물의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노미. 〔곁〕에 누구를 두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릴 수도 있는 처지여서 일까요? '오른쪽이'의 조언처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초식동물들은 불안에 떨다가 이렇게 서로의 곁을 밀쳐내며 궤멸하게 될까요? 다음 글에서는, 갑의 횡포만큼이나 심각한 을의 횡포에 관한 절망을 나누겠습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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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7)


잔인한 장면이 필요하다


만화 《기생수》를 소개하고 끊임없이 인용하면서도 쉽사리 추천 못하는 이유가 ‘잔인함’때문인데요. 기생생물에 의해 사람이 잘려지고, 으깨어지고, 핏물 낭자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장면들, 눈이 절로 감기는 잔인한 순간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비현실적’ 장면들이 역사의 진실을 가장 실감나게 폭로한다는 점입니다. (만화나 시트콤의 ‘비현실적’인 과장 및 연발하는 우연은, 종종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나 ‘위대한 수령님’ 찬양하느라 동족상잔의 피 흥건한 역사는 가려집니다.

 

 

지난 글(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에 썼던 표현인데요. 더 이어가겠습니다. 평소 골육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는 서로가 서로를 죽인 잔인한 장면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흑백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힘들었겠구나’ 생각하고 넘어가는 정도였지요. 남침이니 북침이니, 이승만이 도망쳤다느니, 당시의 국제 정세가 어땠다느니 따위의 ‘큰 담론’에는 가끔이라도 관심을 기울였으나, 정작 그 잔인한 현장에 관해서는 깊이 다가갈 생각도 안한 거지요.

 

물론 관심이 없었던 저의 불찰이 큰 책임이겠으나, 정치인 및 지식인이 명분 싸움 및 진리(이념) 대결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인간 중심’의 해석은 놓친 게 아닌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백과사전에 ‘한국전쟁’ ‘6.25전쟁’을 찾아봐도 희생자가 몇 명인지는 잘 나오지 않고, 연도별 전세와 유엔, 중공군 언급이 주를 이룹니다. 수많은 생명이 피를 흩뿌리며 죽어갔는데, 이에 대한 기록과 성찰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합니다.

 

 

《기생수》의 주인공 신이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뉴스에선 연일 정교하게 토막살해 당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흉흉한 소식을 전했으나, 그냥 ‘뉴스’일 뿐이었죠. 나와는 상관없는 뉴스요. 우리가 지구촌 어딘가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전쟁 피해 어린이의 얼굴이 인쇄된 신문을 깔고, 그 위에 족발과 막걸리, 치킨과 맥주를 올리듯 말입니다.

 



《기생수》는 곧 영화로 개봉한다. (예고편 캡쳐화면)


 

 

신이치가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기생생물들은 사실 대도시에 주로 머물렀기 때문에 “지방으로 여행을 간 어머니는 데이터 상으로 안전하다”는 게 ‘오른쪽이’의 분석이었는데요. 빗나갔습니다. 거의 모든 만화들이 그렇듯, 불행하게도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기생생물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당한 겁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육신을 쓰고 나타난 기생생물. 멘붕에 빠진 신이치가 골육(骨肉)의 비극을 극복해가며, 전 지구적 연쇄살인사건의 해결 주체로 성장해가는 모습도 《기생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생명의 문제를 두고도 저마다 ‘끓는점’이 다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겠지요. 먹거리 문제였던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대해선 열정을 다 쏟았으나 정작 한미FTA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고, 일본산 생선의 안전성 여부는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국내 핵발전소의 안전에는 무관심한 제 모습만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교양 있게’ 꾸며진 살인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밝혀진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공작’이나 1년을 넘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숨기고 유가족을 희롱하고 있는 행태가 바로 살인의 현장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핏물 낭자한 살인 현장만 없을 뿐, 잔인의 극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끓는점’은 아직 오지 않았나봅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기주의’,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는 ‘가족주의’, 대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우리가 잔인함을 직면하는 것을 막고 있으며, 문제에 다가가지 않아도 되는 고상한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까지도 끌어안는 공동체를 기대하는 건 진정 이상주의일까요? 형제님, 자매님 하며 웃으며 인사 나누는 교회공동체는 정말 그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걸까요?

 

신학자들 말하길,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고 한 말은 가족으로서의 책임 유기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의 확장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지구촌 누구나 내 어머니이고 형제라는 선언이었던 셈이지요. 주인공 신이치가 조금 더 일찍 살육문제에 개입했더라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우리의 현실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말입니다.

 

 

대한민국 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볼 때 저도 교회에 불만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 소수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려 쉽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반에서 제일 찌질한 학생이 30번, 짱이 1번이면 너는 몇 번이니? 30번인 아이가 전학을 가면, 29번 아이가 전학을 가면, 28번 아이가 전학을 가면…, 정말 왕따를 당하는 이가 없어지겠니?"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17번쯤 되는 그 아이들이 사태의 심각성에 감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왕따를 당하는 그 찌질한 학생이 이석기일수도 있고 장하나일수도 있고 표창원일 수 있지만, 다음엔 당신일 수 있습니다. (출처: 복음과상황, ‘표창원 박사 NCCK 인권상 수상’ 2013/12/10)

 

 

눈앞에 벌어지는 잔인한 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잔인이 익숙한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탈을 쓴 기생생물 몇몇이 뛰어난 학습 및 생존 능력을 이용해 시의원 선거캠프를 꾸렸습니다. 선거 연설은 꽤 훌륭했으며, 사회와 인간을 위해 -기생생물의 공존을 포함한- 훌륭한 시장이 될 듯합니다. 생각에 빠집니다. 만약 기생생물에게 정치를 맡겨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그들에게 투표할 것인가. 선뜻 대답할 수가 없네요.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요즘 심심찮게 ‘민족주의’ ‘애국주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만화 같은 엉뚱한 상상을 더 이어가보겠습니다. 일본이 다시 우리나라를 침략해옵니다. 다만 그 침략의 주체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정의와 공평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그들은 무흠무결인데다가, 한반도의 산적한 모든 문제들(남북분단, 쌍용차, 강정해군기지건설, 밀양 송전탑, 핵발전소 등)을 평화롭게 해결해줄 능력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고 칩시다. 나는 독립운동을 할까요? 친일파가 될까요? 생명을 지키는 선택을 하겠지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다만, 만화나 시트콤의 ‘비현실적’인 과장 및 연발하는 우연은, 종종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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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4)



솟구치는 성욕을 참을 수 없었다고?


 

군 기무사령관 출신 송영근 의원(새누리당)이 지난 29일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위 전체회의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해당 여단장이) 지난해에 거의 외박을 안 나가고 가족도 거의 면회를 안 들어왔다”며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성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측면을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입니다. 이에 덧붙여 송 의원은 “전국에 지휘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정상적으로 (외박을) 나가야 하는데 제때 못 나간다. 가정관리가 안 되고 본인의 그러한 섹스 문제를 포함해 관리가 안 되는 게 이런 (성군기 문란)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By Alvimann



한마디로 정기적으로 섹스를 해줘야 하는데, 열심히 일 하느라 해소할 길 없어 군대 내 성범죄가 일어난다는 논리입니다. 인간도 하나의 ‘생물체’임을 자각하여 '성폭행 여단장'을 이해하자는 관점입니다. 지난 글에서 ‘잠’과 ‘배고픔’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모든 생물의 기본 중의 기본, 생식에 관해 써볼까 합니다. 역시 《기생수》를 통해 시작해봅니다.

 

기생생물 ‘오른쪽이’의 잠을 깨운 것은 신이치의 심장박동이었습니다. 신이치의 오른손에 기생하고 있는 오른쪽이는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죠.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걸까요? 신이치의 심장은 왜 그리 크게 뛰었을까요? 이를 감지한 ‘오른쪽이’의 말을 가져와봅니다.

신이치. 네가 저 암컷을 보고 너무 놀랐으니까. 그런 신호에는 내가 민감하거든. 신이치, 너 저 암컷이랑 사귀고 싶지? 난 알 수 있어. 혈액의 미묘한 변화로….

 

 

오른손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오른쪽이’는 힘이 단단히 들어간 남성 생식기 모양으로 모습을 바꾸어 신이치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생식활동에 흥미가 생겨서…. 신이치는 사토미랑 사귀고 싶어하면서도 직접적으로는 표현 못하고 있잖아….”라고 말합니다.

 

생식활동을 직접적으로 표현 못하는 게 ‘인간사회’라는 데에 ‘오른쪽이’는 흥미를 느낀 거죠. 그렇죠.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생식활동을 할 때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누구에게 보였다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윤리도덕적 기준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저 저마다 본연의 생명에 부여된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죠. 그러니 혈액의 미묘한 변화이지만 생식활동의 생물학적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신이치가 머뭇거리는 게 ‘오른쪽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이쯤에서 다시 송 의원 이야기. 그럼, 우리 인간은 다 생물이기 때문에 섹스를 하고 싶을 때 참지 못한다는 그의 논리는 일견 타당한 걸까요? 송 의원의 발언을 찬찬히 훑어보면, 그리 강하게 이야기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측면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정도의 발언입니다. ‘인류’가 아닌 ‘생물’이었을 때 인간은 오히려 순수한 생명이었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도 있으니 그의 말이 정말 일리가 있는 걸까요? 프랑스의 어느 인류학자는 “인류 문명은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문명 이전에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 가리지 않고 누구하고나 교배를 하였는데 근친상간을 금기로 여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로, 자연상태에서 문명으로 이행했다는 거지요. 정말일까요?

 

《착한 인류》(The Bonobo and The Atheist)를 쓴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아니다”라고 확답합니다.



착한 인류

저자
프란스 드 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4-07-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신이 없는 세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의 가능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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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교배 억제는 초파리, 설치류에서부터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에게서 나타난다. 성관계로 재생산하는 종들에게 그것은 생물학적인 명령이나 다름없다. 보노보 무리에서 아버지-딸 섹스는 암컷이 가임기가 되면 이웃 무리로 떠나버리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어머니-아들 섹스도 아들이 같은 무리에 있고 자주 어미와 여행을 다니는데도 관찰되지 않는다. 이들은 보노보 사회에서 유일하게 섹스와 무관한 관계이다. 이 모든 것에 강제는 없다. (109~110쪽)

 

결국 “생물학적 인간이었을 때 가장 인간다웠다”라는 급진적 주장도 힘을 잃고 마는군요. 더군다나 생물 사회에서 ‘강제’란 없습니다. 폭력적이라 알려진, 그러니까 리비도에 강력하게 추동되는 침팬지 사회조차도 ‘강간’은 무리에서의 추방 근거가 됩니다. 무리의 지도자라 하더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외가 허락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동물원 우리 안에서 뿐입니다.(위의 책에 소개된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비록 혈액이 성기에 몰리게 창조되었을망정 '강제로' 상대를 제압해 그것을 해소하는 행위까지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백만보 양보해서 보아도 ‘성폭행 여단장’을 두둔할 만한 그 어떤 변명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창조 원리에 입각해서 보아도 분명 ‘명령 불복종’인 거죠. 전시였다면 사형입니다. 그러고보니 ‘여단장의 그것을 잘라버리라’는 과격한 댓글을 달고 간 사람이 어쩌면 신이 보낸 천사였을지도….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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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3)

 

다이어트가 하고 싶을 때

 


 

지난주에 잠에 관해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 주는 ‘먹는 것’으로 이야기를 꺼냅니다. 먹는 것,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토할 때까지 먹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가족을 이뤄 살았고, 제 위로 형과 누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식사시간은 곧 전쟁이었죠. ‘어린이 반찬’을 집중공략! 형과 누나보다 더 많이 배에 쑤셔 넣어야 했기에 맛을 느끼는 것은 사치였죠. 이렇게 먹다 보니 새벽마다 일어나 먹은 것들을 게워야 했습니다. 위장이 단련되어서인지 어른이 되어선 토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식성과 식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어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동물을 깨닫는다》(2014) 참고.


 

덤벙덤벙 막 먹어대는 것. 저만의 이야기인가요? 기생생물 ‘오른쪽이’에 따르면, 인간은 다 엄청난 식욕을 지녔습니다. 넘치는 식욕은 곧 악마의 길로 가는 지름길인 듯 보입니다. 백과사전, 인터넷 정보 등으로 각종 정보를 학습한 ‘오른쪽이’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신이치…. ‘악마’라는 것을 책에서 찾아 봤는데…. 그것에 가장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으로 판단된다…. 인간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을 잡아먹지만, 내 ‘동족’(기생생물)들이 먹는 것은 고작 한두 종류야. 훨씬 간소하지.”




 

흉측해 보이는 기생생물조차 ‘생존’을 위해서만 도살을 하는데 인간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맛집’을 돌아다니는 동물들이니 ‘오른쪽이’의 입장에선 악마로 보일 수밖에요. 그뿐인가요? 인간은 자기 위 용량의 몇 배는 먹어치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명체입니다. 불황의 시기를 거치는 한국사회에서 ‘뷔페 음식점’ 사업만은 호황이라는데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유를 빼앗긴 인간들이 뷔페 음식점에 가서야 신적 자유를 누리며 “프리돔!”을 외치는 거지요.

 

과식하는 잡식동물, 닝겐! 만물의 영장이니까 괜찮다고요?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먹는 것이 모든 생물에게 주어진 신의 설계(명령)인데,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여 생명 원리를 어겨도 되는 걸까요? 에일리언과 인간의 대화를 가져와 봅니다.

 

지도자 에일리언 50억 년 중 몇 백만 년이라면 정말 새 발의 피네요. 그 정도 살았다고 주인이라고 할 수 있나요? 참, 사람들이 출현하기 이전에도 지구에 다른 생명체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역사학자 에일리언 그럼요. 바퀴벌레가 가장 오래된 생명체 중 하나입니다. 사람은 가장 늦게 나타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 에일리언 그러면서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네요?

리플리 우리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고 살며,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아요.

역사학자 에일리언 사람만이 도구를 사용하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들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능이 가장 높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래봐야 지능지수가 100정도 밖에는 안 되지만.

지도자 에일리언 지능이 높으니까 지구의 주인이 된다는 말씀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된다는 말씀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지구의 주인인 게 맞아요. 우리 뉴본 에일리언이 보기에는 당신들 지구인은 거의 닭대가리 수준이죠.

 

뉴본 에일리언의 지능은 900이다. (이어지는 대화는 중간 중간 생략했다. 원대화 전문은 아래의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최훈 지음
출판사
사월의책 | 2012-11-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 고기를 굽기 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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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에일리언 사람들도 소나 돼지를 잡아먹으면서 왜 우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못하게 하죠?

리플리 사람과 동물은 다릅니다. (고개를 15도 정도 기울이며) 우리는 소중하니까요.

지도자 에일리언 뭐가 소중하다는 거죠?

리플리 우리는 동물보다 지능지수가 아주 높습니다.

지도자 에일리언 (지능 900인) 우리가 보기에 사람들도 지능지수 면에서는 우리들과 한참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 잡아먹어도 되겠네요.

리플리 우리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침팬지는 말을 할 줄 몰라요.

지도자 에일리언 하하하. 우리 에일리언은 텔레파시를 씁니다. 당신들은 텔레파시를 쓸 줄 모르잖아요? 텔레파시는 인간의 미개한 언어보다 훨씬 고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입니다.

리플리 (힘없는 목소리로) 사람과 동물은 아예 종이 다릅니다. 그러니 사람은 동물을 잡아먹어도 됩니다.

지도자 에일리언 우리 에일리언과 사람도 종이 아예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을 잡아먹어도 됩니다.


리플리와 사람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날 그들은 지도자 에일리언의 식사 재료가 되어야 했다.

 


“인간은 고기다.”


‘오른쪽이’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진 주인공 신이치의 말입니다. 인간 또한 고깃덩어리일 뿐이죠. 엄격한 생명 원칙에 따르면 말이죠.

‘또다시 토막시체 발견!! 희생자는 41명으로 늘어나!’라는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 기생생물은 중얼거립니다.

“흥, 소나 돼지는 태연히 먹어치우는 인간들이 뭘 놀라고 있나.”

이들 기생생물 중 가장 학습능력이 뛰어난 타미야 료코는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파리도 거미도 그저 ‘명령’에 따르고 있는 거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모두 어떤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나? 내가 인간의 뇌를 장악했을 때, 하나의 ‘명령’이 내려왔다.



‘이 종(인간)을 먹어치워라!’라는 명령을 받은 기생생물. 도대체 생명 설계자는 왜 인간을 먹어치우라는 생물을 만들어낸 걸까요? <기생수>의 첫 시작 내레이션을 그대로 가져와봅니다. 기생생물의 소명을 가장 구체적으로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모든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인간은 진정 ‘악마’인 걸까요? 메뚜기와 석청으로만 살진 못하더라도, 위장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먹어야 할 텐데요. 잘 안되네요.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 ‘명령’ 받았음에도, 이 시간, 새벽 3시, 저는 ‘보글보글 맛좋은 라면’을 끓입니다. 이른바 명령불복종…. 전시였다면 ‘사형’이죠.

 

 

이범진/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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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2)


피곤이 쏟아질 때

눈물이 쏟아질 때




지난 글에 예고한 대로, 기생생명체 ‘오른쪽이’를 소개합니다. 일본 만화 <기생수>(이와아키 히토시 作)에 등장하는 외계 생물입니다. (현재 일본 NTV에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만화책이 원작으로 1990년대에 이미 한국에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배급사가 제공하는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 나타난 기생생물들. 그들은 인간의 두뇌를 차지하고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 그로 인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도살 사건들. 평범한 고교생 신이치에게도 기생생물이 덮쳐오지만 두뇌가 아닌 오른손을 차지하는데 그친다. 신이치는 자신의 오른손을 차지한 ‘오른쪽이’와 함께 기생생물에 대해 알아가면서 미래를 고민하는데…


 

 

‘오른쪽이’는 돌연변이에 가깝죠. 인간의 두뇌를 점령하고, 육체를 먹이삼아 기생하는 동족과는 달리 사람의 오른손에 기생하였고, 인간의 뇌는 물론 육체와의 ‘공존’을 도모하니까요. 평범한 고등학생 신이치와 그의 오른손에 기생한 ‘오른쪽이’가 서로 소통하며, 인간을 먹이로 삼는 기생생물들의 위협(?)에 대처하는 내용이 큰 얼개입니다. (잔인한 그림체가 일단 거슬리는데요. ‘19금’입니다.)

 

오른손에서 기생하는 ‘오른쪽이’는 자신의 몸인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변형합니다. 그의 몸은 적들을 물리칠 때는 칼로 변하고, 잠잠히 숨어있어야 할 땐 인간의 손으로 모양을 바꿉니다. 아주 잠깐은 신이치의 몸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영양을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분리된 행동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몇 회를 ‘오른쪽이’가 던져주는 질문을 통해 ‘기본’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기생생물 오른쪽이가 저에게 던져준 신선함은 바로 ‘생존 경쟁력’이었습니다. 기생생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특화된 생명체입니다. 그들의 공격력과 정보처리능력은 지구인을 월등히 초월합니다. 몸을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는 생물체의 표본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효율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오른쪽이’의 모습 중 하나가 단초를 제공합니다.

 

피곤하면 그냥 자는 것.

 

인간과 다른 점입니다. 특히 잠자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충분한 수면 시간의 확보. 사실 모든 생명체가 이것을 아는 듯합니다. 몸을 가장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은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갖는 것! 그런데 모든 생명체 중 인간만이 이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몸의 효율성을 떨어뜨립니다. 전원을 끌 때는 확실히 꺼야하는데, 자는 동안에도 ‘활성화 모드’를 유지하는 인간은 생존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기생생물들과 붙어봐야 백전백패일 수밖에요.


 


내 몸을 생기 있게 유지해주는 것은 ‘잠’이었음에도, 돈 버는 일이나 유흥에 밀려 생존 본능을 억눌러왔습니다. 뭔가에 꽂혀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왔다는 것인데, 그만큼 생존 경쟁력 떨어뜨리며 달려온 인생이라는 거지요. 언제부턴가 어제와 내일의 일을 염려하느라 몸을 비활성화시키는 법을 까먹었습니다.

 

‘오른쪽이’는 이런 인간과 공존공생하며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하나 더 꼬집습니다. 눈물. 인간이 지닌 습성 중 ‘눈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그것이 전투력을 약화시켜 생존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분석입니다. 슬픔과 절망의 감정이 요동쳐 안구에 액체가 생산되는 동안, 나는 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될 테니까요. 이제야, 세월호 사건과 같은 큰 비극 앞에서도 ‘경제’를 위하여 눈물을 그만 멈추라고 외치는 자들이 이해가 됩니다. 그들에겐 경제만이 생존의 이유라서 그렇습니다. 물질에 빌붙어 살아온 기생생물들이라 그렇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눈물과 전투력을 맞바꾼 자들입니다.

 

생물로서의 내 몸을 가장 고효율로 유지하기 위해 숙면을 취하는 것은 ‘오른쪽이’에게 배워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나 혼자 살자고 눈물까지 억누르고 싶진 않습니다. 무한생존경쟁시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오른쪽이’의 눈물무용론을 지지해야 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과 괴물을 가르는 기준이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눈물 한 방울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참 괴물처럼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도, 슬픈 일에 제대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으니까요. 그것이 나의 전투력을 떨어뜨린다 굳게 세뇌당한 탓이겠지요. 얼마 전 신혼집을 청소하기 위해 가족들을 데려 갔을 때였습니다. 일곱 살 조카 태이도 함께였는데요. 처음엔 이것저것 청소를 도우며 흥미를 보이던 태이는, 급기야 지루해졌는지 이사람 저사람 촐싹거리며 방해하고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는 이유를 물으니, 배가 고파서랍니다. 어른들은 청소에 집중하느라 저녁 끼니때가 훌쩍 지나간 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태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끼니때를 놓치는 사이, 그러니까 무언가에 홀려 기본을 놓치는 사이에, 우리의 생존 유지 능력이 조금씩 상실되어 간다는 것을요. 
태이는 펑펑 울었고, 나의 기본 없음이 온 동네에 울려 퍼졌습니다. 동시에 그 눈물이 나의 공감 기관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범진 /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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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

 

'아는 놈'들이 배신할 때

 


 

앞으로 제가 시작할 이야기는 ‘덤벙덤벙한 야그’입니다. 이곳 ‘꽃자리’에 분양을 해주신 한종호 대표님이 달아준 이름입니다. 처음엔 분양받은 곳 명패(꼭지명)가 좀 유치했는데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뭐, 임대인이 ‘갑’이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임차인을 꿰뚫어 본 선구안에 놀랐습니다.(그는 일찍이 전병욱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지 않았습니까!/관련기사 클릭) 

그 예리함이 저의 ‘기본 없음’, 즉 기본을 생략해온 인생을 단박에 알아챈 것이죠. 하여, 앞으로 이곳에서 꺼낼 이야기는 그간 저의 덤벙덤벙한 이야기입니다. (‘덤벙덤벙’에 두 가지 뜻이 있더군요. 우리가 흔히 아는 ‘들뜬 행동으로 아무 일에나 자꾸 함부로 서툴러 뛰어드는 모양’과 더불어 ‘크고 무거운 물건이 잇따라 물에 떨어져 잠기는 소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본 없는 한 인생의 덤벙덤벙한 이야기가, 한 번쯤은, 읽는 이들의 마음에 크고 무거운 돌처럼 묵직하게 가 닿기를 희망하면서 저의 덤벙덤벙함을 용기 내 폭로합니다. 



“수학이 너무 싫어!”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이 너무 싫었습니다. ‘공식’만 알면 되는 거지, 응용, 심화 문제는 왜 수십 수백씩 풀어야 하는 거죠? ‘實戰’(실전)문제는 또 뭔가요. 아이들 전쟁터에 내보내려고 실탄 장전하는 문제입니까? 공식만 알면 아는 거다! 라는 생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수학 점수는 항상 달력 안의 숫자를 넘지 못했습니다. 결국 중3 때는 ‘2점’을 맞았습니다. 거의 모든 문항이 3점, 4점짜리였고, 2점짜리 문제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 하나 맞고 전부 틀렸습니다. 분명 공식을 알고 있는데 왜 2점을 맞았을까요. 


그걸 20년 지난 최근에야 깨닫고 있습니다. 영화채널 OCN에서 <인터스텔라> 놀란 감독의 전 작품 <인셉션> 재방송을 봤을 때였습니다. 이미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여서 채널을 돌리려 했을 때! 영화의 장면 장면이 너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심지어는 결론도 생각나지 않아서, 한참을 조마조마하게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영화 한 번 봤다고, 그 영화를 ‘아는 게’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우석훈 박사는 영화 한 편을 40번 넘게 본다더군요. 그래야 겨우겨우 ‘평론’을 할 수 있게 된다고요.) 수학 공식을 안다고, 수학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발정 난 강아지에게 배울까?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 ‘읽었다’고 확신하는 책 한 권 뽑아보십시오. 새롭습니다. 감화 감동 받았던 책을 뽑아 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줄 치어 읽은 부분마저, 새롭습니다. 물론 망각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 중 하나입니다. 잊히는 게 없으면 머리의 용량이 감당하지 못해 질병으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너무너무 새로운 이유는, 책에는 줄을 쳤으나 인생에는 줄을 치지 못해서입니다. 공식은 외웠으나 응용하고 써먹을지 모르니 ‘2점’에 머무를 수밖에요. 


무엇을, 누군가를 ‘안다’는 것,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건가 봅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알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 라고 했을 때 동사가 히브리어로 ‘야다’, 헬라어로 ‘기노스코’라고 한답니다. 아담과 하와의 ‘동침’을 표현할 때, 그러니까 때때로 성적인 관계를 표현할 때 쓰인다는 거지요. 비밀스러운 곳, 질퍽질퍽한 저 밑바닥까지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출처: J.N. Stuart/Creative Commons)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배신(수학 2점)은 결국, 저의 기본 없음(알지 못함)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덤벙덤벙하게 살아왔습니다. 인생에 한번쯤은 발정 난 강아지처럼, 봉평장 허생원의 노새처럼 붉으락푸르락 ‘알려고’ 달려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정면 승부’는 피해온 소심한 인생이어서 그렇습니다. 


덤벙덤벙했던 삶을 반성하는 하나의 렌즈로 ‘앎’을 계속 활용할 것이기에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를 끌어왔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외계 생명체’에 빗대어 저의 ‘기본 없는’ 사연을 이어가겠습니다. 일본만화 <기생수>에 등장하는 생명체 ‘오른쪽이’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의 기본 없는 덤벙덤벙한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사족입니다(안 읽으셔도 됩니다). 지난 여름, 숫자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면 아니 되는 통계학 전공자를 만났습니다. 숫자 하나하나 신중하게 살피듯, 인생 역시 생략한 과정 없이 뚜벅뚜벅 정직한 걸음을 걸어온 사람이더군요. 덤벙덤벙 살아온 저와는 상반되는 사람이라서, 우유부단한 저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라서,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를 ‘알고’ 싶었습니다. 2월 7일 결혼합니다. 안다는 것은 이렇듯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거군요!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앎의 두근거림을.


이범진/ 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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