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0)



찌질한 '을'들의 전투, 베데스다 리그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부자로 태어났으면 내 성격은 지금보다는 더 좋았을 것이다.’

더 잘생겼으면 대인관계도 더 넓었을 것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성격이 더 좋다는 임상 글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 않습니까? .. 글까지 찾아 읽어봐야 알까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지난 글에 이어 을의 어쩔 수 없는 찌질함’ ‘을의 횡포에 관한 고민을 나누겠습니다. '악당들의 사랑이 부럽다'에서 정치인, 재벌 등의 권력자들의 사랑에 비하면 저의 우정은 아주 보잘것없고 그 은 매우 깨지기 쉽다고 털어놓았는데요. 최근 출간된 김기석 목사님의 요한복음 묵상집 말씀의 빛 속을 거닐다를 읽으며, 꼭 베데스다 연못 같았습니다. 제가 머무는 곳곳이요.

 


사람들은 절박하다. 남의 절박함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에 있다. 행여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까 무서워 자리를 뜰 수도 없다. 곁에 있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들의 아픈 사정에 공감할 여유는 물론 없다. 그들은 잠재적인 경쟁자들이기 때문이다. 경직된 몸과 핏발 선 눈, 언제 욕설과 폭력이 그들을 휘저어 놓을지 모르는 현실이다.

 

 

연못이 스르르 움직일 때 재빨리 들어가는 최초의 1인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서로를 감시합니다. 초조하지요. 왜 베데스다 연못까지 내몰렸는지, 사회구조와 지도자들을 향한 분노의 외침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얼마못가 곧 이곳 베데스다 리그에 집중해야 함을 동물적 감각으로 느꼈을 겁니다. 벼랑 끝에 몰린 초식동물은 이렇게 전투 모드로 변해갑니다.

 

돌이켜 보면, 제 마음을 뒤흔드는 건 박근혜’(정치인)도 아니고, ‘이건희’(재벌)도 아니고, 이 둘의 야합 때문에 베데스다로 몰리는 사회구조도 아닙니다. 잔잔하던 연못에 돌을 던지는 건, 주변 사람들입니다. 철수가 더 좋은 차를 샀다더라, 영희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더라, 영수는 직장에서 인정받아 승진했다더라, 민호의 논문이 방송을 탔다더라 등. 함께 베데스다 연못 주변을 배회하던 친구들이 상위 리그로 승격할까봐 노심초사 하는 겁니다. (저만의 찌질함인가요? 왜 이러세요. 함께 노총각 노처녀이던 친구가 먼저 결혼하면 며칠 우울하잖아요.) 결국, 이런 찌질함이 아무도 베데스다를 탈출하지 못하게 막는 건 아닐까 하는 겁니다.



By deegolden


 

어느 알바생의 이야기를 더 들여다봅시다. 성윤석 씨는 <우리 시대의 악한 ’>[각주:1]이라는 글에서 우리의 이런 찌질함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고발합니다. 1년 동안 무단결근 한 번 없이 휴일도 반납하며 일한 성 씨는 어느 순간부터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말없이 도망갈 일이 없는 책임감 있고 대견한 직원이었기 때문에, 사장은 그에게 청소를 전담시키고 그만둘 것 같은 직원에게 주는 특별수당도 주지 않았습니다. 수고했다는 문자 한 통도 없었지요.

 


중소기업만도 못한 동네 소상인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머리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찌질함은 당해보지 않고선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성 씨는 사장님께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가산수당들을 더해 400만원 가량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돈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는 아니었습니다. ‘미안하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등의 한마디를 원했던 거지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끼야, 넌 돈 준 만큼의 일도 못 하는 놈이야!”

 

다다다다 이어지는 폭언.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사장 부인이 전화를 걸어와 말합니다. “아무개는 하루 6시간 내지 7시간 일을 했는데 일당으로 3만원을 받아가도 불평하지 않는다.” 성씨는 7년 동안 최저연금보다 못한 금액(초반에는 1~2만원)을 받고 일한 그 인간미 넘치는 아무개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합니다.

 

형이 실수 몇 번 했다고 자르고, 투잡으로 술집 서빙한다고 잘랐던 사람이 사장이에요. 그런 고용주가 형한테는 인간적이었어요? 인간적이어서 그렇게 두세 번 자르고 재고용해줄 때마다 퇴직금은 정산해서 줬어요? 한 푼이라도 받은 적 있어요? 7년 동안 따랐으면 고맙다고 가게는 못 내줘도 관리직은 시켜줘요. 근데 최저시급도 못 받는다면서요. 도대체 형에게 인간적인 기준이 뭡니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저 되돌아오는 말이라곤 같이 일하자는 의미없는 반복뿐이었다.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21세기다. 하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사람의 정신은 충분히 노예로 길들일 수 있었다. 무슨 대단한 권력 따윈 필요 없었다. 흔히들 이니 자영업자의 눈물이니 하는 일개 요식업 사장도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

 

이어 성 씨가 발견한 사실은 상시 근로자 5인 이하의 영업장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피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해고 등의 제한’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부당해고 구제의 적용이 없다’ ‘휴업수당의 적용이 없다’ ‘근로시간 제한의 적용이 없다’ ‘연장. 야간 및 휴일 근로에 대한 임금 할증 적용이 없다’ ‘연차 유급휴가 적용이 없다등입니다. (사실 5인 이하 영업장에서 악용할까봐 이곳에 올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답니다)

 

영세 사업자 보호라는 명분이지만, 이런 영세 사업자의 피고용인의 보호 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융통성에 기대야 할까요? 생존의 기로에 놓인 베데스다 리그에서 융통성은 오히려 악용됩니다. 성씨를 고용한 저 사장님처럼요. 밑바닥 일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가맹비도 내야하고, 큰돈 못 벌며 10시간 이상 가게에 나와 있어야 하는 사장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사업장 월세, 가계대출 이자도 갚아야겠지요. 가난이 세습되지 않도록 자식들 대학등록금이나 유학비도 마련해야지요. 생존 본능일까요? 나와 나의 가족을 생존시키기 위해 알바들의 안녕을 착취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벼랑 끝에 몰린 초식동물의 어쩔 수 없는 전투였을까요?



찌질한 '을'들의 전투. 베데스다 리그. 체스판 밖으로 나가야 한다. By ManicMorFF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찌질한 을들의 연대는 이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연대는 너무 어렵습니다.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초인이 나타나 원리 원칙대로 교통정리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물며 독재라는 형태를 띠더라도 말입니다. 허나 민주주의를 이렇게 쉽게 포기해선 안 되겠지요.(그만큼 답답하다는 겁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불안감에 시달리지만, 너무 없어도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우리가 목도하는 이 처참한 양극화는 불안감 vs. 불안감의 전투인 셈입니다. 위기감은 주관적으로 찾아온다고 하니 가진 자들의 불안도 인정은 해줘야겠지만서도, '객관'에 가까운 불안감은 을들의 그것 아닌가요? 가진 것 함께 나눠 쓰면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한 판 격렬하게 붙어 설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참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한 팀을 꾸려 밖으로 나가야 할 때에, 베데스다 리그를 만들어 서로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몇 명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가십시오, 저도 곧 대열에 합류하겠습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1. 1) 알바생 사연은, 격월간 『말과 활』(제7호, 2015년 2-3월)에 실린 글이다. 글쓴이 성윤석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 악한 을들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갑이 되고자 하는 을들의 본능을 꼬집어내고,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원칙'을 준수하는 사회 풍토를 확산해야 함을 역설한다. 연대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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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 사람 이야기'(5)

설산을 그리워하는 까닭

 

그 동안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대한大寒이 지났는데도 겨울답지 않게 날이 포근합니다. 몸을 옹송그리지 않아도 되니 좋기는 하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겨울을 빼앗긴 것 같은 이상한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나날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안나푸르나를 떠올리는 것은 후텁지근한 일상에 지쳤기 때문일 겁니다. 눈이 내리면 산에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흰 눈에 덮인 산정은 시원의 신비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계곡에서 맞이하는 찬 바람은 제 느른한 일상을 내리치는 죽비입니다. 추위를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겨울 산을 참 좋아합니다. 잎을 떨 군 채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나무의 허허로움과 그 차가운 바위에 마음이 끌리기 때문일 겁니다. 아내와 겨울 산을 헤맬 때마다 떠오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원수 선생님이 가사를 쓴 <나무야 나무야>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다른 기억력은 부실하면서도 노래 가사만큼은 신묘할 만큼 잘 외우는 아내에게 가사를 자꾸 틀리게 부른다고 지청구를 듣곤 했습니다. 저는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로 불렀고,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께 듣고로 불렀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대목을 늘 틀릴 수 있느냐는 책망에 그래도 일관성은 있지 않냐며 부르대다가 눈 흘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발목 수술을 받은 후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겨울 산행은 이제 그림의 떡이 되었습니다. 아이젠 없이도 마치 제집 안마당을 걷듯 편안하게 산행하던 시절은 영겁의 저편처럼 아득하게만 여겨집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마음 둘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요구받는 일이 많아질수록 일에 쏟는 열정과 정성은 줄어들기만 합니다. 이러다가 구도의 길에서 일탈하여 피상성 속에 갇힌 수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정신이 아뜩해지기도 합니다. 며칠 전 프란체스코 교정의 필리핀 방문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딜 가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더군요. 세상 어디서나 참 사람을 그리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 겁니다. 교종은 마닐라에 있는 가톨릭 대학에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12살 소녀 글리젤레 팔로마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고 하더군요.

가정이 해체되어 길거리에서 살다가 얼마 전에 교회가 마련한 시설에서 살고 있는 소녀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교종에게 물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마약과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왜 신은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지요?” 프란체스코는 한동안 말을 잇질 못했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신산스러운 삶의 경험이 없었다면, 자신의 몸에 새겨진 모멸감의 기억이 없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교종은 그 아픔을 알아차렸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소녀가 고대하고 있는 답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답 없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마음, 함께 슬퍼할 줄 아는 마음 말입니다. 이 마음이 없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쏟지는 않았지만 그렁그렁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던 프란체스코의 눈길이야말로 사람들의 시린 마음을 감싸는 외투였을 겁니다.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고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다지요? 이 세상의 굳어짐을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사명이 아닐까요? 문제는 종교가 가르고 나누는 일을 본령처럼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예수의 사역을 빗금 철폐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어떤 사회든지 빗금을 만드는 일을 다반사로 여기는 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가 살던 사회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이방인’, ‘남자/여자’, ‘거룩/속됨’, ‘의인/죄인’, ‘부자/빈자’, ‘/’, ‘/등이 구분되었습니다. 빗금의 이편과 저편에 따라 우리그들이 갈라지고 그러한 구별은 타자에 대한 배제로 이어집니다. 예수는 관습이 만들어놓은 그러한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백안시하며 살던 사람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도록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도래하는 것이겠지요.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사람들을 어떤 규정성 속에 가두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만나면 참 불편합니다. 다가가 말을 건네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함부로 조롱하고 멸시하고 타매하는 것은 좀 문제 아닌가요? 나의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만용이 빚어낼 세상은 끔찍하기만 합니다. 저는 흑과 백으로 갈리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회색빛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문제는 빗금을 철폐해야 할 종교가 빗금을 생산하는 공장 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개신교회가 보이는 배타성은 확고한 믿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내적 부실함을 가리려는 가련한 몸부림이 아닌가요? 자신들의 비릿한 욕망을 종교의 망토로 가리려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희곡 <도적떼>의 등장 인물인 카를은 기독교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눈멀 수 있단 말인가? 형제의 흠을 찾아내는 데는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을 가진 자가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듯 완전히 눈멀 수 있단 말이냐? 저자들은 구름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우라고 호통을 치면서, 자신들은 불꽃을 휘두르는 몰록처럼 사람들을 하느님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하면서, 팔순의 눈먼 노인은 문밖으로 내쫒는 족속들이다. 탐욕 부리지 말라고 아우성치면서, 금붙이에 눈이 멀어 페루인들을 말살시키고 이교도들에게 짐승처럼 수레를 끌게 한다(프리드리히 폰 실러, <도적떼>, 열린책들, 김인순 옮김, p.119).

카를의 말은 장군죽비처럼 우리 영혼을 후려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구절을 노엽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성찰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제가 눈 덮인 설산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곳에 올라 오욕으로 얼룩진 말들을 버리고 청정한 침묵을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도스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된비알을 허위단심으로 오르는 동안 숨이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뭘 하든 철저하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반거충이로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면서 제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 쌓인 응달에 서 있는 나무가 새삼 위대해 보이는 나날입니다. 내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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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 사람 이야기(4) 

오르페우스의 노래

 

소한 추위가 지나더니 날이 제법 푸근합니다. 건물 사이로 히뜩히뜩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산이 보입니다. 마치 시원의 그리움처럼 내 속에서 뭔가가 꿈틀합니다.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고향 같습니다. 겨울, 따뜻한 실내에 오래 머물러 몸과 마음이 느른할 때면 눈 덮인 평원을 헤매던 닥터 지바고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바리키노에 있던 얼음집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라라와 머물던 그 집에서 유리 지바고는 시를 썼지요. 창 밖에는 늑대 무리가 우우 울고, 유리창에는 성에가 낀 그 집에서 그는 촛불을 밝혀놓고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이며 라라에 대한 사랑 노래를 지었습니다. 젊은 날 그 장면 하나가 제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런 차가운 고독과 열정을 버무리는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일까요?

1970년대 후반에 제가 다니던 신학교의 학장이셨던 윤성범 박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모님은 가족들과 상의한 후 교수님의 책을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하셨고, 당시 문예 부장이던 저는 그 책을 학교로 옮겨오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홍제동인가에 있던 그 이층집은 참 아담하고 소박했습니다. 한 겨울이어서였을까요? 선생님의 이층 서재는 오싹할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한 뛰어난 신학자의 정신이 빚어진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다소 감동적이었지만 시린 손을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래층에서 차를 한 잔 끓여가지고 올라오신 사모님께서 춥죠?” 하고 물으셨을 때 철없는 저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모님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불기 없는 서재에서 공부하셨어요.” , 그건 충격이었습니다. 가슴은 따뜻하게 하되 머리는 차갑게 하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을까요? 교수님은 선비셨던 것입니다. 자그마한 몸집에 베레모를 눌러쓰고 다니시던 선생님은 가끔 창고 같은 가건물에 있던 탁구장에 들러 학생들과 탁구를 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식 없고 허물없던 분인데,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렇게도 엄정하셨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결곡한 태도로 살아가던 그런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떠나시고 안 계셔서 세상은 더욱 빈곤해진 것 같습니다.

가끔 겨울에 제 사무실을 찾아오는 이들은 조금 당황스러워 합니다. 실내 기온이 좀 낮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에서도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채 일을 하니 좀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홀로 지내는 공간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게 죄스럽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앞에서 말한 그 두 에피소드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바고나 돌아가신 선생님의 그 냉열(冷熱)한 태도를 내면화하지는 못했지만 흉내라도 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엄정함과 서늘함으로부터 점점 멀어진 채 순치된 동물처럼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뜩해집니다.

조금 지친 듯한 느낌입니다.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우리를 삿된 욕망의 벌판으로 몰아댑니다. 자유는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욕망의 지배를 허락하는 순간부터 우리 지성과 감성과 의지는 썩은 겨릅대처럼 허물어지고 맙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사막으로 들어갔던 초기 교부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로마에 살던 귀족들의 타락한 실상을 보고는 수비아코의 동굴 속에 들어가 여러 해 기도에 정진했던 베네딕도의 마음이 어렴풋이 헤아려지기도 합니다. 7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활동했던 고백자 막시무스의 말도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욕망이 강해지면, 지성은 잠자는 동안에도 정욕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들을 상상합니다. 도발하는 힘이 강해지면, 지성은 두려움을 초래하는 것들을 상상합니다. 더러운 마귀들은 우리의 태만함 안에서 힘을 얻어 정념들을 자극하고 강화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천사들은 우리로 하여금 덕을 행하게 함으로써 정념들을 연약하게 만듭니다”(필로칼리아·2, 116).

영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정념에 물든 생각들을 거부하기만 하는 사람이 있고, 정념들 자체를 완전히 잘라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시편 낭송이나 기도, 정신을 하나님께로 들어 올림, 또는 비슷한 방법으로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물리칩니다. 정념들은 그것들이 발생한 근원이 되는 사물들로부터 적절히 이탈함을 통해서 근절됩니다”(필로칼리아·2, 168).

막시무스는 우리의 정념들을 자극하고 강화하는 것을 일러 더러운 마귀들이라 하는군요. 소비 사회의 볼모가 되어 살고 있는 이들은 이 말을 매우 불쾌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사실 욕망의 천국은 얼마나 휘황하고 자극적이고 아름답습니까? 저는 요즘 녹화를 위해 방송국에 오갈 때마다 현대 백화점을 통과하곤 합니다. 즐비하게 진열된 물건들 사이를 걷는 동안 제 시선을 잡아채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걷는 이들의 심정이 저와 같았을 겁니다. 소비의 낙원은 참 매혹적입니다. 돈만 넉넉하다면 사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물론 그것이 꼭 필요해서는 아닙니다. 상품은 존재 그 자체로 우리 속에 결핍감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돈을 필요로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했던 마녀 세이렌이 떠오릅니다.

세이렌은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새 모양을 한 바다 요정입니다. 스킬라의 바위 섬들 사이에 있는 어느 벼랑 위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 노랫소리에 홀린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세이렌의 유혹에 저항하는 방식은 둘입니다. 세이렌의 노래를 꼭 듣고 싶었던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부하 선원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합니다. 자기를 돛에 묶은 후 협곡을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아무리 애원하더라도 절대로 풀어주지 말라는 것과 뱃머리를 섬 쪽으로 돌리지 말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의 귀에 밀랍을 채워 넣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짜릿하지만 오금이 저린 방식입니다.

또 다른 예는 아르고호를 타고 금양모피를 구하러 모험에 나섰던 이아손의 경우입니다. 그는 키론의 충고대로 자기 배에 오르페우스를 태웁니다. 세이렌의 협곡을 지날 무렵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꺼내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세이렌의 노래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유혹의 노래를 이길 힘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려면 내면을 깨끗이 비워야 합니다. 비운 자리에 울림이 깃들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유리 지바고가 쓴 시는 누군가의 가슴에 해바라기를 피웠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누구의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날까요? 이런 생각이 서리병아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저를 일으켜 찬바람 앞에 세웁니다. 그곳에도 찬바람이 많이 불지요? 그 바람 앞에 설 때마다 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지르된 처지이긴 하지만 거짓되지는 말아야 하니 말입니다. 눈비음에 지친 삶에 늘 진실의 전망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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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 사람 이야기(3)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참을 찾기 위해 늘 고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슨해졌던 제 마음을 바루곤 합니다. 평안함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자꾸 도스르지 않으면 수도자들의 아케디아’(懶怠)에 빠지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조금 나이가 든 탓일까요? 요즘처럼 추워 몸을 웅크리고 지낼 때면 어린 시절 쩡쩡 소리를 내며 갈라지던 얼음의 울음소리가 떠오릅니다. 그 소리의 부추김으로 생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 시절에 당도하기도 합니다.

 

채워놓은 논물이 얼면 그곳은 아이들의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얼음판 위에서 팽이도 돌리고, 앉은뱅이 썰매도 지치고, 조금 커서는 외발 썰매로 멋을 부리곤 하던 벗들이 떠오릅니다. 얇은 얼음이 꺼져 빠지기도 했는데, 젖은 양말을 말린답시고 논두렁에 불을 놓았다가 나이론 양말을 호로록 태우기도 다반사였습니다. 솔가지를 꺾어들고 산이나 마을로 향하는 불길을 두드려 끄기도 했습니다. 동네 형들은 속을 파낸 메주콩 속에 청산가리를 채워넣은 후 그것을 눈밭 위에 던져두기도 했습니다. 꿩을 잡기 위해서였지요. 오랜 기다림 끝에 꿩이 그 콩을 먹은 게 확인되면 꿩이 날아갔음직한 방향을 향해 죽어라고 뛰어가던 광경이 지금도 선합니다.

 

참 대책 없는 사냥법이었습니다. 긴긴 겨울, 아버지가 건넌방에서 왕골자리나 봄에 쓸 가마니를 짜시면 심심한 아이들은 지푸라기를 골라 드리며 일손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가끔 날을 잡아 꽁꽁 얼어붙은 마을 둠벙의 얼음을 깨고 물을 퍼낸 후 뻘흙 속에서 쉬고 있던 물방개며 미꾸라지 붕어 등속을 잡아 동네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저녁이면 식구들이 뜨근뜨근한 아랫목에 둘러 앉아 이불 속에 발을 뻗고는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라도 늘 새롭게 듣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화롯불에 밤을 구어주시기도 하셨고, 삼각형 인두로 화롯불을 정돈하시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풍경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요? 입성도 나아졌고 먹을 것도 지천이지만 마음은 흥뚱항뚱 떠 있습니다. 흔연한 생각은 들지 않고 늘 초조합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차가운 눈밭 위를 뒹굴지 않고, 시골 어른들도 둠벙을 뒤지지 않습니다. 저마다 바쁜 탓에 서로의 기색을 살필 여유조차 없습니다. 우리 삶은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권태로 이어집니다. 그 권태로움을 잊기 위해 자극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겠다던 젊은 시절의 호기로움은 어디가고 하루하루 그저 별일 없이지나가기를 바라는 남루한 영혼만 남았습니다.

 

객쩍은 소리를 한다고 꾸중하실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이런 소리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 때문일 겁니다. 우리의 경험세계가 마을을 넘기 어렵던 시절의 삶과 지구 전체가 한 마을처럼 인식되고 있는 오늘의 삶이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 경험세계의 확장이 인식과 공감의 확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의구심을 빚는 현실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독일 극우파들의 이슬람 배척시위에 반대하는 맞불시위가 여러 도시에서 펼쳐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포퓰리즘 단체인 페기다’(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란 뜻)에 맞서 톨레랑스’(관용)를 외치는 시위였다고 합니다.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네요. 애국을 명분으로 타자에 대한 배척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국가는 그런 이들을 부추겨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이들과 싸우도록 만들기도 하지요. 누군가가 애국이라는 말을 선취하는 순간 그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비국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좌파혹은 빨갱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장식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타인에게 제멋대로 색깔을 칠하고 그 색을 빌미로 그들을 배척하는 것처럼 비겁한 일이 또 있을까요?

 

유럽의 극우집단들이 외국인, 집시, 무슬림 포비아를 만들어내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장기 불황으로 경제가 어렵고 직업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습니다. 희생양은 언제나 그러하듯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됩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신년사에서 국민들에게 마음속에 편견과 냉담, 증오를 지닌 자들이 주도하는 시위에 참여하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지요?(한겨레신문, 201517일자 참고)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번지고 있는 혐한류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점차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데 '타자'와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는 일이야말로 퇴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척함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태도가 일반화될 때 세상은 전쟁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샤를리 에브도 (출처: sma-lux (http://www.flickr.com/photos/sma_lux))

 

 

17일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테러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참 무거워졌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몇 차례 실었던 샤를리 에브도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아 열 두 명 이상이 희생됐다 합니다. 파리의 도심에서 벌어진 이 사태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까뮈는 일찍이 희곡 <정의의 사람들>을 통해 정의를 세우기 위해 무고한 이들까지도 희생시키는 테러의 정당성에 대해 물은 바가 있습니다. 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합니다. 오랜 세월 인류가 투쟁을 통해 확보해온 언론 자유가 어떤 형태로든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 사회는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 때문에 토대가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일을 계기로 해서 사람들이 무슬림들을 극단적인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정서가 확산되고, 그 때문에 증오를 선동하는 극우주의자들이 반사이익을 얻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톨레랑스가 철회되고 타자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될 때 좋아할 이들은 누구일까요?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일부 과격한 폭력분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근본주의적 종교는 폭력과 멀지 않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기와 다른 이들을 용납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십자군의 허무주의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십자군은 자기네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한테 손을 내밀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한테서 배우려는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의 공포와 원한을 다스릴 줄도 몰랐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죽이고 망가뜨리고 태우고 모독하고 부수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의 도덕성을 무너뜨렸다.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도된 증오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서양인이 계속해서 이슬람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경우 오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마음의 진보, 교양인, 이희재 옮김, 435-6)

 

샤를리 에브도는 시사풍자만화를 내는 출판사라 합니다. ‘풍자諷刺라는 말 속에 이미 찌르다, 나무라다라는 뜻이 담겨 있기는 합니다만, 풍자는 웃음을 무기로 하여 어떤 사람이나 계층이 담보하고 있는 권위에 저항함과 동시에 그들의 악덕과 어리석음을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일 겁니다.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극단주의자들의 경직성은 분명 문제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풍자를 누군가에 대한 조롱의 수단으로 삼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닌가요?

 

조롱은 모든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롱을 통해 관계가 좋아지는 예는 별로 없습니다. 남에 대한 멸시와 조롱이 일상이 될 때 평화 세상은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마태복음 5:22)이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풍자와 해학의 순기능을 모르지 않지만, 그 역기능 또한 심각합니다. 풍자가 조롱으로 귀착할 때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진보적인 사람이든 보수적인 사람이든 서로에 대한 비판은 상관없지만 조롱은 삼가야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불가역적이니 옛날을 그리워해보았자 소용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여 추억조차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추억이 때로는 오래된 미래를 여는 문이 될 수 도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이런저런 말로 마음을 어지럽혀 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한에서 대한으로 넘어가는 이즈음을 두고 농가월령가는 설중雪中의 산봉우리들은 해 저문 빛을 띈다고 노래합니다. 쓸쓸하고 적막하기도 하지만 어떤 따뜻함도 배어 있는 듯합니다.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고맙지요. 제게 그런 빛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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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 사람 이야기(2)

빛의 어루만짐

새해가 되더니 기온이 제법 차갑습니다. 찬바람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기침을 달고 사는지라 목도리로 목을 잔뜩 감싸지 않으면 그 바람을 반기지도 못하는 신세입니다. 눈길에 다리를 삐끗하여 원단 산행도 거른 채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잘 걷고 계신지요? 눈빛 맑으신 분이니 세상에 가득 찬 신비에 오늘도 놀라고 계시겠지요? 저는 아내가 오디오에 걸어놓은 냉정과 열정 사이음반을 들으며 피렌체나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서서 광장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우피치 회랑에 서 있던 동상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생각이 나네요. 정신적 거인들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자아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하면서 인간의 정신을 한없이 확장하고 심화하려고 고투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인간을 소비자로 전락시킴으로써 인간 정신을 왜소하게 만든 시대로 기록될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교우들과 함께 불렀던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감싸여>(디트리히 본회퍼 작시, 지그프리트 피츠 작곡)의 멜로디가 자꾸만 되뇌어집니다. 지난해에는 많이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애써 자기 마음을 다독이며 희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으려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마음이 느꺼워서 울컥 했습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그 어떤 일에도 희망 가득/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그대라 호명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춥고 쓸쓸한 인생의 계절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겠지요?

젊은 날에는 의지만 있으면 외로움쯤은 우격다짐으로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지로는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 쓸쓸함이 있음을 실감하며 지냅니다. 신학자들은 인간이 무로부터 창조되었기에 무에의 끌림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허구렁에 깊이 빠져들기도 합니다. 스스로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호명해 줄 때 그 허구렁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쳐 물러나더군요. 인간은 서로 함께 존재가 맞습니다. ‘없이는 도 없다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로마서를 읽을 때 신학적인 문제에 집중해서 보았다면 이제는 16장에 나오는 바울의 인사말에 더욱 마음이 갑니다. 바울은 각지에서 만난 인연들을 떠올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기억이라는 우주에 점점이 박혀 있는 별자리들인 셈입니다. 그 별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바울이라 해도 길을 잃거나 낙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있음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도 있지만, 대개는 누군가와 인연이 맺어졌던 장소일 때가 많습니다.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인연도 그렇지만 스치듯 만난 인연도 우리 내면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오래 전 영국의 브리스톨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고적하고 쓸쓸한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enjoy your view!’라고 외치고 가더군요. 그 순간 그 풍경은 그의 말과 더불어 제 기억 속에 확고히 새겨졌습니다. 그곳의 거리와 집들까지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지금이란 지나간 것의 가장 내밀한 이미지라고 말한 것이 발터 벤야민이지요? 우리의 경험 세계는 순간적인 것, 우연적인 것, 소멸하는 것들을 통해 구성됩니다. 그 순간을 소홀히 할 때 인간의 시간은 미끄러져 사라지고 맙니다. 시인 혹은 작가들은 보통 사람들의 의식에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 순간들을 또렷이 자각하고 그것을 언어로 혹은 형상으로 구현해내는 사람들이겠지요? 좋은 작품은 우리 삶이 초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줍니다. 일상의 분주한 흐름 속에서 잃어버렸던 경이의 감정 앞에 우리를 세우는 것이지요. 고통과 슬픔, 권태와 허무를 동반하는 일상 속에서 간혹 만나는 성스러운 순간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빛나게 해줍니다.

 

 

몇 해 전 비가 오는 날 저는 짤츠부르크의 카푸친 수도회 장원을 홀로 걸은 적이 있습니다. 아래로는 짤자흐 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 언덕 위에는 구름 속에 드러난 성이 신비롭게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장원의 숲길을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또렷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여행자로서의 외로움이 아니라 생의 근원적 쓸쓸함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장원을 한 바퀴 돌아 수도원 교회에 이르렀을 때 다리쉼도 할 겸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작고 소박한 예배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그곳에서 아름답고 영롱한 음악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오르겔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주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온 마음을 담아 연주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바흐의 푸가였습니다. 연주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숨소리조차 죽인 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차분하게 번겨가는 오르겔 소리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위안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중세기의 가장 뛰어난 여성 신학자 중 하나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내 빛이 너를 만지니, 그 빛은 너의 깊숙한 존재에 가 닿는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그것이 빛의 어루만짐이었음을.

우리도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빛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의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만 우리 속의 빛이 어둡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객적은 말로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이 아닌지 저어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너그럽게 받아주시는 그 넉넉한 우정을 믿기에 이런 서신을 올립니다. 인간 세상에 사는 동안 어려움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누구보다 살갑게 대해주시고, 함께 비를 맞는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라 사람 임회는 적에게 쫓길 때 자기 관직의 상징인 옥()을 버리고 등에 어린 아이를 데려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처사를 궁금해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옥과 관직에 대한 나의 매듭은 이익의 매듭이었고, 아이와의 매듭은 도의 매듭이었다! 이익으로 맺어졌을 때는 재난이 오면 우정은 녹아 사라진다. 도로 맺어졌을 때는 재난에 의해서 우정이 완전해진다. 어진 사람의 우정은 물과 같이 담백하다. 소인의 우정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어진 사람의 담백함은 진정한 사랑을 가져오고 소인들의 달콤한 사귐은 미움으로 끝난다”(20, 山木, 5, 토마스 머튼, 장자의 길중에서).

우리의 우정은 도의 매듭인 거 맞지요? 그렇게 되도록 저도 애쓰겠습니다. 하루 하루 걷는 길이 그분의 중심을 향한 순례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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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 사람 이야기(1)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평안하신지요?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사위가 고요합니다.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보니 불이 밝혀진 집이 많지 않습니다. 혼곤한 잠에 빠져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왠지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착한 잠을 자고 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웃으시겠지만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은 김기택 시인의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라는 시를 읽은 후부터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니요? 늦장가를 간 시인은 선물처럼 자기 가정에 찾아온 아기를 보면서 신비가가 된 것일까요? 시인은 달게 자고 난 아기가 마치 하룻밤에 이 세상을 다 살아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남김없이 잠을 비운 아기가 아침 햇빛을 받아 환하게 깨어난다. 밤 사이 훌쩍 자란 풀잎 같이 이불을 차고 일어난다. 밤새도록 잠에 씻기어 맑은 얼굴, 웃음 말고는 다 잊어버린 얼굴이 한들거린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은 아기의 목구멍에서 굴러 나와 아침 공기를 낭랑하게 울린다.”

 

, ‘남김없이 잠을 비운 아기라는 구절이 마치 아득한 시원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 그런 잠을 누렸던가요? 자고 일어나도 늘 찌뿌드드한 것은 비워야 할 잠을 말끔히 비우지 못한 때문임을 알겠습니다. 비워야 할 것을 비우지 못하는 것은 묵은 때처럼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염려와 근심 때문일까요? 시간 속을 바장이는 동안 우리 속은 이미 까맣게 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하나 둘 아파트 창문에 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밝음과 어둠이 자리를 바꾸기 전, 이 잿빛 시간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성탄절이 지났습니다. 일 년 내내 죽음이 예기되는 땅에서 살아온 이들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저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직 애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이 땅 곳곳에 배어들고 있는데, 어떻게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나와 무관하다 하여 참담한 현실을 외면해 버리지 않는 이들의 존재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그루터기일 겁니다.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노래하던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우리는 비명소리를 듣습니다. 자기 안위를 위해 무고한 영아들을 학살한 헤롯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생활고를 비관한 한 가장이 세상을 버렸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부당 해고에 맞서기 위해 오체투지로 겨울 거리를 달구다가 방패 앞에서 멈춰선 이들도 있습니다. 굴뚝이나 전광판에 올라 함께 살고 싶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는 밀양이나 강정 사람들, 그리고 골프장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산하의 피울음도 헤롯의 시간이 빚어내는 살풍경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끔 세상에 희망이 있냐?’고 묻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 질문 속에 담긴 좌절과 무기력이 느껴져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루쉰은 길이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걸으면서 생긴다고 했지요? 옳은 말입니다. 희망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정글도를 들고 덩굴숲을 헤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마치 베어진 풀과 나무의 상처에서 피어나는 상큼한 향을 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길을 만드는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일까요? 얼음을 깨고 나가는 쇄빙선이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쩡쩡 갈라지는 얼음의 파열음이 들리는 듯 합니다. 희망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관념의 감옥에서 벗어나 실천의 벌판에 서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실천의 벌판이 꼭 투쟁의 자리일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갈라진 세상을 고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희망을 일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2이사야는 그의 백성들이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거리를 나눠 주고,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고,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을 때에 이 땅에 비쳐 올 빛에 대해 증언합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이사야 58:7) .

 

빛 혹은 희망이 어떻게 도래하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이사야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켜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하네요. 이 마음으로 살아야겠지요? 모색하고, 돌진하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티쿤 올람’(tikkun olam)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세상을 고친다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제시하는 삶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세상보다 내가 떠날 때의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지금의 유대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이 말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목표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곤고함은 사람들의 시선을 좁아지게 만듭니다. 자기 욕망 주위를 맴도는 동안 점점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먼 데를 바라볼 수 있는 여백만 있어도 눈앞의 일 때문에 시난고난 애끓이지는 않을 겁니다.

 

보들레르는 아름다운 암고양이 펠린의 눈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같은 시간을, 공간처럼 무한하고 엄숙한 시간을, 분으로도 초로도 나누어지지 않은시계 위에도 표시되지 않은 정지된 시간을, 그러나 한숨처럼 가볍고, 깜빡이는 일별처럼 재빠른 시간을.”

 

훼방꾼이 나타나서 너는 시간을 읽느냐?” 하고 물으면 그렇다, 나는 시간을 읽고 있다. 시간은 지금 영원이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합니다(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16 시계중에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고, 영원 속에서 시간을 볼 수 있다면, 분초 단위로 우리를 몰아대는 시간의 폭력에 맞설 수 있을 겁니다.

 

객적은 말이 많았습니다. 투덜거려도 웃음 띤 얼굴로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을 핑계삼아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 본 것입니다. 눈 내린 산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습니다. 후줄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찬 기운을 한껏 들이마시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외치든 메아리처럼 응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올 한 해 내내 하나의 중심을 향한 여정이 흥에 겨우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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