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2)

신앙은 국적 교체의 사건이다

 

대학 시절,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리 똑똑하지도 총명하지도 않았던 친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권유로 이 친구가 맑스의 자본론 세미나에 참여하였고, 근현대사 공부 모임에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부터 이 친구의 삶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제국의 음료라 하여 커피를 거부하고 민족의 차 율무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의 언어라 하여 영어를 거부하고 민족 음악과의 만남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 초점이 잡히고, 집회 현장에 단골 참석자가 되었습니다. 불과 세미나 몇 시간 참여한 것 밖에 없는데 존재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친구들을 맑스의 세례를 받은 자라 칭했습니다.

맑스의 세례는 분명코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자기만을 알던 존재가 맑스의 세례를 받은 이후부터는 말끝마다 민족과 역사를 언급했습니다. 자기 한 몸을 민족과 역사의 제단에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타자를 위한 헌신적인 삶을 추구하며 실천했습니다. 저는 그때 맑스의 세례를 받은 자의 놀라운 변화를 목도하며 예수 세례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출처: Praytino(http://www.flickr.com/photos/prayitnophotography)

 

세례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왔던 옛 삶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와 함께 거듭 태어날 것을 다짐하고 결단하며 증거하는 의식입니다. 공동체의 지체들 앞에서 공개적인 세례를 받음으로서 이제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 예수의 사람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이 의식의 진중함과 엄중함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세례 이후에 이전과는 다른 존재의 변화가 있는가를 묻게 되면 참으로 궁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예수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은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충실한 신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중무장된 이 시대의 주류 문화와 주류 가치에 동일하게 종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적 충성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외에 내 인생을 지배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상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내가 유일하게 존재를 다해 충성을 바칠 국가로 모시고, 예수만을 내 인생의 유일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국적 교체와 주인 교체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달리 내 인생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되고, 내 인생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이 땅에 선교사님들이 들어왔을 때 당시 조선 사회는 신분제 사회였고 가부장제 사회였습니다. 그때 자신이 양반이고 남성이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조선 사회가 추구하던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양반으로서의 특권, 가부장으로서의 특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조선의 가치와 문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순응하는 조선의 백성으로 충실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기독교 복음을 믿고 신앙하는 자가 되기로 결단하는 순간, 이전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며 향유할 수는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는 기독교 복음에서는 인간을 위계화하지 않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복음이 말하는 인간론의 핵심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입니다. 양반도 천민도, 남자도 여자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있음으로 인해 인간 모두가 존귀하고, 인간 상호간에는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수납하는 순간, 천민과 여인에 대해 그동안 취해 왔던 태도를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조선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에는 양반이기 때문에 집에 있는 노비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되었고,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함부로 하대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결단하는 순간부터는 집에 있는 노비와 여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한 자세를 지속하는 것이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단순히 일요일에 어디 가서 예배드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 인생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삶을 새롭게 전환시켜내는 힘인 것입니다.

양진일/가향 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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