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7) 


 

'전도사 총리' 약인가, 독인가?

 

다시 <기생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기생수' 관련 글 순서 [링크]

01. '아는 놈'들이 배신할 때 

02. 피곤이 쏟아질 때 눈물이 쏟아질 때 

03. 다이어트가 하고 싶을 때 

04. 솟구치는 성욕을 참을 수 없었다고? 

05. 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 

06. 잔인한 장면이 필요하다. 

07. 악당들의 사랑이 부럽다. 

 

TV로 방영된 <기생수>는 총 24회로 종영되었습니다. 원작인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대방출됩니다!)

 

주인공 신이치가 막판에 만난 끝판왕은 ‘고토’입니다. 일본어 숫자 5를 뜻하는 “ご”(고)의 그 고토인데요. 다섯 마리의 기생수를 합쳐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무적 ‘무결점 기생’ 괴물입니다. 똑똑하고, 빠르고, 힘도 셉니다. 주인공 신이치는 이런 고토에 비하면 너무 약합니다. 전투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오른손에 기생하고 있는 ‘오른쪽이’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난 전투에서 오른쪽이는 고토에게 먹혀버렸거든요. 오른쪽이를 잃은 외팔이 신이치고토에게 죽임당하기 직전 궁지에 몰려 집어든 것은 산속 깊은 곳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쇠파이프 하나. 날카롭고 강력한 칼로도 당해낼 수 없었던 고토를 그깟 쇠파이프로 상대할 수 있을까요?



‘거의 가능성 제로잖아...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확실한 제로야.’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쇠막대 한 방에 고토의 다스림 속에 일사불란하던 기생수들이 분열을 일으키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때를 틈타 고토의 몸속에 갇혔던 ‘오른쪽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탈출. 결론적으로 고토를 무찌르는 데 성공합니다. 운 좋게도 쇠파이프에 독이 묻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체내에 독이 들어온 것을 감지한 기생수들이 고토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이어지는 오른쪽이신이치의 대화

 

오른쪽이 : “네가 녀석에게 쑤셔 넣은 쇠막대는 여기서 주은 거야?”

신이치 : “응, 그런데 독이라니?”

오른쪽이 :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크릴 성분이 불에 타서 생긴 시안화수소가 포함되어 있던 건지도 몰라."

신이치 : "그건 독이야?"

오른쪽이 : "맹독."

신이치 : "그런 맹독을 이런 데 함부로 버리고 가다니!"

오른쪽이 : "하지만 그 덕분에 이겼잖아."

신이치 : "결국 인간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뜻이지."

 

그때! 고토의 부활이 시작됩니다. 자잘한 단위로 절단된 체세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거죠. 더 이상 인류가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씨를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이치는 묘한 동정심(?)을 느낍니다. 살려고 꿈틀 거리는 생명들을 죽이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뭔가 불쌍하네. (기생수는) 뭘 위해 태어난 걸까. 넘쳐나는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지구를 더럽힌 인간을 없애기 위해? 분명히 인간이 만들어낸 독이 생물에게 해가 되는 건 알고 있어. 이거야말로 그래. 그만큼 강했던 고토가 쇳조각에 묻어있던 독에 어이없이..’

 

“우리는 하나. 우리와 인간은 하나의 가족이다.”

 

그렇다.

 

‘생물 전체로 보면, 인간이 독이고 이 녀석들이 약인가? 생물 인간이 독이고. 누가 정하지? 인간과 그외의 생명의 가치를 누가 정하는 거지?’

 

그리곤 ‘오른쪽이’한테 말합니다.

 

“죽이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살려고 하는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아.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보물이잖아. 죽이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은.”


인간이 독이고, 이 녀석들이 약인 걸까...


과연 결론은? - to be continue...

 

요즘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누가 독이고, 누가 약일까요? 맹독을 만들어내며 지구를 더럽히는 인간이 ‘독’입니까, 그런 인류를 위협하는 것들이 ‘독’입니까? ‘(독처럼) 쓴 게 몸에 (약이 되고) 좋다’는 말이 있고, 혀에 단 것이 ‘단거’(DANGER:위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독과 약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황교안 씨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목동성일교회 전도사님입니다. 담임목사에 따르면, 고교 때부터 40년 동안 성가대 지휘자로, 13년간 청년부 설교자로 섬겼다 합니다. 교회주보에는 여전히 ‘황교안 전도사’가 찍힙니다. 그의 아내는 찬양음반을 낸 복음가수라 합니다.

 

병역비리, 돈(떡값) 비리 등 의혹종합선물세트로 불린 그는 청문회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들에게 “의혹을 입증하라”며 역대 총리후보에게선 볼 수 없었던 뻔뻔함까지 보였습니다. 그가 평생을 바친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독입니까? 약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안검사 황교안은 독입니까? 당장에 단 것만을 취하다가 단거(DANGER)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독과 약, 우리 또한, 저 역시, 명심해야 할 경계입니다.


P.S. 혹시 모를 일입니다. 쇠파이프의 '맹독'이 천하무적 고토를 끝장냈듯이, 박근혜 정권의 맹독성이 약이 되어 3대 독불장군 김정은의 붕괴를 가져올지. 어쨌든 참, 독한 놈들의 세상입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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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9)

 

악당들의 사랑이 부럽다

 

 

최근 이사한 집은 전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정도 더 들어가야 합니다. 가파른 길이라 마을버스가 꽤 힘겹게 오르내립니다. ‘달동네라 불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달동네슈퍼라는 이름의 슈퍼가 있습니다) 집 근처에 그 흔한 편의점 한곳 없어 처음엔 좀 불편했는데요. 작은 구멍가게가 두 곳이나 있고, 꽤 늦은 시간까지 어두운 골목을 밝혀줍니다. ‘아는 척을 해주며 인간적 관심을 보이는 주인할머니도 정이 가고요. (얽힌 이야기) 마을버스 운전하는 아저씨들 얼굴도 이젠 다 외울 정도.

 


이렇게 예쁜 동네는 아닙니다만, 느낌은 비슷합니다. ⓒ이범진



이런 곳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30년 가까이 살던 동네를 떠나와 새로 정착한 이 동네에 정을 붙이려는 중이었습니다.

"사람 좀 고만 태워요!”


출근길 마을버스에서 누군가 외쳤습니다
. 사람이 좀 많아 저도 좀 예민해진 상태였는데요. 그래도 뭐, 우겨넣으면 몇 명 더 탈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몇 명의 탄식이 겹치고, 아우성이 됩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어우, 밀지마세요!”

아침 출근길부터 기분이 나빠집니다. 애써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하며 화를 억눌러봅니다.

 

조금 늦은 퇴근길. 다행히 여유가 있는 마을버스. 갑자기 아주머니의 느닷없는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내 아들 딸 같아서 쳐다봤는데.. 이 싸가지 없는 것들아. 버스 안에서 그 지랄하고 있냐? 내 자식이었으면 너넨 벌써 얻어터졌다 ... 아유~”


술이 조금 취한 듯한 어느 아주머니가 젊은 커플에게 딴죽을 걸고 있었습니다
. 사실 스킨십을 엄청 심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요.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당황한 듯한 커플. 공교롭게도 아주머니와 같이 내린 커플. 급기야는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걸까요?

 

엄기호 작가(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단속사회)의 강연을 들은 이후라 마음은 더 복잡했습니다. 엄 작가는 강연에서 을 강조했습니다. 공동체의 다른 말이었는데요. 대한민국 사회의 무너진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선 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남고 이 사라진 우리네 가스러진 삶을 진단하며, ‘으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의 책 단속사회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으며 을 생각합니다. 정감 넘치는 사람들 모여 여기저기 아나바다운동의 거점이 있는 활발한 동네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필요이상으로 밀쳐내는 곳. ‘의 반전이 있는 곳. 어쩌면 그냥 가장 못사는 동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절망의 끝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들이 모인 자존감 낮은 곳. 곁이 있는 삶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걸까요?


악당들의 진정성


반면,곁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입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야당의 우윤근 원내대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의 재회를 한 것인데요. 우 원내대표는 정말 저도 마음이 아팠다. 도와드리지 못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보였고, 이를 이완구 국무총리가 토닥이며 자신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습니다. ㅅㅂ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 이완구 총리의 수많은 비리와 의혹을 파헤치려 했던 건 쇼였을까요? 어쨌든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비웃고 비아냥거렸지만, 사실 전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 느껴졌거든요.

 


어쨌든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비웃고 비아냥거렸지만, 사실 전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진.정.성이 느껴졌거든요.(경향신문, 2015.2.25)

 

 

흔히 우리는 저들의 우정과 연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들이 서로의 욕심을 주체 못하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실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뇌물을 주고, 가족의 대소사를 살뜰하게 챙기며 헌신적으로 자신의 곁을 챙깁니다. 다른 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를 위해 고결한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이들입니다.(비꼬는 거 아님)

 

전두환의 추징금을 걷는 과정에서 경매로 나온 일부 미술품들을 측근들이 사서 다시 돌려주었다는 일화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악당들의 이야기지만 분명 감동적입니다. 단순히 권력이 무서워서였을까요? 서로를 정말 사랑한 겁니다.

 

엄 작가도 자신의 목격담을 이야기합니다.

 

강남의 H고등학교 다니다가 공부 잘 못해서연세대 온 애들이 있습니다. 열댓 명씩 몰려다니면서 서로를 너무 사랑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필요를 못 느끼죠. 또한 자기네 동네를 너무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제 주변엔 하나같이 애정결핍증, 2, 관심병 환자들인데요. 상처는 왜 그리도 많고, 왜 다 가난뱅이들일까요? 4대보험 적용되는 곳에서 일하는 친구는 극히 드물고, 자존심인지 잔존심인지 모를 것을 지키느라 싸우고 삐치고. 그러다 술 한 잔 기울이며 쌓였던 감정을 친구 아이가하며 넘어가는 데, 우정이나 사랑 때문이 아니라 회피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도 찌질함을 감추기 위해 민주주의’ ‘인류 구원따위의 꽤 거창한 말로 연막을 칩니다. 제 친구들의 이야기이자, 제 이야기입니다.

 

오른쪽이의 조소 "흥, 자기희생이라니, 웃기고 있군."

기생수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쿠라모리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기생생물에게 고용되어 주인공 신이치를 미행하고 관찰하는데요. 말이 사립탐정이지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드러난 신이치의 정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며 비장함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그런 그를 신이치는 죽이지 않고 설득해보기로 합니다. 기생생물이 침투한 것,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인간에게 들켜도 기생생물에게 들켜도 안전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동요하던 쿠라모리 탐정. 이내 냉정한 표정을 되찾는데요.




 

쿠라모리 그래서 날더러 어쩌라고?”

신이치 우리에 대해 아무 말도 말아주세요. 이쪽 사정은 대강 알았을 테니. 더 이상 뒤를 밟거나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쿠라모리, 갑자기 표정을 비장하게 바꾸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네 얘기로는 아직 괴물들이 더 있다는 건데? 그놈들을 그냥 놔두라고? 만약 정말 인류를 위해서라면 네가 직접 나서야지. 설령 실험대상이 되는 한이 있어도!”

 

구원의 사도 나셨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는데요.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인류 전체를 생각해야지. 그게 인간 아냐?”

 

듣다 못한 오른쪽이가 그를 죽이려드는데요. 신이치가 말리는 통에 한 번 더 참습니다. 그리고 평소대로 논리를 이용해 쏟아내는 말.

 

"흥, 자기희생이라니, 웃기고 있군. 잘 들어! 네게 살 권리가 있듯이 우리 기생생물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 아무튼 우리는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신이치가 실험대상으로 나서는 건 내가 허락 못해! 때문에 네가 내 적이 되겠다면 가차 없이 죽이겠다.”

 

이어지는 오른쪽이의 감동 대사. 평소와 달리 감정에 호소합니다.

 

"이 녀석을 잘 봐. 아직 10대인 고등학생이다. 너에 비하면 한참 어린애지. 그런 어린애가 어머니를 잃고 시체의 산을 넘고, 온갖 참혹한 지경을 당하고서도 꿋꿋이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가엾지도 않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라. 너 같으면 견딜 수 있겠어?”

 

단지 생명 유지를 위해 전략적 공존을 하고 있던 신이치와 오른쪽이’. 이제는 운명 공동체(共同體)가 되어서일까요? ‘오른쪽이는 평소대로 논리적·과학적 접근을 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몸(?)을 이룬 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되는 과정도 기생수의 관전 포인트입니.

 

다시 우리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하나같이 육식동물에 쫓기다가 벼랑 끝에 몰린 초식동물의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노미. 〔곁〕에 누구를 두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릴 수도 있는 처지여서 일까요? '오른쪽이'의 조언처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초식동물들은 불안에 떨다가 이렇게 서로의 곁을 밀쳐내며 궤멸하게 될까요? 다음 글에서는, 갑의 횡포만큼이나 심각한 을의 횡포에 관한 절망을 나누겠습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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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7)


잔인한 장면이 필요하다


만화 《기생수》를 소개하고 끊임없이 인용하면서도 쉽사리 추천 못하는 이유가 ‘잔인함’때문인데요. 기생생물에 의해 사람이 잘려지고, 으깨어지고, 핏물 낭자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장면들, 눈이 절로 감기는 잔인한 순간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비현실적’ 장면들이 역사의 진실을 가장 실감나게 폭로한다는 점입니다. (만화나 시트콤의 ‘비현실적’인 과장 및 연발하는 우연은, 종종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나 ‘위대한 수령님’ 찬양하느라 동족상잔의 피 흥건한 역사는 가려집니다.

 

 

지난 글(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에 썼던 표현인데요. 더 이어가겠습니다. 평소 골육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는 서로가 서로를 죽인 잔인한 장면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흑백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힘들었겠구나’ 생각하고 넘어가는 정도였지요. 남침이니 북침이니, 이승만이 도망쳤다느니, 당시의 국제 정세가 어땠다느니 따위의 ‘큰 담론’에는 가끔이라도 관심을 기울였으나, 정작 그 잔인한 현장에 관해서는 깊이 다가갈 생각도 안한 거지요.

 

물론 관심이 없었던 저의 불찰이 큰 책임이겠으나, 정치인 및 지식인이 명분 싸움 및 진리(이념) 대결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인간 중심’의 해석은 놓친 게 아닌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백과사전에 ‘한국전쟁’ ‘6.25전쟁’을 찾아봐도 희생자가 몇 명인지는 잘 나오지 않고, 연도별 전세와 유엔, 중공군 언급이 주를 이룹니다. 수많은 생명이 피를 흩뿌리며 죽어갔는데, 이에 대한 기록과 성찰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합니다.

 

 

《기생수》의 주인공 신이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뉴스에선 연일 정교하게 토막살해 당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흉흉한 소식을 전했으나, 그냥 ‘뉴스’일 뿐이었죠. 나와는 상관없는 뉴스요. 우리가 지구촌 어딘가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전쟁 피해 어린이의 얼굴이 인쇄된 신문을 깔고, 그 위에 족발과 막걸리, 치킨과 맥주를 올리듯 말입니다.

 



《기생수》는 곧 영화로 개봉한다. (예고편 캡쳐화면)


 

 

신이치가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기생생물들은 사실 대도시에 주로 머물렀기 때문에 “지방으로 여행을 간 어머니는 데이터 상으로 안전하다”는 게 ‘오른쪽이’의 분석이었는데요. 빗나갔습니다. 거의 모든 만화들이 그렇듯, 불행하게도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기생생물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당한 겁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육신을 쓰고 나타난 기생생물. 멘붕에 빠진 신이치가 골육(骨肉)의 비극을 극복해가며, 전 지구적 연쇄살인사건의 해결 주체로 성장해가는 모습도 《기생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생명의 문제를 두고도 저마다 ‘끓는점’이 다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겠지요. 먹거리 문제였던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대해선 열정을 다 쏟았으나 정작 한미FTA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고, 일본산 생선의 안전성 여부는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국내 핵발전소의 안전에는 무관심한 제 모습만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교양 있게’ 꾸며진 살인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밝혀진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공작’이나 1년을 넘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숨기고 유가족을 희롱하고 있는 행태가 바로 살인의 현장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핏물 낭자한 살인 현장만 없을 뿐, 잔인의 극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끓는점’은 아직 오지 않았나봅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기주의’,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는 ‘가족주의’, 대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우리가 잔인함을 직면하는 것을 막고 있으며, 문제에 다가가지 않아도 되는 고상한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까지도 끌어안는 공동체를 기대하는 건 진정 이상주의일까요? 형제님, 자매님 하며 웃으며 인사 나누는 교회공동체는 정말 그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걸까요?

 

신학자들 말하길,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고 한 말은 가족으로서의 책임 유기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의 확장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지구촌 누구나 내 어머니이고 형제라는 선언이었던 셈이지요. 주인공 신이치가 조금 더 일찍 살육문제에 개입했더라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우리의 현실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말입니다.

 

 

대한민국 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볼 때 저도 교회에 불만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 소수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려 쉽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반에서 제일 찌질한 학생이 30번, 짱이 1번이면 너는 몇 번이니? 30번인 아이가 전학을 가면, 29번 아이가 전학을 가면, 28번 아이가 전학을 가면…, 정말 왕따를 당하는 이가 없어지겠니?"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17번쯤 되는 그 아이들이 사태의 심각성에 감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왕따를 당하는 그 찌질한 학생이 이석기일수도 있고 장하나일수도 있고 표창원일 수 있지만, 다음엔 당신일 수 있습니다. (출처: 복음과상황, ‘표창원 박사 NCCK 인권상 수상’ 2013/12/10)

 

 

눈앞에 벌어지는 잔인한 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잔인이 익숙한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탈을 쓴 기생생물 몇몇이 뛰어난 학습 및 생존 능력을 이용해 시의원 선거캠프를 꾸렸습니다. 선거 연설은 꽤 훌륭했으며, 사회와 인간을 위해 -기생생물의 공존을 포함한- 훌륭한 시장이 될 듯합니다. 생각에 빠집니다. 만약 기생생물에게 정치를 맡겨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그들에게 투표할 것인가. 선뜻 대답할 수가 없네요.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요즘 심심찮게 ‘민족주의’ ‘애국주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만화 같은 엉뚱한 상상을 더 이어가보겠습니다. 일본이 다시 우리나라를 침략해옵니다. 다만 그 침략의 주체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정의와 공평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그들은 무흠무결인데다가, 한반도의 산적한 모든 문제들(남북분단, 쌍용차, 강정해군기지건설, 밀양 송전탑, 핵발전소 등)을 평화롭게 해결해줄 능력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고 칩시다. 나는 독립운동을 할까요? 친일파가 될까요? 생명을 지키는 선택을 하겠지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다만, 만화나 시트콤의 ‘비현실적’인 과장 및 연발하는 우연은, 종종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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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4)



솟구치는 성욕을 참을 수 없었다고?


 

군 기무사령관 출신 송영근 의원(새누리당)이 지난 29일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위 전체회의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해당 여단장이) 지난해에 거의 외박을 안 나가고 가족도 거의 면회를 안 들어왔다”며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성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측면을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입니다. 이에 덧붙여 송 의원은 “전국에 지휘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정상적으로 (외박을) 나가야 하는데 제때 못 나간다. 가정관리가 안 되고 본인의 그러한 섹스 문제를 포함해 관리가 안 되는 게 이런 (성군기 문란)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By Alvimann



한마디로 정기적으로 섹스를 해줘야 하는데, 열심히 일 하느라 해소할 길 없어 군대 내 성범죄가 일어난다는 논리입니다. 인간도 하나의 ‘생물체’임을 자각하여 '성폭행 여단장'을 이해하자는 관점입니다. 지난 글에서 ‘잠’과 ‘배고픔’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모든 생물의 기본 중의 기본, 생식에 관해 써볼까 합니다. 역시 《기생수》를 통해 시작해봅니다.

 

기생생물 ‘오른쪽이’의 잠을 깨운 것은 신이치의 심장박동이었습니다. 신이치의 오른손에 기생하고 있는 오른쪽이는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죠.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걸까요? 신이치의 심장은 왜 그리 크게 뛰었을까요? 이를 감지한 ‘오른쪽이’의 말을 가져와봅니다.

신이치. 네가 저 암컷을 보고 너무 놀랐으니까. 그런 신호에는 내가 민감하거든. 신이치, 너 저 암컷이랑 사귀고 싶지? 난 알 수 있어. 혈액의 미묘한 변화로….

 

 

오른손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오른쪽이’는 힘이 단단히 들어간 남성 생식기 모양으로 모습을 바꾸어 신이치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생식활동에 흥미가 생겨서…. 신이치는 사토미랑 사귀고 싶어하면서도 직접적으로는 표현 못하고 있잖아….”라고 말합니다.

 

생식활동을 직접적으로 표현 못하는 게 ‘인간사회’라는 데에 ‘오른쪽이’는 흥미를 느낀 거죠. 그렇죠.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생식활동을 할 때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누구에게 보였다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윤리도덕적 기준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저 저마다 본연의 생명에 부여된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죠. 그러니 혈액의 미묘한 변화이지만 생식활동의 생물학적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신이치가 머뭇거리는 게 ‘오른쪽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이쯤에서 다시 송 의원 이야기. 그럼, 우리 인간은 다 생물이기 때문에 섹스를 하고 싶을 때 참지 못한다는 그의 논리는 일견 타당한 걸까요? 송 의원의 발언을 찬찬히 훑어보면, 그리 강하게 이야기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측면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정도의 발언입니다. ‘인류’가 아닌 ‘생물’이었을 때 인간은 오히려 순수한 생명이었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도 있으니 그의 말이 정말 일리가 있는 걸까요? 프랑스의 어느 인류학자는 “인류 문명은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문명 이전에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 가리지 않고 누구하고나 교배를 하였는데 근친상간을 금기로 여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로, 자연상태에서 문명으로 이행했다는 거지요. 정말일까요?

 

《착한 인류》(The Bonobo and The Atheist)를 쓴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아니다”라고 확답합니다.



착한 인류

저자
프란스 드 발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4-07-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신이 없는 세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의 가능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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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교배 억제는 초파리, 설치류에서부터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에게서 나타난다. 성관계로 재생산하는 종들에게 그것은 생물학적인 명령이나 다름없다. 보노보 무리에서 아버지-딸 섹스는 암컷이 가임기가 되면 이웃 무리로 떠나버리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어머니-아들 섹스도 아들이 같은 무리에 있고 자주 어미와 여행을 다니는데도 관찰되지 않는다. 이들은 보노보 사회에서 유일하게 섹스와 무관한 관계이다. 이 모든 것에 강제는 없다. (109~110쪽)

 

결국 “생물학적 인간이었을 때 가장 인간다웠다”라는 급진적 주장도 힘을 잃고 마는군요. 더군다나 생물 사회에서 ‘강제’란 없습니다. 폭력적이라 알려진, 그러니까 리비도에 강력하게 추동되는 침팬지 사회조차도 ‘강간’은 무리에서의 추방 근거가 됩니다. 무리의 지도자라 하더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외가 허락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동물원 우리 안에서 뿐입니다.(위의 책에 소개된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비록 혈액이 성기에 몰리게 창조되었을망정 '강제로' 상대를 제압해 그것을 해소하는 행위까지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백만보 양보해서 보아도 ‘성폭행 여단장’을 두둔할 만한 그 어떤 변명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창조 원리에 입각해서 보아도 분명 ‘명령 불복종’인 거죠. 전시였다면 사형입니다. 그러고보니 ‘여단장의 그것을 잘라버리라’는 과격한 댓글을 달고 간 사람이 어쩌면 신이 보낸 천사였을지도….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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