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

 

우물가의 빈 물동이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4:5-42).

 

때는 이미 정오 가까이와 있었다.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시각에 물을 길으러 오는 여자라면 늦잠을 자는 어지간한 게으름뱅이거나, 시원한 아침과 저녁에 물을 기르는 여염집 여자들한테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입방아에 오르는 그런 여자임에 틀림이 없다.

 

선생님도 체면 좀 차리시지. 그래, 남녀 내외하는 세상에 여자한테, 그것도 술집 여자한테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실 게 뭐람. 옷차림이나 화장을 보시면 몰라요?”

 

우리 비위를 몹시 상하게 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은 그 여자와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물 좀 주시오.”

 

 

 

 

한 여인의, 운명의 실타래가 풀려나기 시작한다. 그 여자는 선생님앞에서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녀는 다섯 남자에게 돌아가며 안겨야 모진 목숨을 부지하는 그런 부평초였다.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하신다면 우리야 어디 부장인데요.’ ‘'어디 판산데요.’ ‘어디 사장인데.’ 하고 뽐낼 터인데, 그 여자는 남편 하나 변변히 없었다(이혼당한 여자, 처음부터 보호자가 없었던 여인, 납치 당하고 폭행 당한 여자, 몸 파는 일 외에는 아무런 생계 수단이 없는 여자, 그래서 가장 상처 입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유린당하는 여자이리라. 당신의 남편이 그녀에게서 몸뚱이 외에 무엇을 바라보던가?).

 

주님의 눈은 우리와 달라 영혼의 밑바닥을 보신다. 그 여자는 구원을 바라는 메마른 흙이다. 은총의 비가 오면 스며들고 거기 푸른 생명의 싹들이 돋는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마태복음 2l:3l).

 

기분 나쁘지만 주님 말씀이다.

 

얼마 뒤 우물가에는 빈 물동이 하나가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잊고 간 것일까? 아니다. 한 여인이 과거를 청산했다는 상징물이다. 잠시 갈증을 풀어 줄 우물물은 잊은 지 오래다. 동네의 점잖고 위선적인 중산층에게 선교를 하러 간 것이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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