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 정담(5)

 

연주자들의 공공의 적, 암보

 

성악이나 기악을 막론하고 모든 전문 연주자는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에 참여하거나 반주를 맡았을 때는 악보를 봅니다. 오라토리오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등의 솔리스트, 그리고 창작곡을 초연하는 독주나 독창자들도 악보 암기에서 면제됩니다. 하지만 자기 연주라면 반드시 악보를 외워야 합니다 

악보 암기에 대한 거의 공포 수준의 부담감은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 때부터 연주 무대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악보가 생각이 안 나 얼굴이 벌개져서 퇴장을 하거나, 연주 도중 엉뚱한 곡을 치다가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원곡으로 되돌아오는 정도의 실수가 언제든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오죽하면 악보 암기 때문에 연주자 못해먹겠다는 이야길 입에 달고 사는 연주자들이 생겼겠습니까.

피아니스트인 김주영이 쓴 PIANIST NOW란 책에는 자신이 러시아에서 유학 시절 암보 때문에 생겼던 일화가 소개됩니다. 앞 순서 학생이 쇼스타코비치의 푸가를 연주하다가 악보가 생각이 나지 않아 퇴장했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위로를 한답시고 괜찮아, 예전에 길렐스는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까먹은 얘기, 너희들도 다 알지?” “리흐테르는 어떻고? 그 사람, 베토벤의 템페스트 소나타 3악장을 빙빙 돌아서 20분 만에 끝낸 얘기는 전설이잖아?” 그러나 연주를 앞둔 김주영에게는 그 말들이 마치 너도 까먹을 거야라는 주문처럼 들리더란 얘깁니다.

실기 시험이나 연주회를 해 본 사람은 이 대목에서 쉽게 웃을 수 없습니다. 자기는 아직 그런 불행이 없었다고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악보 외우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졌느냐와 상관없이 매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자신에게도 리흐테르나 에밀 길렐스에게 생겼던 아찔한 사고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연주자들은 몸으로 느낍니다. 전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이지요.

실제로 리흐테르는 1970년대 말부터, 그러니까 60대 중반부터는 암보 연주를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악보 암기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악보를 보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게 낫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겠지요. 이렇게 보자면 악보 암기야말로 음악도들의 숙명이자 공공의 적이라고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악보를 외우는 일은 시나 산문을 외우는 것과는 비교불가입니다. 문장이 단선인 반면 악보는 복선이기 때문입니다. 복선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랍니다. 악보 암기는 입체적인 작업이거든요. 그만큼 악보는 외울 게 많고 복잡합니다. 그래도 성악가는 단 선율 멜로디와 가사만 외우면 끝입니다. 그러나 피아노라면? 4성부나 5성부의 음은 물론 그 음 위에 있는 악센트, 이음줄이 있고 없는 지의 여부, 점점 빠르게나 점점 느리게, 점점 크거나 점점 작게 따위의 악상기호도 빠뜨리면 안 됩니다. 수시로 바뀌는 템포도 기억해야 하고, 곡 중간에 다른 장조로 변화되는 것도 놓쳐선 안 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정확한 위치에서 페달을 밟거나 떼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때는 수시로 지휘자와 템포와 호흡을 맞추며 외운 악보를 기억해내야 합니다.

만약 3분 분량을 외운다고 할 때 작가는 총 몇 십 개의 단어로 구성된 수십 줄의 문장을 외우면 그만이겠지만 피아노의 경우는 외우는 분량이 그보다 최소한 7-8배는 더 많아집니다. 오르간의 경우는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오른손과 왼 손이 따로 노는 것이야 피아노도 하는 일이지만, 오르간은 양 발이 양 손과 전혀 다른 박자와 멜로디 라인을 외워야하고, 악보가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로 바뀌는 음색을 기억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버튼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한 번 리사이틀을 하려면 최소 90분 정도는 연주를 해야 하는데 모두 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암보가 웬수처럼 보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콘서트에서 암보가 관행으로 정착된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콘서트에서 악보를 외워 피아노를 친 사람은 프란츠 리스트라고 합니다. 그는 1841년 하반기부터 다음해 초까지 베를에서 열린 21회의 독주회를 개최했는데요. 당시 80여 곡을 연주했는데 리스트는 그 중 50곡을 외워서 연주했다더군요. 워낙 초절기교를 자랑하던 피아니스트였고, 얼굴도 빼어나게 잘 생겨 여성 팬들을 줄줄 달고 다니던 당대 유럽 최고의 스타가 리스트였습니다. 그런 연주자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악보를 전혀 보지 않고 피아노를 쳐댔으니 연주회장이 얼마나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겠습니까.

 

 

한편 암보의 역사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에서 시작되었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클라라는 18세 때인 1837년 베를린에서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암보로 연주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클라라는 외워서 연주하니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다"고 했으나 당시 청중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나 봅니다. 탄성 대신에 여자 주제에 잘난 척하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클라라가 너무 일찍 악보 암보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몰매를 맞은 걸까요, 아니면 여자였기 때문에 암보를 하고도 비난을 당한 것일까요.

연주 역사상 리스트를 최초로 암보로 연주한 음악가로 기억하고 싶어 한 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있던 것일까요. 저들의 가부장적 편견 때문에 클라라를 인정할 수 없던 것이라면 오늘의 우리는 저들의 편견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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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유철의 음악 정담(4)

나만의 명품

 

제 서재에 있는 책이나 음반의 대다수는 좋게 말하면 삼류,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입니다. 가방끈이 짧고 책이나 음악에 관한 좋은 친구나 선생을 만난 적이 없던 제게 시행착오는 불가피했습니다. 가장 책을 바지런하게 읽던 80-90년대에도 신문에 신간 소개란이 있었고, <출판저널>이란 격주간지도 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도 큰맘을 먹어야 광화문이나 종로의 대형 서점엘 갔을 뿐, 보통의 경우는 동네 서점을 단골로 드나들었습니다. 살던 곳이 숭실대 근처였고, 출근하던 교회 근처에 인문, 사회 과학 서적을 많이 갖춘 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책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북 콘서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을 통해 궁금한 책을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도 없었습니다.

음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80년대 후반의 수입 자유화 이전에 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창 음반을 모아야 할 시기에 저는 지금처럼 각 나라의 음반을 구색 맞춰 구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나 동구권의 음반은 수입이 금지되었던 터라 쇼스타코비치나 동독 연주자들의 경우 음반은커녕 연주자 이름도 잘 몰랐습니다. 어디에 가야 내가 구하고 싶어 하는 음반을 살 수 있는지 노하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는 음반점에 찾는 음반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곤 했지요. 지금처럼 해외 옥션이나 아마존에서 음반을 구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사지 않아도 될 책이나 음반 구입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긁어모은 책이나 음반 중에 소장 가치가 있는 소위 명저나 명반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40대까지는 그런 명반이나 명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은근히 위로를 받거나, 그런 책이나 음반을 알지 못하거나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였거든요. 명저나 명반을 알고 소유한 것으로 실력이 입증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제가 소장한 일류에 속하는 대다수 책이나 음반들은 근사하게 보이고 싶다는 허영에 제가 얼마나 자주 굴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거들일 뿐입니다.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그때 어떻게 소화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기는 했지만 피와 살이 될 정도로 깊이 읽거나 들어서 체화시킨 책이나 음반은 매우 적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제게 있는 책이나 음반들은 일류냐 삼류이냐를 따질 것도 없이 주인이 삼류란 사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제게 바흐는 <마태 수난곡>의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80년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국립합창단의 <마태 수난곡> 공연을 통해 바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와 소나타>,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리고 수많은 그의 종교 칸타타와 수난곡 등을 좋아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의 칸타타와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을 지휘해 보았지만 제게 언제나 최고의 바흐 음악은 <마태수난곡>이었습니다. 처음 소장했던 관넨바인 지휘의 LP 음반은 아직도 그 재킷이 선명합니다. 총신대 정훈택 교수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선물했던 <마태수난곡> 전곡은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나면서 <마태수난곡> 음반이나 영상물은 20개가 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마태수난곡> 새 음반이 나오면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못 지나듯 기웃거리게 됩니다. 지난해에도 영상물만 세 개를 구입했습니다.

이반 피셔가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마태 수난곡>2012330일과 41일 암스테르담의 콘체르트허바우에서 있었던 공연실황입니다. 현존 최고의 복음사가로 손꼽히는 마크 패드모어와 피터 하비가 맡은 예수, 그리고 네덜란드 방송 합창단이 참여한 연주입니다. 객관적으로 이 연주가 최고라고 꼽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정신 건강을 위한다면 그런 사람들의 평가는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이반 피셔는 지금 현역으로 활동하는 지휘자 가운데서도 톱클래스라 말하기가 주저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마태 수난곡>의 음반 역사 속에서 이반 피셔의 존재는 미미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반 피셔는 바로크 음악, 그것도 바흐 전문 연주자는 아닙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바흐의 <마태 수난곡> 연주사에 길이 남을 연주를 남길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늘로부터 거룩한 영감을 받았더라도 말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이반 피셔의 템포가 옛날 선배들의 연주를 떠올릴 만큼 느긋하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누가 더 빨리 연주하느냐를 시합하듯 연주하기 때문에 현기증이 날 정도이거든요.

 

1등 또는 세계 최고란 기준으로 보자면 이반 피셔의 <마태 수난곡>을 위해 4-5만 원 상당의 블루레이를 구입하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반 피셔는 물론 이 연주에 출연하는 모든 연주자들이 동시대인이고, 저들 나름의 삶과 음악이 있어서 저들만의 메시지나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이런 연주도 달리 들립니다. 저들 개인의 개별성과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 연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빚이 바라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는 얘깁니다.

저는 세상을 떠받치는 진정한 힘을 1등이나 세계 최고가 만들어 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는 사랑이나 사람이나 물건들은 1등과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된 것들임에도 그것들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내일을 꿈꾸게 하고,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바로 그런 소소한 기쁨이고 위로가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일류가 아닌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호들갑을 떨 일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해서 제 서재에 있는 삼류 음반이나 책이 일류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삼류 음반이나 책으로도 세상은 살 만하고, 그것들이 언제나 삼류 기쁨이나 삼류 의미만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나만의 명품 음반이나 명저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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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3)

 

잡음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디오 마니아 중에는 CD 플레이어로 음악 듣기를 포기하고 턴테이블을 다시 들인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디지털로 음악을 들으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서 일찍이 턴테이블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오디오 마니아들은 CD 플레이어와 턴테이블을 동시에 즐기거나 CD로 만족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CD플레이어가 처음 출시될 때부터 디지털 음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외국에서는 모든 음악 마니아들이 CD 플레이어로 말을 갈아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LP와 턴테이블 제작하던 회사들이 거의 문을 닫았거나 CD 플레이어 회사로 바뀌었음에도 LP나 릴데크(Reel deck)를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날로그 제품들을 내다버렸습니다.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그마저도 희귀해졌습니다.

 

디지털 음악이 인체에 해롭다는 학설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주파수를 잘라낸 CD나 LD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날로그 시스템이 표현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미 체득한 마니아들은, 하나둘씩 턴테이블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적 설명보다는 오랜 동안 체득한 자신의 몸을 더 믿은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마니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LP를 다시 찍어내는 음반 회사들이 생겼고, 이전의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전된 과학기술을 턴테이블 제작에 쏟아 부었습니다. 요즘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턴테이블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단순하던 턴테이블이 탱크처럼 견고하고, 항공기처럼 정밀해졌기 때문입니다. 세계 음악 시장의 이런 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는 교보문고와 같은 음반 매장에 LP코너가 부활을 했습니다. 중고 LP를 판매하는 매장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귀찮아서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지 않는 마니아들이 더 많습니다. 턴테이블을 제대로 들으려면 CD 플레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들으려면 방법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들을 바엔 차라리 CD 플레이어로 듣겠다는 것이지요.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으려면 판이 다 돌아갈 때까지 옆을 지켜야 하고, 세팅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먼지 제거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고, CD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합니다. 게다가 소위 명반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고장이라도 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CD나 DVD를 통해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턴테이블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LP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일명 튀는 소리라 부르는 잡음입니다. 음악과 관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면 거의 모두가 턴테이블 튀는 소리가 정겨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 세대는 과거, 특히 턴테이블의 잡음과 어느 정도 화해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제 오디오 메인 앰프에서 잡음이 납니다. 턴테이블을 틀었을 때처럼 간혹 음악에 잡음이 섞이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름난 수리점에 두세 차례 다녀왔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시 가려니 민망해할 사장 얼굴이 생각나서 못 갔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데다 음악을 주로 듣는 사무실이 택시를 타려고 해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보니, 큰맘을 먹지 않고는 다른 수리점을 찾아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한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메인 앰프를 옆으로 치워놓고 서브 시스템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브는 역시 서브인지라 얼마 못 가서 그 소리가 그리워 메인 앰프에 전원을 넣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듭하다가 턴테이블 잡음에는 관대함을 넘어 옛날에 대한 향수까지 느끼면서 앰프나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에는 못 견뎌하는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잡음에 대해 제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러자 생활 속의 잡음이 보이더군요. 제거하지 못해 안달인 잡음이 생활 속에도 있던 것입니다.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던 90년대 말에 저는 표준 한국어에서 크게 일탈한, 아니 한국어를 조롱하는 듯한 젊은이들의 인터넷 언어가 불편했습니다. 학자들이 대화나 강의에서 지나치게 외국어를 많이 섞는 것도, 목소리 크고 지체 높은 경상도 남자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남자들의 강한 악센트에서 민주주의와 국민들에게 가했던 경상도 출신의 군인과 정치인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인들이 아무데서나 목사님, 집사님, 형제님이라 호칭하는 것도 짜증스러웠고, (요즘은 한결 익숙해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 만 하더라도 지하철이나 공중 장소에서 입을 쪽쪽 맞추는 청춘남녀들을 보면서 오르는 혈압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잡음의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진실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소음의 완전 제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완전한 소음의 제거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까지 제거해야 할 만큼 소음이 해로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시카고대의 소비자연구저널은 2012년에 50~70데시벨(dB)의 백색소음이 완벽한 정적보다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한국산업심리학회에서도 정적 상태보다는 백색 소음 속에서 집중력이 47.7퍼센트, 기억력이 9.6퍼센트 향상되는 반면 스트레스는 27.1퍼센트 감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백색소음이 학습시간을 무려 13.6퍼센트나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백색소음(white noise)’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백색소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된 용어인데요. 7가지 빛을 합하면 백색광이 되는 것처럼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합해지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비 오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등 자연에서 나는 소리와 카페 소음,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소리, 진공청소기나 비닐봉지 소음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반복적인 소리가 모두 백색소음이라는 것입니다. 꼭 소음이 아니더라도 인체에 해로운 존재로만 알았던 것들이 과학의 발달로 이로운 물질로 판명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잡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우리의 태도나 관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잡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벌써 제 메인 앰프를 팔았을 것입니다. 많은 오디오 마니아들처럼 잡음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곰곰이 따지기보다는 저도 감정적으로 오디오를 팔거나 살 때가 많거든요. 이런 감정적 행동들이 과연 오디오 처분에만 국한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완전무결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잡음과 서둘러 화해해야 할 이유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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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2)

미안, 슈베르트

베토벤 음악은 제게 그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베토벤 음악에 대해선 웬만한 찬사가 호들갑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6<전원> 교향곡은 예외입니다. <전원>은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과 달리 너무 단순하기 때문인지 재미가 없습니다. 때론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베토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명반을 여러 차례 찾아 들어보았지만 아직도 <전원>을 뜨겁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주자나 교향악단에 따라 <전원>이 가끔 새롭게 들리긴 합니다. 그렇지만 <전원>은 다른 음악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게 몰입하게 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절로 아멘!’이 튀어나오듯 <전원>을 들으면서는 감탄했던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전원>과는 끝내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 <그레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학창 시절엔 슈베르트의 <미완성>을 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배웠습니다. <그레이트>는 슈베르트가 죽고 10년 만인 1838년에 슈만이 빈에서 발견하여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곡입니다. 이 교향곡의 초연은 당대 가장 뛰어난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음악 교과서들은 어쩌자고 이 곡이 초연되고 140여 년이 지나도록 <미완성>을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가르쳤던 것일까요.

<그레이트>는 슈베르트가 죽기 2년 전에 완성한 곡입니다. 그런데 초기 낭만파곡 치고는 러닝타임이 파격적입니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60분대를 훌쩍 넘겼다는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슈베르트는 교향곡 전문 작곡가가 아니거든요. 그의 장기는 피아노 음악과 가곡이었습니다. 때문에 슈베르트가 60분이 넘는 러닝타임의 교향곡을 썼다는 건 놀랍습니다. 오죽했으면 로베르트 슈만이 <그레이트>천상의 길이를 지닌 빼어난 작품이라 흥분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 교향곡도 제겐 좀처럼 재미가 없습니다. <그레이트>와 친해지려고 노력을 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 어쩝니까. 요즘도 가끔 듣긴 합니다. 슈베르트를 좋아하기에 들어주지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미안, 슈베르트!

 

지루하기로 치자면 브루크너도 못지않습니다. 그의 교향곡이 대단하다는 점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바흐, 멘델스존과 함께 가장 신앙과 음악과 삶이 일치했던 그를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제겐 없습니다. 저도 그의 교향곡의 심오한 느린 악장들은 참 좋습니다. 그럼에도 브루크너 음악은 제 입에서 살살 녹지 않습니다. 가슴을 흔들어놓거나 후벼 파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거의 일정한 템포로 유장하게 흐르는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브루크너란 사람은 갈등이나 불안이나 절망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의 음악이 위대한 것도 알겠고, 기막힌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악장만 넘어가면 제 집중도는 급격히 떨어집니다. 만약 말러란 음악가를 몰랐다면 어떻게든 브루크너에 정붙이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말러의 매력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기 때문에 그를 버리고 브루크너와 깊게 사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직까진 말입니다.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지휘자들 가운데서도 말러와 브루크너 모두를 빼어나게 연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대개는 브루크너나 말러 중 한 사람만 전문 지휘자로 인정을 받지요.

어떤 음악가를 사랑하지만 그의 어떤 곡이 귀에 안 들어오면 괴롭습니다. 반대로 별로 선호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는 작곡가인데 뿌리치기 힘들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는 곡을 만날 때도 힘듭니다. 그래서 죄짓듯 몰래 그런 음악을 들으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재미를 모르면서 클래식 마니아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넌 어떻게 <전원><그레이트>가 재미없을 수가 있어?”라고 말을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곡들이 좋지 않다니 네 수준을 알만 하구나라고 핀잔을 줘도 할 말은 없습니다. 뻔한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그 뒤의 진행이 눈에 보이고 지루한 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렇다고 이런 음악들과 새롭게 만날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을 별로였다고 생각한 음악이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된 경험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한 명곡이라고 억지로 그 음악과 친해지려고 애를 쓰느니 그 시간에 좋아하는 음악을 한 번 더 듣기를 권합니다. 남을 위해 음악을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것까지야 없겠지요. 그렇더라도 음악 감상조차 자선사업처럼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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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초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1)

 

180

 

광화문에 있는 예술전용극장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일입니다. 광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영화가 시작되더군요. 중학교 때 단체 관람으로 극장을 드나들기 시작한 후로 이제까지 광고 없이 영화가 시작되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건 뭐지?” 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영화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일어나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나싶더군요. 영화 시작과 끝에 일어났던 이 두 차례의 경험은 그날 본 영화만큼이나 또렷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2010년 여름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문화컨벤션센터 콘서트홀에서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가 있었습니다. 그 연주회에서도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저는 몰랐던 일이 있었습니다. 작곡가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진 말러 교향곡 9번의 마지막 4악장은, 서서히 작아지다가 마침내 피아니시시모, 즉 가장 작은 소리로 끝납니다. 말러는 마지막 마디의 피아니시시모 옆에 죽어가듯이’(ersterbend)이란 악상기호를 붙여놓았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연주가 끝났지만 3분 동안이나 손을 내리지 않고 정지해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은 물론 관객도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못하고 지휘자를 기다렸습니다. 소리는 멈췄지만 3분이나 말러의 9번 교향곡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풍경과 지휘자가 아직 음악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과시하듯 박수를 쳐대는 일부 몰지각한 청중을 자주 목격했던 저로서는, 음악이 끝나고 10초나 30초도 아니고 3분 동안이나 콘서트홀에 소음 하나 없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아무리 연주가 압권이었더라도 관객이 1분이라도 지휘자를 기다려줄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이라고 하더라도 연주가 끝나고 3분 동안 콘서트홀이 정적에 휩싸이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날 현장에서 아바도 지휘의 말러 9번 교향곡을 들었던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숨 막히는 감동을 전해 준 사람은 영국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자 얼마 전 번역된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의 저자 톰 서비스입니다.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할 우리 시대의 거장인 발레기 게르기예프, 마리스 얀손스, 조너선 노트, 사이먼 래틀, 이반 피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여러 번 참관하고 이 책을 썼습니다. 전공을 하진 않았지만 톰 서비스는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을 실제 지휘한 경력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에 대해 이론과 실기를 겸한 평론가란 얘깁니다. 이 말을 하고 나니 우리 음악계에 대해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스포츠 평론을 하는 사람이 경기 룰을 모른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면 음악 평론가 역시 그러해야 옳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악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준이 내 취향일 뿐인 평론가가 넘쳐난다는 얘깁니다. 톰 서비스의 이 책에 무게가 실리고 믿음이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바쁜 탓도 있었지만 화장실에 갈 때만 야금야금 이 책을 읽었습니다.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이 보통 사람에겐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우리 시대 거장들의 리허설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의 이야기이고, 저자가 선정한 지휘자들이 하나 같이 좋은 연주자들이어서 너무 흥미진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추천하는 일에는 머뭇거리게 됩니다. 저자가 주 독자층으로 상정하는 이들이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 그 이유입니다. 클래식과 이미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나 흥미 있을 무대 뒷이야기이거든요.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되 좀 더 깊고 짜릿한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다면 이 책의 선택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음악적 취향과 클래식 이해의 깊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 책은 음악을 듣는 즐거움 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당신이 거기서 거기인 클래식 음악 에세이에 식상했다면 이 책이 어느 정도 대안이 될 것입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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