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4) 

막차를 타고 오시는 하나님

 

인생은 오묘한 데가 있다. 아무리 갈증나게 원해도 끝내 얻지 못하는 것도 있고, 감불생심 바라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수확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의 절망과 원했던 것을 얻어낸 사람의 환희의 중간쯤에서 아직도 원하는 것을 원하는 상태로, 여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한 상태로 지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게임과도 같고, 도박과도 같은 인생의 대회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누가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말은 참으로 매혹적이고 감질 나는 말이긴 하다. ‘꼭 그렇기만 하다면하는 공연한 맘이 절로 나질 않겠는가. 그리고는 기대에 부풀어 손가락을 꼽으며 헤아려볼 것이다. 내 인생에 세 번의 기회란 어떤 것일까? 벌써 지나간 것인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지나갔다면 어떤 것이었고,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올 것인가? 지나간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앞으로 오는 기회를 무슨 수로 알아보고 잡는단 말인가? 등등.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도 괜히 짜증이 나려는 것은 또 이런 이야기가 과연 이렇게 글로 쓸 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하는 스스로 치사스러워 낯부끄러운 생각이 불쑥 든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나는 본래 성공이나 출세 혹은 성공담이나 출세기 같은 간증에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어떤 분은 나더러 뭔가 모르게 고루한 관념이 틀어박혀있다고 말했었는데 바로 그런 걸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성공을 싫어할 리도 없고 출세를 혐오할리도 없고 더군다나 그런 것들과 거리를 둔 은자(隱者)처럼 고고하게 살아가고픈 품격을 가진 인간도 못된다. 사람들이 가난을 싫어한다면 나야말로 그것을 끔찍하게 여기고, 사람들이 무명(無名)을 두려워한다면 나야말로 그것을 죽음처럼 여긴다.

그대는 가난하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말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그대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런 말이, 말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제일(第一)의 목표가 가난탈출이나 무명 탈출은 아니었으니, 그것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종의 운명적 성향이라 해야할까. 고루하다면 고루한 나에게는 이렇게 자신의 성공이나 출세를 향한 어떤 목적을 숨겨두고 혹은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거기에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이는 것을 오늘날까지도 차마 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듣기 좋은 말과 착한 표정, 지나친 공손함으로 환심을 사는 것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하였고, 나 역시 그러하다. 가슴 속에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벗이 되는 것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한바 이고 나 역시 그렇다.” (논어, 공야장편) (이런 말을 어찌 타인을 손가락질하는 데 써먹겠는가.)

더러 나를 애석히 여겨주는 사람들을 대할 때 곤혹스럽다. 가진 것을 펼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가 행복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무참하고 부끄럽다. 나 같이 모자라는 위인이 가진 재주가 많다는 칭찬을 듣는다는 것도 부끄럽지만, 그런 재주를 가졌든 못 가졌든 송구스런 위로를 듣도록 살아온 내가 더욱 한심하다 싶어 무참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건대 과연 내가 나에게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를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아닌 것 같다. 하여 혹은 내가 자기 능력을 인정치 않은 결과가 이런 것일지 모르겠다.

 

 

최근에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람의 틀이 아주 작아졌다’ ‘사십대 중반이 넘어서도 고치지 못하면 변화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에는 세계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나 이제는 고작 자립도 불투명한 작은 교회를 가슴에 품고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 그래 고작 거기서 일희일비하면서 작게 논다는 말인즉 생각을 달리하면 그런 나를 따르는 사람들까지 망치는 일이 아니냐는 딱한 사랑의 권면이었다. 나는 그만 당황하여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부끄럽고 화도 나고 반발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작아진 것이 아니라 내 본래의 뜻은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있었노라 변명을 한 대야 그 말이 더욱 내가 작다는 증거가 될 판이니 입을 다물 수밖에.

그렇게 해서 나는 지쳐있고 작아졌고 열정을 잃었고 리더십에 부족함이 많고, 뭔가 특단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갑자기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성공의 아성들이 올려다 보였다. 나는 그동안 무슨 레이스를 펼쳐왔던 것일까? 다 수긍하고 인정하고 더러는 눈물을 흘리도록 뼈가 아프기도 한 사랑의 말이 아닌가. 솔직히 누가 뭐래지 않더라도 지난 수년간 이와 같은 생각이 나를 얼마나 짓눌렀었는지 내가 잘 알고 있다. 나는 기꺼이 이 모든 나를 아껴서 일러주는 사랑의 매를 맞을 각오가 돼있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나 바라고 있음을 깨닫고 후회했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이 통쾌했다. 이로써 너는 정말 변화되어야 한다는 결심이 서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고린도후서 11:23).

때론 야속하고 서러운 것도 살아갈 힘이 된다. 나는 그렇지 않았었다는, 그런 말들은 내가 들을 말이 아니라는, 마음 속 억울함도 발분의 믿음이 된다. 인생에는 오묘한 데가 있기에, 번영의 신학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눈물 나는 천국이 있다. 나는 그 천국이 억울해서라도 내 자신을 회개하고 위로받기를 거절했다.

세상엔 언제나 형편이 좀 나아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너에겐 뭔가 문제가 있어 이 꼴이라는 식으로 안타깝지만 냉정히 말해 그렇다는 평가가 있는 줄 안다. 그렇다. 나도 인정한다. 오늘날의 나의 형편과 모습은 그들이 자기들의 세계에서 그랬듯 내가 그것을 진실이라 여기면서 선택하고 걸어온 결과다. 나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뜻을 발견했고, 인자하심도 발견했다. 차라리 내가 이 길에서 일패도지한다 할지라도. 너는 이제 변화되어야한다는 사랑의 말이 이렇게 아플 줄이야.

텔레비전을 보다 하나님은 막차를 타고 오신다라는 멋진 말 하는 것을 들었다. 세 번의 기회든 네 번의 기회든 단 한 번의 기회든 나는 지금껏 그런 기회를 바라며 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 속에서 느끼고 감수하는 고통을 통해서만 세계와 하나님을 깨닫고 이해하고 알아간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이 교회도 세계도 우리나라도 가장 고통스럽고 외로운 사람들의 현실로부터 솟아나는 신적 은혜와 사랑과 상상력이 아니라면 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부르주아의 허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역전시키는 반전드라마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오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오는 축복이다. 아무려나, 다시 계속 된다는 것이다. 이제 더욱 분발하여 나의 위태롭고도 풍성한 교회를 성심으로 세워나가야겠다. 신의 나라는 내 마음 속에 있음이니, 타인의 사랑의 아픈 말 보다야 성령의 따뜻한 책망 때문에 우는 게 얼마나 유익한가.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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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

개그만도 못한 진실
-친애하는 아우님에게-

 

봄밤이 깊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 있어요. 의사는 저에게 자중자애하고 몸을 아껴 큰일에 쓸 에너지를 비축해 두라 하는데, 들을 때는 정말 그런 듯 싶다가도 또 그걸 못하니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듭니다. 된장 담그려고 겨우내 걸어두었던 메주들을 내려놓고 항아리를 몇 개 구입해 깨끗이 소제해 둔지가 벌써 일주일째인데, 날마다 ‘해야지, 해야지’하면서 바라만 보고 있소.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는지, 이것이 아닌데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만 나는 게 영 부지런한 삶이 되질 않습니다. 부지런한 삶이랄 게 무어 있겠습니까. 하루 살고 하루 죽는 거지요. 아침이면 일어나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여 딴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되면 ‘주님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자리에 쏙 들어가 불 끄고 자버리면 되는 것을. 하지만 소박이 진짜 어려운 것인 줄은 분명한 듯합니다.

최근에는 틈틈이 운동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조금 마음을 멀리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 선거 이후 뉴스에는 아예 발길을 끊었소마는, 요즘 전쟁이 나려는지 안 나려는지 하는 이야기도 다 내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들으니 우리 국민들이 안보 불감증에 걸렸다고 소위 보수 언론이라는 데서 연일 수위가 높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는데, 내 참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지, 옛날 초등학교 시절처럼 머리에 띠 두르고 궐기대회라도 열라는 건지, 혹은 라면이라도 박스째 비축하면서 자기들의 난리에 호응하라는 건지, 그런 태도들이 더욱 더 위태롭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가장 좋고 유익한 해결책이야 결국은 옛날 전(前)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평양에 가서 김일성과 담판하듯이 누군가 중재라는 것을 해야 할 것 아니겠소. 그러나 그렇게 꼭 바다건너 사람들이 나서서 우리 사이를 중재해 주어야만 하는 꼴이란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요. 틈틈이 운동하고, 세상일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서부터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바라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어 이렇게 늘 회개하고 회개하는 마음뿐이라오.

요즘 아내는 요가를 배우고 있는데, 몸이 부쩍 날렵해지고 건강이 좋아지고 있어요. 친구들을 만나도 가까이 지내는 목사들을 만나도 온통 건강 이야기 뿐입니다. 그러니 입으로야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결국은 건강이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 아니겠소. 필경은 늙어서도 건강한 목사만이 이 중차대한 복음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아내가 나에게도 운동을 하라고 강권을 해서 저도 운동을 해보려 합니다. 아우님도 기대하시오. 어느 날 내가 몸짱이 되어 알량한 복근을 자랑하며 건강의 복음을 설파할 날이 올 지도 모르겠소이다. 아마 미국의 복음 전도자는 휘트니스 트레이너들일거요.

그러나 한편 저는 가끔은 죽음이라도 받아들일만한 마음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사실 많은 일로 상처를 받았고 ―엄살이라고 할까봐 걱정이 들긴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제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 같고, 나 하나 만으로도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짐이 지워진 것 같아 세상에 나서 무슨 일을 도모해 보리라는 기대나 희망 같은 것이 아예 사라질 적도 많았답니다. 혼자 눈물 흘리며 운적도 많고, ‘하나님 왜 나의 길을 내셨습니까?’ 그러면서 ‘내가 무슨 대단한 인물도 못되는데 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십니까? 그저 아이들과 아내와 행복하게 살면 그뿐인데요.’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그러나 아직도 저는 그 해답을 모르겠어요. 역설이지요. 가장 고통스러운 그 속에 오히려 복음의 진리가 눈에 들어오고,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이 생기니 미웁고도 감사할 일입니다.

옛날 쓴 일기에 이런 글이 있습디다. 지금 읽어보니 재미도 있어요.

K금식 기도원이라는 곳에 가서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보고 넋이 반쯤 나갔다. 임모(某) 라는 목사가, 대전 어딘지 제법 큰 교회 담임이라는 데, 자칭 세계적인 부흥사라면서 하는 설교가 어찌나 가소롭고 비루한지 가히 눈뜨고 볼 수 없고 귀 열고 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그곳에 모인 400명은 족히 될 만한 사람들이 두 손을 쳐들고 열광하며 아멘을 연호하는 장면을 보니 기가 차고 맥이 다 풀려버리는 것이었다. 암 투병중인 권사님을 위해 기도해 드리려고 함께 갔으나 나는 감히 그 자리에서 권사님을 붙들고 기도하려던 마음까지 달아나버려 냉랭하게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가 읽은 본문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장면이고, 설교의 제목은 “불 받으라”였다. 불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면서, 임재의 불, 치유의 불, 인도의 불… 하는 가소로운 해석을 구구이 늘어놓더니, 나중에는 이 나라를 공산당이 장악했다면서 두 번에 걸친 정권이 다 빨갱이였으니 나라가 망했다고 광증을 떠는 것이었다.

설교를 마치고 연단에 앉아있는 양복입고 넥타이 맨 그의 모습을 보니 한편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목사가 안 되었으면 깡패나 되었을 것이라는 그 사람은 자기가 여전히 동네깡패인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그래 그 때 성령만 받지 않았어도 이런 흉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하는 생각이 들고, 성령이 뭔지도 모른 채 전도사가 되어 동네 사람들을 패주는 깡패 전도사였다던 그가 도대체 애초에 어떻게 전도사가 되었던 것인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곳 기도원이 그 정도로 심각한 곳인 줄은 몰랐다. 돌아올 때 다산(茶山) 생가에 들러 조금이나마 마음을 씻을 수 있었던 것만이 다행이었다.

저는 요즘 개그 콘서트에서 ‘~~하면 뭐하겠노. ~~했다고 소고기 사묵겠지.’하는 프로를 재미나게 봅니다. 이 개그야말로 내 마음과 같습디다. 다들 소고기 사먹는 놀음에 정신이 팔려 그 놀음의 허무를 인식하지 못하잖아요. 종교야말로 이 시대에 그걸 일깨워주어야 할 텐데 개그 프로가 그걸 말하고 있으니, 개그만도 못한 진실이 지금 기독교의 진실입니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얼마든지 충분하게 욕망 덩어리고, 위선 덩어리고, 죄의 덩어리 입니다. 더욱 그걸 부추겨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예전부터 꿈을 이야기하고 비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토록 대단한 꿈이나 비전이라면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네 자신이 한번 꾸어 보지 그러는가’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지요. 자기는 그걸 만들지 못하면서 남에게 그걸 말함으로써 곁다리로 자기의 꿈이나 비전을 이루려는 자들은 목사가 아니라 사기꾼이 아닐까요? 혹은 그리스도를 위한 야망이라 하겠지만, 우리 선수들끼리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그러한 야망을 비전이니 꿈이니 리더십을 말씀하셨단 말입니까.

아우님. 하나님께서 저에게 더욱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해보고 싶은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환기시키는 일입니다. 어떤 환기냐? 벗어던지는 환기입니다. 벗어던질 수 있는 환기입니다. 최근에 저는 어떤 교회 담임 목사의 표절문제로 이런저런 소리가 시끄러운 어떤 사이트에 가 보았는데 게서 발견한 것은 아직도 그 사람들은 그 교회가 뭐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이해 못할 바 아니건만 아쉬웠습니다. 거기서는 이런 풍경이 안 보일 겁니다. 대단하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겠다고 하는 겁니다. 대단한 것을 대단하게 유지해야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데, 저는 그만 염증이 나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들이 그렇게 힘과 에너지를 낭비할 시간에 그 능력을 다른 일에 쏟는다면 주님의 일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진지한 신자들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만 한다면야 그 대단하다는 곳은 금세 시시한 곳이 될 것이고, 유치하고 어리석은 인간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그걸 때려 부수려 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금방 시들어 버릴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정한 자유는 행사하지 않고 그 명성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환기가 필요한 일입니까?

예전 신학교 시절 개강 심령 수련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우님도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때 어떤 성경 공부 모임에 들어있었는데, 사실 그 모임은 우리 신학교에서 가장 활발하고 규모가 있었지요. 그날은 마침 저녁에 각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이라 우리는 많은 신입생들이 모임에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강사로 오신 분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옥한흠 목사님이셨어요. 그분이 강단에 올라가셔서 하시는 첫 말씀인즉 이랬습니다. “신학생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유일한 길을 제시해 주겠습니다.” 얼마나 대단하고 담대한 발언인지 모르겠습디다. 그분의 말씀인즉 제자 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 중 요즘 문제가 되는 목사의 이름이 나오기도 했었던 같아요. 제자 훈련에 목숨을 건 훌륭한 지도자로 자랑스러워 하셨지요.

저는 그때 속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고(故) 박윤선 박사의 숭고한 학문과 경건을 모토로 하고 있는 신학교인데 한낱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 신학을 가르치려 들다니, 어불성설이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옥 목사님 개인은 훌륭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분은 너무나 과한 자존감을 가지고 계시다고 느꼈습니다. 그 열정과 확신은 칭찬할만하다고 할지라도, 그 과신은 오만해 보이기까지 해서 오히려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동아리 모임에서 다시 한 번 제자 훈련의 위력과 위태로움을 확인해야만 했던 겁니다. 신입생들의 거의 전부가 제자 훈련 동아리로 갔고, 우리 성경 공부 모임에 온다고 약속했던 전도사들도 오지 않았지요. 과연 옥 목사님의 유일한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은 저에게는 유감이었지만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제 자신이 선견지명 있음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마음도 없고 그렇다고 한들 얼마나 한심한 유치함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옥한흠 목사님은 대단하신 설교자요 목회자로 존경하고 있지만, 그분은 다른 측면에서 종교를 잘못 가르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증거가 그분이 자랑하시던 제자들과 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지어 교회를 바로 세우고 개혁하겠다는 의지 속에서도 보입니다. 일종의 구획된 엘리트주의에 오염되어 있어서 전체로서의 세상을 향한 교회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할까요. 그래서 정말로 이 시대에 시세를 분변하며 고뇌하는 목회자들이 고군분투하는 그런 교회들로 잦아들기를 거부하고 어찌하든지 그 터전에 머물러 그 명성과 전통과 세력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것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과감하게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주지 못하는 걸까요?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들여진 줄도 모르지요. 그들은 광야에서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온 줄을 모르고 있어요.

아우님 잘 아시겠지만, 저는 복음에 있어서 가장 진실한 힘은 진리의 아나키즘적인 성질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히 두드러진 사단은 조직과 세력에 대한 권위입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교회 어디서든지 보는 것은 목회자들의 관료화입니다. 목사들이 관료가 되면 그걸로 복음은 끝입니다. 신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 교육은 관료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관료들은 관변적인 말과 제스처밖에는 할 줄을 모릅니다. 신중한 듯 행동하지만 그들은 위선자들일 뿐입니다. 위선자들이란 성경 속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같이 고대문서 속에나 등장하는 죽은 인간들이 아닙니다. 자기의 처세를 짐짓 고민스러운 듯 하면서 결국엔 언제나 세상과 묻어가는 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럴 바에는 어찌 목회자가 되었으며, 그럴 바에는 어찌 설교를 하려고 했을까요? 그런데도 책임 있는 성도들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런 자들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그런 자들에 붙어서 은근히 자신들의 결단을 모르쇠하고 있으니, 그것은 사실 위선의 합작입니다. 물론 그 자신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점잔은 줄을 알겠지만 말입니다.

아프지 마시오.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힘을 기릅시다. 아마도 스스로 사는 일에 굳건해 질 때만이 우리는 이 길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나 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길이 아니겠소. 병상에 있다는 소식 듣고 전화도 못했어요. 그러나 이렇게 늘 생각하고 있다오. 우리 끝까지 신의로 삽시다. 훗날에도 서로 어울려 아름답게 우리의 이야기를 마칩시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됩니다. 어서 힘을 내시오. 내 주변 사람들의 덕담처럼 제가 큰일을 할지 못할지는 모르겠소만,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감동 있고 재미나는 삶을 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매우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언제나 기도하기는 내 마음 속에는 한 가지 일관된 주제가 들어있어요. 나는 그것에 ‘시원(始原) 상쾌함’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쉽고 단순하고 착하고 아름답지 않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어린 시절 에덴동산 같은 평화와 기쁨을 주는 세계입니다. 주께서 진리를 탐구함으로 시원의 상쾌한 길에 이르는 비밀의 첩경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찬미 예수. 양지에서. 그대의 좋은 벗 천 목사 드림.

*이 글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우에게 지난 봄에 쓴 편지입니다. 그가 많이 아팠었는데 저도 아파서 그만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봄을 기다리며.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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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

절망의 산, 그 부박함을 넘어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려 한다는 말이 있다. 2004년부터인가, 세 차례 중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의 신강(新講)지역으로 선교여행을 간 적이 있다. 서안에서 시작하여 란주를 거쳐 우루무치와 투루판, 카쉬가르를 거쳐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접한 타쉬쿠르간이라는 곳까지 해마다 비슷한 코스였다. 하계와 동계 방학 중 학생들을 모집해 실시하는 선교여행(비전 트립, 혹은 단기선교라고도 부른다)이란 대부분 선교사가 파견돼 있는 현지에 가서 봉사를 하거나 주변 지역을 답사하며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끔 뉴스가 되곤 하는 땅밟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래 선교적 열정이 풍부한 사람도 못되고 비전 트립이나 땅 밟기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나의 관심은 아무 때 먹어도 김가(金哥)가 먹을 밥어차피 내게 주어진 기회를 사 학교와 학원에 지친 학생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조금이라도 세상과 자기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견문을 넓혀주자는 것이었다.

첨언하자면, 선교가 명목일 뿐이었다는 고백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하나는 내가 계획한 선교 여행이 실은 선교를 명목으로 내세운 허클베리 핀의 모험쯤이었다는 것이고, 더 근원적으로는 선교 여행 자체가 교회의 행사로서 명목화된 프로그램 이상의 실질을 갖지 못한다는 다소 비관적 견해에서였다. 선교지(?)를 중국의 변방 실크로드로 정한 것도 나름 궁여지책의 절묘함이 있었다 여겨진다. 명목화된 기회를 오히려 살린다는 내심의 기쁨도 없지 않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는 나만의 속사연이 있다. 선교팀은 준비기간 동안 간단한 중국어와 위구르어 회화를 익혔다. 중앙아시아 역사가인 김호동 교수의 황하에서 천산까지(사계절, 1999)도 읽었다. 몇 개 분과를 나누어 위구르 족의 역사와 신강 지역의 지리 기후 풍속 등을 스터디했다. 체력 훈련겸 강화도 마니산을 등정하고 펜션에서 새벽까지 NHK 제작 장편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시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 스스로 영감을 키워 아이들에게 뭔가 줄 것이 있기를 기도했다.

말하자면 내가 이십 여명의 아이들을 끌고 거기까지 가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적도 없고, 다행이다 싶어 하는 나도 그랬지만, 바로 그 아무도 여기 무얼 보러 온 것이냐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내게 웃음을 유발한다. 그렇게 설레어하며 준비하고 찾아간 신강 땅에서 아이들이 만났던 그 길고 지루하고 일관성 있는 풍경이라니.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가보지 않고는 말을 하지 말일인 것이다.

그것은 시작부터 생뚱맞았다. 서안(西岸)에서 버스를 타고 황하(黃河)의 붉고 탁한 물이 굽이치는 절벽 길로 곡예 하듯 하룻길을 달리면 란주(蘭州)가 나왔다. 말이 하룻길이지 무려 10시간이다. 보이는 것은 왼쪽으로는 하늘로 치솟은 산과 절벽, 오른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 수천 년 지반을 깎아먹으며 노도와 같이 밀려 내려가는 황토물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여 야아, 저게 바로 그 유명한 황하다’ ‘야아, 저것 봐라. 가도 가도 끝이 없구나.’ 연신 설레발을 쳤는데, 그것인즉 척박한 사막지대의 돌무더기 산이거나 모래 산이거나 협곡과 절벽위에 간신히 계단식 농토를 일구어 경작하는 옥수수 밭이거나 밀 보리밭일 뿐이다.


(출처: Caitriana Nicholson (http://www.flickr.com/photos/caitriana/))

나는 또 무안해져서 , 저것 좀 봐라. 저기 저 옥수수 밭 사이 마을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냐.’ 백양나무 그늘에 가려진 회족(回族) 동네의 메마른 흙집을 가리켜보였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잠깐씩 깨어나 그 풍경을 바라볼 뿐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흔들리는 차안에서 헤드뱅잉 중이었다. 게다가 어두워지자 그나마 볼 수 있는 풍경도 없어졌다. 점점 칠흑으로 변해가는 비포장 절벽 길을 버스기사가 그래도 절묘하게 찾아갔다.

아찔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불 없는 터널을 통과해 들어갈 때나 꺾이는 모퉁이를 돌아갈 때면 버스기사는 일단 우리가 간다하고 엄청난 경적을 길게 울리며 나가는 것이었다. 반대편에서 무엇이 튀어 나올지 그야말로 천운에 맡기는 러시안룰렛 게임 같았다. 인솔자로서 나는 행여 여기서 사고라도 나면 내 인생도 끝장이로구나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경적 소리에 아이들이 놀라 깨곤 했다. 그러면 나는 또 짐짓 너스레를 떨어보는 것이었다. ‘야아, 잠만 자지 말고 잘 봐두어라. 저게 바로 대륙을 달리는 중국버스기사의 등짝이란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을 아이들을 란주로 하하로 라브랑스로 끌고 다녔다. 우루무치에서 투루판을 거쳐 기차를 타면 꼬박 하루를 달려 카쉬가르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버스로 11시간을 달려 밤이 되면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마을 타쉬쿠르간에 도착했다. 그때쯤 이르면 아이들 중에는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거나 배탈로 먹지를 못하거나 고산증에 어지러워 움직이질 못하는 환자가 속출했다. 더 이상 히말라야의 웅혼한 설산(雪山)도 그랜드캐년 보다 더 깊고 웅장하다는 파미르의 거대한 산악도, 나 혼자 떠들어 보는 최후의 고구려인 고선지(高仙芝)의 위대한 정복과 오렐 스타인과 폴 펠리오의 세기적 도둑질도 저게 뭔 생뚱맞은 소린가의미 없는 광대 짓이 되는 것이다. 그 파미르 가는 길쯤에서 나는 버스의 짐받이를 붙잡고 통로에 간신히 선 채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오랜 시련에 헐벗은 저 높은 산 위로

오르려 애쓰는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우러러보다 그만 지쳐버렸네

산을 에워싼 강물은 유유히 흐르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저 높은 산에 언덕 넘어 나는 갈래요

저 용솟음치는 함성을 좇아갈래요

하늘만 바라보다 시들어진 젊음에

한없는 지혜와 용기를 지니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 <군중의 함성>(김의철, 작사곡) -


다시,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려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열아홉 살 무렵 전도사님에게 처음 배운 이 노래에도 산이 나온다. 모든 인류가 기어이 올라가 넘으려 애쓰는 산. 그 산이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산이 있는 곳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 산 앞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산 앞에서 하나님을 우러르고 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 산의 꼭대기엔 오로지 종교 이외엔 도달할 수 없고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생산해낼 수도 없는 오로지 종교만이 있는 것이지만, 그리로 올라가는 수억만의 길은 어쩌면 가장 비종교적이고 부박한 모든 인간들의 각개전투식 현실의 분투에 다름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실크로드 지방의 장족과 회족과 위구르족들의 슬픈 역사와 고단한 현실과 삶의 남루한 모습들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그 치열한 생존의 눈물겨움이 그들과 우리들의 산이고 그들과 우리들의 종교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한국 교회로부터 가져온 모든 종교적 형식들의 생뚱맞음과 우리들 자신의 생뚱맞음과 그 생뚱맞음의 어리석음을 어렴풋이나마 여기서 느끼게 되기를 바랐다. 그것으로 우리들의 알량한 종교와 위선이 치유되고 오히려 우리가 거기서 구원의 빛을 발견하기를. 어쩌면 그것은 전도사인 나를 위한 구원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데려간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우리들의 교회에서 내가 느끼던 절망의 산을 거기까지 끌고 갔던 것인지 모르겠다.

실크로드에 가서 보면 오아시스라는 말이 내포하는 풍성한 이미지들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오아시스는 아주 작고 볼품없는 마을들에 지나지 않았다. 몇 그루의 나무와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인 것이 고작이다. 거기에는 현대의 오아시스를 표방하는 최첨단 세속도시들이 갖추고 있는 흥청거림과 퇴폐와 유흥이 섞여있는 호화찬란한 유혹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편>이 들려주는 낙원의 실상도 이와 같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도 주변 상황의 척박함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과 끈질기게 싸우려 할 때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질박한 비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싸웠기 때문에 조상들은 자손들에게 복을 유업으로 물려준다는 말씀을 살아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가장 종교적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이 복의 공공성을 자주 놓친다.

축복의 신기루를 쫓다가 사막의 미아로 사라지는 개인들을 만들어 놓는다. 비유의 원관념과 보조관념도 구별하지 못한 채 경전을 읽고는 알음알이로 삶을 벌써 다 살아버린다. 우리들 생의 모든 진지함을 다 바치면 겨우 그 밑에 도달하게 될까한 이 산을 몇 마디 힐링의 언어로 간단히 넘어 벌써 천국과 해탈의 오아시스에 짐을 풀라는 감언이설 호객에 자기를 맡겨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오로지 종교 외에는 그 무엇을 생각할 수도 생산할 수도 없는 이 피치 못할 현상의 종교로 인해 지금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종교는 너무 많이 지쳤다. 그 산을 넘어가려는 군중들의 함성조차 무디어져 들리지 않도록 까마득해졌다. 가끔 그때 실크로드를 함께 누볐던, 지금쯤은 시집, 장가도 갔을 제자들의 안부가 그립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불러 모아 카라부란(모래폭풍)이 부는 타클라마칸과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파미르의 협곡으로 데려가고 싶다. 하늘만 바라보다 시들어질 젊음일지라도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데,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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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

 

경을 치다

 


경을 친다는 말은 종을 치듯 정신이 깨지도록 혼쭐을 낸다는 의미가 담긴 상징적 언술로 들리지만 실제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형(黥刑)은 죄인의 이마나 얼굴에 먹줄로 글씨를 새겨 넣는 형벌이다. 종이 위에 매난국죽을 치듯 얼굴에 먹물을 들이기 때문에 친다고 쓴다. 문신을 새겨 죄인 됨을 공개하는 것은 머리를 베거나 목을 매달거나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형벌 보다는 가벼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경형이란 경을 친 다음 그 때부터 형벌의 목적이 발효되는 진정한 상징적 언술이 된다. 이마에 각인된 주홍(검은)글씨는 죄인의 일생을 두고 경을 친 의미를 확인시켜줄 것이다.

 

나는 왜 이 시점에 꼭 경을 칠 놈이 아니라 경을 칠 년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모름지기 역사상 경을 쳤대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이 쳤을 것 같다. 그러나 귀에 익숙해 자연스러운 것은 경을 칠 년이다. 사극을 보면 상투머리를 산지사방 흩뜨러뜨리고 함거에 실려 귀양 가는 양반님네를 자주 본다. 혹 몇 년 유배 살다 정계에 복귀하는 운 좋은 역적도 있겠지만 한번 컨베어벨트에서 밀려나면 세상이 다 그를 적대하기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당사자는 물론 그의 일가 전체가 경을 친다. 어제까진 귀족마님으로 양가집 규수로 부잣집 도련님으로 뭇사람의 대접을 받으며 고상하고 고결하고 품위 있고 세련되고 도도하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으로 굴었어도 다 용납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부턴 관청의 노비나 공신댁 종으로 근본부터 자기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싫다면 산간에 도망쳐 화전민이 되거나 산악으로 도주해 군도(群盜)’에 가담하거나 다리 밑으로 도망쳐 각설이패가 되는 수밖엔 없다. 태생적 고결한 양반으로 금지옥엽 세상이 다 그런 줄 알고 살아온 처지가 당할 삶의 비참과 난센스와 아이러니 말해 무엇하랴.

 

이것이 바로 경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경을 쳐도 가장 경 침을 받은 사람들은 여자들이 아닐까. 내 귀에 경을 칠 년이 자연스러운 것은 그런 이유. 또 그런 이유로 특히 미성숙한 어린여자들을 경책할 때 니가 경을 친다는 게 어떤 것인 줄 알어?’ 하는 가학과 피학의 기나긴 세월 무시무시한 공포가 욕설이 되어 나온 게 아닐까. 솔직히 나는 세상이 무섭다. 딸만 셋 가진 아비로서 나뿐 아니라 내 딸들이 살아갈 세상의 두려움까지 합쳐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딸들을 위해 내가 이 세상과 싸워 능진히 이겨줄 자신 없음이기도 하다

 

 

(출처: https://flic.kr/p/nn8FsV)

 

그런데 이 경을 칠 년이라는 욕설엔 아직은 유예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아직 경을 치진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권력자의 따님으로 귀족마님으로 재벌기업의 부사장으로 뭇 미생(未生)’들 위에 꼬마 대장동지 김정은처럼 방정을 떨고 군림하며 고상하고 고결하고 품위 있고 세련되고 도도하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으로 굴어도 다 용납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일이 잘 되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수 있는 하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만 사유와 사고의 틀이 태생적 한계이자 행운으로 주어진 사람들이 있음도 본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경을 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경이 어떤 경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경을 치진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진짜로 경을 치게 된다. 적어도 나의 신학과 믿음에 따른다면 이 세상에선 경을 칠 일 따위 전혀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직접 경을 치신다. 하늘이 사람에게 경을 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높은 마음. 하느님은 다 봐줘도 아니꼽다 못해 가증스러운 사람은 끝내 못 봐준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엔 태생적으로 아니꼽고 가증스럽게 높아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이루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런 듯 군다. 경을 칠 놈이든 년이든 하늘이 치는 경이 조속히 쳐지질 않아 그것을 담대함으로 여기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작금 한 여자가 경을 칠년이라 전 국민의 욕을 먹는 이유를 그녀는 억울해 할 필요가 없겠다. 그녀는 모름지기 모든 경을 칠 연놈의 대표가 아닌가. 아직 앞길 창창 계속해 누군가 미생(未生)위에 군림하실 분이고 보면 부디 이제라도 자기를 쪼금이라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진짜 경을 치기 전 이마에 먹을 먹이듯 따끔하게 경을 쳐보는 것 그에 비하면 나쁜 일도 아니다.

 

해마다 1231일이면 서울시장과 및 유수한 인사들이 참여하는 종로 광화문앞 보신각 타종행사를 한다. 제야의 종이라 33번을 울린다. 유감스러운 것은 길게 울리는 서른 세 번의 청승맞은 종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역사의 한 구비를 넘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만 한 해 동안 외쳐댔던 고통도 억울함도 정의도 그 모든 군중의 함성을 쇠투구 철항아리처럼 찍어 누르고 있는 요지부동도 체념 가운데 넘어가 버리는 듯하다. 김수영(金洙暎, 1921~1968)<거대한 뿌리>에서 1893년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英國王立地學協會會員)으로 조선을 처음 방문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Lucy Bird, 1831~1904)의 여행기를 인용하여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世界)/ 화하는 극적(劇的)인 서울을 상기시킨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누추한 기록 속에서 시인은 오히려 보잘 것 없는 일상(日常)들의 극적인 승리를 발견한다.

 

전통(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거대한 뿌리> 부분, 1964)

 

이 시대의 경은 누구를 위하여 치는가. 역사는 도무지 패배할 줄 모른다.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 놋주발보다 쨍쨍 울리는 우리들의 역사는 패배주의가 아니다. 온통 가학과 피학의 역순환과 악순환 속에서도 지혜여 속속히 오시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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