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4)

유대인의 안식일(1)

 

이스라엘 유학중의 일이었다. 성공적인 수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아내는 예루살렘의 샤아르 쩨덱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수술 후 며칠이 지난 안식일이었다. 그날도 늘 그러던 것처럼 유대인 간호사가 환자들의 상태를 검진하기 위해 병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매일 혼자 들어와 체온과 혈압을 재고 기록하던 간호사가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랍인 간호조무사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혈압과 체온을 직접 기록하지 않고 아랍인 간호조무사에게 받아 적게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록하는 것은 창조 행위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아랍 사람에게 글을 쓰도록 시키는 것이 위선처럼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위선으로 보기엔 너무나 번거로왔다. 아랍 사람을 따로 고용하여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도 무시못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유대인의 이러한 모습은 종교적 위선에 지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유대인은 안식일을 그렇게 철저히 지키는가? 유대인의 샤밧(안식일)에 대하여 좀더 깊이 알아보자.

 

모르데카이 카플란은 샤밧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가가 쉬지 않고 계속 붓질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붓질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그리고자 하는 주제가 캔버스에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삶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샤밧(안식일)은 붓을 멈추고 우리의 삶을 관조(觀照)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삶이라는 화폭에 새로운 시각으로 신선한 힘을 공급하게 됩니다.

카플란의 샤밧에 대한 위의 문장은 샤밧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일들 중 잊기 힘든 경험 가운데 하나가 샤밧이다. 샤밧이 되면 예루살렘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버스도 다니지 않아 학교도 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매주 토요일은 집에 갇혀 있어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주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샤밧에 대해 고마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삶에 큰 활력이 되기 시작했다. 샤밧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유대인 친구인 다윗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초대는 거의 매주 계속되었다. 그의 집에는 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샤밧의 다윗의 가정은 언제나 부드럽고 안락하고 편안하고 즐거웠다. 샤밧에 그의 집에 가면 우리 가족도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의 책과의 전쟁도 그날만은 휴전을 선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깝기만 하던 시간들, 그러나 차츰 그것이 필요한 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쉼을 통하여 보다 더 성공적인 유학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스라엘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간 후에도 토요일 오후 서너 시간은 가능한 한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힘썼다. 덕분에 삭막한 유학 생활에서도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샤밧에서는 교육적으로 배울 것이 많이 있다. 탈무드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브라츨라브의 하시딤 랍비 나흐만은 어느 날 아침 창 밖을 내다보다가 길거리를 달려가는 그의 하인을 보았습니다. 랍비 나흐만은 창을 열고 하임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하임은 안으로 들어왔고, 나흐만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임, 자네 오늘 아침에 하늘을 보았는가?" "아니요, 선생님." "그래? 그럼 자네가 오늘 아침 길거리에서 본 것을 이야기해 보게." "저는 사람들, 마차들, 상인들을 보았습니다. 또 저는 상인들과 농부들이 오가며, 사고 파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임, 50년 후에, 또 100년 후에도 자네가 보는 이 길거리와 시장은 그대로 있을 것이네 그러나 나나 자네는 여기 없을 것이네. 그렇다면 하임, 내가 한 가지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가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녀서 유익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늘 한 번 볼 시간도 없이 말일세."

오늘날의 세계는 랍비 나흐만이 이야기하던 18세기보다 수십 배 더 바쁜 시대다. 현대인은 당시의 하인보다 더더욱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이것은 자기의 삶을 올바로 조명할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유대인의 샤밧은 일상의 일을 떠나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유대인들에게 샤밧은 자기가 이루어 나가는 삶을 뒤로 물러서서 살펴보며 쉬는 시간이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유대인의 삶은 재조명되며 재구성된다. 유대인들의 독특성과 창의력은 그들이 지키는 샤밧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의 아하드 하암은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샤밧을 지켰다기보다는 샤밧이 이스라엘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매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이 안식일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샤밧'이라 한다. 이 용어는 '쉬다' 또는 '중지하다'라는 뜻을 그 어근으로 가지고 있다. 이날이 되면 모든 가족들이 일을 멈추고 가정에 모여 쉬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관조하며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이날이야말로 완전히 쉴 수 있는 날이다. 한 예로, 돈에 대한 거래가 금지된 날이기에 빚에 쫓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날 하루만으 빚쟁이들의 빚 독촉을 피할 수 있다. 유대인의 샤밧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기원과 유래

어떤 학자들은 유대인의 샤밧이 고대 바벨론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대 바벨론의 문헌을 보면, 어느 특정한 달의 특정한 날들은 다른 날들과 다르게 구별되어 있다. 곧 일곱째 날, 열넷째 날, 열아홉째 날, 스물한째 날, 스물여덟째 날이 그것이다. 이날들은 달 모양의 변화, 또는 신성한 숫자로 여겨진 칠(7)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다. 열아홉째 날이 다른 날과 구별된 것도 7자와 관련이 있다. 전달의 30일에 19일을 더하면 49일이 되는데, 이는 7을 일곱 번 곱한 것과 같은 숫자이다.

이러한 날에는 금지된 일들이 많았다. 왕은 불에 구운 고기를 금하였다. 옷을 갈아 입지 않았고, 마차를 타는 것도 금하였다. 옷을 갈아 입지 않았고, 마차를 타는 것도 금했다.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것도 금했다. 제사장들은 신탁(神卓)을 금했고, 의사들은 환자를 받지 않았다. 이날들이 부정한 날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벨론 사람들에게 있어 이날들은 실수하기 쉬운 날이므로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날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단지 왕, 제사장, 의사들이 이날을 부정한 날로 지켰다. 그러나 유대인의 샤밧이 바벨론에서 유래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논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타당성이 없다.

첫째로, 바벨론에서 이날은 쉬는 날이 아니었다. 단지 고대의 미신적인 믿음과 결부된 부정한 날일 뿐이었다. 이날은 왕, 제사장, 의사가 활동하기에는 부정한 날이었다. 둘째로, 유대의 안식일이 전 국민과 관련된 행사인데 반하여 바벨론에서는 이날이 일부 특권층에만 관련된 날이었다. 셋째로, 유대의 샤밧이 매주 일곱째 날인데 반하여 바벨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매월 일곱째 날이 아니라 일년 중 어느 특정한 달에만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유대의 샤밧이 바벨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최명덕/조치원성결교회 목사, 건국대학교 교수

신고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의 안식일(3)  (0) 2015.02.12
유대인의 안식일(2)  (0) 2015.01.30
유대인의 안식일(1)  (0) 2015.01.22
유대인의 신년(3)  (0) 2015.01.14
유대인의 신년(2)  (0) 2015.01.06
유대인의 신년(1)  (0) 2015.01.01
posted by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3)

유대인의 신년(3)

 


유대인의 신년은 잔치 기분에 들떠 기뻐하는 다른 나라의 축제들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신년의 첫날부터 열흘 동안을 ‘야밈 노라임’으로 지키며, 이는 ‘경외의 날’이란 뜻이다. 이 열흘의 기간은 첫째 날의 신년(로쉬 하샤나)으로 시작하여 열째 날의 대속죄일(욤 키푸르; the Day of Atonement)을 절정으로 끝난다. 야밈 노라임(경외의 날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날들이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이 열흘간의 경외의 날들을 올바르게 지키기 위하여 신년이 시작되기 한 달 전, 전 해의 마지막 달인 엘룰월을 준비 기간으로 삼는다.

 

경외의 날

어떤 유대인들은 엘룰월 기간 동안 매일 쇼파를 불어 경외의 날들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려 몸과 마음을 준비하게 한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부모나 가까운 친척들의 무덤을 찾아 성묘하며, 선친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관습을 지킨다. 성묘는 엘룰월에서 야밈 노라임까지 계속된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욤 키푸르(대속죄일)는 하나님께 대하여만 회개하는 날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지은 죄는 욤 키푸르 날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1월 1일부터 9일까지는 사람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며, 10일 대속죄일에는 하나님께 지은 죄만 회개한다. 그러나 1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한다 하여도, 사람에게 지은 죄를 1월 1일부터 10일까지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1월 10일 하나님께도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1월 1일부터 9일까지 부지런히 사람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한다.

로쉬 하샤나로부터 욤 키푸르 사이에 있는 안식일(샤밧)을 가리켜 ‘샤밧 슈바’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안식일’이란 뜻이다. 슈바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 곧 호세아 14장 1-9절까지의 첫 구절 “돌아오라 이스라엘아”의 첫 자에서 따온 것이다. 이날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는 안식일이다.

지켜야 할 계명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이 기간 동안에 지켜야 할 계명이 있다. 그 계명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새해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묵상한다. 이 일을 위하여 일정한 시간을 따로 정하여 매일 묵상한다.

둘째, 지난해에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나 살펴본다.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화해한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사람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도 화해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욤 키푸르에는 하나님과 관계된 죄만을 회개한다. 그러나 대속죄일이 되기 전까지 사람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욤 키푸르(대속죄일)의 회개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문제는 욤 키푸르가 되기 전에 다 해결하고 당일에는 하나님께 지은 죄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잘못한 사람이 찾아와 용서를 빌면 받아 준다. 탈무드는 “용서할 때는 삼나무처럼 뻣뻣하지 말고 갈대처럼 부드러우라”고 가르친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남에게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용서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계명들을 지키는 가운데 유대인의 신년은 회개와 용서, 화해와 기쁨의 영적 축제 기간이 된다.

카프롯

‘카프롯’은 자기의 죄를 닭에게 전가시키는 대속의 관습이다. 대속죄일 이틀 전에 행하며 특별한 시간이 정해진 관습은 아니다. 오후에 하는 사람, 저녁에 하는 사람, 밤에 하는 사람 또는 다음날 아침에 행하는 사람도 있다. 남자들은 수탉을, 여자들은 암탉을 준비한다. 식구가 너무 많아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은 닭 대신 돈을 사용하기도 한다. 돈을 사용하는 사람은 보통 대속죄일 하루 전에 행한다. 행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닭의 다리를 묶는다. 각 사람은 시편의 시 중에서 ‘아담의 아들들’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구절을 읽는다. 보통, 사람마다 읽는 구절이 다 다르다. 아무 구절이나 원하는 대로 ‘아담의 아들들’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것이면 된다. 이때 다리가 묶인 닭을 사람의 머리 주위로 아홉 번 돌린다. 닭을 머리 위로 돌리는 동안 유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을 내 대신에 이것을 속죄물로 바칩니다. 이 수탉(혹은 암탉)은 죽을 것이요. 나는 건강과 장수에 들어갑니다.” 돈으로 대신하는 경우는, “수탉(암탉)이 죽을 것이요” 대신에, “이 돈이 구제를 위해 쓰여질 것이요”라고 문구를 바꾼다. 대기하고 있던 쇼헷(합법적인 도살자)은 닭을 잡아 죽인다. 문헌에 의하면 10세기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 사이에 이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당시 부자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셨던 양을 기념하여(창세기 22:1-15), 수탉이나 암탉 대신 양을 사용하기도 했다.

욤 키푸르(대속죄일)

신년 첫 번째 달의 열재 날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로쉬 하샤나로 시작된 열흘간의 경외의 날이 끝나는 날로, 그 절기의 절정이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대속죄일로 지키며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라고 말한다.

신년 아홉째 날 저녁에 시작되는 대속죄일은 다음날 저녁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와 함께 끝난다. 이날, 온 이스라엘은 금식을 선포한다. 모든 유대인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 대속죄일 전날 해지기 전에 유대인들은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친다.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금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해가 지기 직전에 촛불을 켜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대속죄일은 회개의 날일 뿐 아니라 기쁨의 날이다. 십일 동안의 회개를 신실하게 마친 유대인은 대속죄일이 끝났다는 쇼파 소리와 함께 자기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감사한다. 사람과 하나님께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는 축복의 해가 될 것을 믿는다. 대속죄일이 끝나면 금식을 파하는 식탁을 대한다. 새로운 신년의 삶을 시작하는 기쁨의 식탁이다.

대속죄일에 지켜야 할 계명들

모든 유대인은 대속죄일에 지켜야 할 계명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 지은 죄를 낱낱이 회개한다.
둘째, 신년 9일째 저녁 해지기 전까지, 다시 말해 대속죄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과 화해한다. 그 후에야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사람들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룩한 대속죄일을 맞이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이다. 셋째, 구제한다. 구제는 유대인으로서 언제나 지켜야 할 계명이지만 대속죄일에 그 뜻이 더욱 강조된다. 유대인들은 신년 첫 달 9일째 저녁 해지기 전에 즉 대속죄일이 시작되기 전에 구제금을 따로 떼어놓는 풍습이 있다.
넷째, 회당에 가기 전에 아버지가 자녀들을 축복한다.
다섯째, 성인식을 마친 모든 유대인은 하루 동안 금식한다. 아직 성인식을 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금식 시간을 두세 시간부터 시작하여 매해 시간을 늘려 나가다가 성인식이 지나면 하루 동안 금식한다.
여섯째, ‘이즈코르’ 기도문을 음송한다. 이즈코르는 먼저 죽은 유대인의 선조들을 기억하는 기도다. 이 일을 통해 유대인들은 과거의 전통을 오늘날에 이어 받는다.

유대인의 신년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회개와 용서의 큰 절기다. 해마다 반복되는 회개와 용서, 해마다 화해로 시작되는 신년, 이는 유대인을 유대인 되게 하는 유대인의 가장 큰 유산 중의 하나다.

최명덕/조치원성결교회 목사, 건국대학교 교수

신고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의 안식일(3)  (0) 2015.02.12
유대인의 안식일(2)  (0) 2015.01.30
유대인의 안식일(1)  (0) 2015.01.22
유대인의 신년(3)  (0) 2015.01.14
유대인의 신년(2)  (0) 2015.01.06
유대인의 신년(1)  (0) 2015.01.01
posted by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2)

유대인의 신년(2)

심판의 날

랍비들은 로쉬 하샤나(신년)욤 하딘’(심판의 날)으로 가르친다. 탈무드는 하나님을, 새해 첫날 심판대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모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들의 새해가 행복하며 성공적인 인생으로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연하장에는 당신의 새해가 좋은 해로 기록되며 밀봉되기를이라고 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인사한다. 이와 같은 연하장의 문구와 인사말은 하나님께서 신년도의 삶을 새해 첫 날에 심판하여 욤 키푸르(대속죄일)에 인봉(印封)하신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새해 첫날에 세 권의 책이 펼쳐진다. 첫째 책은 악한 사람들을 위해 둘째 책은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셋째 책은 그 중간에 속한 사람들을 위해 펼쳐진다. 의로운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즉시로 생명책에 기록되어 인봉된다. 그들의 신년은 생명의 해가 될 것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일 년 동안 행복하게 살 것이다. 반면에 악한 사람은 죽음의 책에 기록된다. 그러나 그 중간에 속한 사람들은 욤 키푸르(대속죄일)까지 기다렸다가 생명책이나 죽음의 책 둘 중의 하나에 기록된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에서 욤 키푸르까지의 열흘 동안은 특별히 중요하다. 이 기간 동안의 행위에 따라 일 년 동안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제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못 살 것인가? 따라서 유대인들은 1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철저히 회개하며 필사적으로 기도한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은 정확한 심판을 위해 각자의 행위를 낱낱이 그의 책에 기록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유대의 사상은 운명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각자의 삶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적극적인 인생관이다. 결국 그의 인생은 그가 선택한 대로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택했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할 것이다.

회개의 날

이날(로쉬 하샤나)은 심판의 날일 뿐 아니라 지난해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는 날이기도 하다. 유대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을 누그러뜨리는 세 가지가 있으니 곧 회개(테슈바), 기도(트필라), 구제(쩨다카)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개선한다. 이 세 가지가 다 중요하나, 신년에는 이중에서 인간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려 있는 회개의 문이 특히 강조된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계명에 따라 유대인은 새해 첫날, 자기의 잘못을 회개한다.

새해 첫날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모든 유대인들은 죄를 자백하는 고백의 기도문을 읽는다. 마음이 열린 유대인들은 가족, 친지 또는 친구들에게 찾아가 구체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밝히고 용서를 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유대인은 구제하는 것을 계명으로 알고 항상 남을 돕기에 힘쓴다. 그러나 로쉬 하샤나에는 구제의 의미가 더욱 강조된다. 구제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히 로쉬 하샤나 전달인 엘룰월에 많은 유대인들이 구제에 힘쓰며 신년을 준비한다.

사과와 꿀

새해 첫날 유대인들은 단것을 먹고 신것을 피한다. 사과를 꿀에 찍어 먹는 풍습도 있다. 새해에는 어려움이 없고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는 풍습이다. 사과를 꿀에 찍어 먹기 전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축복한다.

   우리의 주 되신 하나님, 우리 백성의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풍성하고 달콤한 신년을 주옵소서! 우리의 주 하나님, 당신은복되시니 우주의 통치자요, 나무에 열매를 만드시는 분이시니이다.

이러한 행위는 율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풍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똑같은 이유로 신년 첫날에는 고기의 꼬리보다는 머리를 먹는다. 머리는 지도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꼬리가 되기보다는 머리가 되는 신년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신년 예배

신년 예배는 보통 아침 일찍 시작하여 점심 때가 지나야 끝난다. 모든 예배자들은 기도문을 낭송하며 열정적으로 기도한다. 한참 지속되는 기도는 쇼파(양각나팔)가 울려 퍼질 때까지 계속된다. 쇼파를 분 후 사회자가 시편 47편을 일곱 번 낭송하고 나면 모든 회중은 기도를 멈추고 두려운 마음으로 조용해진다. 토라(성경) 두루마리를 담은 토라궤가 열리면 모든 회중은 챤트를 부르며 두렵고 떨리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이때 예배는 그 절정에 달한다. 회중은 탈릿(기도보)을 머리 위로 끌어올리고 큰소리로 회개의 기도문을 암송한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며, 눈물을 흘리는 회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날을 위대하고 거룩한 날로 선포합니다. 당신의 나라는 높임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보좌는 자비 가운데 계시며, 당신은 진리로 심판하십니다. 당신은 진실로 심판자이시니이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며 꾸짖습니다. 당신은 증거를 가지고 계시며, 기록하시며, 인봉(印封)하십니다. 당신은 잃어버릴 듯한 것까지도 기억하십니다. 목자의 막대기 밑을 양이 통과하듯 세상에 들어온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당신 앞을 통과해야 하나이다. 당신은 모든 영혼을 세시며 방문하시나이다. 그들의 한계를 정하시며 그들에 대한 심판을 기록하시나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야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야 하며, 누가 살아야 하며 누가 죽어야 되는지, 누가 주어진 날짜를 다 채우고 가는지 누가 날들을 못 채우는지, 누가 물에 빠져 죽으며 누가 불에 타 죽을지, 누가 칼에 죽으며 누가 굶주려 죽을지, 누가 지진으로 죽으며 누가 전염병에 죽을지, 누가 평안한 인생을 살며 누가 어려운 인생을 살지, 누가 편안하며 누가 괴로움을 당할지, 누가 반성하며 누가 고통당할지, 누가 가난하며 누가 부자가 될지, 누가 버림받으며 누가 영광을 받을지 (당신이 정하시나이다).

 

회중은 위의 기도문을 읽으며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느끼고 각자의 잘못을 회개한다. “그러나 회개, 기도, 구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누그러뜨립니다라는 사회자의 선포와 함께 회중의 기도는 점점 수그러들며 조용해진다. 당분간 기도는 조용히 계속된다. 이때 사회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인간이 얼마나 약합니까! 티끌로 돌아갑니다. 먹기 위해 땀 흘려야 하며, 마른 풀잎처럼 죽나니 사라지는 그림자요 지나가는 꿈입니다. 그러나 오, 하나님, 당신만은 영원하시나이다. 당신만이 영원한 왕이시니이다.”

 

최명덕/조치원성결교회 목사, 건국대학교 교수

신고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의 안식일(3)  (0) 2015.02.12
유대인의 안식일(2)  (0) 2015.01.30
유대인의 안식일(1)  (0) 2015.01.22
유대인의 신년(3)  (0) 2015.01.14
유대인의 신년(2)  (0) 2015.01.06
유대인의 신년(1)  (0) 2015.01.01
posted by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

 

유대인의 신년(1)

 

정통파 유대인들은 유대 달력으로 일곱째 달인 티슈리월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을 신년으로 지킨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첫째 날만을 신년으로 지킨다. 유대력의 티슈리월은 태양력의 9월 말이나 10월 초의 가을에 해당한다. ‘로쉬 하샤나라고 알려진 유대인의 신년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이날은 심판의 날’(욤 하딘)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다. 지난해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칠 것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면서 우선은 하나님과, 다음으로는 사람과 화해하는 날이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는 날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날을 욤 하라트 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세상의 생일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시작을 기념하는 이날, 유대인들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다시 그들의 삶 속에 창조되기를 기원한다.

 

새해를 준비하는 그믐날

 

새해가 시작되기 하루 전, 새벽부터 일어나 회당으로 예배드리러 간다. 이날은 반나절만 금식하는 날이다. 사람에 따라 새벽에 간단하게 크랙커와 차 정도로 요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점심때까지는 먹는 것이 금지된다. 오후 1시에 다시 오후 예배를 드린 후 목욕을 함으로써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신년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목욕을 끝내고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한다. 욤 키푸르(대속죄일) 전날에도 유대인들은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한다. 새해 전날과 대속죄일 전에 목욕하는 것은 유대인이 꼭 지켜야 할 종교적인 의무이다.

 

쇼파

 

신년 첫날 유대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쇼파(뿔나팔)를 불어 새해가 된 것을 만방에 선포한다(레위기 23:24, 민수기 29:1). 따라서 로쉬하샤나를 ‘(나팔)부는 날이라는 뜻의 욤 트루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쇼파는 악기로 사용되었다. 또는 출전 나팔이나 백성을 전쟁에 소집하는 나팔로, 혹은 전쟁 시 적을 놀라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년에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는 작년에 일어난 일들, 메시아에 대한 소망,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 선포 등 유대인들에게 많은 것들을 상기시킨다. 탈무드는 신년에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잠에 빠져 있는 잠꾸러기들아, 잠에서 깨어나라! 선잠에 빠져 있는 잠꾸러기들아, 정신을 차려라! 너의 행위를 점검하며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라. 남기지도 못할 이익을 헛되이 구하며 세월을 허송하는 자여, 일상의 사사로운 일에 빠져 영원한 진리를 바라보지 못하는 자여,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너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라. 너의 삶과 행사를 높여라. 너의 악한 행위와 비천한 계획을 포기하라.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신년에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에 사탄이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쇼파 소리와 함께 온다고 믿는다. 쇼파 소리와 함께 메시아가 오시는 날, 사탄은 산산이 부서지는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매해 신년에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에 사탄은 메시아가 오는 줄 알고 혼란에 빠져 허둥대며, 반면에 이스라엘은 최후의 승리가 메시아에게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유대인 학자 싸디아 가온에 의하면 열 가지 이유에서 쇼파를 분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로, 로쉬 하샤나는 창조의 시작을 상징하며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을 지배하십니다. 왕들은 그가 왕으로 즉위할 때 나팔을 불게하며, 해마다 같은 날 나팔을 불어 그의 즉위를 만방에 알려 축하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년에 창조주가 모든 만물의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시편 98:6)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둘째로, 신년은 경외의 날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쇼파를 부는 이유는 경외의 날이 시작된다는 것을 모든 백성에게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경외의 날을 지키기 원하는 사람은 쇼파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경건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어려움을 당해도 변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쇼파 소리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 앞에 서약한 우리의 맹세를 상기시킵니다.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애굽기 19:19).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애굽기 24:7).

 

여섯째로, 묶어 바친 이삭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우리 자신의 삶을 성별(聖別)하여 바쳐야 합니다.

 

일곱째로, 쇼파 소리를 들을 때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창조주 앞에 우리의 뜻을 굴복해야 합니다.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아모스 3:6)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덟째로,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이 다시 모여야 함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聖山)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이사야 27:13)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년에 높이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는 과거에 대한 지카로놋’(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기억함)으로, 현재에 임하는 말쿠욧’(하나님의 주권)으로, 미래에 임할 쇼파롯’(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으로 유대인의 영혼 깊이 각인된다.

 

                                           최명덕/조치원성결교회 목사, 건국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의 안식일(3)  (0) 2015.02.12
유대인의 안식일(2)  (0) 2015.01.30
유대인의 안식일(1)  (0) 2015.01.22
유대인의 신년(3)  (0) 2015.01.14
유대인의 신년(2)  (0) 2015.01.06
유대인의 신년(1)  (0) 2015.01.01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