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4)

 

지금 우리가 걷는 길

 

모세는, 백성이 각 가족별로, 제각기 자기 장막 어귀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이 일로 대단히 노하셨고, 모세는 그 앞에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이 모든 백성을 제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정말로 이렇게 하셔야 하겠다면, 그리고 제가 주님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면, 제발 저를 죽이셔서, 제가 이 곤경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민수기 11:10-15)

 

인간은 언제나 자기 불화에 시달린다. 두 종류의 ‘나’가 있다.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가 그것이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삶의 비애는 커진다. 시간에 등 떠밀리며 사느라 우리는 ‘되고 싶은 나’로부터 멀어진다. 세월이 지나 문득 돌아보면 그 멀리 눈물을 짓고 있는 낯익은 한 존재가 있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게 부과된 삶의 조건 말이다. 때로 사람은 능동적으로 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길에 의해 선택을 당하기도 한다. 모세가 그러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유랑이었다. 바로의 궁궐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보낸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40년,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사의 도구로 40년. 그는 행복했을까?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늘 기쁜 마음으로 감내했을까?

 

사람은 누구나 다 평범한 행복에 대한 갈망이 있다. 성경은 평화의 이미지를 눈에 그릴 듯 보여준다.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은 집에서 알콩달콩 살고, 자기 포도나무 열매를 따먹고, 무화과나무 그늘 밑에서 쉬는 삶이야말로 히브리인들이 그리는 평화의 풍경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순간 그런 평범한 행복은 허용되지 않는다. 

 

                류연복 판화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면서 모세는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자기 삶의 주체로 서지 못한 오합지졸의 무리들은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먹을 것, 마실 것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했다. 물론 그런 상황의 절박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원망이나 투덜거림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번이 투덜거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신적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민수기 11:11) 영광스러운 책임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으로 화하는 것은 일순간이다. 모세는 이 곤경에서 벗어날 있다면 차라리 죽음을 달게 감내하겠다고 말한다.

 

강철같던 사나이도 이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돕는 자들을 세우신다. 백성의 장로 가운데 일흔을 세워 짐을 나눠지게 하신다. 함께 시린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을 때 삶은 다시 반듯해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이미 멀어진 ‘되고 싶은 나’ 말고 ‘현실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 ‘나’가 그분의 손에 붙들린 것이 분명하다면.

 

*기도*

 

하나님,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면 덩달아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의무의 감옥에 갇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하는 일은 괴롭지만 깊은 보람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주님, 십자가의 길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비록 비틀거릴지라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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