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7)

 

어려운 위임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복음 16:19)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인 동시에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사실의 발견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눈 뜸이다. 예수님의 알짬에 눈을 뜨는 순간 베드로는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주님은 그런 깨달음이 베드로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면서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 16:18)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초석인 이 반석은 베드로라는 개별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힘을 통해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을 과감하게 거슬러 섬김의 길을 걸으려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교회가 지배의 욕망에 사로잡힐 때 교회의 토대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면서 그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위임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베드로는 늘 손에 열쇠를 든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천국 문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는 열쇠. 오랫동안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를 자처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천국의 열쇠’를 내보이며 넌지시 혹은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주님은 그 열쇠를 잠그는 데 쓰라고 주신 것일까? 아니다. 닫힌 문을 열라고 주셨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서로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둘 사이에 물길이 트게 마련이다.

 

특정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거나 혐오감을 내비칠 때 교회의 자기 부정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배제함으로 얻는 쾌감은 저열한 것이다. 가름과 차별을 통해 특권층의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세상에서 교회와 교인들은 그 답답한 교착상태를 열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아무리 강고한 벽이라 해도 어딘가에 문은 있다지 않던가.    

  

*기도*

 

하나님, 우리 손에 들린 열쇠가 무겁기만 합니다. 가끔 우리는 그 열쇠를 잠그는 데 사용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열쇠를 푸는 데 사용하라 하십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상처를 입은 우리 마음은 점점 좁아져 이웃을 위한 여백이 거의 없습니다. 주님, 우리 마음을 넓혀주십시오. 그리고 이웃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김기석 목사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