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

김기석의 새로봄(26)

 

살리는 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야고보서 1:19-21)

 

말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을 갈라놓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바츨라프 하벨은 ‘말의 힘’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했던 사람이다. “모든 말들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 말해지는 상황, 그리고 말하는 이유 등을 반영한다. 똑같은 말이 한 순간엔 큰 희망을 방출하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살인 광선을 내뿜기도 한다. 똑같은 말이 한 순간엔 참이었다가 다음 번에 거짓으로, 그리고 사태를 명확하게 조명해주다가도 또 다른 순간엔 기만적으로 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찬란한 지평을 열어주다가, 다음 번엔 수용소 군도에 이르는 통로를 세우기도 한다. 같은 말이 한 시점에서는 평화의 주춧돌이었다가, 다음 순간엔 그 음절 하나 하나마다 기관총 소리가 울려퍼질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이 광선검이 되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따뜻하고 온유한 말은 사람들 속에 잠든 생명을 깨운다. 따끔하지만 독기가 없는 말은 혼곤한 영적 잠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독한 말, 정감 없는 말, 적대적인 말, 거짓말은 생명을 질식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를 떠도는 말은 살리는 말인가, 죽이는 말인가?

 

 

야고보서에는 말에 대한 교훈이 많다. 경건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혀를 다스리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는 이들 때문에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야고보서 3:8). 그 구절은 말이 공동체 내에 일으킨 혼돈과 분열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바른 말이 늘 옳은 말은 아니다. 옳은 말이 늘 살리는 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말은 그래서 어렵다.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말은 소음’이라고 말했다.  

 

야고보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약1:19-21). 빨리 해야 할 것이 있고, 더디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둘을 바꿔놓으면 안 된다. 노함은 ‘더러움과 넘치는 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에 분노가 속에 차오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모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살리는 말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기도*

 

하나님, 옹알이를 하는 아기들을 봅니다. 우리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지만 엄마는 그 비언어적 언어를 다 알아듣습니다. 그 차이는 깊은 사랑일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발설하지 않은 말까지 알아듣습니다. 홍수통에 마실 물 없다는 옛말처럼 말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참 말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가까운 이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살리는 말, 생명을 일깨우는 말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침묵의 우물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올리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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