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46)

 

보물이 오물로 변할 때

 

그들은 은을 길거리에 내던질 것이며, 금을 오물 보듯 할 것이다. 내가 진노하는 날에, 은과 금이 그들을 건져 줄 수 없을 것이다. 은과 금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못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은과 금은 그들을 걸어서 넘어뜨려, 죄를 짓게 하였을 뿐이다. 그들이 자랑하던 아름다운 보석으로, 역겹고도 보기 싫은 우상들을 만들었으므로, 내가 보석을 오물이 되게 하겠다.(에스겔 7:19-20)

 

자본주의 체제는 욕망을 확대재생산함을 통해 유지된다. 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지만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하듯이 인간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에 사로잡힌 영혼은 ‘이제 그만’이란 말을 모르기에 삶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희소한 것’을 소유함으로 남들과 구별되려 한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죄는 ‘새로운 상품’의 소비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쳇바퀴를 돌리느라 사람들은 피곤하다. 

 

돈은 힘이 세다. 못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구매력이 있는 사람은 어딜 가나 당당하다. 낯선 곳에 가도 주눅 들지 않는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사람들은 돈을 신으로 모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렇게 된다. 돈을 위해 양심을 팔기도 한다. 예수님은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하면 그 친구의 목소리나 그 친구가 좋아하는 장난 혹은 나비를 수집하는지는 묻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만 묻는다고 말한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니?”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해야 그들은 ‘야, 참 훌륭하구나!’ 하고 감탄한다”. 타락한 세상이다. ‘어린왕자’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가게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비상한 시기가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돈은 무력하다.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을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고 여기며 살았던 삶을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다. 에스겔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욕망의 길을 따라 간 백성들에게 경고한다. 주님의 분노의 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날,  “매질할 몽둥이가 꽃을 피우고 교만을 꺾을 채찍이 싹터”(에스겔 7:10) 나오는 날이 곧 닥쳐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매질을 피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으랴! 그때서야 그들은 자기들이 행복의 신기루를 좇고 있었음을 알고 후회할 것이다.

 

“그들은 은을 길거리에 내던질 것이며, 금을 오물 보듯 할 것이다. 내가 진노하는 날에, 은과 금이 그들을 건져 줄 수 없을 것이다. 은과 금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못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은과 금은 그들을 걸어서 넘어뜨려, 죄를 짓게 하였을 뿐이다.”(에스겔 7:19) 그날이 오면 보석이 오물로 변한다. 무서운 심판이다. 보석이 오물로 변하는 일은 일상에서 다반사로 벌어진다. 돈 때문에 인간성을 포기한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돈이 중심이 되는 순간 아름다운 관계는 파탄 나고, 공동체도 파괴된다. 돈 없이 살기는 어렵지만, 돈이 우리 삶의 주인 노릇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기도*

 

하나님, 이전보다 우리 삶의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행복감은 오히려 줄어든 것 같습니다. 골고루 가난하던 시절, 이웃들은 콩 한 쪽도 나눠먹었습니다. 가속화된 시간 속을 바장이는 현대인들은 도무지 이웃들에게 곁을 내주질 못합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순간 다른 이들이 우리를 추월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입니다.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복을 피하며 사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금과 은, 보물이 오물로 변할 수도 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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